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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553 : 국창유고...(부, 예천여고의 봉사활동 동아리 <예인RCY>의 단장 이서영, 11일 서울교육대학교종합문화관에서 열린 제4회 전국청소년자원봉사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예천군정보화농업인회(회장 김미숙), 13-14일 문경에서 2019년 경북농업인 정보화경딘대회에서 단체부문 대상과 상금 100만원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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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江浦翁和贈詩帖後(1796) : 강포옹의 {화증시첩} 뒤에 쓴 것으로 제석에 지었다. 가은은 나의 옛날 자호다. 내가 시를 안분와에게 올리고 겸하여 강포옹에게 보였는데 옹이 이에 화답해서 부친 것이다. 평생에 서로 허여하던 정이 시구에 넘치고 또한 시어가 맑고 굳세며 필법이 고고하여 아껴 보면서 손을 놓을 수 없다.
記夢(1785) : 꿈꾼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10월 12일 아침을 먹다가 치아가 한 개 빠졌다. 치아가 빠진 곳은 매우 아팠던 부위로 빠진 뒤에는 통증이 줄었다. 그러나 처음에 치아가 빠질 때는 매우 놀라서 하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밤에 자다가 꿈을 꾸었다. 조자순이 붓을 청해서 글씨를 써 보였는데 "한공의 치락시는 구절마다 모두 참으로 절실한데 침묵이 본시 좋다는 말을 잊지 말고 준행하라. 이 것이 처세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하였다.
卷4 : 祭文
祭訥翁李先生(1758) : 눌옹 이 선생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선생은 재주가 뛰어나면서도 덕이 두터우며 학문이 해박하면서도 도가 높았다. 소시부터 명성이 자자했으나 산림에 묻혀 덕을 기르고 도의에 침잠하였다. 하당과 창설에게 영향을 받고 전인의 학문을 계승하여 영남의 영수가 되었다. 이제 전형은 사라지고 유풍이 땅에 떨어지니 문헌의 지방에 누가 맹주가 될 것인가.
祭妹壻南重兼泰淳 : 매서인 남중겸 태순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17년의 생애, 바람 앞에 촛불처럼 사라졌네. 맑은 외모는 자신의 마음 같았고 마음은 옥과 같았다. 군의 죽음은 참으로 원통하다. 이후로 군의 얼굴과 음성이 날로 더욱 아득할 테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구나.
祭金叔見龍在(1770) : 김숙현 용재를 애도하는 제문이다. 공이 죽자 고을 선비로 공과 면식이 있던 자이든 없던 자이든 간에 모두 나를 보고 조문을 한다.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고 일가와 화목하게 지냈다. 호방한 성품으로 남을 도와주는데 급급했고 뛰어난 재예는 세상에 쓰일 만 했다.
祭翠巒河丈 : 취만 하장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전에 양양에 있을 때부터 공의 행실에 대해 들었다. 이후 공과 이웃하여 살면서 살펴보니 과연 공은 군자였다. 풍모는 엄숙하나 마음은 순하고, 언론은 화평하나 절도가 있고, 일 처리는 치밀하고 상세하면서 법도가 있다. 내가 우거하면서 크든 작든 모든 일을 질의하여 처리하였다. 평소에 강남쪽의 산세를 매우 좋아하여 매번 '창을 열고 멀리 바라보면 흉금이 시원해진다' 하였다.
祭金甥采運(1776) : 생질인 김채운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너를 본 자들은 모두 남쪽의 훌륭한 장부요, 명가의 어진 자제라 일렀거니 어찌하여 세상에 쓰이지도 못하고 가버렸는가. 이 세상에 와서 스물두 해를 살다 허무하게 떠난 것이 마치 봄밤의 한바탕 꿈인 것 같다.
祭金仲淳洛源 : 김중순 낙원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성하고 쇠퇴한 것이 덧없고, 슬픔과 기쁨이 같은 것이긴 해도 종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공은 고고한 자질과 청명한 지조로 분잡한 세상에서 자신을 깨끗이 보존했으니 그 평소의 소신이 굳은 때문이다. 고가의 풍류가 이제 삭막해지니 죽암문주(竹巖文酒)의 회합에 한 명이 비게 되는 것이 한스럽다.
祭霽谷權公(1778) : 제곡 권공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선생[병곡 권구]의 문하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어 유촉지로 이사를 와서 공을 모시면서 그 유풍과 전형을 보게 되었다. 공은 선생의 훌륭한 장자로 고을 선비들로부터 큰 추앙을 받았다. 전에 선친께서 불초에게 '너는 나의 벗[제곡 권공]을 아비와 같이 섬겨야 한다' 하였고, 임종에 이르러 또 '나의 벗이 살아 있으니 너는 고아가 아니다. 모든 일을 상의하여 처리하고 독단으로 해서는 안된다' 하였다. 불초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새겨 잊지 않는 게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선친이 하세한 지 벌써 23년이 되는데 그 간 공을 뵈면 마치 선친을 뵙는 듯 하였다.
祭宗丈호 : 종장 김호를 애도하는 제문이다. 심하구나! 문중의 재앙이여. 하늘은 어찌 이렇단 말인가. 내 이제 누구에게 의탁하랴. 고가의 어진 후손이고 오늘날의 덕 높은 어른이었다. 담론을 나누면 온 좌중이 피곤을 잊었고 성의가 은근하여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공은 나를 아재라 호칭하나 나는 아버지처럼 공을 섬겼다.
祭李高敞忠國戚丈遷葬時 : 척장인 이고창 충국을 애도하는 제문으로 묘소를 옮길 때 지은 것이다. 수려한 자질과 화평한 덕을 지녔고, 대궐에서 {주역}을 읽어 대과에 이름을 걸었다. 앞길이 만리 같았는데 사람들이 곧음을 질투하자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강호로 돌아와 아이들을 교육하고 감농을 하면서도 왕의 은혜를 생각해서는 시름이 끝이 없었다.
祭安愼甫敬修(1779) : 안신보 경수를 애도하는 제문이다. 군은 조탁하지 않은 옥돌과 같아 참으로 위선이 없었다. 반백을 살지 못한 체 어찌 궁색한 속진을 급하게 떠났는가. 봄이 돌아와 초목은 푸르건만 한 번 간 사람은 모습을 끊었다.
祭三姉兄金惠吉洪慶 : 셋째 자형 김혜길 홍경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세상이 모두 모양을 내고 말을 수식하나 형은 옥을 안고 보배를 품었다. 세상이 모두 이름을 팔고 능함을 다투나 형은 분수에 안주하여 서투름을 지켰다. 담박한 심성은 오래된 우물과 같고 말없는 자태는 덕높은 선사 같았다. 남의 장단과 시비를 입에 담지 않고 남의 화려한 물건과 좋은 음식을 원하지 않았다.
祭樹谷權丈(1780) : 수곡 권장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공은 가정의 교훈을 받들어 능히 가문의 명성을 계승하였다. 앞길이 만리 같았는데 청년기에 난을 만났다. 왕의 은혜는 끝이 없으나 당시의 정황을 헤아릴 수 없어 원통한 마음을 숨기고 자신의 본심을 지켰다. 의리의 학문을 음미하여 책상을 대해 성현을 만났다. 깊고 깊은 수곡에서 한 가지에 앉은 초료와 같이 곡굉헌 속에서 나의 소쿠리 밥과 표주박 물을 즐겼다. 지키는 것이 굳었고 실천하는 것이 두터워 홀로 서서 한바탕 웃어 제치고 잠꼬대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祭桃原翁河通甫星海 : 도원옹 하통보 성해를 애도하는 제문이다. 공이 전에 나에게 '선비는 수졸(守拙)을 귀하게 여기니, 처한 것이 궁해도 의리를 지켜야 하고, 논변할 자리에 있더라도 말을 더듬어야 한다' 하였다. 또 '화와 복은 자신으로부터 부르는 것이니, 더욱 삼가고 수신하면서 고요하게 기다려야 한다' 하였다. 수를 놓은 듯한 입은 주옥같은 시문을 상자에 그득하게 남겨 놓았으나 사람을 놀라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애오라지 자신의 뜻을 서술한 것들이다.
祭金原吉沃慶(1781) : 김원길 옥경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얼굴이 화사했고 말은 아꼈으며 글은 화려했고 글씨는 활달했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정신과 기력이 좋아서 8ㆍ90 수는 누릴 거라고 생각했다. 옛날 노닐던 곳을 돌아보니 산의 매화도 슬픔을 토하는 것 같고 강의 버들도 슬픔을 머금은 듯 하다.
祭金僉樞重慶 : 김첨추 중경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맑은 낙수의 북쪽, 소산의 남쪽에 삼귀정이 우뚝한데 거북 모양의 돌이 세 개나 그 곁에 있다. 우리 공은 대대로 이 곳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노닐었다. 선조를 위하는 사업과 후손을 여유롭게 하는 방책에 마음과 힘을 다했다.
祭伯姉兄松臺朴君源孝大 : 맏자형 송대 박군원 효대를 애도하는 제문이다. 의리로는 형제라 호칭하나 정으로는 골육과 다름없었다. 기쁨과 근심을 함께 한 50년 간에 간혹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편지로 서로 내왕했었다. 이제 아주 떠나버리니 마음을 털어놓을 데가 어디에도 없다.
祭朴氏姉(1781) : 박씨 가문에 출가한 자씨를 애도한 제문이다. 죽어서 같은 혈에 묻히는 것이 부녀자의 소원이나 모진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은 참으로 더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다. 예로부터 열부가 얼마나 많을까마는 그 만난 경우가 대부분 원통하거나 억울해서 창졸간에 분을 못 이겨 목숨을 버린 것이다. 조용하게 마음을 헤아려 스스로 죽음을 기약하는 경우는 열부전을 보더라도 그 경우가 매우 드물다. 그런데 자씨는 50년 간 부부로 살다가 남편이 천수를 누리고 죽자, 슬픔과 애통으로 가슴을 치고 울부짖으며 삼년상을 마치고는 이에 단식한 지 35일 만에 스스로 숨을 거두었다. 대단히 어려운 일로 열부전에도 드물게 보이는 사례이다. 그리고 마침내 같은 혈에 묻히는 소원을 이루었으니 그 늠름하고 열렬한 것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세상이 말세인지라 아무도 그 정절을 드러내지 않으니 어찌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더욱 박절한 것이 아닌가.
祭大山李先生(1782) : 대산 이상정(李象靖)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선생은 주자를 사모하고 퇴도를 흠모하여 맛있는 음식처럼 즐겼고, 안빈낙도하면서 시종일관 명성(明誠) 공부를 하여 대성하였다. 갑자기 세상을 뜨니 나라에는 시초와 큰 거북이가 없고 선비는 큰 스승을 잃었다. 봄바람처럼 따뜻한 기상을 어디에서 다시 볼 것인가. 고산은 푸르기만 하고 호수는 넘실대는구나. 선조의 문집과 {행당원고}에 글을 써주어 가려진 덕을 밝히게 되었으니 글자 한 자의 가치가 천금과 맞먹는다.
祭南野朴先生 : 남야 박손경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소시부터 큰 포부를 지녔으나 위대한 소리는 합치되기 어렵고 큰 그릇은 팔리지 않는 법이다. 옥을 말아쥐고 금곡에서 고인을 벗으로 삼아 음미하는 게 깊었고 쌓인 게 풍부하였다. 산림의 영수로 대산에 필적했으나 오로지 고개를 숙여 문형을 양보하였다. {행당원고}에 쓴 글은 후세에 영원히 전하는 데 충분하다.
祭朴威如重慶(1785) : 박위여 중경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군은 관리로 부임한 이래 술을 절제하고 여색을 멀리하여 오직 공사를 처리하고 백성을 다스리고 선비를 진작하는 것으로 업무를 삼아 크게 명성이 있었다. 또한 문묵을 즐기어 이웃 고을의 사또가 문회를 열면 반드시 군을 초청하여 문형을 맡게 하자 관서지방 사람들은 '문장태수(文章太守)'라 칭송하였다. 군은 겉으로는 무난한 듯 보이나 속으로는 집수(執守)하는 게 있었다.
祭金叔明邦燮 : 김숙명 방섭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공은 지금의 세상에 나서 고인의 마음과 모습, 풍도를 지녀 관대해서 가혹하지 않고, 침착해서 드러내지 않고, 통나무처럼 조탁을 하지 않았다. 남과 이익을 다투지 않고 세력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탐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가난을 편케 여기고 분수를 지켰다.
祭金院長弘景(1788) : 원장 김홍경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공은 아버지의 친구로서 나를 종매서로 삼았다. 연장자란 것을 내세우지 않고 나를 종제처럼 사랑했는데 도량을 살펴보니 참으로 중후한 어른이었다. 순박한 자질은 옥 덩어리 같고 말을 조심하는 것은 선정에 든 것 같았다. 희로의 기색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타고난 성품이오, 탐내거나 다투지 않는 것은 공부가 근실하여 지키는게 확고한 때문이다.
祠宇移安時告由祝(1756) : 사우를 이안할 때 그 사유를 고한 축문이다. 종가를 남쪽으로 옮겼을 때 사당의 신주를 모시지 못했다. 형편에 구애되어 참배를 거른 적도 있었는데 이제 경영하여 옮겨 모신다. 종손이 갑자기 사망하여 자식 하나가 상중에 있으나 삼가 이전의 뜻을 받들어 새집에서 맞이한다.
代族人移安本生家神主時告由祝(1766) : 족인을 대신해서 지은 것인데 본생가의 신주를 이안할 때 그 사유를 고한 축문이다. 선왕의 예제에 의하면 한 집에 두 개의 계통이 없는 법이다. 거듭 신주를 봉안한 것은 실로 임시방편에서 나온 것으로 이제 좋은 날을 받아 옮겨 모신다.
祭守吾齋安訥甫敏修(1790) : 수오재 안눌보 민수를 애도하는 제문이다. 나의 벗인 수오재는 어려서 환와에게 집지하여 도의를 들었다. 자신을 살피는데 독실하고 이치를 보는데 밝아서 주선하고 행동하는 것이 고인의 법도와 합치되었다. 스승 사후에는 더욱 주야로 송독하여 견해가 적확하고 저술이 정치하였다. 몇 이랑의 원당을 나의 언덕으로 삼아 서재를 수오(守吾)라 이름하고 도서를 벽에 가득 채우고 창 앞에 송죽 등 여섯 벗을 심어 맑은 흥취를 돋으면서 시를 읊고 흥을 부치어 정신과 뜻을 즐겁게 하였다. 성품은 부드러운 듯 하나 강직하고 엄한 듯 하나 화평하였고, 있어도 없는 듯 하여 겸양으로 자신을 낮추었다. 남의 좋은 행실을 들으면 장을 먹는 것처럼 즐거워했고 남의 나쁜 짓을 보면 마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아파했다. 임하에서 70평생을 지냈기에 상수를 누릴 줄 알았는데 어찌 질환에 갑자기 떠날 줄 생각했으랴. 예전 놀던 것을 추억하니 어느 덧 그림자를 이루어 형체가 없으나 유유한 나의 회포는 잊고 싶어도 그만두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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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여고의 봉사활동 동아리 <예인RCY>의 단장 이서영, 11일 서울교육대학교종합문화관에서 열린 제4회 전국청소년자원봉사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김서영(예천여고 2학년 김서영 학생 '제4회 전국청소년자원봉사대회'에서 금상 수상 쾌거!) [기사] : 예천여자고등학교(교장 이장식) 2학년 김서영 학생이 2019년 8월 11일 나눔코리아 전국지회지부에서 주최하며, 서울교육대학교종합문화관에서 열린 제4회 전국청소년자원봉사대회에 참가해서 금상을 수상하며 예천여고의 이름을 빛냈다. 김서영 학생은 예천여고의 봉사활동 동아리인 '예인RCY'의 단장(지도교사 고연자)으로 이번 전국청소년자원봉사대회에 참가하면서 학생 개인의 영예를 떨침과 아울러 예천여고의 봉사활동 동아리를 전국적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예인RCY' 는 예천사랑마을(장애인요양시설)과 예천경희요양병원을 격주로 방문하여 수시로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RCY캠프를 통해 봉사자로서의 진정한 자세를 수양하고 있다. 또한 매년 대한적십자사에서 주도하는 응급 처치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등 경북지역 RCY 중 최고의 동아리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번 전국청소년자원봉사대회를 지도한 고연자 선생님은 "학생 스스로 자기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바른 인성을 함양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원과 지도, 관심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많은 관심과 격려를 당부했다.(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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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정보화농업인회(회장 김미숙), 13-14일 문경에서 2019년 경북농업인 정보화경딘대회에서 단체부문 대상과 상금 100만원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예천군정보화농업인회(경북 농업인 정보화 경진대회 예천군 대상) [기사] : 경상북도정보화농업인 예천군지회(회장 김미숙)가 경상북도농업기술원이 주최한 ‘2019년 경북 농업인 정보화 경진 및 전진대회’에서 단체부분 ‘대상’과 상금 ‘1백만 원’을 수상했다. 문경시 농암면 STX리조트에서 2019년 8월 13일부터 2일간 진행된 이번 경진대회는 경북정보화농업인 4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보화를 선도하는 농업인 육성과 4차산업 혁명 시대에 소통·연결 정보화로 온·오프라인 직거래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된 대회로 총 6개 분야로 경진이 실시됐다. 6분야 경진대회 중 4개 분야 경진은 사전접수와 서류심사로 진행됐으며 나머지 2개 분야인 시군 농산물 홍보 퍼포먼스 경진과 농업인 경영ㆍ정보화 단체 경진은 대회 당일 현장심사로 진행됐다. 예천군은 사전 접수한 서류심사에서 ICT의 농업분야 선도·창의적 활용 사례 경진 대상(개포면 김종연), 매우 특별한 홍보 및 스토리텔링 경진 최우수상(호명면 김성심), SNS 활용 농산물 마케팅 활성화 경진 우수상(보문면 김영성) 3개 분야를 수상했다. 특히, 시군 종합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아 농업인 경영·정보화 단체경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리며 예천군 정보화농업인회의 단합된 힘과 실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했다. 또한, 행사 기간에 2019 예천세계활축제와 2020년 개최될 예천세계곤충엑스포를 홍보하는 등 예천의 축제행사를 널리 알리는데도 회원 모두 앞장섰다. 예천군정보화농업인회(회원 49명)는 회원 농가 블로그를 방문하는 품앗이 홍보와 크로스코칭을 통한 농장의 장단점 등 유익한 정보교환을 하고 있으며, 야간자율학습을 통한 농산물 사진촬영과 블로그 및 SNS 활용 등 서로 돕고 배우며 소통하는 활동으로 끈끈한 정을 과시하고 있다. 김학동 군수는 “우리 농업·농촌은 온라인 직거래 확대, 지속적인 고객관리와 신뢰 확보, 그리고 생산, 가공, 체험 등과 연계한 6차 산업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강조하며 정보화농업인들이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새로운 아이디어 농업으로 농업 발전에 앞장 서 줄 것을 당부했다.(예천신문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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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