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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892 : 대동운부군옥...(부, 예천 출신 최춘식(포천시`가평군 선거구)과 김병주(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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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범례(凡例)에 따라 자료 선택의 기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유학자인 만큼 불교 관계 기사나 사실적이 아닌 내용은 편파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나 고려 세계(世系)의 기록을 괴탄(怪誕)히 여긴 사실이나 신라시대의 방언이나 이항(里巷) 간의 비언(鄙言) 이어(俚語) 등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이라든가, 삼국사(三國史)가운데 선명(仙名)을 모두 황탄(荒誕)한 것으로 생각하여 후인 (後人)을 경계코자 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모두 기록한 것은 그의 역사적 안목이 뛰어났음을 알게 한다. 멋대로 한 글자 한 구절도 수정치 않고 사실 그대로 옮겨 적고 있다. 특히 신라가 연호(年號)를 사용하고 궁예(弓裔)가 연호를 고친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고, 고려 중엽 이전에 천자(天子)에게만 쓰던 조(詔), 제(制), 짐(朕)의 용어를 차칭(借稱)으로 간주하면서도 구사(舊史)의 문장을 그대로 적기(摘記)하였다. 이것은 유학자의 체취(體臭)를 반영한 것이지만 주체적 역사 의식이 번뜩임을 느끼게 한다. 더욱이 충신, 효자, 열녀의 선행을 더욱 자세히 기록한 것은 당시 유교 사회의 반영이지만, 인간의 기강을 바로 밝혀 세상을 가르치기 위한 미묘한 뜻이 내재(內在)한 것이고, 명환록(名宦錄)을 두어 수령(守令)의 현부(賢否)를 기록한 것을 수령의 행위가 백성의 휴척(休戚)에 관계되므로 그들의 분발을 촉구하여 유교 정치 이념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우선 적지 않은 양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고충이 얼마나 컸던가를 생각할 수 있다. 1798년(정조 22) 정범조(丁範祖, 1713-1801)가 쓴 서문(序文)에서 말한 것을 보면, 첫째 자료가 거의 인멸되어 있는 상태에서 많은 전적(典籍) 을 찾아 채록(採錄)하는 번거로움, 둘째 쓸데 없는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만 모아 권징(勸懲)으로 만드는 견식(見識)의 정박성(精搏性), 셋째로 오랜 세월 동안 심사숙고하여 책을 이룬 공력(工力)의 전일(專一)함을 지적하고 있다. 정말로 적절한 말임에 틀림없다. 이런 고충을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음유우(陰幼遇)의 <운부군옥(韻府群玉)>이 중국 중심으로 만든 것임에 반해, 우리 중심의 운서(韻書)를 만들어야겠다는 야무진 문화적 의식이 아닐까 한다. 간접적 자료이지만 권문해의 아들 권별(權鼈)이 편찬한 <해동잡록(海東雜錄)>에 홍여하(洪汝河, 1621-1678)가 쓴 발문(跋文)이 있다. 여기서 편찬 동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해동잡록>은 <대동운부군옥>의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내용만 간추려 만든 책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에, "우리나라 선비들이 우리나라 역사책을 읽지 않고 중국의 역사책만 읽기 좋아하여 수 천년 동안 종횡으로 중국 역사책만 읽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역사를 물으면 망연(茫然)히 알지 못함이 안타까웠다."라고 하였다. 한 나라 선비가 자신의 역사는 알지도 못하면서 중국의 역사만 종횡으로 공부하고 있는 안타가운 폐단이 가슴 아팠기 때문에 우리 중심의 운서(韻書)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동운부군옥>의 자료는 거의가 우리 측 자료이고 중국 측 자료는 우리 측 자료의 탈락된 부분만 보완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운사(韻史)"라고 함이 마땅할 것이다. 1789년 정범조(丁範祖)의 평가를 다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즉, "국조(國朝)의 수 천년의 사실을 찾아 조사하면서 산천 군국(郡國)과 풍요 토물(土物)이 수록되었으니 운서(韻書)의 하공(夏貢)이요, 인도(人道) 순역(順逆)과 국정(國政)의 선패(善敗)가 기록되었으니 운서의 노사(魯史)요, 명유석보(名儒碩輔)의 언행 사업(言行事業)을 기록했으니 운서의 명환록(名臣錄)이요, 공사실록(公私實錄)과 대소가집(大小家集) 및 다른 나라 문자도 고구(考究)했으니 운서의 예문지(藝文志)다."라고 극찬했던 것이다. 과장된 듯한 표현이라 생각이 될지도 모르나 18세기 말엽이라는 시대를 감안한다면 당시로서는 놀라운 업적이라 하겠다. 홍여하(洪汝河)도 1670년에, "동국(東國)의 저술을 평한다면 뭐니뭐니해도 <대동운부군옥>을 제일로 삼을 수 밖에 없다."라고 솔직히 표현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이 책의 간년(刊年) 사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김응조(金應祖, 1587-1667) 가 쓴 발문(跋文)을 통해 윤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동운부군옥>은 본래 정서(正書)한 상중하(上中下) 삼본(三本)이 있었는데,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이 옥당(玉堂)의 책임자로 있을 때 상본(上本)을 갖고 서울에 가서 임금에게 아뢰고 간행하려 했으나 임진왜란(1592)으로 오유(烏有)로 돌아갔다. 중본(中本)은 정구(鄭逑, 1543-1620)가 빌려 갔으나 이 것마저 정유재란(1597) 때 소실되었다. 지금에 이 책이 있게 된 것은 하본(下本) 때문이다. 권문해의 아들 권별(權鼈)이 예천읍 생천리의 정산서원(鼎山書院)의 교수(敎授)로 있을 때 글씨 잘 쓰는 친구가 한 벌 베껴 정산서원에 보관했다고 한다. 그 후 이 책은 권문해의 7세손 권진락(權進洛)이 간행하면서 정범조(丁範祖)에게 서문(序文)을 요청하게 되었다. 1798년에 서문을 쓴 것으로 보아 같은 해에 간행되었을 것이다. 그 후 1913년-1914년에 광문회(光文會)에서 활자본으로 권(卷) 1-9를 간행한 적이 있고, 1960년 정양사(正陽社)에서 신석호(申奭鎬) 소장본(所藏本, 1798年 初刊本)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전질(全帙)을 영인(影印)하여 세상에 유행하게 되었다. 또 1955년 백승각(百承閣) 목판(木版)으로 예천의 대창중고교(大昌中高校)에서 전질을 간행하였으니, 이것은 목판으로 간행한 마지막이다. 오늘날 이 책은 운자(韻字)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접근을 거부하고 있어 불편을 느끼는 점도 있지만, 사용된 6,135운자를 가나다순(順)으로 정리하면 훌륭한 사서(辭書)의 기능을 하리라 본다.(秦星圭 醴泉文化 2輯 1986)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冊] : 용문면 죽림리 출신 초간 권문해(草澗權文海)가 중국 원 나라의 음시부(陰時夫)가 지은 <운부군옥(韻府群玉)>을 본따서 우리나라의 단군 이래 조선조까지 수천 년 간의 사실을 망라하여 지리, 나라 이름, 성씨, 효자, 열녀, 수령(守令), 선명(仙名), 나무 이름, 꽃 이름, 짐승 이름등의 유목(類目)으로 나누어 운자(韻字)의 차례로 배열한 책(奎 1589)으로, 20권 20책, 목판본(後刷), 31.2x22.8cm,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3x17.6cm, 유계(有界), 10행(行), 1행 20자, 주쌍행(註雙行), 상하백구(上下白口), 판심(版心)은 상하 내향 이엽 화문 흑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黑魚尾), 판심 서명(版心書名)은 <대동운옥>이다.
음시부가 지은 <운부군옥>은 중국 역대 사실을 유별로 나누어 정리하였으므로 역사, 제도, 산천, 군국(郡國), 풍요(風謠), 토물(土物), 명유(名儒), 석학(碩學) 등 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관계까지 모두 망라하여 운자별(韻字別)로 역은 정평있는 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것은 실려있지 않으므로 권문해가 우리나라의 모든 서적들을 수집하고 또 중국의 저서 중에서 우리나라와 관계있는 서적들을 참고 인용하여 완성한 것이다. 본편(本篇)에 인용된 서목(書目) 을 보면, 중국 서적으로 <사기(史記)>, <한서(漢書)>, <삼국지(三國志)> 등 15종과 우리나라 서적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 <계원필경(桂苑筆耕)>, <신라 수이전(新羅殊異傳)>, <삼국사(三國史)>, <은대문서(銀臺文書)>, <고려문집(高麗文集)>, <고려도경(高麗圖經)>, <동국통감(東國通鑑)>, <고려본사(高麗本史)>, <동국사략(東國史略) 등 175종인데, 이 중에는 오늘 날 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책도 많이 있다. 권문해가 완성한 후 김성일(金誠一)이 한 본(本)을 선조 임금에게 올려 출판하기로 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간행되지 못하였다. 후에 7세손인 진락(進洛)이 1798년(정조 22)에 초판을 간행하였다. 그 후 1913-1914년에 광문회(光文會)에서 활자본으로 1-9권을 발행하고, 1950년에는 정양사(正陽社)에서 전질을 1책으로 영인 간행하기도 하였다. 표지에는 '대동운부(大東韻府)'라고만 쓰여있고, 권두(卷頭)에는 1798년(정조 22)에 형조 판서인 정범조(丁範祖)가 찬한 서문(序文), 1655년(효종 6)에 김응조(金應祖)가 쓴 발문(跋文), 1670년(현종 11)에 홍여하(洪汝河)가 지은 '해동잡록 발문(海東雜錄跋文)'과 범례(凡例) 24개조, 편집 서적 목록이 실려있는데, 중국 책 15종과 우리나라 책 175종의 책 이름과 저자 이름이 실려있다. [권1-4] : 상평성(上平聲) 15자(東, 冬, 江, 支, 微, 魚, 虞, 齊, 佳, 灰, 眞, 文, 元, 寒, 책)와 그 운(韻)에 속하는 글자가 들어있는 지리, 나라 이름, 성씨, 인명, 종실(宗室), 효자, 효녀, 열녀, 수령(守令), 선명(仙名), 나무 이름, 꽃 이름, 짐승 이름 등이 유별(類別)로 실려있다. [권5-8] : 하평성(下平聲) 15자(先, 蕭, 肴, 豪, 歌, 麻, 陽, 庚, 靑, 蒸, 尤, 侵, 覃, 염, 咸)와 그 운에 속하는 글자, [권 9-12] : 상성(上聲) 29자(黃, 腫, 講, 紙, 尾, 語, 虞, 薺, 蟹, 유, 軫, 물, 阮, 旱, 潛, 銑, 조, 巧, 皓, 가, 馬, 養, 梗, 형, 有, 寢, 感, 淡, ?)와 그 운자에 속하는 글자, [권 13-17] : 거성(去聲) 30자(送, 宋, 絳, 치, 未, 御, 過, 霽, 泰, 卦, 隊, 震, 問, 願, 翰, 諫, 霰, 嘯, 效, 號, 箇, ?, ?, 敬, 徑, 宥, 沁, 勘, ?, 陷)와 그 운에 속하는 글자, [권 18-20] : 입성(入聲) 17자(屋, 沃, 覺, 質, 物, 月, 曷, 힐, 초, 藥, 백, 錫, 職, 緝, 合, 葉, 洽)와 그 운에 속하는 글자의 어휘가 차례로 실려 있는데, 어휘, 글자, 구(句)의 해석을 붙인 후에 반드시 출전(出典)을 밝혔다. 우리나라의 지리, 풍물, 국호, 효, 열 등을 한시(漢詩)로 역는 데는 물론 역사와 국어학 연구에도 참고가 될 것이다. 규장각 뿐 아니라 국사편찬위원회(청구번호 A10C-2)에도 1900년대 후쇄(後刷)한 것을 소장하고 있고, 안동대학교 도서관 중앙한적실에 소장(청구기호 古041 권37ㄷ v.1-v.20, 청구기호 古西 723 권37ㄷ v.1-v.20)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卷1-9) [冊] : 용문면 죽림리 출신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편찬한 백과사전으로, 9권 3책, 신식활자본, 22cm이다. 경성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1913-1914년에 간행하였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全) [冊] : 용문면 죽림리 출신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 承旨)가 편찬한 백과사전으로, 635 (57)쪽, 영인본(影印本), 22cm이다. 1) 서울 정양사(正陽社)에서 1950년, 1957년에 출판한 <국고총서(國故叢書)> 1권에 수록되어 있고, 2) 서울 아세아문화사(亞細亞文化社)에서 1995년에 발행하였다. 안동대학교 도서관 중앙참고실에 소장(청구기호 R 031 권37ㄷ)되어 있고, 그 외 소장(所藏)된 대학 도서관은 경북대, 계명대(중앙), 상명대(서울), 서울대(중앙), 성균관대(서울), 울산대(중앙), 이화여대, 전주교대이다.(Keris 2001)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冊] : 용문면 죽림리 출신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편찬한 백과사전(DDC 039.57(18판))으로, 1책(면수 복잡), 26cm이다. 서울 아세아문화사(亞細亞文化社) 편집실에서 편집하여 1976년에 출판하였다. 소장(所藏)된 대학 도서관은 건국대(충주), 경기대(수원), 경남대, 경산대, 경원대, 고려대(서울), 군산대, 단국대(서울), 대진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동의대, 상명대(서울), 서강대, 서경대, 서울대(중앙), 서울여대, 세종대, 수원대, 신라대, 안동대, 우석대, 인하대, 청주대, 충북대, 한국방송통신대, 한국외대(서울), 한양대(아산), 홍익대(서울)이다.(Keris 2001)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冊] : 용문면 죽림리 출신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편찬한 백과사전(KDC 711)으로, 628쪽, 영인판(影印版), 27cm이다. 서울 이회문화사(以會文化社)에서 1971년에 출판하였다. 소장(所藏)된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 관동대, 대구가톨릭대, 대진대, 서원대, 숙명여대이다.(Keris 2001)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全) [冊] : 용문면 죽림리 출신인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 承旨)의 저서로, 635 (57)쪽, 22cm이다. 서울 정양사(正陽社)에서 1950년에 출판한 <국고총서> 1권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가톨릭대(성심), 경기대(수원), 경북대, 계명대(동산), 고려대(서창), 단국대(천안, 중앙), 대전대, 덕성여대, 상명대(서울), 서울대(중앙), 성균관대(중앙), 영남대, 울산대, 이화여대, 전주교대, 조선대이다.(keris 2003)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권1-9) [冊] : 용문면 죽림리 출신인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 承旨)의 저서로, 9권 3책, 신식 활자본, 22cm이다. 경성(서울) 조선광문사(朝鮮光文社)에서 1913-1914년 사이에 출판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서울대(중앙)이다.(keris 2003)
대동운부군옥(우리나라 最初 百科事典 <大東韻府群玉> 8年만에 完譯) [記事] :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이 한글로 번역되었다. 한국학술진흥재단과 경상대는 조선 중기 한학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편저한 백과서를 완역해 책으로 펴냈다고 2008년 1월 24일 밝혔다. <대동운부군옥>은 20권 20책으로 되어 있는데, 편찬 직후 선조에게 바쳐 나라에서 간행하려고 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다가 1798년(정조 22년)에 저자의 7대손이 초판을 펴냈다. 단군 이래 선조까지의 사실(史實)과 인물․문학․예술․지리․국명․성씨, 산․나무․꽃․동물 이름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계원필경 등 한국 서적 176종과 사기․한서 등 중국 서적 15종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완역사업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지원한 동서양고전명저 번역 총서에 포함되어 시작되었다. 2003년 절반 정도인 10권 10책이 나왔고, 이후 추가 지원을 받지 못했다가 이번에 전 20권 20책으로 완성한 것이다. 완역 작업은 경상대 남명학연구소 경상한문학연구회(담당 윤호진 교수)가 맡았는데, 그 기간은 무려 8년이나 걸렸다. 1차분 출판은 소명출판이 맡았다가 이번에 도서출판 민속원이 승계해 전집을 냈다. 이 책의 내용과 분량이 방대하다. 내용은 2만여 항목이고, 분량은 200자 원고지 3만 장 정도다. 독자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색인작업을 하기로 했다. 색인작업은 2권으로 진행된다. 색인 1책은 2만 항목을 가나다순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대동운부군옥>의 특성상 표제자의 끝 글자를 중심으로 색인을 하는 역순색인이 들어간다. 나머지 1책은 <대동운부군옥> 20책 전체에 대한 내용색인이다. 기록에 의하면, <대동운부군옥>은 일찍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권문해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김성일(金誠一, 학봉)은 이미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고 국가적인 사업으로 간행을 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으로 무산되었다는 것. 전문가들은 오늘날 이 책에 대한 평가는 500년 전 학봉이 했던 것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전해지던 책들의 편린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게 하나의 사례다. 일부 축약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작품들이 이 책 속에 들어 있다. 저자가 이 책을 만들 때 참고하였다는 참고서목에는 지금 전하지 않는 책들이 대략 40여 종 이상이나 소개됐다.
이 책은 방대하여 권문해가 혼자의 힘으로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이것을 간행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편찬이 된 지 350여 년이 지난 뒤에 후손들에 의해 판각이 이루어졌고, 그 판각은 지금 예천의 백승각(百承閣)에 남아 전한다. 윤호진 교수는 이제까지 이러한 가치를 몰랐던 것이 아니지만, 극히 일부 전문 지식인들만이 이 책을 활용하였다면서 이 책이 일반 독자들이나 학생들에게까지 쉽게 읽히지 못한 까닭은 물론 이 책 한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덧붙여 "지금 이 책을 번역해 낸 것은 이 책의 이러한 소중한 가치를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에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윤성효 記者 오마이뉴스 2008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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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출신 최춘식(포천시`가평군 선거구)과 김병주(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됨...축하합니다.
최춘식과 김병주(4·15 총선 '최춘식 전 경기도의원,김병주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당선) [기사] :' 4·15 제21대 총선에서 출향인 2명이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용문면 내지리 태생의 미래통합당 최춘식(64·미래통합당 경기도당부위원장) 전 경기도의회 의원이 '포천시·가평군' 선거구에, 은풍면 태생의 김병주(58·전 육군대장)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더불어민주당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최춘식 당선인은 육군대장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이철휘 후보를 3천8백96표 차로 따돌리고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최 당선인은 앞서 치러진 2018년 도의원 선거 당시 포천1선거구에서 민주당 김우석 후보와 맞대결을 펼쳤지만 야권의 분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 등이 여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면서 도의원 재선에 실패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최춘식 후보는 당선 소감에서 "먼저 주민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성원과 지지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오늘 당선은 포천시민, 가평군민 여러분 모두의 승리"라며 "오늘부터 저는 오직 지역주민만을 생각하겠다."고 감사를 전했다. 더불어시민당 김병주 당선인은 은풍초 5학년 때 아버지 직장 때문에 강원도로 전학, 황지초, 황지중, 강릉고를 거쳐 육군사관학교(40기·전 육군대장)를 졸업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끝으로 전역한 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을 지냈다. 이번 총선에서 외교·안보 전문가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추천 순위 12번을 배정 받았던 김 당선인은 시민당이 비례대표 17석을 획득하면서 무난히 국회에 입성했다.(예천신문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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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