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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753:남북한과...남산골
작성자장병창 @ 2020.01.08 06:09:18

  도청신도시 예천 753 : 남북한과...남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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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한과 동북아 국제관계(南北韓과 東北亞 國際關係) [外交書]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박치정(朴治正, 1944-, 建國大 敎授) 등(蘇致馨, 姜錫燦)의 저서로, 387쪽, A5, 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2006년 3월 10일에 발행하였다. [책 소개] : 미국은 9.11사태 이후 WMD 확산 억제를 최우선시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대북 강경자세를 견지해 나갈 것이며, 중국은 강대국으로서 책임있는 역할을 모색할 것이다. 러시아는 슬라브 민족주의 활로를 동북아와 아`태 지역에서 찾으려 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현상유지가 당분간 불가피한 만큼 힘의 형평, 세력균형체제에 대한 기존의 관점과 시각, 구상 그리고 메커니즘 등에 관한 세심한 고려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힘'이 없을 경우, 모두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진리이다. 또다시 과거의 아픈 역사의 상흔을 되풀이 경험할지도 모를 위기가 국난으로 다가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이야말로 안전보장에 관한 참 진실이다. [목차] : 제1장 국제관계의 본질 9 / 1.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관계 9 / 2. 국제정치의 환경과 변화 16 / 3. 국제정치의 개념과 연구방법 22 / 제2장 국제정치체제의 형성과 변화 33 / 1. 국제정치체제의 개념과 특징 33 / 2. 양극체제의 형성과 특징 39 / 3. 다극체제의 형성과 전개 57 / 4. 탈냉전체제의 형성과 동북아 국제질서 64 / 제3장 국제질서와 지역주의 85 / 1. 세계화와 보편주의 85 / 2. 지역주의의 대두와 전개 90 / 3.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발전과정 105 / 4.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 추세와 한국 112 / 제4장 강대국 외교와 약소국 외교 127 / 1. 강대국 외교의 특징 128 / 2. 강대국의 외교정책 기조 134 / 3. 약소국 외교의 특징 139 / 4. 약소국의 외교노선과 행태 151 / 제5장 남북한과 4강대국 관계 159 / 1. 한미관계와 한일관계 159 / 2. 한중 관계와 한러 관계 181 / 3. 북러 관계와 북중 관계 209 / 4. 북미 관계와 북일 관계 241 / 제6장 남북한 관계의 전개 267 / 1. 역대 한국 정부의 통일방안과 대북정책 267 / 2. 북한의 통일정책 기조와 연방제 통일방안 284 / 3.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296 / 4.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전개 301 / 제7장 한반도의 평화정착 313 / 1.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313 / 2. 남북한 신뢰 조성과 군축 323 / 3. 북한 핵문제와 6자회담 334 / 제8장 21세기 한국의 외교과제 349 / 1. 한반도 주변 4강대국의 정책 전망 349 / 2.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351 / 3. 한국외교의 과제 354 / ■ 참고문헌 365 / ■ 찾아보기 380(daum 2008)

 

  남북한 교과서에 나타난 통일교육 내용 분석(南北韓 敎科書에 나타난 統一敎育 內容 分析) [論文] : 용문면 하금곡리 출신인 강지한(康智漢, 1941- , 慶北大 敎授) 등의 논문으로, 경북대학교 평화문제연구소에서 1996년에 발행한 <평화연구(平和硏究)> 21권 1호 1-28쪽(28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서론, 2) 통일교육의 성격과 방향, 3) 남북한 교과서 내용 비교 분석, 4) 결론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서울대(중앙)이다.(keris 2003)

 

  남북한의 경제력과 통일정책의 변화(南北韓의 經濟力과 統一政策의 變化 =Correlation between Economic Power and Reunification Policy : 冷戰期의 相對的인 經濟力을 中心으로 =Focusing on the Relative Economic Power of South and North Korea in the Cold War Era)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윤순갑(尹錞甲, 1956- ,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대한정치학회(the Korean Political Science Society)에서 2005년에 발행한 <대한정치학회보(大韓政治學會報 =Kore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13 No.1 27-53쪽(27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초록] : 분단 이후 남한은 자본주의를, 북한은 사회주의를 지배적 양식으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인 경제체제의 운용에 있어서는 남북한 공히 국가의 간섭 내지 개입이 용인되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유사성을 지닌 경성국가였다.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체제의 실제 운용결과는 북한 우위기(1948~1970)·남북 대등기(1971~1973)·남한 우위기(1974~1990) 등 세 단계의 변화를 거쳐왔다./ 첫 번째 단계인 북한 우위기의 통일정책은 남한의 그것이 수세적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면, 북한의 그것은 공세적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은 우세한 경제력에 바탕으로 유연하지만 공세적인 정책을 견지하였다. 이에 반해서 이 기간에 남한은 경제력의 열세에서 비롯된 체제의 허약성을 은폐하는 등 수세적이면서도 경직된 정책을 유지하였다./ 두 번째 단계인 남북 대등기의 통일정책은 양측 공히 적극적이면서도 공세적인 처방을 제시했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 시기의 남한과 북한은 모두가 경제력에 있어서의 상대방 보다 자신들이 우세하다는 판단에 근거한 정치적 우월감을 가졌으며, 이러한 정치적 우월감이 해당국가의 통일정책에 유연성을 증대 시켰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인 남한 우위기의 통일정책은 남한의 그것이 적극적이며 공세적이었는데 반해서 북한의 그것은 소극적이며 수세적이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 시기 쌍방의 통일정책에서 포착되는 상반된 방향성은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가 남한에는 정치적 자신감으로 작용했으나 북한에는 열등감으로 작용했다는 것에 주로 기인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This article explores the correlation between economic power and reunification policy by analyzing the effects of relative economic power on the reunification policies of the two Koreas in the Cold War era. South and North Korea have kept the different economic systems since the division, capitalism and socialism respectively. But the two Koreas are not so much different but similar to one another in terms of their hard power policies that allow government to intervene or interfere in economics. In this context, it has been noted frequently that the similarity of the two Koreas draws on a correlation between economic power and reunification policy. Nevertheless, there are few scholarly attempts to analyze it systematically in accordance with the change of shifting relative economic power of South and North Korea. By analyzing the changes of the reunification policy in three time periods of the Cold War era North superiority (1948-1970), South & North equivalence (1971-1973), and South superiority 1974-1990), I will argue three things: (1)that the superiority of one over the other in their relative economic power rendered the superior more proactive than the inferior in postulating reunification policy; (2)that the equivalence of economic power between the two Koreas carried conviction to both of them, whereby they all took the posture of aggressiveness; and (3)that the condition of being superior in terms of economic power invoked the idea of certitude which made reunification policies relatively flexible.(keris 2006)

 

  남북한의 경제력과 통일정책의 변화(南北韓의 經濟力과 統一政策의 變化 =Correlation between Economic Power and Reunification Policy)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윤순갑(尹錞甲, 1956- ,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대한정치학회에서 2005년에 발행하였다. [본문 요약] : 분단 이후 남한은 자본주의를, 북한은 사회주의를 지배적 양식으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인 경제체제의 운용에 있어서는 남북한 공히 국가의 간섭 내지 개입이 용인되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유사성을 지닌 경성국가였다.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체제의 실제 운용결과는 북한 우위기(1948~1970)ㆍ남북 대등기(1971~1973)ㆍ남한 우위기(1974~1990) 등 세 단계의 변화를 거쳐왔다. 첫 번째 단계인 북한 우위기의 통일정책은 남한의 그것이 수세적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면, 북한의 그것은 공세적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은 우세한 경제력에 바탕으로 유연하지만 공세적인 정책을 견지하였다. 이에 반해서 이 기간에 남한은 경제력의 열세에서 비롯된 체제의 허약성을 은폐하는 등 수세적이면서도 경직된 정책을 유지하였다. 두 번째 단계인 남북 대등기의 통일정책은 양측 공히 적극적이면서도 공세적인 처방을 제시했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 시기의 남한과 북한은 모두가 경제력에 있어서의 상대방 보다 자신들이 우세하다는 판단에 근거한 정치적 우월감을 가졌으며, 이러한 정치적 우월감이 해당국가의 통일정책에 유연성을 증대 시켰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인 남한 우위기의 통일정책은 남한의 그것이 적극적이며 공세적이었는데 반해서 북한의 그것은 소극적이며 수세적이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 시기 쌍방의 통일정책에서 포착되는 상반된 방향성은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가 남한에는 정치적 자신감으로 작용했으나 북한에는 열등감으로 작용했다는 것에 주로 기인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This article explores the correlation between economic power and reunification policy by analyzing the effects of relative economic power on the reunification policies of the two Koreas in the Cold War era. South and North Korea have kept the different economic systems since the division, capitalism and socialism respectively. But the two Koreas are not so much different but similar to one another in terms of their hard power policies that allow government to intervene or interfere in economics. In this context, it has been noted frequently that the similarity of the two Koreas draws on a correlation between economic power and reunification policy. Nevertheless, there are few scholarly attempts to analyze it systematically in accordance with the change of shifting relative economic power of South and North Korea. By analyzing the changes of the reunification policy in three time periods of the Cold War era North superiority (1948-1970), South & North equivalence (1971-1973), and South superiority 1974-1990), I will argue three things: (1)that the superiority of one over the other in their relative economic power rendered the superior more proactive than the inferior in postulating reunification policy; (2)that the equivalence of economic power between the two Koreas carried conviction to both of them, whereby they all took the posture of aggressiveness; and (3)that the condition of being superior in terms of economic power invoked the idea of certitude which made reunification policies relatively flexible.(daum 2008)

 

  남북 합의서의 이행과 북한의 핵 개발(南北合議書의 履行과 北韓의 核 開發) [論文] : 용문면 하금곡리 출신인 강지한(康智漢, 1941- ,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경북대학교 평화문제연구소에서 1992년에 발행한 <평화연구(平和硏究)> 17권 1호 52-80쪽(29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서론, 2) 남북한 기본합의서의 성격, 3) 남북한의 비핵화 문제, 4) 한반도에 대한 4강의 핵 정책, 5)결론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명지대(인문), 서강대이다.(keris 2003)

 

  남북합의서의 이행과 북한의 핵개발(南北合意書의 履行과 北韓의 核開發 =The Fulfillment of South-North Basic Pact and Nuclear Development Project) [學術저널] : 용문면 하금곡리 출신 강지한(康智漢, 1941- , 醴泉中 卒業, 慶北大 敎授)의 논문으로, 경북대학교 평화문제연구소에서 1992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 : Ⅰ. 서론/ Ⅱ. 南北韓 基本合意書의 성격/ 1. 南北對話/ 2. 基本合意書 채택의 의미/ 3. 남북한간의 合意書 채택과 전망/ Ⅲ. 南北韓의 非核化 문제/ 1. 한국의 核政策/ 2. 북한의 核政策/ 3. 남북한간의 核問題/ Ⅳ. 한반도에 대한 四强의 核政策/ 1. 美ㆍ日의 核政策/ 2. 中ㆍ蘇의 核政策/ Ⅴ. 결 론(daum 2009)

 

  남사천교(南沙川橋) [橋梁] : 예천군청 남쪽 15리에 있던 조선 시대의 다리이다.(醴泉郡邑誌 1770 1780 1786 1832 1841 1895)

 

  남산(南山) [골] : 보문면 오암리(烏岩里)에 있는 골짜기이다.

 

  남산(南山) [마을] : 유천면 화지리에 있는 마을로, 남산(南山) 아래에 있다. 2가구(1980)가 살고 있다.

 

  남산(南山) [山] : 1) 보문면 신월리(新月里) 독제이마을 남쪽에 있는 산이다. 2) 상리면 도촌리 도촌(道村) 남쪽에 있는 낮은 산이다. 3) 예천읍 갈구리(葛九里)와 우계리(愚溪里)의 경계 지점에 있는 산으로, 이 산의 정상에 오르면, 온 동네가 한눈에 보인다. 이 산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 소나무에서 매년 갈구동민들이 동제사(洞祭祀)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정월 대보름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이 산에 올라 달구경을 하기도 한다. 4) 용문면 노사리(蘆沙里) 가실 남쪽에 있는 산이다. 5) 유천면 사곡리 사곡(沙谷) 앞에 있는 산이다. 6) 유천면중평리 중평(中坪) 남쪽에 있는 산이다. 7) 유천면 화지리 화지(花枝) 남쪽에 있는 산으로, 이 산의 남쪽 아래로 34번국도(國道)가 지나간다. 8) 지보면 매창리(梅倉里)에 있는 남쪽 산이다. 9) 하리면 율곡리(栗谷里) 큰밤실 남쪽에 있는 산이다. 10) 하리면 은산리 현촌(縣村) 냇물 건너편에 있는 산이다.

 

  남산(南山), 남산대, 유동산(酉洞山), 쌍사산(雙絲山) [山] : 감천면 유리(酉里) 남쪽에 있는 산으로, 높이 188.4m, 고려 공민왕(或은 壬辰倭亂) 때 '쌍사산(雙絲山)에 들어가지 말라(不入雙絲山).'라는 비기(秘記)가 있어서, 왜병(倭兵)이 침노하지 않아서 이 지방이 무사하였다. 이 산기슭에 유동(酉洞)마을이 있고, 또 조징후(趙徵厚)라는 이가 300여 년 전에 지었다는 '남산대'가 있었다고 한다. 거기 남산대(南山臺)라는 바위 위에 예전에는 마당(馬堂)이 있어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냈다. 3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남산(南山), 잠두산(蠶頭山), 남산공원(南山公園) [山] : 예천읍 남본2리 한천(漢川)가에 있는 산으로, 1952년에 읍민(邑民)의 유원지로 시설하였다. 이 공원을 오르다 보면, 군 산림조합이 왼편에 있고, 더 오르면 오른편으로 재향군인회관(在鄕軍人會館)이 있다. 더 오르면 무학정(武學亭)이라는 국궁(國弓)의 활터가 있고, 이 무학정(武學亭)에서 좀 더 오르면 관풍루(觀豊樓)가 있다. 이 누각 앞에는 돌자라가 있다. 관풍루에서는 예천읍이 한눈에 보인다. 이 누각에서 좀더 동쪽으로 오르면, 충혼탑(忠魂塔)이 있는데 매년 현충일에는 군수 주관으로 제사를 올린다. 이 곳에서 다시 동쪽으로 내려오면 순국열사 김순흠비(殉國烈士金舜欽碑)가 있다. 그 외 체육 시설 등이 있다. 산이 누에머리같이 생겼다 하여 고려 때부터 잠두산(蠶頭山)이라고 하였고, 일제 때 남산(南山)이라고 하였는데, 옛날 멀리 북쪽으로부터 흘러내려왔다는 전설을 가진 고독한 산으로, 1010년(현종1)에 세워진 개심사지오층석탑(開心寺址五層石塔) 자리의 개심사(開心寺)의 목탁(木鐸) 소리를 들으며, 외로움을 달래었다고 목탁산(木鐸山)이라고도 한다. 이 남산공원에 오르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마음을 느낄 것이다. "주위에 나무들이 빽빽하다. 눈앞과 옆에선 이름도 모를 새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막 뿌리를 내린 어린 소나무 사이로 자그만 산새들이 떼를 지어 우리 주위를 맴돈다. 언덕 위에는 기다란 시멘트로 만들어진, 전쟁의 충혼을 위하고 기리는 탑 하나가 우두커니 자리를 잡고 있다. 높지는 않지만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남산! 언제나 우리의 친근한 오랜 친구가 되어 주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나무 숲 속의 누각 하나가 퍽 인상 깊다. 그 아래를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다리 하나가 남산과 마을을 오랫동안 이어준다." [傳說] : 옛날 땅을 갈면서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있었다. 어느 해엔 아주 극심한 가뭄으로 고생이 심하던 중, 북쪽 오랑캐가 쳐들어 왔다. 이에 평소에 조국애가 강하였던 남편은 전선으로 나갔다. 아무 기약 없이 전선으로 간 남편은 아무 소식도 없어, 아내는 매일 남산(南山) 절벽 앞에서 목을 빼고 기다렸다. 이 때 전부터 그 부인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동네 청년 한 사람이 그 부인에게 이르기를,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라고 거짓을 고한다. 그 소식을 들은 그 부인은 비가 몹시 오던 날 남산에 올라가 꼭대기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간다. 그 후 전쟁터에서 돌아온 그녀의 남편은, 아내에 대한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사람들에게 자기 아내가 죽은 이유를 캐물어, 그 청년을 죽이려 하지만, 끝내 죽이지 못하고, 후에 스스로 스님이 되어 아내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라고 한다.

 

  남산 : →남산재, →산작골

 

  남산골(南山谷) [골] : 지보면 매창리 남산(南山) 밑에 있는 골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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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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