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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765:남야헌...남예천농업협동조합...
작성자장병창 @ 2020.01.15 20:30:20

  도청신도시 예천 765 : 남야헌...남예천농업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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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야헌(醴泉本里 楠野軒) : *위치 : 예천군 호명면 본리 334-1(밭마길 52-15), *연대 : 1939년, *규모 : ‘-’자형 정자 1채, ‘-’자형 대문채 1채/ 남야헌은 호명면 본리 밭마을에 있으며, 남야 임서양(林瑞陽, 1698-1760)이 날마다 소요하고 서창(舒暢)하여 즐겁게 지내던 곳에 5세손 임노수(林魯洙)를 비롯한 후손들이 1939년 에 정자를 건립하였다. 임노수는 특히 녹나무에 정성을 쏟았는데, 후손들이 그 마음을 헤아려 ‘楠野’라고 편액하였다.

 

  건물이 허물어지자 1949년 중건하였다. 남야헌기(楠野軒記)에 의하면, 마을에는 아름드리 청남(靑楠, 녹나무)이 있어 줄기가 성기고 빽빽한 잎이 푸른 일산(日傘)과 같다고 하였다. 밭마을의 가구 수는 현재 전체 14호인데, 그 중 8호가 예천임씨이다. 특히 남야헌 건립에 큰 힘을 쓴 임노수는 안동 풍산 서쪽에서는 가장 부자였다고 한다. 본리 남야헌은 호명면을 동서로 지나는 924번 지방도로 풍산태사로에서 북측 본리를 향해 난 밭마길과 새랄길 중 밭마갈을 따라 접근한다. 본리는 북측에서 내려온 능선에 의해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이 능선 끝자락에 남야헌이 터를 마련하고 서남향을 하고 있다. 남야헌은 ‘-’자형 누정과 ‘-’자형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남야헌의 출입은 대문채 앞에 있는 농로를 이용한다. 남야헌은 한식기와를 올린 판축담장을 사면에 두르고 있다. 출입문인 대문채는 우측 담장에 있다. 남야헌 정면과 좌우측 담장 너머에는 넓은 밭이 펼쳐져 있고, 배면은 경사진 언덕으로 잡목들이 자라고 있다. 대문채는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한 칸 대문간과 한 칸 헛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는 자연석 주초 위에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의 삼량가구를 받도록 했으며, 처마는 홑처마이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이다. 남야헌은 전퇴가 있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자형이다. 평면은 전면에 툇마루를 꾸미고, 중앙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배열했다. 정면의 툇마루는 정면 기둥 밖으로 마루 끝을 확장한 후 마루 끝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중앙의 마루간은 툇마루처럼 우물마루 구조이며, 정면에는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은 후 상부에 교창을 꾸며 놓았으며, 배면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아 놓았다. 좌우 온돌방은 마루간 쪽에도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았으며, 툇마루 쪽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았으며, 좌우측 벽면에도 외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았다. 남야헌의 기단은 흙과 돌, 와편으로 축조했는데, 툇마루 밑 기단은 두 단으로 되어 있다. 좌우측과 배면 기단과 기단 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전면 열의 주초는 화강석을 다듬은 원형 주초이며, 나머지 상단의 주초는 자연석이다. 그리고 정면 열 기둥은 원기둥이며, 나머지 자연석주초 위의 기둥은 사각기둥이다. 정면 열의 원기둥 상부는 직절익공방식으로 짜 맞춤을 하였으며, 나머지 좌우측면과 배면 사각기둥 상부는 납도리 형식으로 보아지와 창방, 납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남야헌 가구는 일고주 오량이며, 마루간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열려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처마 끝은 와구토로 마감한 후 철재 차양과 물받이 홈통을 달아 놓았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남야헌의 목재는 단청을 하지 않았으며, 벽면과 서까래 사이는 회바름으로 마감했다. 처마도리에는 ‘楠野軒記; 편액이, 중도리 밑에는 ’楠野軒記‘ 편액이 걸려 있으며, 마루간에는 ‘楠野軒小記’ 편액이 걸려있다. 남야헌은 1939년 건립 이후, 훼손되거나 변경된 부분은 거의 없지만, 유지관리를 하지 않고 방치해서 점진적으로 자체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남야헌은 그에 적합한 보존 및 활용, 유지관리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정비 및 활용을 한다면 문화유산으로서 건축적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313-314쪽)

 

  남야헌 : 예천/ 2010.04.01./ (藤菴) 요산정(樂山) 학산정(鶴山) 호명면 선몽대(仙夢臺) 봉황대(鳳凰) 무릉정(武陵) 일소헌(一笑軒) 학호정(鶴湖) 계림정(鷄林) 남야헌(楠野軒) 간호정(艮湖) 잠실헌.../ blog.daum.net/dd-tksdnffla/ 산울림블로그임다(daum 2016)

 

  남야헌 : 예천의 자랑 2204 : 권이강 參判 2(祝 공군/독립운동사와 누정록)/ 작성 장병창/ 두은정 =178/ 등암정 =181/ 요산정 =184/ 학산정 =187/ [호명면] : 선몽대 =193/ 봉황대 =197/ 무릉정 =200/ 일소헌 =203/ 학호정 =206/ 계림정 =209/ 남야헌 =212/ 학은정 =215/ 간호정 =218/ 귀계정 =221/ 인포정 =224/ 읍.../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남야헌 : →남야정

 

  남양수산 예천지점(韓國近現代 會社組合資料 : 近現代) [事業體] : 예천읍 남본리에 있던 주식회사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회사조합명 南洋水産(株)/ 목적 어망, 이불솜/ 사장/대표 辛石柱, 李圭德/ 업종 섬유공업/ 본점주소 경상북도 영일군 구룡포읍 구룡포리 949-3/ 지점주소 경북 예천군 예천읍 남본동 238/ 출전 광업및제조업사업체명부”(history.go.kr 2005)

 

  남양전씨 용궁현감공파보(南陽田氏 龍宮縣監公派譜 全) [冊] : 대전 파보편찬위원회에서 1998년에 발간한 족보로, (191) 232 (30)쪽, 삽도, 도판, 27cm이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중앙단행본실에 소장(청구기호 929.1 J46ny)되어 있고, 부산대도서관에 소장(청구기호 929.2 남62ᄂ)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남양전씨 용궁현감공파보(南陽田氏 龍宮縣監公派譜 全) [冊] : 편찬위원회의 저서로, (191) 232 (30)쪽, 도(圖), 표(表), 사진, 27cm, 논산 편찬위원회에서 1999년에 출판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 고려대, 서울대(중앙), 성균관대(중앙), 연세대, 이화여대, 충남대이다.(keris 2003)

 

  남양 홍 [記事] : 한국문집총간(091_172a) 학사집(鶴沙集, 1776)에 실린 학사 김응조(金應祖)의 기사로, 그 내용은, “鶴沙先生文集卷之八/ 墓誌/ 令人南陽洪氏墓誌銘 幷序/ 令人姓洪氏。系出南陽。世傳唐太宗遣八學士于新羅。?闡文敎。其一居南陽爲土姓。卽洪氏云。高麗時。有諱厚。官至都令中郞將。曾祖諱碩卿。龍?衛副司果。祖諱儼。忠佐衛副司果。考諱世贊。軍資監正。?昌寧成氏。禮曹參判昌山君贈左贊成諱壽益之女。以萬曆丁丑生令人。癸巳。歸于?山柳公諱?。乙巳。公除長水道察訪。詣闕謝。途中觸冒。還家感疾卒。令人哀?踰制。猶自力於祭奠。哭泣之哀。聞者隕淚。丁酉。從往其胤鎭安公任所。己亥七月。終于鎭安。同年十一月。葬于龍宮九台山卯向原。嗚呼。令人幼有淑質。稍長。已心解女範。先世行蹟及小學內訓要語。以至前賢嘉言善行。竝諺?以備觀省。察訪公。卽西厓先生之胤。承庭訓。力學勵行。不留意家業。令人克體其志。菽水不繼。不介意。事親孝。奉君子敬。收聚其片言隻字。匣而藏之唯謹。至於斂其遺衣服巾襪之屬于?。每出而陳之以泣。傍人莫不酸鼻。愛子而能敎。方持察訪公喪。哀?奄奄。猶手抄千字文以敎之。先生對人?稱焉。嘗誡鎭安公曰。奴婢實一家監察。其主有過。雖口不敢言。必心非之。可畏也。鎭安公歷典數邑。氷蘖藉藉。家法有自來。而亦有賴於慈敎爲多云。當其末疾沈?。國恤報至。每食却肉曰。國有大?。豈忍啖肉。其淑行達識。類士君子如此。一男曰元之。卽鎭安公。操履端雅。見重於士友間。聘經歷金是樞女。生三男。宜河,重河,萬河。皆有儒行。二女。適權?,李在建。萬河生三男二女。權?生一女。皆幼。銘曰。/ 於惟令人。能子於親。能婦於夫。能母於子。又能士君子之行於女中。宜其有賢子令孫。以無墜先生之遺韻於無窮。/ 鶴沙先生文集卷之八”이다.(www.minchu.or.kr 2006)

 

  남양 홍 [記事] : 봉화군사/ 간행년 : 2002/ 저자 : 봉화군/ 발행처 : 봉화군/ 第2章 門中小史/ 남양홍씨(南陽洪氏) : 본 성씨는 세칭 唐洪, 土洪으로 계통을 달리 하고 있다. 당홍은 先始祀 洪天河는 당나라 학자로서 삼국시대에 고구려 땅 남양에 8학사의 영수로 들어왔는데 예문과 학술이 정통하여 교화에 기여한 공이 컸으며 삼국통일 후 선덕여왕은 8학사가 들어온 남양 땅을 唐城이라 개칭하고 홍천하를 唐城伯으로 봉했으며 홍학사를 존대하여 唐臣이라 불렀다.

 

  남양홍씨의 시조는 洪殷悅(고려 개국중신)이고 봉화에 살고 있는 남양홍씨는 남앙공파와 중랑장파 등 수파가 있다. 中郎將派(洪門집)는 경기도 파주에 살다가 조선 숙종 때 홍은(洪?)이 봉화현감으로 낙향하여 지금의 명호면 양곡리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남양파 남양공(南陽公)은 당성부원군 홍세공으로서 후손들이 강원도 삼척에서 이사와 춘양, 소천 분천 등지에 살고 있으며 土洪은 고려 때 金吾衙尉利將을 지낸 先幸을 시조로 한다. 杜谷 宇定은 丙子호란 때 太白山嶺에 은거하여 세칭 太白五賢이라 한다. 지금 杜洞은 350여 년간 많은 과한 문한이 났고 둘째아들 允은 영주시 단산면 구구로 이사해 갔다. 10세 대호군 貴演의 셋째 淑은 중종 반정공신으로 唐原君에 봉해졌으며 院邱派 중시조이다. 以成은 생원으로 金安老 관계로 官路를 避하여 봉화군 봉화읍 문단 2리 원구로 낙남 은거하였다. 그의 둘째아들 忠正公 花浦는 丙子胡亂의 忠臣이고 三子인 花隱. 溟은 醴泉으로 移居하였고 본원구파는 400여 년간 300여 세대이나 각처로 옮겨가고 현재는 15호가 살고 있다. 예천군내에는 유천면 광전리 등지에 살고 있다.(www.koreastudy.or.kr 2007)

 

  남영필 효자비(南永弼 孝子碑) [碑] : 보문면 작곡리 산75번지(林)에 있는 비로, 단각 건물의 정여각 안에 있다. 비는 비신(碑身)과 장방형의 비좌(碑座)가 있는 형태로, 비신은 월두형(月頭形)이다. 비신의 전면에는 ‘孝子南永弼之碑’가 각자(刻字)되어 있다. 비좌의 높이는 15cm, 너비는 79cm이고, 비신 높이는 116cm, 너비 37cm, 두께 16cm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남영필 효자비 : PDF rr_2011-40.pdf/ 향석`대은리 석전놀이, 선몽대(仙夢臺)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우암산, 선몽대 신선이 준 환약 예천군 보문면 작곡리 남영필 효자비 안찔장대감 장화식 예천군 호명면 원곡리 장화식 오백이재 의구총 예천군 호명면 월포리 오백이재.../ dgi.re.kr/Content (daum 2016)

 

  남영필 효자비 : 예천의 자랑 1833 : 예천 충효 32(附 예천방문 359)/ 작성 장병창/ 남영필 효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19년에 그의 아들 재학(在鶴)이 세웠다. 예천 작곡리 남영필 효자비(醴泉鵲谷里 南永弼 孝子碑) [碑] : 보문면 작곡리 산75번지(林)에 있는 비로, 단각 건물의 정여각 안에 있다. 비는 비신(碑.../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남영필 정효각(南永弼旌孝閣), 예천작곡리 정효각(醴泉鵲谷里旌孝閣), 정효각(旌孝閣), 비(碑) [碑閣] : 보문면 작곡2리 536번지 하읍실(下邑室) 솔티마을 앞 동구(洞口) 오래 묵은 느티나무 아래에 있는 목조와가 비각(木造瓦家碑閣)으로, 가로 2m, 세로 2m, 건평 4평이다. 철종 때의 영양인 남형필 효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19년에 그의 아들 재학(在鶴)이 세웠다.

 

  남예천농업협동조합(知保農協과 豊壤農協 事實上 合倂키로 結論, 오는 20日 組合員 全體投票 實施) [記事] : 2006년 6월 예천농협(조합장 박시옥), 유천농협(조합장 홍응선), 용문농협(조합장 최종민)이 합병한데 이어 지보농협과 풍양농협이 사실상 합병 수순을 밟고 있어 합병이 곧 이루어질 전망이다. 지보농협(조합장 김종덕)과 풍양농협(조합장 유영대)은 2006년 6월 5일 합병에 관한 가계약을 체결하여 동년 7월 20일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합병에 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하여 합병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이번 합병은 2005년 농협중앙회로부터 경영 개선을 위한 합병 권고를 받은 풍양농협과 합병하는 것으로 현재의 지보농협에 주사무소를 두면서 합병 후 조합의 명칭은 가칭 "남예천농협"으로 정했으며 12명의 이사 가운데 각 조합 동수로 배분하고 69명의 대의원은 지보농협 34명, 풍양농협 35명을 각각 두는 것으로 되어있다. 특히 양 조합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합병을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합병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합병이 확정되면 조합원수 3,144명, 총자산 800억 원 규모의 탄탄한 농협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농협 예천군지부 관계자는, "최근 농촌사회의 고령화. 부녀화로 점점 황폐화하여 가고 있는 시점에서 조합원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고 지역 농협의 대외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합병이 불가피하다"며, "양 조합의 합병이 성사되면 중앙회 무이자 지원자금 30억 원 등 각종 지원이 늘어나 안정된 경영 기반을 바탕으로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6-07-05)

 

  남예천농업협동조합(豊壤農協과 龍宮農協 合倂! 南醴泉農協 새로운 廣域農協으로 誕生) [記事] : 풍양·용궁농협의 합병을 위한 조합원 찬·반 투표가 오후 6시 최종 마감된 가운데 개표 결과 2개 농협 조합원들의 높은 찬성 속에 합병이 최종 확정됐다. 합병 찬반투표를 벌인 결과 양측 모두 찬성 의견이 과반수로 나타나 합병안이 통과됐다고 2010년 7월 19일 밝혔다. 풍양농협은 조합원 1천5백9십5명 가운데 1천3백3십8명이 투표에 참여해 83.9%인 1천2백2십3명이 찬성했고, 용궁농협은 조합원 1천4백5십3명 가운데 1천2백 명이 투표에 참여해 76%인 91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써 풍양농협과 용궁농협은 합병 공고와 채권자 보호절차, 정관변경을 위한 대의원 총회를 거처 농림수산식품부 합병인가를 받아 내년 2월쯤 통합, 운영된다. 합병안이 통과됨에 따라 풍양농협과 용궁농협은 양측의 자산을 합친 약 9백억 원 규모의 가칭 '남예천농협'으로 이름을 정하고 본점이 풍양이고 분소가 용궁농협이다. 한편 조합장 선거는 양 농협에서 각 10명씩 추천한 설립위원회에서 조합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2개 농협의 통합 농협의 총 조합원수는 3천48명, 총 자산 약 9백여억 원의 거대 농협으로 조합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소득증대와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재기 조합장과 윤동희 조합장은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조합원들의 높은 뜻을 깊이 받들어 앞으로 조합원의 실익증진과 신뢰받고 사랑받는 남예천농협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고 말했다.(醴泉인터넷放送 2010-07-19)

 

  남예천농업협동조합(南醴泉農協 新設 合倂農協長에 김재기 氏 當選 : 20名 中 過半數인 11票 得票하여 當選) [記事] : 용궁, 풍양농협의 합병으로 새롭게 출발할 남예천농협 농협장 선출을 위한 설립위원회가 2010년 10월 26일 풍양농협 회의실에서 개최되어 풍양농협 전 농협장인 김재기 씨가 신설농협인 남예천농협 초대 조합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날 투표에 앞서서 농협장 후보에 김재기(전 풍양농협장) 씨와 최대한(전 용궁농협전무) 씨를 조합장 후보로 각각 추대하여 투표를 실시, 김재기 씨가 설립위원 20명 중 과반수인 11표를 득표하여 농협장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인 김재기 씨는 당선소감에서 “풍양과 용궁의 지역색을 없애고 남예천농협의 조합원으로 하나가 되어 줄 것을 당부드리며, 남예천농협은 유통·복지시설을 확충하여 조합원의 실익증진사업과 복지향상을 위하여 힘써 일할 것”임을 밝혔다. 신설될 남예천농협은 중앙회부터 50억원과 정부로 20억원의 합병 지원자금을 무이자로 지원받아 농업인 실익사업에 지원된다. 남예천농협 농협장으로 당선된 김재기(55) 씨는 풍양농협 이사 3선, 풍양면 새마을지도자, 풍양면자치위원, 풍양농협장으로 활동하였다.(醴泉뉴스 2010년 10월 26일)

 

  남예천농업협동조합(김재기 初代 南醴泉農協 組合長으로 就任) [記事] : 용궁·풍양 농협이 합병한 남예천농협의 김재기 초대 조합장이 새롭게 취임했다. 남예천농협 김재기 초대 조합장 취임식이 2011년 3월 31일 오전 10시 30분 풍양초등학교 강당에서 이현준 군수, 정상진 도의원, 안희영 부의장, 안홍기 농협 군지부장 및 농협 관계자, 기관단체장, 가족, 조합원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는 감사패와 공로패 재임패 유공직원 시상, 김재기 초대 조합장 취임사, 축하 꽃다발 증정, 치사, 내외빈 축사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새롭게 취임한 김재기 조합장은 “처음 출발의 마음을 잊지 않고 농업의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농업인, 조합원의 성원에 발로 뛰는 조합장으로서 행동으로 보답하겠다.”며 “농산물 판매와 유통구조 개선, 효율적인 신용사업 등 크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룰 것이며 훌륭한 경영방침과 조합원들의 높은 참여의식, 그리고 임직원들이 꾸준히 노력한 결과 보다 성장된 남예천농협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예천농협을 첫째, 농협의 건전경영을 하겠다. 둘째, 화합을 통한 농협발전. 셋째 투명경영과 합리적인 경영, 넷째 농협 본연의 사업 경제사업 기반을 튼튼히 확충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어 안홍기 농협중앙회 예천군지부장은 “합병농협 초대 조합장이라는 힘든 여건에서도 꿋꿋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고 예천의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농협을 만들어 갈 것을 주문하고 김재기 조합장의 탁월한 지도력과 남다른 노력, 그리고 농협사랑을 당부했다. 한편 이날 취임식에 이현준 군수와 정상진 도의원이 참석해 농협을 사랑하여 열정적으로 농협 발전을 위해 탁월한 경영노하우로 남예천농협을 최고의 농협으로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며 김재기 조합장의 취임을 축하했다. 2개 농협의 통합 농협의 총 조합원수는 3천48명, 총 자산 약 9백여억원의 거대 농협으로 조합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소득증대와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醴泉인터넷放送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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