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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000 : 독정,,,독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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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정 : 독정/ (지번) 경북 예천군 보문면 신월리/ 카테고 리지명(daum 2017)
독정(讀亭) [터] : 보문면 신월리(新月里) 독제이에 있던 정자로, 현재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독정골 : →독죽
독정이 : 普門面 新月里 소속으로, 돌다리 서쪽에 있는 마을.(普門面홈페이지 2013)
독주산 : →도주산
독주정(讀做亭) [터] : 풍양면 청곡리 청감리(靑甘里)에 있던 정자로, 동래인 진사 정익하(進士鄭翊夏)가 세웠다. 지금은 없다.(竺山勝覽 1934)
독주정(讀做亭) [터] : 풍양면 청감리(靑甘里)에 있던 정자로, 진사 정익하(鄭翊夏)가 창건하였다. 지금은 없다.(龍宮鄕校誌 上卷 2005)
독죽 : 普門面 篤陽里 소속으로, 막실 서쪽에 있는 마을. 소가 죽을 먹는 형국이라고 한다.(普門面홈페이지 2013)
독죽(웰빙 熱氣 속 歸農村者 늘어 醴泉郡 독죽마을) [記事] : 최근 웰빙 열기 속에 삭막한 도시 생활을 떠나 자연의 숨결이 살아있는 농촌 지역을 택해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사람들이 귀농 정착촌을 형성해 주목을 받고 있다.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독죽마을에는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 속 삶을 추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이주한 20여 명이 모여 귀농 정착마을을 이루고 있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는 이농 현상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곳에 처음 둥지를 튼 가족은 충북 제천에 살다가 이 마을로 이주한 조경신(51) 씨 가족. 이어 2003년 진주의 김모 씨 가족, 2004년 2월에는 제천 이모 씨 가족 등이 옮겨와 버려졌던 마을을 이제 6세대 25명이 살고 있는 귀농 정착마을로 만들었다. 이 마을로 주민등록을 옮기고 이주해 살고 있는 주민들은 농사를 지으며, 그 동안 바쁜 도시생활 속에 미뤄왔던 자신들의 취미 및 교양 생활도 함께 하며 잊고 살아왔던 이웃 간의 정을 듬뿍 느끼며 살고 있다. 최근 이 곳에 정착한 미국 영주권자인 레이영 김씨의 경우 예천읍 내에 어학원을 개원해 농촌 생활에 적응하고 있으며 이러한 소식을 들은 순천, 평창 등의 3세대 10여 명도 이곳에 이주할 계획이다. 정착 마을 주민 김석운(34) 씨는, 평소 전원생활을 동경하다 도시 환경과는 달리 맑고 깨끗한 자연이 그대로 남아있고 순수한 인심과 정겨운 이곳을 보고 정착을 결심하게 됐다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벗하며 살기에는 이곳이 최고라며 마을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이곳 정착촌은 교통 불편과 이농 현상으로 마을 주민들이 이곳을 떠난 지 20여 년 동안 휴경지 상태로 방치돼 왔다.(정후섭 記者 慶北每日新門 2004-03-27)
독죽('살아있는 農村 숨결 느껴요' : 都市 生活 떠나 아름다운 삶 追求) [記事] : 최근 자신만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웰빙 열기 속에 삭막한 도시 생활을 떠나 자연의 숨결이 살아있는 농촌 지역을 택해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귀농 정착마을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속칭 독죽마을은 그 동안 이농 현상으로 마을 주민들이 이 곳을 떠난 지 20여 년이 되는 산간 오지마을이지만 요즘 자연을 사랑하며 삶을 추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이주한 20여 명이 모여 귀농 정착 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 곳에 처음 둥지를 튼 가족은 충북 제천에 살다가 이주해온 조경신(51세) 씨를 비롯해 2003년 진주에서 김모 씨 가족, 2004년 2월에 제천의 이모 씨 가족 등이 옮겨와 버려졌던 마을이 이제는 6세대에 25명이 살고 있는 귀농 정착촌으로 변신했다. 처음 이 곳에 귀농을 정착한 조씨는 같은 신앙을 가진 교우들로부터 이 마을을 소개받고 2003년 군청을 방문해 정착에 따른 상담을 하는 과정에 필요한 각종 인ㆍ허가 관계, 민원처리 과정을 군으로부터 적극적인 도움을 받고 귀농을 결심했다는 것. 주민등록을 이 마을로 옮기고 이주해 살고 있는 귀농 정착마을 주민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그 동안 바뿐 도시 현대 생활 속에 미뤄왔던 자신들의 취미와 교양 생활도 함께 하면서 잊고 왔던 이웃 간의 정도 느끼며 살아가는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귀농인들이 이주 결심 당시 우려했던 자녀들도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해 친구들을 사귀며 농촌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데다 최근 이 곳에 정착하여 읍내에서 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영주권자인 레이영 김씨와 미국인 남편, 관련 강사 7명과 순천, 평창 등지에서 3세대 10여 명 등이 전입이나 이주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석운(34ㆍ귀농정착마을 주민) 씨는 평소 농촌 전원생활을 동경해오다가 도시환경과는 달리 맑고 깨끗한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고 순수한 인심이 더없이 정겹다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기에는 이 곳이 최적지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한편 군은, 상리면 속칭 독죽리 마을이 자연스럽게 귀농 정착마을로 형성됨에 따라 심각한 농촌 인구 감소를 줄이고 농촌 지역 활기를 되찾는 새로 운 문화적 변화로 삭막했던 산골마을이 활기와 정담이 넘치는 농촌 마을로 변신할 수 있다면서 많은 입주를 당부했다.(박세명 記者 大邱日報 2004-03-28)
독죽(독죽마을 歸農定着村 歡迎式) [記事] :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농촌 지역으로 되돌아 온 것을 환영합니다.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독죽 마을에 삭막한 도시 생활을 떠나 자연의 숨결이 살아있는 농촌 지역을 택해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사람들로 자연스럽게 이룬 귀농정착촌에 2004년 3월 27일 오전 김수남 군수를 비롯해 지역 주민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 행사를 가졌다. 김수남 군수는 환영사를 통해, 물 맑고 인심 좋은 곳에 귀농인들이 자연스럽게 정착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젠 각자 예천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역 발전에 보다 많은 성원과 깊은 애정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이 날 김 군수는 귀농정착촌 주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의 번창과 안녕을 기원하는 뜻으로 상록, 부귀, 장수의 의미를 담고 있는 천념기념물로 지정된 석송령 후계목 소나무 기념식수도 가졌다. 한편 상리면 명봉리 독죽 마을은 주민들이 모두 떠난 지 20년이 되는 오지 마을이었으나 이젠 자연속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6가구 25명이 귀농정착마을을 이루고 있어 적막한 산골마을이 다시 활기와 정담이 넘치는 농촌마을로 바뀌고 있다.(박세명 記者 大邱日報 2004-03-29)
독죽(텅비는 農村-(3) 人口늘리기 그 길은? 自然景觀 資源化 都市民 솔깃할 政策을) [記事] : 전문가들은 인구 늘리기에는 '분명 길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 대안으로 귀농, 테마 마을, 그린 투어리즘 등을 제안했다. 경북대 농업경제학과 장우환 교수는, "일본은 가구당 1억 엔을 보조하고 무상 임대주택까지 제공해 귀농을 장려하고 있다"며, "정부도 귀농 가구의 영농 자금, 보금자리, 교육 문제 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경북연구원 유병규 박사는, "퇴직자촌, 예술가촌, 장수촌, 동호인촌 등 테마마을 조성도 인구 늘리기의 대안"이라고 밝혔다. 유 박사는, "농촌 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추진하는 고전적 출산장려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귀농, 테마마을 등을 통해 사람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했다. 장우환 교수는, "전통 농업 소득의 감소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활성화하는 그린 투어리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그린 투어리즘은 물, 공기, 산림 등 자연경관을 있는 그대로 관광자원화해 제3의 소득을 올리는 농촌 살리기 운동"이라고 말했다. [예천 상리 독죽마을] : 도시에서 살던 조경신(51) 씨는 2003년 초 경북 산간 오지마을에 새 둥지를 틀었다. 포도밭을 조성한 조씨는 최근 첫 수확을 끝내고 시험 재배한 20박스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조씨가 정착한 마을은 예천군 상리면 가리재. 일명 독죽마을이다. 폭 2m 산길을 따라 700m쯤 올라가야 하는 이 곳은 오지 중의 오지라 이미 1970년대부터 텅 비어 있던 곳이다. 하지만 현재 독죽마을에는 조씨를 시작으로 벌써 5가구, 20여 명이 귀농했다. 목사, 사업가, 학원강사 등 귀농민 모두가 도시에서 살던 '현대인'이었다. 이들은 왜 이런 벽지에서 새 인생을 설계하고 있을까. "하루하루 숨 가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003년 11월 이곳으로 귀농한 장영국(41), 김미숙(39) 씨 부부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흙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이곳 주민들은 2005년부터 복분자단지 2천여 평을 함께 경작할 계획이다. 3월엔 1가구가 더 입주해 식구도 늘어난다. "이웃끼리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모여 정을 나눕니다. 맛있는 음식은 꼭 돌려 먹고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언제나 함께죠." 적막했던 산골마을은 다시 활기를 찾고 있었다.(기획탐사팀=이종규 記者 이상준 記者 每日新聞 2005년 02월 14일)
독죽(新歸去來辭 .11 : 醴泉 信仰人 定着村 獨竹마을, 都市 버리고 自然을 벗삼으니, 물소리․바람소리 믿음․幸福 禮讚하네) [記事] : 4년 전 조경신 씨 부부 첫 터전, 딸은 대안학교서 아이들 가르쳐, 美 공무원 출신 원어민 교사도, 한국인 아내와 함께 정착, "미국에 있는 아들 오면, 농촌밥상 차려주고파" 6가구 20명 오순도순, "인터넷․수돗물 없어도, 여기가 더 좋아요" 한적한 시골이나 호숫가에 집을 짓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을 깨며 뜰 한 모퉁이의 텃밭을 가꾸는 소박한 전원생활은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민들 마음 한 구석에 공통으로 자리잡고 있는 동경의 삶이다. 하지만 막상 도시생활을 접고 귀향을 생각해 보면 자식들의 교육문제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도시생활을 과감히 뿌리치고 시골에 정착한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 속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 신앙을 같이하는 교우들과 함께 정착촌을 이루며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상리면 독죽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예천읍에서 승용차를 타고 927번 지방도를 따라 충북 단양 쪽으로 가다 상리면 소재지를 지나기 전에 좌측으로 돌아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10여 분쯤 가다보면 예천에서 오지로 손꼽히는 독죽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마을 진입로에서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철재와 목재로 지은 주택이 100여 m 간격으로 듬성듬성 나타난다. 이곳 독죽마을은 1970년대까지 토박이 마을주민 20여 가구가 살았으나 이농현상과 교통 불편으로 뿔뿔이 떠난 뒤 30년 가까이 버려져 있었다. 이곳에 처음 둥지를 튼 가족은 충북 제천에서 건축업과 농업에 종사하다 4년 전 이곳으로 이주한 조경신 씨(52) 부부. 조씨는 같은 신앙을 가진 교우들과 함께 정착하며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을 다니다가 통째로 버려진 독죽마을을 소개받고 교우들에게 귀농을 적극 권장해 지금은 6가구 20명이 이 곳에서 자유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취재차 조씨의 집에 들렀으나 마침 중국여행 중이어서 마을에서 목회일을 맡고 있는 김성훈 씨(35)를 만났다. 경남 진주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 2002년 이 곳으로 정착한 김씨는 부인과 함께 집 앞뜰에서 잔디를 심다 취재진을 보자 일손을 멈췄다. 기자가 '신귀거래사' 취재차 들렀다고 하니 특별히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욕심 없이 아름다운 자연과 벗하며 모두가 한 가족처럼 터놓고 지낸다."며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마을에는 간판, 광고, 건축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있어 일이 있을 때면 함께 일하지만 평소에는 고추, 가지, 고구마 등 텃밭을 일구는 농사일 등으로 소일한다. 2005년에는 군에서 가구당 300평씩 복분자 묘목과 지주 등을 지원해 군농업기술센터 직원들에게 기술교육도 배우고 주민들끼리 모여 비디오 등을 통해 농사짓는 방법을 습득해 나가고 있다. 의외로 젊은 부부들이 눈에 띄어 김씨에게 '자녀들 교육에 대해 어려움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60여 평의 교회 내 대안학교로 안내했다. 왈덴스(스위스의 한 지명) 대안학교에는 초등학교 2~5학년 학생 4명과 유치원생 1명이 학년 구분 없이 둥글게 앉아 영어회화를 배우고 있다. 교사는 마을에 처음 둥지를 튼 조경신 씨의 딸 온유 씨(27). 미국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에서 교육학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국어, 성경, 영어, 수학 등 일반 교재를 사용해 하루 3시간씩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조씨는, "어릴 때부터 농촌생활을 동경해 왔고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한국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호연지기를 기르는 교육자가 되길 꿈꾸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가족은 2003년 4월 이 곳에 정착한 미국인 파울레이 씨(55)와 한국인 부인 레이영 김씨 가족. 미국 로스앤젤레스가 고향인 파울레이 씨는 어려서부터 꿈꾸던 농촌생활을 잊지 못해 부인과 상의한 끝에 미국보다 산하가 아름답고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살기로 작정했다. 새크라멘토주 공무원으로 안정된 미국생활을 누렸던 파울레이 씨 부부는 96년 한국으로 이민해 와 강원도교육청 원어민 교사로 원주중학교 등지에서 4년 간 영어를 가르쳤다. 이 부부가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자리잡은 곳은 충북 제천의 어느 농촌마을. 그러나 이들 부부가 바라는 순박한 농촌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결국 틈이 나는 대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물색하다 같은 신앙을 가진 조씨를 만나 아예 이 곳에 둥지를 틀었다. 이 부부는 마을의 버려진 땅 2만5천 평에 사과와 밤나무 등 유실수를 심고 20평짜리 슬레이트집을 구입해 1천만 원을 들여 지붕을 새로 올리고 창문도 알루미늄 새시로 바꾸는 등 현대식으로 개조해 생활하다 공간이 협소해 최근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신축 중이다. 현재 예천읍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레이영 김씨는, "미국에 살면서부터 농촌 전원생활을 동경했는데 이 곳에는 도시환경과 달리 깨끗한 자연이 그대로 남아있고 순후한 인심이 더 없이 정겹다"며 귀농 배경을 설명한 뒤, "오랫동안 미국생활에 길들여진 남편이 문화와 생활이 다른 한국의 농촌생활에 적응하고 이웃들과 잘 지내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파울레이 씨는, "혼자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한국생활의 일상을 e메일로 주고 받는 것이 생애 최대의 즐거움"이라며, "아들이 한국에 오면 텃밭에서 가꾼 갖가지 채소와 한국 전통음식으로 밥상을 차려주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인터넷 사용이 안 되고 산골짝에서 흐르는 물을 그대로 받아 증류해 식수로 사용하는 관계로 겨울 가뭄 때면 식수난으로 불편을 겪기도 하지만 독죽마을 사람들은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벗하며 살기에는 이 곳이 최고'라며 마을자랑을 아끼지 않는다.(강성철 記者 嶺南日報 2005-08-31)
독죽(사랑으로 살아가는 篤竹마을) [記事] : 예천읍에서 승용차를 타고 927번 지방도를 따라 충북 단양 쪽으로 가다보면 예천에서 오지로 손꼽히는 독죽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마을 진입로에서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철재와 목재로 지은 주택이 100여 m 간격으로 듬성듬성 생긴 독죽마을이 있다. 독죽마을은 1970년대까지 토박이 마을주민 20여 가구가 살았으나 이농 현상과 교통 불편으로 뿔뿔이 떠난 뒤 30년 가까이 버려져 있었다. 4년 전 충북 제천에서 건축업과 농업에 종사한 조경신 씨(52) 부부가 같은 신앙을 가진 교우들과 함께 정착해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을 다니다가 마을 전체가 버려진 독죽마을을 소개받고 교우들에게 귀농을 적극 권장, 현재 6가구 20명이 정착하게 됐다. 마을에는 간판, 광고, 건축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있어 일이 있을 때면 함께 일하지만 평소에는 고추, 가지, 고구마 등 텃밭을 일구는 등 농사일로 소일하고 있으며 2005년 군에서 가구당 300평씩 복분자 묘목과 지주 등을 지원, 비디오와 농업기술센터 직원들에게 기술교육을 통해 농사짓는 방법을 습득해 나가고 있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독죽마을 주민들의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으로 떠도는 아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학교 교육이 아닌 왈덴스(스위스의 지명) 대안학교에서 미국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까지 받은 조경신 씨의 딸 온유 씨로부터 일반 교재를 사용해 하루 3시간씩 국어, 성경, 영어, 수학 등의 교육을 받고 있다. 조씨는,어릴 때부터 농촌 생활을 동경해 왔고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한국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학습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호연지기를 기르는 교육자가 되길 꿈꾸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고 밝혔다. 각박한 도시를 떠나 사람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독죽마을이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자랑하는 6가족이 오손도손 살며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9-07)
독죽(푸른 自然속에서 열린敎育 實踐: 醴泉 上里面 篤竹마을에 유럽形대안학교人氣) [記事] : 귀농 이주민들이 모인 독죽마을에 유럽형 대안학교가 생겨 주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귀농인들이 집단 이주해 마을을 이룬 산골 오지에 들어선 유럽형의 대안학교가 인근 지역 학생들에까지 호응을 얻으며 학생수가 늘어나고 있어 화제다. 예천군은 수 년 전부터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인구 감소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귀농인 지원 정책을 실시해 오고 있다. 이에 지난 2001년 충북 제천에서 살고 있던 조경신 씨(53) 부부와 같은 신앙을 가진 6가구 20여 명이 예천군에 귀농 신청을 한 뒤, 상리면 명봉리 독죽마을에 전원풍의 아름다운 새집을 짓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들 귀농 이주민들은 집짓기부터, 농토 가꾸기 등 모든 일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이뤄내며 가구당 300여 평씩의 농지를 확보, 복분자 등을 재배하면서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이뤄가고 있다. 특히 이곳에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세운 스위스의 왈덴스 대안학교와 흡사한 대안학교를 설립해, 자녀들을 일반학교에 보내지 않고 원어민 강사까지 확보한 뒤 원어민 수업은 물론 선진국형 열린 학교 수업으로 남다른 자녀교육을 해오면서 주목을 받아왔다. 대안학교는 조씨의 장녀인 온유 씨가 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 평소 자신이 동경하고 꿈꾸어 왔던 선진국형 대안학교 설립을 실현시켜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주민 대부분이 과목별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에게 자연과 어우러진 호연지기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 이로 인해 당초 이주민 자녀 4명이 전부였던 학생수가 인근 지역으로 대안학교 소문이 나면서 학생들을 맡겨오는 학부모들이 많아 현재는 초등학생 5명과 중학생 7명 등 총 12명으로 늘어났다. 한편 독죽마을에는 이곳으로 새로 이주를 희망하며 적극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 가구 수만도 4가구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워낙 산골 오지마을 고지대라 식수가 부족해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행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실정이다.(張炳喆 記者 慶北日報 2006/04/15
독죽 [마을] : 상리면에 있는 마을로, 2004년 전국에서 귀농자들이 몰려들었다, 첫 이주자인 조경신을 시작으로 김석운 등 모두 6가구 25명의 귀농자들이 이곳에서 둥지를 틀었다. 이들 중에는 미국 LS 출신인 파울레이 가족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부인 레이영 김 파울레이와 예천읍에 어학원을 개원했다. 이들은 2004년 3월 26일 김수남 예천군수와 군의원, 인근마을 주민들을 초청하여 예천군민 신고식을 하였다.(每日新聞 2004.3.29)
독죽 : 독죽/ (지번) 경북 예천군 효자면 명봉리/ 카테고리 지명(daum 2017)
독죽 : 상리면 독죽마을/ 2004.03.27./ 이신희 선생님 참으로 좋은 곳에서 근무하시는군요. 독죽마을은 그야말로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군요. 상리면을 몇 번 지나치기는 했지만, 또한 좋은 곳이라.../ cafe.daum.net/chinalett... 한문 연구 동.. | 댓글 3(daum 2017)
독죽 : 그곳에 살고 싶다 = 상리면 명봉리 독죽마을 9/29일 TBC방송/ 2009.02.17./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독죽마을/ TBC 방송 // cafe.daum.net/sangrisch... 상리초등학교 .. | 댓글 3(daum 2017)
독죽 : 2006년 9월 상리 독죽마을 TV에~~~/ 2009.02.17./ 대구방송에서 지난 7일 촬영한 상리면 명봉리 인근의... 제 목 : 그곳에 살고 싶다!! ◇ 촬 영 내 용 : 상리면 명봉리 독죽마을(가리재)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 및.../ cafe.daum.net/sangrisch... 상리초등학교 .. | 댓글 1(daum 2017)
독죽 : 상리면 유래/ 2009.01.21./ 상리면(上里面) : 신라시대에는 적아현(赤牙縣), 757년... 도촌(道村), 사동(寺洞), 사성(沙星), 신기(新基), 구두(求斗), 독죽(篤竹), 진사(陳沙), 내현(內峴), 상백(.../ cafe.daum.net/ekftoa/8d... 시서문학(dau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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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