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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562 : 굴미..굽다리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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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미 : 재경종친회 굴미 시제 참석 안내/ 2012.11.06/ 재경종친회 굴미 시제 참석 안내 우리 용궁 여주이씨(참의공파) 재경종친회에서는 굴미(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 산71번지) 시제에 참석하고자 관광버스가 출발합니.../ cafe.daum.net/ygmui/52t... 용궁 여주이씨..(daum 2016)
굴미 : 임진년 굴미(추원재) 묘사 시행 안내/ 2012.11.15/ 임진년 굴미(추원재) 묘사 시행 굴미(추원재) 묘사를 다음과 같이 시행하니 종원들께서는 많이 참석 하여주시기... (토요일) 10.00 나. 장소; 풍양면 청운리(굴미) 선영.../ cafe.daum.net/ygmui/52t... 용궁 여주이씨.. | 댓글 1(daum 2016)
굴미 : 예천성당역사(39) : 김동언 본당신부의 굴미공소 설정.../ 장병창 저 2004.09.20/ 예천군 풍양면 청운2동 굴미(九美)에 있는 굴미공소는 청운공소라고도 하며, 1943년 11월 18일에 김동언 신부가 공소로 설정하고, 엄재원(嚴在元) 베드로를 공소회장으로.../ cafe.daum.net/yecheonsu... 예천성당(daum 2016)
굴미 : 내 고향 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 삼강주막, 회룡포/ 2010.03.21/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는 마을에 있는 큰 산인 '청산靑山'과 '알운산·雲山'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성당, 굴미, 사막, 구룡동, 사기점' 등의 마을로 나뉘어.../ cafe.daum.net/poem-town... 장영희의 시마..(daum 2016)
굴미 : 풍양면 리(里)별 지명/유래/ 2007.04.13/ 청운리 * 굴미 뒷산인 청산의 청자와 알운산의 운자를 따서 청운리라 불리워 짐. 하풍리 * 유래는 없으나 낙동강이 마을의 반쯤을 감고 돌고 沼가 두 곳에 있어 글자.../ cafe.daum.net/youngsukk... 풍양쉼터(daum 2016)
굴미 : 풍양면의 이별 지명유래/ 2006.05.12/ 진다고 함. * 신흥 : 새롭게 興盛해 지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함. 청운리 * 굴미 뒷산인 청산의 청자와 알운산의 운자를 따서 청운리라 불리워짐. 하풍리.../ cafe.daum.net/poongguho... 초록의 땅 (綠..(daum 2016)
굴미 : 무이서당 이야기/ 2014.09.07/ 백성의 굶주림을 해결하는데 솔선하였으며 학문 연구에 여생을 보냈다. 무덤은 풍양면 청운리 굴미의 청사산(靑獅山)에 있고, 선조 때 한성부우윤에 증직되었다. 무덤.../ cafe.daum.net/redfox121... 딸에게 알려 ..(daum 2016)
굴미 : 22기 동기 주소록/ 2008.09.12/ 경북 예천군 풍양면 낙상2리 <남선알미늄> 안수일 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굴미), 이 름 주 소 자 택 직 장 권영완 경북 예천군 풍양면.../ cafe.daum.net/pungyangm... 풍양중22회(daum 2016)
굴미 : 祖上의 발자취/ 2007.08.14/ 그밖에 名官, 名筆, 孝子가 다수하여 가문이 번창하였으며 묘역은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 굴미(九美)에 있으며 공을 추모하는 별묘가 세워져 있는 무이서당이 웅장한.../ cafe.daum.net/ygmui/8NF... 용궁 여주이씨.. | 댓글 1(daum 2016)
굴미 : 고향 답산(대구대학교 풍수지리 제3기생(2001년)) 자료/ 2009.02.04/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평지 묘터라 주위를 어떻게 살펴야 하는지? 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 굴미, 굴뫼, 청운산, 청산 1세 李仁德 고려 예종 년간(1106-1122)-의종 년간.../ cafe.daum.net/post0008/... 여주이씨참의..(daum 2016)
굴미 : 2003.09.21.대구대학 출발 답산 참고사항/ 2012.11.08/ 무성할 마을) 13. 말무덤 14.白將軍 馬柱木 15.蘇川書院(全元發) 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 굴미, 굴뫼, 청운산, 청산 1세 李仁德 고려 예종 년간(1106-1122)-의종 년간.../ cafe.daum.net/post0008/... 여주이씨참의..(daum 2016)
굴미 : 여주이씨 참의공파 선세유적 및 유물/ 2008.03.15/ 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 굴미, 5. 추원제 -창암공 이하 선영산소 재숙소 -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 굴미, 6... 후손 재숙소 -경북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 굴미 청룡등.../ cafe.daum.net/ygmui/8NF... 용궁 여주이씨..(daum 2016)
굴미 : 오늘 하루 일기를 쓰면서../ 2009.10.10/ 하시는 말, 맛이 없니껴~예 (다음 동창모임에는 손색이 없더라 ) 다시 굴미 고개 정상에 오니 풍양면이 한눈에 보이면서 막걸리 먹은 게 취기가 있어 잠시 휴식하고.../ cafe.daum.net/sp18/GnME... 신풍초등18회 .. | 댓글 3(daum 2016)
굴미 : 인물 소개 10 소헌공 휘. 식/ 2011.01.22/ 이상정. 여용빈. 안태준. 박성채. 김응하에게 각각 출가했다. 묘소는 예천군 풍양면 청운리(굴미)에 있으며. 종손(용옥 씨)이 공의 문과 홍패와 교지 수점을 보존하고.../ cafe.daum.net/post0008/... 여주이씨참의..(daum 2016)
굴미 : 예천 "삼강주막"-재미난 이야기/ 2014.04.11/ 이 한 사십호 될라 몰라. 삼강 저 너매는 사막, 성당, 굴미, 그 다음에는 와룡 그 다음이 풍양 그렇지. 지금은... 기맥키지 기맥혀. 나 고향은 풍양면 우막이라카는 데지.../ cafe.daum.net/byhdg/BRi... 박약회 대구광..(daum 2016)
굴미 : 본당 자료담당자는 추가기록해 주세요./ 2014.03.11/ 소(풍양면 청운2리)를 창설하였고, 묵계공소를 폐지하였... 군에 17개소로, 즉 도장, 축동, 암천, 대죽, 수산, 동림, 풍덕, 모단, 산성, 다래, 길말, 신산, 굴미, 영주, .../ cafe.daum.net/yecheonsu... 예천성당(daum 2016)
굴미 동제(屈味洞祭) [洞祭] : 풍양면 청운2리 굴미(屈味)에 있는 동제로, 옛부터 음력 정월 7일 경 동민 중 생기(生氣)를 맞추어서 제관(祭官) 2인을 선임한다. 제관들은 동제까지 1년 간 내내 근신하는 뜻에서 궂은일을 보지 않고, 동답(洞畓)에서 나온 것으로 자리(草幕), 떡시루, 그릇 등 모든 제기(祭器)는 전부 새 것으로 사와서 정월 15일 밤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고장재 밑에 있는 샘물로 밥을 짓고 장만한 시루떡 등으로, 15일 자정에 먼저 동신목(洞神木)이 있는 거북바위 밑 청운리 999번지에 차려놓고 재배하고, 다음에 청운리 1001번지 팽나무 밑에 가서 같은 방법으로 차려놓고, 호주 한분한분 생(生)을 부르고, 기복(祈福)하면서 사고지(四故紙) 1/4의 소지(燒紙)를 올린다. 이때 동민은 마을에 모여 놀다가도 자정 전에 각자 집에 가서 개도 안 짖게 조용히 기다리다가 제관이 제사지내려 등불을 들고 나가고 고장재 물을 떠가야, 촛불 켤 사람은 촛불을 켜고, 찰밥할 사람은 고장재의 물을 떠와서 찰밥을 짓게 된다. 아침에 음복이 있게 되는데, 상(喪)을 당한 사람은 가지도 않고 제수(祭需)도 먹지 않는다. 또한 12일부터는 동리 어귀에 금줄을 치는데 동리에 들어올 수는 있어도 동제를 마칠 때까지는 누구든 나갈 수는 없다. 1972년부터는 동답 800평이 있던 것을 동리에 전기를 가설하기 위해서 전부 매각하고 이장(里長)이 자비로 탁주, 과실, 포(脯)를 사서 위와 같이 지낸다. 아침에 동민이 모여서 대동회(大洞會)를 개최한다.
굴미재 [記事] : 풍양면 청운1리 산56번지 청운 뒷산으로, 속칭 굴미재라고 한다. 청운 이장 김병구 등은 1995년 2월 21일 굴미재에 일제가 인재 배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산허리를 전단했다는 제보가 풍양면을 경유하여 예천군 문화공보실에 접수되었다. 청운리 뒷산은 청산(221m)인데, 아름다운 산으로 소백산의 지맥이 뻗어 용맥(龍脈)이 노적봉(露積峰)을 만들고 산 중앙에 다시 솟아올라 용머리를 만들었는데, 굴미의 지형은 지기(地氣)가 성한 와우형(臥牛形)으로서 일제가 자좌오향(子坐午向)이 형국에 지기를 차단했다고 전해오는 지역이다. [확인 과정 및 결과] : 1995년 4월 10일 14시 정양수, 김상문, 장병창 지명위원 겸 향토사연구가 및 문화공보실 문화재계장, 풍양면장 등이 제보자의 안내로 현지를 확인하였다. 제보 지점은 좌표상으로 145x352 지점이었으며, 맞은편에는 덕산(240m)이 안산(案山)으로 마주하고 있고, 굴미마을에서 숨미기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폭 4m, 높이 2.5m 가량의 산허리를 잘라 지기(地氣)를 차단해 놓았는데, 그 넘어서는 화전지로 보이는 경지가 있었다. 예천군 지명위원 겸 향토사연구가 정양수 등은 현지 확인 후 지기 차단을 위한 산허리 절단은 설득력이 없으나 기왕의 절개지이며, 숨미기마을과 통행하는 농로의 역할을 하므로 존치함이 가하다 하고 의견을 피력하였다. [제보자] : 김병구(65세, 풍양면 낙상리), 김명회(61세, 풍양면 낙상리), 권오근(35세, 풍양면 낙상리), [김교탁의 看山評] : 소백산에서 달려온 용맥이 큰 노적봉을 만들고는 잠시 엎드리는 듯 하더니만 중앙에서 다시 불쑥 솟아올라 흡사 용의 머리를 만든 듯 보이는 이 산에서 오향(午向)을 바라보면 굽이치는 낙동강 강변에 금세 물속에서 헤엄을 치다가 솟아오를 듯안 물개 머리 형상이 보이는 붓 끝처럼 생긴 문필봉(文筆峰)이 한결 아름답다. 맞은편을 바라보면 큼직한 황소가 누워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와우형(臥牛形)이라 이 주변에 살고 있는 민가들의 살림은 더욱 풍요롭다. 이 청운1리 뒷산 자좌오향(子坐午向)에 일본인들은 높이 3m, 넓이 6m 정도로 파헤쳐 지기(地氣)의 흐름을 차단하여 인재의 배출을 막았다.(地名由來調査 및 쇠말뚝 찾기事業結果報告書 2005)
굴미재 : Travel | 천혜의 절경, 낙동강 숨은 비경 3선/ 2008.05.31/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풍양 삼강리는 ‘삼강주막’으로 이름난 곳이다. 굴미재는 삼강리에서 풍양면 소재지로 넘어가는 고개다. 삼강주막에서 한눈에 보이는 아주 가까운.../ hanco2004.tistory.com/ 위기에 빛난 대통령 ..(daum 2016)
굴미재 : 천혜의 절경, 낙동강 숨은 비경 3선/ 2008.07.05/ 합쳐지는 풍양 삼강리는 ‘삼강주막’으로 이름난 곳이다. 굴미재는 삼강리에서 풍양면소재지로 넘어가는 고개다. 삼강주막에서 한 눈에 보이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그러나 사람들은 삼강주.../ blog.naver.com/sls22600/ 메아리(daum 2016)
굴미재 : 카페글 낙동강 숨은 비경(인터뷰 365에서)/ 2008.06.16/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풍양 삼강리는 ‘삼강주막’으로 이름난 곳이다. 굴미재는 삼강리에서 풍양면 소재지로 넘어가는 고개다. 삼강주막에서 한눈에 보이는 아주 가까운.../ cafe.daum.net/eksalf3/2Y7T/ 단밀중학교 제3회동기회 | 댓글 1(daum 2016)
굴밋재 [고개] : 지보면 매창리 창골(倉洞) 동쪽에 있는 고개이다.
굴바우(窟岩) [窟] : 감천면 증거리 주마산(走馬山)에 있는 굴이다. [傳說] : 풍기(豊基) 뒷산까지 뚫렸다고 한다.
굴바우(窟岩) [바위] : 1) 감천면 포리(浦里) 굴바웃골에 있는 바위로, 밑에 굴이 있다. 2) 상리면 사곡리(沙谷里) 배바위마을 주변에 있는 바위이다.
굴바우(窟岩), 초롱바우 [바위] : 상리면 명봉리(鳴鳳里) 안트리 뒷산 중턱 숲이 우거진 산등성이에 있는 바위로, 크고 넓은데, 그 주위에는 아주 무성한 나무와 복잡한 암석으로 되어 있다. 이 바위 밑에는 동굴(洞窟)이 뚫려 있는데, 너비 약3m의 이 동굴 속은 괴상하게 생긴 바위들이 단계 꼴로 1층, 2층, 3층으로 되어 있다. 옛날 이 굴속에는 호랑이가 살았으나, 지금은 박쥐들이 살고 있다. [傳說] : 1) 옛날 안트리에 사는 어느 처녀가 이곳에 나물하러 와서 말 한 마디를 잘못해서 다리를 다쳤다. 그 후에도 여기에서 그런 봉변을 당한 사람이 있었다. 2) 1층에는 물탕이라고 하는 둥그런 물웅덩이가 있어 이곳에 사람이 빠지면 죽어서, 그 시체가 용문면(龍門面)에 있는 못에 뜬다고 한다. 3) 이 바위는 옛날 호랑이 놀이터였다. 안트리마을의 조태봉이라는 사람이 매일 그 바위에다 불을 켜놓았다. 호랑이를 쫓아내기 위해서 였다. 그래서 호랑이는 접근하지 못하고 떠나가면서 이르기를, '이산 저산 다 좋은데, 조태봉 때문에 놀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한다. 그 후로 불이 켜 있던 이 바위를 초롱바우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민요가 생겨났다. "초롱바위 조태봉, 내하고 놀기 싫어서, 바위에다 등(燈)을 달았구나."
굴바우 : →구리바우
굴바우골(窟岩谷) [골] : 예천읍 청복2리(淸福二里)에 있는 골짜기로, 자연석이 모여 굳어진 7m 가량의 굴이 있다. 이 굴속에 옛날 여우, 늑대, 오소리 등산짐승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굴산암 : →백운암
굴착토를 축조재료로 활용한 예천양수발전소 콘크리트표면 차수벽형석괴댐의 연구(掘鑿土를 築造材料로 活用한 醴泉揚水發電所 콘크리트表面 遮水壁螢石괴댐의 硏究) [記事] : 김학현 이경기 윤안상의 기사로, 삽도, 26cm, 서울 대한토목학회에서 2007년 12월에 발행한 <대한토목학회지> 제55권 12호에 수록되어 있다. ISSN : 0494481X, 간행빈도 : 월간이다. 대구한의대학교 중앙도서관 종합자료실에 소장되어 있다.
굴참나무 [植物] : 예천군의 산지에 흔히 자생하는 갈잎 큰키나무로, 학명은 Quercus variabilis Blume이고, 참나무과에 속한다. 콜크재, 기구재, 신탄재(薪炭材)로 이용된다.
굼다리 : →굴다리
굼들 [들] : 예천읍 상리(上里) 갯들 북쪽에 있는 들로, 큰 늪이 있었다.
굼들 :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상리[上里, Sang-ri]/ 2016.07.21/ 하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여 예천읍에 편입되었다. 갯들(浦坪) : 양지마 앞에 있는 들, 굼들 : 갯들 북쪽에 있는 들. 큰 늪이 있었다. 동녘마.../ blog.naver.com/hmi0419/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daum 2016)
굼바우, 구무바우, 구름바우 [바위] : 용문면 내지리(內地里)와 두천리 수항골(水項골, 屍往골)과의 경계인 운암지(雲岩池) 못뚝 수구(水口)에 있는 바위로, 낚시터로 이용되고 있다. [傳說] : 옛날 어느 장수가 말을 타고 이 바위 위를 지나가니 구멍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있다.
굼바우 : 용문면 지명유래/ 2011.12.22/ 龍岩, 굼바우, 궁바우),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가에 크고 넓은 바위가 있는데 龍이 또아리 틀던 곳이라 하여 龍바우라 일컫기 때문에 마을 이름도 이에 由來한다.../ blog.daum.net/ibjc115/ 새천년 희망의 땅 웅..(daum 2016)
굼바우 : 사부랭이 유래와 내력/ 2006.12.04/ 사업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1992년 7월 18일엔 동리길 굼바우에서 사부랭이까지 약 2Km 흙길을 시멘트 포장하고... 약수(藥水)터 ㅇ 위 치 : 용문면 사부리 ㅇ 내 용.../ cafe.daum.net/tkqnfoddl/51dm/ 사부2동(daum 2016)
굼바우 : →구무바우, →용바우
굼방골샘 : →주천
굼뱅아, 군뱅아 [童謠] : 1) 예천군에서 전승되어온 유희요(遊戱謠)이다. [內容] : 꿈뱅(굼뱅이)아 집 지라(지어라)/ 황새야 물 여라/ [풀이] : 냇가의 좀 젖은 흙으로 손을 덮은 후, 다른 한 손으로 흙을 두드리며 이 노래를 부른다. 흙이 다져졌을 때 손을 빼면 두꺼지집 같은 굴이 된다. 2) 용문면 두천리(杜川里)에서 전승되어온 유희요(遊戱謠)이다. [內容] : 군뱅(굼뱅이)아 집 지라(지어라)/ 제비야 물 여라/ <풀이> : 냇가의 좀 젖은 흙으로 손을 덮은 후, 다른 한 손으로 흙을 두드리며 이 노래를 부른다. 흙이 다져졌을 때 손을 빼면 두꺼비집 같은 굴이 된다.(손우영)
굽다리바리(臺附鉢 =Jar with stand, earthenware) [韓國學資料] : 기원전 57˜676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본문 요약] : 굽다리바리는 발 형태의 몸체 아래로 일반 굽보다 높은 굽이 달린 기종을 일컫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굽이 달린 토기는 주로 신라와 가야 지방에서 주로 제작된 신라토기에서 나온다. 신라토기란 삼국시대 신라지역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토기이다. 지역적으로 경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 지방에 분포하고 있으나, 신라의 영토 범위가 확장되면서 포괄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하지만 좁은 의미로 사용할 때는 신라시대 경상도 지방에서 만들어진 회색의 광택이 없는 토기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 토기는 대부분 흑색․흑회색․회청색 등의 색조를 띠며 흡수성이 없고 표면이 단단하여 때리면 금속성이 나는데, 이는 밀폐된 가마에서 바탕흙[胎土] 속의 철분이 환원염(還元焰)으로 구워진 결과이다. 형태상으로는 목항아리[長頸壺]와 굽다리접시[高杯]가 기본이지만 이후 다양한 변형들이 등장한다. 이들 토기는 원삼국시대(김해시대) 말기인 250-350년에 와질토기(瓦質土器)에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 단계에서 김해 부원동 패총에 잘 나타나는 부원동기(府院洞期)를 거쳐 신라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와질토기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소백산맥 이남에서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했는데, 낙동강 동쪽에서는 신라토기가, 서쪽에서는 가야토기가 각각 발전하였다. 신라토기와 가야토기는 같은 회색의 광택이 없는 토기로서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신라토기로 부르지만, 두 토기는 형태상 몇 가지 면에서 구분이 된다. 즉 가야의 굽다리접시는 굽구멍[透窓]이 위아래 한 줄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신라토기의 굽구멍은 위아래가 교대로 배치된 경우가 많으며, 몸통의 깊이가 깊은 편이다. 표면에 새긴 무늬는 신라토기 쪽이 보다 다양한 편이며, 굽다리접시에 딸린 뚜껑의 꼭지 형태도 차이가 있다. 목항아리의 경우 어깨 몸통이 이어지는 부분이 가야토기는 매끄럽게 곡선으로 연결되는 데 비하여 신라토기는 단이 져 있고, 바닥에 대각(臺脚)이 붙어 있는 점도 다르다. 이 토기의 변천에 대해서는 전기․중기․후기․통일신라기 등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기는 350-450년으로 경주 황남동 109호분․110호분․98호분, 황오동 14호분 등에서 출토된 토기들이 대표적이며, 경주 이외에는 부산․안동․예천․영일 등에서도 일부 출토되었다. 이 시기에는 신라시대 대표적 고분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에 많은 양의 토기가 부장되어 신라토기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김해식 적갈색의 창이 없는 굽다리접시가 소멸하고, 창과 덮개가 있는 굽다리접시․파배(把杯)․기대(器臺) 등 신라토기의 중요 형태가 이 시기에 모두 등장한다. [참고자료] : 金元龍, [韓國考古學槪說], 一志社, 1986./ 國立文化財硏究所, [韓國考古學事典], 2001./ 中央日報, [韓國의 美] 5 (土器), 1978./ 國立中央博物館, [한국 고대의 토기], 1997.(dau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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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