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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556:국창유고...국화꽃잎...
작성자장병창 @ 2019.08.19 17:20:42

  도청신도시 예천 556 : 국창유고...국화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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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答安訥甫] : 안눌보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모두 3편이다. 첫째는 1784년에 쓴 글로 {병곡집}의 표제 쓰는 일에 관해서는 사람을 구했고, 국화 몇 포기를 보내 준다는 내용이다. 둘째는 1788년에 쓴 글로 상소에 대한 왕의 답변이 매우 넉넉하여 스승 눌은의 오명을 깨끗이 씻어버리게 된 것을 기뻐한 것이다. 셋째도 1788년에 쓴 글인데 각자 병이 들어 소청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데 대해 한탄한 것이다. [答金道彦宗德直甫宗敬四昆季書(1794)] : 김도언 종덕 4형제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우선 김도언의 계씨 상사에 대해 애통함을 표시하고, 수오재 안민수의 행적을 적어 보내 비문을 청한 내용이다. [與權汝三思謙書(1784)] : 권여삼 사겸에게 보낸 서간문으로 노인의 몸으로 눈이 쌓인 백릿길을 무릅쓰고 찾아 준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자신처럼 명이 궁한 자는 죽기도 쉽지 않다고 하면서 답례로 마땅히 방문하여 여러 벗과 함께 계원과 암정, 석천의 사이에 노닐고 싶으나 조만 간에는 예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이다. [答李汝行時達書(1785)] : 이여행 시달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이여행의 주갑이 되던 해에 보낸 글이다. 이여행이 자신의 환갑날에 국창을 초청하자 가내 여러 사정을 들어 양해를 구하고, 부탁한 회갑 송축시에 대해서는 원시의 운자를 기다린 뒤 차운해서 올리겠다고 하였다. [答金和國彦燮書(1785)] : 김화국 언섭에게 답한 서간문이다. 사또가 부임한 뒤 독촉하는 거조는 없으나 도리로 보아서는 자제를 보내 하소연해야하니 형편을 보아 출행하는 것이 좋겠다. 관문에 출입하는 경우에 시비를 따질 때는 사리를 헤아려 다툴 것은 다투어야 하니 합치되면 머물고 합치되지 않으면 떠날 뿐이다. 오직 공정과 염치, 두 글자로 마음 쓰는 법을 삼아야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答趙光彦頊書(1785)] : 조광언 욱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역사서를 읽는 법은 흥망과 치란의 자취, 어진 자와 아첨하는 자, 충성스런 자과 간사한 자의 행위를 서로 참고하여 감계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與權支國以肅書] : 권지국 이숙에게 보낸 서간문으로 모두 2편이다. 첫째는 1785년에 지은 글로 득실로 본심에 누를 끼치지 말 것과 더욱 공부에 매진하여 초연히 속세의 학문을 탈피하여 자득할 것을 주문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의중의 사람과 손을 잡고 아름다운 산사 사이를 노닐면서 천고의 흥망성쇠를 논하고 싶다고 했다. 둘째는 서로 알고 지낸지가 이미 40여년 되는데 보내온 글에 감당할 수 없는 말이 많아 부끄럽다 하면서, 노년에 더욱 공부에 힘써야 하되 새로운 책을 보는 것 보다는 예전에 읽던 책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했다. [與李季胤重績(1791)] : 이계윤 중적에게 보낸 서간문으로 적성산인이 선물한 靈壽杖이란 지팡이를 편지와 함께 보내면서 백세 뒤에 이 지팡이를 짚고 백옥루로 나를 찾아와서 적성자를 만나자고 하였다. [答玄上人(1785)] : 현상인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보내준 시구 중에 "前生後死"의 말은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는데 전생이 모두 꿈이거늘 후생이 어찌 홀로 꿈이 아닐 것인가 반문하면서 보내준 청부를 백주와 바꾸어 먹었더니 대취하여 자세하게 답할 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答李汝承錫胤(1786)] : 이여승 석윤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그곳의 풍토와 습속이 우리 남쪽과는 아주 딴판이니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고 마음을 더욱 굳게 먹어 고향 친구의 기대에 부응하라고 당부한 뒤, 그곳 주위의 여러 고을에는 우리 영남 선배들의 거사비가 있으니 사또도 작은 고을이라 여기지 말고 반드시 충서와 공렴으로 선정을 펼 것을 바라는 내용이다. [答朴憲度漢淵(1786)] : 상중에 있는 박헌도 한연에게 답한 서간문이다. 병이 날 경우에는 술도 먹고 고기도 먹어야 하니 상중에 몸이 상해서 병이 난다면 군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몸을 훼손하여 죽는 것을 자식이 없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였다. 예서를 읽는 겨를에 山書를 본다고 하는데 길지를 구하는 것이 상정이긴 하나 묘소의 길흉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예전의 학업을 익히어 그 의심스런 것은 能翁에게 질정하기 바란다. 본래 청약한 자는 혈기가 부족한데 단오에 익모초를 취해 음지에 말렸다가 빻아서 환을 만들어 복용하고, 궁귀와 섞어 만든다면 더욱 약효가 좋다고 하였다.

 

  [答金君若宗五書] : 김군약 종오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모두 2편이다. 첫째는 1777년에 쓴 글로 憤 에 대한 해설과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속언에 대해서는 {우복집}을 살펴본 뒤 다시 논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1778년에 보낸 글이다. 외우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필시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인데 천 번을 읽으면 글의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경전의 말씀은 모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니 단지 뜻만 부연해서는 안되고 체험하여 실천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答宋坦經弘九(1789)] : 송탄경 홍구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독서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 천 권의 책을 펼쳐 보는 것이 소리를 내어 열 줄의 글을 읽는 것만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천장의 글씨를 쓰는 것이 유의하여 한 글자를 쓰는 것만 못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치밀하게 공을 들여 익숙하게 외운 뒤 다른 책이나 우리나라 문장가들의 글을 읽어 견해를 넓혀야 한다. 학문이란 사람에게 있어서 음식과 의복과 같은 것으로 하루라도 그만둘 수가 없으니 반드시 성인의 "배움은 미치지 못한 것과 하고 오히려 잃을까 두려워한다"는 말을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答金鼎吉象鉉(1786)] : 김정길 상현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疑禮 서너 조목의 질문에 대해 답변한 것인데 龍岡처사의 문목 답서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본생가의 상사를 위문하는 자는 마땅히 각 폭을 사용해야 하며 한 폭에다 상주의 이름을 연서하여 묻는 것은 마땅치 않다. 답장의 연월 밑에 먼저 주인의 성명을 쓰고 그 우측에 상인의 이름을 순서대로 쓰는 것이 좋다. [答孫汝述弘纘(1788)] : 손여술 홍찬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소산장을 뵙고 제반의 사정을 갖추어 말했으나, 한 가문의 문자를 한 사람이 짓는 것은 번잡하다며 사양을 했다. 전에 보내준 묘갈문에 대해서는 소산장이 지적은 하면서도 역시 손을 대지 않으므로 참람함을 잊고 대충 산삭하고 윤문해서 별지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答金士重] : 김사중에게 답한 편지로 모두 2편이다. 첫째는 타女와 영兒에 대한 답변을 매우 조리있게 논술했다. 타녀란 마음을 지적한 것으로 제어하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고, 영아란 기를 지적한 것으로 기르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둘째는 1784년에 쓴 글로 자신의 소회를 개진한 고백적 성격의 장문이다. 지금의 세상에서 완전한 사람이 되기 어렵다. 사소한 이해라도 있으면 문득 계교를 부리면서 논설과 취지가 자기와 같으면 가까운 친척이 되고, 다르면 초와 월처럼 전혀 모르는 사이로 지낸다. 종중의 산을 둘러싸고 전개된 산송에서 패하게 되어 숭정처사 두 선조의 은거지와 4 5대에 걸쳐 소유하던 땅이 아전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내가 죽은 뒤에는 말 한마디 언급할 자가 없을 것 같아 올해 안으로 예천 사또에게 소장을 올리고 내년 봄에는 서울로 올라가 격쟁할 생각이다. 산송 문제는 죽을 각오를 하고 논쟁을 벌일 정도로 원통함이 골수에 사무쳐 있었다.(http://www.koreastudy.or.kr 2007)

 

  국창유고(菊窓遺稿) [冊] : 예천 출신 국창(菊窓) 김필형(金弼衡)의 문집으로, 4권 4책. 영본(零本) 1책, 필사본이다.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된 국창유고에는 두 종의 이본(異本)이 있다. 하나는 후손 가에 소장되어 온 4책의 교감본이고, 다른 하나는 동처 소장의 교감본 이전에 정리된 초고본으로 보이는 영본 1책이다. 영본 1책은 표제에 권9의 표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의 총 권수는 적어도 9책 이상이었던 것 같다. 교감본과 영본에는 모두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정확한 필사 시기나 필사 주체 등을 알 수가 없고, 저자에 대한 기초적 정보를 제공하는 비지문이나 행장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교감본의 구성 체계를 보면 권1은 詩 271題, 권2는 書 63편, 권3은 書 55편, 序 18편, 권4는 祭文 37편, 哀辭 4편, 墓碣銘 1편, 上樑文 1편, 雜錄 1편을 수록하고 있다. 문집의 여러 곳에 먹물이나 주묵으로 원래의 글씨를 긋고 수정된 글자를 적어 넣었다. 가필과 산삭의 비교 분석을 통해 해당 글의 최종 수록 여부와 오기에 대한 교정, 체제의 보완 등의 과정을 추론할 수 있다. 零本 1책에는 교감본의 書와 중복되지 않는 書 92편과, 저자의 인품, 성격, 학문 연원, 교유 관계, 친지 등에 대해 일정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文 2편, 輓詞 9편, 祭文 32편, 小祥時祭文 16편, 大祥時 祭文 31편을 부록으로 편성하여 수록하고 있다. 교감본의 표제에는 『菊窓遺稿 元』, 『菊窓遺稿 亨』, 『菊窓遺稿 利』, 『菊窓遺稿 貞』으로 제명되어 있어 비교적 定稿本에 근접한 4책의 완질본임을 알 수 있다. <국창유고> 권4에 上梁文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佳谷家舍上梁文(1574)/ 가곡에 집을 지을 때 상량문으로 칠석에 지었다. 복주의 큰 고을에 가곡은 이름난 곳이다. 에워싼 화산은 눈앞에서 광경을 독차지하고 구불구불 흐르는 낙수는 문밖에서 맑은 물결을 일렁인다. 주인[국창 자신]은 7대에 걸쳐 예천에서 살았고 금곡에서 10년 살다가 반생을 떠돌더니 하루아침에 이곳에 우거하여 집터를 잡았다. 백대 친분의 구지에 10여 칸의 새집을 세우니 가운데는 마루를 깔고 좌우에는 방을 만들었다. 원컨대 신은 불행을 내쫓고 땅은 빼어난 기운을 잉태하여 자손과 효자가 계속 이어져 문호를 폐하게 하지 말라.”(http://www.koreastudy.or.kr 2007)

 

  국창유고(菊窓遺稿) : 卷1 卷2 卷3 卷4 零本 菊窓遺稿 / 答金士重/ 김사중에게 답한 편지로 모두 2편이다. 첫째는 타女와 영兒에 대한 답변을 매우 조리있게 논술했다. 타녀란 마음을 지적한 것으로 제어하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고, 영아란 기를 지적한 것으로 기르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둘째는 1784년에 쓴 글로 자신의 소회를 개진한 고백적 성격의 장문이다. 지금의 세상에서 완전한 사람이 되기 어렵다. 사소한 이해라도 있으면 문득 계교를 부리면서 논설과 취지가 자기와 같으면 가까운 친척이 되고, 다르면 초와 월처럼 전혀 모르는 사이로 지낸다. 종중의 산을 둘러싸고 전개된 산송에서 패하게 되어 숭정처사 두 선조의 은거지와 4 5대에 걸쳐 소유하던 땅이 아전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내가 죽은 뒤에는 말 한마디 언급할 자가 없을 것 같아 올해 안으로 예천 사또에게 소장을 올리고 내년 봄에는 서울로 올라가 격쟁할 생각이다. 산송 문제는 죽을 각오를 하고 논쟁을 벌일 정도로 원통함이 골수에 사무쳐 있었다./ 예천 관련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영남사림문집이다.//

 

  국창집(菊窓集) [冊] : 용궁면 무이리 출신인 국창 이찬(李燦, 1575-1654, 工曹正郞)의 문집으로, 서울에서 출판되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대구가톨릭대(권1, 권2)이다.(keris 2003)

 

  국초집(國樵集) [冊] : 국초 박봉진(朴鳳鎭)의 문집으로, 상권 979쪽, 하권 860쪽, 활판으로 인쇄하였다. 용문면 금당실 함양 박씨 집안에 소장되어 있다.(금당ㆍ맛질의 역사적 위상 2003)

 

  국태조경(주)(대표자:조봉기)에 대한 영문 Compact Report(국태조경(株)(代表者:조봉기)에 對한 英文 Compact Report(ER2)) [報告書] :한국신용평가정보에서 2006년 5월 17일에 발행하였다. [본문 요약] : 국태조경(주)에 대한 재무제표 및 기업정보를 중심으로 분석한 상세보고서(기업개요, 관계사현황, 종합신용등급, 현금흐름등급, Watch등급, 주요주주현황, 주요재무상황, 주요재무비율,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소송정보 등 포함)이다. 상호명 : 국태조경(주) / 본사주소 : (757-803) 경북 예천군 예천읍 남본리 238-3 국태조경(주) / 결산일자(재무제표 최근 결산일자) : 2002년 12월 31일 / 기준일자(신용등급, 개요정보 변동일자) : 2006년 05월 17일(daum 2008)

 

  국토개발(대표자:이상영)에 대한 영문 Brief Report(國土開發(株)(代表者:이상영)에 對한 英文 Brief Report(ER1)) [報告書] : 한국신용평가정보에서 2008년 6월 2일에 발행하였다. [본문 요약] : 국토개발(주)에 대한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분석한 요약보고서 (기업개요, 종합신용등급, 현금흐름등급, Watch등급, 주요재무상황, 주요재무비율등 포함)이다./ 상호명 : 국토개발(주) / 본사주소 : (757-805) 경북 예천군 예천읍 서본리 70-11 국토개발(주) / 결산일자(재무제표 최근 결산일자) : 2007년 12월 31일 / 기준일자(신용등급, 개요정보 변동일자) : 2008년 06월 02일(daum 2008)

 

  국토구역총람((最新)國土區域總覽) [冊] : 청구출판사에서 1963년에 발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1층 서고자료신청대에 소장(청구기호 6360-46)되어 있다. 예천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www.nl.go.kr 2006)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도시개발(國土均衡發展을 爲한 都市開發) [學術저널] : 예천 출신 권일(權溢, 1965- , 忠州大 敎授) 등(강현수, 김현수, 진미윤)의 논문으로,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에서 2006년 3월에 발행한 <도시정보 2006년 3월호(No. 288)> 3~13쪽(11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 : 들어가는 말/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향후과제/ 참고문헌/ 주(daum 2009)

 

  국파선생문집(菊坡先生文集) [冊] : 용궁면 무이2리 소천(蘇川) 사람인 국파 전원발(全元發, 麗末鮮初, 竺山府院君)의 문집으로, 1책(24張), 석판본(石版本), 29.9x20.5cm,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1.9x16.5cm, 계선(界線), 12행(行) 24자(字), 주쌍행(註雙行), 판심(板心)은 상하 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전도현(全道鉉)이 편집하여 1970년에 발행하였다. 서문은 이만인(李晩寅), 발문은 후손 전도현이 썼다. 목차는, 서문, 문집, 발문(47쪽)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운영실에 소장(청구기호 古2511-68-13)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국파선생문집(菊坡先生文集) [책] : 용궁현 출신 국파 전원발(全元發 : 麗末鮮初)의 문집으로, 1책(48張), 석판본(石版本), 29.9x20.5cm,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1.9x16.5cm, 계선(界線), 12행(行) 24자(字), 주쌍행(註雙行), 판심(版心)은 상하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다. 서문(序文)은 이만인(李晩寅), 발문(跋文)은 후손 도현(道鉉)이 썼다. 1970년에 후손 도현이 발행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 고전운영실에 소장(청구기호 古2511-68-13)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국파 전선생 유허 각자(菊坡 全先生 遺墟 刻字) [刻石] : 용궁면 무이리 584-2번지(田)에 있는 각자로, ‘소천’ 마을 입구 청원정(淸遠亭) 옆 금천(錦川) 변에 커다란 암석이 있는데, 국파 전원발(全元發)이 야외에서 산수를 즐겨가며 노닐던 곳이라 한다. 암석에는 자연 바위를 다듬은 후 58x175cm 정도의 구획을 마련한 후 음각으로 ‘菊坡全先生遺墟’라고 각자(刻字)하였다. 누가 언제 새겼는지는 미상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국하유고(菊下遺稿) [冊] : 국하 이인섭(李寅燮, 1669-1762)의 유고로, 1책, 사본이다. 용궁면 무이리 여주 이씨가 소장하고 있다. 이인섭은 문과 소헌 이식의 손자, 덕봉 원룡의 아들이다.(驪州李氏先祖由來 2001)

 

  국헌집(菊軒集) [冊] : 국헌 이준구(李濬九, 1827-1915)의 문집으로, 3권 2책, 사본(影印出刊)이다. 용궁면 무이리 여주 이씨가 소장하고 있다.(驪州李氏先祖由來 2001)

 

  국화(菊花) : 열녀, 사노 환이(私奴環伊)의 아내,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부모가 개가(改嫁)시키려 하자, 사양하며 빗질도 않고 세수도 하지 않으며 수절(守節)했다. 시아버지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시아버지가 90세가 되도록 봉양하고 부축하기를 한결같이 하니, 시아버지는 그 효성에 감동되어 다른 아들의 부양을 받지 않고 오로지 봉양만 받았다. 상(喪)을 당하여도 모든 것을 스스로 담당하였으니, 이웃에서 감화 받은 이들이 많았다.(醴泉郡邑誌 1770 1841, 醴泉郡誌 1939)

 

  국화 꽃잎의 Carotenoid계 색소의 안정성(菊花 꽃잎의 Carotenoid계 色素의 安定性) [學術저널] : 용문면 죽림리 출신 권중호(權重浩, 1954- , 醴泉中, 醴泉農高 卒業, 慶北大 敎授) 등(박난영, 박인환)의 논문으로, 한국농산물저장유통학회에서 1997년에 발행한 책 331-335쪽(5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 요약] : The stability of carotenoid pigments extracted from Chrysanthemum petals against pH, sugar, and organic acid was investigated. The contents of total carotenoids in C. boreale and C. morifolium were 3.37mg% and 4.56mg% Per fresh weight, respectively. The elect of pH on the stability of extracted carotenoids showed that the periods reaching 50% of pigment retention were more than 5 to 6 days in pH 4, and the longer periods in pH 6 to 7 in both samples. The addition of sugars such as sucrose, sorbitol, glucose and fructose resulted in the reduction in pigment stability of C. boreale, but C. morifolium was contrast to C. boreale. However, citric acid and ascorbic acid were found to have a prote...(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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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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