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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377 고장을 빛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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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을 빛낸 인물(故庄을 빛낸 人物) [記事] : <예천신문> 홈페이지(www.ycnews. co.kr)에 실은 예천군 출신의 역사적 인물 열전으로, 예천읍 백전리 109번지 출신인 백산(栢山) 장병창(張炳昌, 1942- , 中等 校長)이 <예천신문>에 실었던 것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투고한 것인데, 그 제목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2001.11.2 입력] : 1) 권중화(權仲和, 조선 초 영의정), 2) 정광필(鄭光弼, 조선 중기 명재상), 3) 정탁(鄭琢, 이순신 장군을 살린 좌의정), 4) 권한공(權漢功, 고려 충선왕 때 정승), 5) 임춘(林椿, 고려 때 학자), 6) 권문해(權文海, 초간정사를 창건한 실학의 선구자), 7) 조윤제(趙潤濟, 40여 년을 민족사관으로 일관해온 국문학 개척자), 8) 윤상(尹祥, 조선 초 제1의 스승), 9) 이문흥(李文興, 조선 중기 제1의 스승), 10) 임민비(林民庇, 고려 중기 재상), 11) 안준(安俊, 고려 말의 충신), 12) 김손(金遜, 홍건적 난 때 어림성을 쌓고 왕을 지킨 충신), 13) 장말손(張末孫,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조선 시대 공신), 14) 전원발(全元發, 중국에서 국방 장관을 지낸 부원군), 15) 임간(林幹, 고려 숙종ㆍ예종 때 입각한 평장사), 16) 이유인(李裕寅, 항일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법부 대신), 17) 현석호(玄錫虎, 제5대 국회의원 당선 후 제9대 국방부 장관으로 입각), 18) 정재원(鄭載元, 제4대 예천 국회의원), 19) 권맹손(權孟孫, <용비어천가>의 기반을 만들어 준 이조 판서), 20) 정난종(鄭蘭宗, 이조 판서로 을유자를 만든 서예의 대가), 21) 권중달(權仲達, 목은 이색의 장인으로 고려 말에 입각), 22) 장진우(張進瑀, 조국 광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의사), 23) 조용(趙庸, 성균관 대사성을 20년 간 지낸 교육자), 24) 임유정(林惟正, 옛사람 글귀 모아 새로 시를 만든 고려 국립대 교수), 25) 정사룡(鄭士龍, 16세기 제1의 한문학자인 예조 판서), 26) 박홍린(朴洪鱗, 5형제가 과거에 급제한 예조 참판), 27) 장한보(張漢輔, 세자의 스승이 되었던 청렴 결백한 선비), 28) 장화식(張華植, 을사조약을 반대하면서 사직 귀향한 서울시장), 29) 임종비(林宗庇, 대학자로 12세기를 누빈 한림학사), 30) 권산해(權山海, 충절을 지켜 자결한 단종의 이모부), 31) 권오기(權五紀, 항상 백성 소리에 귀를 기울인 좌통례), 32) 조우인(曺友仁, 송강을 계승한 조선 가사문학의 대가), 33) 이중량(李仲樑, 내외 요직을 두루 거친 16세기 관찰사), 34) 김석희(金碩熙, 민족 경제 자립에 몸바친 대창학원 설립자),
[2001.11.5 入力] : 35) 두운(杜雲, 용문사를 창건한 통일신라 때 고승), 36) 김복일(金復一, 청렴 강직하게 벼슬을 한 조선 국립대학 교수), 37) 이동표(李東標, 인현왕후의 폐비 반대 상소를 올린 대사성), 38) 태두남(太斗南, 영달보다 스승을 택한 종부시 정), 39) 정윤우(丁允佑, 뛰어난 문장에 중국 황제가 감탄한 관찰사), 40) 이광윤(李光胤, 임란 때 예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우통례), 41) 장봉환(張鳳煥, 외교관과 구한국군으로 활약한 고등법원 검사), 42) 정사(鄭賜, 청렴 결백하게 선정을 한 진주 목사), 43) 강사필(姜士弼, 조선 명종 때 요직을 두루 거친 관찰사), 44) 전이성(全以性, 이괄의 난을 진압시킨 종부시 정), 45) 장윤덕(張胤德, 항일 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예천군 의병장), 46) 임지한(林支漢, 다인현을 예천 땅 되도록 한 고려 때의 공신), 47) 정언굉(鄭彦宏, 이괄의 난 때 의병을 일으킨 승문원 판교),
48) 장진(청백리로 포상받은 울산 부사), 49) 윤국범(尹國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구한말 예천 의병장), 50) 신상(申商, 일에 순발력이 강했던 조선 전기 법무부 장관), 51) 조어(단칸 전세방에서 굶으면서 출근한 예문관 제학), 52) 문근(文瑾, 조광조의 처형을 공박하다가 파직된 형조 참판), 53) 정진화(鄭鎭華, 독립군 군자금 모금에 앞장선 광복단원), 54) 문걸(文傑, 사림파로서 벼슬에 진출한 이조 참판), 55) 이열도(李閱道, 선몽대를 창건한 당대의 명필), 56) 김광엽(金光燁, 3사 벼슬 15년 역임하고 <귀허집> 40여 권을 저술), 57) 한양리(韓良履, 일제 때 전후 5년의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58) 김빈(金賓, 자비·치밀·청렴·분별로 다스린 국방부 차관), 59) 이필주(李弼柱,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 60) 변진우(邊進宇, 고향 후배를 사랑한 부장검사), 61) 이문좌(李文佐, 장원 급제한 경주 이씨 세촌공파 입향조), 62) 박종린(朴從鱗, 5형제가 과거 급제한 용문 함양 박씨 입향조), 63) 김곤(끈질긴 인내로 53세에 과거 급제한 병조 좌랑), 64) 김순흠(金舜欽, 고종 퇴위 후 단식 23일만에 순국한 애국자), 65) 권오복(權五福, 무오사화에 희생된 홍문관 교리), 66) 이구(李構, 향약을 통한 새생활 운동을 한 사관), 67) 김주(병자호란 때 척화 상소를 올린 충청도 도사), 68) 이은성(李恩成, 한국 TV 드라마 시나리오의 큰 별), 69) 이유(李愈, 임란 때 용궁에서 순국한 예천 수성장), 70) 박정시(朴廷蓍, 벼슬에서 물러날 때 거문고 1개뿐인 청백리), 71) 전병표(全炳豹, 군자금 조달에 앞장선 의용단 군무국장), 72) 권영록(權寧錄, 무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된 궁시장), 73) 정난손(鄭蘭孫, 문예에 뛰어난 유림의 스승), 74) 이찬(李燦, 왕의 병을 고친 뛰어난 의사), 75) 권원하(權元河, 항일운동으로 일생을 마친 독립운동가), 76) 김영구(金榮久, 살신성인한 30대의 의로운 삶을 산 사람), 77) 문경동(文敬仝, 삼포왜란을 평정했던 예천 군수), 78) 김영수(金永壽, 싸우면 반드시 이긴 임란 때 의병장), 79) 정필충(鄭必忠, 세도가의 물의를 직간한 사헌부 감찰), 80) 권동하(權東河, 전국 주조협회장을 역임한 경북도의회 의장), 81) 정중대(鄭重垈, 자기 봉급으로 백성을 구휼한 목민관), 82) 박손경(朴孫慶, 선비들의 스승이었던 학자), 83) 고형림(高亨林, 항일 투쟁을 한 건국포장 수상자), 84) 김양진(金楊震, 연산군의 잘못을 지적한 대사간), 85) 정윤목(鄭允穆, 17세기 초서의 제1인자), 86) 박주상(朴周庠, 을미사변 때 예천군 의병대장), 87) 장진성(張進聖, 구한말의 의병 포대장), 88) 정환(鄭煥, 연산군의 잘못을 직간한 홍문관 응교), 89) 이개립(李介立, 정유재란의 향병대장), 90) 김정연(金正演, 3.1운동 때 만세 부른 건국 공로자), 91) 황재홍(黃在洪, 잠사업계의 큰 별이었던 국회의원), 92) 이자(선비 정신이 투철했던 좌참찬), 93) 정영방(鄭榮邦, 예천 지방의 세금을 줄여달라고 상소한 학자), 94) 박태원(朴泰元, 3.1운동 때 용문에서 만세부른 독립운동가), 95) 이병한(李炳漢, 독립운동 자금 모집한 상해 임정 요원), 96) 문관(文瓘, 중종의 개혁정치 주역이었던 사헌부 장령), 97) 이영문(李榮門, 임란 때 창의한 학자), 98) 박창호(朴漲浩, 항일운동에 일생을 바친 교육자), 99) 이만녕(李萬寧, 6.25전쟁의 폐허를 복구한 예천읍장),
[2001.11.10 入力] : 100) 권장(權檣, 학문에 해박한 호조 정랑), 101) 황사성(黃士誠,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신), 102) 응립(應立, 조선 숙종 때 유명한 의사), 103) 조용필(趙鏞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광복회원), 104) 최안도(崔安道, 고려 충숙왕 때의 내무부 장관), 105) 권별(權鼈, <해동잡록> 14권을 저술한 학자), 106) 도시복(都始復, <명심보감>에 실린 효자), 107) 정훈모(鄭燻謨, 만주에서 투쟁한 독립운동가), 108) 이중립(李中立, 성균관 장의), 109) 박수서(朴守緖, 권세가에게 저항한 병조 참의), 110) 남극후(南極厚, 관찰사가 비석을 세워준 효자), 111) 신욱(申煜, 사재를 팔아 군자금을 지원한 독립운동가), 112) 반유(潘濡, 시묘살이 풍습을 정립한 조선 초의 절의 선생), 113) 박종봉(朴鍾鳳, 이강년 의진의 좌종사부원), 114) 송복기(宋福基, 임란 때 왜적을 물리친 예천 수성장), 115) 양재휘(梁在暉, 40여 년 간 제자를 길러낸 교육자), 116) 이응(李應, 임란 때 의병으로 싸운 학자), 117) 박득현(朴得顯, 호랑이가 시묘살이를 도와준 효자), 118) 이호근(李浩根, 예천극단을 조직했던 제2대 국회의원), 119) 이대봉(李大鳳, 예천통명농요의 기능보유자), 120) 금유(琴柔, 지조가 굳은 조선 초기의 내무부 장관), 121) 이석곤(李碩坤, 예천읍 용산리를 개척한 선비), 122) 전오륜(全五倫, 나이 70에 100세 어머니를 업은 효자), 123) 반재원(潘在元, 예천동학농민운동을 기록한 학자), 124) 정지(鄭沚, 일가 화목에 앞장선 첨지), 125) 이백영(李白永, <영남삼강록>에 실린 효자), 126) 손영기(孫永箕, 군자금 모금에 힘씀), 127) 장세근(張世根, 달력업계의 선두 주자), 128) 이윤수(李潤壽, 용궁 무리실 여주 이씨 입향조), 129) 김옥진(金玉振, 조선 헌종 때 효자), 130) 김철상(金喆相, 12개 성상 왜적을 괴멸시킨 구한말 의병), 131) 권성진(權誠鎭, 권병원을 설립한 의학 박사), 132) 한씨(韓氏, 임란 때 쌍절암에서 순절한 열녀), 133) 권적(權迪, 경상도 3사간(三司諫)의 으뜸), 134) 최원한(崔元漢, 일생을 교육계에 몸바친 교육장), 135) 권우갑(權又甲, 지방무형문화재 제6호인 궁시장), 136) 반충(潘沖, 국가에서 정려한 조선 효종 때 효자), 137) 김팔원(金八元, 형벌 없는 정치를 편 용궁 현감), 138) 이령(李玲, <금강록>을 저술한 이조 정랑), 139) 남영필(南永弼, 신선이 감동했다는 효자), 140) 현옥량(玄玉亮, 연주 현씨 예천 입향조), 141) 이번(李蕃, 도승지에 오른 개포 사람), 142) 홍여하(洪汝河, 많은 저서를 남긴 사간원 사간), 143) 강현랑(姜賢娘, 조선 정조 때 효부), 144) 권연(정유재란 때 의병 소모장), 145) 조보양(趙普陽, 산동 마을을 사랑한 사헌부 감찰), 146) 전홍교(全洪敎, 일제 침투로 벼슬 버린 사헌부 장령), 147) 김정준(金定浚, 이강년 의진의 좌종사), 148) 장의진(張義鎭,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아버지를 소생시킨 효자), 149) 김환흥(金煥興, 염라대왕이 감복했다는 효자), 150) 안재극(安在極, 왜적과 싸운 이강년 의진의 종사관), 151) 박상영(朴湘永, 교육법 제정에 선도적 역할을 한 제헌국회 의원), 152) 벌보말(伐寶靺, 박제상을 천거한 신라의 고관), 153) 강종덕(姜宗德, 고려의 충신),
[2001.11.16 入力] : 154) 변희리(邊希夷 , 원주 변씨 예천 입향조), 155) 백진양(白震陽, 마주목을 남긴 황해도 관찰사), 156) 권석인(權錫寅, 3.1운동 때 용문에서 만세를 주도), 157) 서구연(徐九淵, 선리 출신의 정3품 대사간), 158) 이희(李憙, 임란 때 순국한 홍문관 교리), 159) 백남규(白南珪, 거액의 군자금을 낸 이강년 의진의 좌종사), 160) 정의홍(鄭義泓, 민족의식에 기초를 둔 시인 교수), 161) 곡긍회(曲矜會, 고려 초의 고관인 용궁 곡씨의 시조), 162) 정윤해(鄭允諧, 정유재란 때의 공신), 163) 정영후(鄭榮後, 왜장이 감동한 효자), 164) 김수준(金守濬, 구한말 이강년 의진의 종사관), 165) 장근(張謹, 단양 장씨의 입향조인 퇴계의 제자), 166) 노주훈(魯周勛, 덕달리에 정려된 효자), 167) 윤필경(尹弼敬, 삼숙질 간의 희생 정신 귀감), 168) 권석호(權錫虎, 3.1운동 때 시위 주도), 169) 이목현(李穆鉉, 예천 발전에 평생을 바침), 170) 장위규(張緯奎, 이인좌 난 때의 공신), 171) 손종우(孫鍾禹, 의용단 경북 재무국장), 172) 신필형(辛必馨, 선정비를 남긴 진주 목사), 173) 정귀령(鄭龜齡, 후손 중 정승이 8명),
174) 장령(張翎, 청백리로 소문난 예천 군수), 175) 김경수(金敬守, 예천 최초의 크리스찬), 176) 김현종(金炫鍾, 고향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예천읍장), 177) 임즐(백전리에 정려된 영주 군수), 178) 안경빈(安敬賓, 티없는 옥이었던 부사), 179) 이명익(李溟翼, 양호(兩湖)에 대동법을 실시), 180) 한태섭(韓台燮, 구한말 이강년 의진의 참모관), 181) 정옹(鄭雍, 교육 발전에 힘쓴 사헌부 집의), 182) 윤섭(尹涉, 임란 때 의병장인 장례원 사평), 183) 이봉징(李鳳徵, 남인 출신의 대사헌), 184) 장시환(張時煥, 예천청과조합 상무이사), 185) 윤계은(尹季殷, 예천 향사당을 지은 군위 현감), 186) 정옥(鄭玉, 백성을 사랑한 황해 감사), 187) 정대일(鄭戴一, 구한말 예천을 지킨 주인공), 188) 김형도(金炯燾, 이강년 의진에 가담한 독립운동가), 189) 정유일(鄭維一, 조선 선조 때의 이조 판서), 190) 이장영(李張英, <양양지>를 편찬한 생원), 191) 이충국(李忠國, 임금으로부터 칭찬받은 군수), 192) 박철구(朴哲九, 대동청년단장을 지낸 예천토건협회장), 193) 안세호(安世豪, 우애가 깊었던 봉상시 부정), 194) 임원발(林元發, 예천의병소의 유진장), 195) 정필충(鄭必忠, 직무에 충실했던 성균관 사예), 196) 이세영(李世榮, 효성이 지극한 도총관), 197) 이발곤(李發坤, 조국에 머물기를 원한 진사), 198) 정교(鄭僑, 충직으로 일관한 세자시강원 보덕), 199) 정현모(鄭玄謨, 항일운동을 한 사헌부 장령), 200) 여종구(呂宗九, 낭만주의 시인), 201) 권섬(權暹, 예천 권씨의 시조), 202) 남천한(南天漢, 예절을 바로잡은 대사간), 203) 김해일(金海一, 숙종이 제문을 내린 경주 부윤), 204) 유학성(兪學聖, 대범한 덕장 출신의 국회의원), 205) 임언(林彦, 여진족을 물리친 국자감 대사성), 206) 권초(대죽리에 숨어산 고려의 충신), 207) 박정벽(朴廷璧, '만국전도'를 제작한 공조 참판), 208) 정광묵(鄭光黙, 세상을 놀라게 한 사헌부 지평), 209) 권상(權祥, 영주에 누각을 세운 성주 목사), 210) 권욱(權旭, 임란 때의 예천군 의병장), 211) 김태일(金兌一, 문장에 능한 진주 목사), 212) 조용구(趙鏞九, 이강년 의진의 좌종사), 213) 박진필(朴震弼, 청렴 결백한 충청도 관찰사), 214) 권정침(權正枕, 사도세자의 스승인 설서), 215) 이규홍(李圭洪, 군자금을 제공한 독립운동가), 216) 권준(權俊, 일제 때의 의열단원), 217) 권용(權墉, 문장에 능했던 상서원 직장), 218) 이지선(李芝璇, 이강년 의병대의 좌종사), 219) 박주종(朴周鍾, <동국통지>를 저술한 학자), 220) 박봉필(朴鳳弼, 해방 직전에 순국한 재만 항일결사단원), 221) 김존중(金存中, 고려 의종 때 득세한 용궁 김씨의 시조), 222) 신성(申誠, 조광조을 구하려던 죽산 현감), 223) 김동숙(金東淑, 부인회 예천지부장을 지낸 의사), 224) 권만제(權萬濟, 선정비를 남긴 성균관 사예), 225) 최원(崔源, 왜구를 물리친 혁혁한 공신), 226) 김두(수문전 학사를 지낸 고려의 충신), 227) 김재명(金載明, 구한 말의 의병), 228) 권의(안동 권씨의 낙향 시조), 229) 김전(金鈿, 두문동에서 순절한 고려의 찬성사), 230) 강회백(姜淮伯, 고려 말의 대통령 비서실장), 231) 권주(權柱, 16세기의 교육부 장관), 232) 도명찬(都命燦, 임금과 부친을 위해 6년 간 시묘한 효자), 233) 백홍정(白弘正, 백씨 예천 입향조),
[2001.11.17 入力] : 234) 권계용(權季容, 고려 말의 법무부 장관), 235) 고유완(高有完, 호랑이가 감탄한 효자), 236) 김현동(金賢東, 의용단 예천군 간사), 237) 권완(權緩, 태종과 극친했던 경기도 관찰사), 238) 김유의(金兪義, 어머니의 꾸중으로 벼슬을 포기한 별제), 239) 신즙(申楫, 병자호란 때의 1등 공신), 240) 박철홍(朴哲洪, 교육계에 평생을 바친 교장), 241) 김계원(金繼元, 김해 김씨의 보문면 입향조), 242) 박주운(朴周雲, <역학연고> 10권을 저술한 군수), 243) 정연우(鄭然友, 육군 소장 전역 후 재경예천읍민회장), 244) 노순(盧珣, 효성이 지극한 진사), 245) 김이만(金履萬, 양산 제방을 쌓은 첨지중추부사),
246) 박중경(朴重慶, 영조가 문학에 충실하다고 인정한 도사), 247) 박제정(朴齊政, 대변을 맛보며 간병한 효자), 248) 박수약(朴守約, 임란 때 창의한 의병), 249) 권국주(權國柱, 부인이 열녀로 정려된 효자), 250) 박성옥(朴成玉, 이인좌 난 때의 의병장), 251) 윤수근(尹秀根, 전국조광협회장), 252) 권군보(權君保, 고려 말의 영해 부사), 253) 임귀지(林貴枝, 단종 선위에 벼슬을 버린 현감), 254) 박수의(朴守誼, 이괄의 난에 창의한 현감), 255) 김기현(金琦鉉, 심계원 특별징계위원장), 256) 권오행(權五行, 무오사화로 귀양간 공조 정랑), 257) 박운(朴蕓, 문학과 행실이 뛰어난 학자), 258) 김성구(金聖龜, 스스로 삼가 행동한 좌랑), 259) 박주대(朴周大, <나암수록>을 저술한 진사), 260) 김윤안(金胤安, 개포 검바우에 정착한 참봉), 261) 박수근(朴守謹, 임란 공신인 사섬시 직장), 262) 권계응(權啓應, 79세에 과거 급제한 승문원 판교), 264) 권곡(지보면 대죽리에 은거한 고려 판도시 판관), 265) 권광윤(權光潤, 손가락을 끊은 피로 아버지를 쾌유케 한 효자), 266) 권달국(權達國, 청렴 결백했던 첨추), 267) 권만추(權萬樞, 이인좌의 난 때 예천군 의병부장), 268) 권선(權善, 아들 3형제를 과거에 급제시킨 별제), 269) 권수붕(權壽鵬, 작은맛질 출신의 성균관 박사), 270) 권심언(權審言, 많은 업적을 남긴 수령), 271) 권씨(權氏, 호랑이를 감동시킨 열녀), 272) 권오륜(權五倫, 연산군의 폭정에 벼슬을 포기한 선비), 273) 권우(權祐, 임란 때 호가한 수령), 274) 권유손(權幼孫, 용문면 하금곡리에 터를 잡은 사헌부 감찰), 275) 권인하(權人夏, <이기통변> 7권을 저술한 학자), 276) 권지(용문면 상금곡리에 정착한 현감), 277) 권회(權恢, 필법이 좋은 18세기의 교육부 장관), 278) 기학신(奇學愼, 기씨 예천 입향조), 279) 김경언(金慶言, 예천에 정착한 병조 정랑), 280) 김계구(金季龜, 예천에 정착한 상의원 부정), 281) 김남갑(金南甲, 과거에 3위로 급제한 찰방), 282) 김노범(金魯範, 선비들의 존경을 받은 현감), 283) 김뉴(6년 간 시묘살이한 효자), 284) 김돈(金墩, 갑인자를 만든 15세기의 내무부 장관), 285) 김순지(金順之, 세종 때 왜구를 물리친 공신), 286) 김양근(金養根, <양양기구록>의 서문을 지은 형조 참의), 287) 김영필(金永弼, 말에 신중을 기한 강원도 도사), 288) 김유중(金有中, 산천이 좋아 눌러 산 용궁 현감), 289) 김정구(金正龜, 청렴 결백한 우통례), 290) 김정식(金廷植, <동서휘찬> 등을 저술한 학자), 291) 김종순(金從舜, 예천에 정착한 경상도 관찰사), 292) 김태중(金泰重, 군민들의 칭송을 받은 현감), 293) 김택려(金宅礪, 청렴 결백한 승문원 판교), 294) 김택로(金宅魯, 3년 간 시묘살이를 한 홍문관 교리), 295) 김화중(金華重, 문장으로 당세를 울린 현감), 296) 노숙공(盧叔珙, 미신 타파에 앞장선 현감), 297) 노정순(盧貞純, 남편을 따라 죽은 열녀), 298) 문구(文龜, 안축의 장인인 군기감 검교), 299) 박갑손(朴甲遜, 예천에 정착한 호조 참판), 300) 박기령(朴箕寧, <중용 33장도>를 저술한 학자), 301) 박세신(朴世臣, 송덕비를 남긴 현령), 302) 박안도(朴安道, 문장에 능한 현감), 303) 박지경(朴趾慶, 사도세자의 참변에 벼슬을 버린 사헌부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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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