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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279:명봉사자적선사능운탑비...(축,예천발물관/황연희)
작성자장병창 @ 2021.02.23 06:11:19

  도청신도시 예천 1,279 : 명봉사자적선사능운탑비...(부, 예천발물관, 22일 개관함, 국내 공립박물관 중 최다 보물을 소장함...축하합니다./ 예천읍 출신 황연희, 시집 <아프지 않은 흔적>을 펴냄...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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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원문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이 원문에서 [ ] 부분이 이른바 이두에 해당한다)./ 都評省帖洪俊和尙衆徒右法師. 師[矣]啓[以]僧[矣段]赤牙縣鷲山[中]新處所[元]聞爲成造[爲內臥亦在之白賜]縣[以]入京[爲使臥]金達含進[置]右寺原問[內乎矣]大山[是在以]別地主無[亦在彌]衆[矣白賜臥乎□如]加知寺谷[中]入成造[爲賜臥亦之白臥乎未]及[白節中]敎旨 然[丁]戶丁[矣]地[段]知事[者]國家大福田處[爲]成造[爲使賜爲]敎 天福四年歲次己亥八月一日 省史臣光 五年辛丑八月□一日允, 國家[以]山院名幷十四州郡縣契[乙用]成造[令賜之]. 節成造使正朝 仁謙 停勵古寶/ 이 글 전체를 이두문이라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밑줄친 글자들만 이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순수한 우리말의 격조사 또는 어미들이다. 현대어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註 373 南豊鉉,<高麗 初期의 貼文과 吏讀>(≪국어국문학≫72·73, 1976) 참조) 都評省은 洪俊和尙(慈寂禪師)의 僧徒 右法師에게 帖文을 보낸다. 右法師의 啓狀에 따르면 ‘僧들은 赤牙縣 鷲山에서 處所를 처음 上奏하여 허락을 듣고 成造하고 있습니다’하고 아뢰었었다. 縣에서 入京使로 보낸 金達含이 나아가 右寺의 터를 물음에, ‘大山이므로 따로이 地主가 없으며 중들이 사뢴 바와 같이 加知谷의 寺谷에 들어가 成造하고 있습니다’하고 사뢰기에 이르렀던 때에 敎旨하기를, ‘그러하다면 戶丁의 땅이라도 知事는 국가의 大福田處로 삼아 成造하도록 하라’ 下敎하시었다. 天福 4년 歲次 기해 8월 1일 省史臣光 5년 신축 8월 21일 국가로부터 山院名을 允許받음. 아울러 14州郡縣의 契로서 成造시키다. 節成造使 正朝 仁謙 停勵古寶 위와 같은 해독은 아직 완전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판독에 어려움을 느끼는 글자가 있고 해석상 깨끗하게 풀리지 않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비문은 홍준화상의 제자들이 새로 절을 짓고자 하여 중앙정부가 허가를 내려준 통지문인데, 그 당시 문자생활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특징을 몇 가지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문 문장이 그대로 삽입된 부분이 있다. 곧 첫 문장 都評省帖洪俊和尙衆徒右法師는 한문으로 되어 있다. 둘째, 이두의 어미가 상당히 길어졌다. 곧 ‘爲內臥乎亦在之’는 일곱 개의 한자를 쓰고 있다. 셋째, 다양한 고유어의 표기가 생겼다. 矣가 소유격과 처소격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고, 乙이 목적격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으며 段이 특수조사 {-인 것은}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또 臥·亦·未·丁같은 것은 어미의 표기로, 進·置·用 등은 동사 어간으로, □는 명사로 쓰인 것이 확인된다. 넷째, 종결사에 변화가 생겼다. 신라 이두문에는 之가 종결사로 쓰였으나, 이 비명 이후에는 齊가 사용된다. 이러한 이두문은 중앙관공서와 지방관공서 간에 주고 받는 공문서 양식으로 정착되어 그 후 꾸준한 발전을 보였다. 이 무렵 이두문에 나타나는 이두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註 374 여기에 인용한 이두 자료는 李丞宰,≪高麗時代 吏讀에 대한 硏究≫(서울大 博士學位論文, 1989)를 참고하였다.) ...(http://db.history.go.kr/ 2014)

 

  명봉사자적선사능운탑비 : 國史館論叢 第3輯 > 高麗時代 「邑司」硏究 > Ⅳ. 邑司의 形成過程과 그 組織體系 : 고려가 신라의 지방통치체제인 郡縣制를 계승한 이상 邑司의 형성문제도 자연히 羅末로 소급하여 고찰할 필요가 있다. 군현제하에서 州·郡·縣이란 일정한 행정구획에다 守令이 파견되고 그 수령의 하부행정체계에 일군의 吏屬이 행정실무를 맡게 되어 있다. 그러나 邑司 또는 鄕吏制라는 법제적인 규정이 成宗 2년 外官 설치와 동시에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읍사 또는 향리의 전신은 신라시대부터 있어 왔다고 본다. 편년적인 순서에 의하여 읍사의 형성문제를 살펴 볼 때 크게 外官 설치 이전과 이후 및 任內의 읍사로 3分할 수 있다. 新羅의 9州·5小京체제하에서 縣이상의 전국 州郡縣에는 都督·太守·縣令 등 外官이 설치되었으니, 註 049 049 《三國史記》권40, 雜誌9 職官下 外官條에 의거 州·小京·郡縣에 설치된 외관의 수를 통계해 보면 9주·5소경·115군·201현 합계 330읍이었다. 닫기 守令의 官衙가 있었음은 물론 군현의 행정실무를 담당한 토착의 吏屬이 있기 마련이며, 그러한 吏屬이 있었다면 그 吏屬의 집무소인 邑司와 같은 吏廳이 있었다고 봄이 타당할 것 같다. 신라의 군현제하에서는 鄕吏制度 대신에 村主制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中國의 경우와 같이 군현이라는 지방행정 구역이 설정되고 거기에 外官이 파견되었다면 마땅히 그 외관 밑에 행정실무를 담당할 吏屬과 그 이속의 집무소인 邑司 형태의 관사가 있었을 것이다. 신라 景文王 12년(872)에 세운 碑文에 ‘州司’(武州)(註 050 《朝鮮金石總覽》上 p. 118. 谷城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와 《삼국사기》에 熊川州의 板積 ‘鄕司’가 나타나며,(註 051 《三國史記》권48, 向德傳.) 《삼국유사》文虎王條에 (武州)州吏 安吉과 ‘上守吏’(其人)관계 기록이(註 052 《三國遺事》권2, 文虎王 法敏條.) 있는가 하면, 眞聖王 2∼5년(888∼891) 사이에 折中(澄曉大師)이 公州와 武州를 역방할 때 그의 단월인 公州吏 宋?과 武州吏 金思□ 두 사람은(註 053 《朝鮮金石總覽》上 pp. 157∼161. 寧越興寧寺澄曉大師寶印塔碑.그런데 公州吏 宋?은 위 碑陰記(黃壽永 編, 《韓國金石遺文》, 1976, pp. 105∼107)에 “宋?史上 公州”로 기재되어 있다. 한편 《實地》에 의하면 公州宋氏와 武(光)州金氏는 각기 그 곳의 대표적인 토성이었다.) 바로 土姓 分定 후의 토성이족과 같이 羅末 該邑의 州吏였던 것이다. 한편 羅末麗初의 金石文 碑陰記 소재 명단과 후삼국시대 호족들의 幕僚를 통하여 당시 邑司와 관련된 조직체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러한 자료를 例示하면 다음과 같다./ 가) 醴泉鳴鳳寺慈寂禪師塔碑(태조 24년, 941) 輔州官班:上沙飡元吉 第二純保 第三英希 寺鄕村主吉萱 官班:上沙飡宗? 第二今岳 第三主道 村主行悟 村主能直 村主宣直/ 나) 前揭興寧寺澄曉大師碑陰記:與一正朝 乎直阿干溟州 剋奇奈溟州 金芮卿溟州 連世大監溟州 王侃奈原州 德榮沙干竹州 弟宗沙干竹州 宋?史上公州 平直村主提州 貴平一吉干提州 堅必村主冷州. 堅奐沙干新知縣…世達村主奈生郡. 式元大監冷水縣 明奐村主?淵縣 康宣助別斤縣 吉沙村主丹越馹…. ... 若木縣 (仁同屬縣) 李·柳·韓·金(村姓) 李·柳·金 〈淨兜寺石塔造成記〉(顯宗 22년, 1031)/ 醴泉郡 林·尹·權(昕)·黃·邦 (村姓) 林·尹·權·黃·邦 〈開心寺石塔記〉(顯宗元年, 1010), 《醴泉邑誌》·《醴泉權·林氏族譜》/ 居昌縣 劉·丁·章·愼·朱 劉·章·愼·朱 《?曹龜鑑》, 《居昌邑誌》, 《居昌愼氏族譜》/ ...(http://db.history.go.kr/ 2014)

 

  명봉사자적선사능운탑비 : 명봉사자적선사능운탑비음명(鳴鳳寺慈寂禪師凌雲塔碑陰銘)/ 개설 이 비의 앞면은 자적선사(속명 김홍준)의 사적을 적은 것이고 음명은 이 사찰이 왕명에 의하여 중창된 사실을 적은 것이다. 그 가운데는 중앙의 도평성(都評省)에서 내린 첩문(帖文)도 들어 있다. 이는 현재로는 고려 최초의 문서이고 이두문이다. 내용 “都評省帖 洪俊和尙 衆徒 右法師. 師矣 啓以 僧矣段 赤牙縣.../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daum 2017)

 

  명봉사자적선사능운탑비 : 예천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2016.05.06./ 보물로 지정 받았다.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산1-1(명봉사길 62)번지 명봉사에 있는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는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 초기까지 활동.../ blog.naver.com/ story77616(daum 2017)

 

  명봉사자적선사능운탑비 : [문화재답사/예천] 예천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보물 제1648호/ 2011.01.14./ 예천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醴泉 鳴鳳寺 境淸禪院慈寂禪師陵雲塔碑) / 보물 제1648호 소재지 : 경북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산1-1 경북 예천군의 명봉사.../ blog.daum.net/pjb1223/ 박재봉의 '길 위에..(daum 2017)

 

  명봉사자적선사능운탑비 : 반(半) 서울(seoul)의 땅/ 2010.05.02./ 넘어가는 상리면의 문종대왕태실비와 경천선원자적선사능원탑비가 있는 명봉사로 해서, 자기 땅을 가진 부자(富者)나무가 있는 감천의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호)을.../ chsoo4130.tistory.com/ 靑山의 松韻泉聲(dau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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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천발물관, 22일 개관함, 국내 공립박물관 중 최다 보물을 소장함...축하합니다.

 

  예천박물관(예천박물관 개관 : '국내 공립박물관 중 최다 보물 소장) [기사] : 예천군의 유일한 공립박물관이자 지역의 역사·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예천박물관이 2021년 2월 22일 오전 11시 정식 개관했다. 개관식에는 김학동 예천군수,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김현모 문화재청장, 임종식 경상북도교육감, 도기욱 경상북도의회 부의장을 비롯해 유물 기증·기탁자, 문중대표 등이 참석했다. 개관식은 기증·기탁자에 대한 감사패 전달, 테이프 커팅식, 상설시 및 독도박물관과 함께하는 '충효의 고장 예천(醴泉), 독도(獨島)를 만나다' 공동기획전 관람 순으로 진행됐다. 예천박물관은 2015년 12월 29일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됐으며 국비를 지원받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공사 끝에 상설전시실, 세미나실 전면 개편과 기존 시설에 부재했던 기획전시실, 수장고, 어린이 체험실, 카페테리아 등을 갖춰 문화유산 보존·관리·연구·전시·교육 기반을 갖추게 됐다. 개관을 위해 30여 기관·개인·문중으로부터 보물 2백68점과 도 지정 문화재 33점을 포함한 2만여 점 유물을 확보해 국내 공립박물관 중 가장 많은 보물을 소장한 박물관이 됐으며 박물관을 대표하는 10건의 유물은 희소성, 역사성, 예술성을 갖춘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 유물은 조선 최초 금속활자본인 사시찬요(15C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거문고인 희령군 어사금(15C초), 국내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옥피리(1466), 영남 지역 대명의리 3대 상징물 중 하나인 유엽배(16C), 우리나라 최초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1589), 국내 최고 서양식 세계지도인 만국전도(1623), 국내 최장기간 써진 예천 맛질 박씨가 일기(저상일월, 1834~1950), 국내에서 유일하게 키를 이용해 만든 청단놀음 지연광대탈이다. 예천군 관계자는 "예천박물관 개관을 통해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전승하고 학술연구와 상설 및 특별전시, 교육 등을 진행해 지역민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우수한 지역 문화자산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문화 거점시설이 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예천박물관은 코로나19에 따른 시설물 소독, 사전예약제 등 방역수칙을 준수해 운영하며 개관 시간은 동절기(11-2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절기(3-10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예천신문 2021.02.22.)

 

  ◆ 예천읍 출신 황연희, 시집 <아프지 않은 흔적>을 펴냄...축하합니다.

 

  황연희(첫 시집 '아프지 않은 흔적' 펴내) [기사] : 예천읍 왕신리 출신 황연희(성남시 공무원) 시인이 첫 시집 『아프지 않은 흔적』을 심상출판사에서 펴냈다. 황연희 시인은 지난 2015년 시 전문 월간지인 '심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은 총 4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고향 신작로', '그들은 지금 어디에' 등 85편을 실었다. 문학평론가 박동규(서울대 명예교수) 씨는 시평의 제목을 '삶의 행로와 마음의 창고'로 보았다. 박씨는 "도시 직장생활에서 얻은 체험이 만든 길과 고향과 가족이라는 그만의 뿌리 의식과도 같은 본연의 장에 대한 회상이 담겨 있다"며 "고향이라는 근원이 지닌 소박하고 인정 어린 인간다움과 도시적 성향이 지닌 시민의식의 양태에 대하여 혼합적 삶의 의식 등이 담겨 있다"고 평했다. 황연희 시인은 "지나간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오늘을 사랑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들과 길에서 만난 이야기들을 침묵하기란 쉽지가 않았다"며 "글감을 제대로 녹여내지 못하더라도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황 시인은 예천읍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1989년 4월에 서울로 이사 가서 공직 마지막을 성남시 분당구 세무1과장(지방행정사무관)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공로연수 중으로 금년 6월 말에 정년퇴직한다. 고향 예천읍 왕신리에는 언니 황숙자(66) 씨 가족이 살고 있다.(예천신문 20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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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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