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도청신도시 예천 597 : 금당실...
---
금당실(龍門 金塘室 마을 整備, 金塘室마을 整備事業 推進委員會 開催! -담장 및 古家屋 整備에 對한 對策 等 論議-) [記事] : 조선시대 열 군데의 명승지 중 하나였던 금당실마을(예천군 용문면)의 담장과 고가옥 등을 원형 복원하고 문화재를 보수하여 조상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세에 전승 보존하기 위한 금당실마을정비사업추진위원회의가 2004년 11월 24일 오후 5시 현지에서 개최됐다. 이날 회의에서 박우상 위원장과 12명의 위원들은 우선 1단계 추진사업인 담장 보수와 고가옥에 대한 사업 추진상 문제점과 대책 등에 관한 토의를 벌였다. 금당실마을정비사업은 상금곡, 죽림리 일원의 마을 담장과 고가옥 정비를 비롯 인근의 문화재를 보수하고 문화 유산에 대한 전시실 등을 건립하는 사업으로 총 144억 원이 투입되어 오는 2008년까지 단계별로 추진된다. 담장 정비의 경우 2006년까지 43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총 7,399m를 토석 담장으로 5,125m를 돌담장으로 2,274m를 보수 또는 신설해야 하는 사업으로 101가구가 참여해야 하는 대규모 사업으로 해당 주민들이 담장 형식 등 의견 차이는 다소 있으나 옛마을 복원에는 별 다른 문제점을 제기치 않아 사업 추진에 별다른 문제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고가옥 정비는 2005년까지 총 26억 원이 투입되어 27동(8가구)을 한옥으로 복원되고 우선순위는 거주하고 있는 고가옥과 문화재 주변에 인접한 고가옥 및 기타 가옥 등의 순으로 정비하게 된다. 예천군은 마을의 담장과 고가옥을 정비한 후 2008년까지 도로와 주차장 및 안내판을 완료하여 금당실마을을 인근의 용문사와 초간정, 양수발전소 상부지점을 연계한 관광벨트화를 통해 체류형 관광지로 조성하는 한편 소중한 문화유산을 전승 보존하여 자라나는 신세대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고가옥을 민박이나 농가 체험장 및 영화, 드라마 촬영장으로 제공하여 주민들의 소득도 함께 높인다는 계획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정차모 醴泉인터넷뉴스 2004-11-25)
금당실(金塘室 마을 整備事業 住民說明會) [記事] : 조선시대 십승지의 하나인 용문면 금당실 마을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2005년 3월 18일 오후 3시 용문면사무소 회의실에서 관계 공무원 및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설명회를 가졌다. 금당실마을 정비사업은 마을 담장정비 7,255m, 고가옥 8가구 28동 정비, 예천권씨종택, 사괴당고택을 비롯한 문화재 4동 등에 대해 총 144억 원을 투입하여 연차적으로 추진해 2007년 사업을 완료하게 된다. 담장정비공사는 2004년 말까지 모든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2005년 3월 21일 본격적인 공사를 앞두고 있으며, 담장 정비는 43억 원을 투입해 총 98가구 7,255m를 토석, 돌, 초가, 생울 형태로 담장을 정비할 계획으로 2006년 6월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고가옥 정비는 26억 원을 들여 8가구 28동을 한옥으로 복원하게 되는데 현재 입찰 준비 중으로 2005년 4월 중순 경 공사를 착공, 2006년 3월 말까지 사업을 완료하고, 이어 2007년까지 도로와 주차장 및 안내판 등을 말끔히 정비해 전통마을의 모습을 완전히 갖춘다는 방침이다. 예천군은 본 사업이 완료되면 인근의 용문사와 초간정 및 양수발전소, 예천온천, 천문우주과학공원 등과 연계한 관광 벨트를 구축해 체류형 관광지로 조성함과 아울러 소중한 문화유산을 전승 보존하여 자라나는 신세대들에게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고가옥을 민박이나 농가 체험장 및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으로 제공하여 지역 주민들의 소득도 함께 높인다는 계획이다. 주민설명회에서는 금당실마을 정비사업에 대한 설명과 함께 주민들의 궁금한 사항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고 사업 추진에 따른 협조 사항을 당부했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3-18)
금당실(週末나들이-慶北 醴泉 金塘室마을) [記事] : 금당실 정보화마을은 한반도의 동남부, 경상북도 북부의 서쪽인 예천군의 북서쪽 5.6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예로부터 마을을 형성하기 알맞은 지역이라고도 합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할 수 있는 땅! 흔히 이런 곳을 우리는 승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이렇게 경치가 좋거나 지형이 뛰어난 곳 열 군데가 있다고 하며, 그 중 한 곳이 금당실이라 했습니다. 정감록에 의하면 '금당실은 우리나라 십승지의 하나로 병화가 들지 못한다.고 전하고 있고,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던 금당실은 임진왜란 때에도 온전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마을에는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담고 있는 돌담길이 옛 형태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고 선조들의 손길이 묻어 있는 고택들이 옛 선조들의 숨결을 담고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금당실은 조선시대 십승지 중의 하나로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저택 터를 비롯한 고가옥, 인근에는 초간 권문해의 유적인 초간 종택과 초간정, 용문사 등의 문화 유적이 많이 있고,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마을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사대부 생활의 재현과 대동운부군옥(보물 제878호), 초간일기(보물 제879호) 등의 사료적 의미를 가진 유교문화 자원을 통한 교육의 장으로도 좋은 곳입니다. [마을 곳곳에 문화재] : 금당실 정보화마을의 문화재로는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두운 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인 용문사가 있으며, 이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우리 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입니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백산 용문사에는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맞배기와 지붕의 균형미를 보여주는 대장전(보물 145호)은 고려 명종 3년(1173)에 초건한 최고 오래된 목조 건물이며, 회전식 불경 보관대인 국내 유일의 윤장대(보물 684호), 대추나무에 불상을 조각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호), 불국사의 것보다 규모가 더 웅장한 사천왕상 일주문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초간일기'를 보관하고 있는 "예천권씨종택"과 초간 권문해 선생이 건립한 "초간정", "반송재고택", "사괴당고택", "금곡서원", "야옹정", "추원재 및 사당", "미산고택", "연곡고택", "춘우재고택" 등의 문화 유적지가 있어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소백산의 선물, 특산물] : <특산물 금당꿀> 금당실 정보화마을의 특산물인 금당꿀은 소백산 줄기 아늑한 곳, 십승지 중의 제일 고장인 물 맑고 공기 좋은 금당실에서 생산되며, 가격보다는 최고의 꿀, 진짜 꿀을 만들겠다는 자부심 하나로 생산합니다. 예천군수와 양봉학 박사로부터 우수농산물로 추천받은 지역 명품으로 보건환경연구원 및 양봉협회의 탄소동위원소 검사(설탕분 적출검사)를 거친 제품입니다. 세척고춧가루는 우선은 씹어서 매운 맛과 단맛을 가진 매콤달콤한 고추를 사용하여 깨끗이 세척하여 고춧가루로 만들므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금당실 마늘", "휴구상황버섯", "금당실 은행", "금당실속청", "생로얄제리","프로폴리스" 등이 있습니다. [금당실 솔내음 가득한 체험행사] : 소백산 줄기 아늑한 곳에 위치한 금당실 마을은 예로부터 살기 좋기로 유명하여 정감록에 수록된 십승지 중의 한 곳입니다. 천년고찰 용문사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고, 조선시대 선조들의 생활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돌담길이 옛이야기를 품고 잘 보존되어 있는 정겨움이 가득한 마을입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지역에서 피는 아카시아 꽃에서 부지런한 꿀벌들이 생산한 꿀도 떠보고, 오로지 벌과 함께 살아오신 벌 아저씨의 꿀 이야기도 들어보고, 봄비 맞고 통통하게 물 오른 고사리도 꺾어보고, 아카시아 향기 맡으며 산길도 걸어보면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아카시아 꽃향기와 금당실 솔내음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금당실 '쑤' 산림욕장> 금당실'쑤'는 장장 2km나 울창하게 뻗어있던 소나무 숲으로 1892년 구한말 뒷산 오미봉에서 금을 잠채하던 러시아 소유 광산회사의 광부 두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조선과 러시아간 외교문제로 비화되었고, 마을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던 상황이었기에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공동재산이었던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 배상금으로 충당하여 마을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 후 주민들은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사산송계를 결성했으며, 그 후 지금까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동산으로 한여름 들일에 지친, 농부들의 땀을 식히는 곳으로 마을 주민과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잘 가꿔진 마을 숲에서 금당실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숲의 숨결을 느껴 봅시다.(이치화 記者 인빌뉴스 2005.5.30)
금당실 [記事] : 한국문집총간(049_247b) 간이집(簡易集, 1631)에 실린 최립(崔?)의 기사로, 그 내용은, “簡易文集卷之二/ 墓碣銘幷序○陰記表附/ 贈吏曹判書鄭公墓碣銘/ 萬曆十年。敎曰。漢城府判尹鄭琢考。可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義禁府事。前五年。判尹以。江原道觀察使。得贈考嘉善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此再命也。判書公諱□□。字□□。系出淸州。在高麗朝連世顯仕。其尤盛者。諱?事高宗。誅崔光秀。官至大將軍, 衛尉卿。持節諭畢玄甫。不辱以死。史列之忠義傳。諱?。都僉議贊成事, 延英殿大司學。諡良敬公。十九登第。終成遠器。世爲之談。蓋平章事金文貞公坵。歸以其女。諱贅。司徒西原伯文克公。嘗自號雪軒。與弟雪谷?接武蜚英。中遭讒皆逐。兄處寧海。弟處蔚州。于時益有名。旣復用。雪谷亦至諫議大夫。則淸原君文簡公樞之父。雪軒卒。葬安東。爲母金氏鄕故。金氏祖。中贊上洛君忠烈公方慶。父。判三司事寶文閣大提學文英公珣。其爲聞家敵也。自是雪軒之後。因居安東。亦爲安東人。雪軒。又三司使進賢館大提學蔡公禑之壻也。入我朝。仕太宗時而爲公高祖者。曰刑曹都官佐郞諱若。曾祖諱普文。將仕郞。夫人眞寶李氏。善山都護府使贈戶曹參判禎之女。退溪先生文純公之從祖姑也。祖諱元老。長水縣監。贈承政院左承旨。夫人延安金氏。開城留後文靖公自知之孫。考諱僑。成均生員。贈吏曹參判。夫人光州金氏。軍器寺正兼校書館判校景光之女。公生于弘治壬戌。兄弟四人。公其季也。爲人夷曠和雅。遇物無?。與人皆歡。雖其長者之風不出于鄕。而能使宗戚隣黨。賢者親之。不肖者不怨。至於家人生産作業。幾微不以錯意。屢空而不知。自公高曾仕不復顯盛。而考以上舍生。?才潛德。不?聞達。公又早棄擧子業。恬如也以沒世。天或者窒甚而通。歸後人復前光者乎。中歲。移居醴泉郡治之北金堂之洞。?夫人韓氏鄕也。韓亦平山著姓。高麗禮儀判書哲沖之後。司憲府監察順之孫。成均進士終傑之女。公年四十五。卒于嘉靖丙午。是年某月某日。葬金堂之東數里堤洞面巽之原。夫人先公三十年卒。而葬則同兆異塋也。生子男二人女一人。長男璉。娶安東權氏。生一男二女。次卽判尹。後益寵用。方爲吏曹判書兼知經筵事五衛都摠管。以於退溪彌甥而隣鄕故。聞學甚親切。娶巨濟潘氏。生三男一女。女適士人安東權以堪。生三男二女。爲孫者。允諧及權克中李琬妻。長出也。允著, 允偉, 允穆及宗室德原正樞妻。次出也。得可從可用可及權三畏妻。權出也。諸孫多好學將就者。鄭氏之慶有旣乎。?辱今吏判公之知蓋舊而求銘其先公。則非苟以委重也。遂不讓。敍而銘之。銘曰。/ 司徒七世。判尹曰公。?窒之極。亦啓于通。不寧流遠。?蓄在躬。上勸孝子。爵視以隆。隆其未已。鄕人言同。鄕人何感。長者之風。”이다.(www.minchu.or.kr 2006)
금당실 [記事] : 한국문집총간(091_148d) 학사집(鶴沙集, 1776)에 실린 학사 김응조(金應祖)의 기사로, 그 내용은, “贈都承旨行弘文校理?西李公墓碣銘/ ...官。終未升諸公。命矣。辛未。感疾沈?。丁丑十二月。卒于醴泉 金堂谷之私第。戊寅二月。葬于郡北堤洞山乙向原。公...”이다.(www.minchu.or.kr 2006)
금당실(文光部 傳統 儒敎마을 觀光活性化 摸索) [記事] : 정부가 전통 유교마을을 우리 고유의 품격있는 관광자원으로 가꾸기 위해 마을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검토한다. 문화관광부는 경북 영주시 선비촌에서 2006년 3월 9-10일 마을대표를 비롯해 문화재청, 경북도 등 관계 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유교문화권 전통 문화마을 사업 내실화 방안'을 주제로 민관합동 워크숍을 개최한다고 2006년 3월 8일 밝혔다. 워크숍은 주제 발표와 우수사례 발표, 분임토의 및 결과 발표, 전체토론 등으로 짜여진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안동 하회마을과 영주 연당두들마을, 예천 금당실마을 등 대표적 마을사업 6개소를 선정, 유교문화권 마을사업의 관광 콘텐츠 개발과 운영 방안, 기존 관광자원과의 연계 방안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우수 사례로는 청송군의 `송소고택' 박경진 대표가 전통한옥을 활용해 한국의 대표적 고택민박으로 자리매김한 과정을 소개하고, 봉화군 `닭실마을' 권종목 마을대표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500년 전통닭실한과'의 성공 비결을 밝힌다. 문광부 관계자는, "이번 워크숍을 계기로 그간 추진돼 온 유교권 관광사업을 내실화하고 지역에 뿌리내리게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윤종석 記者 聯合뉴스 2006년 3월 8일)
금당실(金塘室마을 整備事業 推進 한창, 반송재 等 文化財 補修 마치고 담장 整備) [記事] : 예천군이 유교문화권 관광개발 사업으로 추진하는 용문면 금당실 마을 정비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2006년에는 18억 3천만 원의 예산으로 초가 10동을 정비하고 화장실과 주차장 등의 편의 시설과 안내판을 정비해 전통마을의 모습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금당실마을 정비사업은 조선시대 십승지지의 하나로 전통미가 살아있고 많은 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는 금당실 마을을 주 5일 근무시대를 맞아 마을을 원형대로 정비 복원하여 문화체험과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총 144억 3천 6백만 원을 투입해 2007년까지 금당실 마을의 담장 7.4km를 개량하고 문화재인 권씨종택 및 종가별당과 사괴당고택, 반송재고택, 추원재를 정비하고 고가옥 28동과 초가 10동을 복원하는 사업이다. 예천군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81억 원 들여 권씨종택과 종가별당 및 문화재 3동의 보수를 완료하고, 98가구의 7.4km의 담장을 토석과 돌, 초가, 생울 형태로 복원하고 있으며 현재, 28동의 고가옥을 한옥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200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의 저자인 초간 권문해 선생의 보물 제878호인 대동운부군옥과 제879호인 초간일기 등 각종 문화재 자료를 보존할 전시실을 건립하고 종택 주변을 정비해 사업을 완료할 계획으로 있다. 예천군은 금당실 마을의 소중한 문화 유산을 전승 보존해 자라나는 신세대들에게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고가옥을 민박이나 농가 체험장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으로 제공하여 지역 주민들의 소득을 올려 나가고, 마을 주변의 용문사와 양수발전소, 예천온천, 충효테마공원 등과 연계한 체류형 관광벨트를 구축해 지역 경기를 활성화해 나갈 방침이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6-03-13)
금당실(金塘谷), 금곡(金谷) [마을] : 용문면 상금곡리(上金谷里)와 하금곡리(下金谷里)를 합칭한 마을로, 원래는 이들 마을 북쪽의 용문면 소속 전지역을 일컬었다. 상금곡리에는 수 10기(基)의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BC 7C)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고, 15세기 초에 감천인 문헌(甘泉人文獻, 1402年 進士)이 옮겨와 살았고, 16세기 중엽에 문헌의 손자인 감찰 문숙손(監察文叔孫)의 사위들인 함양인 정랑 박종린(咸陽人正郞朴從鱗, 1496-1553), 원주인 사괴당 변응령(原州人四槐堂邊應寧)이 정착하여 지형을 살펴보니,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어서 연못을 상징한다 하여 금당(金塘)이라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 <정감록(鄭鑑錄)>에서 이르기를, "예천의 금당실은 우리나라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서, 병화(兵禍)가 들지 못한다."라고 하여, 임진왜란 때에도 온전하였다. 명(明) 나라의 장수 양호(將帥楊鎬)가 이곳을 지나다가, 닭울이고개(鷄鳴峴, 鶴고개)가 입구(水口=德이 흘러간 곳)에 있고, 개고개(犬吠峴)가 오른쪽 어깨에 있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금학(金鶴)이 앞에 있고, 옥견(玉犬)이 뒤에 있어서, 중국 양양(襄陽) 고을의 금곡(金谷)과 같다.(鷄鳴峴在水口犬吠峴在右肩楊鎬過此云金溪在前玉犬在後象中國襄陽金谷)"라고 하였다고 한다. 명풍 남사고(名風南師古, 李滉 弟子)가 말하기를, "이 마을과 맛질을 하나로 보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음이 아쉽다."라고 하여, 그 뒤부터 '금당 맛질 반서울'이란 말이 생겼다고도 하고, 을미사변(乙未事變, 1895) 뒤에 낙향한 양주대감(楊州大監, 前 法部大臣 李裕寅)이 이곳에 살면서부터 고관(高官)들이 자주 오가서 그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현재 용문면의 요지가 되어 면사무소(面事務所), 경찰서 파출소, 우체국, 초등학교, 중학교, 시장, 침례교, 장로교, 천주교, 농촌지도소, 농협(農協), 보건소 등이 있다. 마을길에 돌담이 많아 시골 냄새를 풍긴다. 472가구 2,252명(1980) 중 함양 朴 98가구, 원주 邊 35가구 등이 살다가, 460가구 1,500명(1992) 중 함양 朴 80가구, 원주 邊 32가구, 안동 權 20가구, 광산 金 15가구, 김해 金 15가구, 경주 金 10가구, 파평 尹 6가구, 예천 權 5가구 등이 살고 있다. [傳說] : 옛날, 타지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서 금(金)을 케어가지고 가기에, 마을 사람들이 분개하여 쫓아버리려고 타일렀지만 말을 듣지 않아서 종들을 보내어 그만 싸움이 터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상자(死傷者)가 생겼다고 한다.(교남지 1937)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