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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161:말레이사상충증...말무덤...
작성자장병창 @ 2020.11.13 06:10:32

  도청신도시 예천 1,161 : 말레이사상충증...말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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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사상충증(말레이絲狀蟲症), 수종(水腫)다리 [病] : 예천 등경북 북부 산간 내륙 지방에서 고질적으로 가장 많이 발생하던 풍토병으로, 국립보건원이 역학조사(疫學調査)와 방역관리사업을 1971년부터 10년 간 벌인 결과 1981년 조사에서 이같은 질환이 완전 퇴치되었다고 하였다. 국립보건원 김동찬(金東燦) 기생충과장 등 기생충연구반팀은 1971년 이 병에 대한 조사 결과 양성 감염률(陽性感染率)이 평균 6%였고, 1973년 조사 결과 감염률이 13.1%로 나타났다. 이 병은 만성증세로서 상피증(象皮症)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기생하고 있는 모기 종류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얼룩날개모기에 의해 모기(中間 宿主)가 사람의 피를 빨아먹을 때 핏속에 섞여서 모기의 몸 속에 들어가서 거기서 발육, 성숙 유충이 되고, 성충은 임파선(淋巴腺)에서 살고, 애벌레인 미크로휠라리다 중 수컷은 길이가 약 22.3mm, 암컷 길이는 약 55mm로 말초 혈관에서 기생하고, 밤이면 사람의 몸의 표면에 약 0.2mm 말초 혈관을 통해 나타나고 낮이면 없어지는 게 특징이다. 그로 인해 수종(水腫)다리병은 다리가 퉁퉁 붓고, 상처가 나면 잘 낫지 않는다. 이로 인해 1971년부터 매년 7-8월 사이 국립보건원 기생충연구팀은 이 곳에 와서 밤 9시에서 12시까지 미크로휠라리아 양성환자 전원에 대해서는 주치약(主治藥) 디에틸캄바마이신을 체중 kg당 36mg(減量療法)씩 집단 투약 실시로 80%의 음성화 율(陰性化率)을 보여오던 중 1981년 조사에서 1명도 보이지 않게된 것이다.(大邱每日新聞 1982.8.19)

 

  말매미 [動物] : 예천군의 사과나무, 기타 활엽수(闊葉樹)에 서식하는 대해충으로, 학명은 Cryptetympana Coreana Kato이고, 매미과에 속한다. 매미 중에서 가장 크다.

 

  말매미충 [動物] : 예천군의 벼, 화본과(禾本科) 잡초에 서식하는 곤충으로, 학명은 Cicadella Viridis Linne이고, 매미충과에 속한다.

 

  말머리 귀신 : →천제등

 

  말모등재 : →말무덤재

 

  말무덤(言塚) [무덤] : 지보면 대죽리(大竹里) 한대 동쪽마 좌편 주둥개산에 있는 무덤으로, 이것은 마총(馬塚)이 아니라, 언총(言塚)이다. 대죽리 야산에 올라보면, 마을을 둘러싼 산 형세가 마치 개가 입을 벌리고 있는 개의 주둥이 형국이 뚜렷하다. 그래서 산 이름도 주둥개산이라고도 한다. 그 주둥개산 끝에 말무덤이 있다. 이 마을의 형성 연대는 고려 초로 거슬러 올라가 조선 초에 안동 권씨(權氏), 경주 이씨(李氏), 춘천 박씨(朴氏) 등이 대종을 이루고, 150여 호가 많은 각성받이 마을로 비교적 부촌(富村)에 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동네에 말썽이 생기고, 이웃 간에 말싸움이 잦아 시비가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아무 이해 관계도, 별 것도 아닌 일에도 꼭 말에 씨앗이 되고 있으니, 이는 필경 마을에 연고가 있을 것이라는데, 백방으로 원인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한 과객이 찾아들어 지세를 살피고 나더니, 그 예방책을 일러주고 떠났다. "이 지세는 개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국 안에 동네가 형성되었다. 좌청룡(左靑龍)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랫턱을 형성했고, 우백호(右白虎)는 구부러져 길게 뻗어 윗턱을 만들며 개주둥이를 형성했다. 개는 원래 사람만 보면 짖어대고, 또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것이 개의 생리가 아닌가." 이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그럴 듯한 논리에 솔깃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우선 개 주둥이의 송곳니쯤에 자리가 되는 동구 논 한 가운데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나란히 세워, 짖지도 물어뜯지도 못하게 재갈(자갈)을 물린다는 뜻에서 재갈바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비의 씨앗이 된다는 동네에 말썽 많은 말들을 모두 사발에 담아 주둥개산에 묻어 큰 묘를 쓰니, 이것이 말무덤이다.

 

  그 후로는 동네가 조용해졌다고 하는데, 말무덤 아니 재갈바위의 연대는 미상인 채 아직도 건재하다. 말무덤은 일제 때 하도 무덤이 커서 도굴해 보니, 달랑 빈 사발 하나만 나왔다고 한다. 지금 동구 논 가운데 재갈바위는 아직도 우뚝한데, 말무덤은 이 마을의 박씨들이 1970년경에 말무덤 아래 묘를 쓰고 나서 적어졌으나 아직도 형태는 완연한데 1990년 5월 김병찬, 김병태가 오석으로 말무덤비를 세워 보존하고 있다(스포츠서울 1992.1.20). [醴泉郡廳 홈페이지] : 지보면 대죽리에 있는 전설로, 마을을 둘러싼 산의 형세가 마치 개가 입을 벌리고 짖고 있는 듯한 '개 주둥이 형상'이라고 풍수지리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풍수들의 주장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을 뒷산 이름이 '주둥개산'으로 불리고 있는 이 마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웃 간, 문중간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특별한 이해 관계가 아닌 데도 말이 씨앗이 되어 마을에는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고, 이에 마을 주민들은 싸움의 원인과 처방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이 마을을 지나던 과객이 지세를 살피더니, "좌청룡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을, 우백호는 구부러져 길게 뻗어 위턱을 형성 서로 짖어대는 개 주둥이 형상을 하고 있어 마을이 시끄럽다"며, "개가 짖지 못하도록 처방을 해야 한다."며 예방책을 일러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길손의 말에 따라 개 주둥이의 송곳니쯤 되는 동구 논 한가운데에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개의 앞니로 추정되는 마을 길 입구에는 바위 두 개를 각각 세워 개가 짖지 못하도록 재갈바위를 만들었다. 또 마을 사람들은 시비의 발단이 되어온 동네의 말썽많은 말들을 모두 사발에 담아 주둥개산에 묻어 말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방을 한 뒤부터 신기하게도 마을이 평온해 지고 이웃 간에도 싸움이 그쳤으며, 돈독하고 또 훈훈한 우정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말무덤과 재갈바위의 조성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이 마을의 형성 연대가 고려 초로 거슬러 올라가고 조선조에 안동 권씨, 경주 이씨, 춘천 박씨 등이 대종을 이루고 살았다는 역사적 기술로 보아, 조선 초에서 중엽 사이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이 마을 입구에는 1990년 5월 마을 주민들이 사비를 들여 오석으로 된 말무덤 비석을 세워 전설 유적 보존에 힘쓰고 있다.(醴泉郡廳 홈페이지 2002.9.19)

 

  말무덤 [무덤] : 풍양면 풍신1리 소이산봉수대(所伊山烽燧臺)에서 동북 아래쪽으로 약 200m 지점에 있는 큰 무덤으로, 도굴된 흔적이 있다.

 

  말무덤(󰡒말(言) 무덤을 아시나요󰡓: 醴泉 大竹里 門中 間 싸움 防止 爲해, 風水地理 根據 바위․말무덤 만들어) [記事] :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에는 ‘言塚’(말무덤)이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옛부터 각성바지들이 모여 살고 있던 대죽리는 사소한 말 한 마디가 씨앗이 돼 문중 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 마을을 지나가던 과객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뒷산의 형세를 살피고는, 󰡒산 모양이 마치 개가 주둥이를 벌리고 짖고 있는 모습이어서 마을이 시끄럽다󰡓며 예방책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과객의 말에 따라 개 주둥이의 송곳니 위치쯤 되는 동구 밖 논 한가운데에 날카로운 바위 두 개를, 앞니 위치인 마을 입구에 또 다른 바위 두 개를 각각 세웠다. 또 항상 싸움의 발단이 돼온 말썽 많은 말(言)들을 사발에 담아 뒷산(주둥개산)에 묻어 무덤을 만들고 말무덤이라는 비를 세워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대죽리에는 말무덤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수 백 년을 내려오면서 싸움이 없어지고 마을이 평온해져 이웃 간의 두터운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장병철 記者 慶北日報 2005/03/08)

 

  말무덤(알려진 곳 숨은 이야기-말 무덤(言塚), 이 말 많은 世上…저 말 없는 警鐘) [記事] :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 마을에는 희한한 무덤이 있다. 말 무덤(言塚)이다. 묻을 게 따로 있지 하필이면 왜 말(言)을 묻었을까. 또 말을 묻은 무덤은 도무지 어떤 모습일까. 마을 이장 김병오(57) 씨의 얘기다. 조선시대 용궁고을(龍宮縣)에 속한 이 마을은 인근에 있는 현재의 의성군 안사면, 안동시 풍천면 일부까지 합쳐진 아주 큰 마을이었다. 논 1천800마지기, 밭 1천 마지기의 마을 농지 규모를 보면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을 곳이다. 지금도 호수(120호)로만 따지면 예천군에서는 한두 번째에 꼽히는 큰 자연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어느 집안이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김녕 김씨, 밀양 박씨, 진주 류씨, 경주 최씨, 김해 김씨, 인천 채씨들이 속속 세거지를 잡았다. 안동과 예천, 봉화 등 경북 북부지역의 유서 깊은 전통마을 대부분이 유력 성씨의 집성촌으로 이뤄져, 대성(大姓)이 주민의 60~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특이한 마을이다. 따라서 문중(門中) 간 반상(班常) 알력도 불보 듯 했을 터. 어느 문중이 마을 붙박이 대문중인지, 벼슬은 누가 높게 했는지, 전답(땅)은 또 얼마나 많은지, 자기 집안 위세 자랑하자면 필시 남의 집안을 낮췄을 것이다. 각성바지 간에 사소한 말 한 마디가 씨앗이 되어 큰 싸움으로 번지고 바람 잘날 없어 마을 어른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던 과객이 주변 산의 형세를 보고, "개가 짖어대는 '주둥개산' 형상을 하고 있어 마을이 시끄럽다"며 예방책으로 개 주둥이의 송곳니 위치가 되는 동구 밖 논 가운데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세우고 개의 앞니 위치인 마을 입구에는 개가 짖지 못하도록 '재갈 바위'를 세우도록 일렀다. 마을 사람들은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는 아예 분란의 싹을 없애고 그 간의 설화(舌禍)를 말끔하게 한 데 쓸어 담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발을 '주둥개산'에 묻고 무덤을 만들었다. 김 이장은, "물론 문헌에는 없는 얘기고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지만 말 무덤은 마을의 수호신처럼 존재하고 있고, 마을 사람들은 그 교훈을 지금껏 변함없이 지킨다."고 강조했다.

 

  마을 초입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유승민(72) 씨의 부인 이부용(67) 씨는, "50여 년 전 열여덟 살에 이 곳으로 시집온 직후 시댁과 마을 어른들에게 들은 첫 말씀이 말 무덤 얘기였다"며, "그 덕에 평생 이웃 간에 험담 않는 것을 부녀자의 도리로 알고 다른 집 아낙들도 영락없이 이 내력을 따르는지라 서로 다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마을 동쪽 산등에 있는 말 무덤은 30~40년 전까지 지름 20m, 높이 3m 정도 크기의 고분형이었으나 지금은 많이 허물어져 크기도 작아졌고 봉분도 드러나 있다. 이에 따라 출향 인사들이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15년 전 비석을 세워 후대에 근본을 삼도록 했다. '재갈바위' 중 하나는 2000년 경지정리사업 때 신축한 마을회관 경로당 표지석으로 만들어 두었다. "이웃끼리 사소한 언쟁 한 번 없이 화목한 것은 주민들 자체가 양순한 때문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런 기질이 말 무덤에서 비롯된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김 이장의 말에는 분명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정경구 記者 每日新聞 2005년 0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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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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