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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신도시 예천 1,167 : 말무덤...말산...(부, 전 예천여중고 총동창회장 박영순 고려대 명예교수, 17일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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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무덤 : 예천군, 문화관광 활성화 위한 다양한 시책 추진/ 2012.01.26 | 뉴시스 | 다음뉴스/ 휴게시설을 마련해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지보면 대죽리에 소재한 말무덤(言塚)을 정비해 말실수로 인해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현대인들에게 산 교육장...// 관련기사// 【예천】문화관광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시책 추진 2012.01.26 | 영남타임즈// 예천군, 문화관광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시책 추진 2012.01.26 | GBN 경북방송// [대구경북]예천군, 문화관광 활성화 총력 2012.01.26 | CNB뉴스// 관련기사 4건(daum 2017)
말무덤 : [기획특집]예천만의 특징 살려 문화예술 저변확대/ 2012.02.03 | 전국매일신문/ 휴게시설을 마련해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군은 지보면 대죽리에 소재한 말무덤(言塚))을 정비해 말실수로 인해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현대인들에게 산 ...(daum 2017)
말무덤 : "지명은 땅에 새겨진 문화유산"/ 2006.07.23 | 연합뉴스 | 다음뉴스/ 국토와 지명' 4째 권 발간/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주둥개산'에 있는 '말무덤'은 말(馬)의 무덤이 아니라, '언어'의 무덤이다. 굳이 한자어로 바꾸면 '언...(daum 2017)
말무덤 : [신년사] 이현준 예천군수/ 2011.12.29 | 뉴시스 | 다음뉴스/ 남산공원 산책로 주변에 조각동산 및 시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지보면 대죽리 말(言) 무덤을 관광자원화해 나가겠으며, 육상보조경기장을 전천후시설로 만...(daum 2017)
말 무덤(말 무덤(言塚)과 말에 얽힌 이야기 [기고] : 경북 예천의 한대마을 어귀에는 고분 형태의 대형무덤이 하나 있다. 말(馬)이 아닌 말(言)을 묻은 무덤 즉, 언총(言塚)이고 유래는 오래됐다. 4~5백년 전 이 마을에는 성씨가 다른 여러 문중이 모여 살았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문중 간의 싸움이 바람 잘 날 없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마을 어른들이 그 원인과 처방책을 찾던 중, 지나가던 과객이 일러 준 대로 말싸움의 발단이 되는 온갖 말들을 사발에 담아 무덤을 만든 후에야 마을이 평온해졌다는 이야기이다. 무덤 주변엔 ‘말은 적을수록 좋다. 말이 말을 만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과 관련된 격언들이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그간 말을 참 많이 하면서 살았다. ‘S’전자와 공기업, 국회와 대학에 있을 때도 맡은바 업무 특성상 말을 많이 해야만 했다. 이 가운데 6년간 지구당위원장을 맡았을 때가 피크였다.
눈만 뜨면 사람을 만나 밤늦도록 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심할 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말을 많이 했다. 정치는 허업인데도 죽기 살기로 올인 했으니 참 어리석었다. 그러나 명분은 옳았기에 아프지만 후회는 없다. 학교로 되돌아와서도 그랬다. 강의는 그 흔한 PPT 한번 사용하지 않고 칠판에 제목만 적어 놓고 강의를 했다. 이해를 도우려고 오대양 육대주를 한 학기에 몇 번씩 오고 가면서 쉽게 설명한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쉬지 않고 100여 분씩 했으니 말이다. 옛말에 말 잘하면 변호사고, 말 많으면 약장수라고 했다. 말은 못 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게 분명 낫다. 그러나 말을 너무 잘하고 많이 하다 보면 왠지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다. 말로서 말을 합리화시키려고 기교를 부리며 우기는 말장난 때문이다. 정치인의 말 바꾸기나 ‘내로남불’도, 김태우와 신재민을 향해 여과 없이 쏟아내는 청와대와 여당의 인격 살인적인 언행도 그렇게 보인다. 요상한 게 말이다. 말은 처음에는 그냥 말이었다. 그러나 입에서 나와 상대방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큰일을 낸다. 말 한마디가 닫힌 남의 마음을 열게도, 기쁘게도 슬프게도, 사랑하게도 미워하게도 한다. 법정에 불려나온 용의자가 억울한 혐의를 벗는가 하면, 죄가 드러나 심판을 받기도 하고, 사기꾼의 말에 속아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 말에서 기인한다. 말이 갖는 위력은 내 운명의 결정권을 송두리째 맡기는 ‘선거’라는 행위에서 극에 달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 온갖 말을 마구 쏟아낸다. 그 말에 속아 권력을 위임했더니 정책이란 미명하에 세금을 멋대로 쓰면서, 턱도 없는 자들을 엄청난 자리에 앉히니 정책은 실패하고, 혈세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니 세금폭탄이 뒤따른다. 말로는 국민이 먼저라면서 하는 짓은 정반대다. 무능한 권력은 오만까지 더해져 모든 걸 거덜 내곤 추락해 소멸한다. 혹세무민에 역천자망이란 말이 있다.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믿은 것은 그의 말뿐이었기에 자승자박인 셈이다. 말은 사람에게 물과 공기와 같다. 어떤 사람을 평가하고 관계 지속 여부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성공과 실패도 그렇다. 혹자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백 마디보다 상대방 마음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말 한마디를 남기며 살라”고 한다. 이처럼 말은 개인과 가정은 물론이고 국가의 흥망도 결정짓는 마력을 지녔기에 냉철히 잘 듣고 결정하고 책임도 져야 한다. 특히 ‘공짜공약’이다. 무심코 뱉어놓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이 없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거나 천 냥을 벌지는 못해도 천 냥을 빚지는 막말은 삼가야겠다. 이제 와 이 나이에 깨닫는다./ 이상섭 객원 논설위원 전 경북도립대 교수(대구일보 2019.01.16.)
말무덤 : →임지한 장군묘
말무덤재, 말모등재 [고개] : 개포면 입암리(立岩里) 선바우 뒷산인 장화산(長華山)에 있던 고개로, 1982년에 특수 부지로 들어갔다. [傳說] : 옛날 말을 잘 타는 어느 장수가 전쟁 중에 말과 함께 죽었는데, 입암리의 이 산에 묻혔다. 이 무덤 속에는 도자기들이 있다. 지금도 발로 굴리면 무슨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옛날에 다른 마을 사람이 이 곳의 도자기를 케어 갔으나, 그의 온 집안 식구가 그 날부터 아프게 되어 약을 지어먹어도 낳지를 않았다. 점을 쳐보니, "그 도자기를 제자리에 갔다 묻으면 낫는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이튿날 이 산에 묻으니 쾌유되었다고 한다.
말미고개(馬墓峴) [고개] : 호명면 금릉리(金陵里)와 호명초등학교(虎鳴初等學校)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傳說] : 임진왜란(1592) 때 명장 이여송의 부하들이 이곳에 왔다. "바로 여기가 이 산의 정기가 모여 있는 곳이군!" 이라고 하면서 이 곳을 파기 시작하였다. 얼마를 파 들어가자 땅 속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동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이 있은 지 3일째 되던 날 혈이 끊어진 곳에서 말이 나왔다. 아픈 소리를 지르면서 울부짖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모든 사람들은 분명 장수가 탈 말이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 곳에 묻어주었다. 그래서 이 고개를 말미고개라고 한다.
말미 비석(馬墓碑石) [碑] : 개포면 우감리 동장골(道莊洞)에 있는 말(馬)의 무덤(墓)과 비이다. [傳說] : 옛날 도장골에 안동 김씨인 어느 장군이 살았다. 이 장군은 부모께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였다. 어려서부터 활놀이와 칼놀이를 많이 하였다. 그러자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자 김 장군(金將軍)은 군사를 이끌고 싸움터로 나갔다. 많은 공을 세웠으나, 싸움터에서 전사하였다. 김 장군이 고향에서 타고 갔던 말도 슬퍼하였다. 이 때 장군의 동료들이 장군의 갑옷과 활과 칼을 말등어리에 매어주었더니, 말이 김 장군의 고향인 도장골로 왔다. 그 말은 김 장군의 집 대문 가까이 와서 김 장군의 어머니를 보고, 대문 밖에 있는 바위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동네 사람들이 이 말을 묻어주고 말묘라고 하고, 그 옆에 비를 세워주었는데, 변음되어 '말미 비석'이라고 하였다. 지금도 그 묘와 비, 그리고 말의 바위가 남아 있다.
말바람골 [골] : 보문면 우래리(友來里) 다라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바람이 매우 센 곳이다.
말바람골 : 말바람골/ 지번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길찾기 | 계곡(daum 2017)
말바람골 : 말바람골/ 예천군 보문면 오신리/ 길찾기 | 계곡(daum 2017)
말바람골 : 소액수의 견적 제출 안내 공고 (우래1리 말바람골 암거교체공사)/ 공고번호:보문면공고 제2012-2호 공고명:소액수의 견적제출 안내 공고(우래1리 말바람골 암거교체공사) -공사명:우래1리 말바람골 암거교체공사 –전자입찰개시 .../ www.ycg.kr/open.content/ko/administrative/news (daum 2017)
말바탕 [道路] : 풍양면 풍신1리(豊申一里)에 있는 옛 서울 통로로, 말을 매고 쉬어갔다.
말발자국 바우 [바위] : →장수바우
말방거리 [터] : 예천읍 동본2리(東本二里) 원골 앞에 있는 넓은 터로, 옛날 말을 매어 놓았던 곳이라고 한다.
말방앗간 [마을] : 예천읍 상리(上里) 안골의 중앙부에 있는 마을로, 말방앗간이 해방(1945) 후까지 있었다. 원래 안골에는 말방앗간이 두 군데 있었다. 이 말방앗간은 커다랗고 평평한 바윗돌을 말이 돌려 곡식을 찧는다고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말방앗간의 하나는 윗마을에 위치하였고, 다른 하나는 아랫마을에 있었다. 윗마을 사람은 윗방앗간에, 아랫마을 사람은 아랫말방앗간에서 곡식을 찧어야 했다. 그런데 사실 윗마을, 아랫마을은 편의상 부른 것이고, 같은 마을이어서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말방앗간 때문에 늘 다투기 일쑤였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회의한 결과 마을 중앙에 말방앗간을 두자고 했다. 그래서 다투지도 안 하고, 사이좋게 곡식을 찧었다. 지금은 하나는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금 마을 중앙을 말방앗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말방재 [고개] : 보문면 우래리(友來里) 물래실에서 우평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말벌 [動物] : 예천군에 서식하는 곤충으로, 학명은 Vespa crabro crabroniformis Smith이고, 말벌과에 속한다. 보통 있는 벌로서, 인가 근처에 소(巢)를 짓는다. 수컷은 살이 있어 사람도 쏜다.
말베기 [골] : 호명면 금릉리(金陵里) 설름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바위가 말둑처럼 박혀 있다.
말부랄골 [골] : 보문면 오신리(五信里) 오리골 뒤에 있는 골짜기로, 말의 불알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또는 천마시풍(天馬時風)이라고 하는 명당이 있으나 찾지 못하고 있다.
말부리등 [山] : 상리면 초항리(草項里)에 있는 산등성이로, 말등처럼 산등이 길게 생겼다.
말부장골 [골] : 보문면 산성리 산성(山城)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말산(마산, 馬山里) : 知保面 馬山里 소속으로, 馬山은 현재 60여 家口가 살고 있으며 朝鮮朝 中期 宣祖 扈聖宣武原從功臣 副司直 密城人 朴擎雲이 壬亂 때 피난지를 찾아다니다가 마침 지금의 乃城川과 洛東江 사이에 있는 山間地에 자리잡아 보니 앞산이 나비와 같이 생겨서 나비는 꽃을 좋아하므로 마을 터를 꽃으로 여겨 花山이라고 稱하여 오다가 그 후 100여년이 지난 후손들이 마을 주위에 산이 말과 같이 생겼다 하여 말은 용맹한 짐승이라 후손이 용맹스럽고 번창하라는 뜻으로 다시 馬山이라 改稱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당시 마을 入口에는 三台七星의 形으로 된 바위가 마을 南쪽에 한 쌍의 거북과 같은 바위가 있어 馬山 마을을 지키므로 재해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형체가 뚜렷하게 남았으며, 10여대 후손들이 살고 있다. 한 때 마을 입구에는 安東張氏와 李氏가 번창하게 살다가 지금의 龍浦, 外坪, 泉香 등지로 옮겨 갔다 한다.(知保面홈페이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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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순( 전 예천여중고 총동창회장 박영순 고려대 명예교수, 17일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함...축하합니다.
박영순(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등 12명 ‘서울시 문화상’ 수상) [기사] : 서울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공연기획자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프로듀서를 비롯, KBS 성우 공채 1기인 고은정(본명 고흥숙) 씨와 한국어와 국어학의 세계화에 기여한 박영순 고려대 명예교수가 ‘제69회 서울특별시 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서울시는 17일 문화의 날을 맞아 문화예술인 12명에게 문화상을 수여한다고 16일 밝혔다... 또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박 명예교수는 수교 이전에 중국 옌벤(延邊), 소련 모스크바 등에서 대규모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으며 외국대학에 한국어학과를 설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공로로 학술 부문 수상자가 됐다...(김구철 기자 문화일보 2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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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