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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533:국사봉...
작성자장병창 @ 2019.07.31 06:04:56

  도청신도시 예천 533 : 국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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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봉(國師峰), 국수봉(國秀峰), 국시봉(國始峰) [山] : 용문면 두천리(杜川里) 뒤낫과 유천면 마천리(麻川里)와 사곡리(沙谷里), 문경시 동로면 인곡리(聞慶市東魯面仁谷里)와의 경계 지점에 있는 산(732m)으로, 소백산(小白山) 줄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렸다. 이곳에 명당 묘터가 있으나, 묘를 쓰면 비가 오지 않는다 하여 한해 때 용문 면민(龍門面民)들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정상(頂上)에는 기우제단(祈雨祭壇)과 헬리곱터 비행장(飛行場)이 있고, 사면팔방(四面八方)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신라 경문왕 때 국사 두운 선사(國師杜雲禪師)가 이 산에서 태어났다. [傳說] : 1) 산불이 나서 이 산의 정상에 불이 붙게 되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 불을 끈다고 한다. 2) 조선 때 이 산에 구슬(玉)이 굴러다니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고 한다. 3) 옛날 유천(柳川)의 어떤 마을에 70세가 넘어도 대를 이을 자식이 없어 걱정하던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점장이가 일깨워 주기를, "이 산에 집을 지으면 소원 성취하리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노인은 점장이의 지시대로 집을 지었더니, 정말 1년 후에는 옥동자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이 채 가시지도 않은 3년 후에 그 옥동자는 원인 모르게 죽고 말았다. 노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국가에서는 이 집에 왕조실록을 보관하게 되었다. 이것은 1828년(순조 28)의 일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이 산 이름을 국사봉(國史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집터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4) 옛날 이 산에 국수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에 방울이 달려서 손님들이 그 곳을 지나가면 방울이 달랑달랑 흔들렸다. 그리고 음력 보름날 동제(洞祭)를 지내면 방울이 춤을 추었다. 이 소문을 듣고 어느 선비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방울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그 흔들리는 이유가 국수나무 때문이라고 하여 국수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그 나무는 없고, 빈터만 남아있다. 그 나무가 있을 때는 아들 없는 사람은 그곳에 가서 백일기도를 하면 아들을 얻는다. 지금은 그곳에 묘를 쓰면 그 자손은 잘 되지만, 이 국사봉(國師峰) 아래의 마을은 망한다고 하여 묘를 그곳에 쓰지 않는다. 5) 옛날 해수(海水)가 끓어올라 물천지가 되었을 때 갈미봉에는 갈대높이 만치 남고, 국사봉에는 국수대만큼 남아 해수가 끓어오를 줄 예측한 도인(道人)이 피신한 후부터 국수봉이라고 하였다. 6) 이 산의 정상에 국수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이 국수나무에는 남자만이 그 열매를 따야만 하는데, 어느 날 어떤 욕심장이 여자가 올라가서 국수를 따서 먹으니, 그 다음해부터 국수는 열리지 않고 이름만이 국사봉으로 남았다고 한다. 7) 옛날 국시나무에 빌어 아들을 얻은 어떤 사람이 그 은혜로 국시나무에 집을 지어 보호하였는데, 그 아들이 갑자기 죽자 화가 나서 그 집을 불질렀다. 그리고 그 국시나무는 다른 곳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8) 이 산의 정상에 묘를 쓰면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가뭄이 들면 동민들이 합세하여 묘를 찾는다. 9) 이 국사봉(國師峰) 마투턱 소나무에 국시라는 큰 열매가 달려서 사람들의 소원을 풀어 주었으므로 그 앞에 산신당(山神堂)을 짓고 국시 열매를 모셨는데, 그 사당(祠堂)지기가 죽자, 국시도 울면서 충청도 월악(月岳)으로 떠났다고 한다. 10) 천지개벽 때 산정이 국수꼬리만큼만 남고 물에 잠겼다 하여 국수봉이라고 하던 것이 국사봉이 되었다. 옛날 어느 스님이 유천면 죽안리(竹岸里) 쟁피마을을 거쳐 국사봉에 이르러 지팡이를 꽂아두었는데, 이 지팡이가 싹이 트고,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들이 이 나무를 보고 이르기를, "이 나무는 국시나무라 절대로 베어내면 안 된다."라고 하여, 그 나무에 손을 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는데, 1960년대에 국사봉 꼭대기에 비행기장(헬리콥터用)을 닦느라고 지금은 사라졌다. 11) 조선 때 이 산에 석굴(石窟)을 파놓고서 국사 책(國史冊)을 보관하였다고 하여 국사봉(國史峰)이라고 한다. 석굴은 순 자연석으로 이루어졌고, 굴의 높이가 약 1.5m이고, 조금 들어가면 약 반 평 남짓한 넓이로 평평한 방이 있고, 또 조금 들어가면 약 한 길 정도의 층이 있다. 이 굴이 12층으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이 굴에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이 물을 단번에 3공기 이상 먹으면 재주가 있어진다고 한다.(韓國地名要覽 建設部國立地理院 1983 552쪽, 醴泉郡邑誌 1770 1780, 醴泉郡誌 1939)

 

   [慶北홈페이지] : 유천면 사곡리ㆍ용문면ㆍ문경시 동로면 마광리에 걸쳐있는 산(해발 727.6m)으로, 1) 고려 때 국사인 두운(杜雲) 대사가 이 산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국사봉이라고 한다. 산의 남쪽에는 진달래로 뒤덮힌 꽃재(花山)가 있고, 서쪽에는 높은 위치에 자리한 담수량 2,822만 톤의 경천댐(慶泉댐) 수면에 국사봉을 조영하고 있다(인터넷 한미르 2001). 2) 구곡 이중륙(九曲李重륙, 1728- 1804)이 시로써 이르기를, "국수봉(國秀峰)에 올라서 짓다// 구름을 헤치고 정상에 올라가니/ 머리 위 보이는 건 둥근 하늘뿐이로다/ 뉘가 이르기를 이 산 밖에/ 더 높은 태악이 있다 할까/ 북쪽으로 큰 사막이 이엇고 / 남으로 각국이 통하였구나/ 이러므로 공부자는 태산에 올라/ 노나라가 적다 하였던가//"라고 하였다(國譯 九曲集 1999). 3) [傳說] : 유천면 사곡리 뒷산 국시봉(國始峰) 마루턱 소나무에 열리던 국시라는 열매는 사람의 물음에 말대답을 하며 곧잘 인간 소원을 풀어 주었으므로 동네에서는 영신(靈神)으로 믿어 사당을 짓고, 국시를 모셨다 한다. 새해 정월 초닷세 날 동네에서 가장 정결한 가정을 택하여 그 집 대추를 모셔놓고, 국시 형태에다 오색 현란한 종이와 새털 등으로 장식한다. 그리고는 제관이 국시에게 소리로 문답을 한다. "국시 서낭님! 새해에는 풍년이 들겠습니까?"라고 물으면, 풍년이면, "윙- 달달-"하는 소리로, 풍년이 들지 않으면 아무리 절을 하고 묻고 달래도 소리를 내지 아니 하였다 하며, 동네 연중 길흉을 묻기도 하고, 개개인 가정 길흉 등을 묻는 토정 선생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동네 주민들이 극진히 모시고 믿는 가운데 최동락이란 사람이 아들이 없어 국시서낭께 백일기도하여 아들을 얻어 이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새로이 서낭집을 짓고, 국시를 집안으로 모셨는데 비운이 들어 아들이 죽게 되자, 믿어도 소용이 없다 하여 국시를 천대하자, 국시는 윙하고 슬피 울며 충청도 월악산으로 날아갔다고 전해오고 있다.(최학기, 慶北 홈페이지 2000)

 

  국사봉(國始에 얽힌 傳說 - 柳川面 沙谷里) [記事] : 사곡 뒷산 국사봉 마루턱 소나무에 `국시태'라는 열매가 달렸는데 이상하게도 이 열매는 사람의 물음에 말 대답을 하여 인간 소원을 풀어주어 동네에서는 영신으로 믿어 사당을 짓고 국시로 모셨다 한다. 매년 정월 초닷세 날, 동네에서 가장 정결한 가정을 택하여 모셔놓고 국시 형체에다 오색 현란한 종이와 새털 등으로 장식시켜 국시에게 소리로 문답을 하였다.󰡒국시 서낭님! 새해에는 풍년이 들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풍년이 들면, `윙-달달-'하는 소리가 나고, 풍년이 들지 않으면 아무리 절을 하고 묻고 달래도 소리를 내지 아니 하였다 하여 동네에서는 길흉화복을 묻기도 하고 개개인의 가정에 길운 등을 모두 묻는 토정 선생 역할을 하였다 한다. 언제인가 마을의 최동락이란 사람이 아들이 없어 국시서낭께 백일기도하여 아들을 얻어 이 기쁜 마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새로이 서낭집을 짓고 국시를 집안으로 모셨는데 비운이 들어 아들이 죽게 되자 믿어도 소용이 없다하여 국시를 천대하자 국시는 윙하고 슬피 울며 충청도 월악산으로 날아갔다고 전해오고 있다. 지금은 그 터를 알 수 없다.(醴泉新聞 2005-01-15)

 

  국사봉 [傳說] : 용문면 두천리 뒤낫마을 뒷산(732m)인데, 용문면 두천리와 유천면 마천리, 사곡리와 문경시 동로면 인곡리와 경계 지점이다. 국가에서 봉화대를 세웠던 곳이라 하여 국사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 명당 묘터가 있으나 묘를 쓰면 비가 오지 않는다 하여 가뭄 때에 용문 면민들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며, 한해가 계속되면 묘를 파러 가기도 한다고 한다. 또 산불이 나서 국사봉 정상에 불이 붙게 되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 불을 끈다는 전설도 있다. 고증 : 예천군향토문화연구원 장병창(경상북도 홈페이지 2000.7.13, http://etmdb.provin.kyongbuk.kr)

 

  국사봉(醴泉의 名山 : 큰 巖蜂없이 緩慢한 稜線으로 初步者도 登攀 쉬운 國師峰) [記事] : 백두대간이 죽령을 거쳐 저수재를 지나면서 남쪽으로 긴 가지를 늘어뜨리 듯 뻗으며 예천군과 문경시 경계를 이룬 산이 매봉과 국사봉(726.6m)이다. 큰 암봉 없이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있는 매봉과 국사봉은 그 높이에 걸맞지 않게 비교적 등산하기 쉬운 산이다. 고려시대의 국사였던 두운 대사가 이 산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국사봉은 1989년 농업용수를 위해 만든 경천호를 에워싸고 있어 산을 오르는 동안 경천호수와 주위의 산들을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예천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2007년 12월 22일 예천의 명산 탐방 3번째 코스인 국사봉 탐방은 흑응산악회 황해국 등반대장과 유천면에 거주하고 있는 양재웅, 최대현 씨가 함께 했다. 예천읍에서 국도 34번 도로를 이용 예천농공단지에서 우측 방향 2차선 옛국도를 따라 20여 분(14km) 달려 유천면 마천리에 도착했다. 국사봉에 오르려면 문경시 동로면 마광리에서 시작하는 코스와 예천군 유천면 사곡리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있다. 유천면 사곡리 기점의 산행은 3시간이 안되는 비교적 짧은 코스로 조망도 없는 단순한 산행이 될 수 있기에 예천의 명산 개발을 위해 새로운 코스를 선택하기로 했다. 마천리 버스승강장에서 우측 방향으로 50여 미터 가면 마을회관이 나온다. 이곳에는 안내판이 없어 산행 기점을 물어야 한다. 산행은 좌측 방향 묘 5기가 있는 지점에서 시작해 임도를 따라 5분여 오르다 우측 오솔길로 접어들면 묘 3기가 있는 참나무 숲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곳은 등산로가 정비되지 않아 초행자의 경우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아 산악회 리본을 주요 갈림길 지점에 표시했다. 아카시아 잡목으로 우거진 산길은 땔감과 송이 채취를 하기 위해 산을 오르면서 생겨난 오솔길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부터 오르막 경사로 이어지는데 아카시아 군락지가 끝나자 소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소나무 사이로 나있는 토끼길은 엎드려서 가야 할 정도로 낮고 좁아 정비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마천리에서 시작되는 국사봉 등산로는 송이 채취자들이 곳곳에 길을 만들어 놓아 자칫 길을 잃기 쉽지만 능선길을 이용하면 헤매지 않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30여 분이 지나 성재에 도착했다. 소나무숲 사이로 돌무더기가 곳곳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이곳이 성터였으며 우물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을 엿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성재에서부터는 능선을 따라 비교적 길이 잘 나있으며 10여분 오르자 한전 송전철탑이 나왔다. 이제 등산로는 송이가 많이 채취되는 8부 능선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접어들게 된다. 이 지점에 이르자 두릅나무와 진달래 꽃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산행이 이곳에서 본격적인 등산 묘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낙엽더미를 헤치며 나목(裸木) 사이로 펼쳐지는 주위 산세를 조망할 수 있어 지루하지가 않았다. 산행 시작 1시간 10여분이 지나자 쌍바위 지점에 도착했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행은 쌍바위라 이름 붙여 보았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등산로 개발과 관련 토의를 했다. 일행 중 국사봉 마을에서 거주하고 있는 양재웅 씨는 사곡리 방향은 코스가 짧아 마천리 방향에서 시작하면 좋은데 등산로 개척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기에 뜻있는 분들의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산행 도중에 산돼지 무리가 파헤쳐 놓은 흔적을 곳곳에서 보았으며 무성한 잡목 사이를 헤쳐 나오느라 등산복에는 각종 풀씨들이 달라붙었다. 9시경에 시작된 산행이 10시 15분경이 되자 헬기장에 도착했다. 용문면 두천리에서 시작되는 등산로가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헬기장에 주위는 잡목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쌍둥이 연못 운암지 저수지와 하늘을 받치고 있는 천주봉을 조망할 수 있다. 헬기장에서 5분여 휴식을 취한 후 왼쪽 방향 내리막 능선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30여 미터 지나자 등산로는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들면서 암릉 지대가 나타났다. 능선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등 뒤로 흘러내리는 고단한 땀방울을 씻어 주는 가운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길을 걷는 것은 고독했다. 10시 50분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40여 분만에 국사봉 정상 헬기장에 도착했다. 국사봉 정상과 관련 예천군과 문경시 사이에 각기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문경의 산으로 알려져 있는 국사봉에 대한 예천의 명산 알리기에 우리는 좀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국사봉 정상은 봉우리였으나 정상부를 깍아 군사시설인 헬기장을 만들었으며 200여 평의 넓은 면적으로 유천면 국사봉산악회에서 주최하는 해맞이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곳에선 천주봉, 학가산, 소백산, 용문상부댐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정상에서 왼쪽 능선을 따라 가면 문경시 동로면 마광리 마을에서 시작된 등산로와 만나게 되는데 문경코스 역시 지속적인 관리를 하지 않아 잡목이 우거져 있다. 국사봉 정상 표지석은 1999. 7. 11 예천흑응산악회에서 설치했으나 국사봉산악회에서 해맞이행사를 위해 별도로 표지석을 설치했다. 11시 40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유천면 사곡리 방향으로 하산을 했다. 하산길은 많은 사람들이 다녀 길이 잘 나있었다. 하산길은 울창한 송림숲에 가려져 경관을 조망할 수 없어 답답하고 지루했다. 12시 10분 죽안지가 보였다. 죽안지는 저수량 986천 톤의 농업용 저수지로 조성되었으나 경천댐 물이 들어오고부터 낚시터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12시 30분 국사봉 산행의 종점인 사곡리 마을 승강장에 도착했다. 3시간 30여 분(점심시간 포함)이 소요된 국사봉 탐방은 관내 명산 개발 차원에서 실시 됐지만 새로운 코스를 개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일반 산행의 경우 유천면 사곡리에서 출발 사곡리로 되돌아오는 코스를 이용하는데 이 구간은 조망이 없는 단조로운 코스로 순수산행은 2시간이 되지 않기에 등산객들에게 큰 매력을 주지 못한다. 국사봉을 예천의 명산으로 알리고자 한다면 새로운 등산로 개발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유천면 마천리에서 국사봉 정상까지 등산로 개발과 이정표 설치를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용문면 두천리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있는데 이 구간은 낙엽송 조림지대로 삼림이 우거져 사람의 발길을 허용치 않고 있지만 풍문에 의하면 동굴이 있다고 한다. 또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쌍둥이 연못 운암지와 경천댐, 천주봉 등 조망이 좋고 산행시간도 4시간여로 적당하다고 본다. 탐방 결과 국사봉의 가장 이상적인 코스 개발은 사곡리에서 출발 정상 도착 능선을 따라 용문면 두천리로 하산하는 것이다. 이는 정상까지 비교적 쉽게 산을 올라 하산은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내리막 능선길을 따라 펼쳐지는 조망은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산 후 용문사, 초간정, 금당실 전통체험마을, 예천온천과 연계를 할 수 있다. 문경의 산으로 알려져 있는 국사봉은 엄연한 예천의 산이기에 홍보와 함께 등산로 개발과 관련 뜻있는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산행 안내> : 제1코스 : 유천면 사곡리→국사봉 정상(헬기장)→유천면 사곡리(2시간)/ 제2코스 : 유천면 사곡리→국사봉 정상→능선→헬기장→성재→유천면 마천리(3시간)/ 제3코스 : 유천면 사곡리→국사봉 정상→능선→헬기장→용문면 두천리(4시간) 미개발/ 제4코스 : 동로면 마광리→꽃재마을→작은꽃재→큰꽃재→국사봉→노송지대→기우단→경천댐(4시간 30분)/ [경북 예천―국사봉] 여행메모 : 중앙고속도로 예천IC에서 928번 지방도를 타고 예천읍 소재지까지 온다. 점촌방면 34번 국도를 이용 유천면 소재지를 경유 사곡리까지 간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ㆍ함창 IC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유천면 공군부대를 경유 유천중학교를 지나 사곡리까지 간다. 주변 둘러볼 곳으로 개포 가오실지 휴게공원,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가 있다. 가오실지 공원은 개포면 가곡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못 안에 또 하나의 섬에 수령 100년이 넘는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휴게쉼터 공원으로 국도34호선 옆에 있어 지나는 길에 들렸다 쉬어가면 좋다. 주요 먹거리로는 예천 읍내에 위치한 예천한우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예천참우촌, 명품한우구이식당과 청포묵집, 육회전문 백수식당, 송포정통복어가 있다. 예천군 관내 주요 관광지로는 천년고찰 소백산 용문사, 용문 금당실 전통체험마을, 예천곤충생태체험관, 신비의 도솔촌, 효공원(도시복 효자 생가), 예천천문우주과학공원, 세금 내는 나무 석송령 등이 있다.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예천온천은 지하 806m에서 솟아나는 중탄산나트륨 알칼리성 온천수로 여성 피부 미용과 피로 회복, 성인병, 부인병, 노화 방지에 좋다. 입욕료는 4,500원(단체 4,000원)이다. 여행 문의 : 예천군 문화관광과. <글 邑事務所 장광현>(醴泉인터넷뉴스 2008-01-07)

 

  국사봉 : 문경의 문화재대관 | 간행년:1997 저자:문경문화원 발행처:문경문화원 / 5. 국사봉 기우단(國師峯 祈雨壇)/ ...동로면은 조선조 때 예천군에 속했고, 이 기우단은 예천군수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醴泉邑誌: 國師峯 郡北三.../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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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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