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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137 : 마전정미소...마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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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원 없이 살았지만 한두 가지 안타까운 일이 있다고 했다. 23년 전 고혈압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간 동생 상영 씨를 잊을 수 없다. 땅을 사도 꼭 절반을 나눠 가졌던 형제였다. 그런 동생을 보내고 제수씨의 농사와 4남매를 함께 뒷바라지 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조부와 부친이 사랑하던 정미소교회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동아기독교회였다. 이 교회는 침례교 전도인이었던 윤씨의 조부 윤종우 전도인이 사돈들과 함께 세웠다. 윤씨의 가족들과 아래 장터 사람들이 이 교회를 다녔다. 교회를 책임지던 분이 세상을 떠나고 인근 동네에서 주일마다 예배를 인도하러 오던 친척 감목(목사)마저 더 이상 올 수 없게 됐다.
혼자 주일학교를 맡아오던 윤씨의 동생 숙자(63·서울 화곡동 성암침례교회 권사) 씨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식구들은 모두 침례교회 대신 대한예수교장로회 지보교회를 택했다. 하지만 윤씨의 부친은 교회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두문불출하기 시작했다. 별명이 ‘독일병정’ ‘호랑이 영감’으로 불릴 정도로 무서운 분이었다. 윤씨의 매제 정영광(57·지보교회 장로) 씨는 “나락 한 알, 쌀 한 톨이 그냥 밖으로 흘러 다니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동네 사람들과 교회에는 쌀 아끼지 않을 만큼 인정이 후하셨다”고 말했다. 이 집에선 3대째 제사와 회갑, 칠순 등의 잔치란 없다. 결혼식 청첩장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빚을 내 물건을 사거나 쓰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그러나 문턱을 넘어온 초대장엔 일일이 정성을 보낸다. 이웃집 초상이 나면 가장 먼저 문상을 하는 것도 이 집의 독특한 문화다. 70년대 중반까지도 정미소 마당은 일꾼과 식솔, 이웃 사람들의 한마당이었다. 일하는 사람이 10여명인데 밥 먹을 땐 40명이 넘었다. 아내가 부엌일을 하면 남편은 나무 아래 잡초라도 뽑을 만큼 부지런했다. 동네 아이들은 멍석 위에서 밥을 먹고 주일학교를 다녔다. 돌아갈 땐 쌀자루를 채워 줬다. 동네 사람들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먼저 정미소를 찾았다. 식량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가을에 벼로 갚겠다는 말만으로 쌀을 얻었다. 벼를 찧을 때 처음 벗겨지는 딩기(왕겨)는 땔감이 부족한 집안이 퍼갔다. 현미를 도정할 때 벗겨지는 당가루도 이웃집 소와 가축들의 차지였다. 당시 방앗간 집에서 가끔씩 끼니를 해결했던 집은 100가구 정도다. 이 중 너덧 집은 한 식구처럼 지냈다. 지금은 건축업을 하는 등 성공한 집안도 적잖다. 유년시절 방앗간 집 인근에 살았던 오관택(48·자영업) 씨는 “탕탕탕 돌아가는 원동기 소리와 함께 주일마다 사탕을 얻어먹던 일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올 추석 연휴 대목이 걱정된다. 퇴행성관절염이 심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작년부터 문 닫을 생각이었지만 ‘한 해만 더’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윤씨는 요즘 부친의 눈치를 살핀다. 윤옹이 쌍둥이 손자 중 한 명에게 방앗간을 물려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미천니껴? 아들의 출셋길을 막았으면 그마(만)이지. 손자는 안 됩니더. 꿈도 꾸지 마이소 고마.” 윤씨는 나름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부친의 귀엔 들리지 않는다. 부친의 말이라면 한마디도 거역하지 않았다는 윤씨. 절대로 아들에게 대물림은 하지 않을 작정이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한걱정이다.(윤중식 記者 國民日報 2010.09.15)
마전정미소 : 벼를 빻아 쌀을 만들고 나누고… 방앗간 3代 70년/ 타고 선산·구미 방향으로 16㎞ 지점, 지보면 아래 장터 어귀에 구부정하게... 옆에는 교회가 있었다. 정미소 안에 교회가 있던 사례는 유일할 것 같다. 마전정미소 집은 평소엔 말소리가 담을 넘지 않는 차분한 가정이다. 원동기.../ news2.godpia.com (daum 2017)
마전 제방(麻田堤防) [둑] : 지보면 마전리(麻田里)에 있는 둑으로,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홍수로 농토에 피해가 많았다. 그래서 1980년 여름에 시공하여 1982년 초에 완공된 이 제방으로 홍수 예방은 물론 농토가 확장되었고, 적절한 보의 설치로 관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전중앙교회(麻田中央敎會), 대한예수교장로회 마전중앙교회(大韓예수敎長老會麻田中央敎會), 교회 [宗敎] : 지보면 마전리 173번지에 있는 기독교 합동(長老敎 合同側) 교회로, 1959년 대전(大田)에서 개최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통합측(統合側)으로 분리하여 박택룡(朴澤龍) 가족과 수명이 합동측으로 소속하여 박택룡 가(家)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1963년 5월에 현 위치에 토담집으로 예배당6칸을 세웠다. 1970년 9월 25일에 예천읍 중앙교회의 보조로 예배당 25평을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40평의 대지에 8평의 부속 건물이 있다. 오태열(吳泰烈) 목사 외 신도 52명(1982)이 있었고, 1명의 교직자와 40명의 신자(1986)가 있다.
마전중앙교회 : 마전중앙교회/ 도로명 예천군 지보면 지보로 183-3, 지번 예천군 지보면 마전리 190-12(daum 2017)
마전중앙교회 : 마전중앙교회 사택/ 예천군 지보면 지보로 175-6/ 길찾기 | 기독교(daum 2017)
마전중앙교회 : 제6차 정기총회(2007.3.19.-서광교회) 이후/ 2008.10.14./ 2007.11.26 : 성시화대회(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 주차안내 2007.12.10 : 크리스마스 츄리 설치 2007.12.17 : 크리스마스 츄리 점등식 2008.1.21 : 순회예배 마전중앙교회.../ cafe.daum.net/ycamen/TB... 예천군기독신..(daum 2017)
마전지(麻田池) [못] : 1) 지보면 마전리 마전(麻田)에 있는 저수지로, 저수량은 30,000ton이다. 2) 지보면 마전리(麻田里)에 있는 저수지로, 저수량은 67,000ton이다.
마전지 : 마전지/ (지번) 경북 예천군 지보면 만화리 791/ 카테고리 저수지(daum 2017)
마전지 : [공유] 예천군 지보면 소화리 소재 마전지에서/ 2010.01.09./ 인근에 마전지로 가봅니다. 1500여 평 정도 규모에 수심 깊은 소류지로 상류에 외딴집 한 채 있는 조용한 소류지로 붕어 어자원이 많은 곳입니다. 수심관계로 제방에서 갓 낚시 대 편성을 해 봅니다... 이날 3명이 함께 저와 같이.../ blog.naver.com/ja345600/ 安廣에 大物붕어 이야..(daum 2017)
마전지 : 예천 마전지/ 2014.01.27./ 경북 예천군 지보면 만화리 227-3/ blog.daum.net/big-fishing/ 安廣 조중석(daum 2017)
마전지 : [경북]예천/마전지/ 2016.07.18./ 위[클릭] 예천군 지보면 만화리 223/ cafe.daum.net/han602020... 釣道三樂(daum 2017)
마전 집수암거(麻田集水暗渠) [灌漑] : 지보면 마전2리(麻田二里)에 있는 집수암거로, 몽리 면적은 0.6ha이다.
마전평강성서침례교회 : →지보성서침례교회
마주목(馬柱木) [나무] : 용궁면 무이리 외무(外武)마을 가운데 우물가에 있는 노가주(?) 나무로, 높이 130cm, 둘레 12cm 가량의 얼핏 보기에 초라하다. <용궁군읍지(龍宮郡邑誌)>에도 그 기록(馬駐木 在龍宮武夷村 井上 壬辰 白震陽 繫馬于此故名 全無枝葉 如植一柱以刀驗皮 少無朽敗)이 있다. 임진왜란(1592) 당시의 하나의 초라한 나무가 근 400여 년 간 신비롭게도 유지되어 오고 있다. 이 나무는 황해도 관찰사인 추월담 백진양(白震陽)이 이 마을에 살면서 이 나무에 애마(愛馬)를 매어 두었다. 이 나무는 가지도 없고 잎도 없는 흡사 굵은 막대를 꽂아 놓은 것과 같으나 칼로 껍질에 험을 지워 살피면 조금도 상하거나 썩지도 않고, 수백 년을 한결같은 상태로 유지되어 온다. 전설에 임진왜란(1592) 때 장군은 말을 타고 싸움터로 나가면서 말하기를, "내가 싸움에서 이기고 공을 세우면 이 나무가 무성하게 자랄 것이요, 내가 공을 세우지 못하고 죽으면 이 나무도 죽을 것이다. 그러니 이 나무가 죽거던 나도 죽은 줄 알라."라고 하며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용궁면 향석2리 성저(城底)에서 산세를 이용하여 많은 전과를 세웠으나 부상당한 말만 돌아오고, 백 장군은 그 뒤 소식을 모른다. 이 말이 죽자, 마을 앞 냇가에 묻어 주고 이 곳을, '말무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주변의 논을 '말무덤배미'라고 한다. 그러나 1976년 경지정리 때 없어졌다. 백 장군은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르고, 이 마을 서쪽 산(白將軍山) 선영하에 의관장(衣冠葬)으로 묘소를 마련했으나 장군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애국 충절로 이 마주목은 수세기를 지나도록 당시의 모습대로 건재해 있음을 볼 때, "지성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이 있듯이 장군의 혁혁한 전과도 전과이려니와 장군의 애국 충절에 하늘이 감동하여 이 나무가 오늘날까지 건재한 것이라 생각된다.(醴泉郡誌 1939, 竺山勝覽 1934)
마주목(馬柱木) : ㅇ 위치 : 용궁면 무이2리(외무), ㅇ 내용 : 약 5백년 전 신비로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마주목(馬株木)이다. 황해도 관찰사(黃海道 觀察使)를 지낸 추월헌(秋月軒) 백진양(白震楊 : 1508~1591)이 무이촌에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끔찍이도 사랑하는 한 필(匹)의 애마(愛馬)가 있어서 늘 집 앞 우물가에 있는 이 나무에 매어두었다고 하여 마주목이라 부르게 되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전의 일이다. 왜구(倭寇)가 쳐들어오자 애마(愛馬)를 타고 싸움터로 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싸움에서 이기고 공(功)을 세우면 이 나무가 살아있을 것이요, 내가 공을 세우지 못하고 죽으면 이 나무도 말라죽을 것이다”하는 말을 남기고 싸움터로 떠났다. 얼마 뒤, 말만 돌아오고 백장군(白將軍)은 돌아오지 않은 채 소식을 모르게 되었다. 그 후 이 말이 죽자 마을에서는 마을 앞들에 정성스레 묻어주고 제사(祭祀)를 지냈으며, 묻어준 곳을 “말무덤”이라 하고 그 주변의 논을 “말무덤배미”라고 하여 근래(近來)까지 전해져 내려오다가 1976년도 경지정리(耕地整理) 때 없어져 말무덤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수 백 년이 지난 마주목(馬柱木)은 지금 당장 칼로 껍질을 흠이 나게 하여 살펴보면 아직도 썩지 않고 살아있음을 알 수 있으니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백 장군의 애국충절(愛國忠節)과 호국정신이 아직까지 남아있음을 이 나무가 가르쳐 주고 있다고 말한다. 백 장군은 외무 서쪽 산의 선영하(先瑩下)에 의관장(衣冠葬-전사자를 유품만으로 장사지냄)하였다. 그는 후손이 없으며 그 방손(傍孫)들이 묘소를 관리하며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이 나무는 높이 130cm, 둘레 12cm로 지금도 이 마을 이정행 씨 집 앞에 현존하고 있으며, 1997년 수원 백씨 문중에서 당시 대창중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정양수 선생의 글을 받아 마주목전설비(馬柱木傳說碑)를 세웠다. <예천군지(醴泉郡誌)>의 기록을 살펴보면, “마주목(馬柱木) 재용궁(在龍宮) 무이촌(武夷村) 정상(井上) 임진(壬辰) 계마우차고명(繫馬于此故名) 전무지엽(全無枝葉) 여식일주이도험피(如植一柱以刀驗皮 소무후패(少無朽敗)”라 기록되어 있다.(龍宮面홈페이지 2013)
마주목 : 용궁면 – 유래/ 2016.01.20./ 손도 대지 못했다고 하니 가히 신기(神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주목(馬柱木) ㅇ 위 치 : 용궁면 무이2리 (외무) ㅇ 내 용 약 5백년 전 신비로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blog.daum.net/shangrila8/ 초록동산 淸江白沙 ..(daum 2017)
마주목 : 경북 예천군 용궁면 전설(설화)/ 2013.01.13./ 와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삼강(三江)이 둘러쌓여 있다. 마주목(馬柱木) ㅇ 위 치 : 용궁면 무이2리(외무) ㅇ 내 용 약 5백년 전 신비로운 이야기를 간직.../ blog.daum.net/koreajrm/ 항상 행복하세요(daum 2017)
마주목 : 용궁 전설/ 2007.11.13./ 당시 시합했던 들판 일부를 지금도 「말무덤재」라고 부르고 있다. 마주목(馬柱木) ㅇ 위 치 : 용궁면 무이2리(외무) ㅇ 내 용 약 5백년 전 신비로운 이야기를 간직.../ blog.daum.net/xxooooo/ 無作(daum 2017)
마주목 : 마주목(馬柱木) 전설 -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 2012.01.11./ □ 마주목(馬柱木) 약 5백년 전 신비로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가 있었으니, 이름 하여 마주목(馬株木)이다. 황해도 관찰사(黃海道 觀察使)를 지낸 추월헌(秋月軒.../ blog.naver.com/kcs022/ 잠실아파트 / 잠실..(daum 2017)
마주목 : 고려 말 대학자 전원발, 벗들과 유유자적하던 곳/ 2010.12.10./ 그 산을 백장군산이라 부르고 마주목은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어, 충신의... 인물이었을까? 전원발(全元發)은 용궁면 무이리 소천(蘇川) 마을 출신으로, 호.../ blog.daum.net/ycs6781/ 한글(daum 2017)
마주목 : 백 장군 마주목, 산성/ 2016.05.10./ 마주목(馬柱木) ㅇ 위 치 : 용궁면 무이2리(외무) ㅇ 내용 약 5백년 전 신비로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가 있었으니, 이름 하여 마주목(馬株木)이다. 황해도.../ cafe.daum.net/backga1/T... 수원백씨 문간..(dau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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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