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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369:고산리...고성능...
작성자장병창 @ 2019.03.03 06:13:24

  도청신도시 예천 369 : 고산리...고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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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리(高山里) 연혁, 고산리 [里] : 고산리는 풍양면(豊壤面)의 행정 동리 중 하나로, 원래 신라의 달기현(達己縣, 多己縣) 소속인데,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에 상주 다인현(尙州多仁縣) 소속이 되었고, 1274년(고려 원종 15)에 보주(甫州, 現 醴泉郡) 다인현(多仁縣) 소속이 되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보천군 다인현(甫川郡多仁縣) 소속이었고, 1416년(태종 15)에 예천군 다인현(醴泉郡多仁縣) 소속이었다. 임진왜란(1592) 직후에 예천군 현서면(醴泉郡縣西面) 소속이 되었고, 1906년 비안군 현서면(比安郡縣西面) 소속이 되었다가, 1914년에 예천군풍양면(醴泉郡豊壤面) 소속이 되면서 고천동(高天洞, 皐天洞), 수산동(水山洞)을 병합하여 한 자씩 따서 고산동(高山洞)이라고 하였다. 1971년에 1.2동으로 분동(分洞)하였고, 1988년에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였다.

 

  고산사(高山寺), 부용봉절(芙蓉峰寺) [寺刹] : 감천면 진평2리 자봉(雌鳳) 뒤 600m 떨어진 곳에 있는 사찰로, 원래 고산사(高山寺)였는데, 없어져서 절터만 남아 있다가(永嘉誌 1602), 그 후 다시 재건하여 부용봉(芙蓉峰)절이라고도 한다. 초파일에는 이웃 동네 신자들까지 불공을 드리러 온다.

 

  고산사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1) 고적(古跡)/ 고산사(高山寺) 감천현(甘泉縣) 북쪽 7리 지점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www.koreastudy.or.kr 2007)

 

  고산서원(古山書院) [터] : 호명면 종산리 고미촌(古美村)에 있던 서원으로, 1839년(헌종 5)에 세워 진성인 충간공 나은 이동표(忠簡公懶隱李東標, 1644-1700)를 제향(祭享)하였으나 서원 철폐령(1868)으로 없어지고, 단(壇)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 마을을 서원마(書院村)이라고 한다.(醴泉郡邑誌 1841 1895, 醴泉郡誌 1939, 嶠南誌 1937)

 

  고산서원(古山書院) [터] : 호명면 종산리 고미(古美)마을에 있던 서원으로, 충간공(忠簡公) 이동표(李東標)를 세향하였으나 서원 철폐령으로 헐리고 설단(設壇)했다.(醴泉鄕校誌 2004)

 

  고산정사(古山精舍) [精舍] : 호명면 종산리에 있는 정사로, 진성인 이충(李沖)이 1570년에 세워 독서를 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후손 이정근(李定根)이 관리하고 있다.(醴泉鄕校誌 2004)

 

  고산정사 : 고암할배(휘:충) 고산정사입니다./ 2011.07.27/ 위치:예천군 호명면 종산리/ cafe.daum.net/jinsungle... 진성이씨 송당.. | 댓글 16(daum 2016)

 

  고산제(高山堤) [터] : 풍양면 고산리(縣西, 官門 70里)에 있던 조선시대의 저수지로, 둘레 590척(尺), 수심(水深) 4척이었다.(醴泉郡邑誌 1770 1786 1832 1841 1895)

 

  고산제(高山堤), 고산지(高山池) [터] : 용궁현(龍宮縣, 鄕石里) 북쪽 10리(邑部里 東쪽 7里)에 있던 조선시대의 저수지로, 둘레 1,484척(尺), 수심 8척 3촌(寸)이다.(龍宮縣邑誌 1780, 嶠南誌 1937)

 

  고산제 : →황골못

 

  고산지(손끝의 戰慄…루어낚시-플라이낚시) [記事] : 풍양면 수산리 고산에 있는 못으로, 루어 낚시장으로 유명하다. 《잔잔한 수면 위에 고요히 드리운 낚싯대. 한 세상 시름을 잊고 망중한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낚시꾼과 물고기 사이에는 생명을 건 사투가 벌어진다.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자 사이의 긴장.》 낚시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이 󰡐긴장󰡑도 놓치지 않는다. 낚시에 게임이나 레포츠적인 성격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 바로 󰡐루어(lure)󰡑낚시다. 서양에서는 이미 100여 년이나 된 레저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다. 한국스포츠피싱협회(KSA) 김태한 프로와 함께 루어낚시와 플라이낚시 등 레저 낚시에 대해 알아봤다. ○ 가짜미끼로 물고기 유혹 : 쉽게 말해서 가짜미끼(루어)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것을 말한다. 루어란 털, 플라스틱, 나무 등으로 만든 인공 미끼. 미끼가 가짜이기 때문에 물고기가 미끼를 물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미끼가 얼마만큼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느냐가 루어낚시의 핵심이다. 주로 바다나 호수에서 배스 쏘가리 우럭 등을 잡는다.

 

  루어낚시대회는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통해 얼마나 큰 물고기를 잡는지를 겨룬다. 플라이낚시(fly fishing)는 가짜 미끼가 벌레 모양이며 맑은 계곡에서 주로 즐긴다. 산천어, 강준치 등 다소 작은 물고기가 중심. 이와이 온지 감독의 󰡐4월 이야기󰡑에 보면 여주인공 마쓰 다카코가 운동장에서 낚싯줄 던지는 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 것이 플라이낚시이며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흐르는 강물처럼󰡑에도 소개된 바 있다. ○ 게임 같은 낚시 : 루어 낚시는 단순히 물고기를 잡는 행위가 아니다. 먼저 날씨, 지형, 온도, 호수의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물 속 지형을 읽고 포인트를 정해야 한다. 대략의 범위가 정해지면 낚싯대를 통해 보다 정밀하게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훑는다. 훑는 방법도 바닥 끌기, 튕기며 끌기, 중층 스위밍 등 여러 가지 기법이 있다. 󰡐바닥 끌기󰡑는 루어를 강이나 바다 바닥에 놓고 훑으며 지나가는 것, 󰡐튕기며 끌기󰡑는 루어가 통통 튀기며 움직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중층 스위밍은 루어가 일정한 수심을 헤엄치 듯 가게 만들며 훑는 방법으로 난이도가 상당한 기술이다. 일단 포인트가 정해지면 이 때부터 루어를 조작해 물고기가 미끼를 물도록 만들어야 한다. 미끼를 물게 하는 방법은 개인별, 상황별로 천차만별이지만 크게 물고기의 공격성을 노리는 방법과 미끼를 먹고 싶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물론 전자가 더 고난도의 기술. 루어낚시는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니며 한다. 프로 대회의 경우 보통 보트를 직접 운전하고 장소를 찾는다. 프로 경기는 일정 시간(통상 5~6시간) 동안 잡은 5마리의 물고기 무게를 비교해 순위를 매긴다. 혼자 또는 팀을 구성해 참여하기도 한다. 루어낚시 대회에서 시간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만 마지막까지 최종 포인트를 좁혀나간 사람이 막판에 대어를 낚아 역전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 참고로 루어낚시는 떡밥이나 생미끼를 쓰지 않아 환경 친화적인 낚시이다. ○ 장비 : 루어낚시의 경우 초보자는 루어 전용 릴낚싯대 1대, 초급자용 스피닝 릴 1개, 루어, 낚싯줄만 갖추면 준비 끝. 고급 제품도 물론 있지만 대략 국산과 혼합해 15만 원 정도면 무난한 편이다. 또 유료 저수지도 있지만 무료 저수지도 많아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플라이낚시는 장비를 구입하는 데 50만 원 정도가 든다. 기본 장비의 종류는 루어낚시와 비슷하지만 수요가 적어 단가가 비싸다. 플라이낚시에 사용되는 미끼는 파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아무 벌레 모양으로 만들면 안 되고 계절별로 날아다니는 벌레를 잘 관찰해 비슷하게 만들어야 한다. 루어나 플라이 낚시인 중에는 잡은 물고기를 놓아주는 사람이 많은데 이 낚시가 스포츠 성격이 강하기 때문. 물고기를 찾아다니며 낚시를 하기 때문에 운동량도 상당한 편이다. 한국스포츠피싱협회 ㈜런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ㅇ 여기가 포인트 종류 장소 : 루어낚시 경기 용인시 신갈지, 용인시 송전지, 경북 예천군 고산지, 강원 춘천시 청평호, 경북 안동시 안동호, 전북 부안군 청호지, 전북 김제시 만경지(이상 배스), 남한강 상류, 금강 상류(이상 쏘가리), 서해안 전 지역(우럭, 농어), 플라이낚시 : 강원 인제군 내린천, 강원 고성군 북천, 강원 강릉시 연곡천(東亞日報 2004-06-18)

 

  고산지(高山池) [낚시] : 풍양면 고산리 수산(水山)에 있는 못으로, 수면적은 1만 평 정도, 행정구역상 마을 명칭은 고산리이지만 제방 우측에 수산 마을이 있어 현지민들은 수산지라 부른다. 새물이 들어오는 자리는 두 곳이다. 제방 우측 상류와 제방 우측 중류에 제법 많은 양의 물이 유입되고 있다. 전 연안을 따라 말풀과 줄풀, 갈대 등의 수초가 잘 깔려있으며 상류권에서 밤낚시를 하려면 약간의 수초 제거 작업이 필요하다. 수심은 3칸 대를 기준으로 1.2m 정도이다. 2002년 5월 38cm급 씨알까지 확인되었으며, 25cm 이상 준척급 씨알은 마릿수 입질을 받을 수 있다. 자생 새우와 참붕어를 쓰면 월척급 이상 굵은 씨알의 씨올림을 기대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메주콩에는 아직까지 전혀 입질을 학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포인트는 제방 우측 상류 새물이 유입되는 곳 앞부터 최상류 연안으로 따라 제방 우측 중류 야산 아래 곶부리 지역까지이다.(붕어낚시21 2003년 6월호)

 

  고산지 : 덕암산 2015. 2. 2/ 2015.02.28/ 저쪽은 사벌면 일대 ▽고산리, 고산지, 괴당리 방면 ▽당겨본 강 건너 매협리 ▽낙동강 상류쪽. 강 서쪽은 상주시 사벌면, 강 동쪽은 예천군 풍양면 ▽당겨본 낙동강과.../ blog.daum.net/synabk/ 백두대간 용문산기도..(daum 2016)

 

  고산지 : 풍천지(고산지)/ 2004.07.21/ 예천군 풍양면 고산1리, 특징 : 만수면적 4만 5,000평의 풍천지는 민가와 인접해 있는 준계곡형 저수지다. 그러나 거의 평지형을 띄고 있어 예천군 내에서도 일찍 봄.../ cafe.daum.net/dongwoofish/33g/ posmate 조우회(daum 2016)

 

  고산지 : →고산제, →풍천지

 

  고산초당(孤山草堂), 향양재(向陽齋) [터] : 호명면 종산리 고미(古美)에 있는 정자로, 충간공 이동표(忠簡公李東標)가 세웠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그 앞에 있던 남수(楠樹)는 남아 있고, 그가 지은 시(詩)가 있다, 즉, "岩盤草廬只兩間 半間書架半間欄 영得一間和客睡 白雲無處宿詹端"이다.(군지 1939, 교남지 1937)

 

  고산초당(古山草堂) [터] : 호명면 종산리 고미 마을에 있던 재사로, 충간(忠簡) 이동표(李東標)가 세웠으나 지금은 없다. 일명 향양재(向陽齋)라고 했다.(醴泉鄕校誌 2004)

 

  고산평 : →오밋들

 

  고산폭포(古山瀑布), 예천종산리 폭포(醴泉宗山里瀑布), 폭포 [景觀] : 호명면 종산리 고미(古山里)에 있는 폭포로, 진성인 나은 이동표(懶隱李東標)가 감상하여 시(詩)로써 이르기를, "滿空銀竹度西岑 岩角飛泉直萬金 竟竺山堂看不厭 夜來携被聽瑤琴"이라고 하였다.(군지 1939)

 

  고살미 : →고종산

 

  고살미산 : →고종산

 

  고성(姑城), 할미성 [터] : 감천면 포리(浦里)와 현내리(縣內里)에 걸쳐 있는 봉수산(烽燧山)에 있는 조그마한 성으로, 마고(麻姑)할미가 쌓았다고 한다. 이조 때 봉수(烽燧)가 있었다고 한다.

 

  고성(姑城), 노고성(老姑城), 마고성(麻姑城) [터] : 예천군 동로소면(醴泉郡冬路所面, 現 聞慶市 東魯面) 간송리 천주산(天柱山) 동쪽에 있는 성터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에서는, "예천군 안인 고현(醴泉郡安仁古縣, 現 聞慶市 東魯面)에 있던 성이다."라고 하였다. 외성(外城)과 내성(內城)이 있다. 천주산(天柱山)쪽에서 적성천(赤城川) 건너편 산 위에 돌로 쌓여진 성이 외성이고, 용문면 사부리(沙夫里)와의 경계인 사부령(沙夫嶺)에서 산 능선을 따라 장대봉(將臺峰)까지 쌓여있는 성이 내성이고, 외성과 내성 사이에는 안성골(內城谷)이라는 비교적 넓은 골짜기가 있다. 내성은 동로면(東魯面) 사부레이로부터 용문면 사부리(沙夫里)로 넘어가는 사부령(沙夫嶺)에서 매봉(鷹峰, 865.3m) 근처까지 능선을 따라 3km에 걸쳐 축조된 성이 내성이다. 사부령(沙夫嶺)에서 매봉쪽으로 능선을 따라 100m 정도 오르면 성의 입구가 있는데, 동로(東魯)쪽으로는 깎아 세운 것 같은 산마루를 따라 쌓은 돌들이 지금은 허물어져 널려 있고, 용문면 쪽으로 석축이 완전한 곳이 있고, 성의 둘레는 약 8km가 넘는 것으로 보인다. 능선을 따라 약 2km가 옛 수성군(守城軍)의 병마(兵馬)를 조련하던 조련장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조련장은 산능선 정상(頂上)에 따라 폭 4km 정도를 인력으로 파고 닦고 하여 중간중간에는 바위 등 장애물을 설치해 놓고 있음을 볼 때 군사들의 훈련이 여기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장대봉(將臺峰) 정상에는 옛날 지휘소가 있던 장대(將臺)의 유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신라 전기의 기와 파편만 흩어져 있고, 군용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다. 이 지휘소는 장대봉(將臺峰, 780m)과 약 100m 상거(相距)한 봉우리에도 있었다고 보이는 곳(760m) 고지(高地) 위에도 기와 파편이 흩어져 있는 곳에 역시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다. 장대봉 장대(將臺峰將臺)가 있는 곳에서 들로 적성리(赤城里)쪽을 바라보면, 단양(丹陽) 방면에서 넘어오는 벌재길(赤城路)과 지릅재(鷄立嶺)에서 넘어오는 여우목(孤項) 길이 한눈에 와 닿는다. 적성로(赤城路)와 계립령로(鷄立嶺路)에서 적군이 침입하여 예천 방면으로나 산양(山陽), 용궁(龍宮) 방면으로 나아가자면, 반드시 이 성을 지나야 갈 수가 있기 때문에 북에서 오는 적을 방어하는 데는 가장 알맞은 길목이요, 요충 지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성 안에 병마(兵馬)의 조련장이 있음을 볼 때, 이 노고성(老姑城)의 내, 외 성안에는 많은 병마가 주둔하여 전투 훈련을 하면서 적성로(赤城路)를 따라 한강(漢江) 상류로 진출하는 전진 기지로 이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왜냐하면 이 노고성(老姑城)에서 한강 상류인 단양군(丹陽郡)까지의 거리가 불과 16km 미만이다. 이것은 소백산맥 이남에서 한강 상류로 진출하는데, 가장 가까운 지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적성로(赤城路)는 소백산맥의 남북을 넘는 고개 중에서 죽령(竹嶺)이나 계립령(鷄立嶺), 조령(鳥嶺)과 비교하여 가장 표고(標高)가 낮은 고개이고, 비교적 길이 평탄함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노고성(老姑城)을 다시 한번 주목하여야 한다. 신라는 551년(진흥왕 12)에 거칠부(居柒夫), 구진(仇珍) 등 8장군에게 명하여 한강 상류 지역으로 진취시켜 죽령, 계립령 이북의 고구려 땅 10개 군을 공취하였다. 그렇다면 한강상류로 진출하는 8장군이 반드시 하나의 길만을 이용했다고 볼 수가 없다. 죽령로(竹嶺路), 적성로(赤城路), 계립령로(鷄立嶺路) 등 한강 상류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은 모두 이용이 가능하고 한강 진출을 위하여는 소백산맥 이남의 고갯길과 가까운 곳에 병력과 군수 물자의 비축(備蓄) 기지가 있어야 된다면 한강 상류와 최단거리에 위치한 노고성(老姑城)의 역할은 자명해진다. 이 노고성 내성(內城)의 동쪽인 용문면 선리(仙里)에는 어림성(御臨城)이 있다. 이도 한강 진출의 전진 기지이다. 노소성이나 어림성이 모두 내외 양성(兩城)으로 축조되어 있고, 내외성(內外城) 사이에는 큰 골짜기가 있고, 수 만평의 전지(田地)가 있는 점을 볼 때 이들 성 안과 성 주위에서는 둔전(屯田)을 하여 군량의 자급을 꾀했다. 노고성(老姑城)의 외성과 내성은 축조 연대가 다르다. 내성은 토석(土石)을 혼합 축성하였고, 외성은 돌로만 아주 정교하게 축조된 것을 볼 때, 외성은 내성이 축조된 시기에서 적어도 1,2세기 뒤에 축조된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 온조왕 36년 8월조에서 이르기를, "원산(圓山), 금현(錦峴)의 두 성을 수리하고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고사부리성이 용문면 사부리(沙夫里) 사부래이와 접경해 있는 노고성(老姑城)일 가능성이 있다. 내성이 있는 고개를 사부령(沙夫嶺)이라 한다. 또 백제는 178년(肖古王 25)에 신라의 서쪽 원산향(圓山鄕)을 공격하고 210년에 "적현(赤峴), 사도(沙道)의 두 성을 쌓고, 동부의 백성을 옮겨 살게 하였다. 10월에 말갈(靺鞨)이 와서 사도성(沙道城)을 공격하여 이기지 못하자, 성문을 불태우고 도망하였다."라고 하였고, 216년(仇首王 3) 8월에 말갈이 와 적현성(赤峴城)을 포위하므로 성주(城主)가 굳게 막으니, 적이 물러가자, 왕이 날랜 군사 800명을 거느리고 뒤를 쫓아 사도성(沙道城) 아래에서 싸워 깨뜨리고 적병을 많이 죽였다"라고 하였고, 다음해인 217년 4월 2일에, "두 책(柵)을 사도성(沙道城) 곁에 설치하되 동(東), 서(西)의 거리가 10리쯤 되게 하고, 적현성(赤峴城)의 병력을 나누어 지키게 하였다."라고 한다. 이상에서 적현성(赤峴城)은 동로면(東魯面) 벌재재, 사도성(沙道城)은 노고성(老姑城)일 가능성이 있다.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과 사도성(沙道城)을 같은 성일 것이고, 사도성(沙道城)과 적현성(赤峴城)의 거리는 20리에 불과하므로 군사를 나누어서 주둔시키기가 쉽고, 서로 간의 연계가 쉽다. 292년(유리왕 9)에도 왜병(倭兵)과 사도성(沙道城)에서 싸운 기록이 있다. 이는 동해안이다. 그러나 다음해 2월 초에, "사도성(沙道城)을 개축하고 사벌주(沙伐州, 尙州)의 호민(豪民) 80여 호를 이사시켰다"라고 하였다.

 

  고성 : → 할미성

 

  고성능 구조 적용을 위한 아라미드 섬유 강화 하이브리드 복합 재료에 관한 연구(高性能 構造 適用을 爲한 아라미드 纖維 强化 하이브리드 複合 材料에 關한 硏究 =Studies of aramid fiber reinforced hybrid composites for high performance structural application) [論文]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박노춘(1970- , 龍門初, 龍門中, 서울大 工大 卒業, 同 大學院 碩士, 同 化工科 工學博士, 理工系博士 出身 技術考試 合格, 曉星그룹 中央硏究所 首席硏究員)의 서울대학교 대학원 화공과 1999년 공학 박사학위 논문으로, xxiii, 326쪽, 서울대학교에서 1999년에 발행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경북대, 서울대(중앙), 제주대이다.(keris 200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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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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