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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756 : 남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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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공원 : [예천] 생태체험공원/ 2015.08.06./ 완공했다. 예천읍 동본리 공설테니스장 옆에 조성된 생태체험공원에는... 있도록 가로등도 설치했다. 예천군은 이번에 생태체험공원이 완공됨에 따라 군민들의 휴식과 여가공간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한천산책로와 남산공원,/ chunyeon.egloos.com/ 사람과 사람들(daum 2016)
남산공원 : 초가을(안동지역) 역사 유적지 답사/ 2008.09.20./ 진행되고 있다. 사업별 추진사항은 우선 예천읍 동본리 상설시장 리모델링 및... 활성화에 기여하게 된다. 또, 80억 원이 투입되는 예천코어 이미지 파크조성사업은 남산공원 산책로 개설과 주변정비를 마치고 현재 한천생활체육공원/ blog.daum.net/ yonghonori(daum 2016)
남산공원 : 예천군, 오는 15일부터 ‘제2회 예천세계활축제’ 개막/ 2015.10.13./ 경북 예천군이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 ‘제2회 예천세계활축제’를 예천읍 한천체육공원과 남산공원 일원에서 개최한다. ‘예천세계활축제’는 지난해 처음 개최된 가운데 15만 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으며, 활의 고장 예천군의.../ blog.naver.com/newsdg/ 데일리대구경북뉴스..(daum 2016)
남산공원(예천읍 남산공원 영산홍 등 형형색색 꽃잔치) [기사] : 예천읍 남산공원 일대가 울긋불긋 봄꽃으로 물들어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예천읍 남산공원은 군에서 지난 2001년부터 철쭉과 영산홍, 진달래 등 관목류는 물론 섬초롱, 맥문동, 비비추, 원추리 등 야생화로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봄꽃의 대명사인 개나리와 벚꽃이 진 자리에 슬며시 철쭉과 영산홍, 자산홍, 수수꽃다리 등 꽃이 만개하여 형형색색의 봄꽃으로 아름답게 수놓고 있어 산책로를 따라 가족단위는 물론 연인, 친구 등 삼삼오오 짝을 지어 봄을 만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운동시설과 휴식을 할 수 있는 정자, 벤치도 마련돼 있어 공원을 찾는 이용객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자연 속에서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숲속도서관, 미니 수목원 등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즐길거리도 다양하다. 특히, 도심 속 야산의 지형을 살리고 다양한 접근성을 고려해 여러 방면으로 산책로를 조성했으며 곳곳에서 읍내 전경과 아름다운 한천 변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남산폭포와 연결돼 도심 속에서 시원함을 즐길 수 있어 지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예천군 관계자는 “알록달록 봄꽃이 만개하고 있어 남산공원에 가족들은 물론 연인, 친구들과 함께 오셔서 아름다운 봄꽃의 향기에 취해 보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예천신문 2019.04.25.)
남산공원(예천 "남산공원의 봄" : 철쭉, 연산홍 등 형형색색의 봄꽃 만개) [기사] : 예천군에서 군민들의 휴식과 생활체육 공간으로 조성한 남산공원 일대가 봄이 무르익는 지금 울긋불긋 봄꽃으로 물들어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예천읍 남산공원은 군에서 지난 2001년부터 철쭉과 영산홍, 진달래 등 관목류는 물론 섬초롱, 맥문동, 비비추, 원추리 등 야생화로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봄꽃의 대명사인 개나리와 벚꽃이 진 자리에 슬며시 철쭉과 영산홍, 자산홍, 수수꽃다리 등 꽃이 만개하여 형형색색의 봄꽃으로 아름답게 수놓고 있어 산책로를 따라 가족단위는 물론 연인, 친구 등 삼삼오오 짝을 지어 봄을 만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운동시설과 휴식을 할 수 있는 정자, 벤치도 마련돼 있어 공원을 찾는 이용객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자연 속에서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숲속도서관, 미니 수목원 등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즐길거리도 다양하다. 특히, 도심 속 야산의 지형을 살리고 다양한 접근성을 고려해 여러 방면으로 산책로를 조성했으며 곳곳에서 읍내 전경과 아름다운 한천 변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남산폭포와 연결돼 도심 속에서 시원함을 즐길 수 있어 지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예천군 관계자는 “알록달록 봄꽃이 만개하고 있어 남산공원에 가족들은 물론 연인, 친구들과 함께 오셔서 아름다운 봄꽃의 향기에 취해 보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예천뉴스 2019.04.25.)
남산공원(신도청시대 예천의 장소성과 인문魂을 찾아서 <8>남산의 풍수 비보(상)) [기고] : 사람에게 이름, 모발, 뼈, 살, 혈관이 있듯이 땅에도 지명, 초목, 바위, 흙, 하천이 있다. 사람이 듣기 거북한 성명을 개명한다면 어색한 땅이름도 듣기 좋은 지명으로 고쳐진다. 사람이 머리털이 부족해 모발이식을 하거나 가발을 써 용모를 보완한다면 땅도 헐벗은 곳에 나무나 꽃이 심어져 좋은 미관을 갖춘 장소로 탈바꿈한다. 이것을 풍수 용어로 '비보(裨補)'라고 한다. 비보란 부족한 점을 찾아내어 보완해 준다는 의미이다. 땅을 비보한다는 것은 허결한 점이 있는 40~50점짜리 터를 인위적으로 보완하여 70~80점대 이상의 터로 향상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지명비보, 식수(植樹)비보, 연못비보, 지맥[용맥]비보, 숲비보, 조형물비보 등 그 유형도 각양각색이다. 탑, 숲, 조산, 장승, 못 등을 만드는 가시적인 비보 형태도 있고 지명 만들기와 고치기, 의례, 놀이 등과 같은 비가시적인 비보 형태도 있다. 예천 남산은 해발고도 124m의 나지막한 산으로서 예천읍기의 안산을 이루는 산이다. 읍기의 주산격인 흑응산(217m)과 한천(漢川)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풍수적인 위상으로 보자면 주인격인 북쪽의 흑응산과 손님격인 남쪽의 조산(朝山)들 사이에 놓인 탁자[几案]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산이다. 물론 남산 남쪽 자락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남산이 곧 그들의 주산이 되겠지만 말이다. 남산의 역사는 한마디로 비보풍수의 역사다. 남산은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쭈욱 지명 비보와 경관 비보를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 비보 환경책이 구현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풍수 비보 명소다. 조선시대 이래 예천읍기 비보풍수로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것은 봉황알[鳳卵] 조산설(造山說)이다. 흑응산 아래의 읍기가 봉황포란형 지세여서 봉황이 알을 품고 날아가지 않도록 지금의 파라다이스호텔 근처에 일부러 알과 같은 동산을 만들어 귀격(貴格)의 읍기 형국을 완성시켰다는 풍수 비보 스토리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남산의 비보풍수 얘기는 그보다 한 수 위다. 비보 역사도 더 오래됐을 뿐더러 전개된 비보 내용도 훨씬 더 다양하다. 그 천년의 풍수 비보 내력을 아는 것은 곧 삶의 무대의 뿌리를 아는 것이요, 그 장소 정체성을 안다는 것은 곧 한없는 자긍심으로 향토자연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산의 풍수 비보 유형은 전통 음양오행론적인 비보와 현대 과학적인 생기 비보로 크게 나누어진다. 전자는 고려·조선조 때 행해졌던 상생상극론적 비보법이요, 후자는 현대의 생태학이나 환경심리학 등과 연관된 장소생기론적 비보법이다. 남산의 진실한 풍수 비보 이력은 어떤 것이며, 그 중에서 우리가 예천읍의 미래 발전을 위해 다시 채택하거나 또는 과감히 버려야 할 비보 내용들은 과연 무엇일까.
◆지명 비보 : 남산과 관련된 전통 음양오행론적 풍수 비보 유형은 지명 비보, 사찰 비보, 화기(火氣) 비보라는 세 가지다. 그 세 가지 비보 내용이 서로 얽히고설켜 갖가지 남산 풍수 전설을 낳았다. 그런 스토리들 중에서 영 얼토당토 않는 얘기 하나를 통해 필자가 남산 비보 풍수에 대한 모든 답을 얻은 것은 실로 역설[패러독스]의 결정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전설은 바로 "한 고명한 도사가 예천을 지나가다가 잠두산(蠶頭山: 남산)에 올라 주변 지형을 살폈는데, 잠두산이 화기(火氣)를 품어 소년을 죽일 형상이었으므로 그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잠두산 아래에 개심사를 짓게 되었다"는 스토리다. 여기에서 키워드[핵심어]는 잠두산과 화기, 그리고 개심사다. 그런 얘기가 만들어진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누가 임의로 조작해 퍼뜨린 가짜 풍수설인 것만은 분명하다. 남산에 불꽃 모양(火體形)의 뾰족한 산봉우리도 없을 뿐더러 그 산 위에는 이미 다른 방살(防殺) 목적으로 설치된 돌자라[石鼈]도 있고, 더구나 고려시대 초기인 1010년에 개심사가 남산 자락에 세워진 이유는 고려 왕업의 중흥을 위한 호국용 사찰 비보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단 남산의 지명 비보부터 한 번 살펴보자. 남산은 원래 목탁산(木鐸山)과 잠두산으로 불렸던 산이다. 남산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유교사상이 맹위를 떨쳤던 조선시대에 사용됐던 이름은 목탁산이었을까 아니면 잠두산이었을까. 조선조는 유·불간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유교가 승리해 성불산(成佛山)은 대덕산(大德山)으로, 보살봉(菩薩峯)은 자소봉(紫宵峯)으로 바뀌는 등 전국의 불교식 산이름이 대거 유교식으로 고쳐지던 때였다. 더구나 향교와 현청 등 유교질서가 그 어느 곳보다 엄격했을 예천읍기에서 그것도 모든 이의 눈에 빤히 바라보이는 안산을 목탁산으로 부르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을 것이다. 대구의 앞산은 이데올로기 변화에 따라 고려조에는 성불산, 조선조에는 대덕산, 현재는 앞산으로 불리고 있는데, 그것은 예천의 남산이 목탁산→잠두산→남산으로 바뀐 과정과 똑같다. 그렇다면 고려조의 목탁산, 조선조의 잠두산, 일제강점기의 남산이라는 등식이 저절로 성립된다. 그 변천과정은 대구의 앞산이 고려조 성불산에서 조선조 대덕산을 거쳐 현재의 앞산으로 바뀐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이데올로기적 시대정신이 퇴락하면서 독특했던 삶터 고유명사 지명이 앞산과 남산 같은 무의미한 일반명사 지명으로 덧없이 바뀌게 됐던 것이다. 목탁산은 남산의 형태가 목탁을 닮아서 이름 붙여졌다기보다는 고려조에 그 산 밑에 개심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 주산이 되는 산 이름을 불교식으로 비보하는 차원에서 목탁산으로 명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개심사지는 현재 송포들[松浦들:솔개들]로 개간이 되어 옛 지형 모습을 거의 잃어버렸지만 예전에는 남산[목탁산]에서 서쪽으로 길게 지맥이 뻗어 내려 개심사 터까지 솔숲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잠두산[잠두봉]은 한자로 누에 잠(蠶), 머리 두(頭)라고 쓴다. '누에의 머리' 같은 모양을 한 산이라는 뜻이다. 예천향교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동서로 가로놓인 남산의 형국이 마치 누에가 머리를 쳐들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인공폭포가 만들어져 있는 남산의 서쪽 지대가 누에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잠두산은 그 산 지세의 형국이 누에를 닮았기 때문에 이름 붙여진 일종의 풍수 비보 지명이었던 게 확실하다.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산 이름 중에 '잠두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 궁금해 하는 독자가 많을 것 같아서 몇 마디 부연하고자 한다. 잠두산이라는 산명은 물론 한양에서 맨 먼저 시작됐다. 목멱대왕(木覓大王)을 제사지내는 국사당(國祀堂)이 있어 목멱산이라 불리던 도성 앞산을 잠두산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한양에서 중앙 관료로 근무했던 사람이 지방관으로 파견되면 너나할 것 없이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의 산이름을 잠두산으로 짓게 되면서 그 이름은 전국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거기에는 한없이 베풀어 주기만 하는 누에의 긍정적인 이미지도 큰 몫을 했다. 고대부터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실로 옷감을 짰기 때문에 누에는 매우 귀중한 살림 밑천이었다. 궁중의 임금에서부터 저자의 백성들까지 모두 누에를 쳐서 옷을 해 입었다. 더군다나 누에 번데기는 맛이 고소하고 영양가가 높아서 일반 백성들에게 유익한 음식이기도 하였으니, 왕실에서부터 굶주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누에를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산 이름이 잠두산이나 잠두봉으로 지어지면 그 산 앞쪽에 뽕나무밭을 일궈 상생의 기운을 도모했다. 또 뽕밭이 이미 조성돼 있는 곳이었다면 그 부근의 산 이름을 잠두산 또는 잠두봉으로 지어 상생을 꾀했다. 비보 지명이 먼저였든 아니면 비보 뽕나무밭이 먼저였든 그건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토록 의미심장하면서도 인기가 있었던 '잠두산'이라는 산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남산이라는 새 이름이 고착화되기 시작한다. 한양에서도 그즈음 남산이라는 이름이 새로 등장하고 있었고, 예천읍에서도 그랬으며, 모르긴 해도 아마 그 당시에 전국적으로 수십, 수백 군데의 잠두산이 남산으로 대체됐을 법하다.
2007년에 산림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이름 중에 다섯 번째로 많은 것이 바로 남산이다. 봉화산 47 군데, 국사봉 43 군데, 옥녀봉 39 군데, 매봉산 32 군데, 그 다음이 31 군데의 남산이다. 대구읍성 앞에 있었던 이미 도시화돼버린 작은 남산 같은 것을 모두 포함하면 아마 그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이미 얘기했듯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남산(南山)은 알고 보면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촌락은 대개 주위가 산으로 둘러쳐지고 앞에는 내(川)가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세에 남향해 터 잡고 있다. 그러한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모든 고을의 앞산은 자연히 남산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의 남산에 올라보면 남산타워에서 개명한 서울타워와, 군데군데 '남산 전망대', '목멱산 봉수대 터',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 등 옛 지명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한 쉼터 공간이 조성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남산의 오래된 역사성과 장소 정체성을 옛 지명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남산 북쪽의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 잠두봉이라는 옛 지명을 유효적절하게 잘 활용하고 있는 좋은 사례다. 캠브리지대학 지리학과 교수였던 다비(H. C. Darby, 1909~1992)는 "역사 없는 지리는 생명 없는 해골과도 같고, 지리 없는 역사는 거처 없는 부랑자와도 같다"고 말했다. 지리와 역사의 불가분리성, 즉 '장소의 역사성'과 '역사의 장소성'을 강조한 명언 중의 명언이라 할 수 있다. 예천읍 남산 서쪽 끝 누에머리 부분의 쉼터. ‘잠두봉 쉼터’라 이름붙일 만하다. 예천 남산의 경우는 현재 어떠한가. 눈 씻고 찾아봐도 목탁산이나 잠두산, 잠두봉 같은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개심사지오층석탑을 말할 때는 '목탁산'을 앞에 붙여서 얘기하면 좋고, 남산 서쪽 나무데크 길 위의 전망대에는 '잠두봉 쉼터'라는 이름표를 붙여주면 좋을 듯한데 그게 그리도 어려운 모양이다. 1959년에 예천읍이 잠두봉 위에 세운 누각 이름을 '관풍루(觀豊樓)'로 지은 것은 너무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수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차라리 '잠두봉 전망루'로 이름 지었더라면 훨씬 더 시대감각과 정감을 살린 누각 이름이라는 칭송을 들었을 것이며 아울러 남산의 유구한 장소 정체성도 되살리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1959년에 예천읍에서 세운 관풍루. ‘잠두봉 전망루’로 명명했더라면 역사적인 장소 정체성을 살리는 동시에 듣기에도 훨씬 더 정감이 가는 누각 이름이 되었을 것이다. 이참에 아예 잠두봉 밑 다솜길 입구에 뽕나무 십여 주 정도를 비보 식수(植樹)하여 예천읍기의 역사 오랜 잠두산이라는 지명을 도시경관으로 드러나 보이게 하면 어떨까. 국궁과 양궁의 본향임을 알리는 예천교의 활·화살 조형물과 더불어 이색적인 읍기 상징물로 읍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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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