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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638 : 금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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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증환은, '바닷가는 해풍과 강한 햇빛으로 얼굴이 타기 쉽고 탁한 조수로 인해 맑은 기운이 적으며, 강촌은 산골에서 빠져나온 강물이 항상 급하게 쏟아지듯 흘러 그 흥망이 무상하지만, 시냇가는 평온함과 운치가 있고, 관개와 농사의 이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금당실을 둘러싸고 있는 충적평야는 산간 계곡에 놓인 들판치고는 무척 넓은 편이다. 그러나 소백산 줄기 여러 골짝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모여들어 가뭄이 들어도 여간해서는 하천이 마르지 않아 용문분지[금곡분지] 넓은 들판은 늘 안정된 생활을 견인할 수 있었다. 특히 야산의 계곡에 보와 저수지를 만든 후에는 '1년 농사를 지어 3년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을은 풍요를 누렸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문제가 된 것은 명당수가 판국 밖으로 빠져나가는 모양새였다. 금당실에서 볼 때 금곡천과 선동천은 마을 앞을 가로로 휘감아 돌아 흐르는 게 아니라 대략 45° 각도로 마을 옆을 비스듬히 흘러 곧장 정면의 수구(水口:동네 어귀)쪽으로 빠져나간다. 풍수에서는 ‘수관재물(水管財物)’이라 하여 물을 천금처럼 여기는데, 그토록 빠르게 명당 기운이 빠져나가는[洩氣] 장면을 빤히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금당실 조상들은 과연 어떤 방책을 세웠던 것일까.
◆비보(裨補) 美 : 금당실 마을 서쪽에 길이 500m 정도 되는 큰 소나무 숲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469호인 '예천 금당실 송림'이다. 16세기 초기에 처음 조성된 이 숲은 원래는 마을 주산인 오미봉에서 성현리 정자산 건너편까지 이어지는 2km의 상당히 긴 숲이었다. 구한말 오미봉 금광 채굴 덕대 [현장 책임자] 살해 사건으로 구속된 마을 주민 석방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름드리 큰 소나무들 대부분이 베어지고 지금은 그 4분의 1 정도만 남았는데, 현재의 숲은 그때 남겨두었던 어린 소나무와 뒤에 심은 나무들이 다시 자란 것들이다. 원래의 금당실 숲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진 속에 나타난 현재 남아 있는 숲을 병암정이 있는 정자산 건너편 하금곡리까지 연장시켜 (그 조림돼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된다. 국도(國都)나 지방 도읍지도 아닌 일개 반촌으로서 그런 거대한 숲을 조성한 의지도 놀랍거니와 무엇보다도 '풍수숲'으로서의 그 숲이 지닌 정체성이 너무나 독보적이어서 이 땅 안의 여느 '비보(裨補)숲'들은 감히 그 앞에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현재의 금곡천이 제방이 없는 개천인 상태였다고 가정하고 금당실 솔숲 조성의 원래의 풍수적 의의를 한 번 검토해 보도록 하자.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숲이 또 하나의 용맥(龍脈)을 만든다는 의도로 조성됐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개천변을 따라 인공적인 산줄기[龍] 하나를 새로 만듦으로써 마을 터와 농경지를 지키는 동시에 길지로서의 품격도 갖추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 용맥과도 같은 금당숲은, 장마철이면 시도 때도 없이 마을 안으로 쳐들어 온 금곡천 수마를 제압한 '물막이 용'이었고, 겨울철 북서쪽 들판을 가로질러 사정없이 불어온 칼바람을 잠재운 '바람막이 용'이었으며, 번영·다산·풍요 등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마을 앞쪽의 열려 있는 공간을 막은 '수구막이 용'이었다. 그 밖에도 금당실 숲은 마을의 안과 밖을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차단시켜 마을사람들을 정서적으로 안온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금당실을 찾는 외부인들에게는 고품격의 위의(威儀)를 갖춘 양반촌락 경관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케 해줬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이제 그 숲은 마을사람들 마음대로 나무를 심거나 거름을 주거나 베지 못하게 됐다. 소나무마다 표찰이 붙어 있고 송림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군청에 필요한 조치를 요청해야만 한다. 구한말 앞에서 말한 오미봉 채광 사건으로 소나무를 베어내는 아픔을 겪을 때 마을에 '사산송계(四山松契)'가 결성되고, 그 이후로 쭈욱 마을숲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가꾸어 왔다고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 시간이 더 흘러가기 전에 이 '소나무 계모임'이 성취해야 할 과업이 딱 하나 있어 보인다. 오미봉 위에서 함께 노닐 수 있는 용을 완성시키는 일이다. 무슨 뜻일까.
◆형국(形局) 美 : 용문면 주민자치센터 앞에 금당실이 십승지 중의 한 곳이고, 또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길지임을 알리는 푯돌이 서 있다. 풍수 명촌임을 알리는 상징물인 셈이다. 그런데 풍수형국은 고려하는 공간 범위, 조망 지점과 방향 등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한 장소는 보통 여러 개의 형국명을 갖는다. 금당실의 풍수형국도 무려 네 가지나 되는데, 앞의 두 가지는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뒤의 두 가지는 필자가 처음으로 착안해 낸 것들이다. 첫째는 연화부수형 명당이다. 연꽃이 물에 떠 있는 듯한 지세를 말한다. 혹자는 오미봉을 연꽃으로 보고 금당실 터를 그 꽃이 피는 연못으로 보는데, 심히 잘못된 생각이다. 연화부수형은 금당실 마을 안에서 사방을 조망해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형국이다. 어느 방향으로 보든 모든 집들이 금곡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산들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정좌해 있는데, 그 배경이 되어 주는 반달형의 둥근 산들이 모두 연잎들이다. 비록 하천이 둥글게 마을을 환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가운데 사방의 산들이 마을 터를 둥글게 감싸고 있기 때문에 연화부수형 명당이라 일컫는다. 이 경우, 매봉에서 오미봉까지 이어지는 금당실 터의 주맥(主脈)을 연꽃의 '꽃대'로 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인다. 둘째는 행주형(行舟形) 명당이다. 이것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금곡천과 선동천 물줄기의 안쪽 형상을 말한 것이다. 위성사진을 보면 두 물이 합쳐지는 용문교 쪽이 뱃머리[이물]가 되고, 오미봉 쪽이 배꼬리[船尾·고물]가 되어 마을이 동남쪽으로 항해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오미봉을 돛대나 닻, 혹은 배를 매어두는 계선산(繫船山) 등으로 인식할 수 있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마을 안 느티나무를 돛대로 보고 오미봉을 계선산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할 듯하다. 셋째는 '솔 둥지(松巢)' 명당이다. 이것은 필자가 주민들이 '금당실 송림'을 '솔 둥지'라고 부르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학계에서는 '쑤(藪)'라고 통칭하지만 '둥지'라는 말이 훨씬 더 정감 있어 보인다. 금당실 송림이 마을을 둥지처럼 보듬어 안고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형국이다. 구한말 금당실 주민들이 거의 사라질 뻔 했던 솔숲을 되살려낸 것도 둥지를 파괴하는 것이 곧 마을을 사라지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 '송소(솔 둥지)' 명당은 죽림리 예천권씨의 ‘봉소(鳳巢:봉황 둥지)’ 명당 및 하금곡 버들밭 경주이씨의 '앵소(鶯巢:꾀꼬리 둥지)' 명당과 더불어 금곡[용문분지]의 삼소(三巢) 명당을 이루고 있다. 넷째는 청룡함주형(靑龍含珠形) 명당이다. 21세기에 들어와 거액을 들여 시작된 금당실 전통문화마을 조성사업의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2km에 달하는 금당실 송림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일이다. 아쉬운 대로 항공사진을 통해 용의 형상을 한 번 감상해보자. 오미봉[북] 쪽이 용의 머리가 되고 하금곡리[남] 쪽이 용의 꼬리가 되는데, 현재 용문초등학교에서 하금곡리까지는 가로수가 '용꼬리' 대역을 맡고 있다. 만약 도로변 동쪽 농경지를 20~30여 m 폭으로 매입해 솔숲을 제대로 조성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한 마리의 생동감 넘치는 거대한 수룡(樹龍)이 금곡천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을 띤다. 그 굽이치는 솔숲이 푸른 소나무로 이루어지고 또 용머리 쪽에는 둥근 오미봉이 여의주 역할을 해주니, 청룡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이른바 '청룡함주형'이라는 최가경(最佳景)의 풍수 물형이 완성된다. 용문사가 있다고 해서 용문(龍門)의 땅인 것은 아니다. 전통마을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용의 품속[솔숲 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또 여의주에 해당하는 오미봉에 올라 용과 함께 노닐다 갈 수 있어야 한다. 용문의 미래가 거기에 달려 있다.
◆토의(土宜) 美 : 금당실의 다섯 번째 풍수 미는 토의(土宜) 미다. 토의는 한마디로 '적절한 토지[터] 이용법'이다. 왕조시대 금당실 일대의 터 활용법은 '소백산 피란처'와 '금당실 가거지'가 대세였다. 금당실 북쪽을 겹겹이 두른 높은 소백산 줄기에는 피난하기에 좋은 선리의 절골, 원류리의 허릿골, 내지리의 둔지방, 사부리의 지도실과 불당골 등 수많은 골짝들이 포진해 있고, 산 아래에는 오랜 세월 금곡천과 선리천[仙洞川]이 차별 침식시켜 놓은 넓은 들판[배날들·이문앞들·정자들·대수앞들]이 놓여 있다. 평시에는 앞의 너른 들에서 농사를 짓고 전쟁이나 난리가 났을 때는 마을 뒤 계곡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쉽게 피난하기에 딱 알맞은 지형이다. 조선중기 풍수 관료였던 남사고는 이곳 지세를, '예천에 있는 금당동 북쪽은 비록 지세가 깊지 못하여 밖으로 드러나 있으나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아 여러 대에 걸쳐 편안함을 누릴 것이다'라고 적었다. 실제로 임진란과 병자호란, 동학란 등이 일어났을 때 소백산 골짜기 십승지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보듬으며 후일을 기약하도록 해줬다. 예컨대 지금은 오미봉 뒷산에 묻혀 있는 금당실 출신 동학 농민군지도자 전기항 같은 사람은 소백산맥 기슭 열두 군데에 움막을 지어 놓고 번갈아 머무르는 기지를 발휘해 가문을 대를 온전히 잇기도 했다. 반면 양주대감 이유인(李裕寅) 같은 이는, 금당실을 명성황후의 도피처로 결정하고 그곳에 마치 행궁 같은 99칸의 대저택을 지었지만 지금은 소나무 두 그루만 남은 채 폐허가 돼버렸다. 당시 반강제적 노역에 동원된 일꾼들이 자주 곤장을 맞는 데 앙심을 품고 집의 기둥을 거꾸로 세워 집안을 망하게 만들었다는 우스개가 전해오지만, 알고 보면 그 모든 것은 십승지의 본색을 제대로 몰라서 생긴 일종의 해프닝인 것이다. 금당실의 토의 미는 여전히 살아 있다. 집은 집대로, 경지는 경지대로, 정자는 정자대로 제자리에 터 잡고 앉았다. 그 아름다움은 용문분지 안의 대수마을-금당실-맛질이라는 동서축[횡축]의 용진처(龍盡處) 종가마을 입지미(立地美)로 연결되고, 병암정-금당실 송림-오미정-초간정-용문사라는 남북축[종축]의 심신 힐링공간으로 확대된다. 유장한 산의 흐름과 찌르듯이 달려들지 않는 물길로 둘러싸인 금곡분지의 빼어난 국세는 용문인들을 조화로운 심성을 갖도록 만들었다. 어떤 주민은 용문에서 판·검사만 여럿 나오고 큰 인물은 나지 못했다고 탄식하지만, 필자는 금당실만큼 산과 물과 사람이 하나로 잘 어우러진 아름다우면서도 평온한 최가지지(最佳之地)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금당실은 그 특유의 장소적 기(氣) 파워로 21세기 한국인의 심신을 힐링해 줄 수 있는 국내의 몇 안 되는 대명당임에 틀림없다. 금당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는데 어느 한옥 고택 기와 한 장에 쓰여 있던 '지켜온 것과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 곳'이라는 글귀가 자꾸만 눈에 어른거린다. 오미봉 위의 금 캐는 사람과 주민들 사이에 오가는 고함소리도 들리는 듯하고, 맑은 금곡천이 흐르는 정자산 병암정[당시는 옥소정]에서 고종과 명성황후를 그리워하며 가무를 즐기고 있는 이유인의 얼굴과, 같은 정자에서 배날들 위를 자유롭게 떠가는 흰 구름을 보며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는 독립운동가 권원하 선생의 얼굴이 자꾸만 오버랩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또 얻은 것은 무엇인가.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가 또 오버랩된다. [이몽일 경북환경연수원 객원교수·풍수학박사](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8-06-27)
금당실([기행수필]休(휴)와 興(흥)이 있는 사색의 길로 떠나는 금당실 가을여행...) [기고] : 앞만 보고 달리다 문득 옆을 돌아보니 어느새 만산홍엽의 계절이다. 갑자기 쉬고 싶었다. 쉰다(休)는 것은 숨 쉴 사이 없이 내달리다 잠시 한숨을 돌린다는 것일까? 쉰다(休)는 것은 잠깐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 등산을 할 때도 오르막을 오르다 힘들면 잠시 멈추고 쉰다.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면 과부하로 낭패를 볼 수 있으니 강제라도 쉬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때가 오기 전에 쉬어 보자. 일을 하다가 내 몸이 쉬고 싶다고 신호를 줄 때 가벼이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왕지사 쉬는 김에 흥겨움(興)이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먼 길을 가자니 짧기만 한 가을해가 걱정이 되었다.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며 어디로 갈까 하다 용문 금당실로 정했다. 지척에 명승지를 놔두고 멀리서 찾았으니 이런 낭패가 있나, 김밥 두 줄에 물 한 병, 사과 2개를 챙겨서 떠난다. 흥겨움(興)이 함께 하는 여정길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예천읍에서 차를 타고 달리는 928번 지방도를 따라 가을이 살찌는 소리가 들린다. 누런 황금빛 들녘은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온다. 지난 여름 지독한 폭염에 지쳤을 만도 하련만 어찌도 저리 고운 색감을 낼수 있는지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을 하며 30여분을 달리다보니 어느새 천년고찰 용문사에 도착했다.
◆ 용문사(龍門寺) :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6-2번지 일원에 있는 용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 870년(경문왕 10)에 용문면 두천리 출신 두운(杜雲)대사가 창건했다. 창건과 얽힌 설화로 두운이 이 용문산의 동구에 이르렀을 때 바위 위에서 용이 영접하였다고 하며, 절을 짓기 시작했을 때 나무둥치 사이에서 무게 16냥의 은병(銀甁) 하나를 캐어 절의 공사비에 충당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또 절의 남쪽에 9층 청석탑(靑石塔)을 세우고 사리(舍利)를 봉안하는데 4층탑 위로 오색구름이 탑 둘레를 돈 일이다. 용문사는 일주문 못 미쳐 버스 회차 지점 넓은 공터에 주차 후 걸어서 가는 것이 가을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고 하겠다. 용문사로 가는 진입로를 따라 단풍들이 앞 다투어 경쟁이라도 하듯 먼저 붉겠다고 요동치는 몸부림에 숲들이 흡사 불이라도 나듯 붉게 붉게 채색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 가을이 절정을 향해 치달음을 알게 해주는 듯했다. 일주문 안으로 발길을 들이밀자 가을색으로 완연히 옷을 바꿔입은 용문사는 오색단풍의 붉은 물결이 갈바람에 춤을 추듯 울긋불긋 현란한 색을 뽐내고 있었다. 용문사의 단풍이 이처럼 아름다울 줄 몰랐다. 용문사 경내는 쾌 넓고 볼거리가 많아 일주문에서 한 바퀴 둘러보는데 족히 한 시간은 걸린다. 용문사의 가장 큰 자랑은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국내 유일 윤장대(輪藏臺)로 이를 돌리면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이 쌓여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여 예로부터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용문사 대장전 및 윤장대는 보물에서 국보로 승급하기 위해 현재 문화재청에서 조사중에 있다. 이외 성보박물관을 비롯한 많은 국보급 보물이 보관되어 있어 1박2일 휴식형 템플스테이 체험을 하면서 산사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은 깊어가는 가을 색다른 추억이 될 듯 싶다. 용문사에서 산행을 하고 싶다면 용문사 좌측의 화장실 건물 뒷편으로 시작하여 정상인 용문산(매봉 771M)에서 원점회귀 하는 4시간 정도의 코스가 있다.
◆ 소백산 하늘자락공원 : 용문면 내지리 산 74-1번지(상부댐)일원에 조성중인 소백산 하늘자락공원은 4,700백만원의 사업비로 특색 있는 나무들로 구성된 치유의 숲길과 하늘과 맞닿은 하늘자락 쉼터의 전망대가 설치 중으로 호수 둘레길 주변의 수려한 경관과 양수 발전소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기에 예천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여진다. 하늘공원은 해발 800미터라는 지리적 위치로 여름철 무더위를 피할 수 있고 진입로를 따라 단풍나무들이 군락을 이룬다. 또 탁 트인 조망에다 한적한 곳이라 용문사와 연계한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하늘전망대는 아직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 초간정(草澗亭) : 상부댐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초간정 원림(용문면 용문경천로 874)은 명승지 제51호 이자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43호로 지정된 정자이다. 초간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 선생이 1582년(선조 15)에 지은 정자로, 수령이 오래된 송림숲을 헤집고 계곡 암반 위에 턱 버티어 자리잡은 초간정은 바라보기만 해도 멋스러움과 주변의 경치와 어우러진 풍광이 절경이다. 조선시대 권문해 선생은 이곳에서 글을 쓰고 시를 읊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되짚어 보았다. 장소 선택은 참으로 탁월했다고 본다. 초간정은 때마침 가을빛을 받아 원림이 핑크색으로 도배하듯 번져 나갔다. 빨갛게 잘 익은 홍시가 입안에 쏘옥 들어가는 황홀함이랄까, 잠시 무아지경 속을 느끼어 보았다. 초간정 원림 단풍 최절정기가 되는 11월 첫주는 아마 불야성을 이루지 않나 싶다. 헌데 조용하기만 한 이곳이 요즘 핫한 가을 여행지로 뜨면서 연일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기존의 비슷비슷한 여행에 싫증나는 젊은 층들 중심으로 요즘은 어떤 주제를 갖고 떠나는 핫한 여행지가 추천되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인기와 맞물려 안동 만휴정 원림(국가 명승지 82호)과 함께 초간정 원림이 뜨고 있다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초간정은 드라마 1회 마지막 장면과 2회 첫장면이 담겨져 있다. 풍광 좋은 곳만 찾아서 촬영하는 드라마 속성상 시청자들은 촬영장소를 찾게 된다. 예천은 경북에서 유일하게 국가지정 명승지가 세 곳 있는데 회룡포(16호), 선몽대 일원(19호), 초간정 원림(51호)이다. 따라서 '가장 핫한 여행지'가 바로 예천이 아닌가 싶다. 사실 회룡포와 용궁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가을동화 드라마와 강호동 1박2일팀이 거쳐간 때문이며 용궁은 전국에 손꼽힐 정도로 대박난 곳으로 변했기에 초간정도 멀지 않아 그리 될 것 같은 예감을 조심스레 해본다. 그래서 '핫한 여행지'로 키우고자 드라마 촬영지라는 안내판 하나정도는 세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모처럼 찾아온 좋은 기회를 관광 상품화 한다면 지역경기와도 연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 금당실 송림(金塘室松林) : 용문면 상금곡리 마을 일대에 자리잡은 금당실 송림은 수령이 200년 이상된 소나무 수백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며 천연기념물 제469호로 지정된 곳이다. 금당실 송림은 해마다 하천이 범람하는 수해를 방비하고 차가운 북서풍을 막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마을 좌측으로 송림을 조성하고 지키며 보호해 왔기에 오늘날은 마을의 휴식처와 행사중심지로 이용 되고 있다. 애초에 송림이 조성이 될 때는 2km에 달했으나, 1892년 마을 뒷산인 오미봉에서 몰래 금을 채취하던 러시아 광부 두 사람이 살해되는 사건이 생기면서, 마을에서 마을의 공동 재산인 소나무를 베어 배상한 일과, 1894년 동학운동 당시 노비 구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벌채되면서 송림이 많이 훼손 되었다고 한다. 정감록에서 말하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조선 십승지지에 속하는 금당실 송림은 안으로 들어가면 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가히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경관이 으뜸이다.
◆ 금당실 돌담길 : 금당실 송림숲을 돌아 나오면 마을 돌담길을 따라 걷게 되는데 초행자들은 마치 숨박꼭질하듯 어디가 입구이고 어디가 출구인지 헷갈려서 자칫 길을 잃고 같은 자리를 헤메일 정도로 수많은 돌담들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돌담길은 이곳이 조선시대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로 거미줄처럼 연결되는 야트막한 돌담들이 곳곳에 자리잡은 많은 고택들과 어우러지고, 집집마다 마당에 마늘이랑 양파등을 심으며 밭으로 이용하고 있는 데 이러한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골목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 의하면 길 잃어 버리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들 하지만 전통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돌담 골목길을 산책하는 것은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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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