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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143 : 만국전도...만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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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전도(萬國全圖) [冊] : 용문면 대제리(大渚里) 큰맛질 미산고택(味山故宅)에 보관되어 있는 7종 40점의 책 중 하나로, 보물 제1008호(1989.8.1 指定)이다. 이 전적(典籍)은 함양 박씨 정랑공파 종중 소장본(咸陽朴氏正郞公派宗中所藏本)이다. 가로 133cm, 세로 71.5cm의 장지에 필사(筆寫)한 세계 전도로, 박정벽(朴廷벽, 1621-1693)이 1661년(현종 2년)에 그린 것이다. 배면(背面)에는 '상지이년 신축(上之二年 辛丑, 1661) 여필사(汝弼寫)'라고 쓰인 식문(識文)이 있는데, 원본을 입수하여 50세 때 모사(模寫)한 것으로 보인다. 여필(汝弼)은 박정벽의 자로 본관은 함양, 1642년(인조 20)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에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역임한 학자이다. 이 전도는 네 모퉁이에 만국전도(萬國全圖)라 쓰여 있고, 바다와 육지에 따라 각각 다른 색으로 채색되어 있고, 모양이 지구의(地球儀)와 흡사하고, 경도(經度), 위도(緯度)까지 표시되어 있어 과학적인 고증과 기법으로 작성되었다.
만귀정(晩歸亭), 강당 [亭子] : 지보면 상월리 382번지 성조골(盛鳥洞)에 있는 정자로, 정면 4칸, 측면 2칸, 건평 14평, 목조와가(木造瓦家) 팔작(八作)지붕이다. 경주인 만귀 최윤경(晩歸崔潤敬, 司直, 1585년으로 추정)의 유덕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1812년(순조 12)에 옛 집터 곁에 세웠다. 오래 되어 퇴락한 것을 1962년에 중수하였다. 최윤경은 계림군 최영련(鷄林君崔泳煉, 1473-?)의 현손인데, 최영련이 한성부에서 예천으로 우거(寓居)하였고, 최영련은 임진왜란(1592) 때(추정) 고양(高陽)에서 성조골로 우거하였다. 최윤경이 시로써 이르기를, "밤 강가에 달이 솟으니, 돌아오는 길목 돌머리에 구름이 떴다."라고 하였다.(竺山勝覽 1934)
만귀정(晩歸亭) [亭子] : 지보면 상월리에 있는 정자로, 경주인 만귀 최윤경(崔潤敬)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1812년(순조 12)에 세웠다. 1962년에 중수하였고, 정면 4칸, 측면 2칸,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 1986년 2월에 후손 병균(秉均)이 지은 ‘만귀정기’의 현토문이 <용궁향교지(龍宮鄕校誌)>(2005) 상권(上卷) 1066-1067쪽에 수록되어 있다.
만귀정(晩歸亭) [亭子] : 지보면 상월리 산35번지 소재, 경주인 최윤경(崔潤敬)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1812년(순조 12)에 건립한 정자로, 1962년에 중수하였다. 성조마을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으며 툇간의 전면에는 유리창문을 설치하였다. 가구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醴泉郡誌 2005)
만귀정(醴泉上月里 晩歸亭) : *위치 : 예천군 지보면 상월리 380, *연대 : 1812년, *규모 : ‘-’자형 정자 1채, 관리사 1채/ 만귀정은 지보면 상월리 성줏골 뒷산 아래에 있으며, 선략장군사직(宣略將軍司直)을 지낸 만귀 최윤경(崔潤敬, 1585년으로 추정)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812년에 건립하였다. 최윤경은 경주최씨로 한양에 살다가 임진왜란 이후 예천으로 이거하였으며, 그 후손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후손들은 옛 거주지 옆 빈터에 정자를 세워 선조를 추모하였다. 정자는 1961년에 건물을 중수했다. 성줏골은 달리 ‘성짓골’ 혹은 ‘성조동(盛鳥洞)’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은 최씨 아닌 성은 못 산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이유는 마을 뒷산을 ‘새장말개‘라고 하는데, 해질녘이면 새들이 수없이 모여들어 새의 낙원을 이루니 산(山) 아래 새(佳)가 있는 한자는 곧 최(崔)씨 이며, 그래서 이곳은 최씨가 살 낙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원래 홍(洪)씨와 문(文)씨가 개척했으나 최씨가 들어오자 모두 떠났다고 한다. 현재는 40여 호의 경주최씨 동성마을을 이루고 있다. 경주최씨들은 450여 년 전 경기도 일산지역에서 입향하였으며, 당시는 피난처를 찾아 들어왔다고 한다.
만귀정은 정자이지만 재사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난방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시제를 준비하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문중 계회를 열기도 하고, 동성마을이라 동네 공동시설의 하나로 이용하기도 한다. 현재의 주차장 위치는 ‘재궁(재막)’이 있던 곳이며, 위토가 2,500여 평 있다. 상월리 만귀정은 지보면을 관통하는 28번 지방도로 예지길에서 서측으로 난 송평천과 내성천 변 용포길에서 남측 상월리를 향한 상월길을 따라 접근한다. 이 상월길은 계곡를 따라 나 있는데, 좌측에 논이 있고, 우측에 산이 있으며, 나지막한 야산 서측에 자리한 마을 앞을 지나간다. 만귀정은 상월길의 끝자락에서 동남향을 하고 있으며, 터를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마련하여 아래의 가옥을 한 눈에 바라보고 있다. 만귀정은 건립 이후 1961년 중수를 하였으며, 2000년 번와 보수, 2007년 창호 및 설비 등을 증개축했다. 만귀정은 경사면에 자연석으로 축대를 높게 쌓은 후 터를 마련하였고, 시멘트기와를 올린 토석담장을 사면에 두르고 있다. 출입은 좌측 토석담장에 있는 일각문을 이용한다. 정면 담장 아래에는 시멘트로 포장한 마당이 있는데, 이 자리에는 원래 재사가 있었다고 한다. 만귀정 좌측에는 샌드위치 판넬의 관리사가 있고, 관리사와 담장 사이에는 ‘晩歸亭創建時有功諸員頌德碑’와 ‘丁亥年 晩歸亭 重修 誠金碑’ 표석 2기가 있다. 배면과 좌측 담장 너머에는 잡목들이 살고 있다. 담장 내 바닥은 시멘트로 포장을 했다. 만귀정은 전면과 후면에 툇간을 구성한 ‘-’자형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이다. 정면 툇마루는 바닥을 장마루로 마감하고, 마루 끝에 미닫이 유리문을 달아 놓았다. 평면은 중앙의 2칸 규모의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마루간은 툇마루처럼 장마루 구조이며, 배면 2칸에 두 짝 미닫이유리문을 달아 놓았다. 좌우 온돌방은 대청 쪽에 네 짝 이자살문을 달아 출입하고 있으며, 전면 툇마루 쪽에는 통마름을 걸고 네 짝 미닫이 아자살창문을 달았다. 좌우측 벽면에는 미닫이 유리창문을 달아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좌측 온돌방은 배면 툇간에 벽장을 꾸며 수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상단은 네 짝 미닫이유리문을, 하단은 네 짝 미닫이 판문을 달아 놓았다. 우측 온돌방은 배면에 벽장을 꾸미지 않고 방을 넓게 사용하면서 벽면에 네 짝 미닫이 유리창을 달아 놓았다. 만귀정의 기단과 기단 바닥은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으며, 좌우측에 아궁이가 있었는데, 현재는 개보수를 하면서 없엤다. 주초는 가공한 원통형의 화강석주초이며, 전면 열 주초 위 기둥만 원형기둥이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이다.
기둥 상부는 소로수장방식으로 짜 맞춤을 했는데 익공형식으로 초각한 보아지와 인방재가 짜 맞춤을 한 후 주두를 놓지 않고, 보와 도리받침장혀, 굴도리가 짜 맞춤을 했으며, 장혀와 인방재 사이는 소로와 판재를 끼워 마감했다. 마루간의 중앙열 가구는 일고주 오량이며, 좌우 온돌방 상부는 이고주 오량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처마 끝은 막새기와를 올려 마감한 후 철재 차양을 달았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으로 추녀마루와 용마루, 내림마루 끝은 망와로 마감했다. 내부 천정은 베니어판을 사용한 우물반자로 마감했다 .벽체와 앙토는 회바름을 하였으며, 부연부분만 개판으로 마감했으며, 목부재의 마구리는 흰색으로 칠했다. 처마도리에는 ‘晩歸亭’ 편액이 걸려 있으며, 마루간에는 1961년 정승모(鄭升謨)가 쓴 ‘晩歸亭上樑文’과 ‘永慕軒’ 편액이 걸려있다. 현재 만귀정은 1812년 건립 이후 1961년 중수 등을 했으며, 현재 보존 및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어 건물의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기존 정자들과 달리 전후퇴를 구성하여 실공간을 넓게 쓰고 있는 점이 예천의 다른 정자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만귀정은 보존 및 활용을 위한 유지관리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정비 및 활용을 한다면 그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258-260쪽)
만귀정 : 예천의 자랑 3544 : 예천대사전 제158권 오늘 나와, 총 31,600쪽 돌파(祝 임상기, 라이온스클.../ 장병창 편저/ 3쪽), 동산정(풍양면, 1800년), 두은정(1957년, 총 3쪽), 둔암정(1900년), 마당, 만강정(1908년), 만귀정(1812년, 총 3쪽), 만송정(지보면, 1932년), 만송정(풍양면, 1925년), 만의정(1880년, 총 3쪽), 만죽정(1930년), 만파루(1.../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bulletin (daum 2017)
만 노예천 도형(挽 盧醴泉 道亨) [詩] : 일송 심희수의 시로, 1649년에 발행된 <일송선생문집(一松先生文集)> 3권 칠언율시(七言律詩)에 수록되어 있다.(韓國歷史情報綜合시스템 2004)
만다라탱화 [佛畵] : 예천 용문사에 모셔진 국내 유일의 탱화로, 사진작가 안장헌이 사진으로 찍어 두었는데, 그 탱화가 없어졌고, 다시 되찾아졌을 때에는 명문이 완전히 지워진 상태였다. 명문을 복원하는 데는 역시 그의 사진이 꼭 필요했고, 복원된 탱화는 이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月刊 佛光 글 남동화)
만다라탱화 : 중요무형문화재 자주장 심선신침(心線神針) 최유현 자수전/ 2016.04.28./ 그리고 전국의 사찰을 돌며 탱화에서 자수의 소재들을 찾았다. 그러한 헌신적 노력의 결실일까 경북 예천 용문사에서 국내 유일의 만다라를 발견하게 되고 8년여 동안.../ yoyomakit.blog.me/ 요요마의키친: 서초..(daum 2017)
만다라탱화 : 만다라의 이론과 실천 - 허일범 교수/ 2007.11.30./ 만다라와 탱화는 어떻게 다른가? 6. 만다라와 연화는 어떤 관계인가? 7. 만다라와 융의 심층 심리학은 어떤 관계인가? 8. 만다라의 구조와 상징성은 어떤 것인가.../ tage2000.blog.me/ 반야용선(daum 2017)
만다라탱화 : 자수장 최유현/ 2014.01.29./ 합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천 용문사에 있는 만다라를 밑그림으로 자수 작품을... 예배의 대상으로 모셔 온 산신탱화를 밑그림으로 전통기법으로 수놓은 작품.../ blog.naver.com/ddmpark4_st/ 동대문역사문화공원..(daum 2017)
만다라탱화 : 자수장/ 2014.07.28./ 예천 용문사에 있는 만다라를 밑그림으로 자수 작품을 만들어 1988년 제13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유현 선생은 1996년 중요무형문화.../ cafe.daum.net/musakumdo... 사)한국 전통..(daum 2017)
만덕사(萬德寺) [터] ; 하리면 탑리(塔里)에 있던 사찰로, 원래 신라(新羅) 하대에 창건된 흥덕사지(興德寺址)로 전해 왔으나 1976년에 단국대조사단(檀國大調査團, 團長 鄭永鎬 博士)에 의해서 만덕사(萬德寺)라는 와편(瓦片)이 발견되어 사명(寺名)을 알게 되었다. 이 일대에 삼층석탑(三層石塔, 新羅 下代), 2층 폐탑(廢塔, 新羅 下代, 麗初), 석불좌상(石佛坐像, 麗初), 원좌 주초석(圓坐柱礎石) 등이 있다.(醴泉郡誌 1988)
만두국(饅頭국) [時食] : 예천군에 음력 10월에 전승되어온 겨울철 시식으로, 옛부터 전해오는 음식이다. 쇠고기를 다져 양념하여 볶은 것과 데친 숙주, 미나리, 표고, 생배추 등을 다져 양념한 것과 두부 등을 넣어 만두 속을 만든다. 이 속을 열고 밀가루 반죽을 하여 반달 모양으로 빚어서 이를 쇠고기 맑은 장국에 끓여서 먹는 것이다.
만둔암선생유허비기념시집(晩遯庵先生遺墟碑記念詩集) [冊] : 지보면 신풍리 사람인 만둔암 윤사석(尹師晳, 1417-?, 性理學者, 司憲府 執義, 後孫 新豊里 等)의 유허비 기념 시집으로, 1책, 삽도(揷圖), 28.9×19.5cm,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2.4×16.3cm, 유계(有界), 14행(行) 자수부정(字數不定), 주쌍행(註雙行), 판심(版心)은 상 이엽 화문 어미(上二葉花紋魚尾)이다. 대전(大田) 회상사(回相社)에서 1975년에 출판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경기대(수원)이다.(keris 2005)
만락재(晩樂齋) [齋舍] : 감천면 천향리 373번지(三泉初等學校 南쪽 앞)에 있는 재사로, 예안(宣城)인 만락 김영윤(晩樂金永胤, 1826-1907)의 유덕을 추모하여 증손자 재규(在奎)와 여러 후손들이 1976년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 목조와가 평가건(木造瓦家平家建)이고 팔작(八作)지붕이다. 김영윤은 평소에 근검하고 책과 농사로 세월을 보냈다.
만락재(晩樂齋) [齋舍] : 감천면 천향리 373번지 소재, 선성인 만락 김영윤(金永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76년에 건립한 재사이다. 주위에는 기와를 얹은 토담을 둘렀으며, 정면에는 일각문을 세워 출입케 하였다. 재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후면 칸에는 온돌방 2칸과 대청 1칸을 연접시키고, 전면 칸에는 마루를 깔았다. 기둥은 전면에만 원주를 세웠는데, 기둥의 하부에는 4각형의 석간주를 세워 전면의 마루는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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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