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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763: 남악종택...남야선생문집...(축,장윤기)
작성자장병창 @ 2020.01.14 20:11:43

  도청신도시 예천 763 : 남악종택...남야선샌문집...(부, 예천읍 출신 장윤기, ‘문체부 누리집 시각장애인 이용편의 증진’ 제안으로 31일 행안부장관 표창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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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악종택 : 경상북도의 민속문화재(제1호 ~ 제100호)/ 상주시 외답동 167-1 이용덕 1987년 12월 29일 지정 77호 의성김씨 남악종택(義城金氏南嶽宗宅) 경북 예천군 용문면 구계리 248-1 김용규 1988년 9월 23일 지정, 2007년 1월 12일 해제, 중요민속문화재 제248호로 승격 78호 청도임당리김씨고택(淸道林塘里金氏故宅) 경북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 631 김수훈 1988년 9월 23일 지정, 2005년 1월 31일 해제, 중요민속문화재 제245호로 승격 79호 회곡고택(晦谷古宅) 경북 영양군 청기면 기포리 261 권오선 1988년 9월 23일 지정 80호 오덕리애은당고택(吾德里愛隱堂古宅) 경북 포항시 북구 기북면 덕동문화길 31 이동우 1988년 9월 23일 지정 81호 오덕리사우정고택(吾德里四友亭古宅) 경북 포항시 북구 기북면 덕동문화길 48-5 이희태 1988년 9월 23일 지정 82호 예천 상금곡리 추원재 및 사당(醴泉 上金谷里 追遠齋 及 祠堂) 경북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길 131 (상금곡 342) 함양박씨문중 1988년 9월 23일 지정 83호.../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daum 2016)

 

  남악종택 소장 전적(안동 애련암 아미타삼존도 등 8건 유형문화재에) [기사] : 경상북도문화재위원회는 ‘안동 애련암 아미타삼존도’을 비롯한 8건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문경 김용사 양진암 영산회상도’ 등 2건을 문화재자료로 지정키로 결정했다고 2019년 10월 17일 밝혔다... 예천 남악종가 소장 전적은 3종 5책의 일괄 유물로, 이 가운데 ‘금곡서당 창립회문(金谷書堂 創立回文)’은 남악 김복일(南嶽 金復一·1541∼1591)의 친필 필사본으로 예천의 금곡서당 건립을 위해 1569년(선조 2년)에 작성한 회문으로, 사초(史草)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이들 작품이 도 유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로 지정되면 경북의 문화재는 총 2천139점(국가지정 741점, 도지정 1천398점)이 된다.(이창훈 기자 경북매일 2019.10.18.)

 

  남야 박손경의 삶과 학문 세계(南野 朴孫慶의 삶과 學問 世界) [論文] : 안동대 동양철학과 안병걸 교수의 논문으로, 2003년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금당ㆍ맛질의 역사적 위상> 21-32쪽(12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머리말 : ...예천에도 각 고을마다 사람파의 정신을 온전하게 지켜온 유가(儒家)들이 있었다. 지보의 동래 정씨, 용궁의 청주 정씨, 용문의 예천 권씨, 함양 박씨, 안동 권씨, 감천의 한양 조씨, 경주 이씨 등이 수 백 년에 걸쳐 문한(文翰)을 이어온 예천의 대표적인 반가(班家)들이다. 2) 박손경의 삶과 그의 학문 연원 : 박손경은 1713년 예천의 금당실에서 태어났다. 금당실의 입향조인 박종린(朴從鱗)의 ‘오린형제(五鱗兄弟)’ 중의 막내였다. 그의 학문은 천인성명지리(天人性命之理)의 탐구와 거경치지지공(居敬致知之功)의 실천이었다.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안정복(安鼎福)이 저서 <상헌수필(橡軒隨筆)>의 ‘교관 박손경(敎官 朴孫慶)’이라는 제목 아래에서 이르기를, 박손경은 예천에서 살았다. 그의 나이 70이던 임인년에 용궁에서 사는 진사 이중장(李仲章)이 그를 찾아갔는데, 그는 촌사(村舍)에서 지내고 있었다. 마침 달밤에 찾아뵈었으나 만나지 못하였으나, 수수 밑둥을 캐어 다음날 어머니 방에 불을 때려고 밭에 나갔던 것이었다. 그러나 남의 밭에는 일체 손을 데지 않았으니, 이는 과연 행실이 독실하고 효성스럽고 청렴했던 동한(東漢)의 선비라 하겠다.“ 이러한 기록의 뒤에 안정복은, ”요즈음 인륜과 풍속이 퇴패한 때에 박손경은 이처럼 효성스럽고 우애로우며 행실이 독실하였으니, 살아생전에 만나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라고 하였다. 3) 저술과 학문 세계 : <남야집> 2종이 있다. 4) ’주서강록간보차의(朱書講錄刊補箚疑)‘의 저술과 그 의미, 5) 맺음말이다.

 

  남야별묘(南野別廟) [祠堂] : 용문면 상금곡리 500번지에 함양박씨 남야종택 옆에 있는 사당으로, 함양인 남야 박손경(朴孫慶)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매년 2월 12일에 제향한다.(醴泉鄕校誌 2004)

 

  남야선생 가옥 및 사당(醴泉上金谷里 南野先生 家屋 및 祠堂 : 박노준 家屋) : *위치 :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457-4(금당실길 52-15), *연대 : 1960년, *규모 : 안채, 사랑채, 사당/ 남야선생 사당은 용문면 상금곡리 동촌에 있다. 사당은 상금곡리 입향조인 이조정랑(吏曹正郞) 박종린(朴從麟)의 9세손인 남야(南野) 박손경(朴孫慶, 1713-1782)의 종택에 있으며, 지어진지 200여년이 지났다. 박손경은 일찍 성리학에 정진하였으며, 영릉참봉(英陵參奉)과 동몽교관(童蒙敎官) 등에 제수되었으나 벼슬에는 뜻이 없어 나아가지 않았다. 남야선생은 학문에 전념하여 많은 문도(門徒)를 길렀으며,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과 더불어 ‘영남삼로(嶺南三老)’로 추앙받았다.

 

  회산서원(晦山書院)에 제향되었으나, 서원이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되자 이를 대신하여 남야선생 서당에서 매년 향사를 치루고 있다. 이 건물은 1960년 새로 지었다. 남야선생은 문중에서 정한 불천위(不遷位)이며, 기일은 음력 2월 11일이다. 남야선생 사당이 있는 상금곡리는 예천과 용문면을 연결하는 928번 지방도로 용문경천로를 따라 접근하며, 이 도로는 금곡천 북측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상금곡리는 용문경천로 동측의 완경사면에 터를 마련하였으며, 이 마을에는 용문면의 공공시실인 용문면사무소, 용문면보건지소, 금당우체국, 용문초등학교 등이 있다. 남야선생 사당이 있는 박노준 가옥은 용문경천로에서 북측으로 난 금당실길을 따라 접근하며, 이 길은 용문면사무소의 좌측 담장을 끼고 돌아서면 마을의 북측을 감싸고 지나는 선동길과 만난다. 따라서 남야선생 사당은 금당실길과 선동길이 만나는 지점에 터를 마련하고 남향을 하고 있으며, ‘-’자형 안채와 ‘-’자형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야선생 사당은 안채영역과 사랑채영역, 사당영역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이들 영역은 한식기와를 올린 토석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안채영역을 중심으로 정면에 사랑채영역이 있고, 배면 자연석 축대 위에 사당영역이 자리하고 있으며, 안채와 사당 좌측에는 텃밭이 있다. 안채와 사랑채영역은 좌측에 토석담장으로 구획하고 일각문을 달아 출입하고 있다. 사당역역은 별도로 토석담장을 사면에 두른 후 일각주문을 달아 출입하고 있으며, 안채 뒤뜰은 안채와 사당을 연결하는 토석담장을 쌓아 공간을 구획하고 있다. 가옥으로의 출입은 금당실길에 면한 철제 대문을 이용하고 있다. 사당은 가옥에서 제일 안쪽 자연석 축대 위에 터를 마련하여 서남향을 하고 있으며, 사면에 토석담장을 두르고 있고, 좌측 모서리부분에 일각문을 달아 출입하고 있다. 담장 좌측과 벽면에는 가옥의 텃밭이 있고, 그리고 담장 너머로 금당실길과 선동길이 지나고 있다. 우측에는 광서당(光瑞堂)이 있고, 정면에는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평면은 정면에 튓간이 있는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이며, 툇간과 실내의 바닥은 우물마루 구조를 하고 있으며, 실내에는 탁자와 신위 2기(顯先祖考將任郞行童蒙敎官府君神主, 顯先祖妣孺人豊山柳氏神主)가 모셔져 있다. 사당의 기단은 자연석 기단이며, 기단 바닥은 강회다짐으로 마감했다. 주초는 자연석 주초이며, 전면 튓간 열 기둥만 팔각기둥이고, 나머지 기둥은 사각기둥이다. 튓기둥 상부는 초익공방식으로 짜 맞춤을 하였고, 배면의 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으로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일고주 오량가구이며, 내부 천정은 연등천정으로 열려 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처마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했고, 박공면은 박공판을 달아 마감했다. 벽면은 튓마루 쪽에만 외여닫이의 두 짝 미닫이 띠살문을 달았으며, 이외의 벽면은 벽체를 구성하여 마감하였다. 일각문은 자연석 주초를 놓고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하중을 받도록 했으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안채영역은 안채의 좌측과 배면에는 텃밭이 있고, 우측에는 장독대와 수도, 그리고 콘크리트구조의 창고가 있다. 정면에는 시멘트로 포장해 놓은 안마당이 있다. 안채는 전퇴가 있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집구조를 하고 있다.

 

  중앙의 마루칸을 중심으로 좌측 건넌방과 마루칸이 있고, 우측에 안방과 부엌과 고방이 있다. 우측 부엌은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부엌에 딸린 고방을 입식부엌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고, 고방의 측면과 후면으로 확장하여 보일러실과 욕실로 사용하고 있다. 마루칸은 후면 쪽에 툇간을 꾸며 옷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마루 쪽에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았고, 배면에는 샤시 미닫이문을 달았고, 쪽마루를 꾸며 놓았다. 쪽마루 앞에는 안방과 건넌방의 굴뚝이 있다.

 

  건넌방의 아궁이는 정면 기단 위에 꾸며 놓았다. 안방은 튓간 쪽에 두 짝 여닫이문을, 마루칸 쪽에 외여닫이문을 달았고, 건넌방도 툇간 쪽에 외여닫이문을, 측면 마루칸에 외여닫이문과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건넌방은 후면에 벽장을 꾸며 수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의 기단과 계단, 기단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축조 마감했다. 주초는 거칠게 가공한 사각형 주초이다. 사각형의 기둥 상부는 건넌방에 딸린 마루칸만 직절익공방식으로 짜 맞춤을 했고, 나머지는 납도리방식을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2고주 오량이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처마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한 후 물받이 겸 차양을 달았다. 벽면은 회바름을 했고, 앙토는 재사벽으로 마감했다. 상량대인 종도리받침장혀 밑부분에는 ‘龜 太歲更子二月十二日辰時開基同月十四日辰時立柱三月初七日辰時上樑 癸坐丁向應天上之三光 備人閭之五福 龍’이라고 쓰여 있다. 사랑채는 정면에 넓은 마당에 텃밭을 꾸며 사용하고 있으며, 우측 정면에는 수도시설이 있다. 사랑채 정면 우측의 이웃담장 앞에는 콘크리트 구조의 화장실과 헛간이 있다. 사랑채 좌측 모서리에는 토석담장을 쌓고 일각문을 세워 놓았다. 일각문은 사당의 일각문처럼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사랑채는 5칸 측면 2칸의 ‘-’자형이다. 평면은 중앙의 대문간을 중심으로 좌측에 사랑방과 사랑마루, 지청으로 사용하던 고방이 있고, 우측에 외양간과 뒤지간, 온돌방과 곡간이 있다. 대문간은 전면 기둥에 두 짝 널판문을 달았고, 좌측에는 사랑방 출입을 위한 두 짝 여닫이 띠살문과 아궁이가 있다. 우측의 사랑방은 두 칸으로 나뉘어 있으며, 전열의 사랑방은 전면에 외여닫이 띠살창을 달았고, 마루칸 쪽에 두 짝 여닫이문과 미닫이문을 달았고, 후면 사랑방 쪽에는 네 짝 미닫이문을 달았다. 후면 사랑방동 배면에 벽장을 꾸며 수장 공간으로 사용하고 잇는데, 제사용 탁자가 있는 고방 쪽에 네 짝 미닫이문을 달았다. 고방을 마루칸 쪽에 세 짝 여닫이 들문을 달았다. 마루칸은 외부를 면한 칸에는 알미늄 샤시의 미닫이 유리창을 달아 외기를 차단하고 있다. 대문간 우측의 외양간은 대문간 쪽으로 열려 있고, 마당 쪽에는 한 짝 널판문을 달아 놓았다. 외양간 후면에는 안마당 쪽에 사용할 수 있도록 빈지널문을 달아 곡식을 저장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의 우측 끝 전면에 있는 온돌방은 전면과 측면에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으며, 후면의 곡간은 안마당 쪽에 두 짝 우리판문을 달아 곡간으로 사용했는데, 바닥에는 지하공간이 있다. 사랑채의 기단과 계단, 기단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축조 마감했다. 주초는 자연석 주초이며, 기둥은 모두 사각형이다. 기둥 상부는 납도리방식으로 짜 맞춤을 했다. 대문간 상부의 가구는 1고주 삼량이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오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처마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한 후 물받이 겸 차양을 달았다. 벽면과 앙토는 재사벽으로 마감했다. 남야선생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보존 상태가 양호한 건물이며, 인근에는 활용적 가치가 높은 전통가옥과 서원, 정자들이 많다. 따라서 남야선생 사당은 주변의 건축물과 연계한 유지관리 및 활용계획을 세워 문중과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보존 및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때, 더 나아가 금당실마을이 지닌 역사 및 인문적 가치를 발굴하여 보존활용계획을 수립하여 마을을 운영한다면 그 가치는 무궁무진해질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72-75쪽)

 

  남야선생 가옥 및 사당 : ‘영남삼로’ 남야 박손경 선생 -1713년 용문면 금당실.../ 2016.04.11./ 남야선생 가옥 및 사당. 새로운 경북의 신도청지 예천군은 2015년을 지역의 정체성 찾기 해로 정했다. 예천군의 역사 인물 발굴 작업을 비롯한 무·유형 문화재 조사와.../ cafe.daum.net/byhdg/BGNu/ 박약회 대구광역시지회(daum 2016)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參奉)의 문집으로, 10권 5책, 목활자판(木活字版), 30.2x20.8cm, 반곽(半郭)은 21.5x16.5cm, 10행(行) 20자(字), 사주쌍변(四周雙邊), 유계(有界), 주쌍행(註雙行), 판심(版心)은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서문(序文)은 1802년(순조 2) 모춘(暮春)에 정종로(鄭宗魯, 1738-1816), 지(識)는 1850년(철종 1) 8월에 박한사(朴漢師), 족현손(族玄孫) 의집(義集)이 썼다. 1850년(철종 1)에 간행되었다. 목차는, 책1에 서문, 목록, 권1, 권2이고, 책2에 권3, 권4이고, 책3에 권7, 권8이고, 책4에 권9, 권10 등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운영실에 소장되어 있고, 성균관대학교 존경각(尊經閣)에 소장(분류기호 D03B-0186)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參奉)의 문집으로, 8권 4책, 목판본(木版本), 31.3x20.2cm, 반곽(半郭)은 21.4x15.2cm, 10행(行) 20자(字), 사주쌍변(四周雙邊), 주쌍행(註雙行), 유계(有界), 백구(白口) , 판심(版心)은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서문(序文)은 1802년(순조 2) 모춘(暮春)에 정종로(鄭宗魯, 1738-1816), 발문(跋文)은 1801년(순조 1)에 종질(從姪) 한경(漢卿)이 썼다. 박한경이 편집하여 1802년(순조 2)에 간행하였다. 내용은 권1에 부(賦), 시(詩), 권2에 시, 사(辭), 권3-4에 서(書), 권5에 서(書), 잡저(雜著), 서(序), 기(記), 권6에 발(跋), 명(銘), 상량문, 제문, 권7에 묘갈(墓碣), 묘표(墓表), 행기(行記), 지(識), 권8에 부록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운영실에 소장(청구기호 古3648-25-391)되어 있고, 성균관대학교 존경각(尊經閣)에 소장(분류기호 D03B-0186a)되어 있고, 안동대학교 도서관 중앙한적실에 소장(청구기호 古810.819 박55ㄴ박)되어 있고, 영남대 도서관에 권3,4의 1책, 권7, 부록의 1책이 소장(KDC 810.819)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冊] : 용문면 출신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의 문집(KDC 古味 810.819)으로, 1책(零本, 全 5冊), 30.3x20.5cm,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1.1x17.1cm, 유계(有界), 10행(行) 20자(字), 주쌍행(註雙行), 판심(版心)은 상하 내향 사판 흑어미(上下內向四瓣黑魚尾)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영남대 본관인데, 1책(권3-4)만 소장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參奉)의 문집으로, 영본(零本) 2권 1책, 석판본(石版本), 31x20.2cm,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廓)은 20.5x16.5cm, 유계(有溪), 10행(行) 20자(字), 주소자쌍행(註小字雙行), 판심(版心)은 상하 내향 사판 화문 흑어미(上下內向四瓣花紋黑魚尾)이다. 서문은 1802년(순조 2)에 정종로(鄭宗魯)가 썼다. 경북대학교 도서관 중앙고서실에 소장(청구기호 중앙古 811.8 박55ㄴ)되어 있고, 안동대학교 도서관 중앙한적실에 소장(청구기호 古810.819 박55ㄴ박, 全 8卷 4冊 中 第1冊 卷1 卷2 以外는 缺)되어 있고, 그 외 소장 대학 도서관은 영남대이다.(keris 2003)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幷)附)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進士, 參奉, 文學家, 墓는 醴泉郡 西쪽 池內 梅峰山)의 문집으로, 영본(零本) 2책(全 8卷4冊), 31.2x20.0cm,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0.8x15.3cm, 유계(有界), 10행(行) 20자(字), 판심(版心)은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2葉花紋魚尾)이다. 1801년(季夏旣望)에 종질(從姪) 한사(漢師)가 근지(謹識)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고려대, 영남대이다.(keris 2005)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卷1-7)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進士, 參奉, 文學家, 墓는 醴泉郡 西쪽 池內 梅峰山)의 문집으로, 7권 4책, 31.0x20.2cm,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0.0x15.3cm, 유계(有界), 10행(行) 20자(字), 판심(版心)은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2葉花紋魚尾), 흑어미(黑魚尾)이다. 서문에 의하면, 1802년(純祖 2)에 간행하였다. DDC 895.7 20이고,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전남대이다.(keri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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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천읍 출신 장윤기, 31일‘문체부 누리집 시각장애인 이용편의 증진’ 제안으로 행안부장관 표창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장윤기(장윤기 씨 행안부장관 표창) [기사] : 예천읍 태생의 출향인 장윤기(58·충남 당진) 씨가 지난해 연말(1919년 12월 31일) 2019년 국민 공무원 우수제안을 가리는 중앙수제안 심사 결과 '문체부 누리집 시각장애인 이용편의 증진' 주제의 제안으로 장려상에 선정돼 행안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장씨는 이뿐만 아니라 행안부 산하 국민참여활동 단체인 '생활공감 정책 참여단'으로 활동하여 우수한 제안으로 정부정책제도 및 국민생활편익에 기여한 공로로 행안부장관 표창도 받았다. 장윤기 씨는 지난 한해 정부 중앙부처 및 지자체 등에 왕성한 제안활동으로 1백30여 건이 채택되었고, 이 가운데 상당 수는 이미 정책화·제도화되어 현장에서 국민 편익을 위해 실행되고 있다. 장씨는 예천읍 동본리 태생으로 은풍초,은풍중을 졸업했다.(예천신문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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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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