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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354:고대일록...고도산업...
작성자장병창 @ 2019.02.18 06:16:14

  도청신도시 예천 354 : 고대일록...고도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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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일록(秋七月) [記事] : 정경운(鄭慶雲)의 기사로, 남명학연구소에서 간행하였다. [내용] : 孤臺日錄// 孤臺公日記卷之一// 萬曆壬辰// 秋七月/ 初一日戊午上在義州巡察使金?自山陰入于郡先是宜寧義兵將郭再祐馳檄于巡使麾下將士數其失人心亡國家之罪使之斬首梟示軍中至是又傳檄于巡使通文于列邑聲言斬首以慰人心?在山陰見檄文心膽驚喪手足戰慄食不下咽/ :: 0021 ::/ 茫不知所措軍官金敬老金景訥等?之腹心人也爲巡使?計急投咸陽土城中庶可以延朝夕之命抗再祐之兵策馬而行偃旗而入會議答檄責之以逆賊多費妄言人皆笑之噫巡使雖惡奉命王臣固不可經情而擅殺郭公雖不免義理之失怨鼓舌加之以大逆之名善 惡之判必有能辨之者而未免胥失之責/ 二日己未賊船七十餘隻下陸宜寧地義兵將郭再祐悉力禦之○賊 陷全羅道錦山龍潭入金州界焚蕩閭閻/ 三日庚申都事金穎男到郡○宜寧之賊見殺於連弩者十餘名因 是退走洛江下流/ 六日癸亥黃海道傳通始到于郡倭賊萬餘結陣于平壤之界府中將士多設方略倭賊乘船半渡萬弩俱發所乘船隻一時敗沒只餘一隻下陸矢石如雨敗者居半艱難北走國家之慶莫大於此云云/ :: 0022 ::/ ○郭再祐答檄于金?其言曰義賊之分天地知之是非之辦公論在焉 惟?之黨不得於言求之於秉彛之良心可也/ 七日甲子全羅之賊絡繹於知禮金山之境○義兵軍多數逃散/ 八日乙丑賊去知禮縣○茂朱居前郡守金宗麗投入賊中受賊靑帖耘苗數日少無羞愧噫李增負卜於賊奴宗麗耘鋤於倭穴甘受號令?不少愧負國家之恩壞節義之閑反不如犬馬可勝痛哉 ○招諭使啓郭再祐傳檄之由/ 九日丙寅義兵軍一百五十名逃來義兵大將斬逃還軍金順還于牛旨峴○賊屯聚于茂朱錦山龍潭等邑數郡之民皆靡然投入馬草 柴木盡輸於賊/ 十日丁卯郡侯領兵百餘名赴大將所/ 十一日戊辰賊倭政承安國使稱號者自玄風星州過金山永同合全羅/ :: 0023 ::/ 之賊將犯全州云云○賊徒率五百餘名建?龍旗一小招旗九乘駕馬者一人擁衆直過弁岩居昌居山尺徐仁孫射倭將中腦墜馬射中二十餘人而斬首三級兇徒直?茂朱合錦山鎭安之賊屯聚于全州紙砧村○南原府使尹安性與判官缺賊入全州心魂驚喪開門出走府庫錢穀盡數見偸安性爲人素貪多?當國家急亂之日了無控制之 策惟以遁走爲心誠可痛憎/ 十二日己巳全羅巡使李洸召南原判官欲治逃竄之罪縱而不誅洸之 軍律若嚴此輩豈能視息於天日之下哉判官納賂于洸之妾家得免其罪云/ 十三日庚午京畿巡使沈岱關內有旨內遼東大發兵精五萬留駐江邊以爲聲援廣寧楊摠兵親率向義?子五千前來邀?祖摠兵郭王游?三將合率數千兵馬已渡鴨綠江史游?將精銃一千五百爲之先鋒卽夕義州牧使謄書送寬奠堡票帖內中朝令山東道/ :: 0024 ::/ 舟師十萬經由水路直?倭奴巢穴卿其令沿海各官將此緣由咸 使聞知○招諭使斬山尺鄭欣于居昌縣以其造言毁事?侮義兵故也/ 十四日辛未有旨諭慶尙全羅忠淸三道諭中朝發兵來援之意/ 十五日壬申大將聞倭賊屯聚知禮官舍率精兵數千耀兵而還○ 全羅之賊屯聚于鎭安熊峙全羅之兵合力進薄賊之中傷者甚衆將欲遁去之際軍中一人妄發矢盡之說賊聞之一時衝突我軍退保賊勢彌滿已近全州城外將士退縮僅以身免全城甚危於一髮云云○全羅道義兵將前東萊府使高敬命及倭賊戰于錦山敗績及其子仁厚與從事官柳彭老等皆死之敬命字而順素有才名人稱詩傑罷仕家食聞變後卽?起聚兵馳檄列邑人 皆義之卒遇勁敵父子同死死而不死嗚呼賢哉/

 

  十七日甲戌全羅之賊自曺蝨院連二日還踰熊峴捲旗偃竹卜?騎/ :: 0025 ::/ ▩馬席卷而還聚鎭安縣焚中臺刹寶城郡守某南平縣監某軍官金夢成等一時?禦賊少退踰嶺○固城之賊二百入城中又自昌原四百餘名向固城倭船二百餘隻來泊佛岩倉結陣于薺浦 前/ 十九日丙子倭船三十二隻來泊于巨濟縣前浦州餘隻現乃梁依泊二隻向鎭安○全羅道左水使李舜臣以防踏僉使某爲舟師前部將以統船四隻龜船一隻整齊待變七月初六日合左右道諸將與慶尙道諸將合勢?捕撞破賊船五十九隻斬賊三百餘級自投溺死者不知其數漏捕之賊十餘隻所載倭人二百餘人追亡逐北之餘已爲奪勢自分必死棄船登陸所餘船隻盡數焚破登陸之賊依泊小島四無逃遁之路待死餘魂如探囊中之物令巨濟縣軍人盡數斬獲初十日安骨浦接戰時倭船大中小合四十一隻二三層有屋者一二層大船者/ :: 0026 ::/ 一依岸而泊地勢狹淺潮退則成陸我軍諸將不得齊進或二三隻迭相出入?丸片箭終日發射死傷甚衆而形勢若此未及盡殲日已?黑約以翌日?兵更戰退次于柒川浦十一日早朝鼓?更進則賊船四十二隻?夜逃遁莫知所向而其浦戰死之賊十二處積屍燒之尙有餘燼手足狼藉城之內外流血滿地矣因向天機加德至于沒雲臺分左右挾攻搜討了無賊形故十三日三道舟師各相還營是行也生擒我國被擄之人推問聲息則上道之賊相與謀議曰水陸幷進將陷全羅陸路則自錦山直?而下水路則由峴乃梁安骨浦等處連絡欲進而爲兩水使所敗計無所成由是觀之賊雖猖獗制之有方我國將士聞風先潰無意固守使父母妻子 盡被?辱身亦不保可勝痛哉慶右水使元均也/ 二十日丁丑全羅之賊屯聚于龍潭/ :: 0027 ::/ 二十一日戊寅大將軍官張應麟及倭賊戰于長谷驛爲賊所殺應麟居昌人也素有弓馬之技與弟應獅自募於大將戮力從軍少無 怠意至是戰七人皆哀之招諭使聞而傷之特給賻物/ 二十二日己卯大將欲向高靈以倭賊屯聚知禮止而不行結陣于?祚使前府使徐禮元前萬戶黃應男定左右衛將戰于長谷驛射中十 餘名未及斬首○全羅之賊屯聚于茂朱之茂豊縣/ 二十三日庚辰招諭使傳令于各官令各處伏兵將勿殺被擄來歸之人使釋疑?反側之心○大將令衛將等設伏于長谷驛前遇賊射之郡人鄭晩生孫晩翠劉鶴龍多致殺傷○大將結陣于赤火里茂豊之賊先運千餘名中運五六百名末運七十餘名甲冑旗幡眩 ?百里來聚知禮縣/ 二十四日辛巳招諭使傳令于各邑曰倭賊充滿一國?行自恣無所忌/ :: 0028 ::/ 憚者以其人民竄伏邑里空?無人?禦故也其中陷沒各邑民無依賴之地避難流離勢所難免內地保存之邑堅守險要初無朝夕之急而大小人民無意禦敵賊無形響之前先入山林致令守令無民將帥無軍雖有良將束手無策極爲痛憤矣閭巷間小民畏官令有應募者而武士儒生無意下山坐見州縣陷沒國家顚覆有若秦越恬不動念雖曰我人無異叛民尤爲慟心不從官令不卽下山者一依軍律又曰援據義理曉喩多般而尙不從令者威刑督之實出於衰世之意承使者雖無狀無以感動人意我民獨無乘彛之良心乎更試思之○ 倭賊也三夫老生擒取招也三夫老在西海道加多島倭也○左兵使朴晉聲息始到晉渡江以後招集軍人二千餘名多方?捕?致奇功七月七日之後賊相携痛哭護喪柩建銘?下去于東萊左道未陷 之邑眞寶靑松寧海盈德淸河興海河陽榮川豊基醴泉而已/ :: 0029 ::/ 二十五日壬午大將令本郡加括軍人/ 二十八日乙酉開寧之賊步卒二百餘人卜?三百餘匹直向扶桑/ 三十日丁亥錦山之賊由茂朱界過沃川郡梁山倉而去一運屯聚于 茂豊(남명학 고문헌시스템 2005)

 

  고대일록(冬十月) [記事] : 정경운(鄭慶雲)의 기사로, 남명학연구소에서 간행하였다. [내용] : 孤臺日錄卷之四/ 甲辰/ 冬十月/ 丁未朔巡察使李時彦過郡向安陰鄕人陳弊于巡相/ 二日戊申與醴川居金淹打話于小孤臺金君年近七十康健無比/ 四日庚戌聞巡相只給軍人三十名荒租五石于書院可謂纖手/ 六日壬子盧汝任來訪聞盧益山只飮淡粥病極危苦可慮/ 七日癸丑愼泳與李大臣欲救盧?百計庇救回納報草可謂同惡/ :: 0423 ::/ 八日甲寅往別姜克修之洛因與同宿○九日乙卯到新基與渭瑞致叔賓夫相話○安陰居愼泳來訪○十日丙辰盧益山卽世爲人愷悌好善而癸卯年鄕人陳?請誅凶▼(?+廚)之時益山自許爲?頭憤慨之色形於言面爲先生歎憤無異受業不避笑罵勇於嫉 惡豈非天資出人而然耶噫鄕無善人矣○大雨雷/ 十一日丁巳往弔盧景善仍留護喪是夕與趙季?盧勉哉投宿文甫家○二日戊午往護喪次與景紹渭瑞同宿○三日己未見成服 後歸家從妹患腹痛甚苦可慮○是日先生行醮禮/ 四日庚申風日甚寒大雨後地?凍泥深慮大小麥之不生也/ 五日辛酉從妹腹痛幾至難救僅向少甦可喜/ 七日癸亥是朝虹見十日震電今朝??皆時氣之失非常之?未知畢竟如何○八日甲子與梁馨彦相話倭賊放?于順天界海中/ :: 0424 ::/ 云必是零賊何足慮也○二十日丙寅丘嫂患腦腹痛甚苦憂慮罔已○一日丁卯起陳田夫畢○二日戊辰聞禮判李廷龜以達儲請 奏天朝貸用高大監銀子六百兩而竟不成事臨海君省躍云/ 三日己巳聞玉體以咽喉證彌月不?云臣民之憫如何/ 四日庚午傳聞惟正被囚日本○五日辛未往弔城主因與馨彦德翁君述克新等相話士淵仲桓亦同○七日癸酉往陜川暮投李和彦同宿歌琴數?○八日甲戌逾崖珠嶺暮投松川與鄭?雲同宿晤語○九日乙亥朝謁先生道體萬安精神顔色有若五十之年豈非粹面?背志氣康壯老而不衰者耶恭歌多小格訓日?到河景緯家宿焉○三十日丙子先生出臨卜地余與景緯進?侍話半 日暮宿于加祚村舍○(남명학 고문헌시스템 2005)

 

  고대일록(夏六月) [記事] : 정경운(鄭慶雲)의 기사로, 남명학연구소에서 간행하였다. [내용] : 孤臺日錄// 孤臺日錄卷之四// 戊申// :: 0498 ::/ 夏六月/ 丙辰朔霖雨連日先生之行何以利涉耶○二十二日先生發程二十七日到忠州留三日又除都憲上意懇到云六月初一日泛舟向京二日抵峨嵯山江舍亭溟已待候矣仍留製箚子答曰聞卿上來國其庶幾啓沃缺振肅朝綱之責專倚於卿卿何遽上辭章乎予甚缺然無以爲懷觸熱登程因致疾病勢所然也卿宜調理入來以副 予虛席之望○二日丁巳是日外孫兒得病云○河太易爲慶尙都事/ 三日戊午自館中通文于八道請罪高敬履等??侮賢之罪使八道士 子咸集都下故咸則金成仲先是江左安東澧泉榮川士子通文于道內/ 九日甲子聞鄭德隆升仙可哀○十日乙丑聞李任重除淸風柳汝見作陜川還?姜克修入參奉望未蒙點○一日丙寅姜克修來訪共宿于書齋因論多小說話○二日丁卯與克修仍留河子順亦來同宿趙守一 亦來○三日戊辰見朴公幹答簡聞先生初七日入城云/ :: 0499 ::/ 四日己巳聞孫兒病重入見慘不忍見○五日庚午是日孫兒命絶云焚湖南高敬履等?敎旨王若曰我國理學之儒宗始於五賢先生初年命儒臣撰進儒先錄特賜易名?一國之士得其所矜式而李彦迪則配享太?其崇儒重道之意至矣盡矣近來人心不正義理晦寨識者之寒心久矣今見儒生高敬履等上?只擧四賢之名削去李彦迪而繼之以成渾其意只在於阿其所好爲辭說眩亂是非其邪淫?遁悖妄極矣如此胡說之?雖不足較而若不痛加斥絶以正士?則?魅妖?之徒將接迹而報貽害於斯道者極矣嘗聞永樂間饒州士人上書斥濂?諸賢閣臣揚士奇請焚其書缺此例下其?于太學令師儒招 集多士燒火曉喩以示距?缺大哉王言功不在禹下者殆近之矣/ ?六日辛巳晉州居柳光漢來此聞李丈汝涵病重可慮/ 七日壬午聞先生得髮際?於釜浦千里?病不能?候雖切微誠奈何(남명학 고문헌시스템 2005)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古代 中國의 政治的 現實主義 =The Political Realism in Ancient China)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윤순갑(尹錞甲, 1956- ,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한국정치학회(URL http://www.kpsa.or.kr)에서 1995년에 발행한 <한국정치학회보> Vol.29 No.4 69-87쪽(19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서울대(중앙), 연세대(중앙), 이화여대(중앙)이다. [초록] : 이 논문은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의 역사적 맥락과 이 사상의 내적 연계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 쓴 글이다.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주(周)의 종법적 봉건체제가 붕괴된 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대두된 선진4가(先秦四家) 중에서 법가(法家)에 의해서 대표되는 사상으로서 시대적 현실에 가장 투철하였다. 국가발달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중국사에서 춘추전국시대는 혈연적 결합에 토대를 둔 성읍(城邑)국가의 단계에서 탈(脫)부족적 영역(領域)국가의 단계로 전환되는 시기와 일치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은 여타의 사상가들과는 달리 동족의 규제를 극복하고 씨족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권력의 핵을 장악한 전제군주 중심의 정치이론을 주장한 동양의 마키아벨리(Machiavelli)들이었다./ 이러한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의 내적 연계구조를 지녔었다. 첫째로 당시의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은 시대적 변화를 긍정하고 여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진보주의적 역사관을 지녔으며, 둘째로 사람은 기본적으로 매우 사악한 이기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이기성은 도덕적 교화에 의해서도 교정될 수 없다는 인간관에 사상의 토대를 두고 있었다. 셋째로 이러한 사상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정치체(政治體)는 관념적으로는 법이 지배하고 법으로 판단되는 세계였으며 현실적으로는 권력의 정점에 군주를 위치시키는 역치(力治)국가였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정치체를 실현하기 위해서 이들이 동원하였던 통치론은 기본적으로 법의 강제력을 이용하여 군권(君權)을 정점으로 한 항시적인 전시체제를 확립함으로써 부국강병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이상의 논의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서양에서는 마키아벨리에 의해서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보여지는 「윤리로부터 독립된 정치에 관한 인식」이 동양에서는 이미 기원전의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의 정치적 사유(思唯)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정치의 대상인 인간의 이해에 있어서 매우 합리적 인식을 바탕으로 구축되었으며, 그 결과 법의 강제력을 통한 전제군주제의 확립에 기여하였던 점에 정치사상사적인 선구적 업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변화된 현실에만 철저하게 충실하려했던 당시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가 지닌 비극은 권력의 윤리적 측면을 무시했던 사상의 내면에 이미 예비되어 있었으며, 이것은 오늘의 정치에서도 변함없는 원칙으로서 유의미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keris 2003)

 

  고대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古代中國의 政治的 現實主義 =The Political Realism in Ancient China)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윤순갑(尹錞甲, 1956- ,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한국정치학회에서 1967년에 발행한 <한국정치학회보> 29권 4호 4069쪽~ (19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8)

 

  고대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古代中國의 政治的 現實主義 =The Political Realism in Ancient China)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윤순갑(尹錞甲, 1956- ,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한국정치학회에서 1996년 2월에 발행한 <한국정치학회보> 제29집 제4호 69~87쪽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 : 논문요약/ Ⅰ. 문제의 제기/ Ⅱ. 고대중국의 정치적 상황/ Ⅲ. 정치적 현실주의의 전개/ Ⅳ. 정치적 현실주의의 내용/ Ⅴ. 요약 및 결론/ 참고문헌/ [본문 요약] : 이 논문은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의 역사적 맥락과 이 사상의 내적 연계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 쓴 글이다.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주(周)의 종법적 봉건체제가 붕괴된 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대두된 선진4가(先秦四家) 중에서 법가(法家)에 의해서 대표되는 사상으로서 시대적 현실에 가장 투철하였다. 국가발달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중국사에서 춘추전국시대는 혈연적 결합에 토대를 둔 성읍(城邑)국가의 단계에서 탈(脫)부족적 영역(領域)국가의 단계로 전환되는 시기와 일치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은 여타의 사상가들과는 달리 동족의 규제를 극복하고 씨족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권력의 핵을 장악한 전제군주 중심의 정치이론을 주장한 동양의 마키아벨리(Machiavelli)들이었다./ 이러한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의 내적 연계구조를 지녔었다. 첫째로 당시의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은 시대적 변화를 긍정하고 여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진보주의적 역사관을 지녔으며, 둘째로 사람은 기본적으로 매우 사악한 이기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이기성은 도덕적 교화에 의해서도 교정될 수 없다는 인간관에 사상의 토대를 두고 있었다. 셋째로 이러한 사상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정치체(政治體)는 관념적으로는 법이 지배하고 법으로 판단되는 세계였으며 현실적으로는 권력의 정점에 군주를 위치시키는 역치(力治)국가였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정치체를 실현하기 위해서 이들이 동원하였던 통치론은 기본적으로 법의 강제력을 이용하여 군권(君權)을 정점으로 한 항시적인 전시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부국강병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이상의 논의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서양에서는 마키아벨리에 의해서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보여지는 「윤리로부터 독립된 정치에 관한 인식」이 동양에서는 이미 기원전의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의 정치적 사유(思唯)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고대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정치의 대상인 인간의 이해에 있어서 매우 합리적 인식을 바탕으로 구축되었으며, 그 결과 법의 강제력을 통한 전제군주제의 확립에 기여하였던 점에 정치사상적인 선구적 업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변화된 현실에만 철저하게 충실하려 했던 당시 중국의 정치적 현실주의가 지닌 비극을 권력의 윤리적 측면을 무시했던 사상의 내면에 이미 예비되어 있었으며, 이것은 오늘의 정치에서도 변함없는 원칙으로서 유의미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daum 2008)

 

  고도 근시안에서 후방 인공 수정체 삽입(高度 近視眼에서 後方 人工 수정체 揷入) [學術저널] : 호명면 송곡리 345번지 출신인 이의효(李義孝, 1954- , 新世界眼科醫院 院長) 등의 논문으로, 대한안과학회에서 1993년에 출판한 <대한안과학회지(大韓眼科學會誌)> 34권 6호 559-564쪽(6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keris 2003)

 

  고도 난청아에 대한 보청기 장용(高度難聽兒에 對한 補聽器 裝用 Ⅳ 補聽効果) [論文] : 용문면 하금곡리 출신인 권도하(權道河, 1951- , 大昌高 卒業, 文學博士, 大邱大 敎授) 등의 논문으로, 한국사회사업대 특수교육연구소에서 1976년에 발행한 <특수교육연구> 15권 5-21쪽(17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서론, 2) 조사 대상 및 방법, 3) 조사 성격, (1) 피검자의 제특성(諸特性), (2) 보청 효과, 4) 총괄 및 고찰, 5) 결론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대구대(중앙)이다.(keris 2003)

 

  고도 산업사회로의 발전과 농업 부문의 역할 및 그 발전 전략(高度産業社會로의 發展과 農業部門이 役割 및 그 發展戰略) [論文] : 예천 출신인 김교은(金敎殷, 大昌高 1回 卒業)의 고려대학교 1987년 석사학위 논문으로, 121쪽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중앙), 경북대, 경상대, 경희대(수원), 계명대(동산), 고려대(서울, 서창), 단국대(천안), 동아대, 동양대, 부산대, 성균관대(과학), 원광대, 전남대, 전북대, 충남대, 충북대, 호남대이다.(keri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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