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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078 : 두천리...둔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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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천리 : 경주 손씨/ 학도의용군 총대장, 3,4대 국회의원, 서울신문사 사장 경기도 하남시 항동 경북 경주시 강동면 인동리, 단구리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경북 예천군 용문면 두천리, 경북 군위군 효령면 내리동 경북 군위군 소보면 송원동 경북 상주군 공성면 거창리 경북 문경군 동로면 마광리 경북 상주군 청리면 율리 울산 울주.../ 출처 위키백과(daum 2017)
두천리 : →두천리 마을의 구성, →두천리 연혁
두천리(杜川里) 마을의 구성, 두천리 [里] : 두천리는 용문면(龍門面) 행정 리동 중의 하나로, 면소재지에서 서단(西端)에 있다. 동으로는 원류리(院流里), 서로는 소백산맥을 넘어 문경시 동로면 인곡리(聞慶市東魯面仁谷里), 남으로는 유천면(유천면), 북으로는 사부리(沙夫里)와 접하고 있다. 101가구(1980) 중 경주 孫 54가구, 영월 辛 6가구, 경주 李 4가구, 밀양 朴 3가구 등이 살다가, 78가구 382 명(1990) 중 경주 孫 45가구, 예천 林 7가구, 영월 辛 6가구 등이 살고 있다.
두천리(杜川里) 연혁, 두천리 [里] : 두천리는 용문면(龍門面) 행정 리동 중의 하나로, 신라(新羅) 때 수주촌(水酒村) 소속이었고, 658년(무 열왕 5)에 수주군(水酒郡) 소속이었다.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에 예천군(醴泉郡) 소속이었고, 936년(고려 태조 18)에 보주(甫州, 醴泉郡) 소속이었다. 1172년(명종 2)에 기양현(基陽縣) 소속이었고, 1204년(신종 7)에 보주(甫州) 소속이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보천군(甫川郡) 소속이었고, 1416년(태종 16)에 예천군(醴泉郡) 소속이었고, 임진왜란(1592) 직후에 예천군 희리동면(醴泉郡希里洞面(流里面)) 소속이었다. 1728년(영조 4) 예천현 유리면(醴泉縣流里面) 소속이었고, 1738년(영조 14) 예천군 유리면(醴泉郡流里面) 소속이었다. 1914년 예천군 유리면(醴泉郡流里面) 인천동(仁川洞)과 두천동(杜川洞)을 합쳐서 한 자씩 따서 예천군 용문면 두인동(醴泉郡龍門面杜仁洞)이라고 하였고, 1,2동으로 분동하였다. 1963년 1월 13일에 1개 동으로 병합하였고, 1987년 1월 1일에 두천동(杜川洞)으로 개칭하였다. 1988년에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였다.
두천원(頭川院) [터] : 용문면 원류리(院流里) 새원에 있던 여관으로, 156년(신라 아달라왕 3)에 국가의 동남 방향의 간선 도로로 개통되었던 계립령로(鷄立嶺路)의 길목이어서 용문사(龍門寺)에서 고려 때 설치하였다. 1165년(의종 19)에 당대의 명승(名僧) 조응 대사(祖膺大師)가 용문사의 주지인 자엄 대사(資嚴大師)를 만나기 위해 이 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원집이 워낙 낡았고, 잡초가 무성하여 한탄하면서 제자인 자엄 대사에게 이 곳을 정비하도록 부탁한 적이 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사부리(沙夫里) 서창(西倉)의 쌀로 밥을 지었다고 한다.
두층차의 관능적 품질에 대한 최적 추출조건의 예측(두층차의 官能的 品質에 對한 最適 抽出條件의 豫測) [學術저널] : 용문면 죽림리 출신 권중호(權重浩, 1954- , 醴泉中, 醴泉農高 卒業, 慶北大 敎授) 등(김만배 ...)의 논문으로, 한국식품영양과학회에서 1998년 11월에 발행한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제27권 제5호 914~919쪽(6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 : 서론/ 재료 및 방법/ 결과 및 고찰/ 요약/ 문헌 / [본문 요약] : 볶음 두충엽차 추출물의 관능적 품질을 최적화하고자 반응표면분석에 의한 볶음 두충엽의 최적 추출조건을 예측하였다. 수용성 고형분 함량은 능선분석에 의해 추출온도 99.3℃, 추출시간 67.8분에서 그 함량이 27.7%로 예측되었다. 관능적 특성에 대한 추출온도와 추출시간의 최적 조건은 색상 73.9℃와 59.6분, 향기 80.0℃와 90.0분, 후미 77.8℃와 55.5분 그리고 전반적인 기호도 77.9℃와 53.1분에서 최대의 관능평점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떫은맛은 77.8℃와 52.7분, 그리고 한약맛은 75.1℃와 49.4분에서 최소값을 나타내었다. 이상의 결과를 바탕으로 두충엽차의 수용성 고형분 함량과 관능적 품질 특성 중 전반적인 기호도의 반응표변을 ...하여 최적 추출조건 범위를 예측한 결과 추출온도는 75~83℃, 추출시간은 55~65분이었다. ...(daum 2009)
두충차의 관능적 품질에 대한 최적 추출조건의 예측(두충차의 官能的 品質에 對한 最適 抽出條件의 豫測) [學術저널] : 용문면 죽림리 출신 권중호(權重浩, 1954- , 醴泉中, 醴泉農高 卒業, 慶北大 敎授) 등(김만배, 이기동 ...)의 논문으로, 한국식품영양과학회에서 1998년에 발행한 914-919쪽(6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daum 2009)
두 친구(두 親舊) [冊] : 사로얀 윌리엄의 저서를 예천 출신인 황성식(東國大 卒業)이 번역한 책으로, 287쪽, 색채삽도, 20cm, 서울 인디북에서 2003년에 출판한 <...시리즈>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광주보건대이다.(keris 2005)
둑바웃골, 떡밧골 [골] : 유천면 송지리 망정(望亭)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문경군 흑송리(聞慶郡黑松里)와 경계 지점이다.
둑안, 두간 [마을] : 용문면 하학1리(下鶴一里) 이삿걸 남쪽에 있는 마을로, 본래 큰맛질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때 도랑을 경계로 하여 분리되었는데, 도랑의 둑 안에 있다. 2가구 7명(1992)의 안동 권씨(權氏)만이 살고 있다.
둑안 : 예천의 자랑 1832 : 예천충효 31(祝 김수현/예천방문 358)/ 작성 장병창/ 嘉平李氏 旌閭碑) [碑] : 하리면 부초리 475-1번지(田)에 있는 정려비각 안에 있는 비로, 조선 선조 때 용문면 하학리 둑안에 살던 안동인 권상근(權尙謹)의 아내 가평 이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선조 때 비각을 세웠다. 원.../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7)
둑안 : 내 고향의 이름 ('유래' 알기)/ 2009.07.11./ 있었다. *둑안(두간) 이삿걸 남쪽에 있는 마을로, 본래 큰맛질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도랑을 경계로 하여 분리되었는데, 도랑의 둑 안에 있다. *이삿.../ cafe.daum.net/yd054/Lmx0/ 용대24 | 댓글 2(daum 2017)
둔기동 : →둔톳골
둔등제(屯等堤) [터] : 예천군 다인현(醴泉郡多仁縣, 官門 70里)에 있던 조선 시대의 저수지로, 둘레 839척(尺), 수심(水深) 5척이었다.(醴泉郡邑誌 1786 1832 1841 1895)
둔보 김영준(鈍甫 金榮俊 : 所信의 公職者, 經營의 達人) [冊] : 보문면 미호리 출신인 김시우(金時佑, 1944- , 독립기념관 사무총장)가 둔보 김영준에 대하여 쓴 저서로, 515쪽, 23cm, 서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에서 1996년에 발행하였다. 안동대학교 도서관 중앙대출실에 소장(청구기호 991.1 김64ㄱ)되어 있다.
둔암정(鈍岩亭) [亭子] : 감천면 돈산리 돈전동(敦田洞) 주마산(走馬山) 산골에 있는 정자로, 이조 영조 때의 한양인 진사 둔암 조규양(進士鈍岩趙葵陽)이 살던 곳에 그의 유덕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1947년에 세웠다. 그의 호를 따서 정자 이름을 정하였다. 동쪽 유리(酉里)에 둔암(鈍岩)이란 바위가 있고, 이수악(李壽岳)의 기문과 조승희(趙承禧)의 중수기(重修記)가 있다.(朝鮮寰輿勝覽 1929, 嶠南誌 1937, 醴泉郡誌 1939)
둔암정(鈍巖亭) [亭子] : 감천면 돈산리 산골마을에 있는 정자로, 한양인 둔암 조규양(趙葵陽)의 학행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1947년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1.5칸,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醴泉鄕校誌 2004)
둔암정(鈍岩亭) [亭子] : 감천면 돈산리 소재, 한양인 둔암 조규양(趙葵陽)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947년에 세운 정자로, 1959년에 중건하였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우측 담장 사이에는 3칸 규모의 대문채를 세워 출입케 하였다. 시멘트로 마감한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전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다. 평면은 어칸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설치하였다. 가구는 오량가(五樑架)의 홑처마집이다.(醴泉郡誌 2005)
둔암정(醴泉敦山里 鈍巖亭) : *위치 : 예천군 감천면 돈산리 265(산동길 92-16), *연대 : 1900년, *규모 : ‘-’자형 정자 1채, ‘-’자형 대문채 1채/ 둔암정은 감천면 돈산리 주마산 아래에 산곡(山谷, 혹은 山洞) 마을 팔우헌(八友軒)과 일봉정(一峯亭) 사이에 있다. 둔암정은 정자이긴 하지만 서당 역할을 주로 하였다. 둔암정 만이 아니라 산곡 마을에 소재한 정자 대부분이 그랬다. 이곳에서는 산곡의 한양 조씨들만이 아니라 유리, 돈답, 미석 등 인근의 사람들이 두루 공부하였다. 둔암정은 진사 둔암 조규양(趙葵陽)이 살던 곳에 그의 유덕을 추모하여 1900년에 건립하였다. 둔암정에서 서남쪽으로 50여 보 떨어진 곳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조규양이 그 바위 이름을 ‘둔암’이라 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고 한다. 종제 팔우헌 조보양(趙普陽, 1709-1788)의 ‘둔암(큰 바위)’를 보고 당시 조규양을 위하여 쓴 글을 ‘둔암정기’라 하였다. 둔암정이 있는 돈산리는 예천읍과 감천면, 영주 장수면을 연결하는 충효로에서 서측으로 난 유리의 유동길과 돈산리의 산동길을 따라 접근한다. 산동길은 마을 중심 안길과 좌우 외곽길의 세 길로 갈라져 가옥들 앞을 지난다. 둔안정은 마을 중심을 지나는 마을 안길에서 북측으로 난 샛길을 따라 접근한다. 둔암정은 남측으로 흐르는 산자락에 터를 잡고 동남향을 하고 있으며, ‘-’자형의 정자와 ‘-’자형의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둔암정은 서면에 한식기와를 올린 토석담장을 두르고 있다. 출입은 좌측 담장의 뒷모서리에 세운 대문채를 이용하고 있다. 대문채 바로 앞에는 자그마한 밭과 이웃 건물에서 사용하는 콘크리트포장의 넓은 마당이 있다. 배면에는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을 한 일봉정과 넓은 안마당이 있다. 우측 담장 너머는 일봉정 대문채와 바깥마당이 있다. 정면의 담장 너머에는 마을의 안길이 지나가고 있으며, 길을 따라 개울이 흐르고 있다. 둔암정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자형의 누정건축으로 전면에 툇마루가 있고,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중앙의 마루간은 정면 툇마루 쪽에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아 출입하고 있으며, 후면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우리판문을 달아 외부와 통하도록 했다. 좌우 온돌방은 마루 쪽에 외여닫이 만살문을 달아 출입하고 있으며, 좌우측 벽에도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외부와 통하도록 했다. 둔암정은 기단과 기단 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으며, 기단 위 주초는 자연석이다. 기둥은 전면 툇기둥만 원기둥이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이다. 전면 툇기둥 상부는 직절익공방식으로 짜 맞춤을 하였으며, 나머지 좌우측과 후면 사각기둥 상부는 납도리형식으로 보아지와 창방, 납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가구는 오량이며, 마루간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열려 있다. 좌우 온돌방의 천정은 고미반자로 마감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처마 끝은 막새기와로 마감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벽면과 서까래 사이는 회바름으로 마감했다. 목부제는 토육색으로 채색했다. 대문채는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한 칸이 대문간이고,한 칸이 창고이다. 주초는 기계 가공한 제형주초이며, 주좌에 사각형 기둥을 세워 상부 가구와 지붕을 받도록 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처마도리에는 ‘鈍巖亭’ 편액이 걸려 있으며, 마루간에는 ‘鈍巖亭記’, ‘鈍巖亭重修記’ 편액이 걸려 있다. 상량대 일부분에는 “檀紀四二九二年己亥二月一日辰時開基同月六日午時定礎同月十四日卯時立柱同月十八日午時上樑 太歲成造 乾坐巽向‘(서기 1959년)이라고 쓰여 있다. 둔암정은 변형된 부분이 거의 없으며, 주변 누정건축물과 연계한 활용 및 유지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둔암정은 그에 적합한 보존 및 활용, 유지관리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정비 및 할용을 한다면 문화유산으로서 인문적 건축적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146-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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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