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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846 : 느티나무...능고선생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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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예천흔효리(醴泉欣孝里) 느티나무 [保護樹] : 1) 풍양면 흔효리에 있는 마을 보호나무로, 전국 일련번호 5,115, 지역 일련번호 1, 수령 190년, 높이 20m, 둘레 2.1m, 면적 120㎡이다(보호수지 1972). 2) 풍양면 흔효리에 있는 마을 보호나무로, 전국 일련번호 5,116, 지역 일련번호 2, 수령 190년, 높이 20m, 둘레 1.8m, 면적 90㎡이다.(保護樹誌 1972)
느티나무, 예천우곡리(醴泉愚谷里) 느티나무 [堂山木] : 하리면 우곡리 214번지 은풍초등학교(殷豊初等學校) 교정 대지(校庭垈地)에 있는 군 보호 나무로, 전국 일련번호 2,059, 지역 일련번호 6, 수령 460년, 높이 7m, 둘레 5m, 지름 19m, 수목 면적 30㎡이다. [傳說] : 1520년 경 상리면 명봉사(鳴鳳寺)의 유명한 고승(高僧)이 영주 부석사(浮石寺)로 가려고 이곳을 지나가다가 산수가 좋아서 기념으로 심어두었다고 한다. 옛날 우곡서원(愚谷書院)의 선비들이 글을 읽던 곳이고, 여기에서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과거(科擧)에 급제한다고 했다. 한국전쟁(1950) 때 은풍초등학교가 폭격으로 인하여 전소(全燒)되었는데, 그때 이 나무속에서 살고 있던 한 쌍의 용(龍)이 폭격의 진동에 놀라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保護樹誌 1972, 郡統計年報 1981)
느티나무, 예천율곡리(醴泉栗谷里) 느티나무 [保護樹] : 1) 하리면 율곡리 260번지에 있는 마을 보호나무로, 전국 일련번호 5,070, 지역 일련번호 1, 수령 150년, 높이 20m, 둘레 4.8m, 면적 80㎡, 지름 18m이다. 동제(洞祭)를 지낸다(보호수지 1972). 2) 하리면 율곡리 작은밤실에 있는 고목(洞神木)으로, 원래 3그루가 있었는데, 그 중 한 그루는 일제 때 없어지고, 두 그루만 남아 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이 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다. [傳說] :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이 느티나무 한 그루를 베어서 일본으로 가져가는 도중 태풍을 만나 배와 더불어 바다 속에 빠트렸다. 물론 그 일본인들도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 지금 남아있는 두 그루에는 때때로 큰 구렁이 두 마리가 나와서 느티나무를 한 바퀴씩 돌고는 다시 고목 속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느티나무, 예천은산리(醴泉殷山里) 느티나무 [洞神木] : 하리면 은산리 양전(良田)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동제사(洞祭祀)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 밑을 정자(亭子)라고 부르고, 여름철에 쉬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느티나무, 예천금릉리(醴泉金陵里) 느티나무 [亭子木] : 호명면 금릉리 121번지에 있는 고목으로, 수령 100년, 높이 15m, 둘레 2m, 면적 131㎡이다.
느티나무, 예천내신리(醴泉內新里) 느티나무 [保護樹] : 1) 호명면 내신리 2번지에 있는 마을 보호 나무로, 전국 일련번호 5,085, 지역 일련번호 1, 수령 120년, 높이 20m, 둘레 1.5m, 면적 99㎡, 지름 14m이다(보호수지 1972). 2) 호명면 내신리 161번지 밭에 있는 마을 보호나무(亭子木)로, 수령 120년, 높이 20m, 둘레 1.5m, 지름 12m이다. 남쪽으로 기울고, 타원형이다. 삭정이가 많다. 3) 호명면 내신2리 여스밭 앞에 있는 나무(洞神木)로, 수령 150년, 둘레 3아름이다. 매년 정월 14일(陰) 밤에 동민들이 제사를 지낸다. [傳說] : 옛날 이 나무가 눈물을 흘려서 도랑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도랑이 빨래터로 이용되고 있다. 4) 호명면 내신2리 못뒤 입구에 있는 고목(洞神木)으로, 동신제(洞神祭)를 지낸다. 이 날에는 마을 중 두 집을 뽑아서 그 사람들이 제주(祭主)가 된다. 제주 집 대문에 건구를 걸어 놓아서 다른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다. 또 공동우물에도 건구를 걸어 놓는다. 그 후에는 아무도 그 우물에 가지 못한다. 다만 제주만이 새벽 일찍 일어나 그 우물을 길어와 밥과 떡을 하여 제물을 준비한다. 제삿날 저녁에는 아이들이 아무도 자지 않고 나와서 제사 지내는 것을 지켜본다. 제사 뒤에는 음복(飮福)을 한다. 또 제사 때 사용한 불종지를 아들 못 낳는 집에 불을 꺼트리지 않고 가지고 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느티나무, 예천담암리(醴泉淡岩里) 느티나무 [亭子木] : 호명면 담암리 451번지에 있는 마을 보호나무로, 수령 120년, 높이 18m, 둘레 1.8m, 면적 660㎡이다.
느티나무, 예천본리(醴泉本里) 느티나무 [保護樹] : 1) 호명면 본리 34번지에 있는 면 보호 나무로, 전국 일련번호 3,729, 지역 일련번호 2, 수령 250년, 높이 20m, 둘레 2.2m, 면적 495㎡이다. 매년 1회 동제(洞祭)를 지낸다(保護樹誌 1972). 2) 호명면 본리 231번지 잡종지에 있는 도(道) 보호나무(堂山木)로, 전국 일련번호385, 지역 일련번호 20, 수령 600년, 높이 20m, 둘레 5.2m, 지름 12m, 면적 200㎡이다. 잎이 피는 상태로 흉년과 풍년을 점치고, 매년 음력 정월 15일에 동제를 지냈다. 최걸(崔傑)이 마을을 개척할 때부터 자생 봄꽃이 일제히 피면 풍년, 2-3번 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保護樹誌 1972, 郡 統計年報 1981). 3) 호명면 본리 231번지에 있는 군 보호나무(堂山木)로, 수령 600년, 높이 20m, 둘레 5.2m, 면적 60㎡이다. 4) 호명면 본리 231번지에 있던 면 보호나무로, 수령 250년, 높이 20m, 둘레 2.2m, 지름 13m, 면적 150㎡이었다. 강풍에 넘어져서 1990년 6월 26일에 도 고시(道告示) 143호로 면 나무에서 해제되었다. 회(檜)나무였다고도 한다.
느티나무, 예천산합리(醴泉山合里) 느티나무 [亭子木] : 호명면 산합1리에 있는 고목 두 그루로, 19세기 초에 심었고, 여름철에는 휴식처이다.
느티나무, 예천송곡리(醴泉松谷里) 느티나무 [堂山木] : 호명면 송곡리 423번지 임야에 있는 마을 보호 나무로, 전국 일련번호 5,082, 지역 일련번호 1, 수령 150년, 높이 20m, 둘레 4m, 면적 66㎡, 지름 14m이다. 삭정이가 많고, 동제(洞祭)를 지냈다.(保護樹誌 1972)
느티나무, 예천원곡리(醴泉原谷里) 느티나무 [堂山木] : 호명면 원곡리 501번지에 있는 면 보호 나무로, 수령 250년, 높이 35m, 둘레 6.2m, 면적 230㎡이다.
느티나무, 예천월포리(醴泉月浦里) 느티나무 [古木] : 호명면 월포리 월촌(月村) 남쪽 300m 지점 산밑 양지바른 곳에 있는 고목으로, 잎이 빨리 피었다가 늦게 져서 마을에서 소중히 여겼다. [傳說] : 옛날 어느 날, 벼락을 맞아 허리가 굽어서 몇 해 살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굽은 데서 가지가 다시 나와 전과 같이 자라고 있다.
느티나무, 예천종산리(醴泉宗山里) 느티나무 [古木] ; 호명면 종산리 상우당(尙友堂) 아래에 있는 고목으로, 높이 15m, 둘레 8m이다. 속이 비어 있어 다람쥐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한다.
느티나무, 예천형호리(醴泉衡湖里) 느티나무 [亭子木] : 호명면 형호리 46번지 밭에 있는 면 보호 나무로, 수령 250년, 높이 10m, 둘레 4.5m, 면적 495㎡, 지름 16m이다. 마을 어귀에서 타원형으로 자랐다.(保護樹誌 1972)
느티나무, 예천황지리(醴泉黃池里) 느티나무 [나무] : 호명면 황지리 논실을 개척할 때 심은 나무로, 마을을 보호해 왔고, 지금도 동신(洞神)으로 보호되고 있다.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느티나무가 있는 風景) [冊] : 정동주, 윤병삼의 저서로, 272쪽, 이룸에서 2002년 9월 10일에 발행하였다. [책 소개] : 느티나무 그늘에 한 번만이라도 앉거나 누워보십시요. 굳이 고향 느티나무 그늘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모든 느티나무는 형제거든요. 아니 이웃사촌의 너른 가슴과 아랑을 지녀서 누구든 밀어내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서늘한 그늘뿐이지만 그 밑에 가면 잃어버린 것들과 꿈꾸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이미 느티나무 그늘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르지요. 그 청년들은 도회의 사막에서 온갖 죽음의 징후들에 휘감긴 채 시들어가면서 시간이 없어서, 너무 바빠서 그 느티나무 그늘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노인들은 인간의 양식으로 삼기 위해 가축을 기르면서 가축에게는 곡식을 먹이고 인간은 굶주려야 하는 세상을 한탄하다 모두 떠났습니다. 꽃상여 타고, 마을 느티나무 앞에서 이별가로 불러주는 상두가도 없이, 영구차 통 속에 갇혀 화장터 기름불 속에서 뜨겁게 타 죽었습니다. 그래도 느티나무는 서 있습니다. 서서 기다립니다. 그 아이들과 그 청년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과 또 아이들의 아이들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서 있습니다...[엘리트2000 제공] [書評] : 느티나무는 한국인의 고향이며 어머니/ 느티나무 예찬서이자, 느티나무를 통해 한국의 뿌리로 다가가는 대중 역사서.「백정」「논개」등을 쓴 소설가이자 시인인 정동주는느티나무 있는 마을 풍경은 한국의 평화로운 얼굴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잊혀가는 '한국의 평화로운 얼굴'을 더듬어가기 위해 느티나무에 얽힌 숱한 민속적, 역사적 자료들을 동원한다. 당산 제사 때 돼지를 통째로 바치는 경북 예천 지방의 느티나무 동제 이야기, 불에 탔다가 수술을 받고 가까스로 소생한 경남 남해군 삼동면 은점의 느티나무 이야기 등등에 방방곡곡의 느티나무 사진 100여 컷을 곁들여 읽다 보면 어느새 고향의 동네 어귀 느티나무가 보일 것만 같다.[이종도 記者 韓國日報 2002-09-14]
느티나무거리 [길] : 호명면 종산리(宗山里) 고미 뒤에 있는 길로,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거리 [마을] : 호명면 월포리(月浦里) 우리개 아랫마 서쪽 길거리에 있는 마을로, 우리개의 동신목(洞神木)인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거리 : 虎鳴面 月浦里 소속으로, 우리개 아릇마 서쪽의 길거리에 우리개의 洞神木인 느티나무가 있던 거리 마을이다.(虎鳴面홈페이지 2013)
느티나무고개, 느티나무재 [고개] : 예천읍 통명리(通明里) 골마에서 절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19세기 초에 심어진 느티나무 3그루가 있는데, 그 중 2그루는 울창하고 한 그루는 벼락을 맞아서 작다. 이 느티나무 사이로 다니는 길이 있다. [傳說] : 옛날에 어느 점쟁이가 이 나무에 와서 매일 절을 하였다고 한다.
느티나뭇골(槐木谷) [골] : 용문면 구계리(九溪里) 구럴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느티나무가 있었다.
느티나무골 [들] : 용궁면 덕계리 달계(達溪)에 있는 밭으로, 옛날 이 곳에 감천 문씨(甘泉文氏)들이 살 때 느티나무가 번성하였다. 현재 문씨들은 문경시 호계면 놋점으로 이거(移居)하였고, 느티나무도 없다.
느티나무 동제(槐木洞祭) [터] : 풍양면 괴당리 삼괴(三槐) 마을에 있던 세 그루의 느티나무에서 지내던 동제로, 느티나무는 괴당리 216번지 즉 삼괴-여우리재 대구선(大邱線) 길목에 1그루, 여기에서 서쪽 150m 지점인 삼괴(三槐)-삼청(三淸, 三灘)-문경새재-서울선(線) 길목에 1그루, 동쪽으로 150m 지점인 삼괴-다인 진두(多仁津頭)-지보(知保)-예천선(醴泉線) 길목에 1그루가 있었다. 정월 보름 자정에 이 세 곳에서 동제를 지냈다. 먼저 장터말랭이(現在 洞祭 場所)에서 백설기, 밥, 술, 과실, 포(脯)를 차려놓고 일반 제사처럼 제사를 지낸 후 사고지(四古紙) 1/4씩을 잘라서 소지(燒紙)를 올리는데, 호주(戶主) 한 사람에 한 장씩 호주 이름을 부르면서 1년 내내 무병 무사(無病無事) 소원 성취하기를 기원한다. 다른 두 곳은 밥만 떠놓았다. 제기(祭器)와 제물(祭物)은 동리 재산인 밭 1,200평의 것으로 매년장만하고, 제기는 제사를 지낸 뒤 제주(祭主)가 차지한다. 또한 제주를 서로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동네 재산인 밭 400평을 1년 간 그저 경작케 한다. 제주는 정월 초1일부터 선정되는데, 1가구의 내외가 되고, 선정되는 날로부터 3개월까지는 흉사(兇事)는 보지 않는다. 금색은 동리 각 입구에 14일만 한다. 그러나 이 고목들이 없어졌다. 1914년부터는 장(場)이 섰던 장터말랭이에 옛날 괴목(槐木)이 섰던 자리에 4-5평을 마련하고, 괴목 한 그루를 심고, 제사지내기 위해서 돌을 세우고 주위에 돌을 깔았다. 돌은 촛불을 켜 두니까 이 불을 보호하는 바람막이 역할도 한다. 또한 1974년부터는 동리 재산인 밭을 논 620평으로 바꾸었고, 제주는 유고하지 않는 한 이장(里長) 내외가 되고, 제수(祭需)는 동답(洞畓)에서 나온 것으로 술, 과실, 포만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소지(燒紙)는 올리지 않고, 동민의 무병 무사를 기원하고 나머지는 이장의 보수 조로 그냥 지어먹는다. 보름날 아침에는 동민이 모여 음복하고 대동회(大洞會)가 열린다.
느티나무밖 [쉼터] : 지보면 도장리 구촌(九村)마을 뒷산 중 느티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단오절에는 그네를 매고, 봄에 잎이 피는 것을 보아 농사를 점치고, 여름에는 쉼터가 되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다.
느티나무숲 [터] : 감천면 진평2리(眞坪二里) 자봉에 있던 느티나무 숲으로, 1730년경에 심어진 느티나무가 10여 그루 있었으나 현재는 한 그루만의 큰 고목이 남아 있어 정자목(亭子木)으로 이용된다. →느티나무
느티나무와 향나무 [터] : 하리면 오류리(五柳里)에 있던 고목들로, 매우 높고 넓었다. [傳說] : 옛날 유명한 스님이 자나가다가 명당 자리 여서 갖고 있던 느티나무 지팡이와 향(香)나무 지팡이를 일정한 간격으로 꽂았다. 그리고 그 밭주인에게 그 관리를 당부했다. 그 주인은 마른 나무에서 무슨 싹이 나겠느냐고 반박했지만, 스님은 그저 좋은 재목으로 키워 달라고 부탁하고 사라졌다. 그 후 농부가 밭에 나가보니, 싹이 돋고 있었다. 농부는 스님이 시키는 대로 매일 나무에 물을 주고 성심껏 보살폈다. 그가 죽고 난 뒤에도 자손들이 열심히 보살폈다.
느티나무재 : →느티나무고개
느티나무 터 [터] : 보문면 신월2리(新月二里) 편달에 있던 나무의 터이다. [傳說] : 이 느티나무 밑에서 쉬는 사람은 복이 온다고 하여, 많은 사람이 이 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에서 자고 있을 때,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일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그러자 이 나무에서 귀가 달린 큰 뱀이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벼락이 이 나무에 떨어져 나무가 불탔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느티나무회 [團體] : 예천군내 새마을금고 직원으로 구성된 모임(會長 최철수)으로, 1995년에 창립되어 금융 발전과 친목을 도모하였다.(醴泉新聞 1996.3.28)
늑대 [動物] : 예천군에 서식하는 동물로, 학명은 Canis lupus chanco Gray이고, 개과에 속한다. 시각, 청각, 취각(嗅覺)의 발달이 굉장하고, 동작이 민첩하다.
늑대골 [골] : 예천읍 생천리(生川里) 북쪽 끝 용산1리 용사이동네 앞 용호정(龍湖亭)이 있는 골짜기로, 밤이면 늑대 소리가 용사이 마을에 들렸다고 한다.
늑바골 [골] : 용문면 직리(直里) 뒤에 있는 골짜기이다.
늘 고향으로 흐르는 강(늘 故鄕으로 흐르는 江 : 楊源植 時調詩選集) [冊] : 용궁면 월오리 출신인 효산(曉山) 양원식(楊源植, 1937- , 醴泉 長坪初, 醴泉中, 東國大 國語國文學科 卒業, 釜山 海東高 校長, 법연원 文化大 學長, 時調詩人, ‘동구문예’ 創刊, 釜山時調文學會 會長, 성파時調文學賞 運營委員長, 佛敎新聞 論說委員, 실상文學賞 本賞 受賞)의 저서로, 345쪽, 23cm, 부산 해광에서 1999년에 출판한 <시조시선집(時調詩選集)>에 수록되어 있다. 경북대학교 도서관 중앙단행본자료실에 소장되어 있고, 안동대학교 도서관 중앙대출실에 소장(청구기호 811.3 양67ㄴ)되어 있고, 그 외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건국대(상허), 경남대, 경상대, 고려대, 공주대, 광운대, 국민대, 금오공대, 단국대(중앙), 대구교대, 동양대, 부경대, 상명대(서울), 서강대, 서울대(중앙), 서울여대, 성균관대(중앙), 세종대, 순천향대, 숭실대, 신라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하대, 전남대, 전북대, 창원대, 한동대, 한양대(백남), 호남대, 홍익대이다.(keris 2003 2005)
늘근터골 [골] : 지보면 소화리(所華里) 백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늘근터산, 노현산(老峴山), 노선산(老仙山) [山] : 지보면 신풍리(新豊里) 피앗골 서쪽에 있는 산이다.
늘랑골, 널랑골 [골] : 하리면 은산리 현촌(縣村) 남서쪽 죽전(竹田) 뒷편에 있는 좁은 골짜기이다.
늘은골 : →너렁골
능고선생문집(能皐先生文集), 능고집(能皐集) [冊] : 용문면 상금곡리 출신인 능고 박신경(朴申慶, 1713-1790)의 문집으로, 6권 3책, 목활자본(木活字本), 30.6x20.8cm, 1910년(융희 4)에 출판되었다. 상하쌍변(上下雙邊), 반곽(半廓)은 21.1x17.5cm,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20자(字), 주쌍행(註雙行), 판심(版心)은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발문(跋文)은 1909년에 박주대(朴周大)와 1910년에 박만진(朴萬鎭)이 썼다. 목차는, 책천(冊天에 권1, 권2이고, 책지(冊地)에 권3, 권4이고, 책인(冊人)에 권5, 권6이다. 국립중앙도서관개인문고실에 소장되어 있고,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동국대(중앙)이다.(keri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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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