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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747 : 날아라 호랑나비야...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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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호랑나비야 [冊] : 용문면 출신 권혁도(1955- , 昆蟲細密畵家)의 저서로, 36쪽, B5, 길벗어린이에서 2004년 6월 15일에 출간하였다. [책 소개] : 호랑나비의 한살이를 정교한 세밀화를 통해 보여주는 그림책. 다양한 곤충을 직접 키운 경험이 있는 저자가 직접 호랑나비 알을 채취해 사육하면서 관찰하고, 그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저자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호랑나비 알이 많은 위험을 이겨내고, 한 마리의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온 힘을 다해 허물을 벗는 애벌레의 모습을 통해 화려한 결과를 이루기 위해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일깨워주고 있다. [블로거 리뷰] : 어린이문화진흥회가 뽑은 책/ koyochoi님|교보북로그 | 2004-11-14/ (사)어린이문화진흥회가 <2004 가을에 읽어야 할 좋은 책 50> 중에서 아주 어린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추천된 책입니다. 어린이문화진흥회에서는 아동문학가 평론가 교사 출판편집인 독서지도자 등으로 구성된 전문 서평위원 및 도서 선정위원들이 3개월.. [출판사 서평] : 초여름 들판에 나가면 하늘을 나는 예쁜 나비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들판에는 배추흰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가 쉽게 눈에 띄고, 산길을 걷다 보면 제비나비 산호랑나비가 눈에 많이 띕니다. 어린이들과 들판에 나갔을 때 가장 쉽게 관찰하고 채집할 수 있는 것도 나비입니다. 더 나아가 화려한 날갯짓을 하는 나비들이 축제의 주인공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합니다. 모두들 나비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날갯짓을 떠올리고 우리가 잘 지키고 보호해야 할 좋은 곤충이라고 생각하죠. 나비가 애벌레를 거쳐야만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나비를 보면서 징그러운 애벌레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애벌레라도 보게 되면 징그럽다고 소리치면서 외면할 것입니다. 심지어 사내아이들은 발로 밟아 죽이려고 하기도 하죠. 축제의 주인공이 되어 화려한 몸짓을 보여주는 나비 성충에는 관심을 갖고 보지만 정작 그 한 마리의 나비가 화려한 날갯짓을 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애벌레와 번데기는 그저 징그러운 벌레일 뿐인 것입니다. 작가는 오랜 시간 곤충을 관찰하면서 곤충의 애벌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합니다. 때론 그 관심은 애정에 가깝기도 합니다. 아주 작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한번씩 허물을 벗을 때, 마치 인간들이 한 단계 성장할 때마다 겪는 어려움을 그들도 겪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허물을 벗는다고 합니다.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작은 알이 성충이 되어 하늘을 날기까지 수많은 천적들의 위협으로부터 자기 몸을 지켜내야만 하는 거죠. 이 책은 호랑나비의 한살이를 자세하게 그림으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다른 정보책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은 그 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작가는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도 않는 작은 호랑나비 알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잘 이겨내야 한 마리의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면서 어린 독자들이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 내고 씩씩하게 자라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daum 2009)
날짐승요 [民謠] : 용문면 내지리(內地里)에서 전승되어온 새요(謠)이다. [內容] : 앞에 가는 놈 양반/ 뒤에 가는 놈 똥바가치(바가지)/ 중간에 가는 거 서답돌/ (풀이) 해질 무렵 날짐승이 떼지어 날아가는 것을 보고 부른다.(김송동)
낡은 역골 : →대은
남격암 산수 십승보길지지(南格庵山水十勝保吉之地) [레포트] : 용문면 금당동 북쪽 등에 대하여 말한 격암 남사고의 십승지지에 관한 레포트로, 2002년 3월 10일에 인터넷 야후에 등록되었다. 남사고는 이조 중엽에 명성을 날리던 감여가(堪輿家)이다. 특히 풍수지리에 능한 지사(地師)였으니 세인들은 그를 경암(敬庵) 혹은 격암(格庵)이라고 불렀다. 그가 소년 시절에 울진의 불영사에서 신승(神僧)을 만나 비결(秘訣)을 전수받았다. 그 후 현묘한 이치를 깨닫고 풍수, 천문, 음양, 복서(卜筮) 등의 술에 능통함으로써 명종 때는 천문학 교수로서 대우받았던 풍수지리학의 대가였다. ‘예천의 금당동 북쪽이니, 이 땅은 비록 얕게 드러났으나 병란이 미치지 않아 여러 대에 걸쳐서 평안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임금의 수레가 임하면 달라지게 된다.‘라고 하였다.(인터넷 야후 專門資料檢索 2003)
남고문집(南皐文集) [冊] : 풍양면 고산리 수산 신기(壽山新基) 사람 박응형(朴應衡, 1605-1658)의 시문집으로, 1871년(고종 8) 그의 7세손 시원(時源) 등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박응형의 자는 첨백(詹伯), 호는 남고, 본관은 고령, 창선(昌先)의 아들, 정경세(鄭經世), 유진(柳袗)의 제자이다. 선생의 연보 중 예천과 관련있는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1621년 고령에서 용문면 하금곡리에 가서 외조부 양서 이광윤(양西李光胤)을 만나다. 1622년 겨울에 풍양면 우망리 동래인 정영후(鄭榮後)의 딸과 결혼하였다. 1624년 봄에 풍양면 방곡(方谷)으로 이사하였다. 1631년 4월 9일에 화포 홍익한(花浦洪翼漢)이 찾아왔다. 1632년 여름에 풍양면 고산리 수산 신기(水山新基)에 남고정사(南皐精舍)가 이룩되었다. 1637년 1월 용문면 선동에서 병자호란을 피하였다. 이 마을은 대여섯 집인데, 그 중 엄군원(嚴君原) 집에 세들어 있었다. 이 때 예천군수 허한(許한),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李命雄), 선산부사 이적(李적)이 각각 내방하였다. 1644년 9월에 용궁(龍宮)으로 가서 금산(金山)현감 이찬(李燦)을 만났다. 10월에 수산 신기로 돌아왔다.
남극후 극회 형제 정효각(南極厚極會兄弟旌孝閣), 예천신음리 정효각(醴泉新陰里旌孝閣) [碑閣] : 개포면 신음리 167번지 개포우체국(開浦郵遞局) 앞에 있는 목조와가(木造瓦家) 비각으로, 1890년(고종 27)에 영양 남씨(英陽南氏)들이 세웠다. 비명(碑銘)은, "효자 증 통정대부 좌부승지 남극후 증 조봉대부 동몽교관 남극회 형제지 려(孝子贈通政大夫左副承旨南極厚贈朝奉大夫童蒙敎官南極會兄弟之閭)"이다.
남극후 남극회 정려비(南極厚 南極會 旌閭碑) [碑] : 개포면 신음리 153-2번지에 있는 비로, 비각은 신음리 우체국 옆에 있다. 1888년(고종 23) 암행어사 이경옥(李敬玉)이 이들 형제의 효행을 목도하고 손수 석공을 불러 개포면 가곡리 한퇴마을 도로변에 마애하여 세웠다. 형에게 통정부부 좌부승지, 아우에게는 조봉대부 동몽교관이 증직되었다. 이경옥이 기록한 ‘정효각 효행기’가 <용궁향교지> 상권 1004쪽에 수록되어 있다.
남극후 남극회 효자비(南極厚 南極會 孝子碑) [碑] : 개포면 가곡리 284-1번지(林)에 있는 비로, 영양인 남극후 남극회 형제의 효행을 표창하여 새겼다. 비는 가로 약 3m, 높이 1m의 자연 암반에 별도의 석재를 이용하여 비명(碑銘)을 새긴 후 부착한 형태로, 전면 좌측에 ‘南極厚極會孝子之碑 李敬玉記’라 새겨져 있고, 우측에 ‘壬申四月日 曾孫德基德祐改竪’라는 건비년대(建碑年代)가 음각되어 있다. 군지(郡誌)에는 1886년에 정려되었다고 하나 각자(刻字)된 비문으로 보아 1932년 임신년에 새로이 고쳐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 좌측에 2004년 4월에 제작한 비석이 1기가 있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남극후 남극회 효자비(南極厚 南極會 孝子碑) [碑] : 개포면 신음리 160-1번지(林)에 있는 조선시대 비로, 한식 팔작지붕을 가진 정효비각 안에 있다. 가첨석(加檐石), 비신(碑身), 구부(龜趺)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 전면에 ‘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南極會 贈通政大夫左副承旨南極厚 兄弟之閭’라 각자(刻字)되어 있고, 비 좌측에 ‘孝子崇禎紀元後五甲己丑九月日’의 건비(建碑) 연대가 새겨져 있다. 가첨석의 크기는 폭 44cm, 높이 26cm, 두께 38cm이고, 비신의 크기는 폭 32cm, 높이 100m, 두께 13m이고, 귀부의 크기는 가로 70cm, 세로 100cm, 높이 32cm이며, 자경 5x5.5cm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남극후 남극회 효자정려현판(南極厚 南極會 孝子旌閭懸板) [彫刻] : 개포면 신음리 160-1번지(林)에 있는 조선시대 조각으로, 팔작지붕 정효비각 안에 있다. 현판에 칸을 나누어 ‘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南極厚極會兄弟之閭 聖上十六年己丑十月日’이라고 적혀 있으며, 현판의 크기는 가로 97cm, 세로 32.5cm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남극후 남극회 효자졍려현판 : 예천의 자랑 1833 : 예천충효 32(附 예천방문 359)/ 작성 장병창/ 남극후 남극회 효자정려현판(南極厚 南極會 孝子旌閭懸板) [彫刻] : 개포면 신음리 160-1번지(林)에 있는 조선시대 조각으로, 팔작지붕 정효비각 안에 있다. 현판에 칸을 나누어 ''''孝子贈朝奉大.../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남내(南月村, 南邑內) : 예천읍 청복리 돌태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남읍면의 소재지로서 매우 번창하였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면소가 없어지는 동시에 마을이 줄어들었다.(醴泉邑홈페이지 2013)
남내 :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청복리 [淸福里, Cheongbok-ri]/ 2016.07.21./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에 있는 리(里)이다. <... script>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러 리가 병합되어 청복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남내, 다리끝, 도로변, 돌태,/ blog.naver.com/hmi0419/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daum 2016)
남내 : 예천의 자랑 3531 : 예천대사전 제156권 오늘 나와(祝 유천초)/ 작병창 편저/ 제156권(醴泉大事典 第156卷) [冊] : 예천읍 백전리 109번지 출신인 백산(... 범위는 “추가 XX : 남기호~노오현”이다. 수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명: 남내, 남본1리, 남산공원, 남짝, 내골, 내동, 내성천, 내지리, 냉정골, 너리.../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남내 : →남읍내
남네 : →남읍내
남녀 고등학생의 심폐 기능에 관한 연구(男女高等學生의 心肺機能에 關한 硏究) [冊] : 예천읍 남본리 출신인 권오인(大昌高 26回 卒業, 서울 창일中 敎師)의 서울대학교 대학원 1992년 석사학위 논문으로, 83쪽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계명대(동산), 서울대(중앙)이다.(keris 2003)
남덕대(覽德臺) [바위] : 감천면 천향리(泉香里) 오향 남쪽에 있는 큰 바위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남덕대(覽德臺) [亭子] : 감천면 천향리 오향(梧香) 남쪽 봉황산(鳳凰山) 아래에 있는 정자로, 조선 영조 때 한양인 오죽 조의양(梧竹趙宜陽)이 살면서 소요 강학하던 곳이다. 구곡 이중륙(九曲李重륙, 1728-1804)이 시로써 이르기를, "오죽재 운을 차운한다(오향동에 있는 남덕대)// 들리는 말로는 국화절에 마신다 하니/ 술 친구가 어디서 같이 갈런가/ 작년에 수수밭은 도연명과 함께 김 멨는데/ 이 달에 화산으로 출타하고 없다네/ 봉황이 오대(梧臺)에 내리니 마땅히 남덕(覽德)을 보았고/ 사람은 바라지(억창)를 따라서 스승을 찾는구나/ 이별한 때가 되어 나에게 시운을 주니/ 구슬같은 글줄이 비취같이 아름답네//"라고 하였다.(國譯 九曲集 1999, 朝鮮寰輿勝覽 1929, 醴泉郡誌 1939)
남덕대(覽德臺) [樓臺] : 감천면에 있는 누대로, 한양인 오죽재(梧竹齋) 조의양(趙宜陽)이 강학하던 곳이다. 후손 조동운(趙東雲)이 관리하고 있다.(醴泉鄕校誌 2004)
남덕대 : 조의양(趙宜陽) 봉황성(鳳凰城) 아래에 남덕대(覽德臺)를 세우고, 자호인 ‘오죽재’로 편액하여 걸어 두고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조석시(趙錫時)`조석양(趙錫良)이다. 묘는 예천군 감천면에 있다. 저서로 .../ people.aks.ac.kr/front/tabCon/ppl (daum 2016)
남덕대 : 예천의 자랑 2871 : 조원승(감찰)-조원익(입향조)-조은애(선수)-조응(선사)-조의양(동추.../ 작성 장병창/ 오향동 봉황성(梧香洞鳳凰城) 아래 남덕대(覽德臺)를 세우고, 자호(自號)를 오죽재(梧竹齋)라고 하였다. 당시 문장가로 기호 지방에까지 명성이 떨쳤다. 문집(文集) 12책이 있다. 묘는 감천면 부산(芙山) 해좌(亥坐)에 있는데, 묘.../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남도건설(대표자:박현순)에 대한 국문 요약신용분석보고서(남도建設(株)(代表者:박현순)에 對한 國文 要約信用分析報告書(CR1)) [報告書] : 한국신용평가정보에서 2007년 6월 29일에 발행하였다. [본문 요약] : 남도건설(주)에 대한 재무제표를 중심으로 분석한 요약보고서 (종합신용등급, 현금흐름등급, Watch등급, 기업개요, 주요재무상황, 주요재무비율, 재무신용평점 등 포함)이다./ 상호명 : 남도건설(주) / 본사주소 : (757-803) 경북 예천군 예천읍 남본리 81-1 남도건설(주) / 결산일자(재무제표 최근 결산일자) : 2005년 12월 31일 / 기준일자(신용등급, 개요정보 변동일자) : 2007년 06월 29일(daum 2008)
남둣골 [골] : 용궁면 월오리(月梧里) 가래미 뒤에 있는 골짜기이다.
남매바우(男妹岩) [傳說] : 용궁현(龍宮縣)에 있던 바위로, 임진왜란(1592) 때 모든 장정들이 싸움터에 나가야만 했다. 이 고을 어떤 장정이 아들과 딸 하나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 두 남매가 아버지를 전쟁터에 보내고서는 아버지가 부디 전쟁터에서 이기고 돌아오기를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빌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왜놈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이 두 남매를 붙들고는 갖은 곤욕을 주려 하였다. 그러던 중 동생은 도망을 하였으나, 얼마를 가지 못해 왜놈들에게 잡혔다. 그리고는 왜놈들은 칼을 뽑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동생은 차라리 너희 놈들한테 죽느니 보다는 내가 자진(自盡)하여 죽겠다면서 왜놈들의 칼을 빼앗아 자기 배에다 꽂고 쓰러졌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누나도 동생을 따라 죽겠다면서 혀를 깨물고 죽었다. 그러자 왜놈들은, '역시 조선에도 애국자가 있었구나.'라고 하면서 감동을 받아 남매의 시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그 후에 그 자리에는 이름 모를 바위가 서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때부터 두 남매가 죽은 넋이라 해서 이 바위를 남매바우라고 하였다.
남매요(男妹謠) [民謠] : 예천군에 전승되어온 설화요(說話謠)이다. [內容] : 낙실낙실 벼루 끝에 / 무정하다 저 오랍아/ 앞에 가는 동생 두고/ 뒤에 가는 처자잡네/ 불길같은 요네 몸이/ 잉어 밥이 되라는지/ 삼단 같은 요네 머리/ 물쌀에다 헤잘리네/ 나도 죽어 환생하여/ 군자부터 생길라네/ 얻어면 첩이요/ 낳으면 자식이요/
남면(南面) : 풍산류씨 하회마을 화경당(북촌댁) 도광 4년에 답주 조동필과 화천서원 간역소성상 억재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田畓賣買文記)[11196]/ 작성자: 답주 조동필 날짜: 1825(1825.2.15/ 분류: 고문서 > 매매문기(賣買文記) | 고문서 > 문중문서(門中文書) > 풍산류씨 북촌댁(화경당) 고문서/ 제공: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풍산류씨 하회마을 화경당(북촌댁) 도광 4년에 답주 조동필과 화천서원 간역소성상 억재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田畓賣買文記)[11196]/ 서지내용/ 문서명 풍산류씨 하회마을 화경당(북촌댁) 도광 4년에 답주 조동필과 화천서원 간역소성상 억재 사이에 작성된 명문(明文)(田畓賣買文記)[11196] 豊山柳氏 河回마을 和敬堂(北村宅) 明文10 (田畓賣買文記)/ 발급자 답주 조동필 沓主 趙東弼/ 수급자 화천서원 간역소성상 억재 花川書院 刊役所城上 億才/ 간행세기 1825/ 문서크기(cm) 33.7×35.0/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원소장처 풍산류씨 하회 화경당(북촌댁)/ 고문서주제분류 치부기류(置簿記類) > 매매문기(賣買文記)․매매명문(賣買明文) > 매매명문(賣買明文)/ 순조 24년(1824) 작성된 전답매매 명문으로 화천서원간역소(花川書院刊役所) 성상억재(城上億才)에게 예천(醴泉) 남면(南面)의 토지 6두락지를 전(錢) 100냥에 판매한다는 내용이다. 답주(畓主)는 조동필(趙東弼)이고 증인은 최(崔)이다./ 道光四年。甲申二月十五日。花川書院。?役所城上億才前(明)文。右明文爲乎事段矣。身要用所致買得醴泉南面裴餘員退字六十九畓十一卜八束六斗落只?。價折錢文一百乙。依數捧上爲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或有雜談是去等。以此文記告官辨正事。畓主趙東弼。(手決)證人崔守。(手決)筆執鄭才云。(手決)//
남면 : 1832년에 남면 상금곡리에 사는 백진호가 작성한 호구단자 [가족생활 > 가족구성] | [국가지식] 전북대학교 박물관/ 1832년(순조 32)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진호(白鎭?, 53)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그는 처 고씨(43) 및 미혼의 두 아들 그리고 성혼한 동생 내외와 함께 살았다..../ 예천(醴泉)에 대한 KRpia-한국의 지식콘텐츠역사자료이다.//
남면 : 1846년에 남면 상금곡리에 사는 백진상이 작성한 호구단자 [가족생활 > 가족구성] | [국가지식] 전북대학교 박물관/ 1846년(헌종 12 ) 경상도(慶尙道) 예천군(醴泉郡) 남면(南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사는 유학(幼學) 백진상(白鎭常, 27)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그의 본관은 수원이며, 도망간 노(奴) 천덕(千德)이 있다./ 예천(醴泉)에 대한 KRpia-한국의 지식콘텐츠역사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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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