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예천541:국소화염...국악협회예천지부...
작성자장병창 @ 2019.08.07 06:11:06

  도청신도시 예천 541 : 국소화염...국악협회 예천지부...

---

 

  국소화염특성을 고려한 예혼합화염의 소염특성에 관한 수치해석(局所火焰特性을 考慮한 예혼합 火焰의 소염 特性에 關한 數値解析)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정석호(1954- , 서울大 敎授) 등(정대헌)의 논문으로, 대한기계학회에서 1997년에 발행한 책 125-131쪽(7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 요약] : The extinction of premixed flames under the influence of stretch is studied numerically. A wide range of fuel (hydrogen, ethylene, acetylene, methane, propane and methanol) and air mixtures are established in an opposed jet and their flame properties such as flame speed, flame thickness, thermal diffusivity, and stretch rate at extinction are computed. Computations are made using several chemical kinetic mechanism (Smooke, Kee et al. and Peters). The major result is that, in contrast to the various previous claims of extinction Karlovitz number varying over three orders of magnitude, it is found to be constant around two for all of the mixtures tested. That is, premixed flames are extinguished when the physical flow time decreases (due to increased stretch rate) to the point where it approximately equals the chemical reaction time. Here the relevant chemical reaction time is not the one computed using the one-dimensional flame properties as originally suggested in the formulation of Karlovitz number, but rather it is the one obtained using the stretched flame properties which fully reflect the effect of straining on the flame structure.(daum 2008)

  국소화염특성을 고려한 예혼합화염의 소염특성에 관한 수치해석(局所火焰特性을 考慮한 예혼합火焰의 소염特性에 關한 數値解析 =Numerical Study on Extinction of Premixed Flames Using Local Flame Properties)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정석호(1954- , 서울大 敎授) 등(정대헌, P. Cho)의 논문으로, 대한기계학회에서 1997년 1월에 발행한 <대한기계학회논문집 B권> 제21권 제1호 125~131쪽(7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8)

 

  국수꼬리 [食生活] : 예천군의 전통 음식으로, 어머니가 칼 국수를 하고 있는 옆에 아이가 매달려서 '꼬리'를 달라고 조른다. 국수가 어느 정도 되어, 칼을 들고 썰어 가다가 맨끝에 10cm 정도를 썰지 않고 남겨서, 어머니는 아이에게 건너주면서 "가서 구어 먹어라."라고 한다. 이 아이는 그것을 가지고 부엌으로 달려가서 아궁이의 불을 헤치고 불 위에 '국수 꼬리'를 얹어 놓는다. 그러면 이 국수 꼬리는 불기운에 의하여 익혀지면서 부풀어 오르고, 다 구이고 나면, 바삭바삭한 것이 과자를 먹는 기분이 들게 된다. 이 '국수 꼬리'는 아이들 간식으로, 오늘의 아이들은 생각도 못할만큼 구차하였으나 우리들 조상들은 즐겨 먹었다.(내故庄傳統가꾸기 1981)

 

  국수나무 [植物] : 예천군의 산에 자생하는 갈잎 떨기나무로, 학명은 Stephunandra incisa Zabel이고, 장미과에 속한다.

 

  국수당(局樹堂) [祠堂] : 상리면 명봉리 명봉초등학교(鳴鳳初等學校) 뒤 진사 동구(陳沙洞口)에 있는 사당으로, 옛부터 이 곳 일대의 사람들은 호랑이의 행패가 두려워 이 사당을 성심껏 위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에 고사(告祀)를 드리고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국수바우, 수사암, 수성암(庵), 수수암(修水岩) [바위] : 상리면 도촌리359번지 쌍학사(雙鶴寺) 옛터 옆에 있는 바위로, 그 바위의 틈 사이로, 젓가락 2개들어갈 정도의 샘이 있다. 이 곳 쌍학사는 한국전쟁(1950) 때 소실(燒失)되었으나 그 후 그 불탄 터를 다시 손질하여 '수성암'이라는 암자를 세우고 미륵불(彌勒佛)을 3좌(座) 모셔 놓았다. 소백산 영기(靈氣)를 받아 정성껏 기도하면 아들 낳지 못하는 아낙네는 소원 성취한다는 소문이 높이 나서 정월 초순부터 동지달까지 암자가 빌 사이 없이 불공꾼들로 가득차 있다. [傳說] : 옛날 이 샘에서 국수가 나왔다. 쌍학사에는 공기가 맑고 산세가 좋아 옛부터 여러 승려들이 거쳐 갔고, 많은 손님이 찾았다. 또 절 뒷곁에 있는 국수바위에는 구멍 하나가 뚫려 있다. 옛날에는 그 곳에서 국수가 나와 암자를 찾아드는 고객들을 접대했다. 손님 1명이 오면, 절에서 일하는 동자승(童子僧)이 샘 앞에 가서 이르기를, "손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라고 말을 하면, 한 그릇의 국수가 바위틈 사이에서 나왔다. 손님들마다 이 국수를 먹어보고는 찬탄하기를, "이렇게 맛있는 국수는 처음 먹어봅니다."라고 한결같이 인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2명의 손님이 왔는데도, 동자승도 한 그릇 먹으려고 이르기를, "세 분의 손님이 왔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더니, 국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 난 동자승은 대고챙이로 국수가 나오던 곳을 찌르니, 선혈이 3일 간 나왔다고 한다. 그 후로 지금까지 물만 계속 나오고 있다.

 

  국수바우 [바위] :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龍門寺) 동쪽에 있는 국수처럼 길죽한 바위로, 한 복판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 [傳說] : 옛날, 이 구멍에서 국수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욕심장이 장수가 와서 여러 그릇의 국수를 청하니까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 그릇씩만 청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장수는 화가 나서 갖고 있던 창으로 그 구멍을 찔러서 그 후부터는 국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국수봉 : →국사봉

 

  국수샘 [우물] : 하리면 은산리 현촌 서실지(縣村書室址) 뒷편에서 옛 서사지(西寺址)에 오르는 곳에 있는 작은 샘으로, 옛날 손님 수에 따라 국수가 나왔는데, 어느 날 동자가 거짓을 고해서 그 때부터 국수가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고 한다.

 

  국순전(麴醇傳) [冊] : 고려 의종 때의 문인 서하 임춘(文人西河林椿, 醴泉人)이 지은 가전체 설화(假傳體說話)로, 술을 의인화(擬人化)하여 교훈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중국인 진관(秦觀)의 <청화선생전(淸和先生傳)>이 중국에 있었으나 우리 나라의 작품으로는 이 편이 가장 처음 등장된 것이다. 조선 초기의 소설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동문선(東文選)> 권100에 실려 있는 이 설화의 내용은 순(醇, 진국 술)의 90대조(代祖) 모(牟, 보리)는 후직(后稷, 農業)을 도와 공이 크고 덕이 높아 국(麴, 누룩)씨 성(姓)을 얻었다. 순(醇)은 그릇이 크고 기개가 넘쳤고, 맑으나 청(淸)하지 않고 흔틀어도 탁(濁)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그를 국 처사(麴處士)라 하였는데, 그에게 자식이 없어 족제 청(族弟淸)이 뒤를 잇고, 대대손손(代代孫孫) 성쇠(盛衰)를 거듭하여 살았다는 이야기이다.(原色大百科事典 4卷 576 쪽, 韓國藝術總覽 139쪽)

 

   [西河集] : 1) 고려 중엽 예천읍 천서리(川西里) 출신 임춘(林椿)이 지은 가전체 소설(假傳體小說)로, 술을 위인화(擬人化)하여 교훈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조선 전기의 소설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동문선> 권100에 실려있고, 내용은 순(醇 : 진국 술)의 90대조 모(牟 : 보리)는 후직(后稷 : 농업)을 도와 공이 크고 덕이 높아 국(麴 : 누룩)씨 성을 얻었다. 순은 도량이 크고 깊어 마치 만경창파(萬頃蒼波)의 물과 같아 맑게 해도 더 맑지 않고, 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았다. 세상에서 그를 국 처사(麴處士)라 하였는데, 그에게 자식이 없어 족제(族弟) 청(淸)이 뒤를 잇고, 대대손손 성쇠를 거듭하며 살았다는 이야기이다(두산세계대백과). 2) 예천인 서하 임춘(西河林椿, 高麗 毅宗 初-明宗)이 지은 책으로, 술을 의인화(擬人化)한 것으로 후대 한문 소설에 영향을 끼친다. [內容] : 국순의 자는 자후(子厚)인데, 그 선조는 농서(농西, 中國 甘肅省) 사람이다. 90대의 조상 보리(牟)는 후직(後稷=周의 先祖 棄의 別名)을 도와서 백성을 먹이는데 공이 있었다. <시경(詩經)>에 이른바, "나에게 밀과 보리를 주도다."한 것이 이것이다. 보리가 처음에 숨어 살면서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밭 갈아 먹고 살 것이다."하여 전무(田畝)에 살았다. 임금이 그 후손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조칙을 내려 수레로써 불렀다. 군현(郡縣)에 하명하여 있는 곳마다 후하게 예물을 보내게 하고 신하에게 명하여 친히 그 집에 나아가 오구(旿臼) 사이에서 친교를 정하고 빛(才德)을 감추고 속진(俗塵)에 뒤섞였다. 취한 기운이 점점 스며들고 온자(蘊藉)한 맛이 있으므로 보리가 기뻐서 말하기를, "나를 이루게 한 자는 벗이라 하였으니 정말 그 말이 옳구나."하였다. 곧 맑은 덕이 소문나서 그 집에 정문(旌門)을 표하였다. 임금을 따라 원구(園丘)에 제사지낸 공으로 중산후(中山侯=仙酒)에 봉해졌고, 식읍(食邑) 1만 호와 식실봉(食實封) 5천 호를 주었고, 성 국씨(姓麴氏)를 주었다. 5세손은 성왕(成王)을 도와 사직(社稷)을 자기의 책임으로 삼아 태평 성세가 무르익게 되었고, 강왕(康王)이 즉위하면서 점점 소홀하고 꺼림을 당하여 금고(禁錮)시키라는 유서가 있었다. 그리하여 후세에 세상에 나타난 사람이 없고 모두 민간에 숨어살게 되었다. 위(魏) 나라 초기의 순(醇)의 아비 주(酎)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고, 상서랑 서맥(尙書郞徐맥)과 다정하므로 조정에 그 사람을 추천하여, 말할 때마다 주(酎)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때 임금에게 아뢰는 사람이 있었는데, "맥이 주와 함께 사사로이 사귀어 점점 난을 일으키려 합니다." 임금이 노하여 맥을 불러 꾸짖으니, 맥이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기를, "신이 주를 좇은 것은 그가 성인의 덕이 있으므로 때때로 그 덕을 배 안에 넣었습니다."하니, 임금이 그를 꾸짖었다. 진(晋) 나라가 선양(禪讓)을 받게 되자, 세상이 어지러울 것 같아 벼슬에 나아갈 뜻이 없어 유령(劉伶), 원적(阮籍)의 무리와 더불어 죽림(竹林)에 놀면서 그 일생을 마쳤다.

 

  순(醇)의 기국(器局)과 도량이 크고 깊어 출렁대는 만경창파와 같아 맑게 하려 해도 맑아지지 않고 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아서, 그 풍미(風味)가 한 시대를 기울게 하여 자못 기운을 사람들에게 더해 주었다. 일찍이 엽법사(葉法師)에게 나아가 담론(談論)이 하루 종일 진행되자, 한 좌석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절도하게 되어 이름이 드날리어 호를 국처사(麴處士)라 하였다. 공경(公卿), 대부(大夫), 신선(神仙), 방사(方士)로부터 머슴꾼, 목동, 오랑캐,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그 향기로운 이름을 맛본 사람은 모두 흠모하여, 매양 성대한 집회가 있으매 순(醇)이 이르지 않으면 모두 추연히 말하기를, "국 처사가 없으면 즐겁지 않다."하니, 그 때에 소중하게 됨이 이와 같았다.

 

  대위 산도(大尉山濤)는 감식의 능력이 있었는데, 일찍이 보고 말하기를, "어떤 늙은 할미가 이 뛰어난 아이를 낳았는가. 천하 백성들을 그르칠 사람은 반드시 이 아이일 것이다."하였다. 관청에서 불러 청주 종사(靑州從事)라 하였으나 위가 막혀서 마땅한 위치가 아니므로 평원 독우(平原督郵)라 하였다. 한참 있다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 굽혀 향리의 소아(小兒)에게 향하지 않을 것이고, 마땅히 술단지와 도마 사이에 서서 담론할 뿐이다."하였다. 그 때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말하기를, "그때 얼굴에 자줏빛 기운이 떠도니, 반드시 귀하게 되어 천종록(千鍾祿)을 누릴 것이다. 마땅히 값을 기다려 팔라."하였다. 진(陳) 나라 후주(後主) 때에 양가(良家)의 자제로서 주객 원외랑(主客員外郞)에 임명되었는데, 임금이 기국이 남과 다름을 보고 장차 크게 쓸 뜻이 있었다. 그리하여 금구(金구)로 덮어 뽑아서 광록대부 예빈경(光祿大夫禮賓卿)으로 삼고, 작(爵)을 올려 공(公)으로 삼았다.

 

  대개 군신회의(君臣會議)에는 반드시 순(醇)으로 하여금 술을 따르게 하고, 나아가고 물려가며 응대하는 것이 조용히 뜻에 맞아서, 임금이 깊이 받아들이고 말하기를, "경이야말로 곧음과 맑음이 있어 짐의 마음을 열어 주고, 짐의 마음을 기름지게 하는 사람이다."하였다. 순이 권력을 잡고서는 어진 이와 사귀고 손님을 접대하며, 늙은이를 봉양하고 음식을 접대하며, 귀신에게 제사지내고 종묘에 제사지내는 것도 순(醇)이 강력히 주장하였다. 임금이 밤에 잔치를 베풀 때도 오직 궁인(宮人)과 더불어 모실 수 있고 비록 근신(近臣)이라 하더라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이로부터 임금이 취하여 주정을 부리면서 정치를 돌보지 않았고, 순은 제 입에 자갈 물려 말하지 못하니 예법을 잘 아는 사람은 미워하기를 원수같이 하였으나 임금이 매양 보호하였다. 순이 또 거둬들여서 자산 경영하기를 좋아하므로 시론이 더럽다 하였다. 임금이 묻기를, "경은 무슨 버릇이 있는가?"하였다. 대답하기를, "옛날에 두예(杜預)는 좌전(左傳)에 심취한 버릇이 있었고, 왕제(王濟)는 말에 몰두한 버릇이 있었고, 신(臣)은 돈에 집착한 버릇이 있습니다."하니 임금이 크게 웃으면서 주의가 더욱 깊었다. 일찍이 궁궐에 들어가서 임금 앞에 아뢸 때, 순은 본래 입에 냄새가 있으므로 임금이 미워하며 말하기를, "경은 나이가 많고 기운이 다하여 나의 씀을 견디지 못하는가?"하였다. 순은 드디어 관을 벗고 사죄하기를, "신이 받은 작을 사양하지 않으면 망할까 두려우니, 신이 사제(私第)에 돌아가도록 허락하신다면, 신은 분수를 충분히 알겠습니다."하였다. 임금이 좌우에게 명령하여 부축하여 나왔다. 집에 돌아와 갑자기 병이 다하여 하룻저녁에 죽었다. 아들은 없고 족제(族弟) 청(淸)이 뒤에 당 나라에 벼슬하여 내공봉(內供奉)에 이르렀고, 자손이 중국에 성하였다. 사신(史臣)이 말하기를, "국씨(麴氏)의 선조는 백성에게 공이 있었고, 청백을 자손에게 남겨주어, 강신할 때 사용하는 술이 주(周) 나라에 있는 것 같아 아름다운 덕이 하늘에 이르렀으니 할아버지의 풍도가 있다 하겠다. 순이 가난했음에도 지혜로 일어나 일찍 금구(金구)의 선택에 뽑혀 술단지와 도마에 서서 담론하면서도, 헌가(獻可)와 체부(替否)도 않고 왕실이 혼란하여 엎어져도 붙들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에 웃음거리를 자아냈으니 거원(巨源=晋의 山濤)의 말이 족히 믿을 만하다."고 하였다.(西河集)

 

  국시골 [골] : 용문면 두천리 국사봉(國師峰)에 있는 골짜기로, 국수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국시방 [山] : 개포면 신음리(新陰里)의 파리산 정상으로, 옛날 홍수가 일어나 국수머리만큼 남았다고 한다. 국시는 국수의 사투리이다.

 

  국시봉 : →국사봉

 

  국악제(第2回 國樂祭 : 土俗民謠 2) [映像資料] : 문예진흥원의 수집선 자료로, U-matic(min) : col.mo, 서울 문예진흥원에서 발행하였다. 이 테이프에 경북 예천통명농요(모심기소리, 모를 심고 논에서 나오면서 부르는 소리, 논매기소리, 논을 다 매고 나오면서 부...)가 수록되어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영상음악실에 소장(KCAF VT0248VT, 청구기호 0267)되어 있다.

 

  국악협회 예천지부(第4回 醴泉아리랑 全國競唱大會 開催 : 學生部, 新人部, 一般部, 名唱部 等 45팀 參與) [記事] : 제4회 예천아리랑 전국경창대회가 2014년 7월 19일 오전 9시부터 학생부, 신인부를 시작으로 100여명의 국악인이 참가한 가운데 국악협회 예천지부(지부장 장경자) 주관으로 예천청소년수련관 극장에서 열렸다. 예천아리랑을 대중에게 널리 보급코자 2009년부터 열린 예천아리랑 전국경창대회는 지난해까지 학생부, 신인부, 일반부 3개 부문에 걸쳐 경연을 실시해 왔으나 금년부터 명창부를 신설하여 명실상부 아마추어 최고 국악인들의 경연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개회식에는 이한성 국회의원, 이현준 예천군수을 비롯한 이철우 군의회의장, 경연 참가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현준 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민중의 한과 기쁨이 녹아있는 우리의 아리랑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전국 곳곳에서 자생하여 뿌리내린 지역 아리랑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이었다”고 말하며 “예천아리랑 전승보존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이한성 국회의원은 “이번 대회를 통해 숨은 소리꾼을 발굴하고 더불어 우리의 소리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예천아리랑 저변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예천아리랑은 마을 아낙네들이 힘든 농사일과 고된 시집살이의 한을 콧소리로 흥얼거리던 소리를 며느리나 딸에게로 전해지면서 민중 중심으로 불리어 졌으며, 지난 2008년 예천아리랑 전승보전사업을 통해 악보를 만들고 음반을 제작하는 등 새롭게 체계화하여 예천아리랑경창 대회를 통해 널리 보급해 나가고 있다.(醴泉뉴스 2014년 07월 19일)

 

  국악협회 예천지부(第5回 醴泉아리랑全國競唱大會 盛況裏에 열려...) [記事] : 제5회 예천아리랑 전국경창대회가 2015년 11월 21일 오전 9시부터 학생부, 신인부를 시작으로 100여명의 국악인이 참가한 가운데 국악협회예천지부(지부장 장경자) 주관으로 예천청소년수련관 극장에서 열렸다. 예천아리랑을 대중에게 널리 보급하기 위해 2009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예천아리랑 전국경창대회는 올해까지 5회를 거쳐 오면서 명실상부 아마추어 국악인들의 최고 경연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번 경연은 학생부와 신인부, 일반부, 명창부 등으로 구분하여 분야별 참가자들이 열띤 경연을 벌였으며 예천아리랑 소리극과 예천아리랑 공연, 시조 공연 등의 품격 있는 공연도 중간에 함께 펼쳐져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예천아리랑은 마을 아낙네들이 힘든 농사일과 고된 시집살이의 한을 콧소리로 흥얼거리던 소리가 며느리나 딸에게로 전해지면서 민중을 중심으로 불렸으며 지난 2008년 예천아리랑 전승보전사업을 통해 악보를 만들고 음반을 제작하는 등 새롭게 체계화했으며 예천아리랑 전국경창대회 등을 통해 널리 보급되고 있다. 예천아리랑 보존에 힘써온 국악협회예천지부 장경자 회장은 “예천아리랑을 통해 예천이 전국에 알려지고 나아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지길 염원하며 예천아리랑에 대한 군민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새慶北인터넷뉴스 2015년11월21일)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