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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273:명봉사문종대왕태실비...명봉사사도세자태실...
작성자장병창 @ 2021.02.18 20:13:19

  도청신도시 예천 1,273 :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명봉사 사도세자 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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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 : 문종대왕태실비(자료=예천군)/ Daum 카페 | 작년, 2010년 4월 2일/ 문종대왕태실비(유형문화재 제187호 1984.12.29 지정) 소재지 :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501 소유자 : 명봉사(관리자:명봉사) 자세한 설명 상리면 명봉사 경내에 있으며 영조 11년(1735년)에 조성된 이 비는 화강암으로 만든.../ cafe.daum.net/ycnews365 | 예천신문(daum 2011)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 : 소백산 명봉사(예천)/ Daum 블로그 | 3년전, 2008년 4월 22일/ 명봉사문종대왕태실비(鳴鳳寺文宗大王胎室碑) 이 비는 문종대왕의 태를 모신 후 세운 비로, 명봉사 경내에 자적선사능운탑비와 나란히 서 있다. 원래는 절 뒤편 산기슭에 있었으나 일제 때 태실을 발굴해간 뒤 명봉사의 스님들에.../ blog.daum.net/sws8007/ | 참 나를 찾아 산사로..(daum 2011)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 : 전나무 우거진 깊은 산 속에 봉황이 울었다고 하는 예천의 명봉사/ Daum 블로그 | 9달전, 2011년 1월 15일 (토)/ 비의 앞뒷면에 새긴 비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영조 11년(1735)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좌측의 문종대왕 태실비와 우측의 명봉사 사적비 약사전 삼성각 보물을 찾으러 떠난 길 절에 들어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경청선원자.../ blog.daum.net/pjb1223/ | 들꽃(野花)(daum 2011)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 : 예천 소백산 명봉사/ 네이버 블로그 | 4년전, 2007년 6월 29일/ ...소실되었으나 1988년 명봉사 주지 성면(性面)이 재건한 것이다. 대웅전 옆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는데 하나는 명봉사문종대왕태실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 또 하나는 소백산 명봉사 사적비이다. 태실이란 왕이나 왕실.../ blog.naver.com/y3004k/ | 안동 일출암(daum 2011)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 : 예천 명봉사를 찾아서/ Daum 블로그 | 4년전, 2007년 9월 30일/ 복원된 내원암. 예전에는 100여명의 수도승이 기거하는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문종대왕태실비와 명봉사사적비. 명봉사사적비는 사도세자태실비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중수(重修)를 마쳤으나 아직 단청(丹靑)을 올리지.../ blog.daum.net/myong58/ | 歸山精舍(daum 2011)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 : 소백산 명봉사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Daum 카페 | 3년전, 2008년 11월 24일/ 깊고 고요한 골짜기에 위치한 명봉사는 절 입구의 숲에는 소나무, 전나무, ... 곳이다. 명봉사문종대왕태실비(鳴鳳寺文宗大王胎室碑) 이 비는 조선 문종대왕의 태(胎)를 안치하기 위해 세운 비로, 명봉사 경내에 자적선사능운탑비.../ cafe.daum.net/mdala/Nyo9/ 만다라 불교 문화원(daum 2011)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 : 명봉사 (경북 예천군)/ Daum 카페 | 4년전, 2007년 1월 12일/ 문종대왕태실비는 일제강점기에 발굴하여 현재 비신만을 경내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사도세자태실비는 일제강점기에 이곳 주지가 비면을 깎고 명봉사 ... 인근에서 피서객이 끊이지 않는다. 명봉사 대웅전 명봉사 문종대왕태실비 "/ cafe.daum.net/manbulcafe/HVtk/186 | 만불카페(daum 2011)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 : 잔차 타고 본 고향풍경, 그리고 문화재 :: 사도세자 태실비를 망가뜨렸다고?/ 오마이뉴스 블로그 | 2년전, 2009년 5월 12일/ 손현희 태실비 사도세자 태실 비문을 깎아내고 절집 사적비문을 새겼다고? 문종대왕 태실비(경북유형문화재 187호)와 나란히 있는 빗돌, 바로 ‘명봉사사적비’예요. 그런데 희한하게 태실비와도 모양이 매우 비슷하게 생겼어요.../ blog.ohmynews.com/hanbit(daum 2011)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 : 전나무 우거진 숲 신비한 바람소리 명봉사/ 조인스 블로그 | 2년전, 2009년 5월 22일/ 문종대왕 태실비는 대구, 경북에 현존하는 몇 안 되는 태실비 중 하나다. 명봉사 뒤 내원암 암자로 오르는 숲길은 그냥 숲길이 아니다. 이곳의 비경을 알고.../ blog.joins.com/dangye(daum 2011)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 : 소백산 내원암 국내 제2지장보궁/ Daum 지도 | 2년전, 2009년 4월 5일/ 된 비석으로 국문학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최언위(崔彦僞)가 지은 것으로 판독됐으며, 문종대왕태실비(유형문화재 제197호)도 있다. 명봉사 입구에서 좌측(左側)으로 약 600m 더 올라가면 국내 제2의 생지장도량(生地藏道場)인.../ place.daum.net/place/NetizenView.... | Daum 지도(daum 2011)

 

  명봉사 부도(鳴鳳寺浮屠) [遺物] : 상리면 명봉리 명봉사 경내 대웅전(大雄殿) 계단 옆에 있는 고려 중기의 부도로, 높이 112cm, 중대석(中臺石) 높이 20cm, 폭이 70cm, 부도 높이 42cm, 1면 폭 25cm, 옥개석(屋蓋石) 높이 50cm, 1면 폭25cm의 규모이다. 통일신라의 전통 양식인 팔각의 원당형(圓堂形)이나 조각 기법과 규모면에서 볼 때 고려 중기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자연석 위에 상대석(上臺石), 부도신(浮屠身), 옥개석(屋蓋石), 상륜부(相輪部)의 순으로 조립되어 있는데, 본래의 위치인 지 알 수 없고, 중대석(中臺石)과 하대석(下臺石)이 결실되어 있다. 자연석 기단(基壇) 위에 가장자리가 마멸되어 원형이 불명한 상대석(上臺石)이 있고, 그 위에 팔각(八角)의 부도신(浮屠身)이 안치되어 있는데, 한 면에는 문비(門扉), 나머지 한 면에는 신장(神將)이 양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팔각으로 우주(隅柱)를 선명하게 나타냈고, 옥정(屋頂)의 중앙에 보주(寶珠)가 삽입되어 상륜(相輪)을 이루고 있다.

 

  명봉사 부도(鳴鳳寺 浮屠) [浮屠] : 상리면 명봉리 산1-1번지 명봉사 경내 약사전(藥師殿) 앞에 있는 부도로, 중대석(中臺石)과 하대석(下臺石)이 결실되어 있다. 자연석 기단(基壇) 위에는 원형이 불분명한 상대석(上臺石)이 있고, 그 위에 팔각(八角)의 부도신(浮屠身)이 안치되어 있으며, 문비(門扉), 신장(神將)이 양각(陽刻)되어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팔각으로 우주(隅柱)를 선명하게 나타냈고, 옥정(屋頂)의 중앙에 보주(寶珠)가 삽입되어 상륜(相輪)을 이루고 있다. 고려 중기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총 높이는 112cm, 중대석의 높이 20cm, 폭70cm, 부도의 높이 42cm, 1면 폭 25cm, 옥개석의 높이 50cm, 1면 폭 25cm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명봉사 부도(鳴鳳寺 浮屠) [浮屠] : 상리면 명봉리 산1-1번지 명봉사 경내 약사전(藥師殿) 앞에 있는 부도로, 자연석 위에 상대석(上臺石), 부도신(浮屠身), 옥개석(屋蓋石), 상륜부(相輪部)의 순으로 조립되어 있는데, 본래의 위치인지 알 수 없고, 중대석(中臺石)과 하대석(下臺石)이 결실되어 있다. 자연석 기단(基壇) 위에는 원형이 불분명한 상대석(上臺石)이 있고, 그 위에 팔각(八角)의 부도신(浮屠身)이 안치되어 있으며, 문비(門扉), 신장(神將)이 양각(陽刻)되어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팔각으로 우주(隅柱)를 선명하게 나타냈고, 옥정(屋頂)의 중앙에 보주(寶珠)가 삽입되어 상륜(相輪)을 이루고 있다. 통일신라의 전통 양식인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이나 조각 기법과 규모면에서 볼 때 고려 중기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총 높이는 112cm, 중대석의 높이 20cm, 폭70cm, 부도의 높이 42cm, 1면 폭 25cm, 옥개석의 높이 50cm, 1면 폭 25cm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명봉사 부도 : 예천...명봉사 부도, 사적비. 문종태실비/ 2013.08.13./ 끊임없이 채근한다. 하지만 예천군 상리면.하리면에는 휴일에 문을 연 주유소는 어디...있다. 부도 명봉사 무량수전 옆 부도. 통일신라 팔각 원당형 부도로 고려.../ blog.daum.net/ 옛님의 숨결. 그 정..(daum 2017)

 

  명봉사 부도 : 예천 명봉사 부도/ 2009.02.16./ 명봉사는 예천군 상리면에 있는 사찰입니다. 헌강왕 원년(875년)에 두운 스님이 창건... 네 해 전 명봉사를 찾았을 때 이 부도는 마당 한 가운데 덩그마니.../ yinolbu.blog.me/ 들숨과 날숨 사이(daum 2017)

 

  명봉사 부도 : 예천의 자랑 2966 : 명봉사(8)(祝 동부초. 도형섭 등 5명/예천방문 883)/ 작성 장병창/ 후기로 추정되며 두 부도의 주인공은 전혀 알 수 없다. 6.예천 명봉사 경청선원 자적선사 능운탑비와 부도/ 명봉사는 경북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에 소재하고 있는데... 이 땅에서.../ www.ycg.kr/open.content/ko/participate/free.. (daum 2017)

 

  명봉사 부도 : 문화유적총람.xls/ 1984. 12. 29. 지정. 국립문화재연구소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14911 명봉사 부도(鳴鳳寺浮屠)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산1-1 경북 지정사항 없음 제 호 고려시대 유적. 건조물-부도 예천군, 1992, <<예천의.../ koreanbooks.nricp.go.kr/kor/dataFileDown.do.. (daum 2017)

 

  명봉사 부도 : 예천...명봉사 부도, 사적비. 문종태실비/ 2013.07.26./ 상리면.하리면에는 휴일에 문을 연 주유소는 어디에도 없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문명의 이기에 노예가 된 스스로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명봉사는.../ cafe.daum.net/moonhawje... 옛님의 숨결. .. | 댓글 2(daum 2017)

 

  명봉사 부도 : 경북 예천 소백산 명봉사/ 2010.11.08./ 삼성각 명봉사 독성탱과 칠성탱 명봉사 산신탱 명봉사 부도 명봉사 오층석탑 명봉사 찾아가는 길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501번지 예천읍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cafe.daum.net/bubwoorim... 법우림(daum 2017)

 

  명봉사 사도세자태실(醴泉 思悼世子 胎室) [記事] : 사도세자 태실이 지난해 가을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산 2번지, 명봉사 뒷산에서 발견되었다. 명봉산 자락에 마치 분봉처럼 4면이 모두 경사진 산봉우리(621m)에 자리잡고 있지만 정상은 평평한 마당 같다. 발굴 당시 그 한 가운데 태실 석물이 있었다. 명봉사 사적비는 거북형상의 대석과 균형 잡힌 비신 그리고 용무늬를 새긴 개첨석(머릿돌) 등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석질과 빛깔이 부드러운 화강암석으로 되어 있으며 다듬어낸 모양이 준수하다. 이 비석이 바로 사도세자태실비(경모궁태실)이다. 비의 전체 높이는 2.4m 정도 된다.(주기철 記者) ◆ 명봉산 자락에 남은 경모궁 태실터 : 소백산맥의 한 봉우리인 원각봉(965m)에서 남쪽으로 뻗은 지맥에 형성된 명봉산, 명봉산 자락에 마치 분봉처럼 4면이 모두 경사진 산봉우리(621m)에 사도세자의 태실이 자리 잡고 있다.

 

  널찍한 광주리 한가운데 원뿔모양의 돌 하나를 얹어 놓은 듯한 형상이 모체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세상에 나온 문과 같다 할까. 용이 솟아오르는 형국의 산세라고 말할까. 산봉우리 정상에 서서 등을 명봉산으로 돌리면 앞뒤 좌우의 산들이 큼직한 울타리처럼 푸근하게 감싸 안아주면서 시원스럽다. 분명히 산이지만 정상은 평평한 마당 같다. 동행한 예천군 학예사 이재완 씨가 거적을 걷어 보이면서 ‘경모궁 태실지’라고 일러준다. 사도세자의 탯줄이 묻힌 태봉이다. 소백산이 태백산을 만나 궁합을 이루어내는 산경, 양백지역의 품 넓은 산자락에는 길지가 많기로 알려져 있다. 그 산자락,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명봉산이 명산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남쪽으로 넉넉하게 뻗어 내리는 끝단에 명봉사가 있고 중간에 볼록 솟아오른 작은 산봉우리가 사도세자의 태실이다. 또한 태실에서 같은 지맥을 따라 남쪽 명봉사 방향으로 100m 지점에 이르면 문종대왕(세종의 맏아들)의 탯줄이 묻혀 있었던 곳이 나온다. 명봉산 태실의 주인공인 사도세자는 영조와 영빈이씨 사이에서 1735년(영조 11년) 정월에 태어나 불꽃같은 삶을 살다 영면했다. 사도세자는 두 살 때 세자로 책봉되고 열다섯이 되자 연로한 부왕을 대신하여 13년 동안이나 왕좌를 지키지만 신은 그에게 제왕적 역량을 다 펼쳐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당쟁의 소용돌이에 28세의 꽃다운 목숨을 내놓게 된 슬픈 이야기의 왕세자가 되고 만 것이다. 첫 아들 효장세자를 잃고 오랫동안 우울함을 벗어나지 못하던 영조는 42세의 늦은 나이에 사도세자를 얻자 왕의 기쁨은 오롯이 그에게 옮겨졌다. 세자에 대한 사랑과 기대감이 컸던 만큼 창경궁 집복헌에서 태어난 사도세자를 위하여 영조는 스스로 찬시를 짓고 새긴 집복헌 유감시 현판을 만들어 걸기도 한다. 원문을 의역해 본다. ‘집이여, 작은 나라가 되리니/ 서기어린 큰 기운 곳곳에서 멀리 퍼지는구나/ 문 안으로 비춰드는 햇살에 서로를 축하하니/ 집복당이여, 비로소 그 이름과 상응하는구나‘/ 사도세자는 영민하게 태어나고 태 또한 명당에 모셔졌건만 그 비운의 실마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태실도 그의 생애만큼이나 수난에 수난을 거듭하다 이제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사도세자의 호칭은 영조가 붙인 ‘사도세자’ 이외에도 신주를 모신 사당의 이름을 따서 불린 경모궁과 추존한 시호 장헌이 있다. 정조의 효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다 1899년 고종 때에 장조, 장종으로 다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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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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