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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771 : 내고장 예천...내고향 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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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 예천(내故庄醴泉, 내故庄뿌리찾기) [冊] : 예천군(郡守 趙鏞洙)에서 1984년 9월 20일에 <내고장전통가꾸기(1981)>를 수정 보완하여 펴낸 책으로, 장왕인쇄소에서 인쇄하였다. 427쪽, 삽도, 도판, 사진, 26cm이다. 정양수(鄭亮秀)가 인물편, 장병창(張炳昌)이 유적과 유물편, 이재녕(李載寧)이 전설편, 강원희(姜元熙)가 풍습과 특산 명물편, 김상문(金相文)이 현장의 발자취와 명승 경관편, 김세중(金世中)이 휘귀목(稀貴木)과 노거수편(老巨樹篇)을 집필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고, 경북대 도서관 중앙참고자료실에 소장되어 있다. 1984년 9월 20일에 <내고장 전통가꾸기>(1981年 發刊)를 예천군청에서 책 이름을 개정하여 재발행한 책으로, 당시 예천군수 조용수(趙鏞洙)는 중간사(重刊辭)에서 이르기를, "우리 예천은 예로부터 인물의 고장으로서 충효의 얼이 깊게 깔려있는 문화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왔습니다. 한 민족의 문화를 가늠하는 척도는 그 민족의 전통에 있다고 말하듯이 우리 군은 1천여 년의 역사를 통하여 많은 문화유산과 걸출한 인재를 배출한 자랑스런 고장입니다. 깊은 강물은 찾아가 보면 근원이 있고, 무성한 나무도 뿌리가 있다고 흔히들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첨단 문화를 만끽하고 있는 우리는 조상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지 저으기 의심스럽고, 그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가꾸는데 소홀한 점이 없지 않았나를 다시 한 번 반성해 보게 됩니다. 이 고장은 우리들의 뿌리가 깊게 뻗어 있고, 가꾸어야 할 낙토(樂土)가 분명하기에 흩어져 있던 유물ㆍ사적(事蹟), 상징들을 한데 모아 1981년도에 <내고장 전통가꾸기>란 제호(題號)로 발간 배포하여 상상 외의 좋은 반응를 얻었습니다. 이런 좋은 반응은 고향을 찾고자 하는 뜻있는 분들의 관심도를 입증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저으기 마음 든든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반 여건상 뜻있는 분들의 여망에 부응치 못해 아쉬운 마음 간절하던 차에 다시 <내고장 예천>으로 개제(改題)하여 중간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책자가 내고장의 얼과 상징으로 삼아 지난 날을 재조명하여 전통을 알고 가꾸는 애향의 정신적 좌표로 승화시키는 귀중한 자료가 되길 바랍니다. 1984년 9월 예천군수 조용수"(인터넷 야후 2001)
내고장 예천(내故庄醴泉 : 내故庄 뿌리찾기) [冊] : 집필위원들의 저서로, 427쪽, 삽도, 도판, 사진, 26cm, 예천에서 예천공보실이 1984년에 발행하였다. 1981년에 출판된 <내고장전통가꾸기>를 약간 수정되어 재판한 것이다. 목차는(( ) 內는 執筆者), 1) 역사와 문화의 향기/ (1) 고장을 빛낸 사람들(鄭亮秀), (2) 현장의 발자취(金相文), (3) 유적 유물의 모습(張炳昌), 2) 조상이 얼과 슬기/ (1) 내려오는 전설(李載寧), (2) 옛생활과 풍습(姜元熙), (3) 특산, 명물(姜元熙), 3) 전혜의 자원과 보배/ (1) 명승과 경관(金相文), (2) 유서깊은 나무(金世中), 총람/ (1) 인물편(鄭亮秀), (2) 유물편(張炳昌), (3) 유적편(張炳昌)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고,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곤 인문과학실에 소장되어 있다. 그 외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경북대, 계명대(동산), 고려대, 공주대, 명지대(용인), 목포해양대, 부산교대, 전북대, 중앙대(제1캠퍼스), 진주산업대이다.(keris 2003)
내 고장 예천군의 개관(내 故庄 醴泉郡의 槪觀) [記事] : 예천촌락사 편집위원(金明會, 金相文, 李聖洛, 李形雨, 張炳昌, 鄭亮秀, 南周勳, 琴昌浩, 權宅章, 金鍾斗, 任光赫)의 저술로, 예천군(郡守 李相和)에서 1992년에 발행한 <예천촌락사(醴泉村落史)> 25-53쪽(29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글머리에, 2) 예천군의 연혁, 3) 예천군의 자연환경이다.
내 고장 예천의 개관(내 故庄 醴泉의 槪觀) [記事] : 지보면 도장리 익장(益庄) 출신인 정양수(鄭亮秀, 1932- , 大昌中高 校長)의 기사로, 정양수선생재직기념회에서 1998년에 발행한 <송대의 40년(松臺의 四十年)> 616-620쪽(5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글머리에, 2) 예천군의 연혁이다.
내 고장의 호국정신(내 故庄의 護國精神) [冊] : 경상북도 교육연구원(院長 錢禧源)이 편집한 책으로, 1,118쪽, 사진, 삽도, 27cm, 대구 경상북도 교육위원회(敎育監 李康鎬)가 1986년 2월 28일에 발행하였다. 차례는, 발간사(이강호), 축사(손재석), 제Ⅰ편 외적의 침입과 항전/ 1. 오랑캐와 해적 떼를 물리치다/ 개관 -26/ 홍건적을 물리쳐 나라 구하고 =29/ 홍건적 잔당을 소탕하다 =33/ 박제상의 충성 =36/ 대왕암에 담긴 문무왕의 호국정신 =41/ 신라를 지킨 경주의 산성 =45/ 영해에서 물리친 왜구 =48/ 당나라 세력 몰아낸 신라인의 의지 =58/ 토성을 쌓아 왜구를 막다 =63/ 독산의 이변 =66/ 남만북적을 쫓아낸 기개 =68/ 화약 병기로 왜구 소탕 =73/ 여원무에 숨겨진 한 장군의 얼 =76/ 독도는 우리 땅 =80/ 호국의 얼이 담긴 화산산성 =84/ 울릉도를 지킨 사람들 =89/ 2. 왜란을 이겨낸 호국의지/ 개관 =102/ 왜란을 예견하고 고을을 지키다 =105/ 왜란을 예견한 충정 =109/ 충무공을 도와 왜적을 무찌르다 =112/ 금빛 부채를 선사받은 의병 =116/ 산성에 묻힌 사연 =119/ 황석산 열전 =125/ 정유재란과 금오산성 =130/ 타오르는 충성의 불길 =133/ 노곡 전투의 승리 =138/ 왕을 감동시킨 오극성 =141/ 행주산성 대첩에도 참여하고 =145/ 6백여 고혼 잠든 노루재의 한 =151/ 한 목숨 나라 위해 =155/ 왜적 소굴이 됐던 성주ㆍ고령을 되찾다 =158/ 피흘려 되찾은 성주성 =164/
신구차로 충무공을 구하다(필자 장병창) =171/ 비격진천뢰로 경주성을 수복하다 =177/ 조정의 임란 일기 =182/ 의병을 도와 대승을 =186/ 깊은 소에 젊음을 던진 정렬 =188/ 유허비에 서린 충혼 =191/ 몰운대의 꽃봉오리 =194/ 적진을 향하여 몸을 던지다 =196/ 치열했던 상주 전투 =198/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 =203/ 진중에서 순국한 의병대장 =207/ 류성룡의 슬기 =212/ 귀화하여 전공을 세운 김충선 =216/ 인동의병장 사진의 분정 =220/ 남편은 충신, 아내는 열녀 =224/ 의병의 횃불 =227/ 왜병을 물리친 여덟 가지 계책 =236/ 횃불로 왜병 격퇴 =240/ 전국 최초의 영천 복성 =244/ 겨레의 넋을 지킨 도산 전투 =249/ 유격 전술로 왜군을 물리치다 =252/ 인동을 지킨 천생산성 =256/ 산도 강도 의병의 편이 되어 =260/ 춤추는 쇠도리깨 =265/ 고성산성의 혈전 =268/ 맨손으로 고장 지켜 =272/ 유배지에서의 의병 =276/ 개산포 대첩 =279/ 뱃고개 신화 =286/ 용담천의 혈전 =289/ 나라 위해 몸 바친 의병장 =292/ 둔덕 대첩 =295/ 의성의 선열들 =299/ 전란 속에 핀 꽃 =303/ 몸 바쳐 왜적을 막다 =309/ 나라의 초석 =312/ 진중에서 순국한 의병장 =319/ 충효를 함께 한 두 형제 =321/ 하양의 팔 의사 =323/ 김천 지방의 의병 활동 =327/ 나라 위해 출전했다가 순절하다 =331/ 3. 호란에서 보인 조상의 슬기/ 개관 =334/ 육신은 오랑캐 땅에, 혼은 조국에 =337/ 통곡으로 올린 상주문 =341/ 남한산성에서의 통곡 =344/ 쌍고개로 가는 길 =348/ 인조를 업고 남한산성에 들어가다 =351/ 목숨을 위해 나라를 버리랴 =354/ 적의 서울에 떨친 충절의 기백 =358/ 적지에서 왕자를 구한 통제사 =362/ 호왕 앞에 의연했던 우국지사 =366/ 상복을 입은 채 호국의 방패로 =369/ 정묘ㆍ병자호란 때의 구국 단심 =372/
제Ⅱ편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항일 운동/ 개관 =379/ 의병장 신돌석 =382/ 고종 황제의 밀조를 받고 =386/ 격렬했던 일원산 의병 활동 =389/ 봉화의 을미의병 =393/ 꺼지지 않는 횃불 =398/ 김천의 의병 항쟁 =407/ 한을 품은 채 숨진 의병장 =410/ 국권 침탈에 항거한 울진의 의병 투쟁 =414/ 문경 지방의 의병 활동 =420/ 일병을 섬멸시킨 서벽 골말 전투 =428/ 영동 지방을 누빈 의병 =432/ 병신년 왜란을 막아 낸 장진두 =436/ 겨레의 얼을 밝힌 구국의 횃불 =439/ 청송의 함성 =443/ 화장동에 뿌린 눈물 =448/ 병정산의 메아리 =452/ 수정사 전투 =458/ 오누이못 물은 붉게 물들고 =461/ 노구로 의병에 앞장서다 =465/ 국권침탈 비보 듣고 단식 순국 =468/ 의병의 선봉 =172/ 항일 단체 충의사 =475/ 오늘을 목놓아 우노라 =477/ 기미년 화목 장터의 독립 만세 =481/ 동해 파도도 놀란 만세소리 =484/ 대동상회를 발판 삼고 =490/ 달성군에 울려 퍼진 만세 운동 =494/ 칠곡군의 만세 함성 =197/ 조국 광복 위해 내 신명 다 바치리라 =500/ 스승과 제자가 함께 부른 만세 운동 =506/ 한 손엔 장바구니 또 한 손엔 태극기 =510/ 민족의 별이 되어 =513/ 보통학교 학생도 만세 운동에 =516/ 지축을 뒤흔든 성주의 만세 운동 =520/ 남수산성에 태극기 휘날리고 =529/ 태극기의 물결로 뒤덮은 영덕군 =532/ 김천의 독립 만세 운동 =543/ 의성군민의 만세 함성 =549/
예천군의 3.1운동(필자 이성락) =552/ 마을마다 타오른 만세 운동의 불길 =555/ 고령 지방의 3.1운동 =560/ 네 군데서 터진 상주의 만세 함성 =563/ 태극기 만들어 독립 만세 부르고 =567/ 줄기찬 항일 의거 =571/ 유림단의 독립 청원 운동 =574/ 대한광복단의 항일투쟁 =595/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편강렬 =599/ 국제연맹에 혈서 보낸 여류 투사 =604/ 청산리 전투와 서로군정서 =607/ 백마 타고온 광야의 초인 =611/ 일생을 조국에 바친 독립투사 =616/ 의열단의 진영역 폭탄 의거 =619/ 일본인 아내와 함께 항일독립운동 =622/ 지하에 가서도 일제에 항거하겠노라 =631/ 독립운동을 한 문필가 =639/ 항일의거와 안동농림 학생 =642/ 두 팔 잘려도 항거한 항일투사의 순절 =649/ 주재소를 폭파하고 늠름하게 태극기 흔들어 =652/ 창유계와 푸른 보자기 =655/ 유림단의 독립투쟁 =658/ 혜성단의 항일투쟁 =663/ 한국독립후원 의용단 =667/ 안동지방의 만세운동 =672/ 임시정부 모금 의거 =679/ 일본 앞잡이 처단한 흑색공포단 =683/ 목숨 바쳐 지키고 가꾼 우리말 우리 글 =687/ 내 나라를 찾자는 독립 청원 =692/
예천 선비의 항일투쟁(필자 이성락) =696/ 울진 삼공투사단의 항일운동 =700/ 불무단의 독립투쟁 =704/ 국권침탈에 식음 전페하고 순절하다 =707/ 동진회 의거 =710/ 독립운동 자금 마련 =714/ 해영 신철휴의 의열단 활동 =717/ 의연히 일어선 독립후원 의용단 =721/ 광복의 불씨가 된 유림단 =723/ 노인들도 구국항쟁 =727/ 일황을 향해 던진 폭탄 세 발 =730/ 6.10만세운동에 앞장선 안동 젊은이들 =734/ 5조의 구국 상소와 투서 항쟁 =738/ 왜적과 더불어 살 수는 없다 =741/ 고령이 낳은 임시정부 요인 =746/ 국권회복에 젊음을 바친 광복단 활동 =751/ 의로운 일에는 돈 아끼지 말라 =755/ 소백산을 밝힌 구국의 혼 =758/ 못다 푼 구국의 한 =762/ 불굴의 의지로 평생을 조국에 바치다 =765/ ‘충군 애국’ 넉 자를 혈서하고 =769/ 수갑 찬 손들어 독립만세 =772/ 청년교육으로 조국광복을 =777/ 항일학생단체 무원 =780/ 황성 옛터로 민족혼 일깨워 =784/ 값진 삶 =788/ 대왕산의 죽창 의거 =792/ 순국한 흥업단원 =796/ 의를 위해 죽은 선비 =799/ 신교육으로 국권회복에 앞장서다 =804/ 조국광복에 물불 가리지 않고 =808/ 경주 사람들의 항일투쟁 =811/ 일본 신사에 불지르려다 고문 받다 =814/ 제Ⅲ편 반공구국운동/ 개관 =819/ 격전지 다부동 =824/ 학도의용군의 포항전투 =845/ 반격의 영천전투 =859/ 왜관지구 전투 =869/ 신화를 남긴 빨 간 머플러 =876/ 이화령에 흘린 피는 조국을 지켰다 =881/ 무극리와 중부전선에 흐른 유성 =886/ 용추골의 애국가 =890/ 적성리의 혈전 =895/ 선산 낙동강전투 =901/ 반공의 꽃송이 =904/ 신녕전투 =908/ 안강혈전 =914/ 김천지방의 6.25 =918/
소수의 경찰 병력으로 적군을 막다(필자 권석구) =921/ 승리에 빛나는 상주전투 =924/ 장사 상륙작전 =930/ 울진ㆍ삼척지구에 나타난 무장 공비 =934/ 박사동 학살사건 =938/ 이 한 목숨 초개같이 =943/ 공비도 두려워한 청도 주민 =945/ 종형제는 용감하였다 =950/ 동민들이 소탕한 공비 =953/ 내 고장을 지킨 열두 넋 =957/ 피로 얼룩진 만안골 =960/ 경찰서를 지킨 슬기와 용기 =964/ 제Ⅳ편 환난을 이겨낸 지혜/ 개관 =971/
조상의 슬기가 얽힌 삼익수도(필자 권장수) =974/ 사촌의 은인 =978/ 황무지를 옥토로 =983/ 한해와 수해를 막은 주남보 =986/ 오랜 역사를 지닌 영천 청못 =989/ 사재로 저수지를 만들다 =992/ 상주의 젖줄 공갈못과 서보 =995/ 파도를 막고 길을 뚫자 =999/ 영주 발전의 계기가 된 대홍수 =1003/ 굶주림을 구한 연지 =1007/ 농바위골의 은인 =1010/ 낙성보의 역사 =1014/ 개똥도 약 =1017/ 이웃 사랑의 꽃이 피다 =1021/
뛰어난 의술로 임금님의 병을 고치다(필자 이희배) =1024/ 삼대에 걸친 자선 =1027/
의서 향약제생집성방(필자 장병창) =1029/ 가뭄을 물리친 손길 =1032/ 한겨울 나루터의 산모를 구하다 =1036/ 백성을 구한 사설 의료기관 존애당 =1039/ 굶주림을 물리친 동산동 사창 =1042/ 빈민 치료를 위해 전의도 마다하고 =1044/ 귀환 동포에게 편 사랑의 손길 =1048/ 병자년 대흉년에 논밭 팔아 빈민구제 =1050/ 소작인을 도와 준 구경조 =1054/ 여러 대를 이어 어려운 이웃 도와 =1058/ 향토 발전의 역군이 된 나뭇군 =1060/ 대마도에서 가져온 고구마 =1064/
호랑이를 타고 역적을 물리쳤다(필자 정양수) =1066/ 무신정권을 종식시킨 영해인의 지혜 =1073/ 산을 만들어 액운을 막다 =1076/ 상주의 향약 =1079/ 지략으로 승전고를 올리다 =1084/ 무신란 때의 창의 깃발 =1088/ 백성의 편에 선 동학사상 =1091/ 삼국유사에 담긴 민족의 혼 =1099/ 여ㆍ원연합군의 일본 원정 =1106/ 일본에서 꽃피운 도자기 =1111/ 고전에서 본 공직자 윤리 1116/(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8.10.25)
내 고장 전설(내 故庄 傳說) [記事] : 대창중고등학교 향토반(指導敎師 張炳昌) 학생들이 수집한 예천군내의 전설 모음으로, 대창중고등학교에서 1972년에 발행한 <송대(松臺)> 창간호 161-166쪽(6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지고개, 2) 알봉산, 3) 용바위, 4) 국수방위, 5) 마꼬장, 6) 산골바위, 7) 돌꼬지, 8) 오백재, 9) 용문사이다.
내고장전통가꾸기(내故庄傳統가꾸기) [冊] : 예천군(郡守 金奭鍾)에서 1981년 12월20일에 펴낸 책으로, 부제(副題)는 '내고장 뿌리 찾기'이고, 427쪽, 삽도, 26cm, 대구 신흥인쇄소(新興印刷所)에서 인쇄하였다. 예천군에서 자랑할 수 있는 인물 76명, 역사적 사건 13건, 유적ㆍ유물 47점, 전설 20점, 풍습 31점, 특산ㆍ명물 10점, 명승·경관 2점, 희귀 동식물ㆍ노거수 10수 등 총 206점을 수록하였다. 편집의 차례에 있어서 인물편은 가, 나, 다 순으로 배열하였고, 유적ㆍ유물편은 지정 문화재, 지방 문화재, 지정 이외의 문화재의 순으로 편집 배열하였다. 그 이외 전설, 풍습, 특산, 명물, 휘귀 명목 등은 무순으로 편집 배열하였다. 총람편의 배열도 이와 같다. 집필 위원은 정양수(鄭亮秀, 大昌中高等學校 校監, 人物篇), 장병창(張炳昌, 大昌高等學校 硏究課長, 遺蹟ㆍ遺物篇), 이재녕(李載寧, 前 大昌高等學校 校監, 傳說篇), 강원희(姜元熙, 醴泉東部國民學校 敎師, 風習ㆍ特産ㆍ名物篇), 김상문(金相文, 醴泉文化院 專門委員, 現場의 발자취, 名勝ㆍ景觀篇), 김세중(金世中, 醴泉郡敎育廳 獎學士, 稀貴木ㆍ老巨樹篇), 총람/ (1) 인물편(鄭亮秀), (2) 유물편(張炳昌), (3) 유적편(張炳昌)이다. 경북대학교 도서관 중앙참고자료실에 소장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내 고장 전통 가꾸기(내 故庄 傳統 가꾸기 : 내 故庄 뿌리 찾기) [冊] : 예천읍 백전리 109번지 출신인 백산(栢山) 장병창(張炳昌, 1942- ) 등의 저서로, 427쪽, 사진, 27cm, 예천 예천군청에서 1981년에 발행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경북대, 연세대, 영남대이다.(keris 2003)
내 고장 학맥(내故庄 學脈) [學術저널] : 지보면 만화리 출신인 전재로(全在魯)의 예천의 학맥에 대한 학술저널로, 예천문화원에서 1992년에 발행한 <예천문화> 5호 108-113쪽(6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내 고향 매창과 추억 어린 그 시절의 회고(내 故鄕 梅倉과 追憶) [記事] : 지보면 매창리 출신 권기중(行政自治部 訴請審査委員會 勤務)의 기사로, 예천문학회에서 2000년에 발행한 <예천문학(醴泉文學)> 21권 봄호 76-82쪽(7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예천의 역사와 좋은 환경, 2) 어린 시절의 고향 마을 추억, 3) 매창청년가와 동심회 발족이다.
내고향 예천(내故鄕醴泉) [冊] : 예천군청에서 편집한 책으로, 22쪽, 26cm, 예천 예천군에서 1996년에 발행하였다. 예천공공도서관 참고자료실에 소장(청구기호 참고 911.82-예813)되어 있다.
내고향 예천(내故鄕 醴泉 ; 97 在京醴泉郡民會誌) [冊] : 재경예천군민회 편집부의 편저로, 683쪽, 재경예천군민회에서 1997년에 발행하였다. 사전/단체사/전집->인명록.명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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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