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도청신도시 예천 764 : 남야선샌문집...남야헌...
---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幷附)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參奉)의 문집으로, 영본(零本) 2책(全 8卷 4冊), 저지(楮紙), 31.2x20cm, 1802년(순조 2, 序文)에 발행되었다.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廓)은 20.8x15.3cm, 유계(有溪), 10행(行) 20자(字),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끝에 “1801년(순조 1) 종질(從姪) 한사(漢師) 근지(謹識)“가 있다. 소장 대학 도서관은 고려대, 영남대, 전남대(缺帙 1)이다.(keris 2003)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v.1, v.2, v.3, v.4, v.5)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參奉)의 문집으로, 9권 5책(幷附錄), 목활자본(木活字本), 30.5x20.9cm, 1910년에 출판되었다.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廓)은 21.1x17.1cm, 유계(有溪), 10행(行) 20자(字), 주쌍행(註雙行), 판심(版心)은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서문은 1802년(순조 2)에 정종로(鄭宗魯)가 썼다.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운영실에 소장(청구기호 古3648-25-379)되어 있고, 소장 대학 도서관은 동국대(중앙), 순천대(v.2만)이다.(keris 2003)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v.1)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進士, 參奉, 文學家, 墓는 醴泉郡 西쪽 池內 梅峰山)의 문집으로, 9卷 5冊(幷附錄), 목활자본(木活字本), 30.5x20.9cm, 1910년에 간행하였다.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1.1x17.1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0자(字)이다. DDC 810.819이고,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동국대(중앙)이다.(keris 2005)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v.2)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進士, 參奉, 文學家, 墓는 醴泉郡 西쪽 池內 梅峰山)의 문집으로, 9卷 5冊(幷附錄), 목활자본(木活字本), 30.5x20.9cm, 1910년에 간행하였다.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1.1x17.1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0자(字)이다. DDC 810.819이고,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동국대(중앙), 순천대이다.(keris 2005)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v.3)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進士, 參奉, 文學家, 墓는 醴泉郡 西쪽 池內 梅峰山)의 문집으로, 9卷 5冊(幷附錄), 목활자본(木活字本), 30.5x20.9cm, 1910년에 간행하였다.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1.1x17.1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0자(字)이다. DDC 810.819이고,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동국대(중앙)이다.(keris 2005)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v.4)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進士, 參奉, 文學家, 墓는 醴泉郡 西쪽 池內 梅峰山)의 문집으로, 9卷 5冊(幷附錄), 목활자본(木活字本), 30.5x20.9cm, 1910년에 간행하였다.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1.1x17.1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0자(字)이다. DDC 810.819이고,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동국대(중앙)이다.(keris 2005)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v.5)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進士, 參奉, 文學家, 墓는 醴泉郡 西쪽 池內 梅峰山)의 문집으로, 9卷 5冊(幷附錄), 목활자본(木活字本), 30.5x20.9cm, 1910년에 간행하였다.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1.1x17.1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0자(字)이다. DDC 810.819이고,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동국대(중앙)이다.(keris 2005)
남야선생문집(南野先生文集, 南野集)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의 문집으로, (8) 198쪽, 사진, 27cm, 박정로가 편집하여 서울 여강출판사(驪江出版社)에서 1986년에 출판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 고려대, 단국대(중앙), 동국대(경주), 동아대, 부산대, 서강대, 서울대(중앙), 서원대, 수원가톨릭대, 숙명여대, 아주대, 연세대, 영남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하대, 전북대, 전주대, 청주교대, 충남대, 포항공대. 한국교원대, 한림대, 홍익대이다.(keris 2003)
남야정(楠野亭), 남야헌(南野軒) [亭子] : 호명면 본리(本里)에 있는 정자로, 예천인 남야 임서양(楠野林瑞陽, 1698-1760)이 녹나무(楠本) 여러 그루를 심고 스스로 호를 남야(楠野)라고 하여 즐기던 곳에 5세손 임노수(林魯洙)가 여러 후손과 합의하여 1939년 3월에 세웠다.
남야정(楠野亭) [亭子] : 호명면 본리 334-1번지(垈)에 있는 정자로, 예천인임서양(林瑞陽)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퇴칸의 주위에는 헌함(軒檻)을 설치하였다. 기둥은 전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는데, 기둥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남야정(楠野亭) [亭子] : 호명면 본리에 있는 정자로, 예천인 임서양(林瑞陽)이 소요하던 곳에 후손들이 1939년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1.5칸,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醴泉鄕校誌 2004)
남야 종택(南野 宗宅) [古家屋] : 용문면 상금곡리 457-1번지 석원장(758평) 내에 있는 고가옥으로, 함양인 남야 박손경(朴孫慶)의 불천위 사당(不遷位祠堂)이다. 사당 3칸, 정침(正寢) 4칸, 외동(外棟) 3칸겹으로 종손(宗孫) 박노준(朴魯俊)이 관리하고 있다.(醴泉鄕校誌 2004)
남야 종택 : 자명금/ 2009.03.27./ 자명금(自鳴琴) ㅇ 소재 : 용문면 상금1리 남야종택, ㅇ 내용 용문면 금당실(金塘室 : 상금곡리) 함양 박씨(박노준) 집에는 길흉(吉凶)을 알려주는 기이한 거문고가.../ cafe.daum.net/baklim/Mm7C/ 함양박림(daum 2016)
남야집(退溪學 資料叢書 解題 (第5次分) : 朴孫慶 著, 『南野集』) [論文] : 브랜드 KSI논문으로, 파일명은 58400191.pdf(1.39 MB)이다. 임로직의 2004년 1월 논문으로,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에서 발행한 <퇴계학> 14권 204-209쪽(6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대를 이어왔다. 그의 증손인 참판 박눌(朴訥)은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이 아들 5형제가 모두 생원과 문과에 급제한 후 현달하게 되니 세칭 ‘오린(五麟)집안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 오린 집안의 막내인 이조정랑 박종린(朴從麟)이 김안로(金安老)의 횡포를 피해 상주의 함창에서 예천 금당곡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후손에 저명한 학자가 대를 이어 나오고 청화한 관직이 끊이지 않았다. 남야의 고조는 박정시(朴廷蓍)인데, 문과를 거쳐 형조 정랑을 지냈다. 후에 결성, 영암, 태안 세 고을을 다스렸는데 청백리란 칭송을 받았다. 아버지 박성옥은 사헌부 지평을...” “...인품을 말한搔 首問天 太白無雲이란 구절은 특히 높이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권5에 수록된 代道儒呈巡相文은 1756년 병자에 도내 유림을 대표해서 경상 감사에게 올린 글이다. 1636년 경 순홍 출신의 金(- 207 - 208 退溪學 第14輯) 鋼, 영주 출신의 金, 예천 출신의 나이준(羅以俊)은 함께 태학에서 공부를 했는데, 마침 청인이 쳐들어 왔다. 그 때 성균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다른 유생들은 난리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뿔뿔이 흩어졌으나 위의 세 사람은, 난을 당했지만 남들처럼 성묘(聖廟)를 돌보지 않는다면 조정에서...”
남야집(南野集)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의 문집으로, 7권 4책, 30.5x20.1cm이다. 서울에서 간행되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대구가톨릭대 본관인데, 권4만이 소장되어 있다.(Keris 2001 2003)
남야집(南野集)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參奉)의 문집으로, (7) (8) 198쪽, 영인본(影印本), 28cm, 박정로(朴庭魯)가 편집하여 서울 여강출판사(驪江出版社)에서 1986년에 간행하였다. 목차는, 서문, 권1(賦, 詩), 권2(詩, 辭), 권3(書), 권4(書), 권5(書, 雜著, 序, 記), 권6(跋, 銘, 祭文), 권7(朱書講錄刊補箚疑 上), 권8(朱書講錄刊補箚疑 下), 권9(墓碣, 陰記, 行記, 君行記, 識), 권10(附錄, 金谷書堂修계)이다.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실에 소장(청구기호 용전 810.819 박55ᄂ, 등록번호 78909)되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 서고자료신청대에 소장(청구기호 810.819-박435ㄴ=2)되어 있고,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 동국대(경주), 동아대, 부산대(중앙), 서강대, 서울대(중앙), 서원대, 수원가톨릭대, 숙명여대, 아주대, 연세대(서울), 영남대, 울산대(중앙), 원광대, 이화여대, 인하대, 전북대(중앙), 전주대, 청주교대, 충남대, 포항공대, 한국교원대, 한림대, 홍익대(서울)이다.(Keris 2001, 인터넷 야후 2001)
남야집(南野集)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進士, 參奉, 文學家, 墓는 醴泉郡 西쪽 池內 梅峰山)의 문집으로, 198쪽, 28cm, 서울 여강출판사(驪江出版社)에서 1986년에 출판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 단국대(중앙), 동국대(경주), 동아대, 부산대, 서강대, 서울대(중앙), 서원대, 수원가톨릭대, 숙명여대, 아주대, 연세대, 영남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하대, 전북대, 전주대, 청주교대, 충남대, 포항공대, 한국교원대, 한림대, 홍익대이다.(keris 2005)
남야집(南野集) [冊] :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의 저작을 모은 책으로, 두 종이 있다. 하나는 박한동이 시문(詩文)과 함께 행장(行狀) 등을 편찬하여, 1802년(순조 2)에 펴낸 것인데, 모두 8권 4책이다. 다른 하나는 1910년, 그의 대표 저작이라고 할 <주서강록간보차의(朱書講錄刊補箚疑)>를 추가하여 엮은 10권 5책의 중간본이다. 1986년 족후손 박정로가 주선하여 여강출판사에서 영인 간행한 것은 중간본이고, 2002년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에서 표점 간행한 저본은 초간본이다. 중간본 권1-2에 시(詩), 부(賦) 170여 수가 수록되어 있다. 지구(知舊) 간에 창수(唱酬)한 경물시가 많고, 교유했던 유림들을 애도한 만사(輓詞)도 적지않아 그의 교유 범위를 알려준다. 권3-4에 서간(書簡) 76편이 있다. 정옥(鄭玉), 이상정(李象靖), 김낙행(金樂行), 김행원(金行源), 김광현(金光鉉), 권정택(權正宅), 김위, 이유원(李猷遠) 등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선배 학자와 주고받은 편지가 있고, 유풍(柳灃), 이수정(李守貞), 이진동(李鎭東), 정의모(鄭義謨), 정중섭(鄭重燮), 김도행(金道行) 등 지구 문인, 또 박중경(朴重慶), 박신경(朴申慶), 박지경(朴趾慶) 등 문내 후배들에게 보낸 글도 적지 않다. 홍치룡, 박희천, 이진동, 이진구, 유성춘 등과 주고받은 편지에는 별지를 붙여, 경의(經義)와 주자서(朱子書), 예설(禮說)과 시문(詩文) 등 학술적인 토론을 담고 있다. 권5는 서간과 잡저(雜著), 서(序), 기(記)로 구성되었다. 잡저는 두 편인데, 도내 유림을 대표하여 관찰사에게 올린 정문(呈文)과 ‘임열부전후(林烈婦傳後)’가 있다. 1756년의 글인 ‘대도유정순상문(代道柳呈巡相文)’은 1636년 병자호란의 와중에, 성균관 유생으로서 전란을 뚫고서 남한산성의 행궁으로 공자의 위패를 모셔갔던 세 선비의 공적을 드러내어, 국가에 그 포상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글이다. 서문은 ‘유엽배서(柳葉盃序)’ 등 세 편이 있고, 기문(記文)은 ‘금선각기(錦仙閣記)’ 등 8편이 있는데, 금선각은 풍기에 살았던 계문 제자 황준량(黃俊良)의 유적이고, 동강서원(東江書院)은 경주의 학자 손중돈(孫仲暾)을 기념하는 서원이다. 또 금당실 인근의 권문해(權文海)의 정자에 대한 ‘초간정사중수기’가 있다. 권6은 발(跋), 명(銘), 상량문, 제문이다. 6편의 발문 중에는 ‘인각사비본발문(麟角寺碑本跋文)’과 ‘서황석공소서후(書黃石公疏書後)’가 이채롭다. 명문은 그의 고조 박정시의 유물 태량금의 내력을 새긴 ‘태랑금명(泰娘琴銘)이다. 제문은 모두 23편이다. 이 중에는 고향 선배들을 모신 ’옥천서원추향봉안문(玉川書院追享奉安文)‘으로부터 권만(權萬), 권상일(權相一) 등 유림 선배, 또 문중의 친지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다. 권7-8은 ’주서강록간보차의‘이다. 권9-10은 묘갈(墓碣)과 묘표(墓表), 행기(行記), 지(識)인데, 거의 대부분이 그의 조상들의 일생을 기록한 것이다. 이 중에 권10은 부록으로서 박손경의 일생을 적은 행장(박한동), 묘갈명(정범조), 제문 6편(李光靖 등), 만사 10편(李守貞 등)과 중간본의 후지(박의집)가 실려 있다.(金塘ㆍ맛질의 歷史的 位相 2003)
남야집(南野集) [冊] :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 1713-1782)의 저서로, 320쪽, 목판본, 제9권까지가 원질이고, 제10권은 부록이다. 용문면 상금곡리의 주손 박노준이 소유하고 있다. 박손경의 학문적 깊이를 드러내는 권지칠(卷之七)과 권지팔(卷之八)인 ‘주서강록간보차의(朱書講錄刊補箚疑)’이다. 이 것은 남야 박손경의 성리학에 대한 학문적 체계를 알게 하는 철학적 저술이다. 이 것은 밀암 이재의 저술을 그 외손인 대산 이상정이 보완하여 완벽하다고 자부하면서 발간한 ‘주자서절요강록’을 평정한 남야 박손경의 저술이고 중심 사상이다.(金塘ㆍ맛질의 歷史的 位相 2003)
남야집(南野集)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의 문집을 임로직이 해제한 책으로,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에서 2004년에 발행한 <퇴계학 자료총서 해제(제5차분)>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낸 선(善)을 시조로 하여 이제현과 더불어 유학을 주창한 박충좌의 후예로서 선초 공조판서 박규(朴規)가 대를 이어왔다. 그의 증손인 참판 박눌(朴訥)은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이 아들 5형제가 모두 생원과 문과에 급제한 후 현달하게 되니 세칭오린(五麟)집안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 오린 집안의 막내인 이조정랑 박종린(朴從麟)이 김안로(金安老)의 횡포를 피해 상주의 함창에서 예천 금당곡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후손에 저명한 학자가 대를 이어 나오고 청화한 관직이 끊이지 않았다. 남야의 고조는 박정시(朴廷蓍)인데 문과를 거쳐 형조 정랑을 지냈다. 후에 결성, 영암, 태안 세 고을을 다스렸는데 청백리란 칭송을 받았다. 아버지 박성옥은 사헌부 지평을 지낸 분으로 호가 만헌(晩軒)이며 무신년 이인좌의 난이 있자 예천의병을 일으켜 의병대장으로...”
남야집(南野集) [學術저널]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남야 박손경(朴孫慶, 1713-1782, 進士, 參奉, 文學家, 墓는 醴泉郡 西쪽 池內 梅峰山)의 저서에 대한 논문으로,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에서 2004년에 발행한 <퇴계학(退溪學)> Vol.14 204-209쪽(6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제어번호 40106264, KDC 800이다.(keris 2005)
남야헌(楠野軒) [亭子] : 호명면 본리 소재, 예천인 임서양(林瑞陽)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9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주위에는 기와를 얹은 토담을 둘렀으며, 담장의 좌측면에 는 대문을 세워 출입케 하였다. 평면은 어칸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고 툇간의 주위에는 헌함을 설치하였다. 기둥은 전면에만 원주를 사욯하였는데, 기둥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 가구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醴泉郡誌 2005)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