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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599 : 금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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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위에 뜬 연꽃을 닮았네-금당실 마을] : 금당실 마을(용문면 상금곡리)에 들면 옛 모습의 고택들과 구불구불 얽혀 있는 돌담길이 정겹게 다가온다. 허리춤 높이의 돌담길은 길게 곡선을 그리며 마치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어떤 곳은 기와로 담장을 얹었고 어떤 곳은 짚으로 담장을 장식해 놓았다.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흘깃흘깃 낯선 집안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관음증 탓이 아니다. 꼭꼭 닫힌 도시의 주택가와 달리 집집마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담장이 낮아 집안이 훤히 보인다. 무작정 돌담길이 이끄는 대로 걷다보면 마을 안쪽에 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저마다 노란 번호표가 부착된 소나무들은 상단부에만 가지와 솔잎을 피워 얼핏 키 큰 버섯 형태를 띠면서 몸통은 이리저리 굽어 있다. 모양새를 가만히 보면 허리 가는 여인들이 군무를 추고 있는 듯하다. 소나무 숲 뒤 쪽에는 잘 정비된 금곡서원이 있다. 소백산자락에 깃든 조선 10승지로서 반상의 문화가 공존했던 마을답게 금곡서원은 단아한 기와가옥들이 배치돼 있어 옛 선비들의 정갈한 삶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1천여 가구가 사는 금당실 마을에서 영화촬영지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찾은 박춘수(작고) 씨댁. 나의 결혼 원정기(2005년)가 촬영된 곳이다. 마당에는 장독대만이 집을 지키고 사람은 살고 있지 않다.영어완전정복(2003년)이 촬영된 박연이 씨댁은 최근 복원공사가 마무리 돼 둘러보기에 별 무리가 없다. 박춘수 씨 집과 조금 떨어져 있다. 봄 햇살이 따갑게 느껴질 즈음 금당실 마을을 벗어나 선동마을로 가는 차에 눈에 띤 사괴당 고택은 돌담장 안에 펼쳐진 넓은 마당과 정면 5칸의 ᄃ자형 팔작지붕 안채, 초가를 얹은 이층 대문채가 인상적이다. 조선 후기 주책변천사를 연구하는데 중요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고즈넉한 벽촌의 풍경-선동마을] : 금당실 마을에서 약 3km 떨어진 선동마을(선 2리)은 영화 그해 여름(2006년)의 주 촬영지라 할 수 있다. 용문면사무소를 지나 사괴당 고택을 끼고 좌회전하면 다다르는 선동마을은 전형적인 벽촌이다.
석영(이병헌 분)과 정인(수애 분)이 만나는 결정적 계기인 석영의 농촌 봉사활동 장면 대부분이 이곳에서 찍었다. 선동마을 가는 길은 전형적인 농촌의 봄 들녘풍경을 연출한다. 계곡과 산자락엔 땅의 온기가 솟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계단식 논과 밭둑엔 봄나물이 무리를 지어 연녹색의 옷을 입고 있다. 선1리를 지나 2리 선동마을에 들면 초라한 선동분교가 가장 먼저 눈에 띤다. 봉사활동 온 학생들과 마을 주민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석영과 정인이 손을 잡는 장면 등 스크린 속 장면들이 스쳐가는 선동분교는 교실 2개가 전부인 폐교로 운동장에는 녹슨 미끄럼틀과 단상이 영화 속 추억을 더듬는다. 교실 벽에 쓰인 푸른 꿈을 가꾸는 즐거운 학교라는 슬로건은 자꾸만 비어가는 농촌학교의 현실을 무색하게 만든다. 화재장면을 촬영한 분교 옆 교회 터에는 역시 녹슨 종과 종루만이 보인다. 정인의 집이었고 정인이 마을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곳인 선동마을 주민(정병식, 정기봉, 정원섭 씨)의 집과 논밭도 찾아볼 수 있다. [◆금당실 마을과 선동마을 주변 볼거리] : 선동마을을 나와 다시 금당실 마을을 거쳐 928번 지방도를 따라 동로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초간정(草澗亭`보문면 죽림리)이 나타난다. 초간정은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권문해가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세운 정자로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수려한 풍광을 이루는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정자에 오르면 경치 좋은 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글을 읽던 선비의 삶이 부러워진다. 초간정을 나와 조금 더 차를 몰면 용문사 가는 길이다. 신라 천년 고찰이자 예천의 대표 사찰인 용문사는 일주문을 지나자 보광명전 앞 비탈에 조경이 한창이다. 고운 단청과 깔끔한 절 마당 5층 석탑을 미루어 보아 불사(佛事)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청아한 오색단청은 보는 이의 가슴까지 물을 들인다. 용문사는 여러 전각 중 특히 대장전과 그 곳에 있는 목각탱화와 윤장대는 유명하다. 목각탱화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대중들을 상`중`하 3열로 배치시켜 전체 구도의 단순성을 피했으며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에 쓰던 윤장대는 국내 유일의 경전용 책장으로 대장전 내부 좌우에 각 1개씩 설치되어 있다. 깨달음의 과정을 그린 심우도(尋牛圖)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꿀을 탐하는 중생의 모습을 표현한 보광명전의 벽화는 불교적 세계관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행 Tip] : 예천 용문면 금당실 마을과 선동마을, 용문사 등을 찾아 나들이를 하려면 도시락을 필히 지참하고 가는 것이 좋다. 국도와 지방도로 변에 간간히 식당과 작은 음식점이 있기 하지만 전형적인 농촌풍경을 배경 삼아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는 멋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라 하겠다. 용문면 일대의 산과 계곡, 들판이 본격적인 계절의 수채화를 그리기에 앞서 수묵화로 밑그림을 그리고 있어 어디든 자리만 깔면 훌륭한 소풍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된장만 있다면 논둑과 밭둑에서 자라는 냉이와 쑥을 뜯어 씻기만 해도 한 끼 찬거리로 모자람이 없다. ◇예천 용문면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예천 나들목을 나와 예천 방향 28번 국도를 타고 예천읍에 다다라 928번 지방도로 우회전한다. 이 때부터 용문사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면 곳곳에 병암정과 금당실마을, 선동마을, 초간정, 용문사 이정표가 나타난다.(우문기 記者 每日新聞 2007년 04월 05일)
금당실(龍門面 金塘室마을 古家屋 整備事業 完了 民泊 및 映畵.드라마 撮影場 活用) [記事] : 예천군이 유교문화자원의 정체성 회복과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추진해 온 금당실마을 고가옥 정비사업이 2007년 10월 30일 완료됐다. 지난 2001년부터 시작한 고가옥 정비사업은 26억 원의 사업비로 8가구 31동의 고가옥을 복원 정비했다. 예천권씨종택 및 금당실마을 정비사업은 초가 정비와 공공편익시설 설치만 남겨두게 됐다. 용문면 상금곡리에 위치한 금당실 마을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십승지지의 하나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무덤, 금곡서원, 추원재 및 사당(민속자료 제82호), 반송재고택(문화재자료 제262호), 사괴당고택(문화재자료 제337호),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대저택 터와 많은 고택들이 있는 전통마을이다. 예천권씨종택 보수사업 및 문화재 3동 보수사업, 금당실 마을 담장정비사업을 2006년까지 모두 완료한 바 있는 예천군은 이번 고가옥 복원 정비로 금당실 마을을 민박, 영화․TV드라마 촬영장, 전통혼례식장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인근의 용문사, 전통서예체험관, 초간정, 명봉사, 예천온천과 연계하여 체험형, 체류형 관광지로 개발하며, 민족 고유의 전통생활상 및 모습을 재현하여 후대 중요 교육 자료로 활용해 나갈 계획이다.(김상국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7-10-30)
금당실(醴泉 金塘室서 `古를 배우자 : 古家屋 整備事業 完了, 傳統生活 體驗場 活用) [記事] :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 소재한 금당실 마을 고가옥 정비사업이 완료, 우리의 문화유산을 후손들에게 알리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금당실 마을의 돌담장 및 고택들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떠오른다. 예천군이 유교문화자원의 정체성 회복과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추진해 온 금당실 마을 고가옥 정비사업이 완료돼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생활 양식과 관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훌륭한 전통생활 체험 및 산 교육장으로 탈바꿈했다. 용문면 상금곡리에 위치한 금당실 전통마을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십승지지의 하나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무덤, 금곡서원, 추원재 및 사당(민속자료 제82호), 반송재 고택(문화재자료 제262호), 사괴당 고택(문화재자료 제337호),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대저택 터와 수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전통마을이다. 금당실을 전국 최고의 전통마을로 조성해 민박, 영화․TV드라마 촬영장, 전통혼례식장 등으로 활용하는 한편 용문사, 전통서예체험관, 초간정, 명봉사, 예천온천과 연계하여 체험형, 체류형 관광지로 개발하고, 민족 고유의 전통생활상 및 모습을 재현해 후대 중요 교육 자료로 활용해 유교 문화의 정체성 회복에도 크게 도움이 되도록 할 방침이다. 한편 엄종호 문화관광과장은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집중 조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먼저 예천군 문화관광개발을 위해 충․효 테마공원 조성, 효 공원 꽃동산, 휴경지활용 주말농장, 문화유적탐방, 화룡포 경관조성 및 관광코스개발, 예천군 상징 관광기념품 공모, 내고장 명소 홍보 등 관광객 유치를 위해 농촌체험 등 예천만의 특징이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김원혁 記者 慶北道民日報 2007-11-05)
금당실(마을이 온통 낮은 돌담... 굽이굽이 포근해) [記事] : 구미와 가까운 곳에 돌담마을이 몇 군데 있어 자주 다녀봤지만, 온 마을이 돌담에 둘러싸인 곳은 처음 봤어요. 그것도 옛 한옥집이 즐비하게 있어 돌담과 썩 잘 어울리는 예스런 풍경은 우리 마음을 통째로 빼앗고도 남았어요. 온통 돌로만 담장을 쌓은 옛스런 풍경에 흠뻑 빠져 둘러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게 하던 그런 곳, 바로 예천 자전거 나들이에서 만났답니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마을 옛 이름은 '금당실'이에요. 이 마을은 예로부터 '십승지지(十勝之地)'라고 해서 풍수지리로 볼 때,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나도 마음놓고 살 수 있는 열 군데 땅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흔히 '피난지'라고도 말하더군요. 초간 권문해가 지었다는 초간정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멋진 소나무 숲이 마치 이 마을을 지키기라도 하듯 들머리에 넓게 자리잡고 있었어요. 겨울 매서운 바람을 잘 막아주는 바람막이 노릇도 톡톡히 하는 듯 했어요. 더구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답니다.
[돌담길에 빠져 자칫 길 잃어버리겠네!] : 소나무 숲을 지나 이 마을에 들어설 때 무척 놀라웠어요. 집집이 온통 낮은 돌담을 쌓아놓았는데,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라요. 더구나 전통 한옥집이 많았고, 그것과 어우러진 돌담길은 옛 사람의 푸근하고 따듯한 정도 저절로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답니다. 땅도 거의 흙길이었고 500집 남짓 되는 마을에는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퍽 놀라웠답니다. 가지런히 쌓은 돌담 위에는 짚으로 엮은 이엉을 얹어놓았는데, 그 위에다가 긴 대나무를 얹어 다시 엮었기 때문에 바람에도 끄덕하지 않도록 만들었어요. 옛 사람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꼼꼼함이 참 좋았답니다. "허! 가도 가도 끝이 없네?" "그러게. 온통 돌담길인 것도 놀랍지만 무슨 미로 같아." "가만, 여기 아까 봤던 데 아냐?" 구불구불 돌담길을 따라 자전거를 끌고 알록달록 요상한 옷차림으로 걷는 우리는 어쩌면 그야말로 낯선 이방인이었답니다. 마을 어귀에 있는 금곡서원부터 시작하여 골목길을 따라 가는데, 이게 웬일이래요? 가도가도 끝이 없고 눈에 띄는 건 온통 돌담뿐이었어요. 모퉁이 하나 돌면 돌담이요. 또 하나 돌면,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돌담길, 마치 미로 같았답니다.
[구불구불 돌담길 따라 전통을 잇는다] : 가만히 살펴보니, 담장이 아주 오래된 옛것도 있었지만 새로 쌓은 듯 보이는 돌담이 많았어요. "아마 여기를 전통마을로 새로 꾸몄나봐!" '그런가 보다. 여기저기 문화재도 많이 있는 걸 보니 마을 전체를 새로 꾸몄지 싶다." "어쨌거나 참 보기 좋다. 골목마다 돌로 낮게 담장을 쌓아놓은 것도 멋지고, 옛것도 그대로 잘 살려놓아서 참 보기 좋네." "우리가 지난해에 가봤던 성주 한개마을과 군위 한밤마을도 참 멋졌는데 여긴 정말 거기와는 또 다른 맛이다. 그치?" "그래. 마을도 꽤 큰데 이 많은 돌담을 새로 쌓으려면 돈 좀 들었겠다." "그러게. 그래도 예천군에서 참 잘하고 있네. 자기 지역을 살리는 일에 아낌없이 돈을 쓸 줄도 알고, 전통을 잘 살려 보존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그런데 보니까 아직 마무리가 덜 된 것 같기도 한데, 나중에 다 되면 정말로 멋진 마을이 되겠다." "하! 부럽다. 그러고 보면, 예천에는 볼거리도 많고 얘깃거리도 참 많다. 그치?" 낮에도 사람소리가 들리지 않는 여느 시골마을처럼 이 마을도 무척 조용했어요. 구경하는 동안 틈틈이 강아지 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어요. 드문드문 빈집도 보였는데, 여기에도 울타리에는 새로 돌담을 쌓아놓았어요. 모퉁이를 돌아가다 보면, 반송재고택․사괴당고택․추원재……. 문화재로 지정된 옛집들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는데 아쉽게도 문이 잠겨있어 안을 제대로 살펴볼 수는 없었답니다. 그래도 담장이 낮아서 구경하기에는 많이 힘들지 않았지만.
[돌담길 벗어나니 여긴 '딴 세상'] : 미로같은 돌담길을 따라 재미나게 실컷 구경하고 부지런히 사진도 찍으면서 모퉁이 하나를 돌았는데, 어머나! 여긴 딴 세상이네요? "헉! 이게 뭐야?" 깜짝 놀랐어요. 가도가도 온통 돌담만 보였는데,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어요. 그저 모퉁이 하나 돌았을 뿐인데, 조금 앞서 봤던 풍경은 마치 조선시대를 걷고 있는 듯했는데, 이젠 70~80년대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어느 마을에 우리가 서 있는 거였어요. 부용철물․금성소리사․방앗간…. 이름도 정겨운 간판이 걸려있고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여러 가지 가게들이 서로 마주보며 있어요. 돌담마을에서는 사람구경도 하기 힘들었는데, 여기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이 보였어요. 내친 김에 마을 어르신 한 분께 여쭈었어요. "할머니, 요 안에 마을을 구경하고 나왔는데요. 저 돌담이 언제부터 있던 거예요? 옛날에도 있었나요?" "아니야! 이 마을에는 옛날에도 돌담 쌓은 집들이 많이 있었지. 그런데 한 2~3년 됐나? 군에서 새로 저렇게 한 거야." "아…. 예. 그럼 저 많은 걸 군청에서 다 만든 거예요?" "그렇지. 원래도 많이 있었는데 전통마을인가 그거 한다고 다시 저렇게 한 거여." 우리 생각이 맞았어요. 이 금당실 마을 둘레에는 앞서 봤던 초간정․예천권씨종택․용문사․명봉사까지 역사 깊은 문화재가 참 많은 곳이에요. 그런데다가 이 마을 안에도 앞서 소개한 전통 한옥집인 고택들이 많이 있어 이 마을 전체를 전통마을로 새로 만들고 있던 거였어요.
[예천군청 인터뷰, 그리고 아쉬움] : 나중에 예천군청 관광개발 담당자인 신연규 씨한테 전화로 이 마을 이야기를 더욱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어요. 지난 2006년에 문화관광부에서 관광자원개발사업을 지원받을 곳으로 이 금당실 마을이 뽑혔는데, 그 때부터 이 전통마을 공사를 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사업은 이 지역에서 뿌리내린 유교권 문화를 되살리는 깊은 뜻으로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었지요. '유교문화권사업'의 하나로 총 공사비 23억을 들여서 하고 있는데, 2009년에 모두 마무리 지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전통 한옥과 돌담길이 어우러져 낡은 옛집을 다시 고쳐 세우기도 하고, 또 새롭게 집집이 돌담을 쌓아 우리 전통 멋을 그대로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 참, 한옥집과 돌담길에 썩 어울리지 않는 게 하나 있는데요. 그건 바로 전봇대에요. 우리도 이런 옛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에 왔을 때, 사진을 찍으면서 눈에 많이 거슬렸던 게 바로 이 전봇대와 전깃줄이었지요. 그런데 이 전봇대도 하나하나 새롭게 손볼 거란 얘기도 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 조상들의 슬기가 그대로 묻어나고 그 옛날 조상의 얼을 살리려고 지역에서 스스로 애쓰는 예천 사람들이 퍽 정겹고 자랑스럽게 여겨졌답니다. 이번 나들이에는 이 금당실 마을을 잘 알지 못한 채 다녀와서 아쉬움도 많이 남아요. 나중에 알았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옛집마다 따로 관리인이 있어 미리 약속을 잡고 오면 더욱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마무리가 덜 된 것이라 딱히 탓할 수는 없지만, 문화재마다 너무 꼭꼭 숨겨둔 듯해서 많이 안타까웠어요. 우리처럼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구석구석 잘 살펴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어요. 자기 고장을 알리는 작은 책자에는 이런저런 문화재가 있고, 맘껏 구경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문을 꼭 닫아놓고 들여다볼 수 없어서 몹시 속상했답니다. 또 문화재를 알리는 알림판이라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이래저래 예천을 떠나올 때, 밥집 할머니와 했던 약속을 꼭 지킬 수 있을 듯 하네요. "우리 예천에 아직 볼 데가 많거든요, 꼭 다시 올 거예요" 하고 말했던 그 약속 말이에요.(손현희 記者 오마이뉴스 2008년 1월 30일)
금당실 : 지본일신가(知本一身歌)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 임기중 저 | 임기중/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열 군데의 땅. 풍기(豊基)의 금계촌(金鷄村), 안동(安東)의 춘양면(春陽面), 보은(報恩)의 속리산(俗離山), 운봉(雲峰)의 두류산(頭流山), 예천(醴泉)의 금당동(金堂洞), 공주(公州)의 유구(維鳩)와 마곡(麻谷), 영월(寧越)의.../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 > 한국역대가사문학집성 제목순 > 자 > 지본일신가(知本一身歌)/ 예천(醴泉)에 대한 KRpia-한국의 지식콘텐츠 고전ㆍ문학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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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