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얘천639:금당실..금당실 돌담길
작성자장병창 @ 2019.10.18 06:09:17

  도청신도시 예천 639 : 금당실...금당실 돌담길

---

 

  ◆ 병암정(屛巖亭) : 드라마 '황진이' 촬영지로 널리 알려진 병암정은 경북 문화재자료 제453호로 용문면 성현리 93번지에 있는 정자로 조선 광무 2년(1898년) 법무대신 이유인이 근처 금당마을로 낙향해 아흔아홉 칸 저택과 함께 천변의 암벽에 옥소정이란 이름으로 지었다. 그 후 1920년 예천권씨 문중에서 매입하여 조선전기의 학자 권오복(1467~1498)의 학덕을 추모하는 곳으로 지금의 병암정으로 바꾸었다. 병암정은 연못, 바위, 석가산 등의 전통조경 요소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여름이면 정자 아래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나고 뒷산에는 백로들이 소나무가지에 날아드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병암정은 황진이 영화 촬영 후 화려한 연꽃이 피었던 연못에 잡풀이 많이 자라 경관을 크게 훼손하고 봄철 하얀 백로 무리의 우아함 뒤에 말라죽어가는 소나무들의 숨겨진 모습이 병암정 옥의티라고 할까? 여행에서 먹거리가 빠지면 즐기는 재미가 반감될 것이다. 여행길에 먹을 것을 별도로 준비하겠지만 그 지역의 독특한 음식을 맛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예천에는 맛집이 모여 있는 음식골목 '맛고을 문화의 거리'가 있다. 이 거리는 음식점이 밀집된 좁은 골목에 전선지중화 사업, 보도와 간판정비, 경관가로등, 벽천분수, 벤치 등을 설치하고 주변 환경을 개선하였으며, 향수를 자아내는 60년대 생활상을 그린 벽화거리가 보는 이들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금당실에서 예천읍까지는 15여분이면 충분하다. 단풍과 전통 문화 볼거리에 더해 별난 음식의 거리 예천은 오감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시월의 끝자락에서 사색의 길로 다녀온 용문 금당실 여행은 하루가 짧을 정도로 볼거리가 참 많은 곳이다. 특히 단풍과 연계한 여행지로 금당실은 전국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왜냐면 금당실에 가면 조선시대로 되돌아 간듯한 전통과 문화가 오롯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이 왠지 싫지 않고 정감이 가듯 낮으막한 돌담길따라 미로처럼 연결되는 그 길은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달려가는 타임머신이라고 할까? 돌담장위로 빨갛게 익은 감홍시가 따먹고 싶을 만큼 유혹하는 누구나 만족을 하고 갈 수 있는 멀리 가지 않고도 휴식(休과) 흥겨움(興)이 함께 하는 용문 금당실 단풍 여행, 올 가을 '가장 핫한 추억 여행지'로 추천 한다. [예천읍행정복지센터 장광현](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18-10-30)

 

  금당실(예천 금당실마을서 정호승 시인 초청 백두대간 인문캠프) [기사] : 경북도는 오는(2019년 9월) 28일 예천 금당실마을 부연당에서 정호승 시인을 초청해 백두대간 인문캠프를 연다고 26일 밝혔다. 도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인문학 명사와 관광 명소를 연계해 강연회와 작은 음악회 등을 열고 1박 2일 일정으로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는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캠프에는 수도권 관광객과 문학 동아리 회원, 주민 등 500여명이 참가해 정호승 시인의 강연과 문학 토크, '시인의 마음을 노래하다'를 주제로 작은 음악회를 연다. 참가자들은 작은 음악회가 끝난 뒤 등을 들고 1.2㎞를 걷는 금당실마을 달빛 야행도 한다. 예천 금당실마을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곳으로 전통 한옥과 문화재 등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온 관광객들은 정호승 시인과 함께 회룡포, 병암정 등 주변 관광지도 답사한다. 다음 캠프는 10월 12일 영주 소수서원에서 만화가 이원복을 초청해 진행할 예정이다.(이승형 기자 연합뉴스 2019/09/26)

 

  금당실과 민족운동(金塘室과 民族運動) [論文] : 안동대학교 사학과 김희곤 교수의 논문으로,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에서 2003년에 발행한 <금당ㆍ맛질의 역사적 위상> 33-43쪽(11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시작하면서, 2) 의병항쟁, 3) 3.1운동, 4) 1920년대 이후의 민족운동, (1) 군자금 모집 활동, (2) 사회운동과 신간회 : 예천청년회의 사회운동적 성격은 1925년 9월에 예천청년연맹이 결성되면서 나타났다. 사회주의의 영향이 예천에도 미쳐지면서 ‘혁신’, ‘개신’의 바람이 불어닥친 것이다. 1925년 말에 용문청년회는 위원장 연령을 35세로 제한하고 17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금당실에 용문청년회관이 준공되어 문고를 설치하는 등 내실을 다져 나갔다(東亞日報 1926.10.7). 이어서 10월 2일에는 용문청년회 제3회 정기총회가 열려 김모의 사회 아래 김모와 박모 외에도 김모와 박모 등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1926년에 들어 개포프로청년동맹이 결성되면서 반일 민족적 성향의 청년운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개포 출신인 박모가 앞장서고, 금당실의 권모도 주역 가운데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권모와 박모는 사돈관계). 그러한 모습이 1927년 6월에 그가 김모, 남모, 박모, 장모 등과 함께 예천군내 청년대회를 개최하고 신간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결의하고, 지회 결성을 이끌어 내기에 이르렀다. 예천청년연맹이 1927년 3월에 신흥청년회와 결합하면서 예천청년동맹으로 조직이 변경되고, 성향도 더욱 강해졌다. 그러자 용문청년회는 예천청년동맹 용문지부로 변경하였다. 1928년 8월 23일에 제1회 총회가 박모의 사회로 열렸고, 김모를 위원장, 박모 외 8인을 위원으로 각각 선출하였다. 이 회의에서 강령이나 규약 등이 심의되고 회관 수리 문제도 의제로 다루어졌다(東亞日報 1928.8.30.).

 

  1927년 6월에 신간회 예천지회가 결성되었다. 안동지회보다 두 달이나 빨리 결성된 것이다. 회장에 안국, 부회장에 이대일이 각각 선임되고, 권원하가 총무를 맡았다. 신간회 예천지회에 간부로서 참가한 인물 가운데 금당실 출신으로는 간사를 맡은 박영진과 맛질 종가의 종손인 박영근이 대표적이다. 당시 권원하는 동아일보 예천지국 기자로도 활약하였다(東亞日報 1928.3.19). 한편 금당실에도 농민운동이 나타났다. 1923년 11월에 안동 풍산에서 풍산소작인회가 결성된 뒤, 그 여파가 주변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예천 지역에 그 영향이 컸다. 하리면에 풍산소작인회 은풍출장소가 개설된 것도 그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은풍과 지보농민회가 사회주의 세력 가운데 화요회계였다면, 하금곡농민회와 개포농민회는 서울청년회계였다. 이 가운데 하금곡농민회는 1925년에서 결성되었는데, 본래 노동친목회였던 조직을 일신하여 명칭을 바꾼 것이다. 회원이 100여 명에 이르렀고, 간부로는 권모를 필두로 강모, 유모 등이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東亞日報 1926.10.25). 권모의 농민운동은 1920년대 후반을 거쳐 1930년대에 들어서도 지속되었다. 1930년 2월에도 33일 동안 예천경찰서에 구금되다가 경북경찰부로 호송된 기록도 그러한 정황 가운데 하나이다(東亞日報 1920.3.28). (3) 무명당(無名黨)과 조공재건운동 : 사회주의자들이 1929년에 들면서 점차 좌우합작운동에서 이탈해 나갔다. 1928년 12월에 발표된 코민테른의 ‘12월테제’에 따라 민족 문제를 핵심 과제로 삼고 신간회로 집결했던 대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12월테제’에서 표명된 일국일당(一國一黨), 즉 한국에 하나의 공산당이라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상태였으므로 조선공산당원은 일본공산당원이 되라는 것이고, 만주와 중국 본토 지역에서 활동하던 인물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게 되었다. 따라서 1차부터 4차까지 결성되고 변천하던 조선공산당이 소멸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다가 1930년에 들면서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이 시작되었다. 안동콤그룹과 김천그룹 및 영덕ㆍ영양그룹 등이 그러한 조직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천에도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이 일어났으니, 바로 1932년 11월에 조직된 무명당이다. 무명당 조직 부서와 담당책을 보면, 지도부에서 서무 한모, 조직 박모, 선전 김모, 자금 황모, 상부그룹에서 언론에 한모, 김모, 실업가에 박모, 강모, 권모, 권모, 통신에 이모, 학교에 이모, 박모, 성모, 이모, 윤모이고, 하부그룹에서 면에 변모, 사방에 박모, 황모, 역에 이모, 황모, 교통에 이모, 심모, 김모 외 1명이었다. 무명당에 참가하여 활동한 금당실 출신은 권모가 단연 대표적이다. 그는 상부그룹 가운데 실업가를 당당하고, 직업그룹에서도 실업을 담당하였다. 판결문에 그의 직업이 음식점으로 기록된 점이나 실업을 담당한 점으로 보아, 당시 그가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그 것을 방패막이로 삼아 조공재건운동을 벌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면 그룹 가운데 용문면을 담당한 인물이 하금곡리 출신이자 권모와 가까운 친적인 권모였다. 무명당의 존재가 일제 경찰에 의해 추적된 뒤에 주역들이 체포되었고, 권모는 1년 6월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5) 외지에서 독립운동에 참가한 금당실 사람, 6) 마무리이다.

 

  금당실과 석송령(慶北度 農村마을綜合開發事業 公開 審議會) [記事] : 경북도(도지사 김관용)는 2008년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지 농림부 추천을 위해 지역주민, 심의위원 등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07년 11월 27일 도청 제1강당에서 자체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 위원회는 지역개발전문가 9명으로 구성되어 2008년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을 신청한 도내 15개 시․군 22개 권역에서 제출한 예비계획서와 권역위원장이 개발계획 발표를 토대로 심의하여 도내 신청권역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도내에서 신청한 전 권역을 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첨부하여 11월 말까지 농림부에 신청한다. 2008년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지 선정은 농림부 심사를 통해 최종 대상지가 결정되는데 농림부에서는 각 시․도에서 신청한 대상마을에 대하여 서류심사를 거쳐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지 선정하고 현장조사 등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2008년 3월중에 최종 대상지를 확정할 계획이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농촌마을의 경관개선, 생활환경정비 및 주민소득기반 확충 등을 통해 살고 싶고, 찾고 싶은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어 가는 사업으로 여러 개의 마을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권역당 40-70억 원을 5년에 걸쳐 지원하여 마을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2006년까지는 농림부에서 시도별로 사업 물량을 배정해오다가 2007년부터는 지역별 물량 배정 없이 공모방식을 도입하여 전국 신청 권역간 무한경쟁체계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지자체 및 공무원의 추진 역량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개발계획 이해와 참여의지 등도 중요한 요소가 됨에 따라 경북도는 권역주민, 지자체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수차례에 걸쳐 교육과 방문 지도를 실시하는 등 역량 강화에 힘써왔다. 이번에 신청한 예비권역들은 옥산서원으로 유명한 경주 세심권역, 국화로 유명한 안동 봉정사권역, 시설하우스 거봉포도로 유명한 경산 사월권역, 돌할매로 유명한 영천 돌할매권역을 비롯해 김천 시루메, 안동 학가산, 영천 은해사, 문경 궁기․생달, 의성 만경촌, 청송 달기, 영덕 옥계, 예천 금당실, 석송령, 봉화 청량산, 울진 삼당, 울릉 태화권역 등 나름대로 권역의 특성과 자원을 대표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제출된 대부분의 권역에서는 1년 전부터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선진지 견학, 전문가 초청 교육, 권역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자체회의 개최, 전문가 자문을 받는 등 권역 리더들을 중심으로 대상마을로 선정되기 위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전국에서 많은 대상지가 선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경상북도는 󰡐08년도 사업대상지로 선정되는 권역에 대하여는 경북도가 추진하고 있는<미래형 농촌마을 재개발사업>을 비롯한 <21C 새농촌마을가꾸기사업>과 연계하여 개발 효과를 극대화시킬 계획이다. 이태암 농수산국장은 이날 회의에서 권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상지 선정만큼이나 주민들 의지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나보다는 우리권역과 마을을 위해 고민하는 공동의 발전노력만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으며, 소득을 높이고 관광객이 찾아오는 신명나고 활력 있는 21세기형 농촌마을을 주민 스스로가 가꾸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황경호 記者 韓國디지털뉴스 2007-11-26)

 

  금당실과 용문사(慶北 醴泉 龍門寺, 金塘室 마을 : 小白山에 안긴 千年古刹…돌리기만 하면 念佛하는 效果 輪藏臺 有名, 映畵․드라마 撮影地 脚光…구불구불 골목길 돌아 나올 땐 길 잃지 마세요) [記事] : 예천은 단술예(醴)와 샘천(泉)이다. 풍요와 자연의 '내음'이 지명에서 바로 우러난다. 예천군청이 발행한 관광가이드 팸플릿을 보면 온통 유적지고 빼어난 풍광이다. 용문사에서부터 산재한 서원과 향교, 그 유명한 회룡포까지. 충효의 고장이다. 임진왜란 당시 병조판서이던 약포 정탁, 철종 때 효자로 이름난 야계 도시복이 대표적이다. 충의 정신은 예천여고 출신인 신궁 김진호로 이어졌다. 예천진호국제양궁장도 그런 정신에 맞닿아 쉬이 지나칠 수 없다. 그러나 늘 그렇듯 아쉬움이 있다. 읍내 초입의 고층 아파트는 예천의 정신과는 담 쌓은 듯 까닭 없이 버티고 있다. 물론 그 아쉬움은 조금만 다리품을 들이면 쉽게 보상받을 수 있다. [금당실 전통마을] : 태조 이성계가 정말 이곳으로 도읍지를 옮겼다면 역사는 어떠했을까. 한양 사람들이 과천 아닌 문경새재에서부터 기어왔을지 모른다. 태조가 도읍지로 삼으려 했을 만큼 금당실(金堂室)은 명당이었던 모양이다. 북으로 백두대간 소백산맥 자락이 둘러쳐져 있고, 남으로 낙동강이 굽이친다. 지금은 많이 떠났지만 함양 박씨 집성촌이었다. 원주 변씨 고택에다 구한말 세도가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저택이 있던 곳이다. 마을 서쪽 입구에는 수령이 150년도 넘은 울창한 송림이 조성돼 있다. 북서풍을 막아주는 물리적 역할 뿐 아니라 마을의 품위를 더한다. 360여 가구 900여명이 사는 이곳은 문화재청 주관 아래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로 삼으려 했다는 금당실 마을. 세월의 무게를 담은 담장과 옛 가옥은 금당실의 힘이다. 돌담길은 거의 복원됐고, 군데군데 고택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아직 손길이 닿지 않은 담장과 옛 집은 세월의 풍파가 그대로 얹혀 있다. 골목길이 하도 구불구불해 돌아 나올 때 조심해야 한다. 새우장수가 길을 잃어, 새우 한 사발을 주고 길을 물어 나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보존의 미덕으로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는다. 박길상 이장(56)은 "촬영하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온다."며 "가만있어도 가만 둘 것 같지 않지만, 어쨌든 조용한 마을로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백산 용문사] : 용문사(龍門寺)는 그 위치부터 범상치 않다. 거의 반달모양으로 소백산 백두대간 줄기가 절을 감싸 안고 있다. 신라 경문왕(870)때 이 고장 출신 두운 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안타깝게도 1985년 대화재로 대장전(大藏殿)만 남기고 절 전체가 거의 소실됐다. 대장전내 윤장대(輪藏臺)가 유명하다. 불경을 넣어두고 돌리는 장치인데, 한자를 모르는 불자들도 이를 돌리면 읽는 것을 대신한다는 뜻이란다.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두 번 돌린다. 대장전의 건축적 가치도 크다. 맞배지붕을 이었는데 건물 좌우측에 가려진 것이 없다. 구조물이 밖으로 돌출돼 건축학도들의 훌륭한 공부자료가 된다. 대웅전 격인 보광명전은 비로자나불이 주불이다. 맨 위쪽 극락보전 앞에 올라서면 산에 감싸인 절위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에 성보박물관을 건축 중이다. 화재에 대비하는 목적이 크단다.(박재일 記者 嶺南日報 2006-01-26)

 

  금당실 돌담길("金塘室 돌담길, 觀光資源으로" : 醴泉 龍門面 金塘室·大渚里 迷路같은 길 찾는 在味 쏠쏠 松林·書院·古宅 等 잘 保存文化遺産 活用가치 높아) [記事] :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과 대제리에는 500년이 넘은 돌담들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선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한 곳인 예천군 용문면의 금당실과 대제리(큰 맛질)는 500년이 넘은 돌담들이 마을을 에워싸며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어 관광자원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당실 돌담은 1천500년대 감천 문씨의 사위였던 함양 박씨들이 금당실로 옮겨 살면서 만들어졌다. 돌담의 길이는 3km정도로 구불구불 미로처럼 길게 꾸며져 있어 한번 들어서면 출구 찾기가 어렵게 마을을 연결하고 있어 거닐다 보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온 것처럼 느껴진다. 제주도의 돌담은 화강암으로 낮게 큰 돌을 얹어서 경계를 이루게 쌓았지만 예천의 돌담은 강가에서 나오는 일명 호박돌로 담장을 쌓아 올린 것이 특징이다. 높이도 높게는 2m정도 로 제주도 돌담보다 2배 정도가 높다. 돌담길을 거닐다 보니 아담하고 소박함이 느껴지고 단아함마저 들게 한다. 돌담길을 거닐다 보면 콘크리트 길 보다는 흙길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돌담길은 유교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2006년도에 흙길을 콘크리트로 바꾸고 원형과 다르게 큰 돌을 층계식으로 보수가 이뤄져 조금 아쉬움을 주고 있다. 아직 옛 원형을 간직한 돌담들이 금당실 곳곳에 많이 남아 있어 소중한 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가치가 높다. 지금은 돌담길을 보수했으나 아직 옛 원형을 간직한 돌담들이 금당실 곳곳에 많이 남아 있어 보존이 시급한 실정이다. 대제리에는 마을과 고택들 사이로 돌담들이 길게 연결돼 있다. 돌담길은 인적 없는 좁은 길이지만 아늑함을 주고 고사리, 이끼, 야생화가 담벼락 사이로 이른 추위에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이름 모를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어 소박하고 아담한 느낌을 주고 있다. 예천군 용문면의 금당실은 '정감록'과 '징비록'에 조선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한 곳으로 그중 5승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병마나 전쟁과 같은 난리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또 천연기념물 제 469호 금당실 송림과 경북도문화재 143호 초간정, 금곡서원, 반송재고택, 추원재, 사괴당 고택 등 전통 양반가의 한옥이 잘 보존돼 있는 곳이다. 주민 K씨는 "용문의 고택과 돌담길은 예천만이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콘텐츠 개발을 통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말했다.(이상만 記者 慶北日報 2014-12-03)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