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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815 : 농민이...농부요한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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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 난을 생각하다(農民이 亂을 생각하다(西海歷史文庫 2)) [冊] : 송찬섭의 저서로, 서해문집에서 2004년 4월 28일에 발행하였다. 17쪽에 "...뜸하다가1890년 함창․안동, 1892년 예천․남해, 1893년 순흥․창원 등 상당히 빈번하..."가 수록되어 있고, 19쪽에 "1890년 함창․안동, 1892년 예천․남해, 1893년 순흥․창원 등에서 농민항쟁이 일어..."가 수록되어 있고, 102쪽에 "...삼거리여서 한쪽 길이 예천으로 통했다. 지금은 넓은 도로가 닦여져 있으나 당시에는 이곳에 주..."가 수록되어 있다.(http//book.daum.net 2006)
농민이 난을 생각하다(農民이 亂을 생각하다(서해歷史文庫 2)) [韓國史書] : 송찬섭의 저서로, 174쪽, A6, 서해문집에서 2004년 4월 28일에 발행하였다. 17쪽에 “ ..뜸하다가 1890년 함창․안동, 1892년 예천․남해, 1893년 순흥․창원 등 상당히 빈번하게 일어났다. 농민들이 관아에 쳐들어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명화적(明火賊)* 같은 도적 무리들까지도 관아에 침입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그만큼 관가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였다..”, 19쪽에 “ ..1890년 함창․안동, 1892년 예천․남해, 1893년 순흥․창원 등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났는데 이처럼 고을 단위로 항쟁이 일어난 이유는 고을별로 부세의 실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에서 파견된 지방관이 한 고을의 행정권과 사법권, 조세권 등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농민항쟁의 발생에 영향을 미..”, 102쪽에 “ ..삼거리여서 한쪽 길이 예천으로 통했다. 지금은 넓은 도로가 닦여져 있으나 당시에는 이곳에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주막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모전점도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이곳은 옹기점과 주막을 배경으로 발달하여, 지금은 경북 서북부 지방의 중심인 점촌이 되었다. 이곳으로 현감이 끌려갈 때 이서들도 함께.. ”가 수록되어 있다.(daum 2008)
농민저항운동(農民抵抗運動) [事件] : 16세기 후반에 예천에서도 50여 명의 도적들이 임꺽정이라고 속이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이 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 전기에 가장 대표적이고 집약적인 농민저항은 임꺽정을 중심으로 한 황해도 농민 저항이라 할 수 있다. 임꺽정의 저항은 1559년부터 1562년에 걸쳐서 일어난 것으로, 조선 전기 농민들의 저항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고, 오래 계속되었다. 이 난 자체는 황해도에서 경기도, 평안도, 강원도에 걸친 지역적 저항이었으나 조선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 난이었고, 그 집약점이었다. 16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도적들의 활동과 농민들의 저항은 전국적으로 고조되었다. 규모면에서도 전 시기에 비해 더욱 확대되었다. 경기도의 경우 용인, 진위현 등지에서, “도적이 흥기하여 도로가 불통되고 대낮에도 약탈하여..이 무리가 매우 많아 말탄 자도 50명이나 떼거리를 지으니 방어할 수가 없다.”라고 하였 듯이, 말을 타고 도로를 장악하여 도적 활동을 하는 자들이 많았고, 장단, 마전, 적성, 우봉 등지에서도 도적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하삼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충청도에서는, “지금 충청우도에서는 적의 무리가 크게 일어나 공공연히 약탈하고 있다.”라고 하였고, 전라도에서는, “고산현이 한둔산에서 60-70명씩 대오를 묶어 할동한다.”라고 하였고, 경상도에서는 경주에서 대적이 대낮에도 활동하였고, 예천에서도 50여 명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활동하였다. 황해도의 경우에는 1552년 10월 평산 지방 농민들이 그 고을 부사 조숭조(趙崇祖)가 온천에 갔을 때 그에게 활을 쏘고 방에 불을 질러 큰 부상을 입혔다. 1557년(명종12) 4월 경 오연석(吳連石넉)을 중심으로 서흥, 우봉, 토산, 신계, 이천 등 넓은 지역에서 도적들이 활동하였고, 이전부터 진행되던 신백정의 도적 활동도 여전하였다. 이와 같이 이전부터 전국적으로 번진 도적들의 활동과 농민들의 저항을 배경으로 임꺽정이 중심이 된 황해도 농민 저항이 일어났다.(web.edunet4u.net 2002)
농민후계자회 : →예천군농민후계자회
농바우, 구부정, 농암(籠岩) [마을] : 감천면 포2리(浦二里)에 있는 마을로, 새터 남쪽에 있다. 고려 말 안동인 김입창(金立昌)이 들어와 아들 9형제가 모두 부자였기에 구복(九福)집 또는 구부(九富)정이라 하다가, 조선 중엽에 마을 앞산에 있는 큰 바위가 바닥이 100여 평은 됨직하고, 그 위에 농같이 생긴 바위가 또 얹혀 있어서 농바우라고 하였다. 50가구 280명(1980)이 살고 있다. [傳說] : 이 마을의 길을 닦던 어느 심술궂은 청년들이 여러 차례 이 바위를 굴려 밀었는데도, 이튿날 보면 다시 제자리에 올라가 얹혀 있어 신기하게 여겨 그 뒤부터 재앙이 없어지라고 빌던 바위가 되었고, 지금도 그 바위를 두들기면, '둥둥'소리가 난다.
농바우(구부정, 籠岩) : 甘泉面 浦里 소속으로, 마을 앞산에 있는 큰 바위가 바닥이 100여 평이 됨직하고 그 위에 농같이 생긴 바위가 또 얹혀 있어서 마을 이름이 이에 유래되어 농바우 또는 농암으로 불리어 진다고 한다. 이 농바우는 동네에 길을 닦던 심술궂은 청년들이 수차 이 바위를 굴려 밀어 냈는데도 그 이튿날 보면 다시 제자리에 올라가 얹혀 있어 신기하게 여겨 그 뒤로부터 재앙이 없어지라고 빌던 바위라고 하며 지금도 그 바위를 두들기면 '둥둥' 소리가 난다고 한다.(甘泉面홈페이지 2013)
농바우(籠岩) [바위] : 1) 감천면 포2리(浦二里) 농바우마을 앞산에 있는 바위로, 큰 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어서 농(籠)처럼 되어 있다. 동민들의 신앙 대상이다. 2) 호명면 형호리(衡湖里) 골마 서쪽 강가 석벽산(石壁山) 밑에 있는 바위로, 큰 농(籠)처럼 생겼다. 여름철에 농민 30명이 쉼터로 이용할 수 있다. [傳說] : 옛날 저우리의 밀성 박씨(朴氏), 골마의 평산 신씨(申氏)들이 이 바위에서 매년 풍년제(豊年祭)를 올렸다고 한다.
농바우 : 감천면 전설설화/ 2011.12.22./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이 혈(穴)을 질렀다”라고 하였다. 농바우(籠岩)와 복골(福洞) ㅇ 위 치 : 감천면 포2리(농바우, 복골) ㅇ 내 용 농바우마을 앞산에 바닥이.../ blog.daum.net/ibjc115/ 새천년 희망의 땅 웅..(daum 2016) 농바우 : 농바우농원을 소개합니다/ 2014.12.02./ 농바우농원을 소개합니다. 예천 농바우농원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서 자두과수원을 농사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북 봉화군에 농업법인회사인 '파인바이오' 주식회사를.../ blog.naver.com/baltor82/ 농바우농원(daum 2016)
농바우 : 힐링켐프-블루베리/ 2015.01.04./ 힐링켐프-블루베리 동갑 귀농인 3명이 의기투합 예천군 감천면에 있는 농바우농원에서 힐링캠프를 열었습니다. 지난해 농사이야기 무리한 몸의 반응, 올해 농사, 농부의.../ blog.naver.com/ljs7811/ 복사꽃 당신 가오실농..(daum 2016)
농바우 : doopedia/ ri ] 감천면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에 있는 ...... 깃골마을 감천면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미석리...... 농바우마을 감천면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포리에 ...... 대맥리 [ Daemaek-ri ] 감천면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에 있.../ www.doopedia.co.kr/m/doopedia/category (daum 2016)
농바우 : 감천면 투데이 - 위안부 김옥선 할머니 위령제/ 위안부 김옥선 할머니 위령제가 15일 저녁 6시 30분 감천면 포2리 경로당에서 열린다. 김옥선 할머니는 포2리 농바우에서 남편과 함께 주막을 운영하다가 2009년 12월 15일에 별세했다. 자녀가 없는 김 할머니를 위해 농바우 마을.../ m.yc-j.kr/news (daum 2016)
농바우 : 감천면의 전설과 설화/ 2011.06.27./ 浦1里)으로 옮김에 따라 마을이 번창(繁昌)하게 되었다 한다. 농바우(籠岩)와 복골(福洞) ㅇ 위 치 : 감천면 포2리 (농바우, 복골) ㅇ 내 용 농바우마을 앞산에 바닥이.../ cafe.daum.net/backmaya/... 감천중28회 | 댓글 3(daum 2016)
농바우 : 감천면 유래/ 2003.05.03./ 있으며 나무 밑에는 조그마한 정암사(靜岩寺)가 자리하고 있다. ◎ 농바우(籠岩)와 복골(福谷) ㅇ 위 치 : 감천면 포2리 (농바우, 복골) ㅇ 내 용 농바우마을 앞산에.../ cafe.daum.net/jumasan17... 감천중17회(daum 2016)
농바우 : 재경 대창동문 산행!/ 2012.05.15./ 동창 인원도 모자라고 기 죽기 싫어서 예천여고 동문회에서 온 이쁜 임원 두 분과..........(고향이 감천면 농바우이고 2년 선배라던데 이름은 잘 모르겠네요..ㅎㅎㅎㅎ...)/ cafe.daum.net/daechang2... 대창고등학교2.. | 댓글 1(daum 2016)
농바우 : 고마운 분들/ 2014.10.31./ 일일이 전화라도 했어야 도리인데 미안하네, 여려분들 덕분에 고향(선영) 감천면 포2리(농바우)에 잘 모셨으며 친구들의 정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고 감사하다는 말 외에는.../ cafe.daum.net/kc39/txK/... 감천초등학교.. | 댓글 6(daum 2016)
농바우 : 여기는 경북 예천, 그리고 우리 가족/ 2008.11.27./ 감천면입니다. 예천과 영주를 잇는 국도변에 위치한 마을이구요. 남편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행정구역 이름은 포2리입니다만 포2리 중에서도 저희가 사는 마을은 "농바우.../ cafe.daum.net/native210... 본향텃밭이야..(daum 2016)
농바우와 복골(籠岩과 福洞) [傳說] : ㅇ 위치 : 감천면 포2리(농바우, 복골), ㅇ 내용 : 농바우마을 앞산에 바닥이 5평 남짓한 큰바위 위에 농(籠)같이 생긴 바위가 또 얹혀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농암(籠巖) 또는 농바우라고 불렀다. 약 150년 전 보문면(普門面)에서 거주하던 안동(安東) 김씨(金氏)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현재까지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이 바위가 위치한 산 아래 마을에 길을 닦던 힘센 장사가 힘자랑을 하기 위하여 이 바위를 굴러 밀어냈는데, 이튿날 이상하게도 그 바위가 제자리에 다시 올라와 얹혀 있어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 후 마을에서는 이 신기한 바위에 대하여 마을의 번영(繁榮)과 안녕(安寧)을 빌면 재앙(災殃)이 없어진다고 하여 매년 기원(祈願)하고 있으며, 지금도 바위를 두드리면 “둥둥” 소리가 난다고 한다. 또한 이웃마을 복골(福洞)에는 둥글고 큰 바위가 동네어귀에 있어 이 바위를 복바위(福巖)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바위에 복을 빌고 고사(告祀)를 지내기도 한다. 또한 지형(地形)이 복(鰒)처럼 생긴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고 불려져서 복골(鰒洞)이 되었다고도 한다.(甘泉面홈페이지 2013)
농부명절(農夫名節) [歲時風俗] : 예천군에 음력 7월 15일 백중일(百中日)에 전승되어온 민속으로, 농부들이 전답(田畓)의 김을 다 매고 발을 씻어 발뒤끔치가 하얗게 되었다 하여 '백종(白踵)'이라고 한다. 혹은 호미를 씻어두고 쉰다는 뜻으로 '호미씻기'라고 하는 지역도 있다. 이 날 각 마을에서는 농부들이 주식(酒食)으로 배를 불리우고, 각종 흥겨운 놀이로써 즐겨한다. 지역에 따라 씨름을 중심으로 한 난장판을 마련하기도 하고, 농악(農樂)을 울리고 놀이하기도 하고, 광대(廣大)를 불러 줄타기를 하기도 한다. 머슴을 둔 농가에서는 머슴에게 새옷을 주고 주병(酒餠)으로 접대하여 위로금을 주어 놀게 한다.
농부와 호랑이 [傳說] : 하리면 율곡리(栗谷里)에 옛날, 힘세고 마음씨 착한 어느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농사에 능숙할 뿐 아니라, 이웃집의 일을 잘 도와주어 칭찬이 대단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어머니의 병세가 더욱 악화하여 갔다. 원래 가난한데다가 겨울철이어서 품삯도 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농부는 어머니의 치료를 위한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기껏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그 나무를 팔아 약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를 하기 위해 산속 깊이 들어 가다니까 숲속에서 난데없이 큰 호랑이가 나타났다. 농부는 선뜻, "이 호랑이를 잡아 그 고기를 어머님께 드리면 병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만약 끝에 그 호랑이를 잡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농부가 방에 들어갔을 땐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농부는 너무나 슬퍼서 울기는 커녕 실신(失身)하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호랑이를 죽인 벌이 아닌가 생각되었다고 한다.
농부와 호랑이 [傳說] : ᄋ 위치 : 하리면 율곡리(栗谷里), ᄋ 내용 : 옛날, 힘세고 마음씨 착한 어느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농사에 능숙할 뿐 아니라, 이웃집의 일을 잘 도와주어 칭찬이 대단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어머니의 병세가 더욱 악화하여 갔다. 원래 가난한데다가 겨울철이어서 품삯도 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농부는 어머니의 치료를 위한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기껏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그 나무를 팔아 약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를 하기 위해 산속 깊이 들어가다니까 숲속에서 난데없이 큰 호랑이가 나타났다. 농부는 선뜻, "이 호랑이를 잡아 그 고기를 어머님께 드리면 병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만약 끝에 그 호랑이를 잡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농부가 방에 들어갔을 땐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농부는 너무나 슬퍼서 울기는커녕 실신(失身)하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호랑이를 죽인 벌이 아닌가 생각되었다고 한다.(張炳昌 2001.6.29 醴泉郡廳 編纂 豫定 <醴泉의 傳說> 寄稿文)
농부(農夫)와 호랑이 [傳說] : ㅇ 위치 : 하리면 율곡리, ㅇ 내용 : 옛날, 힘세고 마음씨 착한 어느 농부가 살았다. 그는 농사(農事)를 잘 지을 뿐 아니라 이웃을 잘 도와주어 칭찬이 대단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몸져누워 있던 어머니의 병세(病勢)가 악화되었으나 돈도 없고 가난한데다가 품삯도 벌 수 없어 치료할 약(藥)을 구할 수가 없었다. 기껏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그 나무를 팔아 약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나무를 하기 위해 깊은 산에 들어갔는데 숲 속에서 난데없이 큰 호랑이(大虎)가 나타났다. 그는 선뜻, “이 호랑이를 잡아 그 고기를 어머님께 드리면 병(病)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호랑이와 격투(激鬪) 끝에 잡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농부가 방에 들어갔을 땐 이미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다. 너무나 슬퍼서 울기는커녕 실신(失身)하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니 호랑이를 죽인 벌이 아닌가 후회하였다고 하니 이 농부의 심성(心性) 얼마나 착한지 알 수 있다.(下里面홈페이지 2013)
농부요한농원([有望브랜드 大賞] : 뚝심 있는 農夫의 眞心 農夫요한農園) [記事] : 한결같은 마음으로 고향 농산물을 전문 생산하는 농부요한농원(대표 최영열)이 [경향닷컴 2008년 하반기 유망 브랜드대상] 농·특산물 분야에 선정되어 한 걸음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예천의 자랑 회룡포를 바라보는 청정지역에 위치한 농부요한농원(www.fyo1.com)은 논 16,400평과 밭 5,000평에서 생산된 쌀을 비롯해 참기름, 배, 배 생즙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12가지 품종 7가지 색깔의 특수미를 재배하여 모두 직거래를 통해 고객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농부요한농원은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중간마진을 최소하여 고객들에게 더 많은 가격적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온라인을 쇼핑몰을 설립해 직접 농작물을 판매하고 있다. 판매자의 신상은 물론, 농작물의 생산지와 생산과정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 고객들에게 더 큰 믿음과 신뢰를 안긴다는 것이 농부요한농원의 가장 큰 강점이자 경쟁력이라 볼 수 있다. 농부요한농원은 토질이 비옥하고 일조량이 풍부한 청정지역에 위치한 지형적 조건을 십분 활용하여 타 지역과의 품질적 차별화를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농부요한농원의 최영열 대표는 또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과 관련된 흉흉한 소식이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만큼 신토불이라는 흔한 말이 그 어느 시기보다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면서 우리가 직접 판매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진정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농작물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그 시작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또 우리의 주력 농작물이기도 한 회룡포 쌀은 비옥한 토양과 맑은 물로 재배하여 미질이 좋고 밥맛이 좋아 고객들의 선호도가 특히 높다.면서 우리 농부요한농장의 상품을 구입하는 모든 소비자의 밥상이 더욱 건강해지고 풍성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정성껏 재배한 농작물이 보다 신선한 상태로 고객들의 밥상에 오르길 바라는 열망으로 부단히 노력해온 농부요한농원은 그 노고를 인정받아 1992년 2월 지보신용협동조합장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2월에는 경상북도지사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농부요한농원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단순한 상업적 수단으로서의 농업이 아닌, 우리나라의 근간 사업인 농업으로 국민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다. 그러한 특별한 자부심과 단단한 각오에 걸맞게 농부요한농원이 선보이는 삼강쌀과 흑깨, 참깨, 찹쌀 등은 흔히 찾아 볼 수 없는 속이 꽉 찬 품질로 고객들에게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다. 뜨거운 땀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말보다는 손이, 손보다는 발을 먼저 움직여 생산한 최상의 농작물로 고객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자 하는 농부요한농원의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진심이 더 많은 고객들의 마음 안에 번지길 바란다.(京鄕新聞 2009-01-21)
농부요한농원 : 예천의 자랑 1824 : 예천충효 23(祝 농부요한농원. 전우성/예천방문 350)/ 작성 장병창/ ▲예천 농부요한농원, 경향닷컴 유망브랜드 대상...축하합니다. 농부요한농원([有望브랜드 大賞] : 뚝심 있는 農夫의 眞心 ‘農夫요한農園’) [記事] : 한결같은 마음으로 고향 농산물을 전문 생산하는 농부요한농원(대표.../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 (dau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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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