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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601 : 금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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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실([國內 旅行地 10選] 그곳에 가니 時間도 멈춘 듯… ⑨ 傳統의 멋이 숨쉬는 故庄, 醴泉 金塘室 마을) [記事]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일대, 금당실 마을 하면 고택과 돌담을 빼놓을 수 없다. 금당실 마을에는 반송재고택(문화재자료 제262호)과 사괴당고택(문화재자료 제337호)을 포함해 10여 채의 고택이 남아 있고, 이들 고택과 역사를 함께한 정겨운 모습의 돌담도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 있다. 볏짚과 황토를 이용해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담은 구불구불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마을 깊숙이 이어진다. 네모반듯하게 올라간, 깔끔하지만 삭막한 도시의 그것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그렇게 이어진 돌담을 따라 마을 산책을 하다 보면 마치 조선 시대 선비라도 된 듯 발걸음까지 느긋해진다. `금당실 송림(천연기념물 제469호)`도 금당실 마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쑤`라고 불리는 이곳은 내륙지방에서는 흔하지 않은 소나무 방풍림이다. 예전에는 그 길이가 2㎞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800m 정도만이 남아 있는데, 방풍림이 이렇게 줄어든 것은 금당리 마을에 숨겨진 슬픈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892년 마을 뒷산인 오미봉에서 몰래 금을 채취하던 러시아 광부 두 사람을 마을 주민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조선과 러시아 간 외교문제로 비화해 마을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으로 치닫고 말았다. 마을 주민들은 고심 끝에 마을의 공동 재산이었던 이 소나무를 베어 러시아 측에서 요구하는 배상금을 충당하게 되었고, 그렇게 베어내고 남은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오랜 세월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로부터 마을을 지켜준 송림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박소운 記者 每日經濟 2009.07.01)
금당실(李翰成 國會議員 : 聞慶 五味子 마을, 醴泉 金塘室 마을 消息) [記事] : 문경 오미자마을(동로면 생달리, 적성리 일원)과 예천 금당실마을(용문면 상금곡리, 하금곡리, 원류리)이 농림수산식품부의 2010년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이한성 의원에 따르면 2009년 12월 24일 농림수산식품부 2010년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대상지 심사 결과, 문경 오미자마을과 예천 금당실마을이 최종 선정돼 내년부터 국비를 지원받아 체계적인 개발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은 농림수산식품부가 농촌마을의 경관개선, 생활환경정비 및 주민 소득기반시설 확충 등을 통해 농촌다움을 유지·보전하고 농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난 2004년부터 추진해온 국책사업이다. 그동안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에 선정됨에 따라, 오미자마을에는 총사업비 53억 원, 금당실마을에는 총사업비 72억 원이 투입돼 문화복지시설, 소득기반시설, 농촌관광시설, 경관시설, 운동휴양시설 및 체육시설 등이 설치될 예정이다. 이한성 의원은 “그동안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대상지 선정을 위해 힘을 모아 노력해주신 주민들께 감사드리고, 오미자마을과 금당실마을이 모두 대상지로 선정된 만큼, 앞으로 종합개발사업을 착실히 추진해, 살고 싶고 찾고 싶은 농촌마을이 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聞慶인터넷뉴스社 2009-12-25)
금당실(醴泉金塘室圈域 새롭게 脫바꿈한다 : 2010年度 農村마을 綜合開發事業 對象地 選定) [記事] : 예천 금당실권역이 2010년도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새롭게 탈바꿈한다. 십승지지의 하나로 전통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금당실 마을이 위치한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 권역이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2010년도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사업비 70억 원을 지원받아 관광과 농업소득이 조화를 이루는 살기 좋은 농촌마을로 가꾸어진다. 금당실권역은 용문면 상금곡리·하금곡리·원류리 3개리로 권역면적 846ha에 504가구 1,153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마을경관개선, 생활환경정비, 주민 소득확충, 농촌정주지원, 주민역량강화 등의 사업을 펼치게 된다.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은 지역주민이 직접 계획.참여하여 농촌을 개발하는 상향식개발사업으로 지역의 부존자원을 활용해 지역 특색을 살려 발전을 추구해 농촌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농촌 관광 등 다양한 소득원 개발을 통한 농외소득 증대를 위해 실시된다. 군은 이번 사업대상지 선정을 위해 2009년 9월에 신청권역 예비계획서를 경상북도에 제출하고 10월에는 농림수산식품부에 제출했으며, 12월초에 예비타당성 현지조사와 평가를 거치는 동안 철저한 준비로 이번에 대상지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금당실 권역은 면 소재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 타 지역에 비해 도시민 대상 서비스 공급이 원활하고 유교문화권 사업을 통해 잘 보존된 고택과 전통가옥 등 마을별 특화된 자원이 풍부하며 주민들이 지연ㆍ학연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사업에 대한 인식과 역량이 상당히 높은 곳으로 평가받았다. 예천군의 계획에 따르면 금당실권역의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유ㆍ무형의 다양한 자원과 금당실 송림, 오미봉, 전통마을 등 활용도 높은 자연자원을 중심으로 상금곡리는 옛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는 교류의 어울마을로, 하금곡리는 친환경농산물과 음식문화로 지켜가는 나눔의 풍요마을로, 원류리는 자연과 생태자원으로 만들어가는 안식의 휴양마을로 가꾸어 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예천군은 송림산책로 물길 및 쉼터 조성 등 마을경관 개선사업을 시작으로 친환경 주차장 조성 등 생활환경정비사업, 웰빙전통음식체험관 건립 등 주민소득확충사업, 자연친화미래형 주거단지 조성 등 농촌정주지원사업을 펼쳐나가기로 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견학, 컨설팅, 권역홍보, 정보화, 마을경영 등을 통해 주민역량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2010년에 기본계획 수립을 완료하고 승인을 받게 되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사업을 시행하게 된다.”면서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기본계획 수립 등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장인철 記者 2009년 12월 27일)
금당실 : 용문면 `금당실전통마을'(자료=예천군) | 가볼만한 곳/ 예천신문 | 2010.04.02. 15:14/ 금당실전통마을/ 소재지 : 용문면 상금곡리(금당실)/ 시설규모 : 문화재고택 : 3동 / 서원 : 1동 / 개량고택 : 10동-주차장 : 100대/ 자세한 소개 : 금당실 마을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곳으로 십승지지의 하나이다. 이곳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무덤, 함양 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 함양 박씨 입향조 박종린을 모신 추원재 및 사당(민속자료제82호), 조선 숙종 때 도승지 김빈을 모신 반송재고택(문화재자료제262호), 원주 변씨 입향조 변응녕을 모신 사괴당고택(문화재자료제337호), 구한말 세도가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대저택 터가 있으며, 이외에도 개량된 고택들이 많은 전통마을이다. 그리고 용문중학교를 중심으로 500여m 가량 뻗어 있는 100여년 넘은 소나무와 용문면사무소 앞 300년 된 성황당 느티나무는 주민들의 안식처와 휴식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 교통이용안내 : 예천읍에서 시내버스로 20분, 10km 위치/ 연락처 - 금당실전통마을(daum 2010)
금당실(朝鮮 太祖도 반해 都邑地로 定하려 했던 明堂 : 文化解說師와 함께하는 慶北의 再發見 - 51. 醴泉 上金谷里 追遠齋·祠堂) [記事] : 경북 예천군 용문면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의 명당으로 손꼽히는 금당실이라는 마을이 있다. 정록감에는 "금당실은 우리나라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병화(兵火)가 들지 못한다."고 해 임진왜란 때에도 온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풍수가로 널리 알려진 격암 남사고(南師古, 1509년~1571년)는 이곳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던 곳 중의 하나로 금당실과 맛질을 하나로 보면 서울과 흡사하지만 큰 냇물이 없이 아쉽다고 하여 '금당맛질 반(半)서울'이란 향언도 생겨나게 됐다고 한다. 이처럼 용문 금당실은 조선시대 사람이 살기 좋은 복된 땅으로 인식되었던 곳이다. 예천군청 이재완 학예연구사와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예천 상금곡리 추원재 및 사당(경상북도지정 민속자료 제82호)에 대해 알아본다. 금당실은 '배날들'을 사이에 두고 위쪽의 '윗금당실', 아래쪽의 '아랫금당실'로 나누어지는데, 현재 행정구역상 윗금당실은 상금곡리, 아랫금당실은 하금곡리로 구분된다. '금당실'이란 이름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옛날 중국 명나라 장수가 이곳을 지나다 입구에 학고개가 있고, 오른쪽 어깨에 개고개가 있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금계(金鷄)가 앞에 있고, 옥견(玉犬)이 뒤에 있는 것이 마치 중국 양양 고을의 금곡(金谷)과 같다"고 했다. 상금곡리는 배산임수형 마을로 뒤쪽에는 오미봉(五美峰)을 비롯한 해발 200m 내외의 산들이 이어지고, 앞쪽으로는 금곡천(金谷川)이 휘감아 흐르는데, 금곡천 주변에는 비교적 넓은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그리하여 금당실 사람들은 명당에 걸맞게 전쟁이나 난리가 났을 때 마을 뒤쪽 계곡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쉽게 피난 갈 수 있어 화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이곳 주민들은 주변에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복된 땅이라고 전했다. 금당실에는 감천 문씨 문억향의 사위인 함양 박씨 박종린(1496~1553)이 함창에서 이사해 세거했다. 함양 박씨 박종린은 퇴계 아버지인 이식의 처외사촌이며, 외조가 보백당 김계행(1431~1517)이다. 이후 금당실은 함양 박씨들이 대과 급제자 11명을 배출하면서 명문으로서의 지위를 굳히게 된다. 박종린(朴從鱗, 1496~1553)은 1516년(중종 11)에 진사가 되고, 1532년(중종 27)에는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로 벼슬을 시작했다. 그 후 홍문관에 들어가 교리(1536년)로서 세자시강원 사서 및 문학을 겸직하면서 세자에게 글을 가르쳤다. 또한 그는 사간원헌납을 거쳐 이조정랑에까지 이르는 동안 경연의 시독관(1536년)을 겸직하여 중종 임금의 정치 자문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러나 당시의 권세가인 김안로의 횡포가 심해 벼슬을 그만두고, 용문면 상금곡리에 숨어 정신 수양과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면서 후진 양성에 여생을 보냈다. 박종린은 다섯 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해 세칭 향오린(鄕五鱗:형제 5명이 모두 문과에 등과)이라 불렸는데, 그의 형인 거린(巨鱗), 형린(亨鱗), 홍린(洪鱗), 붕린(鵬鱗), 종린이 모두 과거에 급제했기 때문에 아버지 박눌(朴訥)이 병조참판에 추증(1533년)되기도 했다.
사당 기둥에 연꽃무늬 새겨 '예스러움' 더해(이재완 학예연구사에게 듣는 건축양식) : 금당실 마을에는 함양박씨 입향조 박종린을 숭모해 재향을 올리는 금곡리 추원재 및 사당(上金谷洞 追遠齋 ·祠堂)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1532년(중종 27) 과거에 합격한 이후 홍문관 교리와 이조정랑을 역임한 함양박씨 금당실 입향조인 박종린(朴從鱗)을 추모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1656년(효종 7)에 건립한 것으로 1988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2호로 지정되었죠. 담장 안에 사당과 내삼문 ·추원재(강당) · 대문간 등 4동이 동일 축선상에 배치돼 있고, 담장의 오른쪽에는 영사정이 별도 공간을 이루며 자리 잡고 있답니다. 추원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며 막돌기단을 쌓고 막돌초석을 두었으며 앞면에는 둥근기둥을, 나머지에는 네모기둥을 세웠습니다. 또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오량가 구조의 익공집입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장대석기단을 쌓고 그 위에 막돌초석을 둔 오량가 맞배지붕집이기도 하죠. 이 집은 기둥 상부의 익공쇠서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장식했으며, 창방과 장여 사이에는 화반을 끼워 넣어 짜임과 양식이 매우 예스럽다할 수 있습니다. 이 학예사는 "금당실은 사람이 잘살 수 있었던 복된 땅이자, 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명문가의 세거지로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며 "향후 예천지역 인물들을 주제로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된다면 인물과 연계된 관광지 개발에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장석원 記者 慶北日報 2010-12-17)
금당실([週末旅行] 慶北 醴泉 金塘室 마을 : ◆ 꼭 걷고 싶은 길 (34) / 금당실 마을 ◆ ) [記事] : 경북 예천 금당실 마을은 정감록의 십승지 가운데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명소로 꼽힌다. 주변 경치가 좋고 지형이 뛰어난 곳으로 금당실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금당실 마을은 `물에 떠 있는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앞 금곡천에 사금이 생산되었다고 해서 금당실은 금당곡 혹은 금곡이라고도 불린다. 600여 년 전인 15세기 초 감천 문씨가 이곳에 정착했고 그 사위인 함양 박씨 박종린과 원주 변씨 변응녕의 후손이 그 뒤를 이어 오늘에 이른다. 금당실은 조선시대 고가옥과 미로처럼 연결된 돌담길이 옛 양반 문화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다른 민속마을과 달리 이곳의 한옥은 개방돼 있어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다. 마을 서쪽에는 약 800m에 이르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금당실 마을을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다. 송림은 소나무 수령이 100~200년 정도, 둘레가 약 20~80m에 이르는 줄기가 구불구불하게 자란 자연림으로 2006년 천연기념물 제469호로 지정되었다.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 KBS 드라마 `황진이` 등 각종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길 걷기 전문 여행사 블루라이프(www.hibluelife.com)에서 2011년 3월 12일(토요일) 경북 예천군 금당실 마을 걷기 상품을 판매 중이다, 봄이 오는 산골마을과 천연기념물 송림을 즐긴다. 코스는 약 12㎞, 4시간 소요된다. 점심식사로 오징어, 돼지고기 등의 연탄구이가 제공된다. 요금은 4만7000원...(每日經濟 2011.03.06)
금당실(後進 養成 힘쓰던 선비精神 느껴져 : 醴泉 金谷洞 追遠齋 金塘室 入鄕祖 朴從鱗 追慕 爲해 建立 1988年 慶北道 民俗資料 第82號 指定) [記事] : 예천군 용문면에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손꼽히는 금당실이 있다. 조선시대 풍수가로 널리 알려진 격암 남사고(南師古, 1509년~1571년)는 "금당실은 우리나라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병화(兵火)가 들지 못한다"고 해 임진왜란 때에도 이 마을만큼은 온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또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던 곳 중의 하나로 "금당실과 맛질을 하나로 보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어 아쉽다"고 해 '금당맛질 반(半)서울'이란 향언도 생겨났으며 이처럼 용문 금당실은 조선시대 사람이 살기 좋은 복된 땅으로 인식되었다. 금당실에는 감천 문씨 문억향의 사위인 함양 박씨 박종린(1496~1553)이 함창에서 옮겨 왔다. 함양 박씨 박종린은 퇴계 아버지인 이식의 처 외사촌이며, 외조가 보백당 김계행(1431~1517)이다. 이후 금당실의 함양박씨들은 대과 급제자 11명을 배출해 명문으로서 지위를 굳히게 된다. 박종린(朴從鱗·1496~1553)은 1516년(중종 11)에 진사가 되고, 1532년(중종 27)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로 벼슬을 시작한다. 그 후 홍문관에 들어가 교리(1536년)로서 세자시강원 사서 및 문학을 겸직하면서 세자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는 사간원헌납을 거쳐 이조정랑에까지 이르는 동안 경연의 시독관(1536년)을 겸직해 중종 임금의 정치 자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당시의 권세가 김안로의 횡포가 심해 벼슬을 그만두고, 용문면 상금곡리에 숨어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면서 후진 양성에 여생을 보냈다. 금당실 마을에는 함양박씨 입향조 박종린을 숭모해 재향 올리는 금곡동 추원재 및 사당(上金谷洞 追遠齋 및 祠堂)이 있다. 이 건물은 1532년(중종 27) 과거에 합격한 이후 홍문관 교리와 이조정랑을 역임한 함양박씨 금당실 입향조인 박종린(朴從鱗)을 추모하고 제사하기 위해 1656년(효종 7)에 건립한 것으로 1988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2호로 지정됐다. 담장 안에 사당과 내삼문 추원재(강당)·대문간 등 4동이 동일 축선 상에 배치되고, 담장의 오른쪽에는 영사정이 별도 공간을 이루며 자리 잡고 있다. 추원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오량가 구조의 익공집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장대석기단을 쌓고 그 위에 막돌초석을 둔 오량가 맞배지붕집이다. 이 집은 기둥 상부의 익공쇠서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장식하였으며, 창방과 장여 사이에는 화반을 끼워 넣어 짜임과 양식이 매우 예스럽다.(이상만 記者 慶北日報 2011-04-08)
금당실(달빛 가득, 古家에서 風流를 만나요 : 18日 午後 8時부터 醴泉, 義城 等 儒敎文化圈에서 同時 進行) [記事] : 유교문화권 9개 시ㆍ군에서 매 주말 밤마다 진행되고 있는 세계유교문화축전 고가음악회가 이번 주말인 2011년 6월 18일에는 의성 사촌마을과 청송 송소고택, 예천 금당실 마을에서 동시에 열려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세계유교문화축전 고가음악회의 올해 첫 공연이 열리는 예천은 18일(토) 저녁 8시부터 금당실마을 전통한옥체험관(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에서 ‘별,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예천문화원 주관)이란 주제로 대금 연주, 색소폰 합주, 대중가요 등의 다양한 공연이 진행돼 관객과 하나 되는 마당이 연출될 예정이다... 세계유교문화축전 조직위원회는 다음 주말인 오는 25일에는 문경새재 옛길 박물관과 봉화 만산고택, 영양 여남강당 등 3개 지역에서 고가음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세계유교문화축전 조직위원회는 경북 북부지역 9개 시ㆍ군에서 매 주말마다 테마가 있는 공연을 개최하고 있으며 지난 4월부터 오는 10월까지 모두 56차례 고가음악회를 진행해 지역 주민과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축전 조직위원회는 “이번 고가음악회는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문화체험의 장이 되고, 지역을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는 한국적 풍류를 느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세계유교문화축전 2011(World Confucianism Festival)」은 “사람을 받들고, 세상을 사랑하고”를 슬로건으로 유교문화권 9개 자치단체(안동시, 영주시, 상주시, 문경시, 의성군, 청송군, 영양군, 예천군, 봉화군)와 안동MBC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유교문화 산업화 프로젝트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년째를 맞고 있다. 주요 사업은 오는 11월까지 고가음악회, 라디엔티어링, 한국과자축제, 삼강주막 막걸리축제, 하회마을 실경뮤지컬 부용지애, 유교음식 페스티벌, 부석사 불교문화축제, 세계유교연맹 건립, 지역 전문인력 육성, 유교문화 UCC 공모전 등이 있다. -예천 금당실마을 전통한옥체험관 : 금당실은 마을내 고인돌 무덤이 산재하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기록상으로는 600여년 전 15세기 초 감천 문씨(문헌)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의 손자 문부경의 사위 박종린과 변응녕이 처향인 금당실에 터전을 잡으면서 그 후손들이 번성하여 큰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전한다.(醴泉뉴스 2011년 0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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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