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예천502:국궁공예...국궁의마을예천
작성자장병창 @ 2019.07.06 06:07:57

  도청신도시 예천 502 : 국궁공예...국궁의마을예천

---

 

  국궁공예(國弓工藝, 慶北 醴泉) [記事] : 단술 예(醴) 자, 샘 천(泉) 자를 쓰니 퍽 여성적이고 색향같은 기분이 드는 고장이다. 한 때 색향(色鄕)이라는 말도 들었다 하나 지금은 그렇지 않고 물맛이 단술같이 좋은 동네라 하면 맞을만큼 이 지방의 샘물이 좋다. 화살 공예가 김종국(金鍾國) 씨는, “활 만드는 데 쓰는 민어 부레풀은 좋은 물에 끓여서 녹여야 되는데, 예천 지방의 물이 가장 적당하므로 이 지방에 활이 성한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했다. 그 말도 그럴 듯 하나 과학적인 실험을 안해 봐서 모르겠고, 예천에 국궁 공예가가 7명이나 있는 것은 물보다는 오히려 애국심 내지는 애향심 때문일 것 같다. ‘우리의 이 기막힌 공예품을 꼭 계승하자‘하는 애정과 고집을 가진 사람이 이 고장에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예천 사람들의 애향심은 이미 소문나 있다. 운동 경기 같은 걸 해도 악착같이 이겨놓고 보는 예천인들이다. 중국 사람이 자장면 팔러 왔다가 한 달도 못돼서 눈물 흘리며 돌아간다는 곳이다. 소문만 듣다가 실제 가보니 그 소문이 옳았다.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향토에 대한 열의가 한결같이 대단했다. 내 것을 지키고 내 것을 빛내려는 의지는 지금의 우리 국민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것인데, 예천에 와서 그 모범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예천은 고려 중엽 패관문학(설화문학에서 패관문학으로 발전하고, 거기서 고대소설, 현대소설로 이어진다)의 효시였던 서하(西河) 임춘(林椿) 선생의 향리이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곽재우, 김덕령 등 명장을 천거했던 약포(藥圃) 정탁(鄭琢) 선생의 고향이다. 약포 선생은 정사에 공정 강직해서 당파를 초월했으며, 이순신, 김덕령 장군 등이 당파에 희생이 되어 목숨을 잃을 지경에 간곡히 상소해서 사면케 했고, 명량대첩을 이룰 기틀을 마련했다. 선생의 저서 <용사일기>는 임란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보문면(現 醴泉邑) 고평동에 선생의 유물전시관이 있고,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는데, 필자가 찾아가던 며칠 전에 도둑이 들어서 <용사일기> 등 선생의 유품을 훔쳐가 버렸었다. 선생의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참배를 했으나 못난 후대를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 한이 없었다. 아무리 돈에 눈이 뒤집히고 짐승의 심사를 가졌기로서니, 나라를 건지려고 불철주야 애쓰신 선생의 그 고귀한 유품을 도둑질할 생각을 품다니... ’돈교(錢敎)‘의 광신자들이 늘어가는 이 사회가 장차 어찌되려는지? 유교적 인생 교육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수신과 예절 교육이 아니면 이 시대의 중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예천의 근대 문화를 개척한 인물로는 현 대창중고등학교를 설립한 벽천(碧泉) 김석희(金碩熙) 선생을 꼽는다. 선생은 갑신정변 무렵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학문을 깨쳤으며, 사업에도 능력을 발휘해 재산을 모았다. 3.1운동 직후 선생은 가산을 모두 던져 대창학원을 설립했다. 지금 예천을 빛내고 있는 인물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지금까지 60년 간 예천이 정신적 지주의 구실을 해오는 대창은 벽천 선생의 아들인 김교용(金敎容) 선생이 교장으로 선친의 유업을 계승하고 있다. 민족 정기를 키우는 문화 사업에 전 재산을 던지는 인걸이 있는가 하면, 위대한 조상의 유물을 훔쳐서 돈벌이 하려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사흘 동안 예천에 머물면서 우리 민족의 예지를 찾고 이어나가는 소중한 인물들을 여러 분 만나보았다. 조상의 슬기를 찾아 밝혀내서 후대들의 귀감으로 삼으려는 일에 열심인 정양수 선생, 고대 문화의 비밀을 찾아내는 일에 몰두하는 김상문 선생, 이 두 분의 품위 있는 언어 범백과 어진 성품에는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가난과 소외 속에서도 국궁을 만들면서 우수하고 예술적인 우리 민족 공예의 맥락을 이어온 권영록(權寧錄) 선생과 그 아들 오규(五奎) 씨, 국궁의 해외 보급에 힘쓴 명궁(5단) 권영학(權寧鶴) 씨, 이 분들을 만나 활 만드는 방법과 수법 등을 물어보았고, 우리의 활 국궁이 얼마나 우수하고 예술적인가를 알게 되었다. 활 공예가가 5명 더 있으나 다 만나보지 못해 유감이었다. 화살 공예가 김종국(金鍾國) 씨를 만나 화살의 종류와 이 것이 얼마나 정밀한 솜씨로 만들어지는가를 알게 되었고, 화살의 예술적 가치를 알게 되었다. 예천동부국민학교 교사인 강원희(姜元熙) 씨는 이 지방 민속 발굴에 공헌이 많은 인물, 통명농요와 청단놀음은 이미 인정을 받아서 전국 민속경연대회에서 발표를 했다. 그는 다시 ’홍소리‘라는 ’결혼행진곡‘을 발굴했고, 예천군에만 있는 ’그네노래‘를 찾아냈다. 애향심은 주체성에서 나온다. 따라서 예천을 자주 정신의 중심이라 하고 싶다.(徐東燻 新風土記 229 韓國日報 1981.12.16)

 

  국궁논문집(國弓論文集) | 조회 69 | 2012.01.20. 13:46/ 지은이 온깍지궁사회/ 발행처 온깍지궁사회/ 발행년도 2001~/ 국제연속간행물번호 ISSN 1975-0331/ 크기 B5/ 이 책은 2001년 결성된 온깍지궁사회에서 국궁의 이론화를 기치로 내걸고 그 첫 작업의 일환으로 내놓은 결과이다. 우리나라에서 국궁 전문 논문집으로는 처음 나온 책이다. 2001년에 제1집을 시작으로 매년 한 권씩 나온다./ 제1집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논문집을 내며, 제1부 1.조선시대 편전과 통아(유세현), 2.육군사관학교의 국궁 활동 현황(김기훈), 3.디지털 시대의 국궁 운용(이건호), 4.목궁 백일장 연구(박동일), 5.발디딤과 몸통의 방향 연구(조영석), 6.비정비팔과 전통사법(최석규), 7.활을 보는 몇 가지 관점(정진명)/ 제2부 8. 온깍지궁사회의 틀과 뜻(이석희)/ 제3부 9.선친, 성문영 공(성낙인), 10.전라도 지역의 해방 전 활쏘기 풍속(윤준혁)/ 제2집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논문집 제2집을 내며/ 제1부 덕유정의 사계 좌목 고찰(이건호), 덕유정의 연중행사 고찰(한영국), 조선시대 향사당 연구(김신택), 목궁 백일장 계승 방안(박동일), 공군 내 국궁 활성화 방안(김용욱), 장호공업고등학교의 국궁부 활동(함영수), 사풍에 대한 고찰(정진명), 예천 활 제작 과정(권영구), 우리 활 구조와 형태의 이해(조영석), 우리 활 줌과 줌 쥐는 법(조영석), 자연류 궁체 갖추기(이병국), 들어 당겨 짊어진 궁체 연구(최석규), 우리 활의 원리 고찰(장창민)/ 제2부 전남 지역의 해방 전 활쏘기 풍속(이종수), 석호정중수기, 봉덕정기, 윤준혁 대담 정오표/ 제3집(2003)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책머리에(윤준혁), 정간에 대한 설문 결과 고찰(이건호), 청주 지역의 정간 고찰(정진명), 덕유정의 편사 방법(한영국), 활과 단전호흡(박중보), 활쏘기의 마음가짐 고찰(김용준), 올바른 활쏘기 문화 정립을 위한 철학적 기초(정덕형), 백자철화수뉴문병에 담겨있는 우리 활의 곡선미(이용희), 소리화살과 그 원리(이자윤), 활과 태극(장창민), 오늬 먹이기와 깍지손 쥐는 법(조영석)/ 국궁사를 찾아서: 육일정과 남극재의 사계 좌목, 반구정기, 애기살복원방안, 충남지역의 해방 전 활쏘기 풍속, 온깍지궁사회 규약/ 제4집(2005)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궁의 3대 장애 비판(정진명), -호남칠정의 제례 고찰(한영국), -군산 진남정의 어제와 오늘(윤백일), -국궁문화 계승을 위한 시지 제작(이자윤), -단전호흡에 대한 일반적 이해(박중보), -노자와 활Ⅰ (정진명), -활과 해부학(최병영), -중심점 형성과 이동(조영석), -국제 민속 활 축제 참가기(성순경), -전통의 여운, 마사법(정진명), -궁술종합목록(이건호), -개성 지역의 해방 전 활쏘기 풍속, -온깍지궁사회 규약, 회원 주소록/

 

  제5집(2006)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머리말/ 제1부 관덕의 원형을 찾아서_김기훈, 정간의 허상과 실체_이태호, 호남칠정궁술경기회와 가입 정에 관한 고찰_한영국, 발시 과정에서 줌손의 이동과 깍지손의 이동_조영석, <조선의 궁술> 사법 토론_이자윤, 심담십사요의 재해석 1_이태호, 활과 태껸_정진명/ 제2부 기사법을 위한 몇 가지 단상_진경표, 초기 활의 설계 방식과 제작 방법_박현우, 충남지역의 해방 전 활쏘기 풍속 2_백남진/ 제3부 온깍지궁사회 규약/ 제6집(2007)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부 -조선궁술연구회 창립 연도 고찰_이건호, -국궁사 시대 구분론_정진명, -태극기와 정간_김집, -죽시의 변천에 관한 소고_유세현, -각궁삼삼이의 구조와 원리 고찰_장창민, -세계 민족궁 축전 및 세미나의 성과와 문제점_김기훈, -비정비팔 흉허복실의 이해와 응용_조영석, -고대 활의 설계방식과 제작방법_박현우/ 제2부 -정읍 필야정 사계 좌목 발굴기_한영국, -필야정의 사계안 좌목 선생안 해의_윤백일, -인천지역의 편사놀이_정진명, -독일 하늘에 쏘아올린 한국 활_박현우, -관덕정서, -고양 지역의 해방 전 활쏘기 풍속_이정천 대담/ 제7집(2009)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세현 / 정사론 소고, -이건호 / 근대 신문에 나타난 활쏘기의 흐름, -이자윤 / 『조선의 궁술』과 현대 활쏘기, -성낙인 / 황학정과 서울편사, -류근원 / 전통 사법의 재조명, -정진명 / 전통 사법의 경락 운용 원리, -김상일 / 호흡과 발디딤 방향, 지사와의 상관관계, -이건호 / 한일 문화(활쏘기-궁도)교류기/ 부록 -온깍지궁사회 7년, -온깍지궁사회 규약, -사계원 주소록(daum 2014)

 

  국궁의 마을 예천(國弓의 마을 醴泉) [記事] : 아침 햇살을 등 뒤에 받으며 남산 무학정 활터로 행수(行首) 어른이 오른다. 간 밤에 해궁(解弓)을 마친 새 활의 시사(試射)를 할 참이다. 잿비 두루마기를 남색 전대(箭袋)로 질끈 동이고, 탕건과 갓을 단아하게 갖추어 쓴 채 흰 수염을 날리며 사석(射席)에 버티어 선 궁체(弓體)가 멋지다. 안팎이 뒤바뀌도록 얹힌 활체의 유연한 곡선에 예스런 멋이 배어 있고, 한 것 당겨진 시위를 떠난 화살은 창공을 가르며 잔솔 밭 너머에 새워진 과녁을 뚫는다. 이제 해궁이 제대로 되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갓 몸푼 산모가 새 생명을 어르 듯 행수 어른은 정이 담뿍 담긴 손길로 새 활의 몸체를 쓸어내린다. 이 이가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된 국궁의 종가 권영록(權寧錄, 68)이다. [醴泉 땅에 名弓 난다] : 경상북도 예천 땅은 한 때 천석꾼 만석꾼이 많아서 ‘반 서울’이라 불렀고, ‘제2의 개성’으로 통했다. 예천을 이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이곳 사람들의 ‘안 지려는’ 기질이 한몫을 해왔다. 설사 예천 땅 안에서는 이름을 못냈더라도 서울에 가서는 기어코 이름 석 자를 드날린 인물도 여럿 있다. 골목마다 하나 꼴은 있는 슈퍼마켓이나 연쇄점, 간간이 눈에 띄는 수입 상품점, 한 집 건너 늘어선 음식점, 다방, 여관 따위의 접객업소는 대부분이 예천으로 물건 사러오는 객지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예천이 얼마나 물산이 풍부한 고장인가를 알 수 있다. 예천이 활의 고장으로 유명한 것도 이같이 물산이 풍부하여 일찍이 살림이 안정되니 자연 인심이 좋은데다가 풍류에 쉽게 접할 수 있는 ‘멋을 아는’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자고로 예천 땅에서는 있고없고 간에 일단 사내가 활을 쏜다 하면 수신제가(修身齊家)한 연후에라야 했으니 그렇지 않으면 일개 건달로 취급해 버렸다. 옛날에 궁시 제조창이 있던, 전통적으로 활과 친근한 고장인 탓으로 대대로 명궁장(名弓匠)과 명궁수(名弓手)를 배출해 왔는데, 비록 양궁 부분이긴 하지만 제30회 세계궁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쓴 예천여고의 김진호 선수도 그 하나이다. 태조 이성계가 소시 적에 퉁두란과 얼려 웬 처녀가 이고 가던 물동이를 쏘아 맞쳐 구멍을 내곤 다시 화살을 날려 그 구멍을 틀어막았다던 ‘살에 살 맞는다’는 솜씨도 90m 밖의 사과를 꿰뚫는 김진호의 경지에는 아마 못 미치리라. 한국 제일의 명궁수 김진호는 예천의 자랑거리로 오랫동안 남겨질 것이다. 예천읍 남본동에는 또 남다른 자랑거리가 있다. 이 동네에서는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새끼로 고은 금줄에 빨간 고추 대신 활을 걸어놓는 것이다. 그 사내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활을 쥐어주고, 천자문을 깨칠 때 첫 시위를 당겨준다. 이렇듯 예천에 궁도가 번성한 것은 대대로 명궁을 만들며 후세에 전하는 조궁가(造宮家)가 있었기 때문이다.

 

  [활에 魂을 불어넣는 家門] : 남본동 245번지에 살고 있는 당대 제일의 궁장 권영록의 가업은 11대 조상인 권계황(權繼黃)이 활의 본고장 개성에서 기술을 익혀 지금의 예천읍 왕신리에서 조궁업을 시작한 후로 12대 400여 년을 물려 내려온다. 그는 16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활일을 전수받아 50여 년 동안 10만여 장의 활을 만들어 옴으로써 이 나라 국궁의 명맥을 잇고 있다. 나직하고 어두컴컴한 세 칸짜리 한옥에 틀어박혀 장남 권오규(權五奎, 46)만을 옆에 두고 어느 대 조상이 그의 자리에 앉더라도 그렇게 했을 방법과 순서와 솜씨로써 활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모르긴 해도 아마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을 것이야. 조상님네들이 활일을 해오신 것이 내 대에 와서 틀려지거나 거짓된 데 있다면 우선 조상께 욕이 될 텐데... 내가 손을 댄 활이 잘못 만들어져서 활 구실을 못하게 되는 일이 있으면 면목이 없어. 대물림으로 배운 활일을 내가 소홀히 하거가 잘못하면 바로 사람 구실 못하는 것이야.‘ 정심정념(正心正念)만이 13대째 내려가는 가문 고유의 비법이요 궁장으로서의 비결임을 밝히는 권영록은 혼을 불어넣는 마음으로 활을 하나하나 만들어간다. 곁을 지키는 장남 권오규도 벌써 26년째 아버지의 솜씨를 익히고 있다. 20살 때부터 문하생으로 입문하여 이제는 명실공히 전수자로서 인정을 얻고 난 터다. ”어려서 처음 아버지 일을 거들자니 손 서투른 것이 당연한 데도 용서란 게 없었어요. 그때마다 무릎이며 종아리며 머리통에 불담좋게 피워 물고 계시던 아버지의 장죽이 날아와도 꾹 참고 10년을 버티다 보니, 이제 활만큼은 내 고집대로 만들고 있지요.“ 예로부터 화살이 천보를 날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활이라 했다. 이 엄청난 탄력을 활에 감출 수 있는 것은 바로 뿔과 대나무와 소힘줄의 삼합(三合)에 달려있다. 여기에 민어 부레풀이라든가 명주실, 각종 연장 같은 최상의 재료와 도구들을 찾아내고 다루던 조상들의 슬기와 솜씨가 있었기에 우리의 활은 중국의 창과 일본의 칼과 함께 ’하늘 아래의 삼보(三寶)‘에 들 수 있었다. [磨杵成針 格인 활 일] : 활이 완성되기까지에는 넉 달에서 다섯 달이 실하게 걸린다. 그래서 활 일을 하는데 꼭 지켜야 할 금기가 있다. ‘바람이 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동안에 술, 노름, 오입 따위로 자리를 뜨면 결코 활이 완성되지 않는다. 모든 과정이 일일이 손수 지키고 앉아 궁둥이에 못이 박히도록 해내야 한다. 활 만드는 과정이나 재료 따위를 건사하거나 다뤄가는 것을 보면 마저성침(磨杵成針), 즉 절굿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작업임을 알 수 있다. 우선 활을 만드는 데 쓰이는 연장은 톱, 망치, 밧줄, 대빗, 도가니, 대칼이 전부이다. 그러나 명궁의 대를 잇는 데는 손끝의 촉감과 오랜 경험에서 쌓여진 눈대중과 세심한 주의력, 거기에다 조상께서 물려준 황소힘이 있어야 한다. 활을 만드는 기본 재료는 담양 왕대, 지리산 산뽕나무, 태백산 굴참나무, 황소등힘줄, 물소뿔, 민어 부레풀, 화피(樺皮, 벚나무 껍질)이다. 이런 지료는 대개 여름, 겨울에 장만하고, 봄, 가을에 활 일을 한다. 왕대를 두 자 두 치 크기로 잘라 불에 구워 진을 뺀 뒤에 물소뿔을 켜내어 대나무에 붙이고 명주실같이 뽑아낸 소등힘줄을 민어 부테풀로 바른다. 황소 한 마리에 하나 뿐인 등힘줄은 망치로 두들겨 부풀려서 고기와 기름을 빼고 손톱으로 한 가닥씩 짼 뒤 대빗으로 계속해서 빗으면 모시날처럼 곱고 가늘게 갈라진다.

 

  활 한 장에 이 소등힘줄 두 개가 들어간다. 황소가 쌀 두 가마를 짊어지는 것이 등힘줄 때문이니까 활 한 장에 황소 두 마리의 힘이 들어가는 셈이다. 손잡이인 활 복판의 ‘줌통’은 참나무를 깎아 물에 삶은 뒤 다시 불에 구워 ‘완구비’로 붙이고 활의 양 끝에 산뽕나무를 이어 ‘버들잎’을 만든다. 등힘줄은 ‘초힘’, ‘재힘', '첨력‘이라 하여 세 번 붙인 뒤, 끝으로 활 안쪽 전부에 긴 힘줄을 붙이는데, 이를 ’매임‘이라 한다. 활이 다 된 다음에는 화피(樺皮)를 입혀 단장하고 버들잎에 ’고자단장‘으로 완자무늬에 홍, 황, 녹색의 전을 둘러 색을 갖추면 차라리 예술품이라 할만한 활이 된다. 활 일을 마치기까지 궁장의 손길이 무려 370여 회가 가야 한다. 이렇듯 온갖 정성으로 활이 만들어지면 산모가 해산을 하듯이 활의 몸을 풀어주는 해궁을 하게 된다. 여태껏 둥글게 오그라져 있던 활이 해궁을 통해 안팎이 뒤바뀌게 되고 나서 양 끝에 시위를 얹어 걸으면 그야말로 활의 모양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때 쌀 반 가마를 드는 힘이 들어가는데 이보다 더 어려운 궁장의 혼과 정신을 집중하여 해궁을 잘함으로써 활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판가름이 난다는 데에 있다. 이 과정을 과연 기계로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국궁은 만들기도 배우기도 어렵다. [활은 하늘이, 祖上이 내려주시는 것] : 국궁에 드는 재료를 장만하기란 여간 일이 아니다. 우선 물소뿔을 대만이나 태국에서 수입을 해야 하는데, 1m가 조금 넘는 뿔 한 개에 3만 원쯤 든다. 뿔의 밖으로 휜 부분인 양각에서 뿔 두 쪽을 켜내어 활 한 장 만드는데 쓰고, 나머지 부분은 도장 만드는 사람에게 처분한다. 황소등힘줄 한 등을 뭉치면 고기로 쳐서 반 근이나 한 근쯤 되는데, 활 4-500장 몫을 마련하려면 소 1천 마리를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나마 여러 궁장들이 서로 경쟁해서 사니까 1년쯤 전에 선금을 맡겨놓고 정작 살 때는 아쉰 소리해 가며 웃돈을 얹어야 제때에 살 수 있는데, 한 등에 15,000원쯤 치인다. 한 10년 전만 해도 고기를 붙여줘야 가까스로 소힘줄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민어 부레풀 또한 구하기 힘들다. 더구나 요새는 민어를 통째로 일본으로 수출하기 때문에 부레만 따로 구하기가 더욱 어렵다. 한 마리에 15,000원씩이나 하는 크기의 민어를 15마리쯤 잡으면 풀 한 근이 나오는데, 이 값으로 7천 원에서 1만 원이 먹히고 이것으로 활 석 장을 붙일 수 있다. 결국 재료값이 그렁저렁 10만 원 가량 드는 셈이다. 보통 활 한 장이 20-30만 원 선에서 기래되고, 절품이라야 50만 원쯤, 하품은 15만 원에도 팔아야 한다. 대충 보아 너댓달 동안에 드는 품이나 이자를 생각지 않으면 활 한 장 팔아 5-15만 원을 챙길 수 있으니 장사로 치면 참 박한 장사이다. “활은 하늘이, 조상이 내려주시는 것이야. 내 아무리 정성이 지극해도 활 만드는 동안 일기가 고르지 못하면 활을 만들 수가 없어. 그런 걸 거역해 가면서 마구 만들어 팔 수 없지 않은가.” 197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47호로 지정되고 나서 생계 보조비로 20만 원, 강사비로 8만 원을 다달이 받고있는 권영록은 ‘바빠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자’는 은근과 끈기로 오늘도 활 재료를 찾아 산야를 누빈다(韓國人 1983年 11月號 글 안영빈)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