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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807:노하리...녹색공감...
작성자장병창 @ 2020.02.22 06:13:15

  도청신도시 예천 807 : 노하리...녹색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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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하리(路下里) 연혁, 노하리, 노하동(路下洞) [里] : 노하리는 예천읍(醴泉邑)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본래 신라 때 수주촌(水酒村) 소속이었고, 658년(무열왕 5)에 수주군(水酒郡) 소속이었다.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에 예천군(醴泉郡) 소속이었고, 936년(고려 태조 18)에 보주(甫州) 소속이었다. 1172년(명종 2)에 기양현(基陽縣) 소속이었고, 1204년(신종 7)에 보주(甫州) 소속이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보천군(甫川郡) 소속이었고, 1416년(태종 16)에 예천군(醴泉郡) 소속이었고,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 직후에 예천군 북읍내면(醴泉郡北邑內面, 北邑面) 소속이었다. 1728년(영조 4) 예천현 북읍내면(醴泉縣北邑內面) 소속이었고, 1738년(영조 14) 예천군 북읍내면(醴泉郡北邑內面) 소속이었다. 1914년 예천군 예천면 노하동(醴泉郡醴泉面路下洞)이 되었고, 1937년 예천읍 노하동(醴泉邑路下洞)이 되었고, 1988년 예천읍 노하리(醴泉邑路下里)가 되었다. 큰길 아래쪽이 되므로 길아래, 또는 노하(路下)라고 불리어진 작은 마을인데, 1919년 서본리 굴모롱이의 삼익수도(三益隧道)가 확장되면서 예천읍의 배수가 잘 되어 늪지대인 여기가 집터로 되어 마을이 커져서 지금은 200여 가구의 상가(商街)가 되었다. 노상리(路上里)와 같이 관혁동(貫革洞)에 속해 있었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때 큰 길 아래라 하여 노하동(路下洞)이라 하여 예천면(醴泉面)에 편입되었다.

 

  노현산 : →늘근터산

 

  노현재(老峴齋) [齋舍] : 지보면 신풍리 노현산에 있는 재사로, 동래인 정해(鄭諧, 判司僕寺事)의 묘하에 1570년에 창건되고, 그 후로 자주 중수 중건되었고, 1944년에 지금의 건물이 섰다. 19대손 석산(石山) 승모(升謨)가 1946년에 지은 ‘노현재사 중건기’의 원문과 국역문이 <용궁향교지>(2005) 상권 1056-1058쪽에 수록되어 있다. “...산하(山下)의 좀 떨어진 곳에 본디 띠를 이은 두어 칸 되는 재사가 있었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허술해져서 성묘하고 묵어 가려할 때 매우 어려움이 많아서 원근의 여러 겨레들이 항상 이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고쳐지어야지 하면서도 뜻을 이루지 못하더니, 1934년에 재사터가 새로 파는 신풍지(新豊池)에 편입되므로 할 수 없이 못 뒤의 산 끝에 좀 높은 곳을 가려 옮겨 지으면서 헌 재목은 버리고 새 재목은 사들여서 간살을 옛보다 넓혀 지으면서 짧은 시일 안에 일을 마쳤으니 진실로 온 겨레가 정성과 힘을 다 바치지 아니했다면 어찌 오늘처럼 새로운 집을 지음에 수월할 수 있었으랴. 마침 이 때 내가 기수(箕壽) 보(甫)와 함께 종중의 유사(有司)로서 물력이 모자라서 지붕은 기와를 이지 못했더니 그 사이 기수 보가 유명을 달리하니 어이없어서 어찌 할 바를 모르더니 그 아드님 용구(鏞九) 군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힘써 주선한 보람으로 몇 해가 지난 1946년에 이영을 벗겨내고 기와를 새로 덮어 진선진미라고는 할 수 없어도 여러 대를 두고 경영하던 뜻을 거의 이루었다고 하더라. 그러나 이 어찌 추원보본하는 도리를 다했다고 하랴!...”

 

  노호세소리 [綜合報告書] : 예천읍 통명리에 전승된 민요로, 이상휴(李相烋, 1933- )의 제보이다. 노새노새 캥마 쿵쿵노호세/ 낙락장송 고목대면/ 캥마 쿵쿵노세/ 눈먼새도 아니오네/ 캥마 쿵쿵노세/ 비단옷도 떨어지면/ 캥마 쿵쿵노세/ 행주벗게 다나가네/ 캥마 쿵쿵노세/ 좋은음식도 쉬어지면/ 캥마 쿵쿵노세/ 짱밥통으로 다들어가네/ 캥마 쿵쿵노세/ 고생하던 우리낭군/ 캥마 쿵쿵노세/ 우렁차게 잘놀아보세/ 캥마 쿵쿵노세/ 노새노새 젊어노세/ 캥마 쿵쿵노세/ 늙어지면 못노리라/ 캥마 쿵쿵노세/ 나의소리 적다말고/ 캥마 쿵쿵노세/ 뒷소리나 울여주소/ 캥마 쿵쿵노세/ 요렇게 놀다가 논팔겠네/ 캥마 쿵쿵노세/ 논팔아서 밭사지요/ 캥마 쿵쿵노세/ 어화청춘 소년들아/ 캥마 쿵쿵노세/ 가이없는 우리농군/ 캥마 쿵쿵노세/ 그리없이 대였고나/ 캥마 쿵쿵노세/ 고생하던 우리낭군/ 캥마 쿵쿵노세/ 우렁차게 놀아보세/ 캥마 쿵쿵노세//(全國民俗綜合報告書 第13冊, 文公部 1982 서울新聞社 348쪽)

 

  노호여나 [童謠] : 용문면 두천리(杜川里)에서 전승되어온 잠자리요이다. [內容] : 노호여나 시기노/ 새해미를 마다고/ 도꾸도꾸 시기노/ 호이 노호이/ (풀이) 잠자리를 잡아 다리를 실로 묶어 작대기에 매고 돌려서 다른 잠자리를 어를 때 부르는 노래이다.(손우영)

 

  노화와 장수에 관한 고찰((醫學藥學)老化와 長壽에 關한 考察) [大學報告書] : 해피캠퍼스에서 2007년 6월 16일에 발행하였다. 7쪽 분량, 노화와 장수에 관한 레포트이다. 건강한 백세 노인들의 특징, 건강한 장수의 방법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논의까지 기재해 놓았다. [목차] : <노화와 장수> / I. 백세 노인들의 특징 / II.건강한 장수를 위한 방법 / 1. 운동 / 2. 식이 / 3. 호르몬 치료 / 1) 멜라토닌 / 2) 성장 호르몬 / 3) DHEA(Dehydroepiandronsterone) / 4) 성호르몬: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테스토스테론 / 5) 미네랄: 크롬, 셀레늄, 마그네슘 / [본문 요약] : <노화와 장수> : 인구 노령화 시대의 급속한 진전은 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고 있어서 단순한 󰡐장수법󰡑이 아니라 활기차게 오래 사는 방법에 보다 의미를 두게 되었다. 진정한 장수법은 성장기에는 성장 최대한 이루어지도록 힘쓰고 노화가 시작되는 청․중년기에는 성장기에 이룩해놓은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신경을 쓰며, 장․노년기에는 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 않도록 관리 하는 것이다. 노화과정이 서서히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선 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에 기초하여 노화과정을 효과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I. 백세 노인들의 특징 : 현재까지 최장수를 누린 사람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사람으로서 일본의 노인여설 혼고 가마토로 2003년 10월에 116세로 운명한 사람이다. 국내의 경우 100세 이상 노인의 수는 총 2,228명으로 이 중 남성이 168명이고 여성이 2,060명으로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장수지역으로 알려진 전북 순창군, 경북 예천군, 전남 보성군, 전남 영광군, 경남 거창군, 전남 곡성군 등에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전북 순창군은 인구 10만 명당 100세 이상 인구 비율이 28.9명으로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남성 장수지역으로 강원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 지역에 그리고 여성 장수지역으로는 제주․전남을 비롯한 서남 지역에 편재되어 잇는 것으로 확인되었다.(daum 2008)

 

  녹동(鹿洞) [터] : 1895년(고종 32) 용궁군 신읍면(龍宮郡新邑面) 소속의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원래 임진왜란(1592) 직후에 용궁현 북하면(龍宮縣北下面) 소속이었다가, 1857년에 용궁현 신읍면(龍宮縣新邑面) 소속이 되었다. 1895년 용궁군신읍면 녹동(龍宮郡新邑面鹿洞)이 되었고, 1914년에 예천군 용궁면 송암리(醴泉郡龍宮面松岩里) 일부가 되었다.(龍宮縣邑誌 1780, 竺山勝覽 1934)

 

  녹동들(鹿洞坪) [들] : 용궁면 덕계리(德溪里) 평장골에 있는 들이다.

 

  녹동들 : 녹동들/ (지번) 경북 예천군 용궁면 덕계리/ 카테고리지명(daum 2016)

 

  녹동들 : 용궁면 – 유래/ 2016.01.20./ 德洞), 녹동(鹿洞), 보계(洑溪), 송천(松川), 인암(印岩), 경암(景岩), 나산(羅山), 장평(長坪), 월오(月梧)의 20개 동리를 관할하였고, 1895년(고종 32) 용궁군이 되어.../ blog.daum.net/shangrila8/ 초록동산 白沙淸江 ..(daum 2016)

 

  녹동들 : 용궁면의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 2009.11.20./ 德洞), 녹동(鹿洞), 보계(洑溪), 송천(松川), 인암(印岩), 경암(景岩), 나산(羅山), 장평(長坪), 월오(月梧)의 20개 동리를 관할하였고, 1895년(고종 32) 용궁군이 되어.../ cafe.daum.net/songlimed... 송림학교.용궁..(daum 2016)

 

  녹동들 : 용궁면 동네이름의 유래/ 2005.04.08./ 지역으로 덕봉, 녹동, 복계리, 송천리 입루와 문경시 화장면의 지내리 일부를 병합하여 덕동과 복계의 이름을 따서 덕계리라 함 <자료출처 : 용궁면사무소 홈페이지 펌>/ cafe.daum.net/dydrndcls... 용궁의 영원한.. | 댓글 3(daum 2016)

 

  녹리 고성겸의 시사시와 락부사에 대한 고찰(녹리 고성겸의 시사시와 탁부사에 對한 考察)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최재남(崔載南, 1958-, 慶南大 敎授)의 논문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1986년에 출판한 <관악어문연구(冠嶽語文硏究)> 11권 1호 205-225쪽(21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대구대, 상명대(서울), 서강대, 서울대(중앙), 성균관대(중앙),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외대이다.(keris 2003)

 

  녹리 고성겸의 시사시와 락부사에 대한 고찰(녹리 고성겸의 時事詩와 락부사에 對한 考察) [學術저널] : 예천 출신 최재남(崔載南, 1958-, 慶南大 敎授 거쳐 梨花女大 敎授)의 논문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1986년에 발행한 책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녹문정(鹿門亭) [亭子] : 용문면 능천리 내방구(內芳邱)에 있는 정자로, 1797년(정조 21)에 함양인 매옹 박태령(梅翁朴台寧), 하수 박기령(荷수朴箕寧) 형제가 세웠다. 중국 주자(朱子)가 공부하였다는 구곡폭포(九谷瀑布)가 있는 녹동(鹿洞)처럼 이 정자 앞에 조그만 폭포가 있다 하여 녹문정(鹿門亭)이라고 하였다. 형제는 이 정자에서 숨어 수양을 독실히 하였다. 갑자기 죽으니, 기르던 매화들이 동시에 말라죽었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1.5칸, 목조와가(木造瓦家) 팔작(八作)지붕이다. 1955년경에 중수하였고, 지금도 정자 경내에 수백 년 묵은 향나무 두 그루가 있고, 폭포자리가 남아 있다.(醴泉郡邑誌 1841 1895, 醴泉郡誌 1939, 嶠南誌 1937)

 

  녹문정(鹿門亭) [亭子] : 용문면 능천리 산58번지(林)에 있는 정자로, 함양인 박태령(朴台寧), 박기령(朴箕寧) 형제가 건립하였다. 내방구(內芳邱) 뒤쪽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기와는 개량기와를 사용하였다. 평면은 어간(御間)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퇴칸의 전면에는 헌함(軒檻)을 설치하였다. 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의 장혀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녹문정(鹿門亭) [亭子] : 용문면 능천리 방구(芳邱)마을에 있는 정자로, 함양인 매옹(梅翁) 박태령(朴台寧), 하수(荷叟) 박기령(朴箕寧)을 기리기 위해 1797년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1.5칸,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醴泉鄕校誌 2004)

 

  녹문정(鹿門亭) [亭子] : 용문면 능천리 소재, 함양인 박태령(朴台寧), 박기령(朴箕寧) 형제가 1830년(순조 30)에 건립한 정자로, 1905년에 중수하였다. 내방구 뒤쪽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기와는 개량기와를 사용하였다. 평면은 어칸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으며 툇간의 전면에는 헌함을 설치하였다. 가구는 삼량가(三樑架)의 장혀수장집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다.(醴泉郡誌 2005)

 

  녹문정(醴泉能川里 鹿門亭) : *위치 : 예천군 용문면 능천리 산59, *연대 : 1801-1834년 창건, 1955년에 중수, *규모 :'-'자형 정자 1채/ 녹문정은 용문면 능천리 방두들 마을 맨 안쪽 빙성산(氷城山) 아래에 위치하며, 마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다. 방두들(안방두들, 內芳邱)은 1700년경 함양 박씨가 개척하였다. 정자 앞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가에는 노령의 향나무 2그루가 있다. 녹문정이라 함은 주변의 수석(水石)들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둘러싸여 있어 사군자(士君子)들이 은거하기에 적절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사군자들을 사슴에 비유하였다고 할 수 있다. 녹문정은 달리 족정(鹿亭) 혹은 녹당(鹿堂)이라 불리기도 한다. 매옹(梅翁) 박태녕(朴台寧)과 하수(荷叟) 박기녕(朴箕寧, 1779-1857) 형제가 1830년에 창건한 정자이다. 형제는 함께 학문과 인격을 연마하며 자연의 아름답고 그윽한 경치를 즐기면서 만년을 보낼 계획으로 금당곡(金塘谷) 북쪽 빙성상 아래에 정자를 지여 ‘鹿門亭’으로 편액하였다. 1965년 후손들은 선조의 향기어린 정자가 퇴락하여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중건하였다. 녹문정은 용문면사무소에서 북동측으로 927번 지방도로 반서울로로 접근하여 금평교를 지나 상금곡리와 능천리 경계길에서 마을 샛길인 방두들길을 따라 접근한다. 녹문정은 방두지를 지나 마을의 끝자락에 터를 마련하고 남서향을 하고 있다. ‘-’자형 정자 1채로 구성되어 있다. 녹문정은 담장을 두르지 않아 사면으로 열려있다. 정면으로 마을과 밭이 있으며, 배면은 야산을 면하고 있어 야산의 잡목들을 배경을 삼고 있으며, 마당에는 연못이 있으나 현재는 물이 말라 있어 흔적만이 남아 있다. 녹문정은 정면에 튓마루를 꾸민 ‘-’자형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5칸이다. 정면 툇마루는 기둥 밖으로 확장한 후 계자난간을 둘렀다. 평면은 중앙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마루간은 우물마루 구조이며, 정면에 세 짝 여닫이 들문을 달았다. 후면에 두 짝 미닫이 우리판문을 달아 정면으로 열린 공간구조를 하고 있다. 좌우 온돌방은 마루간 쪽에 두 짝 여닫이띠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으며, 정면에 두 짝 여닫이 띠살창문을 달아 외부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좌우 온돌방 측면으로는 외여닫이 창문을 달았다. 녹문정의 기단은 자연석 기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단 바닥을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좌우 온돌방의 아궁이는 정면의 마루 밑 기단에 있고, 굴뚝은 보이지 않는다.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아 동바리를 설치하여 툇마루를 받치고 있으며, 정칸의 두 기둥은 원기둥이고, 나머지 기둥은 사각기둥으로 세웠다. 정면 기둥의 상부는 납도리방식으로 보아지와 도리받침장혀, 도리, 보가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삼량이며, 대청의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온돌방의 천장은 고리반자로 되어 있다. 천장은 모두 사벽으로 마감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정칸의 보 밑으로 장여가 보를 받치고 있으며, 온돌방의 고미 반자가 툇기둥까지 연결되어 있다. 지붕은 철재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목재는 석간주색으로 단청을 했다. 벽체는 회바름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앙토는 재사벽으로 마감했다. 처마도리에는 ‘鹿門亭’ 편액이 걸려 있으며, 마루간에는 ‘鹿門亭記’ 편액이 걸려 있다. 녹문정은 이건된 이후 현재는 방치되어 퇴락 및 훼손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 상황을 고려한 다양한 활용과 주변정리 및 주변 잡목 제거 등 유지관리계획이 이루어진다면 건축적 가치를 유지,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224-225쪽)

 

  녹문정 : 正郞公 後孫들의 뛰어난 숨은 人物/ 2007.03.11./ 스스로를 지키며, 녹문정(鹿門亭)을 지어놓고 은거하며 학문에만 힘썼다. 유고가 있다. 타계하자 화분에 심어놓은 매화가 동시에 말라 죽었다. 묘는 용문면 사부리.../ blog.daum.net/pqwert/ 함양박씨 정랑공파(咸..(daum 2016)

 

  녹문정 : 예천의 자랑 3914 : 박치정(2)-박태동-박태령-박태양-박태원(祝 이한성)/ 작성 장병창/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 초명은 태령(泰寧), 자는 경담(景膽), 호는 매옹(... 지키며, 녹문정(鹿門亭)을 지어놓고 은거하며 학문에만 힘썼다. 유고가 있다. 타계하자 화분에 심어놓은 매화가 동시에 말라죽었다. 묘는 용문면 사부.../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6)

 

  녹색공감생활원예 우리꽃모임(어린이날 昆蟲祝祭 記念 第3回 綠色共感 生活園藝 우리꽃모임 作品展示會 開催) [記事] : 계절의 여왕인 5월을 맞아 2013년 어린이날 곤충축제를 기념하고 우리꽃 회원들이 만든 작품과 솜씨를 자랑하는 제3회 녹색공감 생활원예 우리꽃모임 작품전시회가 2013년 5월 3일 오전 10시 예천곤충연구소 3층 전시실에서 농업기술센터 황부해 소장, 김시동 예천곤충연구소장을 비롯한 관계자, 동호인, 회원들의 축하와 격려 속에 간소하게 오픈, 오는 5일까지 3일간 개최된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 2012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념하고 우리꽃모임(회장 윤윤식) 회원들이 매달 야간교육을 통해 배우고 익힌 솜씨로 만든 야생화, 분경, 난, 다육식물 등 300여 점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됐다. 특히, 우리지역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비롯해 공기정화식물, 다육식물, 식용할 수 있는 식물, 향기나는 식물 등 300여 점이 전시돼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은 물론 관람객들에게는 다양한 생활원예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번 제3회 우리꽃모임 야생화전시회 전시 기간 중 부대행사로 소라와 수태, 난을 이용한 소라난분 만들기와 다육심기 체험행사도 함께 하고 있다.(金相國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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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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