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예천1,040: 동수나무...동신제...
작성자장병창 @ 2020.08.15 05:52:50

  도청신도시 예천 1,040 : 동수나무...동신제...

---

 

  동수나무(洞樹나무) [洞神木] : 1) 감천면 대맥리(大麥里) 한산마을 진입로에 있는 나무로, 매년 음력 정월 14일 자정에 동신제(洞神祭)를 지낸다. 그 해의 모든 일이 잘 성취되도록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제사를 잘 지내지 않으면 마을이 불안하다고 한다. 2) 개포면 동송리(冬松里) 웃마 앞에 있던 느티나무로, 둘레 6아름인데, 매년 구 정월 15일 밤에 동민들이 제사를 지냈으나 1970년대후반에 베어버리니, 이 동네에 액운(厄運)이 왔었다고 한다. 3) 보문면 간방리 간실(澗室) 앞 내 가운데 있는 버드나무로, 둘레 2아름인데, 정월 15일 자시에 동제(洞祭)를 지냈으나 새마을사업(1970) 이후에 중단되었다. 4) 보문면 기곡리(基谷里) 한밤실 동쪽에 있던 버드나무로, 둘레가 6아름이고, 불에 타 버렸다. 불이 나기 전에는 매년 정월 15일 밤에 동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5) 보문면 오암리(烏岩里) 오치 동구(洞口)에 있는 느티나무 6그루와 소나무 4그루로, 입향조(入鄕祖) 이용석(李龍錫)이 심었다. 사람들은 이 나무들을 이정자(李亭子)라고 하고, 매년 정월 15일 자시에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다. 6) 상리면 석묘리 춘생(春生)마을 뒤에 있는 나무로, 동제사(洞祭祠)를 지낸다. 7) 용문면 능천리(能川里) 웃능내 서당(書堂)골에서 200m쯤 올라가 있는 나무로, 동제(洞祭)를 지냈고, 한 여름에는 지나는 이의 휴식터가 된다. 8) 지보면 마전리 원학(元鶴)에 있는 나무로, 매년 가을에 동제를 지낸다. [傳說] : 나무를 베는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옛날 어떤 농부가 자식이 없어 매일 신령님에게 소원 성취를 기도드렸다. 그 후 꿈에서 신령님이 이르기를, "어느 장소에 가면 나무가 있을 것이니, 그 나무를 잘 기르면 너의 자손이 태어날 것은 물론, 마을 전체가 평안하리라." 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농부는 신령님이 가리키던 곳에 가보니, 나무가 있기에, 그 나무를 잘 길렀더니 아들, 딸을 얻었다. 이러한 소문이 동네에 퍼지자, 그 후로는 동네의 기쁨과 근심을 동수나무에 와서 빌었다.

 

  동수나무(洞樹나무), 산성동제나무(山城洞祭나무) [洞神木] : 보문면 산성리 산성(山城)마을 뒤에 있는 소나무로, 이 나무에서 매년 정월 15일 자시에 동제를 지낸다. 천신, 지신, 산신을 위하고, 우마(牛馬)와 육축(六畜), 동민의 무사를 비는 제사이다. 제물로는 백편, 술, 돼지를 쓰는데, 돼지는 150근 정도의 수퇘지를 티를 한 후에 삶지 않고 살아있는 것과 같이 세워 놓고 제사를 지낸다. 경비는 동민이 낸다. 제관(祭官)이 되면 금색(禁色)과 금주, 금연을 해야 하고, 외출이 금지된다.

 

  동수나무 : →소나무

 

  동수방골 [골] : 보문면 작곡리 웃마와 읍실(邑室)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동수비보(洞藪裨補) [風水] : 동수는 우리나라 촌락의 앞면 혹은 서측의 강변, 평지, 낮은 언덕에 송림 혹은 잡목이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으로, 홍수 방지, 방풍, 장풍 및 지형의 흉상을 막거나 수구(水口)막이로서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전설이나 금령으로 보호하는 경우로 정감록(鄭鑑綠)에 십승지지(十勝之地)로 잘 알려진 용문면 금당숲(金塘藪)이나 호명면 선몽대(仙夢臺) 숲, 예천읍의 유정수(柳汀藪)와 고평수(高坪藪) 등이 산재하여 있다.(인터넷 야후 2001)

 

  동숫골 [골] : 개포면 동송리(冬松里) 동소리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동숫골 : 고향이야기---개포면---<각 리(里)의 지명유래>/ 2002.12.02./ 동송동(冬松洞) 본래 예천군 개포면의 지역으로서... 6아름. 매년 정월 15일 밤에 동민들이 제사를 지낸다. * 동숫골[골] 동소리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 밋골[골.../ cafe.daum.net/yuchon/KIH/ 유천중학교총동문회(버들골 동문들이여..(daum 2017)

 

  동식골 [골] : 개포면 동송리 동소리에 있는 골짜기이다.

 

  동식물(動植物) [槪況] : 예천 지방은 야산이 많아서 소형 동물이 주로 분포 서식하고 있다. 꿩, 다람쥐, 노루, 산돼지 등이다. 예천 지역은 전부 온대 식물인 낙엽 활엽수림이 자생하고 소나무와 갈참나무가 대표적이고, 전나무, 잣나무, 가문비나무, 떡갈나무, 고로쇠나무, 느릅나무 등이 있다. 한편 예천군의 임상별 임야면적을 보면, 침엽수가 39%, 활엽수가 13%, 혼합림이 48%로 혼합림이 주종을 이룬다.(醴泉郡誌 1988)

 

  동신나무(洞神나무) [洞神木] : 개포면 장송리(長松里) 솔골 앞에 있는 느티나무로, 매년 정월 보름날 밤에 동민들이 제사를 지낸다.

 

  동신석 동제와 산신제(洞神石 洞祭와 山神祭) [民俗] : 풍양면 낙상리(洛上里) 동리가 생기면서 골매기들에 있는 동신석과 덕산 치마바우 밑의 산신목(山神木) 아래에서 동제와 산신제를 지내왔다. 정월 보름 3일 전에 제관(祭官) 1인과 집사(執事) 2인, 동신 도가(洞神都家)를 선정하고, 이들은 당일 목욕재계(沐浴齋戒)한다, 동신 도가는 동답(洞畓) 700평에서 나온 것으로 제기와 제물을 장만하는데, 제기는 동신 도가가 소유한다. 골매기들 즉 아래새터 앞 논둑에 높이 2.4m, 두깨 30cm, 폭 45cm 정도의 동신석(洞神石)에는 보름 자정에 불을 켜고 피시루떡(팥고물 그대로)과 대추, 밤, 감을 진설(陳設)하고 가주(家酒)로 헌작 재배(獻酌再拜)한다. 다음 덕산(德山) 남쪽 중허리 즉 웃새터에서 북쪽 300m 지역의 치마와 같이 생긴 약 15°의 경사진 넓은 바위 속칭 치매바우 아래에 있는 산신목 세 그루 밑에 밥, 백설기, 명태와 3실과를 차려놓고 동민의 호주 성명을 적은 것을 호명하면서 사고지(四古紙)의 1/4로 헌작 소지(獻酌燒紙)를 올린다. 보름 날 아침에는 동민이 모여 음복하고 대동회(大洞會)가 열린다.

 

  동신제(洞神祭) [民俗] : 1) 보문면 간방3리(澗芳三里) 앞산에 있던 동제사(洞祭祀)로, 매년 음력 정월 15일 밤에 제사를 올렸는데, 16세기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날, 제사를 올리는 제관(祭官)들은 마을에서 제일 정결하고 깨끗한 사람 4명을 골라서 3일 간 기도를 하고 나서, 석관천(石串川) 맑은 물에 깨끗이 목욕을 한 뒤에 정성껏 제사를 올린다. 이렇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일년 동안 농사를 잘 되게 빌며,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해를 넘기게 해 달라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수백 년 내려온 소나무가 지금은 고사(枯死)되고 작은 소나무 즉, 큰 소나무 둘레에 죽 늘어선 소나무만도 백년이 넘는다고 하고, 거기에 딸렸다고 보이는 버드나무도 수백 년이 넘은 것이 석관천 한 복판에 우뚝 솟아 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내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도 이제까지 여러 홍수에도 조금도 굽힘없이 꿋꿋이 서 있다. 나무 높이는 15m나 되고, 우산처럼 둥글게 가지가 뻗어 있어서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미신이라 하여 제사를 올리지 않고 있다. 2) 용문면 구계리 주막(酒幕)골에 있는 동제(골맥이 祭祀)로, 마을 뒷산의 돌무더기(당집) 가운데에 서 있는 큰 돌(一名 부처)이나 쌍골맥이(1雙씩 두 곳 모두 4個의 立石)에게 정월 대보름 자정에 해마다 정식으로 마을의 초복(招福)과 풍요를 위하여 제사지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동제를 지내고 얼마 안 있어 흉사가 생기면 새로 날을 잡아 지낸다. 그러나 정월 중에 지낼 뿐 2월은 남의 달이라 믿어 피한다. 정월 열사흘 날 동네에서 제관을 뽑는다고 알려지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제관을 뽑는다. 이어 음식을 장만하는 도가(都家)를 뽑게 된다. 제관은 우선 깨끗한 사람으로서 집안에 임신부가 없어야 하고, 험한 일을 마구 본 사람은 더욱 더 안 된다. 특히 그 기간에 안사람이 월경(月經)일 경우인가를 유의해야 한다. 제관과 도가에서 장을 봐서 제수(祭需)를 장만한다. 장보러 갈 때는 타인과 이야기는 물론 인사도 안 한다. 또 상주(喪主)집 물건을 사지 않고, 가격을 깎지도 않는다. 음식을 도가(都家)에서 만들고, 제물은 시루떡, 3실과, 명태, 생미역, 포(脯), 생쌀, 감주 등이다. 동네 논에서 나온 도지로 제비(祭費)를 한다. 도지는 쌀 4말가량 되는데, 그 중 1말은 제관(祭官)의 수고비, 나머지를 제비로 사용한다. 제사가 끝난 후에는 반드시 결산 보고를 하게 된다. 예전에는 제관과 도가의 집에 한 달 동안 왼새끼 금줄을 쳐 부정을 가렸으나 요즘은 장보는 2-3일 전부터 금줄을 치고 황토(黃土)를 삽짝거리에 뿌린다. 제장(祭場)에도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편다. 또 샘과 제장인 마을 뒷산, 마을 입구 양 골맥이에도 금줄을 친다. 제사지내는 날은 제관과 도가는 마을 앞에 내도 건너지 못한다. 이 날 마을에 외부 사람이 들어 왔을 때는 나가지 못하는 등 출입을 엄금한다(그러나 實相 요즘은 交通의 發達로 잘 지켜지지 않는 實情이나 마음으로는 操身해야 된다는 걸 意識한다). 샘을 제관 이외의 사람이 사용하면 짐승의 해를 입게 된다 하여 절대 금한다. 정월 대보름 자정이 가까와 오면 제관은 호롱불을 들고 산쪽에 있는 제장에 올라간다. 자리를 펴고 가져간 제물을 순서대로 차린 다음, 한지로 당집(돌무더기) 속에 있는 부처(돌)에게 고깔을 씌우고 절을 한 뒤 잔을 따른다. 이어 소지(燒紙)를 올리는데 동네 사람을 위해서는 물론 우마(牛馬)까지 전부 올린 다음 따로 준비해 두었던 제물을 가지고 마을 입구 쌍골맥이 쪽으로 가 제사를 지낸다. 전자를 산제사(山祭祀)라 하고, 후자를 골맥이제사라고 한다. 정월 대보름 아침 도가의 집에서 음복이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수고했다고 인사치레하며 제사지낸 음식을 먹으면서 한 바탕 웃고 떠든다. 이 때에 마을 풍물잽이들이 와서 풍물을 치며 신명을 풀기도 한다.

 

  제사 후 제관은 쌀을 받는 반면 도가는 제기를 갖게 된다. 제사 때 쓴 기름종지를 가져가면 아들을 얻는다고 비밀리에 올라가서 가지고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 한지를 가지고 가서 국문을 쓰면 재주가 생긴다는 것 등 다른 마을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여자가 제사에 참석하면 그 해 사망한다고 한다. 또 부처에게 씨운 고깔을 펴서 한글을 쓰면 공부를 잘 하고 재주가 있다는 설도 다른 마을과 비슷하다. 또 조금씩 떼어버린 음식을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며, 사람이나 소, 말 등 가축이 탈나면 동제의 탓으로 돌리는 반면 제관이 그 해 아들을 낳으면 동신제를 잘 지낸 덕분이라 믿는다(金明子). 3) 용문면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있는 산신제(山神祭)로, 산신령에게 정월 대보름 자정에 오미봉(五美峰)과 동지산, 당수(堂樹, 面事務所 앞 느티나무), 수구(水口)매기(南村)에서 지낸다. 당집은 1930년경에 소멸되었다. 오미봉에서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불로 동지산에 알리면 동지산에서도 신호를 보내어 제사를 지낸다. 오미봉과 동지산에서 지낸 뒤 면사무소 앞 당수(堂樹, 느티나무)에서 동신제를 지내고, 남촌(南村)의 수구매기에서 지낸다. 오미봉, 동지산에서는 제관이 잔을 붓고 축문(祝文)을 읽고 절하고, 소지(燒紙)를 올리는 유교식 신례(神禮)를 따르지만 당수와 수구매기에서는 그냥 잔만 붓는 형식으로 간단하게 치른다. 제장(祭場)이 4군데여서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제의(祭儀)는 서둘러서 닭이 울기 전에 끝낸다. 닭이 울면 귀신이 떠나기 때문이다. 제의의 목적은 마을 사람의 행운과 풍년 기원이다. 예전에는 짐승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짐승은 산신령을 무서워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제관은 4개 마을의 동장(洞長)이 음력 정월 초닷새에 모여서 부정한 집이 아닌, 즉 복을 입은 집(안어른이 福입은 집)에서 제관을 선정한다. 동북촌(東北村)에서 주로 선출하는데, 왜냐하면 중앙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부정해 지기 쉽기 때문이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불응하지 못한다. 까닭은 4동장이 미리 다 알고 정했기 때문이다. 제관과 함께 도가(都家, 祭官의 큰집格)도 뽑는데, 도가에서는 제물을 장만한다. 제사지내기 4-5일 전부터 제관은 도가에 와서 지내고,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올리며 도가는 외인 출입을 금한다. 큰 소나무 두 가지를 꺾어 잎이 있는 그대로 집에 가져와 삽짝거리(大門)에다 걸어놓고 왼새끼 금줄을 치며 문양 쪽에 붉은 흙을 뿌린다. 제의(祭儀) 3일 전에 제장과 제관집에 왼새끼 금줄을 치며 안팎을 정결하게 청소한다. 제의 3일 전인 정월 11-12일 도가에서 제관이 제수를 마련한다, 장을 볼 때는 언행을 삼가고 물건값의 에누리를 하지 않으며 깨끗한 물건이어야 하는 금기(禁忌)는 다른 마을과 동일하다. 푸줏간에서는 고기를 내주며 자기네 집을 위해 소지(燒紙)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제물로는 돼지고기, 시루떡, 3실과, 술, 채소 등 간편한 음식을 장만한다. 동네 재산 즉 하천부지(동네 土地)와 동내산(洞山)이 있는데 여기서 나온 곡물을 팔아서 비용을 마련한다, 동신제(洞神祭)를 지낼 때가 되면 이 곳에서 살다 이사 간 가정에서 찬조금을 보내오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제의(祭儀) 전날 집 앞에 황토(黃土)를 뿌리고 조신(操身)한다. 제관 집 장남도 금기(禁忌)가 엄격해서 쥐 죽은 모습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피한다. 제차(祭次)는 참기름 종지에 솜심지를 심어 불을 당긴 뒤 제사를 지낸다. 잔을 붓고 축문을 읽고 절한 뒤 소지를 올린다. 제기(祭器)는 제관과 도가가 나누어 갖고, 시루는 도가에서 갖는다. 정월 보름날 아침 도가에서 마을의 60대 이상 남자어른들이 모여 음복한다. 4개 마을 동장에게는 백설기 고기를 함지에 싸서 돌린다. 제사 후 참기름 종지를 가지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고, 창호지를 가지면 공부를 잘하며, 떼놓은 백설기를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4) 용문면 죽림리(竹林里)에서 정월대보름 자정에 산신령께 제사를 지내는 동제(洞祭, 洞祭祀)로, 종가(宗家) 뒷산에 제단(堂樹)과 마을 입구에 입석(立石) 3개가 있어 이 마을에서의 제장(祭場)은 네 곳이 되는 셈이다. 입석 3개는 3내외분(三內外分)이라고 하는데 중앙에 있는 곳이 고비(男便), 양쪽에 있는 것은 버비(아내)로 각각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이다. 당집은 옛날부터 없었다. 당나무(祭壇)는 원래 산꼭대기에 있었으나 거리 관계로 중간에 종가 뒷산으로 옮겨진 것이다. 가축 번식과 농사의 풍작, 마을의 평안과 행운을 기원하는 것이 제사의 목적이다. 제관은 정월 초닷새에 동네 60-70대 어른이 선정을 의논한다. 제관 자격은 20대 이상의 결혼한 사람으로 부정이 없는 정결한 사람이어야 한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거절을 못하고, 만약 잘못 선정된 경우 다시 선출한다. 제관과 함께 유사(有司) 2명을 뽑는다. 유사는 20세 이상 젊은이들로 돌아가며 하는데, 자금 충당을 위한 수금의 일을 하고, 제사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제관이 부인과 함께 제수(祭需)를 장만한다. 제수를 위해 장(場)을 볼 때도 물건 값을 깍지 않고 언행을 조심하는 등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한다. 제물은 3실과, 고기, 백설기, 메(답), 포, 탕, 술 등이다. 동신제용 동답(洞畓)의 토지세가 있어 그 기금의 이자가 나오므로 그 것으로 충당한다. 정월 열이틀 제관집과 제장(祭長)에 왼새끼 금줄을 치며 제관이 사용하는 샘에서부터 자기 집까지 황토를 뿌린다. 특히 제관 부부는 타인과 많은 대화를 않고 조용히 하고, 추하거나 상스러운 짓을 피한다. 동제를 전후해서는 외인의 출입을 금한다. 제관은 3일 기도하고 부부 생활을 금하고, 제수를 마련할 때는 마스크까지 착용할 정도이다. 제사지내려 할 때 개가 울면 산신령이 달아난다 하여 개의 입을 막는 수도 있다. 또 제물을 마련할 때 나오는 구정물도 제사가 끝난 후 밖에다 버리든지 소, 돼지에게 주기도 한다. 제차(祭次)는 제관 내외가 정월 대보름 자정께 제수(祭需)를 가지고 뒷산에 올라간다. 그러면 12시 30분쯤 되는데, 올라가자마자 기름종지에 불을 켜고 소지(燒紙)를 깔고 그 위에 제수를 놓아 제단(祭壇)을 마련한다. 먼저 3실과, 그리고 채소, 탕, 편, 포, 고기, 밥, 국, 수저를 놓고 제관 부부가 재배(再拜)를 한다. 이어 수저를 밥 위에 꽂고 잔을 한 잔 올린 뒤 남자는 축(祝)을 읽고 여자는 계속 절을 한다. 제관은 축을 읽고 난 뒤에 몇 번이든 상관하지 않고 계속 절을 한다. 소지는 제관이, 처음에는 동네의 무사를 위해서 올린다. 이어 가축을 위한 소지, 오곡 풍년을 기원하는 소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한 소지와 자기 가족을 위한 소지를 올리며 그 다음에 동네 전체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60갑자(六十甲子)를 외우면서 동네 사람의 띠별(十二干支順)로 올린다. 소지를 올린 후에 또 절을 한다. 그 후 부복(俯伏)을 한참하고 있다가 신흠을 한 번하면 수저를 내리고 뚜껑을 덮으며, 절을 한 뒤에 떡과 실과 등을 조금씩 떼어놓고 철상(撤床)을 하는데 올린 순서대로 다시 내린다. 제사 지낸 음식은 집에 다 두고 이미 마련해 둔 음식으로 3내외분(세 立石) 쪽으로 간다. 그리고 영감님, 큰마누라, 작은마누라 순으로 촛불을 켠다. 이어 음식을 차례대로 올리고 잔을 세 번씩 드린 뒤 삼배(三拜)한 다음 축문을 읽는다. 축문의 내용은 마을 전체가 오곡 풍년이 들고 액운을 막아주고, 가축이 잘 되게 해주고, 여자의 방비 등을 기원하는 것들이다. 그 동안 여자는 계속 절을 한다. 다음에 부복을 한 뒤 신음을 하면 수저를 내리고 절을 한 후 제사를 마친다. 정월 대보름 날 아침 제관 집에서 남자 어른들이 모여 음복한다. 제의(祭儀) 때 쓴 참기름 종지를 가져가면 아들을 얻는다고 하고, 제상(祭床)에 쓴 한지를 가져다 글을 쓰면 공부를 잘 한다고 한다. 또 제사 끝에 조금씩 떼어놓은 음식을 먹으면 감기를 앓지 않고 건강하게 지낸다고 믿는다.

 

  5) 용문면 하금곡리 여각(閭閣)마을 앞산에 있는 산신제(山神祭)로, 산신께 정월 대보름 자정에 제사를 지낸다. 당집은 없다. 예전에는 호환(虎患) 등 짐승으로부터 피해를 막고 마을의 행운과 풍년을 기원했다. 요즈음도 제액초복(除厄招福)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제사 1주일 전쯤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관을 선정한다. 제관은 나이 30세 이상으로 집에 어린이나 임신부가 없고 상중(喪中)이 아닌 깨끗한 남자이어야 한다. 정월 열이튿 날 제관 내외가 장(場)을 본다. 이때도 부정한 것을 피하려고 타인과 이야기도 하지 않고, 물건 값을 에누리하지 않는 등 매사에 조심한다. 제물(祭物)은 시루떡, 3실과, 장닭, 채소, 술이다. 제비는 1950년까지 걸립(乞粒)을 했으나 요즘은 마을 논밭에서 나온 현물로 하고, 현물은 제관집에 정하게 보관된다. 제사를 지낸 후 결산 보고를 제관이 하고, 제관은 수고비를 받는다. 제관은 문상(問喪)은 물론 남의 집 가는 것을 피한다. 정월 10일 전후하여 제관이 사용할 샘을 파던지 아니면 샘을 정해서 묵은 물을 퍼내고 샘물을 쓰게 한다. 제관은 이 물에 목욕재계하고 부부 동침도 안 하고, 굿 보는 것도 꺼린다. 제관은 제의(祭儀) 3일 전에 자기 집과 제장(祭場)에 왼새끼 금줄을 치고, 황토를 자신의 집부터 마을에서 제장에 이르는 길까지 뿌린다. 제사를 올린 다음 축문을 읽고 절한 뒤 소지(燒紙)를 올리는 등 다른 마을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제의(祭儀)를 마치면 제관집의 금줄을 불사르고, 제당(祭堂)의 금줄은 그대로 두어 자연히 썩게 한다. 정월 대보름 날 아침, 제관에게 수고했다고 인사치레하고, 대개 집집마다 한 사람씩 제관집에 찾아가 음복한다. 동제(洞祭)는 년 1회가 원칙이지만 잘못 지냈다고 생각할 때면 다시 지낼 수도 있다. 현재 젊은 층에서는 동제를 지낼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노인층에서는 옛 조상들이 해오던 것이라 그대로 존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金明子). 6) 용문면 하금곡리 인산(仁山)마을 뒷산의 당수(堂樹, 당수남게, 天祭堂)에서 지내는 동제(洞祭)로, 동신(洞神)께 음력 정월 대보름 새벽 1시에 지내나, 이 날 마을에 초상(初喪)이 나면 다시 지낸다. 제관은 음력 정월 5-6일 께 반장(班長)집에서 선출하는데 30세 이상의 주로 경험있는 사람을 뽑는다. 제관으로 천거된 사람은 거절하지 못한다. 그런데 제관은 정성드리는 것이 너무 까다롭고 책임이 무겁다고 생각해서 요즈음은 대체로 꺼린다. 제수(祭需)는 제관 내외가 마련한다. 제의(祭儀) 7-3일 전에 장(場)을 보러 가는데 흉한 것을 피하고 물건 값도 깍지 않고, 상인도 깨끗한 사람을 골라 물건을 산다. 제물은 떡, 삼색 실과, 고기, 포, 술 등이다. 제비는 1950년까지 동답(洞畓)에 의지했으나 요즈음은 동네에서 모은 기금, 이자로 충당한다. 한 번 드는 비용은 대충 5만원 정도(1982)이다. 제사를 지낸 후 결산 보고회를 열어 남은 돈은 다시 동네에 환불하기까지 한다. 제관은 제의(祭儀) 3-7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드린다. 또 제관의 집에 왼새끼 금줄을 치고, 새끼 사이에 문종이로 드문드문 끼우고, 집 앞에 황토를 뿌린다. 제장(祭場, 堂樹)도 깨끗이 청소하고 금줄을 친다. 제관은 상가(喪家)에도 가지 않고, 외인 출입을 금할 뿐 아니라 외인과의 접촉을 않는다. 특히 흉한 사람을 절대 피한다. 제관이 제장(祭場)으로 올라가는 행로는 마을 사람들이 가로질러 갈 수 없고, 제장에는 제관 내외가 올라가고 제수(祭需) 역시 이들이 가지고 간다. 다만 부인은 제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제수를 차리는 일을 한다.(또는 祭官이 차리기도 한다.) 축문이 있어 제관이 이를 읽는데, 내용은 마을 전체에 질병이 없고, 풍년이 되기를 기원하고, 잡귀가 동네에 오지 못하도록 빈다.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