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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349:계연재...걔알헌알가,,,
작성자장병창 @ 2019.02.13 06:16:52

  도청신도시 예천 349 :계연재...계일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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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연재 : 제10회 계연재 서예전 열려 : 2016.5.20 금 10:19 2002년 05월 02일 (목) 11:28:51/ 서예가 신계 김준섭(예천읍 왕신리 출생) 씨의 지도를 받는 서예실 계연재 회원들의 작품이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백악예원에서 열린.../ www.ycnews.co.kr/news (daum 2016)

 

  계연재 : 5월 5일부터 계연재 회원 서예작품전 개최/ 14:00:47/ 국전 초대작가인 원로서예가 신계 김준섭(예천읍 왕신리 태생)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서예실 계연재(溪硏齋) 회원들의 서예작품전을 오는 5... 쓴 한글과 한문 작품 80여점이 다양하게 선보인다. 신계 김준섭 씨는 국전 .../ www.ycnews.co.kr/news (daum 2016)

 

  계연재 : 김준섭 2004년, 계연재, 서예전/ 1982년-1991년,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1985년, 한·일 서예교류전, 미술회관 1985년, 한·일 문화교류서예전, 동경 1987년, 일·한 서예교류전, 동경 모리미술관 1988년, 한국서예100년전, 예술의.../ monthlyart.com/dicwho/김준섭-2/ (daum 2016)

 

  계연재 : 예천의 자랑(3493) : 김주하(2)-김주현-김준-김준기-김중범-김준섭-김준한-김중기-김중득-김중하-김.../ 작성 장병창/ 8회 계연재 서예전을 열었다. 1998년 7월 21일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제10회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2000년 3월 6-12일 서울 인사동 거리 백악예원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어 40여 년에 걸친 서예 인생.../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계옹정(溪翁亭) [亭子] : 보문면 독양리 두곡(斗谷, 杜陵里)에 있는 정자로, 인동인 계옹 장지걸(溪翁張之杰, 1662-1736, 進士)이 창건한 곳에 그의 유덕(遺德)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1927년에 재건하였다. 족손 한성판윤 장화식(族孫漢城判尹張華植)의 기문(記文)이 있다.(朝鮮寰輿勝覽 1929, 嶠南誌 1937)

 

  계옹정(溪翁亭) [亭子] : 보문면 독양리 두곡(斗谷) 마을에 있는 정자로, 인동인 장지걸(張之杰)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1700년에 세웠다가 1927년에 재건했다. 정면 3칸, 측면 1.5칸,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 한성판윤 장화식(張華植)의 기문이 있다.(醴泉鄕校誌 2004)

 

  계옹정(溪翁亭) [亭子] : 보문면 독양2리 소재, 인동인 장지걸(張之杰)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927년에 건립한 정자로, 1968년에 중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전면 기둥의 하부에는 석간주를 세워 전면의 툇간은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으며, 툇간의 주위에는 계자각(鷄子脚)을 둘렀다. 가구는 오량가(五樑架)의 이익공집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醴泉郡誌 2005)

 

  계옹정(醴泉篤陽里 溪翁亭) : *위치 : 예천군 보문면 독양리 451, *연대 : 1927년 건립, 1968년 중수, *규모 : ‘-’자형 정자 1채/ 계옹정은 보문면 독양2리 평장계 마을 옥계천 건너 거뭇골 산기슭에 북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숙종 때 성균관 진사시에 합격하여 문장이 뛰어난 계옹 장지걸(張之杰, 1662-1736)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27년에 건립하였다. 장지걸은 이시애의 난에 공을 세운 연복군(延福君) 장말손(張末孫, 1431-1486)의 7세손으로, 문학과 행의가 일찍 드러나서 사림이 중망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의 글은 흩어지고 없어져서 전하지 않고, 다만 ‘어천서당광루기문(語川書堂光樓記文)’이 남아 있어 그의 문장을 짐작할 수 있다. 계옹정기(溪翁亭記)는 족후손으로 한성부 판윤을 지낸 장화식(張華植)이 지었으며, 1968년에 중수하였다. 계옹정은 옥계천(玉溪川)이 흘러드는 시냇가에 있어 득수(得水)의 형국을 취하고 있다. 막실의 인동 장씨들이 입향하기 이전에 감천면 산곡의 한양 조씨가 먼저 터를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양 조씨는 마을을 떠나고 영주시 장수면 덕바위에서 인동 장씨들이 점차 터전을 매입하여 막실은 인동 장씨 동성마을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장수와 문수 등지에는 인동 장씨들의 문토가 상당수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독양리 계옹정은 예천읍에서 북동방향으로 928번 국도 보문로를 타고 독양리 보건소 북동측 방향에 있는 독양교를 건너 진입한다. 계옹정은 우측 옥계천을 따라 나 있는 막실길로 들어서 서측 평지에 북동향을 하고 있다. 계옹정은 시멘트 블록으로 사면을 감싸고 있으며, 전면 중앙의 사주문으로 출입한다. 사주문 밖으로는 자갈이 깔린 주차장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출입은 자연석으로 소맷돌을 꾸민 시멘트계단을 올라 사주문으로 진입할 수 있게 했다. 계옹정 마당은 전면에는 보도블럭으로 되어 있고, 배면과 좌측에는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계옹정 배면과 좌우측은 숲으로 둘러져 있으며, 전면 북동향으로 시야가 트여있다. 사주무은 대리석 치석 사각주초 위에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의 상량기구를 받도록 했으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이다. 계옹정은 전퇴가 있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자형 누정이다. 평면은 정면에 툇마루를 두고, 중앙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했다. 정면의 툇마루는 정면 기둥 밖으로 마루 끝을 학장한 후 마루 끝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계옹정은 좌우측면 쪽마루를 달아 정자 내부로 출입하도록 했다. 계옹정 중앙의 대청은 우물마루 구조이며, 정면에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고 상부에 교창을 달아 놓았으며, 배면에는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아 놓았다. 좌우 온돌방은 마루간 쪽에 두 짝 여닫이 띠살창판문을 달아 놓았으며, 툇마루 쪽에는 마루간 쪽 문보다는 작은 두 짝 여닫이 띠살문을 달았으며, 쪽마루 쪽에 외여닫이를 달아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계옹정 기단은 자연석과 시멘트모르탈로 축조하고, 기단 바닥도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정면의 누마루 하부에는 장대석 팔각 주초를 사용하였고, 상부에는 원기둥을 올렸다. 안쪽으로는 자연석 주초 위에 사각기둥을 올려놓았다. 정면 열 기둥 상부는 창방 위에 소로수장으로 꾸미고, 이익공형식으로 되어 있다. 나머지 안쪽 기둥 상부에는 납도리형식으로 보아지와 창방, 보, 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계옹정 가구는 오량이며, 마루간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열려 있다. 처마는 사면이 겹처마를 하고 있으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으로 암키와와 수카와 모두 막새를 달았다. 계옹정의 목재는 가구 부위를 제외하고 석간주 단청을 했으며, 마구리 부분을 흰색으로 칠했다. 상부 벽면에는 회바름으로 되어 있고, 하부벽면에는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처마도리에는 청색을 띄는 ‘溪翁亭’ 편액이 걸려 있고, 중앙 대청마루 배면 상부에 ‘溪翁亭記’ 편액이 걸려 있다. 종도리 아래 상량대에는 ‘龜龍 檀紀四千三百壹年戊申四月五日立柱十月丁丑上樑’이란 상량문이 있다.

 

  계옹정은 1927년 건립되고, 1968년 중수된 이후 훼손되거나 변경된 부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계옹정은 바위가 있는 대지에 위치해 자연물과 함께하는 정자건축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계옹정은 마루에서 즐길 수 있는 경치뿐만 아니라 좌측 거북이 형상의 바위 위에 올라 앉아 정면에 펼쳐진 옥계천과 마을의 경관을 또 다른 시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계옹정은 바위와 함께 함으로 건축적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보존 및 유기·관리되어야 할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180-182쪽)

 

  계옹정 : 篤陽里 소속으로, 평장개에 있는 정자. 효종 때 진사 장지걸이 세웠다.(普門面홈페이지 2013)

 

  계옹정 : 예천의 자랑 2688 : 장주석(2)-장중식-장지걸/ 작성 장병창/ 묘는 보문면 독양리 두곡(斗谷) 매봉산(鷹峰山) 해좌(亥坐)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1949년 1월에 종후손 대식(大湜)이 지었다. 오천서당 광영기문(?川書堂光影記文)이 현판에 남아 있고, 후손들이 1927년에 지은 계옹정(溪.../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계와문집(國譯 溪窩文集) [冊] : 계와 임소한의 문집을 하리면 송월리 출신인 진성규(秦星圭, 1949- , 大昌高(14回) 卒業, 中央大 敎授)가 번역한 책으로, 428면, 27cm, 서울 계와문집국역간행소에서 1996년에 발행하였다. 권말에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KDC 810.819,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안동대이다.(keris 2003 2006)

 

  계요등 [植物] : 예천군에 자생하는 다년생의 풀골덩굴로, 학명은 Paedria chinensis Hance이고, 꼭두선이과에 속한다. 나무풀 전체에서 흉한 냄새가 난다.

 

  계육의 위생화 및 안전 저장을 위한 감마선 조사(鷄肉의 衛生化 및 安全 貯藏을 爲한 Gamma線 照射) [學術저널]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 변명우(1954- , 韓國科學技術院 敎授) 등의 논문으로,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에서 1999년에 발행한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지(韓國食品衛生安全性學會誌)> 14권 2호 160-166쪽(7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keris 2003)

 

  계인(戒仁) : 1641년(인조 19)에 용문사 보광명전(龍門寺普光明殿)을 중수한 화주(化主)이다.

 

  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 1759己卯) [冊] : 계일헌 이명룡(李命龍, 1708-1789, 本貫 咸平, 文科, 司憲府 監察, 工兵曹 正郞)의 일기로, 용궁 출신 감한이 기묘년 문과에 급제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附)/ 己卯榜目/ 通德郞姜翰. 季雁, 辛丑, 父文潤, 本晋州, 居龍宮”(history.go.kr 2005)

 

  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 1760庚辰.3.25) [冊] : 계일헌 이명룡(李命龍, 1708-1789, 本貫 咸平, 文科, 司憲府 監察, 工兵曹 正郞)의 일기로, 용궁인 정필충, 장수용 등의 관련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庚辰/ 三月/ 二十五日/ 天日雖晴, 日氣陰浸, 似有不霽, 霽幾丑時, 出宮擧動, 朝前?見安東 金必源․龍宮 鄭必忠․張受容․李中權․李光漢․水原 睦善恒而來, 宋述孫 注書來不逢, 崔君玉․吳得良來, 裵聖兪?見而來, 文官大臣禮門前下馬, 而自參判以下, 若難入其大臣家, 同坐可以入見, 若判書入坐則退來, 宜可通廳, 則不冠帶不投剌, 直入大臣家云, 而文官路逢營將, 則或下馬或不云, 若?任則下, 又有遺敎則應下馬, 文官又其城化間, 正門正出入, 新恩有賜花則, 脫花出人俠門可也, 營門則賜花着直出入, 無相禮揖, 坐城化間, 彼此有職, 則出入正門或云, 而無職則前職雖高, 出入俠門云云, 都事列上出入, 本道及他道官家開閉門, 本道守令皆剌見都事云, 都事見本道他道監司, 拜則監司只坐揖而己, 若凡他守令, 則都事入後可以避席, 而若其道守令中兼營將, 則可以同坐云云.”(history.go.kr 2005)

 

  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 1760庚辰.5.22) [冊] : 계일헌 이명룡(李命龍, 1708-1789, 本貫 咸平, 文科, 司憲府 監察, 工兵曹 正郞)의 일기로, 예천, 용궁 관련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庚辰/ 五月/ 二十二日/ 朝夕宿所于洛東驛丈家, 而食後發程, 至洛東津頭, 則有觀水樓, 退溪先生手書, 而有懸板題詠也, 因越洛東江津, 有津頭村, 十里來路, 有夫妻酒幕, 路邊有僧彌勒, 崇居勸善冊, 出路因過, 至論室酒幕少憩, 過至洛元驛丈家, 點心?馬, 今日似有雨徵, 略干冒細雨, 未知此雨或來南中耶, 長川乃趙錫愚 都事喪出, 錫穆 正言兄弟所居村, 而路已過站, 不得見慰, 是欠是欠, 許鐵先達洛東意의實居, 而過站不得見, 高諭 昌寧遞來在喪, 而山迎面加也, 每實居在云, 洛東驛路卜下去, 發程至洛元酒幕, 過行德汨村防築邊, 柳樹下少休避暑, 發至胎峰酒幕少休, 貿馬梳以四分, 此幕乃咸昌地也, 咸昌縣監辛也, 有木碑無文官, 申․洪兩姓居此邑云, 至一馬場有加通酒幕及驛村坊, 驛丈招定舍處宿所, 二十兩錢收數, 更以索結入五莊中, 而或無三分, 或無五分, 合無一錢六分云云, 可痛可?, 當此暑熱, 葉葉辛苦所得, 歸於?失, 可勝痛哉, 加通酒幕驛皆咸昌地也. 醴泉龍宮隣邑, 李忠國 高敞居, 在醴泉神堂村云, 而新除古阜也, 不得見, 是恨是恨, 戀戀不已也.”(www.history.go.kr 2005)

 

  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 1760庚辰.6.18) [冊] : 계일헌 이명룡(李命龍, 1708-1789, 本貫 咸平, 文科, 司憲府 監察, 工兵曹 正郞)의 일기로, 예천 출신 박지경, 박중경 관련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庚辰/ 六月/ 十八日/ 朝雨, 冒雨?大寺洞, 亦無不見, 此時世孫自新門闕還洞關, 其威儀頗壯, 遠觀其服飾, 皆黑着冠黑袞, 幼態滿滿, ?水閣橋, 則門外下人田亦無云, 因給名啣, 以進都目前分付, 而歸來伴, 入見張受容主則, 朴祉慶․朴重慶 醴泉․安景悅․金必源․金宗九, 皆在得見. 食後?與吳得良, ?話半日, 而同?見李仲卿, 下直所不在, ?安伯擧, 主人柳匡天獨在, ?討伯擧來, 因與話良久而來.”(www.history.go.kr 2005)

 

  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 1760庚辰.7.17) [冊] : 계일헌 이명룡(李命龍, 1708-1789, 本貫 咸平, 文科, 司憲府 監察, 工兵曹 正郞)의 일기로, 예천 관련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庚辰/ 七月/ 十七日/ 晴, 朝出見洪樂性 吏參, 而無剌直見, 故其言曰, 政官見有剌云, 無剌則不知爲誰云, 言則是也, 略陳情則, 朝未見其父, 起見其父云, 言長向己聞云, 別來向小貞洞 吏判家, 則紛?朝官, 文武會集, 勿投剌不見客云, 林泉居李齊衡丙子科, 以前兵曹正郞, 爲慶城判官, 未侍從還遞, 失本職稱寃次, 來在相面話, 廣州居崔忠彦丁卯廷試, 經南浦?, 兪彦志 礪山?時, 爲羅州營將, 來此?話, 關西直講, 金相儒 橫城人, 善文者, 來此相面, 不見政官, 退來?西小門外, 蛤洞 鄭彦星 正言乍面, 南泰濟 判書, 見其子賢老吊慰, 欲見黃仁儉, 出他不見. 安寬濟 典籍, 其弟謙濟遞正言, 在得面, 私倉洞 尹冕東, 以靈光?來在, 得見其父與弟, 請托鄕書之說, 直入來, 食後乍出見李春輔․李鼎輔, 而羅州牧官, 疑乃吳道玉耶, 新營將來此, 金相翊以通信使來, 初三日發行爲言, 因言吏判公誦言及 <327> 睦祖永 / 睦萬中 / 李邦榮 / 徐志修 / 兵使 統制使時在處 / 新恩之事/ 之事, 則遠行托, 李晩恢??, 其情誼自別也, 莫如直當政官云, 欲買家館洞來云, 遷鄭國臣․楊廷臣兩人而來, 其外四寸, 海南來留也. 李之檍․李壽德乍面, 通情政官事, 則稱托李壽鳳, 以李忠國按獄事, 出去醴泉地, 問其子則, 來月初來云, 日暮而歸, 安致邦․安昉來, 金必源․孟儒龍․李中權, 來訪不遇.”(www.history.go.kr 2005)

 

  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 1760庚辰.9.12) [冊] : 계일헌 이명룡(李命龍, 1708-1789, 本貫 咸平, 文科, 司憲府 監察, 工兵曹 正郞)의 일기로, 예천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庚辰/ 九月/ 十二日/ 淸明, ○各道黃?封山等處, 遣敬差官, 慶尙道 全羅道則十年一取, 江原道則五年一取, 擇定宰宮數, 則臨時量定, 慶尙道七邑, 安東․英陽․醴泉․盈德․聞慶․奉化․寧海, 江原道二十二邑, 蔚珍․三陟․襄陽․高城․通川․淮陽․金城․平康․伊川․麟蹄․狼川․楊口․洪川․橫城․原州․寧越․平昌․江陵․旌善․春川․杆城․平海, 以上等邑, 取內宰宮板, 而正入長七尺一寸, 剩二尺五寸, 廣二尺四寸, 剩四寸, 厚四寸, 剩三寸, 一遵舊式斫伐, 全羅道三邑, 順天․巨馬島․興陽․折爾島․康津․莞島, 以上等邑, 取外宰宮板.”(www.history.go.kr 2005)

 

  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 1760庚辰.12.26) [冊] : 계일헌 이명룡(李命龍, 1708-1789, 本貫 咸平, 文科, 司憲府 監察, 工兵曹 正郞)의 일기로, 예천 출신 박지경, 용궁, 용궁출신 강한의 관련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庚辰/ 十二月/ 二十六日/ 金晋鐸․安鼎大來訪, 洪?進士來, 兵曺使令奔走歲饌, 推尋于各兵營主人, 而終不來納, 信知人情之尤難也, 兩司臺諫曾經人, 例有封送, 而知在鄕, 或不送或送于京, 而中間橫捧, 兵使家知不來, 雖有封送, 因爲次持不送耳. 姜彦輔․李震奎來訪, 姜彦輔生病, 老者可怜, 其勢是知功名可笑也, 金晋鐸請錢, 四方之人無不囑於我, 不勝難堪, 而可憐世上事, 一則還可慰也, 以吾兵曺而如此, 則況此後有意有味之職乎. 慶尙道 朴趾慶來訪, 請黃燭․白紙也, 午後乍訪安致邦, 出他路逢李衡弼, 偕?其主?吐, 欲見李中權, 出他不見, 歸來于主以宿, 昨日外司卯仕會龍宮, 姜翰以保安察訪名啣辭職, 而慶尙左水使 黃采, 亦名啣爲辭職而來見也, 今日午後杞橋 尹得轍, 以利仁道察訪, 來訪于/ <435>/ 議政府望 / 李得濟/ 泮主而?吐, 南歸之行入訪云.”(history.go.kr 2005)

 

  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 1764甲申.2.12) [冊] : 계일헌 이명룡(李命龍, 1708-1789, 本貫 咸平, 文科, 司憲府 監察, 工兵曹 正郞)의 일기로, 예천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甲申/ 二月/ 十二日/ 朝李中權․金重玉傳喝, 雪降如冬, 工曺色丘張五東, 陪使令金适巡․太朋十一日 <454> 將行成服武備司爲文書事 / 買厥馬事 / 孝章廟春享/ 上疏, 兵曺 工曺皆存, 而工曹無分撥云, 可痛可痛. 柳匡天君弼․崔景岳汝直․鄭?․金宅礪 判校居醴泉․安鼎大來訪, 今日色丘崔聖麟來見, 巾帶行纏價三錢, 使主人造成, 明將行成服, 武備司爲文書事, 而趙載文文書直來, 持印信退出, 姜德恒․金振豪, 居龍仁沙院, 與李夏演子隣居, 欲付吊狀, 金?․盧廷亮․李勉․南彦彧來慰, 朴元輝傳喝, 慰李聖?, 金重玉來, 武備司下?來謁, 而爲文書手決而去, 靈光李友答狀而還, 持去其布.”(www.history.go.kr 2005)

 

  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 三月/ 상위서지: 계일헌일기(戒逸軒日記) > 戒逸軒日記 > 庚辰/ 저자: 李命龍/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잡사류(雜史類)/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사료 총서/ 계일헌일기/ 戒逸軒日記/ 庚辰/ 三月/ 二十五日 : 天日雖晴, 日氣陰浸, 似有不霽, 霽幾丑時, 出宮擧動, 朝前?見安東 金必源·龍宮 鄭必忠·張受容·李中權·李光漢·水原 睦善恒而來, 宋述孫 注書來不逢, 崔君玉·吳得良來, 裵聖兪?見而來, 文官大臣禮門前下馬, 而自參判以下, 若難入其大臣家, 同坐可以入見, 若判書入坐則退來, 宜可通廳, 則不冠帶不投剌, 直入大臣家云, 而文官路逢營將, 則或下馬或不云, 若?任則下, 又有遺敎則應下馬, 文官又其城化間, 正門正出入, 新恩有賜花則, 脫花出人俠門可也, 營門則賜花着直出入, 無相禮揖, 坐城化間, 彼此有職, 則出入正門或云, 而無職則前職雖高, 出入俠門云云, 都事列上出入, 本道及他道官家開閉門, 本道守令皆剌見都事云, 都事見本道他道監司, 拜則監司只坐揖而己, 若凡他守令, 則都事入後可以避席, 而若其道守令中兼營將, 則可以同坐云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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