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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872:달봉교...닭싸움
작성자장병창 @ 2020.04.10 06:07:21

  도청신도시 예천 872 : 달봉교...닭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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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봉교(달봉교 建設 等 聞慶地域 懸案 懇談會 : 李翰成 議員·고윤환 市長·손태락 釜山國土廳長) [記事] : 고윤환 문경시장과 이한성 국회의원이 지역현안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고 시장과 이 의원은 2013년 8월 14일 손태락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문경 영순면 이목리와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를 잇는 달봉교의 설계 시 주변경관에 잘 어우러진 경관 조형물로 설계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오는 2014년에 완공될 수 있도록 조속한 공사를 요청했다. 이밖에 국도 34호선 호계~불정간 도로를 2015세계군인체육대회 개최 이전 개통해 줄 것과 영강교 경관 조형물 설치, 시가지와 원활한 차량흐름을 감안한 반곡교차로 개선, 교통사고 다발 구간인 문경 산양(불암)교차로 개선 방안도 요청했다. 고윤환 문경시장은 “이한성 국회의원의 주선으로 지역의 현안을 현장에서 건의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도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지역현안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 건의해 지역발전을 앞당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신승식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3.08.19)

 

  달봉재, 달본재, 월봉(月峰), 월봉산(月峰山) [山] : 유천면 연천리(蓮泉里) 웃갈마 옆과 개포면 갈마리(葛麻里) 사이에 있는 산으로, 주로 갈마리 동민들이 매년 정월 보름밤에 달맞이를 했다. 1974년 비행장 부지로 들어가 관제탑(管制塔)이 들어 서 있다.

 

  달부리 : →달우리고개

 

  달부리고개 : →달우리고개

 

  달분재 [山] : 유천면 고산리 오미(五美)에 있는 산으로, 정월 대보름에 달보러 간다.

 

  달성군사건에 대한 형평사 중앙총본부의 동정의 건(達城郡事件에 對한 衡平社 中央總本部의 動靜의 件) [公文書] : 예천형평사사건 등과 관련있는 공문서로, 1925년 9월 4일에 경성 종로경찰서장이 발송하여 동년 9월 5일에 경성지방법원 검사정이 수신한 검찰 사무에 관한 기록으로, 일제검찰 편철문서 경종경고비(京鍾警高秘) 제9909호의 1에 있다.(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템 2002)

 

  달안 : →다래이

 

  달아 달아 밝은 달아 [民謠] : 용문면 방송리(芳松里)에서 불리어지는 시집살이요이다. [內容] :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옥려 방에 들어갔다/ 선녀 방에 들어갔다/ 형님 형님 사촌 형님/ 시집사리 어떠튼고/ 친정에는 가니 말도 많고/ 시집에는 가니 숭도 많다/ [풀이] : 산에서 길로 가는 여자를 보고 부르는 노래이다.

 

  달안이 : →다래이

 

  달오이 : →다래이

 

  달우리고개, 달울고개, 달부리고개, 닭우리고개(鷄鳴峴), 계현(鷄峴) [고개] : 예천읍 생천1리(生川一里) 나붓들 서북쪽에 있는 고개로, 생천1리와 2리의 경계 지점이고, 용문면(龍門面) 통로이다. 고개의 정상에는 큰 노송(老松)이 버티고 서 있고, 주위에는 돌로 채워져 있다. 이 노송을 서낭당으로 모셔 용산리(龍山里)와 생천리에서 매년 제사를 지냈다.

 

  [傳說] : 1) 임진왜란(1592) 때 두사충(竇士沖, 杜師聰)이 이 고개를 지나 금당실(金塘室)에 이르러 이르기를, "금계(金鷄)가 앞에 있고 옥견(玉犬)이 뒤에 있으니, 마치 중국 양양(襄陽)의 금곡(金谷)과 같다."라고 크게 칭찬했는데, 금계(金鷄)라는 곳이 닭우리고개라고 한다. 2) 용문면 선리(仙里)에 사는 서씨(徐氏)가 가난하여 짚신 장사를 하며, 그 아들을 가르쳐서 마침내 그 아들이 벼슬을 하여 고을 원으로 도임하는 것을 보려고 하인에게 업혀서 예천읍 백전리(栢田里) 신거리에 가서 그 아들을 만나보고 어찌나 기쁘던지 정신없이 즐기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는데, 이 고개에 이르니, 닭이 울었다고 한다. 3) 조선 초기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백방으로 수도로 정할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우연히 지금의 용문면소재지(龍門面所在地)가 있는 금당실(金塘室) 부근에 당도하게 되었다. 앞에는 내가 흐르고, 뒤에는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수도로서 안성맞춤이라고 좋아했다. 그래서 부하 장수에게 닭 한 마리를 주면서 이르기를, "이 닭이 금당실에 닿을 때까지 울지 않으면 수도로 정하겠노라."라고 했다. 그런데 그 부하가 지금의 닭울이고개에 이르렀을 때 그만 닭이 울고 말았다. 그래서 수도의 후보에서 탈락되고 말았다 한다. 지금도 용문(龍門)을 "금당(金塘) 맛질 반서울" 이라고 부르고 있다 (권양하). 4) 이 고개에서 옛날에 닭을 많이 키웠는데, 이 닭들이 요란하게 울 때면 용산리(龍山里)에 큰 횡재(橫災)가 났다. 그래서 용산리 사람들은 닭울이고개로 불러 왔다고 한다. 5) 조선 때 어느 선비가 가사는 돌보지 않고 공부만 하여, 그의 아내가 품팔이를 하여 끼니를 이어가는데, 어느 날 아내가 품팔이를 나가면서 남편에게 이르기를, "여보, 이웃 집 논매기하고 오겠어요. 마당에 나락을 널어놓았는데, 날씨를 보니 소나기가 퍼부을 것 같소. 만약 소나기가 온다면 치워 주세요." 라고 하였다. 아내가 나간 지 몇 시간 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큰 소낙비로 변하여 갔다. 선비는 공부에 열중하다가 소낙비가 오는 것도 모르고 있어서 아내가 품팔이로서 얻어온 그 나락을 모두 물에 떠내려 보내고 말았다. 그 날 저녁에 돌아온 아내는 빗물에 씻기어간 나락을 보고 한숨과 더불어 화를 발깍 내었다. "아니! 여보, 당신은 공부만 하면, 먹을 것이 생깁니까? 당장 저녁 끼니마저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합니까? 이렇게 살 바에야 헤어져 삽시다. 나는 이 생활이 지긋지긋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부부는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 후 그 선비는 계속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오던 중, 이 달부리고개에서 옛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옛 아내는 이르기를, "지난번에는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용서하여 주세요."라고 하면서, 다시 살자고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냉담하였다. "쏟아진 물을 다시 물동이에 담을 수는 없오." 라고 하면서 그 선비는 떠나갔다. 아내는 옷을 찢어 나무에 걸어두고 돌을 던지면서 한없이 울기만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 고개를 넘는 사람은 돌을 던지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최영환). 6) 옛날 어느 선비가 한양을 가기 위해서 밤길을 떠났는데,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날이 밝기 전에 이 고개를 필히 넘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선비가 고개를 넘기도 전에 닭이 울어서 선비는 어떤 한을 품고 죽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이 고개를 닭울이고개라 한다.

 

  달우리고개(달울고개, 달부리고개, 닭우리고개(鷄鳴峴), 계현(鷄峴)) [傳說] : ᄋ 위치 : 예천읍 생천1리(生川一里) 나붓들 서북쪽, ᄋ 내용 : 생천1리와 2리의 경계 지점이고, 용문면(龍門面) 통로이다. 고개의 정상에는 큰 노송(老松)이 버티고 서 있고, 주위에는 돌로 채워져 있다. 이 노송을 서낭당으로 모셔 용산리(龍山里)와 생천리에서 매년 제사를 지냈다. ᄋ 전설 : 1) 임진왜란(1592) 때 두사충(竇士沖, 杜師聰)이 이 고개를 지나 금당실(金塘室)에 이르러 이르기를, "금계(金鷄)가 앞에 있고 옥견(玉犬)이 뒤에 있으니, 마치 중국 양양(襄陽)의 금곡(金谷)과 같다."라고 크게 칭찬했는데, 금계(金鷄)라는 곳이 닭우리고개라고 한다.

 

  2) 용문면 선리(仙里)에 사는 서씨(徐氏)가 가난하여 짚신 장사를 하며, 그 아들을 가르쳐서 마침내 그 아들이 벼슬을 하여 고을 원으로 도임하는 것을 보려고 하인에게 업혀서 예천읍 백전리(栢田里) 신거리에 가서 그 아들을 만나보고 어찌나 기쁘던지 정신없이 즐기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는데, 이 고개에 이르니, 닭이 울었다고 한다. 3) 조선 초기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백방으로 수도로 정할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우연히 지금의 용문면 소재지(龍門面所在地)가 있는 금당실(金塘室) 부근에 당도하게 되었다. 앞에는 내가 흐르고, 뒤에는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수도로서 안성맞춤이라고 좋아했다. 그래서 부하 장수에게 닭 한 마리를 주면서 이르기를, "이 닭이 금당실에 닿을 때까지 울지 않으면 수도로 정하겠노라."라고 했다. 그런데 그 부하가 지금의 닭울이고개에 이르렀을 때 그만 닭이 울고 말았다. 그래서 수도의 후보에서 탈락되고 말았다 한다. 지금도 용문(龍門)을 "금당(金塘) 맛질 반서울" 이라고 부르고 있다(권양하). 4) 이 고개에서 옛날에 닭을 많이 키웠는데, 이 닭들이 요란하게 울 때면 용산리(龍山里)에 큰 횡재(橫災)가 났다. 그래서 용산리 사람들은 닭울이고개로 불러 왔다고 한다. 5) 조선 때 어느 선비가 가사는 돌보지 않고 공부만 하여, 그의 아내가 품팔이를 하여 끼니를 이어가는데, 어느 날 아내가 품팔이를 나가면서 남편에게 이르기를, "여보, 이웃 집 논매기하고 오겠어요. 마당에 나락을 널어놓았는데, 날씨를 보니 소나기가 퍼부을 것 같소. 만약 소나기가 온다면 치워 주세요."라고 하였다. 아내가 나간 지 몇 시간 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큰 소낙비로 변하여 갔다. 선비는 공부에 열중하다가 소낙비가 오는 것도 모르고 있어서 아내가 품팔이로서 얻어온 그 나락을 모두 물에 떠내려 보내고 말았다. 그 날 저녁에 돌아온 아내는 빗물에 씻기어간 나락을 보고 한숨과 더불어 화를 발깍 내었다. "아니! 여보, 당신은 공부만 하면, 먹을 것이 생깁니까? 당장 저녁 끼니마저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합니까? 이렇게 살 바에야 헤어져 삽시다. 나는 이 생활이 지긋지긋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부부는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 후 그 선비는 계속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오던 중, 이 달부리고개에서 옛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옛 아내는 이르기를, "지난번에는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용서하여 주세요."라고 하면서, 다시 살자고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냉담하였다. "쏟아진 물을 다시 물동이에 담을 수는 없오."라고 하면서 그 선비는 떠나갔다. 아내는 옷을 찢어 나무에 걸어두고 돌을 던지면서 한없이 울기만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 고개를 넘는 사람은 돌을 던지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최영환). 6) 옛날 어느 선비가 한양을 가기 위해서 밤길을 떠났는데,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날이 밝기 전에 이 고개를 필히 넘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선비가 고개를 넘기도 전에 닭이 울어서 선비는 어떤 한을 품고 죽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이 고개를 닭울이고개라 한다.(張炳昌 2001.6.29 醴泉郡廳 編纂 豫定 <醴泉의 傳說> 寄稿文)

 

  달우리고개(鷄鳴峴) : ㅇ 위치 : 예천읍 생천1리(나붓들 서북쪽), ㅇ 내용 : 용문면 통로로 생천1리와 생천2리의 경계지점에 달우리고개가 있다. 이 고개를 달울고개, 달부리고개, 닭우리고개(鷄鳴峴), 계현(鷄峴)이라고도 부른다.

 

  고개의 정상에는 큰 노송(老松)이 서 있으며, 주위에는 돌로 채워져 있다. 생천리와 용산리 주민들은 이 노송을 서낭당으로 모셔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전설 1) 임진왜란 때 두사충(竇士沖, 杜師聰)이 이 고개를 지나 금당실(金塘室)에 이르러 말하기를, “금계(金鷄)가 앞에 있고 옥견(玉犬)이 뒤에 있으니, 마치 명나라 양양(襄陽)의 금곡(金谷)과 같다.”라고 칭찬했는데, 금계라는 곳이 닭우리고개라 한다. 전설 2) 용문면 선리(仙里)에 사는 서씨(徐氏)가 가난하여 짚신 장사를 하며, 그 아들을 가르쳐서 마침내 그 아들이 벼슬을 하여 고을 원으로 부임(赴任)하는 것을 보려고 하인에게 업혀서 예천읍 백전리 신거리에 가서 그 아들을 만나보고 어찌나 기쁘던지 정신없이 즐기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는데, 이 고개에 이르니, 닭이 울었다고 한다. 전설 3) 조선 초기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백방으로 도읍(都邑)을 정할 곳을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지금의 용문면 소재지가 있는 금당실 부근에 당도하게 되었다. 앞에는 내(川)가 흐르고 뒤에는 산이 가로 막혀 있어서 도읍지로 안성마춤이라 생각하고, 부하 장수에게 닭 한 마리를 주면서 이르기를, “이 닭이 금당실에 닿을 때까지 울지 않으면 도읍으로 정하겠노라.”라고 했다. 그런데 그 부하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그만 닭이 울고 말았다. 그래서 도읍의 후보지에서 탈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도 용문을 ”금당(金塘) 마질 반서울“이라고 부르고 있다.(권양하) 전설 4) 이 고개에서 옛날에 닭을 많이 키웠는데, 이 닭들이 요란하게 울 때면 용산리에 큰 횡재(橫災)가 났다. 그래서 용산리 주민들은 닭울이고개로 불러왔다고 한다. 전설 5) 조선 때 어느 선비가 가사(家事)는 돌보지 않고 공부만 하여 그의 아내가 품팔이를 하여 끼니를 이어가는데, 어느 날 아내가 품팔이를 나가면서 남편에게 이르기를, “여보, 이웃집 논매기하고 오겠어요. 마당에 나락을 널어놓았는데 날씨를 보니 소나기가 퍼부을 것 같소. 만약 소나기가 올 것 같으면 치워 주세요.”라고 하였다. 아내가 나간 지 몇 시간 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큰 소낙비로 변하여 갔다. 선비는 공부에 열중하다가 비가 오는 것도 모르고 있어서 아내가 품팔이로 얻어 온 그 나락을 모두 물에 떠내려 보내고 말았다. 그 날 저녁에 돌아 온 아내는 빗물에 씻기어 간 나락을 보고 한숨과 더불어 화가 벌껏 났다. “아니! 여보, 당신은 공부만 하면 먹을 것이 생깁니까? 당장 저녁 끼니마져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합니까? 이렇게 살 바에야 헤어집시다. 나는 이 생활이 지긋지긋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부부는 이혼(離婚)을 하고 말았다. 그 후 선비는 계속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科擧)에 급제하고 돌아오던 중, 이 달부리고개에서 옛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옛 아내가 이르기를, “지난번에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용서하여 주세요.”라고 하면서 다시 살자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쏟아진 물을 다시 물동이에 담을 수 없소.”라고 하면서 그 선비는 떠나갔다. 아내는 옷을 찢어 나무에 걸어두고 돌을 던지면서 한없이 울기만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 고개를 걸어서 넘어 가는 사람은 돌을 던지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최영환) 전설 6) 옛날 어느 선비가 한양을 가기 위하여 밤길을 떠났는데,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날이 밝기 전에 이 고개를 필히 넘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선비가 고개를 넘기도 전에 닭이 울어서 선비는 어떤 한(恨)을 품고 죽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이 고개를 닭울이고개라 한다.(醴泉邑홈페이지 2013)

 

  달울고개 : →달우리고개

 

  달지동(達池洞) [古洞] : 용궁현 서면(龍宮縣西面)의 행정 동리로, 1896년(건양 1) 용궁군 서면 달지동, 1914년 삼인동(三仁洞), 대율동(大栗洞)과 합병하여 문경군 영순면 달지리(聞慶郡永順面達池里) 달늪이 되었다.(慶北마을誌 下卷 1992)

 

  달지로(達池路) [道路] : 용궁현(龍宮縣, 邑部里) 남쪽에서부터 삼강(三江)을 건너 의성군(義城郡) 경계에 이르는 도로이다.(竺山勝覽 1934)

 

  달팽이요 [童謠] : 감천면 포리(浦里)에서 전승되어온 곤충요(昆蟲謠)이다. [內容] : 하마(달팽이) 하마 춤초라(추추어라)/ 너(네) 할부지(할아버지) 덤불 밑에/ 장구 치고 나온다./ (풀이) 하마는 달팽이의 사투리이다. 달팽이를 잡아서 손에 들고 건드리지 않으면 춤추듯 이리저리 흔들며, 만지면 몸을 움추러들어가 버린다. 다시 나오게 하려고(이대우)

 

  닭고기에 오염된 미생물의 감마선 살균(닭고기에 汚染된 微生物의 감마線 살균) [學術저널] : 용문면 죽림리 출신 권중호(權重浩, 1954- , 醴泉中, 醴泉農高 卒業, 慶北大 敎授) 등(조한옥, 이미경, 변명우(醴泉人) ...)의 논문으로, 한국식품과학회에서 1985년에 발행한 책 170-174쪽(5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 요약] : 닭고기의 위생적이고 경제적인 저장법 개발을 위하여 0, 5, 8및 10kGy의 감마선(線)을 조사(照射)하고 $3{sim}4^{circ}C$에서 41일간 냉장하면서 오염된 미생물의 살균효과를 조사(調査)하였다. 닭고기의 일반세균의 오염은 중온균이 $7.8{ imes}10^5/g$, 저온균이 $3.6{ imes}10^5/g$, 고온균이 $1.1{ imes}10^3/g$으로 나타났으며, 효모 및 곰팡이는 $3.0{ imes}10^3/g$마리, 장내세균 중 대장균군은 $2.1{ imes}10^3/g$, 또한 선택성이 감한 S S agar 배지에서 80마리의 시험구중 91%인 74마리가 분리되었고 8.0${ imes}$10/g정도였다. 감마선 살균효과에서 일반세균은 5${sim}$10kGy의 조사(照射)로 2${sim}$4log cycles이상 멸균되었고, 또한 5kGy이상의 조사(照射)는 효모 및 곰팡이, 대장균군과 다른 장내세균의 살균(殺菌)에 매우 효과적이며...(daum 2009)

 

  닭고기에 체했을 때 [民間療法] : 예천군에 전승되어온 약물요법(藥物療法)으로, 지네를 볶아서 가루를 내어 술에 타서 마신다.

 

  닭싸움 [놀이] : 예천군에서 행해지는 놀이로, 게임 도구 없이 어느 곳에서나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상대방과 몸싸움을 하여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손에서 발이 떨어지게 하면 이긴다. 각 팀에서 한 사람씩 대표 선수로 나와 게임을 해도 되고, 다섯 사람 이상이 1조가 되어 떼거리로 닭싸움을 해도 된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게임이다. ▶ 떼거리로 닭싸움을 할 경우 진 사람은 즉시 퇴장시키고, 상대 팀의 선수를 전부 퇴장시키는 팀이 이긴다.(인터넷 netian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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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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