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예천1,318:무동지...무릉잡고...
작성자장병창 @ 2021.03.21 06:06:33

  도청신도시 예천 1,318 : 무동지...무릉잡고...

---

 

  무동지 : →무동못

 

  무등골, 무덤골 [골] : 용문면 덕신리(德新里) 덕고개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 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원래 옹기굴이었으나, 도둑들의 행패가 심하여 굴을 묻어버리고 떠났다.

 

  무등산 [山] : 지보면 도장리(道庄里)에 있는 산이다.

 

  무등산의 춘란 자생지 환경과 생육 특성(무등산의 春蘭 自生地 環境과 生育 特性) [論文] : 예천 출신인 장무웅(張茂雄, 1943- , 嶺南大 敎授) 등의 논문으로, 한국원예학회에서 2000년에 발행한 <한국원예학회지(韓國園藝學會誌)> 41권 6호 636-640쪽(5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keris 2003)

 

  무디미골 [골] : 지보면 어신리(漁薪里) 어지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무래이, 물한, 물안(物安, 勿安), 수한, 수다촌(水多村) [마을] : 감천면 수한리(水閑里)에 있는 마을로, 고려 말 목 정승(睦政丞)이 이곳에 살면서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 싸여있고, 아늑하여 만물이 평안하다고 물안(物安)이라 하고, 파자(破字)해서 물안(勿安)이라 했다고 하나, 물 아래(水下)라는 뜻이다. 곧 산은 높고 길며, 골이 깊고 물이 많은 곳에 생긴 평범한 마을 이름을 한자로 취음(取音)해서 뜻을 준 물한, 물한이, 또는 수한, 수다촌(水多村) 등으로 변하여 물안이라 불리었다. 그리고 마을 뒤 골짜기인 못골에는 지금도 목 정승(睦政丞)이 살았던 옛 집터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또, 일설(一說)에는 1480년경에 홍덕(洪德)이 개척했고, 18세기에 이장소(李章召)라는 관리가 피난처를 찾아와서 수한(水閑)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 옆에 새터라는 마을이 새로 생겼다. 50가구 270명(1980)이 살고 있다.

 

  무래이(물한, 物安, 水多村) : 甘泉面 水閑里 소속으로, 고려 말 목 정승이란 이가 이곳에 살면서 서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아늑하여 만물이 평안하다고 물안이라고 하고 파자해서 물안이라 했다고 하나 물아래라는 뜻 곧 산은 높고 골이 깊은 곳에 생긴 평범한 마을 이름을 한자로 취음해서 뜻을 준 것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마을 뒤 골짜기인 못골에는 지금도 목 정승이 살던 옛 집터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약 500여 년 전에 홍덕이란 이가 개척했다고도 한다.(甘泉面홈페이지 2013)

 

  무래이 :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수한리 [水閑里, Suhan-ri]/ 2016.07.23./ 예천군 감천면에 있는 리(里)이다. 300여년 전에 박한수라는 이가 살던 곳으로 "한(漢)이 사는 터"라 하여 한기라고도 했다고 한다. 무래이, 물한/ blog.naver.com/hmi0419/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daum 2017)
 

 

  무래이 : 감천면 지명유래/ 2011.12.22./ 했다고 한다. ▪ 무래이, 물한, 물안(物安), 수다촌(水多村) ▫ 고려 말 목 정승이란 이가 이곳에 살면서 서방이 높은... 쌓아두던 군기밭이 있으며 감천현청의 자리였던 현내리 581번지는 1921년까지 감천면사무소가 있었다. 이/ blog.daum.net/ibjc115/ 새천년 희망의 땅 웅..(daum 2017)

 

  무래이 : 김순흠(金舜欽)/ 풍산(豊山) (1840-1908) 치화(穉華) 죽포(竹圃) <예천신문 고장의 인물, 작성 장병창 논설위원> 김순흠(1840-1908)은 감천면 수한리 무래이(勿安) 마을 사람으로, 자는 치화(穉華), 호는 죽포(竹圃), 본관은 풍산, 중관(重瓘)의 아들.../ www.shinjongwoo.co.kr (daum 2017)

 

  무래이 : 상세내용/ 한다. ▪ 무래이, 물한, 물안(物安), 수다촌(水多村) : 고려말 목 정승이란 이가 이곳에 살면서 서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아늑하여 만물이 평안하다고 물안이라고 하고 파자해서 물안이라 했다고 하나.../ tour.ycg.kr/open.content/ko/culture/story (daum 2017)

 

  무래이 동동 [童謠] : 하리면 우곡리(愚谷里)에서 전승되어온 목욕요(沐浴謠)이다. [內容] : 무래이 동동 내 동동/ 파래이(파리) 동동 니(네) 동동/ (풀이) 어린이들이 두 손을 잡고 얕은 물에서 놀 때 부른다.(김송동)

 

  무레실(무리실(茂李室), 武夷) : 龍宮面 武夷里 소속으로, 현재 인근 면에 산재하고 있는 남포 백씨(藍浦 白氏) 낙향선조(落鄕先祖)인 백홍정(白弘正)이, 백형 이정(伯兄 ?正)이 고려 충선왕 복위사건(高麗 忠宣王 復位事件)에 연루되자 그 화를 면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피신정착(避身定着)하여 개척한 곳이라 하며 백홍정(白弘正)이 고향의 그리운 정에서 현 충청남도 보령군 남포(忠淸南道 保寧郡 藍捕)에 무이산명(珷夷山名)을 따서 무이실(武夷室)이라 이름한데서 기인한다고 하며 그 후 백씨(白氏)가 대대로 세거하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 후 역시 선조(宣祖) 때 이곳으로 옮겨온 여주인 창암(驪州人 滄암) 이윤수(李潤壽)라는 이가 마을에 오얏나무가 무성함으로 성씨를 맞추어 마을이름을 무이(茂李)라고도 부르며 내성천(乃城川), 금천(錦川), 기천(箕川)이 3면을 둘러서 흐르므로 무레실로도 부른다고 하며 무이실(茂李室)을 주려서 무촌(茂村)이라고도 한다. 내무(內武)마을(안마), 외무(外武)마을(밭마)이 있는데 동쪽마을이 내무(內武), 즉 안마고, 서쪽이 외무(外武), 즉 밭마라고 한다.(龍宮面홈페이지 2013)

 

  무레실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무이리 [武夷里, Mui-ri]/ 2016.07.24./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에 있는 리(里)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로는 소천서원이 있다. 무레실, 무리실, 무이(茂李室, 武夷) 현재 인근 면에 산재.../ blog.naver.com/hmi0419/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daum 2017)

 

  무레실 : 고려 말 대학자 전원발, 벗들과 유유자적하던 곳/ 2010.12.10./ 함께하는 경북의 재발견 - 50. 예천 무이리 청원정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에 위치한 청원정 전경, 예천 용궁면에는 내성천, 금천, 기천이 3면을 둘러서 흐른다고 하여 무레실(무이리)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고려.../ blog.daum.net/ycs6781/ 한글(daum 2017)

 

  무레실 : 용궁면/ 2011.04.22./ 1914년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편집] 행정 구역 읍부리... (용두진) 가야리 : 강당, 넙운개이(넘은갱이), 무이리 : 무레실(무리실, 무이), 갯마(포촌), 누문골(누문동).../ cafe.daum.net/YGCHO71/GsMa/ 용궁초등학교71회동기회(daum 2017)

 

  무레실 : 용궁면 무이리 마을/ 2016.05.10./ 무이리(武夷里) ▪ 무레실, 무리실, 무이(茂李室, 武夷) : 현재 인근 면에 산재하고 있는 남포 백씨(藍浦 白氏) 낙향선조(落鄕先祖)인 백홍정(白弘正)이, 백형 이정(伯兄.../ cafe.daum.net/backga1/TMdO/ 수원백씨 문간공파 쌍계공계(daum 2017)

 

  무례실 : →무리실

 

  무료 어린이 선교원을 통한 교회 활성화 방안(無料 어린이 宣敎員을 通한 敎會活性化方案) [論文] : 유천면 성평리 출신인 이순창(1955- , 大昌中 21回, 大昌高 19回 卒業, 牧師)의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1998년 신학박사 학위논문으로, 43 (28)쪽이다. 교회의 본질이 섬김이라는 사실과 나누는 터전이 되어야 함을 밝히는 데 방법과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활성화하려 하고 있다. 목차는, 1) 개요, 2) 상황 분석, 3) 현재의 상황, 4)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 5) 장애 요인 및 도전, 6) 이론적 기초, 7) 성서적 신학적 고찰, 8) 세상적 문화적 전망, 9) 개인적 전망, 10) 신학적 원리, 11) 변화 이론, 12) 이론적인 틀, 13) 목표의 타개책, 14) 평가, 15) 결론, 16) 참고도서 목록(38쪽), 17) 부록이다.(keris 2003)

 

  무료 어린이 선교원을 통한 교회 활성화 방안(無料 어린이 宣敎員을 通한 敎會 活性化 方案 =ACTIVATING THE YON-SHIN CHURCH THROUGH CHILDREN'S MISSION CENTER) [論文] : 유천면 성평리 출신인 이순창(1955- , 柳川初, 大昌中, 大昌高, 嶺南神學大 卒業, 西江大 相談心理學 碩士,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牧會學 博士, 牧師, 校牧)의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1998년 목회학 박사학위 논문으로, ii, 43쪽, 28쪽,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에서 1998년에 발행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서울대(중앙)이다. [초록] : 교회는 나누어야 하며 섬겨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성장과 확장에만 관심이 있으며, 본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본 논문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이 섬김이라는 사실과 나누는 터전이 되어야 함을 밝히는데 방법과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활성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교회는 종의 공동체이어야 한다. 즉 교회는 지역 사회를 위해서 닫혀진 교회가 아니라 열려진 교회가 되어야 하며,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활성화하려면 교회 안의 조직체의 성격과 풍토, 개성을 변화시켜나가며 체계 이론과 조직 이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변화 이론에 비추어 볼 때 섬김과 나눔을 통한 교회 활성화를 위해서는 먼저 의식 개혁을 통한 변화가 시도되어야 하며, 당회원과 교인들이 지역 사회 봉사에 눈을 뜨게 하므로 실제적으로 봉사가 이루어지며, 각종 정보 수집을 통해 교회 내에 잠재해 있는 인적 자원을 검토 조사하고 현장 체험을 통한 변화를 시도하려 한다. 아울러 담임목회자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라 교인 스스로가 참여하고 책임지는 목회가 되게 한다. 이와 같은 이론에 의하여 본 교회는 무료로 운영하는 어린이선교원을 개설하고자 한다. 이 섬김의 일을 위해 타개책으로 의식 개혁을 통한 변화를 준 다음, 선교위원회를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하였다. 마지막으로 그 타개책 중에서 규범화와 실행 단계로 진행해 나갔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하향식의 경직된 구조에서는 교회에 대한 불만이나 소극적인 자세로 임해왔으나 이제는 자신들이 교회의 주된 멤버로 선택되었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일하게 되었다. 이 번 과정에서 대체로 만족한 결과를 얻었다고 본다. 교회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섬김과 봉사의 모습이 눈에 보이게 달라졌다. 교회가 서로 돌아보는 모습으로 활동하게 되고 또한 지역 주민들이 교회를 보는 이미지가 달라지게 되었다. 뿐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공동체 의식도 구체적으로 달라졌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섬김과 나눔은 설교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공개적 활동 계획을 수립함이 큰 유익이니만큼 교회의 섬기는 일은 공개적이어야 하며 이제는 교인들이 직접 참여하고 함께 책임지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목차] : 개요(Abstract) = ⅰ/ 목차(Contents) = ⅱ/ 상황분석(Situation Analysis) = 1/ 현재의 상황(The Current Situation) = 1/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The Ideal Situation) = 3/ 장애요인 및 도전(Impediment and challenge) = 4/이론적 기초(Research and Perspectives) = 6/ 성서적 신학적 고찰(Bibl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s) = 6/ 세상적 문화적 전망(World and Cultural Perspectives) = 13/ 개인적 전망(Personal Perspectives) = 16/ 신학적 원리(Theological Principle) = 18/ 변화이론(Changing Theory) = 19/ 이론적인 틀(Theoretical Framwork) = 22/ 목표와 타개책(Thesis Goal and Interventions) = 23/ 평가(Evaluation) = 34/ 결론(Conclusion) = 36/ 참고도서목록(Bibliography) = 39/ 부록(Appendix)/(keris 2005)

 

  무루리들 [들] : 개포면 금리(琴里) 중리 너머에 있는 들이다.

 

  무루리들 : 고향이야기---개포면---<각 리(里)의 지명유래>/ 2002.12.02./ 금동(琴洞) 본래 예천군 개포면의 지역으로서 금곡 또는... [池內谷] [골] 중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못이 있다. * 무루리[들] 중리 너머에 있는 들. * 방기터[골] 양골.../ cafe.daum.net/yuchon/KIH/ 유천중학교총동문회(버들골 동문들이여(daum 2017)

 

  무릉잡고(武陵雜稿) [冊] :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의 시문집(奎 4495, 奎 4496)으로, 16권 9책, 목판본, 30.9x19.6cm,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20.5x15cm, 유계(有界), 10행(行) 20자(字), 주쌍행(註雙行), 판심(版心)은 상 화문 어미(上花紋魚尾)이다. 별집(別集)의 '봉우사십장(鳳羽辭十章)'은 예천향교(醴泉鄕校)의 가요(歌謠)로 지은 것이다. (kyujanggak.snu.am.kr 2002)

 

  무릉잡고 : 醴泉。送博還鄕。寄示子翰二首。 [한국문집총간-무릉잡고(武陵雜稿)]/ 주세붕 저 | 한국고전번역원/ 예천(醴泉)에 대한 -한국의 지식콘텐츠󰡐역사자료󰡑이다.//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