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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055:동학농민운동...동행...(축,백종범)
작성자장병창 @ 2020.08.26 06:01:06

  도청신도시 예천 1,055 : 동학농민운동...동행...(부, 대창고 백종범, 8일 제8회 장기려봉사상 청소년체험수기발표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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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도총소(安東都摠所)에도, "충청도와 경상도의 각 접의 동학농민군 거의 만여 명이 예천에서 무기를 빼앗은 뒤 안동을 공격하려 하니, 구원병을 보내 달라."라는 편지를 보냈다. 26일 용궁 관아(龍宮官衙)에서 사람을 보내, '어제 동학농민군이 군 창고의 무기를 빼앗아 갔다.'라고 전해 왔다. 동학군이 곧 쳐들어 올 것을 알게 된 예천군수 조원하는 밤을 세워 안동 진영과 도총소(都摠所)에 또다시 도와 달라는 연락을 하였다. 27일에는 동학농민군이 온다는 헛소문이 돌아 4-5번씩 읍민이 놀랐다. 읍민 가운데 몰래 재산을 변두리 마을에 옮겨 놓고, 읍내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자 집강소에서는 이들을 위로하는 한편 한 마음으로 막아야지 도망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한밤중에는 화지 동학군(花枝東學軍)이 쳐들어올 지도 모르는 현산 방곡(峴山旁谷)에 포병 100여 명을 숨겨 두었다. 싸움의 날이 된 28일 아침 집강소로 읍민을 위로하고 다시 장군암(將軍岩)과 의충사(毅忠祠)에 제사를 지냈고, 부병(部兵)을 높은 곳에 올려보내 동학농민군이 모여있는 서쪽과 북쪽을 향해 포를 쏘도록 하였다. 이 날까지도 화지의 동학농민군은, "우리는 왜적을 막는 것이 본 뜻이니, 지난 번 동학교도 살인자 중 주모자 2명만 보내오면, 읍내는 무사할 것이다."라고 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퇴치 접주 박현성(退致接主朴顯聲)은 이날 직접 집강소를 찾아와서 힘을 합치자고 하였으나, 퇴치 접주를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낮 12시를 조금 지나 화지의 동학농민군 수 천명이, 읍에서 10여 리 되는 곳까지 쳐들어 왔다. 유정(柳汀) 숲에 진을 쳐서 한천(漢川)의 긴 제방과 현산(峴山)에 있는 부병과 맞선 화지(花枝)의 동학농민군은 금곡(金谷)의 동학농민군이 오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그러나 금곡의 동학농민군은 시간을 서로 정하여 서쪽과 북쪽에서 함께 읍내를 공격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 뒤에 알려진 바로는 부병이 높은 곳에서 쏘았던 포 소리를 갑자기 쳐들어 오는 것으로 잘못 알고, 한때 흩어졌다고 한다. 서로 정한 시간이 되자, 화지의 동학농민군은 혼자 공격을 시작했다. 대포 소리가 크게 일어나고, 탄환이 번득이는 가운데, 서정자(西亭子)들의 긴 제방과 현산(峴山)에서 진을 친 부병과 유정(柳汀)에서 서정자들판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동학농민군 사이에 서로 간에 전사자가 나왔다. 이 싸움은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집강소에서는 싸움이 있기 전에 사람을 몰래 보내 청복(淸福) 동민을 시켜 한천(漢川) 남쪽 동산에 횃불을 준비해서 싸움이 벌어지면, 안동에서 구원병이 온 것처럼 고함을 지르도록 했다.

 

  공격과 방어 싸움이 절정에 이를 때 산 위에 불빛이 오르면서, "3천 구원병이 이르렀다."라는 큰 소리가 나자, 동학농민군은 갑자기 사기가 떨어지며 패하여 흩어지기 시작했다. 팽팽한 줄다리기가 무너지면서 동학농민군은 한꺼번에 허물어 졌고, 동남쪽 물논으로 쫓기다가 부병의 추격에 큰 피해를 입고 패하여 물러갔다. 부병이 유정(柳汀)숲 속에 남겨진 옷, 총, 창, 양식, 말 등을 거두어 관아(官衙)로 돌아오는 승리의 춤을 추고 있을 때 또다시 북쪽 부모산(父母山)에서 망을 보던 이가 포를 쏘면서 금곡(金谷)의 동학농민군이 쳐들어온다고 알려 왔다. 기세가 오른 부병은 양천 변까지 일제히 달려나가 봉화를 끄고 숲 속에 숨어서 동학농민군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금곡(金谷) 동학농민군은 모래밭에서 일자로 열을 지어 북을 치며 피리를 불며 노래를 부르면서 개울을 건너려고 했다. 이 때 양쪽에서 부병이 한꺼번에 탄환을 비오듯 쏘아댔다. 어둠 속에서 복병을 만난 금곡 동학농민군은 싸울 겨를도 없이 많은 전사자를 남기고 우계 광천(愚溪廣川)쪽으로 도망갔다. 부병은 구산현(龜山峴)까지 추격하여 수 10명을 잡아죽이고, 조총, 창, 칼, 북, 나팔, 말 등을 거두어 읍으로 돌아 왔다. 이 날 밤 읍내의 여자들도 모여 부병이 이기도록 뒷쪽에서 고함을 질러 댔다. 도망하던 동학농민군이 읍내로 숨어들자, 여자들도 돌을 던지거나 불을 던져 이들을 막았다. 부병이 읍내에 다시 모이자, 새벽빛이 밝아왔다. 28일 저녁부터 29일 새벽까지 예천읍 서, 북 두 곳에서 벌어진 싸움은 마침내 관군이나 외부의 도움 없이 싸운 집강소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부병은 1,500여 명을 비롯하여 여자들까지 모두 동원되었고, 정부에 보고된 동학농민군의 수는 4-5천 명이었다. 모두 6-7천 명이 크나큰 싸움을 벌인 것이었다. [部兵이 東學農民軍을 鎭壓하다] : 읍내 싸움에 동학군이 패하던 날 예천 동학의 근거지인 소야(蘇野)도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함창 태봉병참부(咸昌胎峰兵站部)를 도우기 위해 급히 보내진 충주 주둔 일본군 공병대 일부 병력은 8월 29일(陽曆 9月 28日) 오전 9시 경 석문리(石門里)에서 동학농민군과 만났다. 동학농민군은 지형상 유리한 것을 택하여 막았지만 일본군의 강한 무기에 밀려 소야(蘇野) 등지로 도망하여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 석문리 싸움에서 패한 동학농민군은 다시 일어 설 수 없도록 크나 크게 얻어 맞았다. 석문리는 예천 동학농민군의 군수기지였던 것이다. 그 사이 동학농민군이 예천 일대에서 부병과 싸워 가면서도, 일본군과 싸우기 위하여 집 11칸에 보관해 둔 여러 가지 무기와 돈은 일본군에 의해 모두 빼앗기게 되었다. 예천 읍내로 쳐들어올 때 대부분 가담하였기에 불과 600여 명만이 지키던 석문리 군수 기지가 일본군에 짓밟히어 말 6마리에 실을 만한 총, 창, 깃발 등과 돈과 양식 그리고 용궁 관아까지 쳐들어가 얻어 둔 총 200개를 빼앗기게 되자, 예천 동학농민군은 힘이 없어졌다. 예천 동학농민군의 으뜸인 최맹순도 소야를 떠나 강원도 평창(平昌) 등지로 몸을 숨겼다. 싸움이 부병의 승리로 끝난 8월 29일 예천읍에는 부병을 도우려는 다른 곳의 군대가 들어왔다. 오전 10시 안동의 구원병 3,031명이 김익장(金翼張)의 인솔로 도착했고, 오후에도 500여 명이 뒤이어 들어왔다. 또 일본군 53명도 읍내에 들어왔다. 선무사 이중하(宣撫使李重夏)도 와서 무기를 들고 조정에 항거하는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니, 동학농민군은 해산하라고 하였다. 부병과 안동의 군사들은, 동학농민군이 예천읍에서 쫓겨나 다시 모인 금곡(金谷)과 화지(花枝)를 29일과 9월 1일 이틀간 쳐들어가 이들의 거점을 빼앗았다. 예천의 동학농민군은 소야(蘇野) 근거지와 화지(花枝), 금곡(金谷) 두 거점을 잃고 곳곳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동학농민군이 다시 일어날 수 없다고 판단하자, 안동의 군사들은 9월 2일 되돌아갔다. 다른 곳에서 온 창을 든 군사들도 돌려보냈다. 예천읍에 5천여 군사들이 모인 기간은 불과 3일이었지만 집강소는 군량미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그 사이 모아 놓았던 곡식은 물론 읍내 가정집과 음식점의 술과 음식까지 모두 거두어 뒤를 댔고, 심지어는 읍민에게 명령하여 몰래 숨겨둔 여러 곡식의 씨앗까지 내도록 하여 군량으로 썼다. 동학농민군의 강한 세력에 쩔쩔 매던 읍내 부자들은, 부병들이 승리하자 다투어 돈과 곡식을 보내어 와서 가까스로 군량미를 댈 수 있었다. 일본군과 함께 싸울 뜻이 없는 예천 집강소의 눈치를 알아차린 일본군은 이미 9월 1일에 안동쪽으로 떠났다. 9월 4일에는 상주, 용궁을 거쳐온 남영병(南營兵) 250명이 예천 읍내에 와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다시 용궁으로 떠난 남영병은 소야(蘇野)의 부접주(副接主) 고상무(高商武) 3형제를 잡아 사형에 처했다. 9월 13일에는 금곡(金谷) 일대의 마을을 수색하여 접사 정명언(接司鄭明彦)을 잡아들이어 사형에 처하였다. <저상일월(渚上日月)> 8월 29일 자는 금곡(金谷)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읍군 3천명이 금곡유계소에 불을 지르고, 상하금곡의 동학교도 집 30-40호를 불태웠다(邑軍三千 火放金谷儒契所 上下金谷 燒滅 入道家 三四十戶灰滅)"라고 하였다. 함양 박씨(咸陽朴氏)의 유계소(儒契所)도 이 때 불탔고, 현재의 건물은 그 후 자리를 옮겨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동학농민군들의 토지는 관아에서 몰수하였다. 정상익 가(鄭相益家)에서 가장(家藏)해온 당시의 관아 문서에는 몰수된 농민군 가담자의 개인별 토지대장과 이를 맡아 관리한 군 관리들의 명단이 있다. 예천 동학농민군의 지도자 최맹순도 숨어있던 강원도 평창접(平昌接)에서 100여 명의 지원을 받아 동학농민군을 탄압한 적성리(赤城里)에서 불을 지르며 보복하다가 그의 아들 및 접사 장복극(接司張卜極)과 함께 붙잡혀 11월 22일 사형에 처해졌다. 1894년 금곡(金谷)의 함양 박씨(咸陽朴氏) 중 접주(接主)를 한 박영수(朴永洙)가 풍기(豊基)에서 체포되어 6개월형을 언도받았고, 또 예천읍 공방전 후 상주(尙州)에 피신하고 있던 예천농민군 지휘자 박현성(朴顯聲), 김노연(金魯淵), 권순문(權順文)은 상주 객관(尙州客館)에서 농민군을 탄압한 예천을 도륙한 후 안동, 의성을 벌하자는 선창을 하고 있었다(甲午斥邪錄 9月 27日字). 그러나 이로써 예천의 동학농민운동은 완전히 끝나고 말았다. 그 후 예천 집강소는 전라도에서 북상하고 있는 동학군과 싸우기 위해 상주로 갔다. 이 때 상주 소모영(召募營)에서 예천병(醴泉兵, 516名)에게는 식상(食床), 노자, 주초혜가(酒草鞋價) 등 전(錢) 749냥 2전 2분을 썼고, 용궁병(龍宮兵, 21名)에게는 식상, 노자, 주초혜가 등 전 108냥 6전을 썼다고 한다. 예천의 집강소도 동학농민군이 완전히 없어진 1895년 2월에 해산하였다. 예천의 부병이 동학농민군을 물리친 사실은 영남 선무사 이중하의 보고로 조정에 알려졌다. 조정에서 장문건(張文健)과 황송해(黃松海)에게는 부병(部兵)을 지휘하여 동학농민군을 물리친 공이 있고, 정대일(鄭戴一)에게는 집강소를 만든 공이 있다 하여, <갑오군공록(甲午軍功錄)>에 그들의 이름을 모두 올려 주었다. 1894년 9월 15일, 의정부에서 왕에게 계언(啓言)하기를, "영남 선무사(嶺南宣撫使) 이중하(李重夏)의 보고에 의하면, '예천군에 동학교도 4천-5천명이 내범(來犯)하니, 예천군의 관리와 백성이 일제히 협력하여 격퇴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韓國史 現代篇 351 쪽, 慶北義兵史 356, 361 362쪽, 東方學志 第44輯(申榮祐, 延世大史學科, 甲午農民戰爭과 嶺南保守勢力의 對應, -醴泉 尙州 金山의 事例를 中心으로-), 甲午斥邪錄(潘在元)) →甲午斥邪錄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東學農民戰爭史料叢書. 10) [冊] : 동학농민전쟁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東學農民戰爭百周年紀念事業推進委員會)의 편저(編著)로, 사예연구소(史芸硏究所)에서 1996년에 발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1층 서고자료신청대(보존)에 소장되어 있다. 예천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www.nl.go.kr 2006)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東學農民戰爭史料叢書. 11) [冊] : 동학농민전쟁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東學農民戰爭百周年紀念事業推進委員會) 편저로, 사예연구소(史芸硏究所)에서 1996년에 발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 1층 서고자료신청대(보존)에 소장되어 있다. 예천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www.nl.go.kr 2006)

 

  동학사 : →동악사

 

  동학사상연구자료집(東學思想硏究資料集. 82.) [冊] : 채길순, 배성실, 고재범, 임태섭의 논문집으로, (2) 496쪽, 삽도, 27cm, 서울 열린문화사에서 2004년에 발행하였다. 목차는, 동학혁명의 소설화 과정 연구(채길순), 『독립신문』의 여성 개화론 연구(배성실), 경북북부지역의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연구 : 예천(醴泉) 지역을 중심으로(高在範), 전봉준(全琫準)의 공초(供草) 연구(林泰燮)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성균관대(중앙), 숭실대이다.(keris 2004)

 

  동학사상연구자료집(東學思想硏究資料集. 84. : 第一次 甲午農民戰爭 勃發 過程에 關한 硏究) [冊] : 김상일, 박경환, 정영엽, 김민규의 논문집으로, (2) 493쪽, 삽도, 27cm, 서울 열린문화사에서 2004년에 발행하였다. 목차는, 전․후기 동학 가사의 비교 연구(金相一), 제1차 갑오농민전쟁 발발 과정에 관한 연구(박경환), 최시형(崔時亨)의 생애와 여성관(정영엽), 영해(寧海)․예천(醴泉) 지역의 동학농민전쟁 : 향토사 교육을 위한(金敏圭)이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성균관대(중앙), 숭실대이다.(keris 2004)

 

  동학 성립과 이야기(東學 成立과 이야기) [冊] : 예천 출생인 조동일(趙東一, 1939- , 서울大 敎授)의 저서로, 227쪽, 삽도, 사진, 22cm 서울 홍성사(弘盛社)에서 1981년에 발행한 <뿌리를 캐는 글들> 1권에 수록되어 있다. 경북대학교 도서관 중앙단행본자료실에 소장되어 있고, 안동대학교 도서관 중앙대출실에 소장되어 있다.

 

  동학의 문화 유적 순례(東學의 文化 遺蹟 巡禮 1 : 嶺南 地域 1) [記事] : 한국동학학회 편집부에서 편집하여 경주 원효학회(元曉學會)에서 2001년 2월에 출판한 기사로, 한국동학학회에서 출판한 <동학연구> 8호 229-279쪽(51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는데, 예천 기사도 있다. 동국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학의 문화 유적 순례(東學의 文化 遺蹟 巡禮 1 : 嶺南 地域 2) [記事] : 한국동학학회 편집부에서 편집하여 경주 원효학회(元曉學會)에서 2001년 2월에 출판한 기사로, 한국동학학회에서 출판한 <동학연구> 9ㆍ10호 325-347쪽(23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는데, 예천 기사도 있다. 동국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학의 문화유적 순례(東學의 文化遺蹟 巡禮 Ⅰ (嶺南地域 2)) [學術저널] : 한국동학학회의 논문으로, 한국동학학회에서 2001년에 발행하였다. [목차] : 1. 진주의 동학혁명/ 2. 하동의 동학혁명/ 3. 예천과 동학혁명 - 치열한 굴머리 전투, 읍내 점거 실패-/ 4. 금산(金山)과 동학혁명/ 5. 상주의 동학혁명(daum 2008)

 

  동학의 문화유적 순례 Ⅰ(東學의 文化遺蹟 巡禮 Ⅰ (嶺南地域 1)) [學術저널] : 한국동학학회의 논문으로, 한국동학학회에서 2001년에 발행한 <동학연구> Vol.8 229-279쪽(51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주제어는 ‘동학 문화유적 순례 영남’이다. [목차] : 1. 용담정(龍潭亭)/ 2. 『동경대전』(『東經大全』)/ 3. 『용담유사』(『龍潭遺詞』)/ 4. 관덕정(觀德亭)/ 5. 태묘(太墓)/ 6. 포항시 신광면 마북리 검곡 - 해월, 만민평등 법설/ 7. 경북 상주시 화서면 높은터 - 해월선생, 2개월 동안 은신한 곳-/ 8.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와 형제봉/ 9. 경북 김천시 구성면 용호리 복호동 -내칙 내수도문 반포한 곳-/ 10. 상주시 화서면 봉천리 전성촌/ 11. 울산 유곡동 여시바윗골/ 12.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 왕실촌/ 13. 경북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죽현 - 해월신사 3년동안 교인확장에 주력-/ 14. 경남 양산시 용연리 천성산 내원암과 적멸굴/ 15. 문경시 초곡리 문경 새재와 유곡동/ 16.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매곡동-최초로 접주제 실시한 곳-/ 17. 경북 예천군 풍양면 고산리 수산 -해월신사께서 포덕 8년부터 약 1년간 계신 곳-/ 18. 경북 상주시 화북면 동관 2리 ㅐ동관음 - 박씨 사모님 두 차례 은신한 곳-/ 19. 경북 울진군 죽변리 - 해월신사 및 박씨 사모님 은신한 곳-/ 20. 대구직할시 중구 교동 관덕정 -수운대신사 순도하신 곳-(keris 2005)

 

  동학의 문화유적 순례 Ⅰ(東學의 文化遺蹟 巡禮 Ⅰ(嶺南地域 2)) [學術저널] : 한국동학학회의 논문으로, 한국동학학회에서 2001년에 발행한 <동학연구> Vol.9․10 325-347쪽(23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주제어는 ‘동학 문화유적 순례 영남’이다. [목차] : 1. 진주의 동학혁명/ 2. 하동의 동학혁명/ 3. 예천과 동학혁명 - 치열한 굴머리 전투, 읍내 점거 실패-/ 4. 금산(金山)과 동학혁명/ 5. 상주의 동학혁명(keris 2005)

 

  동학의 민중종교운동적 성격과 그 사회적 기능(東學의 民衆宗敎運動的 性格과 그 社會的 機能) [論文] : 예천 출신인 김재범(慶北大 卒業, 同 大學院 社會學科 碩士, 同 文學博士, 美 캘리포니아 國際文化大 敎授)의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1990년 석사학위 논문으로, 86쪽, 경북대학교에서 1990년에 발행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강원대(중앙), 경북대, 경상대, 계명대(동산), 동국대(중앙), 부산대, 안동정보대, 전남대, 전북대, 충남대, 충북대, 호남대이다.(keris 2003 2005)

 

  동해의 수산 자원과 한반도 기후 변동의 역학 관계(東海의 水産資源과 韓半島 氣候變動의 力學關係) [冊] : 예천 출신인 장창익(張昌翼, 1953- , 釜慶大 助敎授) 등의 저서로, 201쪽, 삽도, 30cm, 서울 해양수산부에서 2003년에 출판하였다. 참고문헌(193-201쪽)이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경상대, 부경대, 부산대이다.(keris 2003)

 

  동행(동행, 20일 남산공원에서 공연) [기사] : 남산에 피는 봄꽃(철쭉) 향기 따라가는 여행/ 뮤직그룹 '동행'(대표 권예성, 예천예총사무국장)에서는 오는(2019년 4월) 20일 오후 1시부터 예천읍 남산공원 일원에서 '예천의 봄'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매년 한여름이면 도효자마당에서 지역민들을 위해 수년째 재능기부 공연을 하고 있는 뮤직그룹 '동행'(예성, 조진섭, 강다영, 송명석)이 도청신도시 인구 유출로 어려움을 겪는 예천읍의 유동인구 증가와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해 자비를 들여 기획하였다. 행사에서는 철쭉군락지인 남산공원의 철쭉꽃 만개시기에 맞춰 '동행' 밴드의 봄의 노래, 봄꽃놀이단의 k-pop댄스공연, 봄꽃놀이단과 함께하는 포토타임, 아이들을 위한 풍선아트, 시화전, 사진전,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대한민국축구종합센터 유치에 힘을 보태고자 홍보 포토존을 설치해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어 SNS에 홍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차량용 홍보스티커도 만들어 나눠줄 계획이다. 권예성 대표는 “예천의 봄이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봄꽃축제에 가족 친구 연인이 함께 오셔서 소중한 추억 만드시길 바란다.”고 말했다.(예천신문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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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창고 백종범, 8일 제8회 장기려봉사상 청소년체험수기발표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백종범(제8회 장기려봉사상 청소년체험수기발표대회 개최 : 민족사관고등학교 교내 동아리 ‘THE SCENE’ 영예의 국회의장상 수상, 장기려 박사 정신 계승한 전국 중고생 12팀 복지부장관상 등 수여) [기사] : 한국의 슈바이처 故 장기려 박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청소년들의 올바른 봉사 정신을 알려 건강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2020 제8회 장기려봉사상 청소년체험수기 발표대회(장기려봉사대회)’가 2020년 8월 8일 대한민국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과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 부산시청, 서울시교육청, 인제대학교 백병원,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송원 주식회사, 세화약품 주식회사, ㈜엠디넷 코리아가 후원한 이번 대회는 1, 2차의 예선을 거쳐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 온 총 12팀(개인부문 8팀, 동아리 4팀)이 본선에 올라 체험수기를 발표했다. 체험수기 발표회는 동아리 및 중‧고등학생들이 사회에 나눔을 실행하는 것을 격려하고 모범사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진행되었으며, 사례 발표 후 2020장기려봉사대회 이건오(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조직위원장을 비롯한 4명의 심사위원들의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장기려봉사상 대상인 국회의장상은 뮤지컬을 매개로 소외된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어온 민족사관고등학교의 교내 동아리, ‘THE SCENE’(대표 )이 수상했다.... 2020년 제8회 장기려봉사상 청소년체험수기 발표대회(장기려봉사대회)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국회의장상: THE SCENE 동아리(민족사관고등학교) ∆보건복지부장관상: 김동연(용인학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 / 심성보(대광고) ∆부산시장상: VIP 동아리(지리산고) ∆부산시교육감상: 성연주(부산성일여고) ∆금상: 최원(경기고) ∆은상: 정서연(대전도안고) / 백종범(대창중) ∆동상: 봉사랑봉사단 / 이가영(대전여고) / 정효원(성의여고)/청소년 문화재지킴이 동아리(한국폴리텍 다솜고).(진주영 기자 의학신문 202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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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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