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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999:독양리...독정(축,신가은)
작성자장병창 @ 2020.07.13 06:10:32

  도청신도시 예천 999 : 독양리...독정(부, ◆ 예천여고 신가은 선수, 10일 제49회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10㎞W 경보에서 대회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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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사람인 김동인 장로가 들어와 예배를 보다보니 시골마을 어등교회는 주일이면 이 골 저 골 흩어져 사는 독양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예배도 보고 서로 안부도 나누는 사랑방 역할도 하고 있었다. 옥천초등학교와 소풍의 추억, 옛날부터 잘나가는 동네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기 마련이었다. 특히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법이라 집집마다 아이들이 올망졸망 자라는 마을 인근에는 그래서 학교가 꼭 있었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는 인근 마을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막강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 가까운 동네 아이들은 텃세라는 걸 부리기도 했었고, 같은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나왔다는 것은 곧 고향과 추억을 공유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옥천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한창 많을 때는 5~6백 명이 되었다고 한다. 감천초등학교 분교가 되었다가 페교가 되면서 지금은 개인에게 소유가 넘어갔다. 폐교가 색깔을 입혀 단장되어서 다른 문화공간으로 거듭난다니 나쁘지 않은 일인데 이제 크건 작건 웬만한 농촌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찾아보기 힘들게 된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전에는 어등역 근처에 옥천초등학교, 미호에 보문초등학교, 수계에도 초등학교가 있어 보문에만 학교가 3개나 됐었는데 다 페교가 되고, 그나마 인근에 감천초등학교가 학생이 몇 안 되어도 아직 남아있어 다행이라는 어르신들은 묻지 않는데도 젊은 사람이 적어 큰일이라고 마을 걱정을 한다. 지금 다 나가고 젊은 사람이 별로 없어요. 객지 갔다 들어와서 농사짓는 사람 중에 50대, 60대는 한 둘 더러 있어요. 그래도 손주 키워주는 집도 있고 독죽에 그 아들네가 물려받아 하는 정미소집도 있고 고등학생도 있고 어린 애들이 감천초등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몇 명 있어요.

 

  그런데 도청 들어오면서 그나마도 그쪽 학교로 전학 간다고 하대요. 우리 동네는 덜하지만 옆 동네나 예천 읍내 이야기 들어보면 젊은 사람들이 도청 쪽으로 많이들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동네에 젊은 사람들하고 애들이 있으면 아무래도 낫지요. 독죽마을 정미소와 경로당에서 만난 할머니들, 고려 유신 배상지가 절개를 굽힐 수 없다 하여 대나무를 심고 들어와 살았던 독죽마을은 독양리에서도 마을이 넓고 가구 수가 많은 곳으로 큰 도로가 지나는 마을 입구에 독양정미소가 있어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알고보니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있다는 그 집이다. 독양정미소라는 간판 아래 최춘택이라고 이름이 적혀 있어 독양리 일대에서 최춘택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지금도 통한다. 기척 없는 정미소를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에 더운 한낮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담배를 건조하는 중인지 열려있는 담배굴이 보인다. 후끈한 열기가 나는 담배굴을 뒤로 하고 돌아서니 더 갈 것도 없이 독죽경로당 앞이다. 동네가 조용하다 했는데 경로당 문을 여니 할머니들이 모여서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며 쉬고 있다. 다들 오전에 조금 전 본 담배굴에 담배를 엮어 매다는 일을 하고 고되서 점심 먹고 한잠 자기도 하고 쉬려는 참이었지만 손을 그냥 보내는 법이 없다고 들어오라고 한다. 정미소 간판에 최춘택이라고 이름이 적혀 있더라고 운을 떼는데 누워있던 할머니 중 한 분이 우리 영감 이름이라고 일어나신다.

 

  흉년에도 밥은 안 굶는다는 정미소 집에 시집온 이박순(73세) 할머니다. 할머니가 가리키는 벽에 걸린 독죽경로당 개관식 때 찍은 사진 속에는 정미소를 일구어 놓고 먼저 간 최춘택 할아버지가 있었다. 우리 양반이 정미소를 오래 해서 번 돈으로 마을 길 닦을 때도 땅을 내놓고 여기 독죽경로당 지은 땅도 먼저 간 우리 양반이 희사를 했어요. 여기 이 자리가 우리 땅이랬어요. 영감이 정미소를 하면서 돈 벌어가지고 동네를 위해서 좋은 일도 많이 했어요. 최춘택이 이름 걸고 정미소를 했잖니껴? 독양리 사람들은 그러이 우리 양반을 다 알았지요. 사진 속에서는 최춘택 할아버지가 여전히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있다. 최춘택 할아버지는 가셨지만 정미소를 아들이 들어와 이어서 지금도 하고 있는데 아버지 이름 석 자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하고 있다. 실제로 최춘택이라는 이름 석 자를 걸고 정미소를 운영했던 할아버지를 내가 만났던 독양리의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독양정미소도 문을 닫게 되겠지만 그 날이 조금 더 늦게 왔으면 하고 바래본다. 아들이 아버지의 그 간판의 의미를 다시 잘 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독죽경로당에서 목소리가 걸걸하고 크기로 소문난 안옥순 할머니는 친정이 통명으로 열아홉에 시집와서 60년이 넘어 이제는 친정 동네 살 적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고 한다. 열차도 타고 다녔지만 우리 독죽 사람들은 감천장 많이 봤지. 걸으면 십리 길인데 옳은 길이 없었어. 동네 뒤 산길로 직골재 고개 넘어 다녔지. 나락, 서숙, 좁쌀 그런 거 이고 지고 다른 게 뭐 있니껴? 곡식 팔아서 그때는 꽁치가 흔해서 그걸 사서 짚으로 묶어서 들고 집에 와 보면 더러 빠주코 오고 그랬어. 칠남매를 뒀는데 근처에 옥천초등학교 뿐이라 다 거기 다녔지.

 

  내 시집오고 한참 돼서 기차가 다녔어. 박정희 대통령 살아있을 때 박대통령이 개통식에 온다고 대통령 구경하러 갔어. 우리가 개통식 한다고 가서 태극기 흔들고 그랬지. 박대통령 온다고 함께 태극기를 흔들었던 경주 월성 손가 손춘미(78세) 할머니는 어등역이 생기던 해 첫 아들을 낳았다. 우리 첫째를 영주 장수면 친정에 가서 낳았는데 삼칠일 되자마자 시부모님이 아 보고 싶다고 빨리 데리고 오라고 해서 애를 들쳐 업고 왔는데 그때 어등역이 개통을 했어요. 사칠일 지나면 우리 친정아부지 생신이래서 그거 보고 오려고 했는데 조상되는 어른들이 손주 볼라고 오라고 못 살게 하잖니껴? 그때는 시어른이 하늘 같으니까 친정아부지 생신 못 보고 속상해도 왔지요. 그때 낳은 우리 큰 아가 철도공무원이 돼서 지금 장수역에 근무해요. 어른들이 기차소리 듣고 태어나더니 출세했다고 그래요. 내가 사십 여섯에 혼자 됐는데, 육남매 장남이다 보이 어매 고생한다고 맏이가 밑에 동생들 다 키우다시피 했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는 장남 자리가 그렇게 무거웠니더. 잘 살아주니 고맙지요. 이름을 밝히지 않은 김천이 친정인 '이실이' 할머니는 어등역이 간이역이 되는 걸 제일 안타까워한 사람 중 하나이다. 그전에는 기차 타면 한 번에 가던 김천 친정을 가려면 이제는 예천까지 버스로 가서 기차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데는 역 다 없애 뿌리는데 그래도 어등역은 안 없어지고 남아 있으니까 그게 우리마을 사람들한테는 추억이고 보물이래요. 우리가 전에 안동방송국 텔레비전에도 나왔는데 왜요? 그때 우리가 데모 했어요. 왜 데모했냐 하면 열차 다니게 해달라고 데모했어요. 기차를 계속 다니게 해달라는 시골사람들의 항의는 철도당국의 경제논리 앞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게 뻔했지만 그래도 독양리를 비롯한 일대 주민들이 모여 한 번 탄원이라도 해본다고 생전 안 해본 데모라는 것을 해보았다고 한다. 1966년 역이 들어선 이래로 많을 때는 하루에 다섯 번도 정차하다가 하루에 세 번, 그러다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2000년대 들어 상행선 하행선 하루에 두 번 정차하던 여객열차는 경제적 논리에 밀려 2007년에 적자가 큰 역들을 정리하게 되면서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간이역이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하루 한 번 지나가는 여객열차를 비롯하여 화물열차가 지나다니고 역사 일부를 철로 수선을 하는 보선 직원들이 사용하고 있으면서 어등역에 철로 보수 자재들을 보관하고 있어 다른 간이역에 비해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전국에 몇 개 남지 않은 간이역 중에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역사와 마을을 따라 곡선으로 휘어도는 기찻길을 만날 수 있어 기차마니아들이 입소문 따라 일부러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야기 끝에 1959년 경북 일대를 휩쓸고 간 사라호 태풍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결혼하고 난 뒤에 흉년이 져서 송구도 벗겨서 먹고 하던 시절도 있었어. 이박사(이승만 대통령) 살아 있을 땐데 태풍 와서 집도 떠내려 오고 소 돼지도 떠내려가고 그때가 신축년인가 그랬는데 여기 독죽은 피해가 덜했지만 저 아래 회관 있는 데하고 냇가 가까운 평장개 같은 데는 난리가 났지요. 태풍 피해가 적었던 안옥순 할머니에 비해 손 할머니네는 같은 독죽에 살아도 폭 파인 안쪽에 집이 있어 태풍 때 집안까지 물이 들어와서 추석 명절 준비를 하다가 급하게 대피를 했다고 한다. 물난리 날 때 우리가 저 아래 살았는데 태풍 때 우리 집에 물이 이만치 들어왔어.

 

  지금 옥천에 가 있는 전화국이 그때 저 아래 회관 있는데 있었는데 거기에도 물이 들어오고. 우리 아가 집에 부친 책 하고 짐이 아직 풀지도 않았는데 다 젖어 부랬어. 물 들어오는데 우리 시어른은 나오라고 하는데도 안 나오고 물 퍼내고 있어서 우리 집 양반이 끌고나오고 했어요.” 그렇게 독죽경로당에서는 어등역과 마을, 마을사람 심지어 태풍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독양1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우리의 근대기행은 앙고개의 열부비 앞을 지나 독양보건소가 있는 평장개로 넘어간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8-09-04)

 

  독양리 : →독양리 마을의 구성, →독양리 연혁

 

  독양리(篤陽里) 마을의 구성, 독양리 [里] : 독양리는 보문면(普門面) 행정 동리 중의 하나로, 독양리의 최고봉은 251m이다. [篤陽1里(진양, 독죽, 적성, 안현)] : 면적 233.2ha, 밭 38ha, 논 30ha의 경작지에 주요 소득 작물로 담배를 30ha 경작하고 있다. 92가구 575명(1973)이 살고 있다가, 79가구 444명(1980) 중 흥해 裵 24가구, 안동 權 22가구, 강릉 金 15가구, 기타 18가구가 살고 있었다. 그 후 77가구 321명(1992, 남167, 여157) 중 안동 權 15가구, 흥해 裵 15가구, 강릉 金 15가구 등이 살고 있다. 기차역이 마을 앞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하천도 잘 정리되었고, 마을창고와 양조장(釀造場)도 있다. 특산물은 담배, 채소이다. [篤陽2里(두곡, 막실, 평장개)] : 면적 273.9ha, 밭 26ha, 논 26ha의 경작지에 소득작물로 참깨 20ha와 쪽파 4ha를 재배하고, 양잠을 많이 하여 명주를 생산하고, 감나무도 집집마다 한 두 그루씩 있다. 102가구 603명(1973)이 살다가, 87가구 448명(1980) 중 인동 張 46가구, 의성 金 12가구, 기타 29가구가 살았다. 그 후 76가구 304명(1992, 남158, 여146) 중 인동 張 30가구, 의성 金 9가구 등이 살고 있다.

 

  독양리(篤陽里) 연혁, 독양리 [里] : 독양리는 보문면(普門面) 행정 리동 중의 하나로, 원래 예천군 보문면(醴泉郡普門面) 지역으로, 1914년에 독죽(篤竹), 진양(眞陽), 평고리(平古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독죽(篤竹)과 진양(眞陽)의 한 자씩 따서 보문면 독양동(普門面篤陽洞)이라고 하였다. 1961년에 1.2동으로 분동하였고, 1988년에 동을 리로 개칭하였다.

 

  독양2리와 공덕2리(국가균형발전위&농림축산식품부 주관 '새뜰마을사업'에 보문.풍양면 등 2개리 선정!) [기사] : 예천군은 2019년 4월 1일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부가 공동 주관하여 시행하는 '2019년 새뜰마을사업'에 보문면 독양2리, 풍양면 공덕2리가 최종 선정됐다고 밝혔다. 새뜰마을사업은 노후 슬레이트 주택, 재래식 화장실 등 주거환경이 다소 열악하고 취약계층의 비율이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생활안전 확보와 위생인프라를 구축하고 문화복지 등의 휴먼케어 사업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새뜰마을사업 선정을 위해 두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자발적으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예천군과 체계적으로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새뜰마을사업에 최종적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사업 선정으로 보문면 독양2리, 풍양면 공덕2리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에 걸쳐 약 45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예정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기반시설정비(위험요소 제거, 상하수도 설치, 재래식 화장실 정비, 마을 안길 정비 등), 주택정비(빈집철거, 슬레이트 지붕철거 및 개량) 등과 함께 휴먼케어(찾아가는 의료서비스, 요가교실, 노래교실 등)가 이뤄진다. 군은 주민과 행정의 유기적인 협조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만큼 앞으로도 정부기관의 정책사업에 지속적으로 참여, 지역발전을 위한 사업비 확보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관계자는 "이번에 선정된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세부계획을 수립 후 조속히 시행할 계획"이라며 "새뜰마을 사업을 통해 생활여건 개선과 주민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군은 2016년 감천면 수한지구가 새뜰마을사업에 먼저 선정돼 2019년까지 3년 동안 17억 원 사업비를 투자해 노후주택정비, 마을안길 개설 등의 사업을 추진 중이다.(정차모 기자 예천인터넷뉴스 2019-04-01)

 

  독양보건진료소(篤陽保健診療所 : 2002年度 保健달력 製作 配付) [記事] : 보문면 독양보건진료소에서 진료원과 운영위원들이 2001년에 이어 2002년 보건달력을 800부 제작해 5개 마을에 배부해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가운데 보건 의식 함양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이 달력에는 1월에는 고혈압의 원인과 합병 증상, 치료 예방법, 2월에는 요통 완화 운동 등 9가지 건강 운동법, 3월에는 골다공증, 4월에는 치매, 5월에는 당뇨병, 6월에는 암의 원인과 예방법에 대해 수록해 주민들이 달력을 통해 수시 보건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또, 7월과 8월에는 수인성 전염병과 말라리아 등 하절기 전염병에 대해, 9월과 10월에는 가을철 풍토병과 독감의 예방과 증상을, 11월과 12월은 구강과 건강 운동에 대해 상세하게 수록했다. 이 보건달력을 통해 주민들이 매일 달력을 보면서 1년 동안의 건강을 좌우명으로 삼아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고 건강을 실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 농촌 주민들의 각종 질병을 예방토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醴泉新聞 2002-01-03)

 

  독양1리 [記事] : 예천군 보문면 독양1리 최춘택 씨(65․독양정미소)는 2005년 9월 13일 면내 전 세대에 제수용 햅쌀 2㎏씩(400만 원 상당)을 전했다.(嶺南日報 2005-09-14)

 

  독양 진료소(篤陽診療所) [醫療] : 보문면 독양리(篤陽里)에 있는 보건 진료소로, 1986년 7월 24일에 설치하여 간호사를 배치하였다.

 

  독양천(篤陽川) [내] : 보문면 독양리(篤陽里)에 있는 내로, 영주시에서 발원하여 내성천(乃城川)에 합류한다.(醴泉郡誌 1939)

 

  독일 관념론(獨逸 觀念論 : 時代的 要請으로서의 칸트) [論文] : 예천 출신인 김윤구(明知大 敎授)의 논문으로, 대한헤겔학회에서 1995년에 발행한 <헤겔연구(혜겔硏究)> 6권 1호 356-399쪽(44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keris 2003)

 

  독일연방은행(獨逸聯邦銀行=Bundesbamk : 유럽을 支配하는 銀行 : 그 組織과 政治經濟的 파워의 實體) [冊] : 예천 출신인 신상갑(辛相甲, 1932- , 韓國經濟新聞 編輯委員)이 데이비드 마쉬(Marsh. David)의 저서를 번역한 책으로, 401쪽, 23cm, 서울 한국경제신문사에서 1993년에 발행하였다. 독일연방은행은 유럽을 지배하는 은행이었다. 목차는, 역자 서문, 머리말, 주요 등장인물, 1) 유럽의 중심, 2) 통화 방어의 길, 3) 독일연방은행의 이면(裏面), 4) 파열의 동반자, 5) 아이히스 마르크의 행진, 6) 연속성과 변화, 7) 이해타산의 문제, 8) 통일의 시련, 9) 유럽 통화의 모색, 10) 미래의 갈등, 용어 풀이(394쪽), 참고 문헌(397-401쪽) 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서고자료신청대에 소장되어 있고, 경북대학교 도서관 중앙단행본자료실에 소장되어 있고, 동 학과경제학에도 소장되어 있다.

 

  독일에 있어서의 권리 남용(獨逸에 있어서의 權利 濫用 =Abuse of Rights in West Germany) [學術저널] : 예천 출신인 송촌(松村) 박영우(朴영雨, 1934- , 忠南大 敎授)의 논문으로, 충남대학교 법률행정연구소에서 1981년에 발행한 <논문집> Vol.8 87-98쪽(12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 : Ⅰ. 權利藍用의 形成/ Ⅱ. 權利藍用法理의 擴大/ Ⅲ. 權利藍用法理의 適用/ Ⅳ. 結語(keris 2006)

 

  독자골 : →독적골

 

  독재이 : →독정

 

  독쟁이 : →독정

 

  독적골, 독짓골, 독자골, 독지골 [마을] : 용문면 방송리 반송(盤松) 서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에 상점 하나가 독점하여 원래 독점(獨占)골이라 하였다. 손동(孫東)이란 풍수가 이 마을 지형이 항아리 모습이므로, 항아리는 목이 가장 소중하니, 그 목을 다치지 말라는 말에 따라 항아리 목 부분에 해당하는 음지(陰地)마 뒷고개를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12가구 52명(1980)이 살다가, 7가구 20명(1992)이 살고 있다.

 

  독적골(독짓골,독자골) : 盤松 서쪽에 있는 마을로, 동네에 商店하나가 獨占하여 원래 獨占골이라 하였다. 손동이란 風水가 이 마을 地形이 항아리 모습이므로 항아리는 목이 가장 소중하니 그 목을 다치지 말라는 말에 따라 항아리 목 부분에 該當하는 陰地마 뒷고개를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龍門面홈페이지 2013)

 

  독적골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방송리 [芳松里, Bangsong-ri]/ 2016.07.22./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에 있는 리(里)이다. <script.. .독자골못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반송, 새터, 독적골, 당뒤가 있다. 반송은 방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blog.naver.com/hmi0419/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daum 2017)

 

  독양리 : 예천의 자랑 3544 : 예천대사전 제158권 오늘 나와, 총 31,600쪽 돌파(祝 임상기, 라이온스클.../ 장병창 편저/ (1931년), 도촌, 도화리, 도효자촌, 독실, 독싯골, 독양리, 독적골, 독정이, 독죽, 독짓골, 돈닷, 돌고개, 돌고지, 돌구마, 돌무덤, 돌문, 돌샘, 돌우물, 돌태, 동구(용문면), 동구(상리면), 동녘마, 동림, 동막(보문면), 동막(호.../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7)

 

  독적골지 [못] : 용문면 방송리(芳松里) 독적골에 있는 저수지로, 저수량은 7,000ton이다.

 

  독점골, 독점이 [골] : 보문면 오암1리(烏岩一里)에 있는 골짜기로, 옹기를 만들던 주토(朱土)와 백토(白土)가 난다.

 

  독점이 : →독점골

 

  독정(讀亭, 篤亭), 독재이, 독쟁이, 독징이, 독경(篤境), 옹정(甕井) [마을] : 보문면 신월2리(新月二里)에 있는 마을로, 골이 깊어 독(甕)처럼 생긴 데서 독정이라고 하였다. 또 거제 반씨(巨濟潘氏)들의 정자인 독정(讀亭)이 마을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다듬은 돌다리가 있었는데, <비기(秘記)>에서 이르기를, "석교(石橋) 위에 피난할 곳이 있다."라고 했기에 피난처로 알려졌다. 또 옛날 독경사(篤境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17가구 92명(1980) 중 거제 반씨를 주로 하여 진성 李, 평창 李, 파평 尹 등이 살고 있다. 거제 반씨는 1820년 경 예천읍 고평리(高坪里) 가시내에서 첫 이거하여 대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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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천여고 신가은 선수, 10일 제49회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10㎞W 경보에서 대회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수상함...축하합니다.

 

  신가은(예천여고 신가은 선수, 10㎞W 경보 ‘대회 신기록’으로 금메달) [기사] : 경북 예천여자고등학교 육상부 3학년 신가은 선수가 2020년 7월 10일 열린 ‘제49회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10㎞W(경보)종목에서 50분 01초의 대회신기록으로 금메달(1위)을 차지했다. 12일 예천여고에 따르면 신가은 선수는 육상부 최인해 감독과 이민희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으며 각종 고등부 육상대회 경보 종목에 참가하여 유망주로 주목을 받아왔다. 최인해 예천여고 육상부 감독은 “학생들이 땀 흘리며 열심히 훈련한 노력들이 이렇게 결실을 맺어서 매우 자랑스럽다”며 “앞으로 예천여고에서 육상 국가대표들이 나올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신가은 선수는 “비록 훈련은 힘들지만 대회에서 입상해 그 동안의 노력을 보상받게 돼 너무 행복하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장성훈 기자 아시아투테이 2020.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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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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