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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283:명주고개...모내기소리
작성자장병창 @ 2021.02.25 06:15:53

  도청신도시 예천 1,283 : 명주고개...모내기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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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주고개, 명지고개, 명진고개 [고개] : 예천읍 우계리 광대원(廣大院)에서 맷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갯길이 1km가 넘는다. 이 고개에 있는 서낭나무(소나무)에 사람들이 오가면서 돌을 던졌기에 돌무덤이 이루어졌다. 지금은 그 소나무가 죽어 베어 버렸는데, 그 자리에 어린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또, 옛날에는 크고 깊은 못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고개 앞뒤로 못이 두 개 있다. 맷골 쪽의 못은 둘레가 30여 m인데, 여름에만 물이 있다. 수심이 1.5m 정도이다. 광대원(廣大院) 쪽의 못은 둘레가 20여 m인데, 가물지만 않으면 늘 물이 있다. 수심(水深)은 1m 정도이다.

 

  [傳說] : ① 옛날 맷골의 어느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가마를 타고 가느라 이 곳에 돌을 던지지 않고 그냥 지나가다가 갑자기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맷골 처녀들이 시집갈 때는 이 고개를 지나지 않고 먼 길을 돌아서 갔다고 한다. ② 이 고개 근처에 명주(明紬)를 만들어 팔던 어느 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할머니가 서울에 가서 명주를 팔고 돌아오다가 이 고개에서 도둑을 만나 돈을 빼앗겼다. 그래서 할머니는 명주로 이 고개의 소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한다. ③ 이곳 마을의 한 여자가 명주를 팔고 돌아오다가 이 고개에서 도둑에게 붙잡혀 이곳 소나무에 목매어 죽음을 당하고, 시체는 못에 던져졌다고 한다. ④ 명주를 팔던 어느 행상인이 겨울에 이 고개에서 얼어 죽었는데, 지금의 소나무는 그 행상인이 자기 지팡이를 꽂아놓아 자랐다고 한다. ⑤ 이 고개 근처 어느 마을에 나무를 하여 팔아서 살아가는 나무꾼이 있었다. 어느 날 이 고개를 넘다가 예쁜 여인을 만났다. 나무꾼은 반해서 정신을 못 차렸다. 그 예쁜 여자는 여우가 사람으로 변한 요괴였다. 그 여자는 말을 걸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별이 총총하던 밤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으로 덮이더니 벼락이 내렸다. 이 나무꾼은 벼락에 맞아 죽었다. 이튿날 사람들이 시체를 보고 명(命)이 진(숨진) 고개라 해서 명진고개라 하였다고 한다. ⑥ 옛날 어느 노파가 치를 팔고 날이 저물 때 이 고개를 넘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는데, 그 이튿날 이웃 동네 사람이 그 시체를 발견하고, 목숨이 끊어졌다고 하여 명(命)이 진 고개라는 뜻에서 명진고개라고 하였다 한다. ⑦ 옛날 이 고개에 호랑이가 나타나서 고개를 넘는 사람마다 잡아먹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고개를 무서워서 넘지 않았는데, 어느 여인이, 자기의 남편이 죽을 지경이어서, 급히 이 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여인은 이 고개를 넘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는 그 여인 앞에서 으르릉 그리기만 하였다. 그 여인은 이상해서 그 호랑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입 속에 비녀가 박혀 있었다. 그래서 그 여인은 호랑이의 입속에 걸린 비녀를 빼내 주었다. 그 후로 호랑이는 이 고개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명주잠자리 [動物] : 예천군에 있는 곤충으로, 학명은 Hagenomyia micans Mac Lachlan이고, 명주잠자리과에 속한다. 유충은 개미를 포식(捕食)하고, 성충(成蟲)은 8-9월에 출현한다.

 

  명지고개 : →명주고개

 

  명진고개 : →명주고개

 

  명진산업 [會社] : 예천읍 지내리 311번지 농공단지(農工團地) 안에 있는 주식회사(社長 권기진)로, 전국 굴지의 규모와 최신 전자동 시설을 갖춘 프라스틱 용기류(容器類) 전문 생산업체이다. 옥시, 옥시크린 용기, 비디오테잎케이스, 물먹는 하마, 야외용 탁자, 물통 등을 만든다. 1991년 농공단지에 입주했고, 60여 명의 직원들이 있다. 월 1억5천-2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醴泉新聞 1995.3.4)

 

  명천극장(明泉劇場) [터] : 예천읍 남본리에 있던 극장으로, 1967년에 수용 인원 719명, 연 관람수 96,364명이었다. 후에 예천극장(醴泉劇場)이 폐쇄되자 예천극장(醴泉劇場)으로 개칭되었다.

 

  명충살이고치벌 [動物] : 예천군에 서식하는 곤충으로, 학명은 Bracon onukii Watanabae이고, 고치벌과에 속한다. 성충은 이화명충의 유충에 산란하고, 유충은 이화명충의 유충에 기생하는 익충(益蟲)이다.

 

  명탐정 파커 파인(名探偵 파커 파인(AGATHA CHRISTIE 35)) [英美小說書] : 애거서 크리스티의 저서를 예천 출신인 유명우(柳明佑, 湖南大 敎授)가 번역한 책으로, 338쪽, B4, 해문출판사에서 1988년 5월 1일에 발행하였다.(daum 2008)

 

  몇 가지 침엽수 종자에 대한 생활력 검정 방법(몇 가지 針葉樹 種子에 對한 生活力 檢定 方法) [論文] : 용문면 하학리 출신인 임경빈(任慶彬, 1922- , 서울大 敎授) 등의 논문으로, 한국육종학회에서 1983년에 발행한 <한국육종학회지(韓國育種學會誌)> 15권 3호 249-262쪽(14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연세대이다.(keris 2003)

 

  몇 가지 특성에 대한 우리나라 소나무 천연 집단 분류(몇 가지 特性에 對한 우리나라 소나무 天然 集團 分類) [論文] : 용문면 하학리 출신인 임경빈(任慶彬, 1922- , 서울大 敎授) 등의 논문으로, 한국임학회에서 1982년에 발행한 <한국임학회지(韓國林學會誌)> 57권 1호 55-55쪽(1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keris 2003)

 

  몇 주요 경제수종에 대한 경제 효과 분석(몇 主要 經濟樹種에 對한 經濟 效果 分析) [論文] : 용문면 하학리 출신인 임경빈(任慶彬, 1922- , 서울大 敎授)의 논문으로, 한국임학회에서 1971년에 발행한 <한국임학회지(韓國林學會誌)> 13권 1호 41-65쪽(25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keris 2003)

 

  모개나무골 [골] : 용문면 직리(直里)에 있는 골짜기로, 모개나무가 있었다.

 

  모계집(某溪集) [冊] : 某溪 金鴻洛의 문집. 9권 5책. 필사본. 金鴻洛의 아들 在東이 상자에 남아있던 부친의 遺稿가 그릇되고 편차가 뒤죽박죽이었던 것을 金正模에게 바로잡아서 10行 22字 仁․義․禮․智․信 5冊의 筆寫本으로 간행하였다. 이 某溪文集에는 序文이 없고, 族.../ 卷4 / 記 / ...褒孝閣記 : 醴泉의 淡叢里에는 옛날 종사랑 永陵 ?奉 儉巖과 徐巖 두 張公의 ?孝閣이 있고 이 포효각은 후손들이 두 공을 위해 지은 것이다. 두 공은 특히 부모에 대한 효성이 뛰어나 어버이의 질병에 대변을 맛보고 모친의 병에 얼음에서 잉어를 얻고 동생과 함께 물오리를 잡아 바치는 등의 특이한 행적을 보였다. 이에 玄孫인 在國 등이 여러 宗人들과 더불어 포효각을 짓고 기문을 요청하기에 써준 글이다./ 竹林精舍記 : 龍城의 佳野里에는 죽림 선생 전공이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와 서식하면서 지은 죽림정사가 있다. 죽림공은 이곳에서 宦路에 나갈 생각을 접고 경전의 연구에 몰두하면서 특히 ?中庸?과 ?大學?, 天人性命의 근원, 用舍行藏의 사이에 크게 주목하였다. 戊申의 난이 일어남에 고성군수로서 적을 토벌하려다가 도리어 무고를 입어 화를 당할 뻔했으나 다행히 나라의 은혜를 입어 무사하였다. 세월이 오래되어 頹落한 정사를 ?孫 允永이 宗人들과 중건하고 그 일가 炳元과 함께 기문을 부탁하기에 지어준 글이다./ 孝婦閣記 : 龍宮의 楓井里에 蘿菴 선생 13세손인 李挺華에게 시집온 錦溪 黃俊良의 후예요 億周의 따님인 효부 평해 황씨의 효부각이 있다. 황씨는 조부모에게 효성을 다했는데 남편이 요절함에 혼자서 별난 조부의 봉양을 정성껏 담당했다. 신유년의 난리에도 효성 때문에 무사히 넘겼다. 효성이 지극함에 사림들이 위로하고자 하나 極力 사양하였다. 후손 蘭秀 등이 사림들과 황씨의 옛터에 효부각을 짓고 기문을 청하기에 지어준 글이다.(www.koreastudy.or.kr 2006)

 

  모계집(某溪集) | 볼륨:9권 5책 권제목:卷4 / ...요청하기에 써준 글이다.永慕亭記안동 동쪽 古谷里에 있는 영모정은 참의인 醴泉 林公을 위한 재실이다. 후손인 .../ 예천 관련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문집상세해제이다.//

 

  모계집(某溪集) : 볼륨:9권 5책 권제목:卷4 / ...이 오래되어 頹落한 것을 曾孫 義淵이 다시 짓고 기문을 요청하기에 지어준 글이다. 孝婦閣記龍宮의 楓井里에 蘿菴.../ 예천 관련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문집상세해제이다.//

 

  모과 [記事] : 고전국역총서(1982 刊)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 실린 허균(許筠)의 기사로, 그 내용은, “성소부부고 제26권/ 설부 5(說部五)/ 도문대작(屠門大嚼)/ 모과[木瓜] : 예천(醴泉)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맛이 배 같고 물기가 있다.”이다.(www.minchu.or.kr 2006)

 

  모과(木瓜) [特産品] : 예천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맛이 배 같고, 물기가 있다.(허균의 <성소부부고> 제26권 說部 5 屠門大嚼)

 

  모과나무 [植物] :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 교목으로, 고향은 중국이나 조선시대 소설에, "예천 모과가 맛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다 자라면 높이가 10m에 이른다. 갈색이나 보랏빛이 도는 모과나무 줄기와 붉은 꽃이 아름다워 옛 사람들은 모과나무 없는 정자는 생각할 수 없다며, 모과나무를 정자목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모과나무 목재는 '화류목' 또는 '화초목'이라 하여 고급 가구재로 쓰였다. '흥부전'에 놀부가 흥부의 세간 중 화초장을 탐내 지고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모과나무 목재로 만든 것이다. 모과나무의 열매인 모과에는 세 번 놀란다는 말이 있다. 과일이 너무 못생겨 놀라고, 못 생긴 과일에서 나는 향기가 좋아 또 놀라고, 향기가 좋은데 맛이 없어 세 번째로 놀란다는 얘기이다. 모과를 바구니에 담아 방이나 차 안 등의 실내에 놓아두면 은은한 향기가 배어나와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또 모과는 술을 빚기도 하고 특히 기침에 약으로도 쓰인다.(askhow 寫眞資料室)

 

  모기요 [童謠] : 예천군에 전승되어온 곤충요(昆蟲謠)이다. [內容] : 쥐야 쥐야 콩쥐야/ 어디서 잔니(잣느냐?)/ 부뚜막에서 잤다./ 머(뭐) 덮고 잔니/ 행주 덮고 잤지/ 머 비고 잔니/ 박죽(밥죽) 비고 잤다./ 머가 깨무드노(깨물더냐?)/ 모기가 깨무더라./ 먼(뭔) 피가 나오드노/ 붉은 피가 나오더라/

 

  모기재(慕氣齋), 청강재(淸岡齋) [齋舍] : 지보면 대죽리(大竹里)에 있는 재사로, 김녕인 야기재 김옥진(夜氣齋金玉振)을 위해 후손이 창건하였다. 또한 임진왜란(1592) 때 대죽리에 첫 이거한 김녕인 청강재 김덕공(淸岡齋金德恭)을 위하기도 한다.

 

  모내기소리 [民謠] : 예천 지방의 민요로, 일 노래는 일하는 사람들도 성숙시킨다. "한 톨 종자 싹이 터서 만곱쟁이 열매맺는/ 신기로운 이 농사는 하늘땅의 조화로다/ 우리하고 농군들요 이 내 말을 들어보소/ 사업공사 직업 중에 우리 농부님 제일이다." 한 톨 씨를 뿌려 만곱쟁이 열매를 거두는 농사일을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로 인식하는 한편, 농부로 살아가는 삶의 긍지 또한 대단하다. 농업은 공업과 달리 자원의 고갈 없이 지속 가능한 생명 산업임을 지각하고 있다. 누가 자기 직업의 가치에 대해서 이 정도로 이치에 닿게 인식하고 긍지 높은 자부심을 가질까. "세상 천지 못할 짓은 남의 집 종살이/ 자고새면 일만해서 생짜증이 절로 나네/ 산 차지 들 차지는 총독부의 차지이고/ 우리 농군의 차지는 일 차지 뿐이로다" 그러나 농사일이 항상 보람찬 것만은 아니다. 일이 아무리 보람 있어도 남의 집 종살이나 머슴살이 하는 사람에게는 짜증나는 일이다. 노동력만 수탈당할 뿐 일한 보람을 누릴 수 없는 탓이다. 자기 땅을 갖지 못한 농부처럼 불행한 농부는 없다. 나라 잃은 농부들도 마찬가지이다. 산과 들은 모두 총독부가 차지하고 있는데, 농군들에게는 온통 일만 돌아온다고 한탄이다. 종살이와 식민 지배의 모습을 비관적으로 노래하면서 자유롭고 해방된 일터를 꿈꾸는 것이다.(임재해(安東大 敎授) 勞動謠의 의무와 아름다움. www.sfoc.org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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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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