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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893:대동운부군옥...대두의물리...대동향사(축,예천군)
작성자장병창 @ 2020.04.27 06:10:25

  도청신도시 예천 893 : 대동운부군옥...대동향사(부, 예천군(군수 김학동), 25일 경북도 저출생 극복 공모사업에 선정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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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운부군옥(百科事典의 嚆矢 「大東韻府群玉」) [記事] : ◇ 강상대(예천농고5회, 지보면 소화리 출생, 부산대 국문과 졸업)/ 소백산 기슭에 한 자락 자리잡고있으며, 문화유산인 보물 다섯 점을 소장하고 있는 천년고찰 용문사가 고풍스러움을 뽐내면서 자랑하고 있다. 그 사찰이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에 있다. 이 금당실이 금당곡(金堂谷)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유서(由緖) 깊은 고장에 역대 훌륭한 학자들을 배출한 금곡서원(金谷書院)이 있고, 즐비하게 늘어선 전통 고택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 옛날 명나라 장수가 금당실을 두루 살펴보고 중국의 양양 금곡(金谷)과 지형이 닮았다 하여 금곡(金谷)이라고도 했다. 연화정수형(蓮花淨水形)이라고도 했는데 마치 연못 속에 연꽃을 상징하는 극락정토(極樂淨土)의 명당자리를 잡고 있는 듯했다. 그 마을 이름을 금당이라고 한 것은 정감록(鄭鑑錄)에 의하면 조선 태조가 이곳을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던 곳이다. 금당실은 이렇게 국내의 명승지 중 열 손가락 속에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찬란한 불교문화를 이루고 지켜오면서 빛낸 용문사에는 우리나라 불교 사찰에서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중 유일의 회전식 불경 보관대인 윤장대(輪藏臺)가 있다. 불자들이 이 윤장대를 두 손 모아 돌리면서 자신의 소원을 빌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윤장대에는 수많은 불자들의 손때가 소원 성취를 이룬 수만큼 묻어 있다. 또한 아담하게 건축된 대장전의 지붕 모양은 완각이 잘린 듯이 팔자 모양으로 이루어진 이것은 정남에서 서쪽으로 15도 각도의 방위, 즉 정방(丁方)으로 정좌(丁坐)하고 있어 그 아담한 자태가 한결 돋보인다. 이 대장전에 모셔둔 목불좌상은 야무지고 단단한 대추나무로 만든 미륵불상과 목각탱(木刻幀))도 예술적 가치가 높은 가장 오래된 부처다. 금당실 전통 마을 근처에 울창한 송림이 우거진 솔밭도 시원하다. 그리고 낙동강 지류인 복천과 용문사 계곡, 청룡사 계곡으로부터 흐르는 계곡류가 만나서 삼각주를 이루는 운치 있는 비경이다. 여기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선생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인 현손이 세운 정자가 초간정이다. 이 초간정은 용문사의 계곡 냇물이 흘러 한 굽이를 꺾는 경치 좋은 곳에 바위가 우뚝 선 그 위에 초간정을 지으니, 그것이 곧 공중에 떠 있는 듯 단아한 자태를 이루고 있다. 선조 22년(1589)에 권문해 선생이 편찬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은 백과사전이다. 이 책을 지은 권문해 선생은 유서 깊은 학문의 고장, 충절의 고장, 인물의 고장 용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선조 때 학자로서 학문이 높은 선각자(先覺者)다. 그의 자(字)는 호원(灝元)이고, 호(號)는 초간(草澗)이다. 그는 벼슬이 감사(監司), 즉 관찰사에 이르렀다.

 

  이 백과사전은 원나라 음시부의 운부군옥을 본떠서 지은 책으로 단군으로부터 선조 때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적 사실, 인물, 지리, 예술, 저서 등 2만 개가 넘는 낱말을 운자의 차례로 기재하였다. 이 책이 곧 현대 사전의 시초가 되었다. 조선시대 여러 방면의 유명한 저서는 모두 인용되어서 더욱 높이 평가되며, 당시의 개인 저서로서는 으뜸가는 역작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대동운부군옥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그 당시로 보아 가장 놀랄 만한 저서임에는 틀림없다. 그 당시 우리말과 우리글을 갈고 닦고 다듬어 운자(韻字)의 차례를 따라 사전식으로 편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상의 수상(受賞)에다 최고의 훈장(勳章)을 받을 만한 대작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동운부군옥이 새로운 백과사전을 편찬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醴泉新聞 2011년 01월 04일)

 

  대동운부군옥 인명집람(大東韻府群玉 人名輯覽) [冊] : 용문면 죽림리 출신인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 承旨)의 저서로, 197쪽, 27cm이다. 서울 아세아문화사에서 1991년에 출판한 <한국학고사전총서(韓國學古辭典叢書)>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은 한문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 건국대(상허), 경산대, 경성대, 계명대(동산), 고려대, 국민대, 단국대(천안, 중앙), 대진대, 동국대(중앙), 동아대, 동의대, 부경대, 부산교대, 부산외대, 서강대, 서경대, 서울여대, 성균관대(중앙), 순천향대, 숭실대, 연세대, 울산대, 전주대, 청주대, 충남대, 한국외대, 한림대, 한성대이다.(keris 2003)

 

  대동운부군옥 책판(부) 고본(大東韻府群玉 冊板(附) 稿本) [冊] : 용문면 죽림리(竹林里) 대수마을에 있는 16세기 권문해(權文海)의 저서로, 보물 제878호(1986.10.15 指定)이다. 규모는 책판 667매(兩面) 고본 3종 27책이다. 이 전적(典籍)은 예천권씨초간파종택 경내 백승각(醴泉權氏草澗派宗宅境內百承閣)에 소장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대백과사전(大百科事典)으로 초간 권문해(草澗權文海, 1534-1591)가 1589년(선조 22) 대구 부사(大邱府使)로 재임할 때 편찬한 것이다. 내용은 송(宋) 나라 음시부(陰時夫)의 저서 <운부군옥>을 본떠서 단군 개국이래 조선 명종(明宗) 때에 이르기까지 역사, 지리, 문학, 철학, 예술, 풍속, 인물, 초목(草木), 금수(禽獸)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한자의 107운(韻)인 동동강지(東冬江支)의 순으로 편찬한 대사전인데, 임진왜란(1592) 이전의 역사적 사실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저자인 권문해는 예천인(醴泉人)으로, 호가 초간(草澗)인데, 일찍 퇴계 이황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에 일가를 이루어, 1552년(명종 7)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560년(명종 15)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한 후 내직(內職)과 외직(外職)을 두루 거쳤고, 1591년(선조 24) 동부승지(同副承旨), 좌부승지(左副承旨) 등을 역임한 학자이다. 이 전적은 대구 부사(大邱府使) 때 편찬하여 상(上), 중(中), 하(下) 삼본(三本)을 정사(正寫)해 두었는데, 상본은 저자가 작고하던 해(1592) 학봉 김성일(鶴峰金誠一)이 정부에 올려 간행하려다 임진왜란(1592)을 만나 잃어 버렸고, 중본(中本)은 한강 정구(寒崗鄭逑)가 빌려 갔다가 화재로 소실되었고, 하본 만이 본가에 소장되고 있던 것을 200년이 지난 1798년(정조 22)에 7세손 권진락(權進洛)에 의하여 각판(刻板)이 시작되고, 1836년(헌종 2)에 완료된 것이다. 그 후광문회(光文會)에서 활자본 권1-9를 발행(1913-1914)하였고, 정양사(正陽社)에서 전질(全帙)을 1책으로 영인 간행(影印刊行, 1950)하였다. 이 책에 대한 내용 소개를 김민수(金敏洙)가 <덕성학보(德成學報, 1958.12.15)>에 실었고, 김경한(金慶漢)이 <국어국문학(國語國文學, 1960)>에 실었다.(文學大事典 1981)

 

  대동운부군옥 책판(부)고본(자료=예천군) : 예천신문 | 2010.04.02. 11:43/ 대동운부군옥책판(부)고본(보물 제878호 1986.10.15 지정)/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166/ 소유자 : 권영기 (관리자:권영기)/ 자세한 설명 : 이 전적은 예천권씨종택 경내 백승각에 소장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대백과사전으로 초간 권문해가 선조 22년(1589) 대구부사 재임 시 만듬. 내용은 송나라 음시부의 저서 운부군옥을 본따서 단군개국 이래 조선 명종조에 이르기까지 역사, 지리, 문학, 철학, 예술, 풍속, 인물, 초목, 금수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한자의 107문인 동동강지의 순으로 편찬한 사전이다.(daum 2010)

 

  대동운부군옥 책판 부 초고본(大東韻府群玉冊板附草稿本) [文化財] : 용문면 죽림리 166번지에 있는 문화재로, 보물 제878호(86.10.15 指定)이다. 양면(兩面) 677판(板)이 세로 24.1cm, 가로 57.4cm, 두께 2cm로 1812년(순조 12)부터 1836년(헌종 2)까지 만들어졌다. 이 책의 저자는 권문해(權文海, 1534-1591)이다. 이 책은 권문해가 대구부사(大邱府使)로 재직 때인 1589년(선조 22)에 편찬을 완료하고 상중하(上中下) 3본(本)을 정사(淨寫)해 두었는데, 상본(上本)은 저자가 작고하던 해인 1591년(선조 24) 부제학 김성일(金誠一)이 가지고 상경(上京)하여 선조(宣祖)에게 진어(進御)하고 간행하려 하였으나 얼마 뒤 임진왜란의 발발로 간행을 보기도 전에 고본(古本)마저 잃어버렸으며, 중본(中本)은 정구(鄭逑)가 빌려가서 역시 화재로 소실되었고, 오직 하본(下本)만 본가(本家)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아들 별(鼈)이 정산서원 원장(鼎山書院院長)으로 있을 때 군내(郡內)의 선저자(善著者)를 모아 1본(本)을 등사(謄寫)하여 서원에 소장해 두었다. 그 뒤 200여 년이 지난 1798년(정조 22)에 7세손 진락(進洛)에 의하여 처음의 판각(板刻)을 시도하였고, 1812년(순조 12)에 권현상(權顯相)이 착수하여 24년만인 1836년(헌종 2)에 완료하였다. 이 책판이 그의 종가에 소장되어 왔는데, 1989년 1월 17일 책판 677판 중 122판을 도난당하였다가 종손의 노력으로 4월 13일 그 원수(元數)를 완전 복구하여 현재 종가의 경내 서고(書庫)에 잘 보관하고 있다. 이 책은 송(宋) 나라 음시부(陰時夫, 본명은 幼遇, 시부는 字임)의 <운부군옥>의 체제를 본떠서 우리나라의 역사, 지리, 문학, 예술, 풍속, 인물, 초목, 금수(禽獸) 등의 분야에서 고래(古來)로부터 조선 명종 때에 이르는 여러 사항을 한자의 107운(韻)으로 분류하여 편찬한 20권 20책의 거질류(巨帙類) 책이다. 이 책의 편찬에 있어서는 중국 서적 15종, 한국 서적 174종을 섭렵(涉獵)하였는데 그 중에는 오늘에 전하지 않는 도서의 일문(逸文)도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다. 개인의 저서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우수한 것으로 임란 이전의 사실, 인물, 지리, 예술 등 전반에 걸쳐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책판은 순조-헌종 때 이루어지기는 하였으나, 임란 이전 개인이 역은 유서(類書)로서는 양적 또는 질적인 면에서 가장 우수한 완질(完帙)의 대작(大作)이며 그 보존 상태도 양호하므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부 대동운부군옥 초고본(附大東韻府群玉 草稿本, 校正本) : <대동운부군옥>의 저자 권문해(權文海)의 종가(宗家)에는 <대동운부군옥>의 초고본이 전래하고 있는데, 체제 형식 등이 다소 다른 미완질(未完帙)의 3종 27책이다. 그 상태와 특징을 각각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신편대동운옥(新編大東韻玉, 卷首題) : 표제(表題)는 대동운옥(大東韻玉), 필사본(筆寫本), 18권 18책(20권 20책에서 제11, 18권이 없음), 반곽(半郭) 31x22.4cm, 4주단변(四周單邊), 유계(有界), 10행(行) 21자(字), 주(註)는 쌍행(雙行)이며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 규격은 36x25.7cm, 선장(線裝, 5針眼), 저지(楮紙)이다. 보존 상태는 책표지(冊表紙)가 다소 닳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별두(鼈頭)에 누락된 부분의 기사를 반초(半草)로 보기(補記)한 곳이 여러 군데이며, 표제 이면(表題裏面)에는 이 책의 체제 등을 8항(項)으로 나누어 적고 있는데, 예컨대 "운명백자 대이흑서(韻名白字代以黑書)"라 하여, 이 책의 편성체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특히 운자(韻字)는 이미 인쇄된 묵서(墨書)에 약물(藥物)로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김응조(金應祖)의 발(跋)에 의하면, 저자의 아들 권별(權鼈)이 정산서원 원장(鼎山書院院長)으로 있을 때 경내의 글씨를 잘 쓰는 자를 시켜 필사(筆寫)하여 정산서원에 간직하였던 그 책이 아닌가 여겨진다. ② 신편 대동운옥(新編大東韻玉, 卷首題) : 필사본(筆寫本, 草稿) 2권 1책(권 1-2), 반곽(半郭)은 26.6x17cm, 규격은 33.4x21cm인데, 이 책은 권문해의 초고본으로 추정된다. ③ 신편 대동운옥(新編大東韻玉, 卷首題) : 표제(表題)는 대동운옥, 필사본(定稿本), 8권 8책(현재 2.7.12.13.14.16.17.20), 반곽(半郭)은 26.1x19.1cm, 4주쌍변(四周雙邊), 유계(有界), 9행 21자, 주 쌍행(註雙行), 백구(白口), 내향 삼엽 화문 어미(內向三葉花紋魚尾), 규격은 35.4x32.2cm, 선장(線裝), 저지(楮紙), 발(跋)은 1655년 5월 풍산 김응조 근지(豊山金應祖謹識, 제20권 後尾 餘白에 書入한 것으로 本文과 字體가 다름), 위의 3종을 종합하면, 제11권, 18권은 결본(缺本)이 되는 미완질(未完帙)이다. 그리고 3종이 각각 체제 형식 서체(書體) 등이 약간씩 다르다. 그리고 3종 모두 권수 서명(卷首書名)이 <신편 대동운옥>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인용서일(引踊書日), 체제 등이 간본(刊本) <대동운부군옥>의 것과 다소 다른 부분이 발견된다. 이 초고본 등이 비록 결책(缺冊)이 있는 미완질(未完帙)이기는 하나, 전존(傳存)의 <대동운부군옥>을 편간(編刊)하는데 바탕이 된 자료인 점에서 가치가 있다.

 

  대동의원(大東醫院) [터] : 예천읍 노하리 32번지에 있던 병원으로, 의사 이상운(李祥雲)이 1967년에 개설하였으나, 그 후 폐쇄되었다.

 

  대동전도(大東全圖) [地圖] : 고산자 김정호(古山子金正浩)가 제작한 총도(總圖, 嶺南大 989-11, 登錄 2970-2991)로, 표제는 '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이다. 1질(帙), 22층, 채색, 필사본, 20x35.6cm, 도곽은 40x30cm이다. 축척은 매방(每方) 10리(=2.5cm), 1면은 80리x120리, 목판본을 그대로 필사한 것이다. 도로는 단선 10리 방점, 산지는 연결 산경식(連結山徑式), 하천은 쌍단선(雙單線), 방위는 도북(圖北)이다. 15층에 예천군, 용궁현의 지도가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대동전도(大同全圖, 大東輿地圖) [古地圖] :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지도로, 1질(秩) 22층, 채색, 필사본, 책 35.6x20cm, 도곽은 30x40cm이다. 축척은 매방(每方) 10리=2.5cm, 1면은 80리x120리이고, 목판본을 그대로 필사하였다. 도로는 단선 10리 방점(傍點)이고, 산지는 연결 산경식(山徑式) 산맥이고, 하천은 쌍단선이고, 방위는 도북(圖北)이다. 15층에 예천과 용궁의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國史編纂委員會 홈페이지 韓國통사 古地圖目錄)

 

  대동지도(海東地圖) [古地圖] :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지도로, 8책, 채색(彩色), 필사본, 책 47x30.5cm, 도폭의 세로는 제4첩 180cm, 제8첩 256.2cm이고 가로는 제4첩 228cm, 제8첩은 156.2cm이다. 도로는 홍선이고, 산지는 녹색이다. 제5첩 24에 예천현, 27에 용궁현의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도서번호 古大4709-41)되어 있다.(國史編纂委員會 홈페이지 韓國통사 古地圖目錄)

 

  대동지지(大東地志) [冊] : 아세아문화사(亞細亞文化社)에서 1973년에 발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1층 서고자료신청대에 소장(청구기호 041-147-20)되어 있다. 예천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www.nl.go.kr 2006)

 

  대동지지(大東地志) [冊] : 김정호(金正浩) 저서로, 한양대학교 부설 국학연구원(漢陽大學校附設國學硏究院)에서 1974년에 발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1층 서고자료신청대에 소장(청구기호 2700-24)되어 있다. 예천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www.nl.go.kr 2006)

 

  대동지지(大東地志) [冊] : 한국학문헌연구소(韓國學文獻硏究所) 편저로, 아세아문화사(亞細亞文化社)에서 1976년에 발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1층 서고자료신청대에 소장(청구기호 981.1-한638ㄷ)되어 있다. 예천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www.nl.go.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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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향사(大洞鄕祠) [터] : 지보면 만화리 사당골(祠堂谷)에 있던 사우(祠宇)로, 1545년에 이말손(李末孫), 이의(李誼)를 위해 세웠으나 훼철되었다.

 

  대동향사(大洞鄕祠) [터] : 지보면 만화리 사당골에 있던 사당으로, 1545년에 공주 이씨들이 세워서 방산재(方山齋) 이말손(李末孫)과 만강(晩岡) 이의(李誼) 양대의 조두지소(俎豆之所)였으나 훼철되었다.(龍宮鄕校誌 上卷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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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천군(군수 김학동), 25일 경북도 저출생 극복 공모사업에 선정됨...축하합니다.

 

  예천군 선정(예천군, 경북도 저출생 극복 공모사업 2년 연속 선정!) [기사] : “여성회관 리모델링을 통한 워라벨 지역거점센터 조성”/ 경북 예천군은 2020년 4월 25일 경상북도에서 추진한 저출생 극복 및 대응기반 구축 공모사업에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고 밝혔다. ‘경상북도 저출생 극복 대응 공모사업’은 저출생 및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지역 실정을 반영한 우수 모델 발굴로 맞춤형 저출생 극복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공모 신청을 받아 서류 심사 등을 통해 최종 7개 시군을 선정했다. 예천군이 공모한 ‘워라벨 지역거점센터 조성사업’은 기존 예천군 여성회관을 리모델링해 육아나눔 공간, 여성 취업 지원실, 다목적 홀, 강의실, 사무공간 등으로 리모델링해 일·가정 양립 종합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총사업비 4억 원을 투입해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공모사업은 도청신도시 조성 후 젊은 세대 유입으로 인해 유소년 인구 및 맞벌이 가구 수 증가로 양질의 여성·육아·보육·일자리·교육 서비스 등을 종합 지원할 수 있는 복합적인 시설 확충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추진하게 됐다. 김학동 예천군수는 “본 사업을 통해 지역 맞춤형 원스톱지원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저출생 극복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젊은 인구유입을 통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좋은 일자리 창출과 보육환경개선으로 젊은 세대들이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지역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홍준기 기자 프레시안 202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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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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