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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739:낙동강프로젝트...낙빈정...
작성자장병창 @ 2019.12.29 06:13:45

  도청신도시 예천 739 : 낙동강프로젝트...낙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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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프로젝트(洛東江 프로젝트 2兆130億 大役事 : 2020年까지 本流 10個 市郡․支流 5個 市郡 3個 圈域 開發) [記事] : 경북도의 '낙동강 프로젝트'가 전체적인 윤곽을 드러냈다. 경북도는 2008년 3월 13일 도청 강당에서 낙동강 프로젝트 기본계획 연구용역 최종 보고회를 가진다. 연구용역을 맡은 국토연구원은 이 프로젝트를 핵심사업과, 시군별로 추진하는 지구별 사업으로 구분하고, 사업비는 2020년까지 총 2조13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했다. 국토연구원은 낙동강 본류 10개 시군과 지류 5개 시군을 대상으로 3개 권역으로 구분, 봉화․영양․안동․영주․청송 등은 청정자원과 전통문화 자원을 활용한 '산악 생태권', 예천․의성․문경․상주 일대는 체험과 휴양으로 특화된 '역사문화체험권', 구미․군위․김천․칠곡․성주․고령 등은 학습과 문화를 중심으로 한 '도심레저권'으로 특성화했다. 연구원은 핵심사업으로 우선 낙동강 전 구간을 대상으로 한 '회랑형 에코트레일'을 제시했다. 이는 총 289㎞의 범위로 낙동강 연안을 자전거와 조깅은 물론, 마라톤과 승마 등 국민 레포츠의 메카로 만들고, 진입공간과 휴게공간에는 특산물 판매장, 비지터 센터, 소규모 야외공연장 등을 조성해 지역경제 활성화와도 연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연구원은 또 각 권역별 중심지구에 '에코 컬처 센터' 건립을 제시했다. 이는 자연생태 및 역사문화 자원을 관광으로 연결시킴과 동시에, 컨벤션 기능 등을 주어 지역의 부족한 비즈니스 공간으로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예천과 문경, 상주의 접경지역에 '낙동강 상징타워' 건립도 제안했다. 연구원은 "이를 낙동강 경관 조망은 물론, 번지점프 등의 레포츠 인프라로 활용하고 인근의 삼강주막, 회룡포, 경천대 관광지 등과 연계하면 새로운 관광벨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이와 함께 낙동강 생태 문화제, 낙동강 지역 브랜드 경진대회, 낙동강 탐험 종주 프로그램, 낙동강 생태문화 자원 학술대회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적인 아이디어도 내놨다. 연구원측은 이 사업에 대해 "직접적 사업비 투자로 인한 2조9천914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 1조194억 원의 임금 유발 효과, 1조2천941억 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일어나고 일자리도 2만9천330개가 늘어나며 사업비 투자와는 별개로 관광객 지출액에 의한 생산 유발 효과도 8조8천426억 원 정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류상현 記者 慶北日報 2008-03-13)

 

  낙동강홍수예경보 및 저수관리프로그램개발 2차보고서(洛東江洪水豫警報 및 貯水管理프로그램開發 2次報告書: 貯水管理部門) [官公署資料] : 예천읍 청복리 골마 출신 최영박(崔榮博, 1926- , 醴泉初 卒業, 水原大 總長) 등(김계호, 남선우 ...)의 자료로, 건설교통부에서 2002년 4월 17일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낙동강홍수예경보 및 저수관리프로그램개발 2차보고서(洛東江洪水豫警報 및 貯水管理프로그램開發 2次報告書: 貯水管理部門) [硏究報告書] : 예천읍 청복리 골마 출신 최영박(崔榮博, 1926- , 醴泉初 卒業, 水原大 總長) 등(김계호, 남선우 ...)의 보고서로, 건설교통부에서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낙동강홍수예경보 및 저수관리프로그램개발 최종보고서(洛東江洪水豫警報 및 貯水管理프로그램開發 最終報告書: 貯水管理部門(附錄)) [硏究報告書] : 예천읍 청복리 골마 출신 최영박(崔榮博, 1926- , 醴泉初 卒業, 水原大 總長) 등(김계호, 남선우 ...)의 보고서로, 건설교통부에서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낙동강홍수예경보 및 저수관리프로그램개발 최종보고서(洛東江洪水豫警報 및 貯水管理프로그램開發 最終報告書: 貯水管理部門(附錄)) [官公署資料] : 예천읍 청복리 골마 출신 최영박(崔榮博, 1926- , 醴泉初 卒業, 水原大 總長) 등(김계호, 남선우 ...)의 자료로, 건설교통부에서 2002년 4월 17일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낙동강홍수예경보 및 저수관리프로그램개발 최종보고서(洛東江洪水豫警報 및 貯水管理프로그램開發 最終報告書: 貯水管理部門) [官公署資料] : 예천읍 청복리 골마 출신 최영박(崔榮博, 1926- , 醴泉初 卒業, 水原大 總長) 등(김계호, 남선우 ...)의 자료로, 건설교통부에서 2002년 4월 17일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낙동강홍수예경보 및 저수관리프로그램개발 최종보고서(洛東江洪水豫警報 및 貯水管理프로그램開發 最終報告書: 貯水管理部門) [硏究報告書] : 예천읍 청복리 골마 출신 최영박(崔榮博, 1926- , 醴泉初 卒業, 水原大 總長) 등(김계호, 남선우 ...)의 보고서로, 건설교통부에서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낙모대(落帽臺) [골] : 예천읍 생천리(生川里)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예천군수(醴泉郡守)가 행차하다가, 바람이 심하게 불어 군수(郡守)의 모자가 땅에 떨어졌다고 하여 불리어진 이름이다.

 

  낙모대(落帽臺) [亭子] : 예천읍 생천리에 있는 정자로, 경주인 생원 이장영(生員李張英)이 세웠고, 순안군 안응창(順安君安應昌)이 상량문(上樑文)을 지었다.(嶠南誌 1937, 醴泉郡邑誌 1770 1786 1841 1895, 醴泉郡誌 1939)

 

  낙모대(落慕臺) [樓臺] : 예천읍 생천리에 있는 누대로, 경주인 삼희당(三稀堂) 이장영(李張英, 成均進士)의 뜻을 기리기 위해 1703년에 세웠다. 후손 이채우(李彩雨)가 관리하고 있다.(醴泉鄕校誌 2004)

 

  낙모대 : 이장영(李張英)/ 추앙을 받았다. 이장영은 <등과록(登科錄)>과 <양양지(襄陽誌, 1661)>를 편찬하여 예천향교에 보관하였고, 예천읍 생천리에 낙모대를 지어 학문을 연구하고 벗들과 사귀었다. 1682년(숙종 8) 71세로 생원시에 합격하자, 살던.../ www.shinjongwoo.co.kr/name/ah/azh/rudwn/rud394.htm (daum 2016)

 

  낙모대 : 삼희당 이장영/ 2012.11.26./ (登科錄)>과 <양양지(襄陽誌, 1661)>를 편찬하여 예천향교에 보관하였고, 예천읍 생천리에 낙모대를 지어 학문을 연구하고 벗들과 사귀었다. 1682년(숙종 8) 71세로.../ cafe.daum.net/samhidang/OrZZ/ 삼희당 | 댓글 1(daum 2016)

 

  낙빈공 종택(洛濱公 宗宅) [住居建築] : 풍양면 우망리 341번지(垈)에 있는 종택으로, ㄴ자형의 사랑채와 ㄱ자형의 정침이 튼 ㅁ자형의 배치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사랑채의 우측에는 고간채를, 정침의 좌측에는 창고를 각각 배치하였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4칸 반 규모의 ㄴ자형 건물이며, 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의 홑처마집이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의 ㄱ자형 건물이다. 평면은 어간(御間)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상방과 안방을 두었으며, 안방의 전면에는 부엌을 연접시켜 우익사(右翼舍)를 이루게 하였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홑처마집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낙빈공 종택(醴泉憂忘里 洛濱公 宗宅) : *위치 :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341, *연대 ; 1860년대, *규모 : ‘ㄱ'자형 안채, ’ㄴ'자형의 사랑채, ‘-’자형 곡간채/ 낙빈공 종택은 풍양면 우망리에 있는 낙빈 정지(鄭沚, 1563-1642)의 종택이다. 우망리는 정지를 파시조로 하는 동래정씨 낙반공파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낙빈공의 벼슬은 가선대부행용양위호군(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에 이르렀으며, 그의 묘는 대동산(大同山) 아래 난곡(卵谷)의 영모재(永慕齋) 뒷산에 있다.

 

  묘는 정부인(貞夫人) 단양(丹陽) 장(張)씨와 쌍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토(位土)는 대략 50두락 정도가 조성되어 있다. 낙빈공 종택의 당호는 돈목당(敦睦堂)이다. 정지는 일찍이 학문을 닦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으며, ‘낙동강 물가에서 살겠다‘는 뜻으로 ’낙빈‘을 호(號)로 삼아 유유자적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도 사당의 신주(神主)를 모셨으며, 선영(先塋)의 춘추향사와 사당의 제사를 거르지 않는 등 조상 받드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평소 생활이 궁핍한 친척은 반드시 구휼하였으며, 정영후(鄭榮後)·정영방(鄭榮邦) 등 어린 조카들을 훌륭한 선비로 키우기도 하였다. 우망리는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흐르는 산줄기의 동남쪽 경사면에 터를 잡고 동남향을 하고 있다. 마을의 배산이 되는 산줄기는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 앞에서 멈추고 있다. 마을의 주 진입로 우망길은 산줄기와 같은 북동쪽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 우망길은 마을의 가옥들과 농경지의 경계선이 된다. 마을의 안길은 우망길과 청곡길이 만나는 곳에 있는 쌍절각을 기점으로 북측과 남측 샛길들이 있다. 낙빈공 종택의 출입은 중심 안길에서 북측으로 나 막다른 샛길을 이용한다. 이 콘크리트포장 샛길 변에 첫머리에 일제강점기 지어진 긍구재가 있고, 뒤에 낙빈공 종택이 있다. 낙빈공 종택은 1860년대 후기에 건립되었다. 현재 낙빈공 종택은 동측과 남측, 서측은 이웃가옥들로 둘러싸여 있고, 북측은 북측 가옥 진입로로 둘러싸여 있다. 가옥의 출입은 콘크리트 포장 샛길에 면한 동북측 시멘트블럭 담장 사이를 이용하는데, 현재 출입문이 없는 상태이다. 출입문 안 사랑채 앞 사랑마당은 현재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담장 안 가옥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 정침인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서로 마주한 튼 ‘ㅁ'자형 배치를 하고 있으며, 사랑채 대청에는 ’敦睦堂‘이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다. 종택은 ‘-’자형 곡간채가 안채 좌측에 있고, 곡간채 앞에 시멘트블럭 담장의 화장실이 있다. 안채 우측의 콘크리트 건물은 1950년도 건립하여 창고로 사용되고 있으며, 평지붕 위는 장독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 외에 사랑채 맞은편 남측 담장 모서리에는 시멘트블럭 구조에슬레이트를 올린 축사와 화장실이 있는데,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안채 북서쪽 뒤뜰은 자역석으로 2단의 축대를 쌓은 후, 제일 위단에는 나무와 이웃과의 경계 담장이 있다. 자연석의 축대 위에는 집안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ㄱ'자형 안채는 중앙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1칸 반 규모의 건넌방이 있으며, 정면에는 툇마루를 꾸며 놓았다. 건넌방 정면의 툇마루는 대청마루 정면 툇마루보다 높게 처리하여 툇마루 밑에 아궁이를 꾸며 사용하고 있다. 대청 좌측에는 2.5칸 규모의 안방이 있고, 안방 정면으로 15칸 규모의 부엌이 있다. 안방과 부엌의 안마당 쪽에는 쪽마루를 놓아 대청을 오르내리거나 물건을 올려놓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외 건넌방 우측 기단 위에도 쪽마루를 깔아 건넌방에서 외부로의 출입이 용이하도록 하였고, 북측 끝에 수장공간을 꾸며 놓았다. 안방과 부엌 좌측은 슬레이트지붕을 올린 고방을 덧달아 내어 사용하고 있다. 안방과 건넌방의 배면에는 시멘트벽돌로 쌓아 놓은 굴뚝이 있다. 부엌의 정면 모서리 끝에 솥을 걸어 놓은 화덕이 있다. 안채의 기단과 기단 윗면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으며, 사각기둥은 자연석 주초가 받들고 있다. 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으로 짜 맞춤을 하였고, 보 밑에 보아지를 끼워 짜임새를 높였다. 대량 위 가구는 오량이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ㄴ'자형의 사랑채는 4칸 규모의 사랑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사랑방 2칸이 있고, 사랑방 전면에 툇마루가 있다. 툇마루 좌측 끝에는 단칸 규모의 방이 있고, 이 방 뒤로 1칸 규모의 방이 있다. 안마당 쪽 사랑방 처마 밑 기단 위에는 벽체를 구성하여 수장공간과 방으로의 출입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랑대청의 뒤쪽에는 한 칸 규모의 창고와 대문간이 있으며, 대문간 위로 뒤주를 덧달아 놓았다. 사랑채의 기단과 기단 윗면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으며, 사각기둥은 자연석 주초가 받들고 있다. 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으로 짜 맞춤을 하였고, 보 밑에 보아지를 끼워 짜임새를 높였다. 대량 위 가구는 오량이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자형 곡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중앙의 벼 광을 중임으로 좌우에 광과 외양간이 있고, 좌우측면의 처마 밑은 확장하여 헛간으로 사용했다. 곡간채의 기단과 기단 윗면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으며, 사각 기둥은 자각 기둥은 자연석 주초가 받들고 있다. 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을 짜 맞춤을 하였다. 지붕은 개량형 한식기와를 올려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현재 우망리 낙빈공 종택은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덧달아 낸 실이나 신축한 건물을 제거하여 원래 모습을 찾아 복구한다면 건축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종택은 현재 사용하지 않아 점진적으로 훼손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활용계획이 필요하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127-129쪽)

 

  낙빈공 종택 : (東萊鄭氏) 예천군(醴泉郡) 풍양면(豊壤面) 우망리.../ 2014.07.10./ 있는 낙빈공 종택인데 정현모가 1900년 건립했다 중건한 재실인 긍구재, 일제강점기 때 정원모가 건립한 정자인 만송정 등이 짧게는 100년, 길게는 수백 년 전 선비들의.../ blog.daum.net/wintertree50/ 紫霞皐(daum 2016)

 

  낙빈정(洛濱亭) [亭子] : 풍양면 우망리(憂忘里)에 있는 정자로, 동래인 낙빈옹 정지(洛濱翁鄭沚, 1563-1642, 용양위 호군)가 만년(晩年)에 휴양하던 곳인데, 그의 유덕(遺德)을 추모하여 1890년에 후손들이 이를 짓기로 합의하여 1902년 4월 말에 결실을 보아 마침내 세웠다. 판서 정인학(判書鄭寅學)의 기문(記文)이 있다.(朝鮮寰輿勝覽 1929, 竺山勝覽 1934, 嶠南誌 龍宮郡條 1937)

 

  낙빈정(洛濱亭) [亭子] : 풍양면 우망리에 있는 정자로, 동래인 낙빈 정지(鄭沚)가 만년에 유상(遊賞)하던 곳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902년에 세웠다.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이다. 정인학(鄭寅學, 吏曹參判)이 임인년(壬寅年) 4월에 쓴 ‘낙빈정기’가 있는데, <용궁향교지>(2005) 상권 1052-1053쪽에 수록되어 있다.

 

  낙빈정(洛濱亭) [亭子] : 풍양면 우망리 359번지(垈)에 있는 정자로, 동래인 정지(鄭沚)를 기리기 위해 1902년에 건립하여 1956년에 중건하였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기둥은 정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는데, 전면 기둥의 하부에는 팔각형의 석간주를 세워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으며, 기둥의 상부에는 삼익공(三翼工)으로 장식하였다. 평면은 어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며, 전면에는 거의 1칸 규모에 가까운 퇴칸을 설치하였다. 가구(架構)는 종량(宗樑) 위에 제형판대공(梯形板臺工)을 세운 오량가(五樑架)의 구조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낙빈정(醴泉憂忘里 洛濱亭) : *위치 :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359-5, *연대 : 1902년, *규모 : ‘-’자형 정자 1채, 사주문 1채/ 낙빈정은 풍양면 우망리 동쪽 끝자락 산정에 위치한다. 낙빈(洛濱) 정지(鄭沚, 1563-1642)가 만년에 휴양하던 곳이다 정자는 ‘낙동강 물가에서 살겠다’는 뜻으로 낙빈을 호(號)로 삼았다. 그는 일찍이 학문을 닦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당시 피란길에서조차 신주를 모시면서 선조 받드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낙빈공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맏형수를 어머니 모시듯 30년간을 하루같이 섬겨 향린(鄕隣)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1890년 후손들이 선조의 유덕을 추모하여 정자를 짓기로 합의하여, 1902년에 완공하였다. 마루간에는 성균관사 정인학이 찬한 ‘洛濱亭序’의 기문이 있고, 옆 간에 ‘洛濱亭重修上樑文’이 걸려 있다. 좌측 대들보 위에는 ‘洛濱亭’, 우측 대들보 위에는 ‘雲谷齋’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다. 마을의 동쪽 끝자락 산정에 위치하여 전망이 매우 뛰어나다.

 

  용궁현이 있었던 시기에 우망리의 동측 낙동강 건너 별리는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포내리(浦內里)였다. 오늘날 우망리는 낙빈공의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별리는 매오공의 후손이 많이 거주한다. 두 마을은 청룡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청룡산은 우망리의 조산(造山)에 해당하며, 2011년까지 동제당이 있었다. 최근에 별실과 우망리를 잇는 도로가 건설되었은데, 주민들은 청룡산이 깎여나가는 것을 반대하여 청룡산의 맥을 잇기 위해 도로를 1m 이상 새로 돋우고 나서야 개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청룡산은 풍수지리상 낚시바늘형이라고 하며, 동래정씨들의 묘소가 많이 있다. 낙동강 건너 북쪽에는 동래정씨 재실인 완담재(浣潭齋)가 있다. 우망리 낙빈정은 산자락과 농경지 사이에 있는 마을안길에서 경사면 가옥을 향한 안길을 따라 접근한다. 낙빈정은 낙동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마을의 북서쪽 끝자락에 터를 잡고 동향을 하고 있다. 낙빈정은 사면에 시멘트블럭을 쌓아 외부와의 경계선을 그었다. 출입은 동남쪽 모서리에 있는 사주문을 이용하고 있다. 정면 담장 밖에는 마을 안길이 지나고 있고, 아래에 텃밭이 있다. 북측과 남측, 서측 담장밖에도 밭이 있다. 서측 축대 위에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 시멘트블럭 구조의 화장실이 있다. 낙빈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누정건축물이다. 평면은 중앙의 2칸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온돌방이 있으며, 마루간과 온동방 전면에는 마루를 꾸미고 마루 끝에 계자난간을 달았다. 이 외 온동방 좌우측면과 배면 기단 위에도 쪽마루를 꾸며 내부로의 출입이 편리하도록 하였다. 마루간은 두 짝 여닫이 우리파문을 달아 놓았으며, 온동방은 대청 쪽 에 네 짝 들문을 달아 실 공간을 확장할 때 용이하도록 했다. 좌우 온돌방은 정면 마루간 쪽에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아 동측의 넓은 들녘과 북동쪽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다. 기단과 기단 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축조 마감했으며, 주초의 동바리 받침돌은 자연석인 데, 8각형 정면 툇기둥의 주초는 다듬은 장초석이다. 장초석 위의 기둥과 좌측면 중앙기둥은 원기둥이며, 이외 자연석 위 기둥은 사각기둥이다. 정면 기둥 상부는 이익공방식으로 짜 맞춤을 하고 있으며, 주간은 살각한 판재를 끼워 장식했다. 정면 마루간과 좌우측면은 이태극으로 초각한 판재를 도리받침장혀와 창방 사이에 끼워 장식했다. 이외의 좌우측면과 배면의 기둥 상부는 납도리형식으로 짜 맞춤을 하였다. 포작 위 가구는 오량구조로서 상부의 동자주, 종보, 판대공, 종도리, 장연과 단연을 받도록 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정면과 좌우측의 부연 아래 부분에 슬레이트를 달아내어 처마를 깊게 처리했다. 처마 끝은 와구토로 마감을 하였으며,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 끝은 망와를 놓아 마감했다. 목재는 석간주색으로 단청을 하였다. 벽체와 앙토는 회바름으로 마감했다. 사주문 또한 석간주색으로 대문과 기둥 및 기타 목재를 단청하였으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이다. 낙빈정은 경관이 뛰어난 곳에 터를 잡아 주변의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마을의 전통가옥과 다른 누정건축물과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건축적 가치가 높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287-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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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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