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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376 고은정...고장을빛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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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작은 亭子, 古隱洞天 古隱亭') [記事] :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정자인 고은정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 다시 찾았다. 난숙한 봄이라더니 봄이 온 산천과 들에 무르녹아 있다. 고은정 돌 틈에 핀 오랑캐꽃이며 노오란 민들레꽃은 벌써 홀씨를 바람에 날리고 있다. 소나무 아래 커다란 바위틈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부끄러운 듯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다. 고요한 고은정은 시끄러운 봄 속에서 그렇게 있었다. 고은정은 보문면 간방리 속칭 간실 마을에 있다. 간실에는 문헌에는 아무 기록이 없으나 결점하나 찾을 수 없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 있고, 석탑을 지나 학가산 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우리나라 산기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화강암 바위가 있다. 이곳의 화강암은 모난 곳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듬직한 바위이다. 세월속에 검푸른 바위와 바위이끼, 거기에 어울리는 소나무 숲. 소나무도 그 자연과 어울리게 운치있게 자랐다. 그 앞에는 넓은 들이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개여울이 들 앞을 흐르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섶의 큰 바위에는 고은동천(古隱洞天)이라는 글씨가 단정한 구양순체로 새겨졌고, 솔숲 아래에는 고은정(古隱亭)이라는 현판이 붙은 작은 정자가 있다. 고은정의 글씨는 댓쪽같은 선비의 얼이 느껴지는 힘찬 글씨이다.
정자 앞에는 반송이 줄기를 땅에 붙여 누운 듯이 자라고 있고 바위틈에 자라는 향나무며 정자 뒤켠에는 대숲이 있어 사시사철 솔바람소리와 대바람소리가 들리는 정자이다. 푸른빛을 거둬들이는 법이 없는 소나무, 줄기까지 푸른 대나무의 청정함에는 여상하지 않게 담겨있는 선비의 지조와 기품이 느껴진다. 정자는 규모가 작다. 사랑방 한 칸 정도의 크기에 기둥만 여섯 개 세우고 팔작지붕을 얹은 단출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다. 툇마루는 없으며 난간은 기둥에 붙여 만들어 소박하게 둘렀다. 맞배지붕이나 우산각지붕을 얹어도 될 텐데 이중서까래와 부녀를 만들고 갖출 것을 다 갖춘 다음, 골기와를 얹은 팔작지붕 양식이다. 곧은 기둥과 팔작지붕은 주위의 자연과 어울려 여간 운치있는 게 아니다. 정자를 세운 이의 욕심없는 인품과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허세와 허풍의 장엄미학이 아니라 실용을 중시하고 자연에 순응한 조선 후기 성리학의 자연관이 담겨진 간소한 집이다. 절제되고 단아한 집. 더 이상 생략할 수 없는 단아함, 고결정신과 여유가 오롯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정자는 여유있는 삶을 누리는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며 때로는 명상하고 사색의 깊이를 더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시회도 갖는 경관이 좋은 곳에 지은 집이다. 크게 짓지는 않지만 보통 마루와 방 한두 칸을 갖추기 마련인데, 고은정은 기둥만 여섯 개 세운 구조이다. 방을 만들어 놓으면 무슨 비밀스런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벽이 없어 맑고 투명한 인품이 느껴지며,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도록 하였다. 정자에 들어가도 건물 안이 아니라 마치 소나무 아래 있거나 느티나무 아래 그대로 앉아있는 느낌이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겼다. 변형시키거나 바꾸지 않았다. 훼손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을 자연 그대로 즐겼다. 고은동천 고은정을 세운 이는 조선말의 선비 박용학이라고 하며 후손들이 조경을 더하고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나는 박용학 님의 행적을 조사하려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고은정의 단순하고 간결한 모습만으로도 그의 인품이 허세를 싫어하고 자연을 즐기며 맑고 깨끗한 선비였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아들이 세운 비석과 연못조경은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비석에 어울리지 않는 비석명의 큰 글씨며, 인공적인 연못은 조화롭지 못하다. 정자 주위의 화강암을 기계로 깎아서 만든 돌의자도 빨리 없애야 하고, 바닥과 석축의 시멘트는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 정자 오른쪽에 댓 그루 심은 리기다소나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조상을 생각하는 효심은 좋지만 과장해서는 후세에 웃음거리가 된다. 인공적인 연못도 거기에 만들 곳이 아니다.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며 썩은 물은 악취를 풍긴다. 사람의 사고와 행동과 삶도 마찬가지다. 고은동천 고은정(古隱洞天 古隱亭). 이름 그대로 고결한 옛 선비가 자연 속에서 신선처럼 하늘에 잇닿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곳이다. 우리 조상들이 자연을 얼마나 사랑하며 자연 속에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보석 같은 유물이다. 속인이 어이 본받을 수 있을까만 고은정에 오롯이 깃든 고결한 그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한결 權相憲/論說委員, 文化院 理事>(醴泉新聞 2007년 05월 24일)
고은정(醴泉澗芳里 古隱亭) : *위치 : 예천군 보문면 간방리 252-1, 연대 : 1952년 중건, *규모 : ‘-’자형 정자 1채/ 고은정은 보문면 간방리에 위치한다. 이 정자는 호고낙은(好古樂隱)한다는 뜻에서 호(號)를 고은(古隱)으로 지은 박용학(朴容學, 1869-1948)이 수양하기 위해 1920년대에 지은 것이다. 그는 조선 개국공신 박은(朴訔)의 후예로 가난한 선비의 삶을 살았지만, 조상을 섬기고 형제들의 어려움을 앞장서서 해결해 주었다. 그의 아들 박세경(朴世徑)이 부친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1952년에 중건하였다. 간방3리 간실(澗室)의 골마와 탑마 경계지역 산자락 끝에 위치하고 있다. 고은정은 아주 단출한 2칸에 지나지 않으며, 그럼에도 앞에 세심지(洗心池)를 조성해 두고 있다. 연못 안에는 큼직한 돌이 있고, 그 위에 역시 단아한 유모비(儒慕碑)를 건립하였으며, 그 곁에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정자의 서쪽 산자락 아래 골마로 가는 길옆 바위에는 ’古隱洞天‘이 음각되어 있다. 고은정이 있는 간방리는 예천읍에서 보문면과 예천IC로 난 928번 지방도로 보문로에서 북측 승본리와 간방리를 향한 노트기길과 수락대로길을 따라 접근하며, 간방리를 지나는 수락대로길은 마을의 맞은편에 있는 석관천을 따라 조성된 제방길 위에 있다. 간방리 고은정은 이 수락대로길에서 마을 중간부분 산자락을 향해 난 마을 안길을 따라 접근한다. 정자는 나지막한 산자락 끝에 터를 마련하고 동남향을 하고 있다. 고은정은 사방이 트여 있으며, 정면에는 마을을 연결하는 안길과 정자로 향한 안길이 만난 삼거리가 있으며, 길 주변에는 논과 밭이 있고, 멀리 석관천의 제방길 수락대로길이 지나고 있다. 좌측에는 마을길을 따라 밭이 있고, 우측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는데, 중앙에는 바위가 있고, 바위 위에 비 1기가 있다. 고은정은 ‘-’자형 누정건축물로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건물이다. 정자는 사면 기둥과 기둥 사이를 평난간으로만 연결하여 사방으로 열린 공간 구조를 하고 있다. 정자의 기단은 자연석과 시멘트모르탈로 축조 마감했으며, 주초는 거칠게 치석한 돌을 사용했다. 원기둥 상부는 직절이익공방식으로 창방과 보아지가 짜 맞춤을 한 후 주두를 놓고, 다시 주두 위에 반턱맞춤을 한 첨차와 이익공을 놓은 후 재주두와 보와 도리받침장혀를 받도록 했다. 주간의 장혀와 창방 사이는 원형화반을 끼워 장식했다. 가구는 오량이며, 상부는 연등천정으로 열려 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추녀마루의 용마루, 내림마루 끝은 망와로 마감했다. 처마 끝은 와구토로 마감했으며, 앙토는 회바름했다. 처마도리에는 ‘古隱亭’ 편액이 걸려 있으며, 내부에는 ‘古隱亭’, ‘次古隱亭韻’, ‘記’ 편액 등이 걸려 있다. 고은정은 중건 이후 마을사람들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면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따라서 고은정은 적극적으로 활용을 한다며 건축문화유산으로서 기존의 가치가 지속될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175-176쪽)
고은정 : 澗芳里 소속으로, 간실 동북쪽에 있는 정자. 박고은의 자손들이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으며 못을 파서 큰 바위를 천연적 섬으로 만들고 그 바위 위에 유모비를 세웠음(普門面홈페이지 2013)
고은정 :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간방리 [澗芳里, Ganbang-ri]/ 2016.07.23/ 지역인데 간곡, 이방동과 보문면의 마촌동 일부와 감천면의... 간방동에서 으뜸 되는 마을. 간초정 : 간실 옆에 있는 정자, 고은정 : 간실 동북쪽에 있는 정자. 박고은의.../ blog.naver.com/hmi0419/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daum 2016)
고은정 : 아주 작은 정자 고은정/ 2007.08.29/ 몸을 흔들고 있다. 고요한 고은정은 시끄러운 여름 속에서 그렇게 있었다. 고은정은 보문면 간방리 속칭 간실 마을에 있다. 간실에는 문헌에는 아무 기록이 없으나.../ blog.daum.net/ leekona(daum 2016)
고은정 : 예천...간방리 석탑. 고은정/ 2008.06.07/ 1939). 박용학(朴容學) : 1869(고종 6)-1948, 보문면 간방리 간실(澗谷) 출신, 호는 고은(古隱), 본관은 반남... 편찬하였다.(醴泉郡誌 1939) 고은정은 정면 두 칸 측면.../ blog.daum.net/ 옛님의 정취. 그 향기..(daum 2016)
고은정 : '작은 정자, 고은동천 고은정'/ 진달래가 부끄러운 듯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다. 고요한 고은정은 시끄러운 봄 속에서 그렇게 있었다. 고은정은 보문면 간방리 속칭 간실 마을에 있다. 간실에는 문헌에는 아무 기록이 없으나 결점하나 찾을 수 없는 통일신라시대.../ www.ycnews.co.kr/news (daum 2016)
고은정 : 예천...간방리 석탑. 고은정/ 2008.03.27/ 1939). 박용학(朴容學) : 1869(고종 6)-1948, 보문면 간방리 간실(澗谷) 출신, 호는 고은(古隱), 본관은 반남... 편찬하였다.(醴泉郡誌 1939) 고은정은 정면 두 칸 측면.../ cafe.daum.net/nuturelife/6f2Q/ 초은과 우화(daum 2016)
고은정 : 예천 보문면 `작은정자, 고은동천 고은정` <한결의 예천.../ 2007.11.01/ 몸을 흔들고 있다. 고요한 고은정은 시끄러운 봄 속에서 그렇게 있었다. 고은정은 보문면 간방리 속칭 간실 마을에 있다. 간실에는 문헌에는 아무 기록이 없으나 결점하.../ cafe.daum.net/yckun/DwWZ/ 예천군민회(daum 2016)
고은촌 : →고은정
고음(고音) [古文書] : 두민(頭民) 최진이(崔辰伊)가 성주(城主)에게 신사년(辛巳年)에 발급한 문서로, 최진이가 비봉산(飛鳳山) 산록에 있는 동래 정씨 문중 선산 일부를 초목장으로 이용하였으나 거절되자 이의 환원을 요청한 문서이다. 예천군 정양수(鄭亮秀)의 소장본을 촬영한 마이크로필름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청구기호 MF A지수 101)되어 있다.
고이바우 [바위] : 하리면 율곡리(栗谷里) 논티 북쪽에 있는 바위로, 고양이처럼 생겼다.
고인돌, 지석묘(支石墓) [遺蹟] : 1) 용문면 대제리 183번지에 3기(基) 등 대제리에 9기가 있다. 2)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북촌(金塘室北村)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 20여기가 있다. 3) 용문면 성현리 고분에서 북쪽 50m 논 가운데 있는 2기의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다. 4) 용문면 제곡리 433번지 중심으로 앞쪽의 논과 마을 뒷 산록에 20여 기가 있다. 여기 고인돌에서 나온 간돌검(磨製石劍) 2점이 경북대 박물관에 소장 전시되어 있다.
고인돌과 거석문화(支石墓와 巨石文化) [冊] : 변광현(邊光賢)이 1998년에 발행한 책으로, ‘웅계(熊系), 고마계 지명 분포’ 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특이하게도 상주와 예천, 선산을 연결하는 지역에는 고마계가 아닌 웅계 지명이 보이고 있다. 이는 고마계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웅계 부족이 이곳까지 진출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고마는 곰의 옛말을 통칭하는 말로 곰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부족들이 이주하면서 곳곳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남한 내의 가야계(伽倻系) 지명을 나열하여 놓으면, 남한을 사선(斜線)으로 횡단하면서 부산에 정점을 두고 있어 웅계 지명과 여러 면에서 겹치고 있다. 그 중 예천군 용궁면 가야(佳野)가 포함되어 있다. 웅계는 예천 호명면 웅골(熊洞)이 가능치가 높다. (myhome.shinbiro.com 2003)
고자골 [골] : 보문면 오신리(五信里) 자시밋골 앞에 있는 골짜기로, 외골이다.
고장사(古莊寺) [터] : 예천군 현남면 금릉촌(현 의성군 다인면 송호3리) 고장골에 있던 사찰로, 현재도 그 유지에서 기왓장을 볼 수 있다. 이 부근의 들 이름이 녹단(綠壇) 불성바위 등 절과 관계되는 이름을 갖고 있다.(多仁面誌 1992)
고장을 빛낸 사람들(故庄을 빛낸 사람들) [記事] : 지보면 도장리 출신인 정양수(鄭亮秀, 1932- , 大昌高 校監)의 예천군 출신 역사적 인물 75명과 역대 예천 고을원 명단의 기록으로, 예천군(郡守 金奭鍾)에서 1981년에 발행한 <내고장 전통가꾸기(내故庄傳統가꾸기, 내故庄뿌리찾기)> 25-112쪽(88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고장을 빛낸 사람들(故庄을 빛낸 사람들) [記事] : 지보면 도장리 출신인 정양수(鄭亮秀, 1932- , 大昌高 校監)의 예천군 출신 역사적 인물 75명과 역대 예천 고을원 명단의 기록으로, 예천군(郡守 趙鏞洙)에서 1984년에 발행한 <내고장 예천(내故庄醴泉, 내故庄뿌리찾기)> 25-112쪽(88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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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