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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646:금당실송림,,,(축,정재송/예천방문1,608)
작성자장병창 @ 2019.10.23 19:48:37

  도청신도시 예천 646 : 금당실송림...(부, 예천 출신 정재송 제이스텍 회장, 26일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백결공연장에서 자랑스런 도민상을 수상함./예천방문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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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실 송림(김봉규 氏, 嶺南日報 連載 記事 單行本 發刊) [記事] : ...영남일보 김봉규 논설위원이 문화부 기자 시절인 2006~2007에 연재한 '길따라 숲찾아'를 같은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길따라 숲찾아'는 단순히 좋은 길이나 숲을 찾아 다닌 것이 아니라 '길 이상의 길' '숲 이상의 숲'을 찾아나선 긴 여정이었다. 멋진 정취와 풍광이 있고, 옛사람들의 지혜와 삶의 자취가 녹아있는 곳이다. 시인묵객의 작품 산실이 되기도 하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휴식과 재충전의 장이 되기도 하는 그런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처럼 김봉규 논설위원은 웰빙시대 영혼을 살찌우며 인간 삶을 윤택하게 하는 소중한 존재인 좋은 숲과 길을 카메라를 메고 2년간 찾아다녔다. 꽃구름과 신록의 기운이 솟는 봄철에는 쌍계사 십리 벚꽃길, 퇴계 오솔길, 옥포 이팝나무 숲, 백련사 동백림, 목은 이색 산책로, 봉암사 행선(行禪) 길, 제주 평대리 비자림을, 여름 휴가철 더위를 잊게 하는 숲으로는 통도사 입구 보행로, 예천 금당실 송림, 가야산 홍류동 계곡길, 문수산 금강송숲, 의성 사촌 가로숲, 평해~백암온천 목백일홍 길, 소수서원 학자수림, 문경 토끼벼루잔도,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 포항 덕동마을 숲, 금강산 상팔담 가는 길 등을 찾았다... 책 말미에는 숲의 주소와 연락처를 상세히 밝혀 여름휴가철이나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좋은 길라잡이가 되도록 했다. 노벨미디어/301쪽/1만2천원(박종문 記者 嶺南日報 2008-07-04)

 

  금당실 송림(小說家 淸山 윤영근의 十勝地와 可居地 25.豫言家가 禮讚한 吉地 中의 吉地- 金塘室 松林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記事] :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은 전쟁과 전염병, 자연재해 등이 들지 않는다는 십승지의 마을로 알려진 명당지였다. 예천의 금당실 송림은 인공으로 심고 가꾼 소나무 숲이다. 숲은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고 즐거움을 나누어준다. 최근에는 천연기념물(제469호)로 지정되었다. 용문 상금곡리 금당실 마을 서북쪽에 수해와 방풍을 막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이 심은 소나무가 오늘날까지 무성하게 자라 사람들의 심성을 선하게 지켜주고 있다. 금당실 오미봉 아래에서부터 용문초등학교 앞까지 약 800m에 걸쳐 심어진 소나무 900여 그루가 울창하게 우거져 예쁜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에는 삶에 활기를 넘치게 해주는 숲이 있어야 한다.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숲은 필수적인 요소다. 숲이 없어서 마을이 살기 힘든 곳도 있는데 숲이 마을의 대표 트렌드로 이름을 떨치게 해주는 마을도 있다. 하찮은 소나무가 마을을 전국적으로 띄워 올려주는 큰일을 해주기도 한다. 금당실의 소나무가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옛날 이곳에서 살았던 조상들의 지혜로 심었던 소나무는 풍수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심고 가꿨던 나무였다. 마을의 허한 기운을 보충하고 차가운 북서풍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기 위하여 심었던 소나무로 비보풍수의 일종이었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 상금곡리 금당실은 전쟁과 전염병, 자연재해 등이 들지 않는다는 십승지의 마을로 알려진 명당 지였다. 병화가 들지 않는다는 명당마을로 탈바꿈시킨 것은 해마다 되풀이 되는 홍수난리를 막아주고 수구막이를 해준 마을서쪽의 송림이 있어서 가능했다. 이곳의 소나무가 무슨 이유로 금당실을 승지의 마을로 부르게 해주었는지 겨울철 소나무 숲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다. 겨울이 시작되는 섣달부터 매서운 칼바람이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휩쓸 듯이 불어온다. 아무리 두꺼운 오버코트를 입어도 살을 도려낼 듯한 북서풍의 찬 기운은 막을 길이 없었다. 힘이 장사라도 들판의 가운데에 서있지 못할 정도의 강풍이 불어오는 곳이 이곳이었다고 한다. 산을 넘어온 센바람이 너른 들판을 지나면서 가속도를 받아 더욱 강한 강풍으로 변한다. 마을사람들은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위한 방법을 찾아야만했다. 바람막이의 일환으로 소나무를 심기로 했던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북서쪽에 나무를 심자.” 소나무를 심고 난 다음 나무 뒤에 동네사람들이 실제로 들판에 나가 서보았다. 우선 찬바람을 직접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아늑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숲이 얼마나 인간들에게 이로움을 주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 샘이다. 무더운 여름에는 마을사람들이 삼복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 숲 속으로 모여든다. 믿을만한 휴식공간이 숲 속이 되었다. 용문중학교 동편을 중심으로 폭이 50m 정도 되는 소나무밭에는 무려 2천여 그루가 자라 하늘을 뒤덮고 있다.

 

  (금당실은 비보풍수로 심은 소나무가 척박한 땅을 승지로 만들어 주었다) 120년생의 아담한 소나무가 대부분으로 300년 이상 된 커다란 소나무도 50여 그루나 된다. 학교와 농경지, 민가 등이 인접해 있어서 숲이 사람들을 모여들게 해준다. 쉼터와 간단한 체육시설이 있는 금당실 송림은 마을주민들의 휴식처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야외수업장이고 마을의 각종 행사나 집회장소로도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는 황금의 장소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금당실 송림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 명소가 되었지만 금당(金塘)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연못위에 둥둥 떠 있는 연꽃 모양과 흡사한 지형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을 지켜주는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소나무다. 우리들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부정한 액막이로 소나무가지를 잘라 금줄을 건다. 그리고 죽어서는 소나무로 짠 나무관속으로 들어가 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나라님이 살던 궁궐이나 민초들의 집도 소나무로 짓고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의 애국가에도 소나무가 등장한다. 남산위에는 소나무가 자라며 우리들의 기상을 대변해주며 고고한 인품으로 자라기를 기원한다. 한국인에게 생과 사를 넘나들며 함께 살아가는 나무는 소나무뿐이다.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또 멋이 넘치며 즐겨 그리는 산수화속에 등장하는 나무도 역시 소나무였다. 송림의 역사는 깊다. 금당실 마을은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작은 지류인 복천과 용문사 계곡을 흐르는 지천이 내려간다. 두개의 하천이 만나 넓은 평야를 이루며 복된 땅이다. 그러나 이곳은 여름이면 하천물이 범람하고 겨울이면 북서풍의 찬바람을 피하는 것이 당장 필요한 급선무였다. 그래서 금당실 주민들은 수백 년 전에 바람을 막고 수해를 줄이기 위하여 2천m에 이르는 소나무 숲을 조성한 것이다. 사람의 손을 빌려 가꾼 마을은 천하에 제일가는 십승지의 마을로 변모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구한말의 격변기(1892년)에 이르러 송림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되고 말았다. 그해 7월 마을 뒷산 오미봉에서 금을 몰래 캐던 광부들을 본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아 내려고 했다. 사나운 노비들을 시켜 광부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몇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살해된 광부는 러시아가 소유한 광산회사의 하수인이었다. 자칫 잘못했다는 외교문제로 비화될 소지도 있었다. 마을을 승지의 마을로 지켜온 것은 풍수지리상으로 마을의 뒷산 오미봉덕분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마을은 크게 보면 배 모양의 형국으로 오미봉이 배의 돛에 해당된다. 핵심이 되는 중심이다. 배에서 돛은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준다. 그런 오미봉을 허물고 금을 캐낸다니 마을 주민들의 분노를 불러왔고 격분된 행동은 광부들을 집단으로 몰아내는 폭행치사 사건이 일어나고만 것이다. 이 사건으로 잡혀간 노비 30여명의 옥바라지를 하고 처형의 위기에 처한 그들을 구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위하여 소나무를 잘라 팔아야했다. 키가 크고 곧게 자란 소나무는 그 무렵 대부분이 잘려나가고 송림은 순간에 폐허가 되고 말았다. 지금 남아 있는 소나무는 굽거나 휘어져서 볼품이 없는 앙상한 나무만 살아남았다. 현재 자리를 지켜주는 소나무는 그때 살아남은 것들로 작거나 쓸모없는 것들이 자란 것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굽어진 가지와 아무렇게나 자란 가지가 눈요기 감으로 변했다. 요사이는 생김새가 조금은 이상해야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고 기묘한 가지의 소나무가 더 많은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소나무의 역사인 샘이다. 인생역전이요 볼품없는 흉이 복으로 변한 것이다.

 

  반듯하게 쭉쭉 자라던 소나무는 잘려나가고 공터로 변한 곳에는 다시 소나무를 심어야 했다. 잘린 나무로 인해 허한 공터의 자리는 승지의 땅이 아니었다. 맨땅에는 다시 소나무를 심어야 한다. 바람막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는 이 고장 출신으로 당시 법무대신이던 이유인이 관직을 마치고 금당실로 내려와 99칸 집을 짓고 살면서 송림보호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때 지켜온 소나무는 지금까지 내려오며 급기야는 오늘날 천연기념물로 살아남았다. 그는 소나무가 죽거나 상하면 동네 사람들도 소나무처럼 죽거나 마을이 없어질 것으로 보았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소나무는 마을의 수호신과 같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부티 나게 마을을 지켜온 소나무가 마을의 희망이며 자존심이다. 마을을 지켜오며 십승지의 명맥을 이어준 것이다. 고마운 소나무라 하겠다. 금당 송림은 마을의 자존심이었다.(무등일보 2010-06-07)

 

  금당실 송림 : 예천 금당실 송림(자료=예천군) | 예천신문 | 2010.04.03. 11:11/ 예천 금당실 송림(천연기념물 제469호 2006. 3.28 지정)/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542-1 외/ 소유자 : 예천군/ 자세한 설명 : “예천 금당실 송림”은 천재나 전쟁에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다는 땅을 일컫는 십승지지의 한 군데로 알려져 있는 예천 용문면 금당실 마을의 수해방지와 바람막이를 위하여 조성된 송림이다. 금당실 서북쪽에 위치하는 숲으로 오미봉 밑에서부터 용문초등학교 앞까지 약 800m에 걸쳐 소나무 수백 그루가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에 학교, 농경지 및 민가와 인접되어 있다. 금당실 송림은 상금곡리가 낙동강 지류인 복천과 용문사 계곡과 청룡사 계곡으로 흐르는 계류가 만나는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어 해마다 여름철 하천물이 범람하므로 수해방비와 겨울철 북서한풍을 막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이 조성하였으나, 1863년 동학을 전파하던 최제우가 체포되어 처형되는 과정에서 민심이 동요되어 큰 나무들이 일부 벌채되고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노비구출 비용 마련을 위한 나무 벌채가 심하여 1895년(고종 32년) 당시 법무대신이던 이유인이 금당실에 99칸의 집을 짓고 거주하면서 이 숲을 보호하여 왔다고 한다. 오랜 기간 마을 주민들이 마을 보호를 위하여 이 숲을 보호하고 관리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휴식처와 행사의 중심지로 활용되는 등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큰 마을 숲이다.(daum 2010)

 

  금당실 송림(마을을 감싸 안은 傳統마을숲 /醴泉 金塘室 솔숲 /250~300年 된 巨木이 만든 ‘솔 둥지’) [記事] :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마을은 조선 중기에서 ‘난세에도 전쟁이나 흉년의 피해가 없는 길지’로 꼽은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다. 이곳을 최고의 명당으로 만든 지형은 소백산 줄기의 높은 산자락이 포근하게 둘러싼 넓은 들과 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금곡천이다. 한 가지 허점이 있었으니, 마을 앞쪽의 터진 곳이다. 1500년대에 이런 풍수적 결함을 보완하는 솔숲이 조성됐다. 오미봉에서 금곡천을 따라 정자산까지 2㎞에 이르던 솔숲은 금당실 마을을 완전히 감싸 안는 형태였지만, 지금은 그 중 600m 가량만 남아 있다. 마을 사람들이 ‘솔 둥지’라고 부르는 마을숲에는 수령 250~300년 된 소나무 거목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소나무 하나하나에는 예천군이 관리한다는 표찰이 붙어 있다. 박희식 예천군 문화해설사는 “전에는 숲이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모여들어 쉬고 생활하는 터전이었지만 지금은 문화재 비슷한 공간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숲 속에는 좁은 오솔길만이 나 있어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것 같지 않았다.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마을을 둥지처럼 보듬은 솔숲과 산세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원래의 형태로 복원한다면 한옥 체험마을과 함께 이 지역의 명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조홍섭 環境專門記者 한겨레新聞 201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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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천 출신 정재송 제이스텍 회장, 26일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백결공연장에서 자랑스런 도민상을 수상함.

 

  정재송(예천 출신 정재송 제이스텍 회장, '자랑스런 도민상' 수상) [기사] :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출신 정재송 제이스텍 회장이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백결공연장에서 열린 '2019 경북도민의 날 기념행사'에서 ‘자랑스런 도민상’을 수상했다. 정 회장은 고향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축제 행사 후원 및 불우이웃 돕기 등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이번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날 예천군는 김학동 예천군수, 신동은 군의회 의장을 비롯해 도의원, 기관단체장, 주민 등 40여명이 경주세계문화엑스포장을 방문해 정재송 회장의 도민상 수상을 축하했다. 김학동 예천군수는 “자랑스러운 도민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따뜻하고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정 회장님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2019 경북도민의 날 기념행사는 2019년 10월 23일 오후 1시 30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백결공연장에서 이철우 도지사, 김학동 군수를 비롯한 23개시·군 단체장 및 각 기관단체장 등 1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문봉현 기자 뉴스웍스,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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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1,608

 

  예천전국한시백일장 제4회(초암 정윤우 선생의 높은 학문 기리기 위한 '제4회 예천전국한시 백일장' 성황리 개최!) [기사] : 예천한시회(회장 허성행) 주관 '제14회 예천전국한시백일장'이 2019년 10월 23일 오전 10시 30분 예천진호국제양궁장내 문화체육센터에서 전국 각지에서 참여한 300여명의 한시동호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히 개최됐다. 이날 백일장에는 김학동 군수, 신동은 군의장, 이승준 예천교육지원청 교육장, 권창용 예천군문화원장, 한중섭 초정서예연구원 이사장을 비롯한 많은 내빈들이 백일장을 축하했다. 허성행 예천한시회 회장은 "예천의 젊은이들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예천을 빛낸 역사적 인물에 대해 배우고 본 받아 우리나라의 훌륭한 인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학동 군수는 "전국 한시백일장을 통해 선생의 업적과 삶을 재조명하고 그 가르침과 지혜를 배워 경북의 중심도시로 도약하는 예천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는 격려사를 했다. 신동은 군의장은 "초암 정윤우 선생의 높은 학문을 기리기 위한 한시 백일장이 예천에서 개최된 것을 5만 5천 군민과 기뻐하며 환영하고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기원드린다."는 축사를 했다. 이번 대회는 한시의 전통 맥을 잇고 한시가 가진 풍류의 멋을 통해 선비정신을 엿보고 후학들에게 우수한 전통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예천군이 지원하여 마련된 행사다. 초암 정윤우 선생은 선조 3년 문과에 급제하여 동래부사, 광주목사, 선조 17년 명에 사신으로 갔을 때 명나라 신종이 그의 문장에 감탄한 일화기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원종공신에 책록된 훌륭한 인물이다,(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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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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