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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564 : 궁도장...권광윤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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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도장 : →예천양궁장, →진호궁도장
궁무상점(韓國近現代 會社組合資料 : 1938.10.1) [事業體] : 예천읍 남본리에 있던 합자회사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회사조합명 宮武商店(合資)/ 자본금 11,000원/ 목적 代書業, 부동산 임대차업/ 사장/대표 宮武アキヱ/ 업종 상업/ 설립일 1938-10-01/ 본점주소 경상북도 예천읍 남본동 234/ 출전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1939년판, 1942년판)”(history.go.kr 2005)
궁무산점합자회사 : 1939년 상업 宮武商店(合資)/ 회사조합명 宮武商店(合資)/ 자본금 11,000원/ 목적 대서업, 부동산 임대차업/ 사장/대표 宮武アキヱ/ 업종 상업/ 설립일 1938-10-01/ 본점주소 경상북도 예천읍 남본동 234/ 출전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1939년판)(http://db.history.go.kr/ 2014)
궁바우 : →구무바우, →용바우
궁방골 : →군방골
궁방골샘 : →주천
궁성시 [記事] : [서명]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직원록 1940년도/ 同 1941년도/ [기사명] 宮成是 / (産業技手) | 지방관서>경상북도>부군도(府郡島)>예천군/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궁시(弓矢) [韓國學資料] : 궁시는 예로부터 전투용으로 사용되던 활과 화살을 가리키는 것으로, 궁시를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을 궁시장(弓矢匠)이라고 한다. 이 화살은 인천광역시 지정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기능보유자이셨던 고 박상준 선생님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서 간돌칼(磨製石鏃)이 발견되고 삼국시대 이전의 소국이던 부여(扶餘), 옥저(沃沮), 예(濊),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등에서 활의 사용이 활발하였음을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 등의 기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활을 잘 쏘는 민족으로 알려질 만큼 활이 널리 사용되어 다양한 형식의 활과 화살이 존재하였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대체로 조선시대 활과 화살이다. 조선시대 활은 대체로 일곱 가지인데 전투용, 수렵용, 의식용, 연습용 등 그 용도에 따라 구분된다. 전투용 활로는 목궁과 철궁, 철태궁, 고, 각궁이 있고 수렵용으로는 목궁, 철태궁, 각궁이 사용되었다. 의식용으로는 예궁, 각궁(角弓)이 사용되었고 정량궁이 연습 용도였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각궁으로 현재에도 사용되는 가장 보편적인 국궁이다. 각궁의 재료는 물소뿔을 주재료로 하여 소힘줄, 대나무, 뽕나무조각 아교 등을 이용해 제작한다. 궁시의 연원이 오래된 만큼 그 변천과 종류도 시대에 따라 다양하다. 현재로는 국궁(國弓)으로 불리는 각궁(角弓)과 거기에 따른 화살이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각궁은 화살과 더불어 서울을 비롯하여 경기도 소사․광주․여주, 전라북도 전주, 전라남도 여수, 경상북도 예천, 경상남도 울산․충무 등 기타 여러 지역에서 제작되고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궁장(弓匠)으로는 김장환, 권영록, 장진섭, 시장(矢匠)으로는 박상준의 기능이 격을 잘 유지했다. 궁(弓)의 재료로는 통대나무를 쪼개어 햇볕에 말리거나 밀실에서 참숯불로 건조시킨 죽편(竹片)과 길이 38cm 너비 3cm의 뽕나무 조각을 물에 삶아서 알맞게 휘게 한 것과 파간(파幹)을 만드는 데 쓰일 참나무쪽과 수우각(水牛角)을 길이 52cm 너비 6cm, 두께 8cm내외로 자른 흑각편(黑角片)과 소의 심줄을 나무망치로 두들겨 살점과 기름이 빠져 실날같이 된 것을 대빗으로 곱게 빗은 힘줄(근) 과 부레풀 및 화피(樺皮)가 있어야 한다. 도구로는 흑각(黑角)을 휘는 데 쓰는 뒤집과 활을 얹을 때 쓰는 조지개와 밧줄과 밧줄로 묶고 죌 때 쓰는 조막손이와 활을 바로 잡는 데 쓰일 궁창(弓窓)과 이밖에 톱, 대패, 나무망치, 줄, 칼, 송곳, 나무집게, 나무빗, 쇠빗, 풀솔, 도가니, 못탕 등을 갖추어야 한다. 이의 재료와 도구로 활의 몸체를 만드는 데는 약 80일이...(daum 2008)
궁시장(弓矢匠) [人間文化財] : 예천읍 왕신리(旺新里) 왕상골 출신으로 남본리(南本里)에 거주하고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47호(1971.9.13 指定)인 권영록(權寧錄)과 경상북도 지방무형문화재 제6호(1981.12.30 指定)인 권우갑(權又甲)이 남본리에서 살았다. 예천읍은 활의 명산지이다. 전에는 궁경(弓京)이라 할 만치 조궁(造弓)이 성했으나, 지금은 명맥만 이어오는 형편이다. 조궁의 기능 보유자 권영록, 권우갑과 후보자 권오규(權五奎)는 사망했고, 현재 남본2리의 권영학(權寧鶴)이 지방무형문화재 제6호 보유자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 기능 보유자 권영록(1916-1986)은 남본리 245번지에서 살았고, 그의 조궁술(造弓術)은 이조 영조 때 조궁(造弓)의 공으로 교위용장(校尉勇將)에 올랐던 그의 7대조 희직(熙直)으로부터 가업(家業)으로 전승되어 왔고, 16세 때인 1930년경부터 50여 년 간 평생을 익혀왔고, 아들 오규(五奎)에게 전수(傳授)하였다. 남본2리 69번지의 궁장(弓匠) 권우갑(?-1989)은 조부 오련(五蓮)으로부터 이어온 조궁술을 1935년부터 익혀 아들 영학(1943- )에게 가업으로 전수하였다. 권영학의 조궁술은 4대 120여 년 간 가업으로 이어온 전형적인 기법을 지니고 있는데, 아버지 권우갑(技能保有者)으로부터 15세 때인 1955년부터 전수하고, 현재 전국 조궁계(造弓界)의 중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활은 궁간(弓幹)의 길이에 따라 장궁(長弓)과 단궁(短弓)으로, 구조에 따라 환목궁(丸木弓)과 복합궁(復合弓)으로 구분되는데, 예천의 활은 구조와 궁간으로 보아 복합 단궁(複合短弓)이라 할 수 있고, 일본이나 서양의 활에 비해 그 모양새나 실용면에서 훨씬 앞서고 있는데, 궁도(弓道)의 용구로서 뿐 아니라, 순수 수공예품(手工藝品)으로서 탁월한 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나의 활이 완성되기까지는 제작 기간이 약 10개월이 소요되고, 여러 가지 재료의 처리와 겹겹이 붙이고 말리는 작업의 전 과정이 궁장(弓匠)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활의 주요 재료로는 대나무, 뽕나무, 굴참나무, 소심줄, 물소뿔, 민어풀 및 장식에 필요한 화피 등이 사용되고, 제작 도구로는 톱, 가구, 다리미, 두루자, 밧줄, 집개, 궁틀, 줄, 칼, 송곳, 심판, 대빗, 대패, 나무망치 등이고, 특별한 도구로는 도지개를 사용하고 있다. 제작 과정은 재료의 처리를 거쳐 부각(付角)→뒤설기(다듬기)→뒤졸음→심노이→점마→해궁(解弓)→고자손질→화피 단장(丹粧)의 순으로 복잡한 공정(工程)을 거쳐 하나의 활이 완성된다.
궁예 이야기의 전승 양상과 의미(弓裔(?-918) 이야기의 傳承 樣相과 意味) [學術저널] : 지보면 출신인 조현설(趙顯卨, 1962-, 高麗大 敎授)의 논문으로, 민족구비문학회에서 1995년에 출판한 <구비문학연구(口碑文學硏究)> 2권 147-174쪽(28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궁예 이야기 전승에 관한 몇 가지 의문, 2) 문헌 전승에 관한 의문과 고정된 전승의 문제, 3) 문헌 전승의 이중적 성격, 4) 구비 전승의 양상과 부정적 궁예 현상, 5) 궁예 이야기 전승과 고구려 건국 신화의 관련, 6) 맺음말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이화여대, 중앙대(제1캠퍼스)이다.(keris 2003)
궁예이야기의 전승양상과 의미(궁예이야기의 傳承樣相과 意味) [學術저널] : 지보면 지보리 출신인 조현설(趙顯卨, 1962- , 서울大 國文科 敎授)의 논문으로, 한국구비문학회(URL http://www.koralit.net)에서 1995년에 발행한 <口碑文學硏究> Vol.2 147-174쪽(28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등재정보 KCI 등재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이화여대(중앙), 중앙대(중앙)이다. [목차] : 1. 궁예이야기 전승에 관한 몇 가지 의문/ 2. 문헌전승에 관한 의문과 고정된 전승의 문제/ 3. 문헌전승의 이중적 성격/ 4. 구비전승의 양상과 부정적 궁예 형상/ 5. 궁예이야기 전승과 고구려 건국신화의 관련/ 6. 맺음말(keris 2008)
궁예이야기의 전승양상과 의미(궁예이야기의 傳承樣相과 意味) [學術저널] : 지보면 지보리 출신인 조현설(趙顯卨, 1962- , 서울大 國文科 敎授)의 논문으로, 한국구비문학회에서 1995년에 발행하였다. [목차] : 1. 궁예이야기 전승에 관한 몇 가지 의문/ 2. 문헌전승에 관한 의문과 고정된 전승의 문제/ 3. 문헌전승의 이중적 성격/ 4. 구비전승의 양상과 부정적 궁예 형상/ 5. 궁예이야기 전승과 고구려 건국신화의 관련/ 6. 맺음말(daum 2008)
궁장(弓匠) [工藝技術] : 서울 도봉구 창1동 664-24번지에 있는 궁장으로, 서울시 무형문화재 23호(2000.4.20 指定)이다. 궁(弓)은 활을 말하는 것으로써, 선사시대부터 전투용으로 사용되던 활을 전통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궁장이라고 한다. 선사시대에 사용되었던 돌로 된 화살촉이 우리 나라 전역에 걸쳐 발견되고 있으며, 기록에 의하면 삼국 이전의 부족국가였던 부여, 옥저, 마한, 진한, 변한 등에서 활을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활을 만드는 데는 약 80일이 걸리며 재료로는 느티나무, 뽕나무, 버드나무와 소뿔을 쓰는데 시기와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 궁장은 전통적인 공예 기술로서 기능보유자로 권무석 씨가 전통 활의 명산지인 경북 예천에서 대를 이어 활을 제작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國家文化遺産綜合情報서비스 2004)
궁장(弓匠) [醴泉郡 文化財臺帳] : 지방무형문화재 제6호(1980.12.30 指定), 보유자 권우갑(權又甲, 學力은 漢學, 性別은 男, 本籍은 醴泉邑 旺新里 171, 住所는 醴泉邑 南本里, 生年月日은 1919.3.23), 후계자 권영학(權寧鶴, 1943.2.26生, 大卒, 1958年 以後)ㆍ박찬석(朴贊錫, 1953.7.15生, 中卒, 1971年 以後)
궁중(宮中) [飮食店] : 용문면 상금3리 591-1번지에 있는 한방오리 전문점으로, 농장에서 직접 가져온 최고의 오리만으로 요리를 한다.(yescall 2002)
궁중(便安함을 느낄 수 있는 健康맛집) [記事] : 용문면 상금곡리 한방오리전문점 `궁중'은 맛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건강 맛집이다. 오전 내내 궁중에는 한방육수를 끓이는 한약 내음이 가득하고 각종 야채를 다듬고 밑반찬을 만드는 최덕기(63) 이영숙(54) 씨 부부의 손끝에는 정성이 가득하다. 주메뉴는 엄나무, 황기, 녹각, 당귀, 천궁 등 10여 가지 한약재를 6시간 이상 끓여 한방육수를 만든 뒤, 농장과 직거래를 통해 구입한 건강한 오리를 통째로 넣어 만든 한방오리탕. 오리 특유의 잡냄새가 없어 먹기에 편하고 시원한 국물과 쫀득쫀득한 고기의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또한 후식으로 나오는 오리를 끓인 한방육수에 토종 찹쌀과 버섯, 당근을 다져 넣고 끓인 한방죽은 혀끝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은은한 한약향이 더해져 심신을 맑고 편안하게 해줘 건강식으로 인기가 좋다. 이와 함께 오리전골, 오리불고기 등도 맛볼 수 있으며, 미꾸라지를 옛날식 그대로 체에 걸러 우거지, 토란, 파 등을 넣고 끓인 얼큰한 추어탕과 돌솥밥을 곁들여 먹을 수 있다. 최씨 부부는 언제나 궁중이 `편안하고 맛있는 집'으로 알려지기를 소망한다. 찾아오는 손님 한분한분을 귀하게 모시겠다는 뜻으로 지은 궁중이라는 상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형식적인 친절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을 베풀기 위해 노력한다. 6년 전 흰머리가 하나 둘 늘어날 무렵 도시생활의 답답함이 지겹고, 고향의 따스한 아랫목이 생각나 5남매를 설득해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 용문에 정착했다는 주인 내외.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손맛에 서울에서 한정식 집을 운영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방오리전문점 `궁중'의 문을 열었다. 지난해 불어 닥친 조류독감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건강식으로는 오리고기만한 음식이 없다는 게 최씨 부부의 주장.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는 재미는 오랜 도시생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즐거움이며, 현재는 어렵지만 가족 간의 사랑과 고향의 푸근함이 있어 너무 좋다는 말속에 삶의 여유가 묻어난다.(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11083號)
궁중식당(龍門面 `宮中食堂' 花盆에 幸運木 꽃 활짝) [記事] : 용문면 상금곡리 오리요리 전문점 `궁중식당' 화분에서 자라는 행운목이 꽃을 활짝 피워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10년 전 식당 개업 때 선물받은 행운목은 5년에 한 번씩 꽃을 피워 주인 내외를 즐겁게 하고 있다. 이 꽃은 보기만 해도 행운이 온다고 전해져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주인 이영숙 씨는 행운목을 키우고부터 지금까지 가족 모두 아픈 적 없이 집이 편안한 것을 보면 행운목 꽃이 꽃말처럼 행운과 행복을 우리 가정에 주는 것 같다며 꽃과 향이 오래도록 남아 오시는 손님 모두와 지역 사람들이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 최덕기 씨는 아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오시는 손님마다 즐거움이 가득한 것을 보니 행운목 꽃이 복덩어리라며 오래도록 이 행복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운목은 동남아, 아프리카 등 열대지방에 주로 서식하며, 꽃말은 행운과 행복이다. 향을 맡고 꽃을 보는 것만으로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이 있다.(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9년 04월 07일)
궁판신행 [記事] : [서명]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직원록 1933년도/ 同 1934년도/ 同 1935년도/ [기사명] 宮坂信行 / (訓導) | 지방관서>경상북도>공립학교>예천심상고등소학교/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권광윤 효자각(權光潤孝子閣) [碑閣] : 풍양면 흔효2리 59번지 효동 마을(孝洞村) 동북쪽 약 500m 떨어진 불상골(佛像谷)에 있는 목조아연가(木造亞鉛家) 비각으로, 효종 때 표창된 안동인 권광윤(1603-1656) 효자를 기리기 위해 감사 홍만조(監司洪萬朝)가 세웠다. 비명(碑銘)은, "효자 학생 권광윤지비(孝子學生權光潤之碑)"이다. 지금은 비문이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朝鮮寰輿勝覽 1927)
권광윤 효자각(醴泉欣孝里 權光潤 孝子閣) : *위치 : 예천군 풍양면 흔효리 田110/林111 사이, *연대 : 1658년, *규모 : 비각 1채, 비 1기/ 권광윤(1603-1653) 효자비는 풍양면 흔효리에 있다. 마을 입구 ‘효자비들’에 위치하는 효자각에는 효종 때 표창된 권광윤의 효자비가 있다. 1658년(효종 9) 비석이 세워졌고, 1731년(영조 7) 다시 세워졌다. 비석은 전후좌우 4면으로 빽빽이 음각되어 있으나 마모되어 그 내용은 거의 판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주민들의 제보에 의하면, 예전에 걸어서 다닐 때 인근의 사람들은 이 효자각 앞을 지나 우망리로 가거나 혹은 삼강재를 넘어 삼강과 용궁을 오갔다고 한다. 현재도 옛길의 흔적이 다소 남아있는 상태이다. 흔효리의 흔(欣)자는 흔전(欣田)에서 유래하였으며, 마을 정착 당시 밭이 기름지고 곡식이 잘 되어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효(孝)자는 효동(孝洞)에서 유래한 것으로 권광윤 효자에게서 따온 것이라 한다. 흔효리 권광윤 효자각은 풍양면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난 916번 지방도로의 북측 야산 자락에 있다. 효자각은 흔효리 진입로 흔전길 맞은편 북측으로 난 농로를 따라 접근한다. 효자각은 나지막한 야산 끝자락을 지나는 농로에 면하여 야산을 등지고 동향을 하고 있다. 효자각 정면에는 ‘효자들’이라 불리는 넓은 농경기가 펼쳐져 있다. 정자각은 자그마한 단 위 건물 속에 비 1기가 있으며, 주변은 정면을 제외한 삼면에 잡목이 자라고 있다. 비좌는 뒷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사리 문양과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초각하였으며, 비는 월두형(月頭形)의 비신이다. 비신에는 ‘孝子學生權光潤之閭’이라고 쓰여 있다. 효자각은 정면 철재 출입문을 제외한 사면을 콘크리트 블록으로 둘렀다. 이 콘크리트 블럭 벽체는 1990년 5월 12일에 쌓았다. 콘크리트 블륵 내에는 자연석 주초 위에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 하중을 받도록 하였으며, 이들 기둥은 상중하에 인방을 걸어 기둥의 움직임을 최소화하였다. 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으로 짜였고, 가구는 삼량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장선을 깔아 양철지붕을 받고 있다. 현재 효자각은 마을이 동선이 바뀌고 마을과 동떨러져 있어 사람들이 관심 밖에 있고, 보호각 또한 비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구조를 하고 있어 건축적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456-457쪽)
권광윤 효자각 : 예천의 자랑 1834 : 예천충효 33(祝 통명농요. 권현정 等/예천방문 360)/ 작성 장병창/ 세웠다. 비명(碑銘)은 <효열부 양양권씨 정려비(孝烈婦襄陽權氏旌閭碑)>이다. --- 예천흔효리 권광윤효자각(權光潤孝子閣) [碑閣] : 풍양면 흔효2리 59번지 효동 마을(孝洞村) 동북쪽 약 500m 떨어진 불상골(佛像谷)에 있는 목조...../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권광윤 효자비(權光潤 孝子碑) [碑] : 풍양면 흔효리 119-1번지(畓)에 있는 효종 때 표창된 권광윤의 효자비로, ‘흔전’ 마을 입구 ‘효자비들’에 소재하는 효가비각 내에 유존한다. 1658년에 건비하였고, 1731년에 재건하였다. 비는 월두형(月頭形) 비신과 뒷면을 제외한 전면에 고사리 문양과 가하학적인 문양이 베풀어진 비좌(碑座)가 있는 형식이다. 비신 전면 중앙에 ‘孝子學生權光潤之閭’가 새겨져 있고, 좌측면에는 ‘擁正辛亥五月日改竪’가 각자되어 있다. 비좌의 크기는 높이 45cm, 폭 115cm이고, 비신의 크기는 높이 63cm, 폭 31-37cm, 두께 13cm이다. 자경(字徑)은 6x6cm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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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