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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567:권인섭 가옥...귀모현...
작성자장병창 @ 2019.08.27 06:15:42

  도청신도시 예천 567 : 권인섭 가옥...귀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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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인섭 가옥 : *위치 : 예천군 용문면 하금곡리 516-7(여각길 26-5), *연대 : 1939년, *규모 : ‘-’자형 정침, 행랑채, 방앗간채, 화장실/ 권인섭 가옥은 하금곡리 중마에 있으며, 1890년대 현소유자의 고조부 권세주(權世周)부터이며, 1938년 현 소유자의 선고인 권대영(權大榮)이 중건하였다. 현 소유주의 고조부인 권세주는 한학(漢學)의 대가로서 학동들에게 19세기 후반부터 한학과 인성 및 예절지도를 실시하였다. 권용진(權膺鎭中) 증조부께서 20세기 초부터 대를 이어 여러 해 동안 학생들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가옥은 사현 고조부와 자중 증조부 시대에 인근 향내에서 학문이나 글을 좋아하셨던 유림들이 본 고택 사랑방과 사랑마루에서 글을 짓고 담소를 즐겼으며, 예속을 교환하고 화합을 도모했던 장소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3.1독립운동 후 마을 앞 정자인 병암정에서 안재홍, 여운형, 권원하 선생 등 몇 분이 모여 독립운동 관련 비밀협의를 할 때 본 가옥은 물질적 지원을 하였다고 한다. 권인섭 가옥이 있는 하금곡리는 예천과 용문면을 연결하는 928번 용문경천로를 따라 접근하며, 이 도로는 금곡천 북측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하금곡리는 용문경천로 북측의 완경사면에 터를 마련하였으며, 권인섭 가옥은 용문경천로에서 북측 하금곡리로 난 여각길을 따라 접근하며, 이 여각길은 권인섭 가옥 앞을 지나면서 동측 야산을 향하고 있다. 권인섭 가옥은 경사면이 끝나는 곳에 터를 마련한 후 남향을 하고 있다.

 

  권인섭 가옥은 ‘-’자형 정침과 행랑채와 방앗간채,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을 중심으로 좌측에 방앗간채가 있고, 우측에 행랑채가 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행랑채와 방앗간채는 시멘트블럭담장과 토석담장으로 연결하였으며, 가옥은 담장 중간에 슬레이트를 올린 일각문을 세워 출입구로 이용하고 있다. 일각문 앞에는 텃밭과 수도시설이 있으며, 마을 안길이 지나고 있으며, 멀리 넓은 들녘이 있다. 안채와 좌측 방앗간채 배면은 시멘트블럭담장을 두르고 있으며, 정침과 행랑채의 우측부문은 외부 쪽으로 열려 있다. 정침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겹집구조를 하고 있다. 중앙의 마루칸을 중심으로 좌측에 안방과 부엌, 부엌 후면에 고방이 있고, 우측에 사랑방과 상방(샛방) 사랑마루가 있다. 부엌은 전면 두 짝 널판문을 달아 방앗간채 앞의 장독을 이용하도록 했다. 부엌은 측면을 확장하여 배면 기단 위에 출입문을 달았다. 부엌에는 안방 아궁이뿐만 아니라 고방 아궁이가 있으며, 굴뚝은 후면 기단에 있다. 장마루를 깐 중앙의 마루칸은 후면 툇간에 네 짝 미닫이문을 달았으며, 외벽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고 기단 위에 쪽마루를 깔았다. 우측의 사랑방은 2칸 규모인데, 중간에 세 짝 미닫이문을 달아 두 공간으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으며, 중앙마루칸 쪽에 벽장을 꾸며 상하단에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아 수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안마당 쪽 기단에 쪽마루를 깔아 출입할 때 사용한다. 그리고 사랑방은 사랑마루 쪽에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다. 사랑방의 아궁이는 전면 기단에 있고, 굴뚝은 배면 기단 위에 있다. 사랑마루는 측면과 배면 쪽으로 열러 있으며, 배면 기단 위의 쪽마루를 깔아 마루를 좀 더 넓게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정침은 배면 담장을 쌓아 외부공간을 사랑채영역과 안채영역으로 나누었다. 정침의 기단은 시멘트모르탈로 축조 마감했으며, 기단 위 주초는 자연석 주초이다. 기둥은 방형이며, 기둥 상부는 보아지를 이용한 납도리방식으로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오량이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처마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했다. 방앗간채의 실은 디딜방앗간, 곡간, 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디딜방앗간은 전면과 후면으로 열려 있으며, 곡간은 전면에 빈지널문을 달았고, 헛간은 전면에 두 짝 널판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다. 방앗간채의 기단은 시멘트모르탈로 축조 마감했으며, 벽체는 토벽구조이다. 지붕은 슬레이트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행랑채는 외양간, 머슴방, 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양간은 담장 안쪽에 있고, 머슴방과 광은 담장 밖에 있다.

 

  외양간은 안마당 쪽과 사랑채 쪽으로 열려 있다. 머슴방은 전면과 후면에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으며, 아궁이는 전면 기단에 있고, 굴뚝은 후면 기단에 있다. 광도 전후면에 두 짝 여닫이 널판문을 달았다. 행랑채의 기단은 시멘트모르탈로 축조 마감했으며, 자연석 주초 위에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 하중을 받도록 했다. 지붕은 개량형 평기와를 올린 홑처마 우진각지붕이다. 권인섭 가옥은 건립된 이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가옥으로, 경북북부지역 전통가옥의 한 예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또한 권인섭 가옥은 지역사회 인재를 교육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던 곳이다. 따라서 권인섭 가옥은 부분적으로 변형된 부분을 복구하여 가옥의 성격에 맞게 활용한다면 건축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더욱 더 살아날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94-96쪽)

 

  권일 회고록(權逸 回顧錄) [冊] : 예천읍 상리 안골 출신인 권일(權逸, 1910-2001, 醴泉初, 明治大 法學部 卒業, 同 法學博士, 國際 辯護士, 高等文官試驗 司法科 合格, 滿洲에서 判事, 日本에서 辯護士, 在日居留民團 團長, 韓國에서 國會議員, 力道聯盟 會長, 辯護士, 海外僑胞問題硏 理事長)의 저서로, 620쪽, 일본어(日本語), 22cm, 동경(東京) 권일회고록간행위원회에서 1987년에 간행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 경상대, 경희대, 고려대, 관동대, 국민대, 홍익대이다.(keris 2005)

 

  권일 회고록(權逸 回顧錄) [冊] : 예천읍 상리 출신인 권일(權逸, 1911- , 國會議員)의 저서로, 1) 620쪽, 삽도, 22cm, 동경 권일회고록간행위원회에서 1987년에 발행하였고, 2) 485쪽, 삽도, 23cm, 서울 한민족에서 1989년에 발행하였다. 경북대학교 도서관 중앙연중당문고자료실에 소장(청구기호 1987년본 340.99-권665ㄱ, 1989년본 중앙중 920.051 권69ㄱ)되어 있다.

 

  권재문 가옥(權在文 家屋) [住居建築] : 용문면 제곡리 450번지(垈)에 있는 가옥으로, 一자형의 사랑채와 정침이 좌우로 병렬되게 배치되어 있는데, 정침과 사랑채 사이에는 원래 토장을 쌓았으나 현재는 거의 허물어진 상태이다. 정침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좌로부터 부엌, 2통칸 안방, 대청, 건너방을 연접시켰으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설치하였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며,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홑처마집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권재문 가옥 : *위치 : 예천군 용문면 제곡리 450, *연대 : 1900년 경, *규모 :'-'자형 안채, ‘-’자형 사랑채/ 권재문 가옥은 작은맛질 작약봉 아래 춘우재고택(시도민속문화재 제102호) 뒤 연곡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03호)과 좌우로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건축 시기는 고종 말엽으로 대략 100여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권재문 가옥이 있는 제곡리는 예천과 용문면을 연결하는 928번 용문경천로 북측에 있는 용문면소재지 상금곡리에서 제곡리를 향해 난 반서울로를 따라 접근하며, 이 반서울로는 북측 산자락에 있는 능천리를 지난 후 제곡리를 남북으로 지나는 한천과 도효자로와 만난다.

 

  한천을 기점으로 서측 산자락에는 제곡리 가옥들이 있으며, 동측 산자락과 골짜기에는 대제리와 하학리 가옥들이 있다. 권재문 가옥은 한천 위 제곡교 반서울로에서 서측 제곡리를 향한 맛질길을 따라 접근하는데, 이 접근로는 춘우재고택의 좌측 담장을 따라 권재문 가옥을 향하고 있다. 권재문 가옥은 ‘-’자형 안채와 ‘-’자형 사랑채가 서측 산자락에 터를 잡고 동향을 하고 있다. 가옥은 배면과 좌측에 돌담을 두르고 있고, 우측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고, 전면에는 이웃담장이 있다. 가옥의 출입은 좌측 전면의 철제 담장을 이용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토석담장이 있는데 현재 무너진 상태이다. 사랑채와 안채는 별도의 마당을 갖고 있는데, 현재는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전열에 우측부터 온돌방, 마루 2칸이 있으며, 후열에 마루방, 온돌방이 있다. 전열의 온돌방은 전면 마루칸에 머름을 꾸미고, 외여닫이문을 달았고, 마당 쪽에도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온돌방은 후면 마루칸 쪽에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다. 후면 마루칸은 사랑방과 측면에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고 있다. 후면 마루칸 후면에는 벽감을 꾸며 신주를 모셔 두었다고 한다. 온돌방의 아궁이는 전면 기단에 있고, 굴뚝은 측면 기단 위에 있다. 후열 사랑방은 전면에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창문을 달았다. 전면 마루칸의 좌우측 벽에는 판벽을 구성하고 머름에 두 짝 우리판문을 달았다. 사랑채의 기단은 자연석기단으로 주초는 자연석 주초이다. 사각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으로 적절한 보아지와 보, 장혀, 도리를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오량이며, 내부 기둥의 간잡이는 내부 고주를 상부 동자주 열보다 안쪽으로 들여세워 전면 마루간을 넓게 사용하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처마 끝은 와구토로 마감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앙토와 벽면은 재사벽으로 마감했다. 안채는 전후퇴가 있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자형 겹집이다. 평면은 우측부터 2칸 규모의 아궁이칸, 2칸 규모의 안방, 마루간, 상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방은 갓 시집간 딸과 사위 혹은 살림을 며느리에게 물려준 여성 상어른이 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안방은 전면에 튓마루를 꾸미고, 툇마루 쪽에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다이문을 달았다. 후면에 벽장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문과 외여닫이문을 달아 수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방의 굴뚝은 후면 기단에 있다. 마루칸은 배면에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우리판문을 달았고, 좌측 2칸 규모의 온돌방은 전면 누마루 쪽에 두 짝 여닫이창을 달았고, 측면에 외여닫이창을 달았으며, 후면 기단에는 벽장을 꾸며 수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넌방의 아궁이는 전면 기단 위에 있다. 안채의 기단은 자연석 기단으로, 주초는 자연석 주초이다. 사각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으로 적절한 보아지와 보, 장혀, 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오량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며, 처마 끝은 와구토로 마감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앙토와 벽면은 재사벽으로 마감했다. 권재문 가옥은 겹집구조의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어 경상북부지역의 주거형태를 엿볼 수 있는 가옥인데, 현재 공가로 방치되어 훼손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권재문 가옥은 주변의 누정건축과 가옥을 연계하여 보존 및 활용, 유지관리 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활용을 한다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지속될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89-91쪽)

 

  권정자골 [골] : 감천면 유리(酉里) 오리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권주산 [山] : 호명면 송곡리(松谷里)에 있는 산이다.

 

  권천복 광고 [廣告] : 안동 사는 권천복의 1905년 6월 5일 광고문으로, 그 내용은, “본인이 계묘년분에 안동 길안면 현하리 거 이상기 처(處)의 예천 적성리 소재 전답 병(幷) 40여 두락을 매득의(買得矣)러니 불의금자(不意今者)의 상기의 병폐자(病廢子) 봉재가 이몰각지치(以沒覺之致)로 함어(陷於)무뢰배 군위 거 정한조 단양 거 오대영 예천 거 장만삼 윤일용 김달문지종수(之慫?)하야 기부이매답(其父已賣畓)을 방욕위권투매(方欲僞券偸賣) 고로 자이앙포(玆以仰佈)하오니 내외국인은 절물견기(切勿見欺)하오. 경상북도 안동 동성 거 권천복 고백”이다. 정보 제공 기관은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제공 기관은 국사편찬위원회이다.(www.knowledge.go.kr 2006)

 

  권초간묘(權草澗廟) [祠堂] : 용문면 죽림리 166번지 예천권씨종가별당(醴泉權氏宗家別堂) 후면에 있는 초간 권문해(草澗權文海)의 불조묘(不跳廟)로, 1676년(숙종 3)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 와가(瓦家)지붕이다.

 

  권초간묘(權草澗廟) [祠堂] : 용문면 죽림리 166번지 예천권씨종가별당 후면에 있는 사당으로, 예천인 초간 권문해(權文海, 左副承旨)를 위해 1678년(숙종 3)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기와지붕이다.(醴泉鄕校誌 2004)

 

  권초간묘 : 예천의 자랑 1751 : 예천충효향토관 21(附 예천방문 277)/ 작성 장병창/ 不跳廟部 권초간묘(權草澗廟) [祠堂] : 용문면 죽림리 166번지 예천권씨종가별당(醴泉權氏宗家別堂) 후면에 있는 초간 권문해(草澗權文海)의 불조묘(... (瓦家)지붕이다. 권초간묘(權草澗廟) [祠堂] : 용문면 죽림리 166번지 예천.../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권충주 고택(權忠州古宅) [古家] : 용문면 상금곡리 337번지에 있는 옛 집으로, 그 기와에, '1677년(숙종 3) 5월에 조성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권태통 송덕각(權泰通 頌德閣) [碑閣] : 용궁면 산택리에 안동인 참봉 권태통이 근검하고 호시(好施) 작인(作人)하니 소작인들이 감격하여 고언조(高彦朝)의 명(銘)으로 비를 각 안에 세웠었는데, 지금은 도로 확장에 부지가 편입되어 향석리로 옮겼다.(龍宮鄕校誌 上卷 2005)

 

  권태통 송덕비(權泰通頌德碑), 비 [碑] : 용궁면 향석리에 있는 비각으로, 원래 용궁면 산택리 해미(虎尾, 花美)마을 34번국도 변에 있었는데, 도로 확장에 따라 비각이 헐리게 되자, 1986년 후손들이 살던 마을인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근면하며 검소하게 생활하여 크게 치부한 안동인 권태통(1850-1928) 참봉은 산택(山澤) 및 이웃 마을의 토지를 많이 매입하여 그것을 빈곤한 농민에게 모조리 소작을 주었는데, 도조(賭租)를 받지 않았으므로 소작인들이 감사의 뜻으로 사거(死去)한 1928년에 송덕비를 세웠다. 비명(碑銘)은 고언조(高彦朝)가 썼으며, "참봉 안동 권태통 송덕비(參奉安東權泰通頌德碑)"라고 되어 있다.

 

  권태통 송덕비(權泰通 頌德碑) [碑] : 용궁면 향석리 247번지(垈)에 있는 비로, 비각 안에 유존한다. 본래 용궁면 산택리 ‘해미' 마을 34번 국도변에 있었는데, 1986년 현 위치로 이치(移置)하였다. 비서은 비좌(碑座)와 가첨석(加檐石)이 있는 형태이다. 비신 전면에 ’參奉安東權泰通頌德碑'라 적혀있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 122cm, 폭 42.5cm, 두께 18cm이다. 가첨석의 크기는 폭 65cm, 높이 33cm, 두께 48cm이다. 비좌는 폭 69x58cm, 높이 4cm, 자경(字徑) 7x8.5cm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궤양성 대장염 진단 중 발견된 충수 점액류(43歲 女子, 潰瘍性 大腸厭 診斷 中 發見된 충수 粘液瘤)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김호각(金鎬珏, 1958- , 大邱가톨릭大 敎授) 등(배종석 신재욱 원태경 박경찬 안동직 권중구 김은영 이창형 조창호)의 논문으로,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大韓消化器內視鏡學會, URL http://www.gie.or.kr)에서 2003년에 발행한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잡지(大韓消化器內視鏡學會雜誌(The Korean society of gastrointestinal endoscopy)> Vol.26 No.5 371-371쪽(1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제어번호 18772697, 주제어는, ‘Mucinous cystadenoma , Mucocele , Appendix , Ulcerative colitis’이다.(keris 2006)

 

  귀곡 : → 귓골

 

  귀골(龜谷) [골] : 용문면 대제리(大渚里)에 있는 골짜기이다.

 

  귀내기, 구나기, 구락(龜落, 狗落), 귀락(歸洛) [마을] : 상리면 명봉리에 있는 마을로, 명봉 동구(鳴鳳洞口)에서 문경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다. 지형이 거북이(龜)가 떨어진(落) 것과 같고, 또한 거북이가 소백산맥(小白山脈)에서 내려와 어천(漁川)을 따라 낙동강으로 찾아가는 것 같다고 한다. 성황당(城隍堂)이 있다. 6가구 32명(1980) 중 해주 최씨(海州崔氏)가 주로 살고 있다.

 

  귀내기(귀락) : 성황당이 있는 독죽골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지형이 거북이가 소백산에서 내려와 어천을 따라 낙동강으로 찾아가는 모습과 같다고 귀내기라 이름했다.(上里面홈페이지 2013)

 

  귀내기 : 귀내기/ 지번 예천군 효자면 명봉리/ 길찾기 | 지명(daum 2016)

 

  귀내기 : 귀내기골/ 지번 예천군 효자면 명봉리/ 길찾기 | 계곡(daum 2016)

 

  귀내기 : 백두매봉지맥종주기/ 2010.07.13/ 910m 지점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문경시 동로면과 예천군 상리면의 경계를 따라 용두산(950)-932봉-774봉- 귀내기 도로(570, 3.2)-매봉(△865.3, 3/6.2)-820봉(0.5/6.7).../ blog.daum.net/shinks32/ 우리산줄기이야기(daum 2016)

 

  귀내기 : 백두대간 월악산권에서 분기한 산줄기들(단맥,지맥.../ 2009.02.20/ 올라간 910m 지점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문경시 동로면과 예천군 상리면의 경계를 따라 932봉-774봉-귀내기 임도(570, 3.2)-매봉(△865.3, 3/6.2)-820봉(0.5/6.7)에서.../ cafe.daum.net/cjgom2/... 청주펜더산악..(daum 2016)

 

  귀뚜라미 [動物] : 예천군의 초원, 가옥 등에 서식하는 곤충으로, 학명은 Scapsipedus usparsus Walker이고, 귀뚜라미과에 속한다.

 

  귀뚜라미닭 한 마리 [飮食店] : 예천읍 대심리 67-2번지에 있는 음식점으로, 주 메뉴는 특별 음식인 한방닭 한 마리와 닭도리탕, 삼계탕, 닭고추장 불고기로 닭요리 전문이다.(yecall 2002)

 

  귀락 : →귀내기

 

  귀모현(歸毛峴), 기밋고개 [고개] : 감천면 덕율리 수용골에서 남서쪽으로 예천읍 갈구리로 넘어가는 고개(郡東 10里)로, 오솔길이다.(新增東國輿地勝覽 1530, 醴泉郡邑誌 奎章閣所藏本)

 

  귀모현 : 예천의 자랑 3228 : 예천대사전 제147권 오늘 나와(祝 양궁, 군청)/ 장병창 편저/ 지명: 귀모현, 금곡리, 금당동, 금당맛질 반서울, 금당실(총 16쪽), 금당실마을, 금당지, 금제리, 기곡리, 기곡마을, 기양현, 성씨: 금천 심, 예천인: 권현범(1750년 가주서,총 4쪽), 권현상(1782년생, 호 대소재, 학자, 총 8쪽).../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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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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