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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327:계동학원유허비...계모노래
작성자장병창 @ 2019.01.17 06:09:50

  도청신도시 예천 327 : 계동학원유허비...계모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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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동학원유허비(開浦 琴里 抗日民族學校 '계동학원' 設立者 박창호 先生 유허비 建立!!) [記事] : 1923년 일제치하! 개포면 금리(양지마)'계동학원'을 설립하여 가난으로 헐벗고 굶주린 무산아동을 모아 무상으로 보통학교 과정과 항일 민족 교육을 실시하며 독립의지를 불태웠던 계동학원 설립자 박창호 선생의 유지를 기리는 유허비 제막식이 2014104일 오전 11시 금리에서 개최됐다. 이날 제막식에는 안희영 도의원, 김은수·김후남 군의원, 반형식 전 국회의원, 유강하 전 도산서원 원장, 김대진 재경회장, 박대일 전 재경예천군민회장, 안상대 광복회 예천지회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 및 주민, 박창호 선생의 후손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유허비 제막을 축하했다. 정희융 위원장은 "무지와 가난 속에서 고통 받던 이 땅의 농민과 노동자의 어려움을 보도하고 이분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고, 나아가 신간회 예천지회 간부로 활동하다 일제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던 동아일보 김상기 기자의 후손에게 '송공패'를 전달했다. 유허비문을 쓴 김봉균 박사(전 대구보건대학교 교수:철학박사)"일제치하에서 이 나라 독립지사들은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곳곳에 학교를 세웠으며, 예천에서도 계동학원이 설립되어 80여명의 학생들이 선생님들이 스스로 부담하는 경비로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박인호 건립소위원장은 "일제강점기 우리 동네에 함양박씨 주손 박창호 선생이 설립한 계동학원이 있었다가 폐교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으나 구체적인 사실은 잘 모르고 지냈는데 정희융 위원장님과 위원여러분들의 노력으로 유허비를 건립하게 되어 감사드린다."는 경과보고를 했다. 정희융 위원장은 기념사에서 "계동학원은 인근의 헐벗고 굶주린 무산아동을 모아 무상으로 보통학교 과정을 가르쳤으며, 학교운영에는 설립자 박창호 학감을 비롯한 4분의 선생님이 힘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하여 2년 만에 80여명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또 "설립자 박창호 선생은 농민운동과 청년운동에 뛰어들었고 독립운동단체의 총 연합체인 신간회 예천지회 간부로 활동하며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다 일제의 치안유비법위반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를 때 일본인판사는 선생을 민족의식이 치열한 자로 판결문에 썼다"고 회고했다. 정 위원장은 앞으로 "이런 역사적인 계동학원 선생님들의 항일민족교육의 정신이 서린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게 된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하며 앞으로 유허비 건립위원회는 유허비보전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유허비를 영원히 보존, 계동의 항일 민족교육을 선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희영 도의원은 축사에서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에 계동학원 개교 90주년을 기념하는 항일민족학교 사립 계동학원 유허비 건립기념식을 축하드리고 이곳이 우리민족의 혼을 일깨우는 역사적인 장소로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지길 기원드린다."고 말했다. 반형식 전 국회의원은 "박창호 선생이 일제치하에서 학교를 세우고 헐벗고 굶주리던 조선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웠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오늘 계동학원유허비를 세운 이 자리를 방문하게 됐다""남달리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계동학원 박창호 선생을 추모한다."고 말했다. 김은수 군의원은 "향토문화를 항상 걱정하시면서 오늘 행사를 준비하여 준 정희융 위원장님과 후손이신 박인호 부위원장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유허비 건립을 계기로 박창호 선생님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곳 금동 유허비 현장에 계속되길 기원한다."는 축사를 했다.

 

  한편, 유족들은 "오늘 멀리 이곳까지 찾아 주신 귀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른 체 무심하게 지내오던 저희들에게 선대가 해 주신 계동학원의 항일민족 교육을 세상에 드러내고 빛내주신 정희융 위원장님과 위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또한 "오늘 해 주신 소중한 유허비는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가슴 깊이 간직할 것"을 다짐하고 "선대가 운영했던 계동학원이 일제 강점기 예천의 항일 민족교육과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한 몫을 담당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더욱 열심히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문중이 되겠다."고 말했다. 유허비건립 고유문에는 "2014년 경오 104일 계동학원 설립자 박창호 학감님 질녀 제현은 큰아버님과 박노헌, 박중식, 박윤상 선생님 영전에 엎드려 감히 고하려니 눈물이 흘러서 앞을 가리나이다, 돌이켜보면 암울했던 일제치하 1923 4월 이곳에 터를 잡아 교문을 열고, 가난한 학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니 인근 마을에서 구름같이 모였습니다. 여기에 힘을 얻은 계동의 선생님들은 지성으로 학생을 가르치니 전국에 이름난 민족학교였습니다. 4년이 지난 1926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당한 학생들은 배움터를 잃고 공부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해방된 조선 땅에서도 계동이라는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고 없는듯 살아왔습니다. 오로지 교육을 통해서 조선의 독립을 이루고자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큰 아버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교육애도 무심한 세월 속에 잊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각계의 인사들이 계동학원 세운 뜻을 기리고 본받고자 오늘 여기에 유허비를 세웠나이다. 이 비는 앞으로 선생님과 학생들을 추모하는 제향시설이요, 항일지사를 받드는 현충시설이며, 후생들을 위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만세토록 우뚝하게 빛날 것입니다. 큰아버님! 계동학원 개학 후 90여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모시지 못한 불경을 꾸짖고 가르쳐 주시기를 우러러 청하나이다. 네 분 선생님의 후손과 함께 삼가 영전에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제물을 차리고 공손히 엎드려 올리오니 부디 흠향 하옵소서...201410월 저 멀리계신 백부님의 아들 제홍오빠를 대신하여 질녀 박제형 읍혈재배"라고 기록됐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4-10-04 오후 2:19:16)

 

  계룡가[民謠] : 예천군에서 전승되어온 농부타령요(農夫打令謠, 勞動謠)이다. [內容] : 심구 심구 심구신 낭게에(나무에)/ 삼 정성(三政丞)이 물을 주어/ 육 판서(六判書) 기른 가지/ 팔도 강산 꽃이 다 피었네/ 그 끝에 무신(무슨) 열매 맺았던고/ 각 골 수령이 다 열렸네/

 

  계룡산 도읍도(鷄龍山都邑圖) [] : 유천면 성평리 출신 권중화(權仲和, 1322-1408)가 제작하여 조선 태조에게 바친 충청남도 계룡산의 도형으로, 1, 고본(稿本)이다. 태조가 개경(開京)으로부터 도읍지를 옮기고자 각지를 물색하던 1393(태조 2) 정월 태실고증사(胎室考證使) 권중화가 천도(遷都)의 후보지로 계룡산의 도형을 그려 바친 것이다. 이에 따라 태조는 그 해 2월 계룡산의 산형 수세(山形水勢)를 답사한 다음 도읍지로 결정하여 공사에 착공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경기좌우도관찰사 하륜(河崙)의 진언(進言)에 따라 중지하였다.(인터넷 야후 2001)

 

  계림정(鷄林亭) [亭子] : 호명면 본리 위라동(位羅洞) 서편 석대(石臺) 위에 있는 정자로, 경주인 계림군 최한홍(鷄林君崔漢洪, 1473-?, 中宗反正 때의 靖國功臣)의 유덕(遺德)을 추모하여, 13세손 호군 최응진(護軍崔應軫)이 창건하였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훼괴(毁壞)된 것을 최응진의 증손자인 최재린(崔載麟)이 본리 쌍송(本里雙松) 아래에 있던 건물을 여러 종족(宗族)과 합의하여 19367월에 현 위치로 이건(移建)하였다. <군지(郡誌)>(1939)에서는 15세손 최병대(崔炳大)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계림정(鷄林亭) [亭子] : 호명면 본리 44-2번지()에 있는 정자로, 경주인 최한홍(崔漢洪)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정면 3,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후면(後面) 어간(御間)에 온돌방 1칸을 설치한 후, 온돌방의 삼면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마루의 주위에는 계자각(鷄子脚)을 세운 헌함(軒檻)을 설치하였다. 기둥은 전면과 양측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는데, 전면 기둥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계림정(鷄林亭) [亭子] : 호명면 본리 44-2번지()에 있는 정자로, 경주인 최한홍(崔漢洪)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는데, 1936년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정면 3,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후면(後面) 어간(御間)에 온돌방 1칸을 설치한 후, 온돌방의 삼면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마루의 주위에는 계자각(鷄子脚)을 세운 헌함(軒檻)을 설치하였다. 기둥은 전면과 양측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는데, 전면 기둥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계림정(醴泉本里 鷄林亭) : *위치 : 예천군 호명면 본리 44-2(새랄길 49), *연대 ; 1936, *규모 : ‘-’자형 정자 1, 사주문 1/ 계림정은 호명면 본리 새랄 마을 입구 언덕 위에 있다.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진 최한홍(崔漢洪, 1473-?)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3세손 최응진(崔應軫)이 세운 정자이다. 최한흥은 무과에 합격하였으며, 1506(중종 1) 중종반정으로 축출된 연산군을 강화도 교동에 유폐하는 일을 담당한 공로로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그는 기호지방에 살았는데, 손자 최영현(崔泳鉉)이 예천 용궁으로 이거하면서 경주최씨가 이곳에 살게 되었다. 후손들은 조상을 추모하려는 마음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계림정을 건립하였으며, 월래 마을 안쪽에 있었으나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1936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새랄 마을은 동네 중앙을 흐르는 개울을 경계로 안동과 예천이 나누어진다. 계림정기(鷄林亭記)에 의하면, 이곳 지명을 위라(位羅)라고 하였는데,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위라면 소재지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마을은 경주최씨 동성마을로 140호 정도의 규모이며, 삼태기 형국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심태기 안에 해당하는 테(마을 경계) 안에 살아야 잘 살고, 테 밖에 나면 못 산다는 믿음이 전해오며,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테 안에 터를 잡고 산다. 마을의 동쪽 산자라 끝에는 약포(藥圃) 정탁(鄭琢)의 묘소가 있으며, 마을 안팎의 경계가 되는 입구에는 느티나무 동수(洞樹)가 있다. 본리 계림정은 호명면을 동서로 지나는 924번 지방도로 풍산 태사로에서 북측 본리를 향해 난 밭마길과 새랄길 중 새랄길을 따라 접근한다. 본리는 북측에서 내려온 능선에 의해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마을의 동측 지역은 새랄길로 접근하며, 이 새랄길의 서측 산자락에 계림정이 터를 마련하고, 동남향을 하고 있다. 계림정은 ‘-’자형 누정과 사주문과 일각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림정의 출입은 새랄길에서 산자락으로 난 안길을 이용한다. 계림정은 와편과 돌, 흙으로 축조한 담장을 사면에 두르고 있다. 출입문인 사주문은 우측 담장 모서리에 있으며, 일각문은 우측 담장 중간에 있다. 배면 담장 너머에는 텃밭과 남야현으로 흐르는 능선이 있다. 좌측에도 텃밭이 있고, 우측 사주문 앞에는 빈 가옥이 있다. 정면 담장 너머에는 바깥마당이 있다. 담장 내 안마당은 흙바닥이며, 정자 배면과 좌우측면에는 낮은 축대를 쌓은 후 담장을 쌓았다. 사주문는 자연석 주초 위에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의 삼량가구를 받도록 하였으며, 처마는 홑처마이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이다. 계림정은 전퇴가 있는 정면 3, 측면 1.5칸의 ‘-’자형이다. 평면은 전면에 툇마루를 꾸미고, 중앙 온돌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마루간이 있는 독특한 평면 구성을 하고 있다. 정면의 툇마루는 정면 기둥 밖으로 마루 끝을 확장한 후 툇마루 끝과 좌우측 쪽마루 끝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좌우측면 마루간은 좌우측면뿐만 아니라, 배면에도 쪽마루를 깔았다. 중앙의 온돌방은 정면과 좌우측면에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고, 상부에는 교창을 달아 놓았다. 배면에는 벽장을 꾸며 네 짝 미닫이 베니아판문을 달아 수장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온돌방 아궁이는 툇마루 아래 기단에 있고, 굴뚝은 배면 기단 위에 있다. 계림정의 기단은 자연석과 시멘트모르탈로 축조했는데, 툇마루 밑 기단은 두 단으로 되어 있다. 좌우측과 배면 기단과 기단 바닥을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전면 열의 주초는 화강석을 다듬은 원형주초이며, 나머지 상단의 주초는 자연석 주초이다. 그리고 온돌방의 기둥은 사각기둥이며 나머지 외부의 기둥은 원기둥이다. 정면 열의 원기둥 상부는 직절익공방식으로 창방과 보아지가 짜 맞춤을 한 후 주두를 놓고, 보와 도리, 장혀를 받도록 했다. 나머지 좌우측면과 배면 사각기둥 상부는 납도리 형식으로 보아지와 창방, 납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계림정 가구는 일고주 오량이며, 마루간 상부는 연등천정으로 열려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처마 끝은 막새기와를 마감한 후 철재 차양과 물받이 홈통을 달아 놓았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계림정의 목재는 단청을 하지 않았으며, 벽면과 서까래 사이는 회바름으로 마감했다. 처마도리에는 鷄林亭편액, 중도리 밑에는 鷄林亭記편액이 걸려 있다. 계림정은 1936년 건립 이후 훼손되거나 변경된 부분은 거의 없으며, 독특한 평면 구성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건축사적 보존적 가치가 있다. 현재 계림정은 방치된 상태로 있어 점진적으로 퇴락되고 있다. 따라서 계림정은 그에 적합한 보존 및 활용, 유지관리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정비 및 활용을 한다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고 판단된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 310-312)

 

  계림정: 계림정-예천 호명/ 2013.02.22/ 예천 호명면 본리 719번지 새랄쉼터 마을 뒷편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정자/ blog.daum.net/likedream12/ 瞬景-꿈가치(daum 2016)

 

  계립령로(谿立嶺路), 지릅재길, 하늘재길, 마목현길, 마골산길 [道路] : 조령(鳥嶺)의 동쪽 20리에 있는 영남과 서울을 잇는 고갯길로, 서울충주연풍(延豊)미륵사지(彌勒寺址)문경 계립령(谿立嶺)문경 관음리여우목(狐項嶺, 聞慶市 갈평면 생달리)동로면 적성리(東魯面赤城里)용문면 두천리(龍門面杜川里)원류리(院流里)상금곡리(上金谷里)예천읍 용산리(醴泉邑龍山里)백전리(栢田里) 밤나무고개동본리(東本里) 돌꼬지동본리 덕만(德滿)동본리 원골(院洞) 고평리(高坪里)로 이어지는 우리 나라 동남향 제일 큰 간선(幹線) 도로였다. 서기156(阿達羅王 3) 4월에 신라가 북방으로의 영토 확장을 위하여 개통하였다. 그러므로 상주의 사벌국(沙伐國)이 서기 3세기 중엽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된 데 비하여 예천은 2세기 중반에 이미 신라의 영토화한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방어의 산성이 많아 죽령(竹嶺) 이남까지 고구려의 판도였으나, 예천은 끝까지 고구려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였다. 이 길은 죽령로(竹嶺路, 158)와 조령로(鳥嶺路, 새재길, 1414)보다 더 빨리 개통되어 신라와 고려 시대에 이용되었다. 조선 태종 때에 조령로를 개통시킨 후 계립령로(谿立嶺路)는 폐쇄되었다.

 

  계면활성제를 첨가한 액적의 증발냉각(界面活性劑添加液滴蒸發冷却 =Evaporation Cooling of a Droplet containing a Surfactant) [學術저널] : 감천면 벌방리 313번지 출신인 유갑종(劉甲鍾, 1939- ,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대한기계학회에서 20034월에 발행한 <대한기계학회논문집 B> 27권 제4424~431(8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 : Abstract/ 1.서론/ 2.실험장치 및 방법/ 3.실험결과 및 고찰/ 4.결론/ 참고문헌 / [본문 요약] : The evaporation cooling phenomenon of a droplet containing a surfactant on a heated surface has been studied experimentally. The two kinds of heater modules made of brass and Teflonwere tested to investigate the cooling characteristics of droplet. Solutions of water containing Sodium Lauryl Sulfate(0 ppm. 100 ppm. 1000 ppm) were tested in the experiments. The results showed that the contact angle decrease as the concentration of surfactant increases. The tendency did not very with different heated solid materials. As initial temperature of the heated surface becomes high, time averaged heat flux increases and evaporation time decreases with the denser concentration of surfactant. Therefore, water with denser concentration of surfactant could be effective to cool flammable materials. However, the effect of surfactant becomes low as the material temperature is higher than the boiling temperature of water.(daum 2008)

 

  계명서당(계명서당 박광모 院長 大韓民國 書藝大戰 特選) [記事] : 예천읍 계명서당 소여(素如) 박광모 원장이 제25회 대한민국서예대전(서협) 한문부분에서 특선을 차지했다. “묵향에 젖어 살아가는 안빈낙도의 삶속에서 간간이 찾아오는 즐거움에 웃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좋다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를 연마해 더 좋은 글씨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수상소감을 피력했다. 수상작은 예서체로 쓴 이재(李栽) 선생시 운물각이신(雲物覺已新:경치가 이미 새로워졌음을 알겠다)으로 특선의 영예를 안았다. 박광모 원장은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예과를 졸업했으며, 최우수 졸업작품상,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2),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경상북도서예대전에서 입선, 특선(2), 우수상, 등을 각각 수상했다. 또한 각종 공모전과 휘호대회에서도 다수의 입·특선을 차지한 바 있으며, 선외선(線外線)이란 주제로 32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현재 문경시 여성회관과 공공도서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인화 및 서예강좌에 출강하고 있으며, 흥덕서실(점촌)과 계명서당(예천)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또한 올해부터 남부초등학교 토요일 방과후 지도를 맡고 있다.(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130503() 14:23:14)

 

  계명서당: 이비엠학원/계명서당 한자교습소 참고하기/ 2012.07.24/ 이비엠학원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 38-4, 계명서당한자교습소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남본리 237-2/ blog.daum.net/novicxz/ 핫바(daum 2016)

 

  계명서당: 계명서당 박광모 원장 대한민국 서예대전 특선 : 2016.5.26 14:41 20130503() 14:23:14 백승학 기자/ 예천읍 계명서당 소여(素如) 박광모 원장이 제25회 대한민국서예대전(서협) 한문부분에서 특선을 차지했다. “묵향에 젖어 살아가는 안빈낙.../ www.ycnews.co.kr/news (daum 2016)

 

  계명서당: 계명서당 한자교습소 교육 >취미학원/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남본리 237-2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효자로 40 교육 > 취미학원 8 예천군 예천읍에 위치한 취미학원업체 계명서당한자교습소 ※등록된 이미지가 없는 경우 포털에서 "계명서..../ www.localview.co.kr/store (daum 2016)

 

  계명서당: 경도간호학원/ 경도간호학원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충효로 241, 4(예천읍, 한국수자원공사) 간호조무사 간호조무사 40 7500 2010.08.12 414m 계명서당한자교습소 초등보습(한자) 414m 공부의신수학교습소 초등수학 중등수학 .../ allhakwon.com/academy/ (daum 2016)

 

  계명서당: 예천의 자랑 3271 : 권점숙(4)-권정로-권정섭-권정옥-권정찬-권정침(1)(祝 김영득, 박광모.../ 작성 장병창/ (진사)-권정찬(교수)-권정침(설서)(1)(附 개포면 출신 김영득, 전국 우수중소기업 경영자 대상...축하합니다/예천읍 계명서당 원장 박광모, 전국 서예대전 특선...축하합니다/예천방문 989).../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 (daum 2016)

 

  계명현(鷄鳴峴) : 예천읍 백전2리에 있는 고개로, ①임진왜란 때 두사총(杜師聰)이 이 고개를 지나 금당실(金塘室)에 이르러 금계(金鷄)가 앞에 있고, 옥견(玉犬)이 뒤에 있으니, 마치 중국 양양(襄陽)의 금곡(金谷)과 같다고 크게 칭찬했다. ②용문면 선동에 사는 서씨가 가난하여 짚신 장사를 해 가며 그 아들을 가르쳐서, 마침내 그 아들이 벼슬을 하여 고을 원으로 도임하는 것을 보려고 하인에게 업혀서 백전동 신거리에 가서 그 아들을 만나보고 어찌나 기뻤던지 정신없이 즐기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는데, 이 고개에 이르니, 닭이 울었다고 한다.(醴泉邑홈페이지 2013)

 

  계명현: [백두대간대장정 제18구간] 석병산 지명/ 2006.07.20/ 했고, 한자로 계명현이 되었다 한다. 근처 백전리 신거리도 이 짚신장수 서씨의 전설에 연결돼 있다. 서씨가 짚신장사를 할 때 신을 삼아 가지고 장날마다 예천읍에 가는.../ eastpeak.tistory.com/ 동쪽봉우리(daum 2016)
 

  계명현: 닭 지명과 명당/ 2004.09.14/ 붓들 서쪽 고개인 '닭우리고개'는 닭이 울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한자로는 계명현... 아들을 보려고 하인에게 업혀서 백전리 신거리에 가서 그.../ cafe.daum.net/moongch/4scZ/ 뭉치세상 | 댓글 1(daum 2016)

 

  계모노래(繼母歌) [民謠] : 예천군에 전승되어온 가족요(家族謠)이다. [內容] : 장개가네 장개가네 쉰다섯에 장개가네 머리신대 먹칠하고 눈빠진대 불콩박고/ 이빠진대 박씨박고 코빠진대 골미박고 누럿누럿 호박꽃은 울담에라 넘나들 때/ 그 모양이 첫째로다 지붕처마 넘나들때 박꽃이 첫째로다 숙굴숙굴 수만대요/ 만사태평 우라배요 전실자식 있거들랑 후실장개 가지마소 이내눈물 받아서로/ 지양뜰에 뿌렸다가 지양꽃이 피거들랑 날만이기 돌아보소 이내나는 죽거들랑/ 앞산에도 묻지말고 뒷산에도 묻지말고 고개고개 넘어가서 가시밭에 묻어주소/ 가지형제 열거들랑 우리형제 연줄아고 눈물한번 뚜기주소 우리동모 날찾거든/ 가지한쌍 따서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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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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