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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549:국창유고...
작성자장병창 @ 2019.08.13 06:08:57

  도청신도시 예천 549 : 국창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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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菊窓遺稿 내용 개요]

  卷1 : 詩 : 夏課合抄日次李士養全韻(1745), 登鶴駕山(1745), 上中臺寺大巖(1745), 松坡군舟中次柳敬之宜欽韻, 下第將歸次權而中得經韻, 積雪中見松竹만吟(1747), 開元寺鼎山院僕來致金克和鼎元書, 自京發光州覲行靑坡店上與柳和甫師惠句, 銅雀舟中口占, 上恩津彩雲峯, 光州歸路八良峴久, 敬次族祖後庵公命聃詠梅一絶韻(1749), 茂叔鄭보根以其曾王考蔚珍令公必達八松亭重修韻示余索和甚勤忘拙錄呈亭在居昌龍山又有落帽臺云(1750), 威汝朴重慶子溫朴東玉君章朴漢明賞月松臺吟示絶句却步其韻, 庵前小溪水淸可佳古號寒泉吟成短律, 小望携諸友玩月松臺威汝朴重慶朗詠程夫子秋日偶成詩各次其韻, 能谷風物之勝不減寒泉與威汝朴重慶聯句, 妹金士重鼎東讀書龍門投寄古風一篇次韻奉酬, 除夕前十日立春題壁, 哭趙丈相慶(1753), 春詞慈主避痘于美洞姉家, 自歎, 自歎復自責, 自責復自責, 自責仍自警, 兒始痘不通外人仲弟來言幼章權命佑徘徊小溪邊余聞而喜甚出門望見已過西隣矣遂以拙句奉邀, 除夜書懷, 元朝書懷(1763), 次幼章韻權命佑, 敬次력窩宗叔諱震遠修譜韻, 四月初六日發京口號, 犬灘店夜吟, 踰鳥嶺, 歇馬小溪邊, 自泮村向坡州到高陽縣店, 碧蹄客幕伏次先祖訥齋府君碧蹄夜吟韻, 發向陽里, 到碧蹄復用前韻, 自泮村向楊州瞻拜東陵感吟, 金交河礪世鍊律百鍊宗人寓居楊州北坪將議譜事馬上口占, 望月浦贈金稚道克寧宗人,

 

  坡州新谷墓下敬次安陵族兄鍊爲심贈別韻(1784), 朴僉知丈濟南挽, 出外日金院長瑞심丈及逍遙翁金尙源述之來宿留詩歸後敬次奉呈(1765), 洞堂設慶老宴敬次霽谷權縉韻(1766), 敬次역窩宗叔韻, 敬次列岳金僉知光鉉丈宴席韻(1767), 又次, 復初柳一春萬久柳載春秀夫柳규諸友來宿歸後秀夫用訥甫安敏秀廢塘古井韻作詩書贈同遊諸人各四絶遂次却寄, 權進士錡丈輓用公庚辰所賜輓韻, 次訥甫寓感韻庚寅, 舟到德隱津次桃原翁韻兼示金復之致明李景茂東濂諸人, 취居房狹如斗臥不伸脚桃原翁吟示絶句却次, 留別李景茂, 留別桃原翁, 留別李述祖玄謙, 與行觀李孝瞻諸益敬次仙夢臺板上韻, 蘇宇金叔見龍在輓, 金長吉濟慶輓, 河參奉龍益丈輓(1771), 次行觀輞川新居韻, 鄭孟光觀濟輓, 敬次樹谷丈枝菴韻且構一律兼上, 又次樹谷丈曲肱軒韻兼用杜工部堂成韻呈上, 右次原韻復用杜工部堂成韻呈上, 趙子純相斌輓, 權啓汝沃揆輓, 次花庄書齋重修韻, 河翠巒龍國丈輓, 李持世重維來示其大人丈重牢宴韻索和甚勤續貂敬呈(1772), 敬次역窩宗叔寄贈韻, 懶拙齋李先生輓, 仙溪權先生輓, 列岳金僉知丈輓, 金夢弼相說輓, 謹次笙潭十二景韻(1776), 復次笙潭四韻, 次笙潭重建韻, 金院長寬夫槃宗侍輓, 次玉溪趙上舍悅卿相변二可堂采山歌釣水曲韻(1777), 病中行觀來診枕上吟贈却次, 病中次安分翁韻, 金進士成胤戚丈輓用公丙子所賜挽韻, 安愼甫敬修輓, 大竹北崗見內第蔡汝賓亨大葬在舅氏雙墳下拜省痛哭不忍便去, 暮投杻洞尹器彦德宇欣然相對夜贈拙句幷序記余十一歲嘗受學於內舅蔡公公時住杻洞余與器彦作총竹之交而人生聚散無常浮世悲歡不一舅氏舊居但有遺址器彦相阻忽復十年今來握手寧不愴然感傷耶夜酒將난爲贈二絶句以作別後替面之資云, 多仁檜洞二江氷合旣渡聊吟, 早發栗院, 梧陰道中, 無雙洞早發望見上黨山城, 登上黨山, 逢人問路, 西原南門外客幕次李伯茂敬蔓韻, 曉發晴川縣朝到九萬里, 龍河路上忽見俗離山, 自龍游洞登淸華山, 到寒泉族人子明宅鉉家除夜漫吟, 元朝枕上吟(1778), 至孤山展省九世祖비淑人全義李氏墓初二日抵族人宗寶家主人甚恨無酒詩以解之, 三日到草院店童奴欲由免棧久坐不起乃曉以大路在前, 班巖道中, 夜投山陽客幕, 四日伊泗里道中, 歇馬仙夢臺下, 次訥甫守吾齋三吾字韻, 金秋應商錫輓, 霽谷權公輓, 樹谷權公輓, 蒼崖李參奉重光丈輓, 李高敞忠國戚丈遷葬輓, 金院長景汲丈輓, 至日泉田村述所見, 晩起歎, 閒中敬次陶山四詩韻, 冷돌, 자氏以吾居處冷房朝朝抱新薪躬설火, 訥甫携其孫避痘稷谷余自玄厓路經稷緩步口占, 踏靑日細雨竟夕, 安貧吟, 權同知 상丈輓, 次山人韻, 病中漫題首尾吟, 病間吟成卦名體五七言, 漫題鳥名獸名體, 枕澗臺丁載熙丈輓幷書(1780), 以先師訥翁先生文集中本校整事金季範弘植子友弘輔金定之鎭東權勉夫思욱權其天思浩如天思溥權叔仁正實約會溪院余亦赴招月夜勉夫吟成短律索和座中遂忘拙續貂, 次權叔仁韻, 臨發奉酬諸益贈別韻, 次桃原翁仙會韻, 喚鶴樓敬次退陶先生板上韻, 中臺寺敬次西厓先生板上韻, 復次仙字韻呈桃原兼視玉野, 次申院長兌成査丈回甲宴席韻, 桃原翁輓, 次金院長舜擧應八丈寤言堂韻, 金原吉沃慶輓(1781), 代書謝安分翁兼呈輞川主人李輝伯宗燁江浦柳汝遠弘遠詞案, 黃田遺墟感吟, 玉野河士緯經海輓, 金僉知雲卿丈輓, 李會彦之伋輓, 權允昇旭輓, 妹서松臺朴君源孝大輓, 江浦翁輓, 大山先生輓, 黃田遺墟感吟(1783),

 

  李仲謀策輓, 龍峯金翔天鴻九輓, 金春路東鐸自號友鹿示以雲山詩索和却次, 臘月偕趙上舍美卿相彦金上舍聖文光憲權上舍子晦경子淵明佑金希聖光啓熙仲君瞻和國金彦燮權元明用明諸友宿於龜潭書堂各次축中韻, 元日曉吟(1784), 正月十四日立春, 正月二十日枕上記夢, 至月七日大雪, 鄭단士錫台丈輓, 瑞雪堂權院長正模丈輓, 懷士重, 臘月卄四日立春日 題, 尼坡金上舍聖文光憲輓, 言志, 敬次龜山丈韻(1786), 李臥雪翁君輔尙慶輓, 金院長瑞珏丈輓, 次杏陰金子友翁韻, 數咎庵崔先生輓, 龍頭亭敬次達觀子孫興智原韻, 初夏歸路追次龜山丈韻晩秋復用前韻倂呈, 臘月十七日立春, 元日省墓感吟(1787), 次李綏瑞祚億新居韻, 偶吟, 上元日夜次古人玩月韻, 寤言翁輓, 權天天振應鐸輓, 柳豊昌君澐令丈輓, 南佐郞龍震丈輓, 南湖權上舍子晦경輓, 朴雲徵時龍輓, 久病畏風以五障子掛之四壁, 枕上口占, 忍寒, 病狀, 聽계, 子淵逐日來話, 訥甫病滯外村, 元日(1789), 春詞, 尹伯高한輓, 柳東甫遇春甫以其曾王考處士後賢公安窩韻求和敬次, 次守吾齋六友吟原韻月梧烟柳雪梅霜菊風松露竹, 復和東塢翁所贈六友吟十三絶韻月梧烟柳雪梅霜菊風松露竹, 次屛院重修韻(1787), 小山李先生輓(1789), 能皐處士朴公申慶輓, 敬次金平海白巖先生海上韻, 守五齋安訥甫輓, 杏陰金子友輓(1791), 李景有重龍輓, 金子溫彦肅輓, 南澗柳叔文道源輓, 病中逢至日口占, 李士言綸送以一絶詩次韻却寄, 次士言韻, 十月初四日聚點于暎湖樓暮還東室士言送詩却次其韻, 用李滄溟生朝韻呈養素堂(1796), 又用朱夫子壽親韻示光賓金炳觀, 三月七日東室만題, 三月二十日口號, 晦日朝吟, 復月小晦失火翌朝漫題, 酷寒漫吟, 尹述甫承祖自蔚山歷訪贈以四絶詩督和却步其韻以替于將, 次李日昇鎭東除夕元朝韻(1797), 復用故友宋豪仲先蹟韻却寄其子啓之羽成怡甫馹成昆仲, 次黃以亘應玄贈別韻, 謹次尙友堂韻, 柳天輝당輓, 屛山洞主李日昇以魚酒來話示以柳復初士極詩索和甚勤忘拙次韻, 十月初六日洞主李日昇行敬老禮都訓長柳士極引諸生通讀小學余以末弟寃日臨近不敢赴會만次前韻却寄洞主, 寄謝新厓李日昇, 次鄭茂叔보根詩語頗有好奇之癖次其韻以贈之(1748), 次程茂叔求寂窩韻, 次李輝伯商衡新居韻(1781), 次李行觀韻(1783), 余到行觀家李忠甫夏相李輝伯佩酒來話縣上七八友不期相會行觀吟詩一律要和座中余亦醉次, 錦江舟中次韓以從有良韻(1748), 光州拱北樓次楊公輔埰韻, 自錦城還到光山公輔昨日復來留詩二絶而歸矣창缺之餘次韻却寄, 菁根數本春末開花粲粲黃英點點堆畦亦自可聊吟一絶(1779), 만題(1786), 村라大蔓, 久病吟, 人日前夕自素山復寓外村, 權僉樞範祖星江丈輓(1792), 金僉樞履源丈輓, 輓玉峯權亘萬尙佑, 重陽前二夕余抵蔡內弟士集家諸友要余同宿於竹林書堂翌朝共次安上舍而定竹林移建韻, 步自金谷夜投稷谷漫吟絶句, 卽事, 次宗人和國竹林九老會詩韻(1793), 계鳴峴口號, 葛川途中, 金和國彦燮輓(1794), 南啓伯震龜輓, 知敦寧李公斌輓, 可齋權子淵明佑輓, 畏齋柳孟熙宗春輓, 道中口占, 行到龜峴憶龜山翁感吟, 次宋豪仲挺濂先蹟韻詩(1781), 次聊以篇中長命縷詞韻(1779), 金晉吉就質朱書于樹谷丈吟成絶句索和於諸友余亦次韻(1754), 次晉吉韻3, 話晉吉于三龜亭臨發次晉吉韻, 輓鄭上舍泰膺(1798), 次李仲章天燮竹下翁投贈韻(1798), 哭金子厚元善, 黃同知麟彩輓, 同知輓, 金上舍子晦敏源輓, 柳養直浩源輓, 張和叔輓婦內弟, 中臺老人會次金上舍景理相燮韻時自新陽文會上寺, 權자兄平叔우輓, 金參議善吾養根輓(1799), 五月旣望疾劇書懷(1800), 五月二十六夜夢得一筆抽盖以朱紅細書四行覺而了了

 

  상기한 시제(詩題)에서 {국창유고}의 내용과 성격의 일면을 이해하기 위해 순서에 따라 저자 자신의 서문이 붙은 시 작품 몇 수와 장편의 만시 몇 편을 뽑아 그 개요를 정리하고, 아울러 서신과 제문 등 산문에서 주요 내용을 초출하면 아래와 같다.

 

  茂叔鄭보根以其曾王考蔚珍令公必達八松亭重修韻示余索和甚勤忘拙錄呈亭在居昌龍山又有落帽臺云(1750) : 1750년에 무숙 정보근이 그의 증왕고 필달(必達)의 팔송정 중수 시운을 보이면서 화운을 청하기에 써준 7언율시이다. 소주에 '정자는 거창의 용산에 위치하고 또한 낙모대가 있다.'고 하였다. 백 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도 선조의 죽음을 애도하는 후손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고인이 당시에 심어 놓았던 노송과 국화는 예전 그대로 의연하게 남아 있는 것을 무상한 마음으로 읊은 것이다. 국창은 이 시의 말구에서 먼 후손들이 후일 이 정자에 올라 선조가 노닐던 곳을 바라본다면 마땅히 슬픈 생각이 들 것이라며 선조에 대한 추모의 뜻을 강조하였다.

 

  兒始痘不通外人仲弟來言幼章權命佑徘徊小溪邊余聞而喜甚出門望見已過西隣矣遂以拙句奉邀 : 국창의 어린 자식들이 마마에 걸려 외부와 접촉을 못하던 시기에 지은 7언절구이다. 중제가 와서 유장(幼章) 권명우(權命佑)가 작은 시냇가에 배회한다고 알리기에 기뻐하면서 문밖에 나가 찾아보았으나 유장은 이미 서쪽 동네로 가버린 뒤였다. 이에 유장을 맞이하기 위해 지은 것인데 벗을 못 본 지 20여 일에 바둑 두는 책상에 먼지가 생겼다고 하면서 친구와의 재회를 간절하게 토론한 것이다. 문을 닫아걸고 객을 사절하면 담 밖에서 배회하는 그대가 성낼 것이라는 표현은 매우 역설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復初柳一春萬久柳載春秀夫柳규諸友來宿歸後秀夫用訥甫安敏秀廢塘古井韻作詩書贈同諸人各四絶遂次却寄 : 복초 류일춘, 만구 류재춘, 수부 류규 등 여러 벗이 국창의 집에 와서 자고간 뒤에 수부가 눌보 안민수의 [폐당(廢塘)] [고정(古井)]의 운을 따서 시를 지어 함께한 여러 벗에게 써주기에 차운해서 부친 것이다. 7언절구 4수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첫째 시에서는 벽촌의 자기 집을 방문해 준 것과 수부가 돌아간 뒤 경계와 격려의 시를 지어 보내 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으며, 둘째 시에서는 거처할 만한 넓고 큰집이 없는 것과 형편이 어려워 서책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농사를 배우는 것에 대해 자신의 안쓰러움을 고백하였다.

 

  暮投杻洞尹器彦德宇欣然相對夜贈拙句幷序 : 저녁에 축동(杻洞)에 있는 윤기언 덕우(尹器彦 德宇)의 집을 방문해서 매우 기뻐하며 담소를 나누다가 밤중에 주흥이 도도해지자 작별 후 체면의 자료로 삼고자 써준 시이다. 비교적 긴 서문을 통해 국창과 윤기언의 친밀한 관계를 추측할 수 있다. 국창이 열한 살 때 내구인 채공에게 수학을 했는데 채공은 당시 유동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기언과는 죽마고우로 지냈던 것이다. 국창은 이 시에서 인생의 모임과 흩어짐, 슬픔과 기쁨은 덧없다고 인식하면서, 구씨가 옛날 살던 곳이 빈터로 변한 것과 기언과는 그 간에 만나보지 못한 게 어느 덧 10년이 된 것에 대해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백발로 푸른 등불 앞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며 아련한 옛날을 회상하는 국창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 핍진하게 묘사되어 있다.

 

  枕澗臺丁載熙丈輓幷序(1780) : 침간대(枕澗臺) 정재희(丁載熙) 어른의 죽음을 애도한 만시로 장문의 서문이 붙어 있다. 국창이 지난해 침간대를 방문하자 정공이 대의 시운을 써 보이며 차운을 부탁하기에 중양일 며칠 전 저녁에 56자의 시를 지어 다시 찾았는데 정공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어린 시절 정공을 모시면서 노닐던 즐거움과 나이 들어 흠모하던 정이 하루아침에 결단이 나버리자 심한 충격을 받은 듯 상심과 애통 속에서 지은 것이다. 국창은 시의 서문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대 주변의 변함없는 가파른 절벽과 깊숙한 암벽, 울며 흐르는 여울, 검은 빛을 띤 쏘, 단풍이 곱게 물든 비탈, 이끼 낀 물가의 조약돌, 우는 새와 한가로운 백로의 모습을 나열하면서 이와 대비되는 인생의 유한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다. 그의 말대로 눈물을 흘리면서 써 내려간 듯한 이 작품은 대의 운을 따서 지은 것 1수, 공의 죽음을 애도한 것 1수, 슬픈 마음을 토로한 것 1수, 모두 3수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시는 침간대 주인이 인간의 모든 일을 잊고 좋은 산천을 점유하여 무심한 해오라비와 계분을 맺어 속세의 인연을 사절한 것에 대해 칭송한 것이고, 둘째 시는 주인의 가식없던 소쇄한 기상을 그윽한 계곡의 밝은 꽃과 시내에 비치는 달빛으로 비유하면서 대는 의구하건만 다시는 물가에서 해오라비와 짝하여 한가롭게 지낼 수 없음을 슬퍼하였다. 셋째 시는 국창의 억제할 수 없는 개인적 감회를 피력한 것으로 생전에 있었던 고인과의 관계를 추회하며 애도한 것인데 '통곡하면서 돌아오니 혼이 끊어진 듯 하네'라는 구절은 저자의 슬픔의 심도가 어떠한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以先師訥翁先生文集中本校整事約會溪院余亦赴招月夜勉夫吟成短律索和座中遂忘拙續貂 : 스승인 눌은 이광정의 문집을 교정하는 일로 김홍식(金季範弘植), 김홍보(子友 弘輔), 김진동(金定之 鎭東), 권사욱(權勉夫 思욱), 권사호(權其天 思浩), 권사부(如天 思溥), 권정실(權叔仁 正實) 등 동문들과 함께 봉화에 있는 삼계서원에 회동을 했던 바, 밤에 권사욱이 짧은 율시를 지어 좌중에 화운을 구하자 거기에 차운한 시다. 스승이 돌아가신 지 오래 되었으나 백월같은 정신과 춘풍같은 기상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면서 스승이 남긴 글을 교감한 뒤 빠른 시일 내로 문집을 간행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국창이 후일 스승 눌은의 유허지인 황전을 지나면서 읊은 시에는 '구옥암(九玉巖) 가에서 종일 흐느껴 울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스승에 대한 존모의 정이 매우 남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言志 : 국창이 구담서당(龜潭書堂)을 오가면서 벗들과 더불어 창수한 시는 여러 편 전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두 편의 시는, 그 전에 구담에서 노닐 때 권명우가 대산 이상정의 '청(淸)'자 시에 화운해서 읊은 것과 그 후 권명우가 대산이 병석에서 지은 '화(和)'자 시를 보이기에 화답한 것이다. 국창과 권명우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생전에 마음을 허여했던 대산을 추모했는데, 국창은 이 두 편의 시를 백양나무 마른 가지에 걸어두고 헤어짐의 정을 대신한다고 했다. '언지[뜻을 서술한다]'라는 시제를 붙인 국창의 61세 무렵 작품으로 일신의 불우한 처지를 천지의 광대함에 견주어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자연에 대한 깊은 관조와 성찰을 절제된 형식을 통해 과감하게 표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학문을 통해 날마다 새로워지는 내면 세계에 대한 관조를 경전의 관습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무게있게 그려내고 있다. 구담을 노래한 국창의 다른 시에는 섣달에 조상언(趙上舍美卿相彦), 김광헌(金上舍聖文光憲), 권회경(權上舍子晦경), 권명우(子淵明佑), 김광계(金希聖光啓), 김군첨(熙仲君瞻), 김언섭(和國金彦燮), 권원명(權元明), 권용명(用明) 등 여러 벗과 구담서당에서 기숙하면서 석양에 또다시 대에 올랐다는 구절이 보이거니와 국창이 자주 구담서당의 승경을 찾아 강학과 풍류를 즐긴 사실은 무척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十月初六日洞主李日昇行敬老禮都訓長柳士極引諸生通讀小學余以末弟寃日臨近不敢赴會만次前韻却寄洞主 : 10월 6일 병산서원에서 경로례를 행하자 도훈장(都訓長)이던 유복초(柳士極復初)가 여러 유생을 인솔하여 {소학}을 통독했다. 국창은 마침 막내아우의 기일이 닥쳐서 참석할 수 없는 형편이므로 전에 지었던 시의 운자를 따서 동주에게 부쳤다. 7언 절구로 28자에 불과한 소작이나 훈장이 조리있게 강론하는 모습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위의를 갖춘 유생들이 학업에 매진해서 후일 성공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 때 경로례 행사를 주관한 자는 병산서원의 원장으로 있던 신애 이일승으로 국창과는 허물없이 지내는 지기의 사이였다. {국창유고}에는 신애가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국창을 찾아와서 담화한 것과 신애가 보낸 서신에 대해 사례하는 국창의 시가 서너 편 수록되어 있다.

 

  余到行觀家李忠甫夏相李輝伯佩酒來話縣上七八友不期相會行觀吟詩一律要和座中余亦醉次(1783) : 국창이 이행관의 집을 방문하자,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이웃의 7ㆍ8명의 벗들이 모였다. 그 때 행관이 율시 1수를 읊어 화운을 요구하기에 취중에 지은 시로 친구간의 우정에 대해 논하고 있다. 노년의 모임과 흩어짐은 모두 하늘에 달려 있다고 전제한 뒤, 오늘 한자리에 모여 기쁨을 같이함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세도의 평탄함과 험난함, 교제의 깊음과 얕음을 청운과 녹주의 선명한 색채적 대비와 물상의 이미지를 통해 시상을 전개한다. 말구에는 여러 벗들에게 '오래 사귀어도 서로 공경하자'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하여 시종일관 우정을 변치 말자는 경계의 당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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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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