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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319:무릉잡고...무릉정...
작성자장병창 @ 2021.03.22 06:10:08

  도청신도시 예천 1,319 : 무릉잡고...무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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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릉잡고 : 醴泉。送博還鄕。寄示子翰二首。/ 상위서지: 武陵雜稿 > 武陵雜稿卷之二 別集 > 詩/ 저자: 주세붕(周世鵬)/ 분류: 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武陵雜稿卷之二 別集/ 詩/ 醴泉。送博還鄕。寄示子翰二首。/ 醴泉追送汝。汝去我猶留。戀豆非羈?。歸心洛水流。微官解縛人。行止不由身。夜夢于山柏。朝離淚滿巾。于山卽先塋//

 

  무릉잡고 : 武陵雜稿卷之二○別集/ 詩/ 醴泉。送博還鄕。寄示子翰二首。/ 醴泉追送汝。汝去我猶留。戀豆非羈?。歸心洛水流。/ 微官解縛人。行止不由身。夜夢于山柏。朝離淚滿巾。于山卽先塋/ 저자 주세붕(周世鵬)/ 분류고도서 >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제공 한국고전종합DB(http://db.history.go.kr/ 2014)

 

  무릉정(武陵亭) [亭子] : 호명면 송곡리(松谷里) 사그막골마을에서 북쪽 1km 산정에 있는 정자로, 앞으로는 작은 연못, 뒤로는 높은 산을 등지고 있다. 원래퇴계 이황(退溪李滉)의 제자로 선조(宣祖) 때 통례원 인의(通禮院引儀)를 지낸 연안인 눌헌 이응(訥軒李應, 1536- 1597)이 안동 절강(浙江) 위 도수곡(桃樹谷)에 창건한 것을 1906년(광무 10)에 그의 후손 이정기(李鼎基)가 종도천수(種桃千樹)의 경치가 중국의 무릉도원(武陵桃園)과 비슷하여 현 위치에 이건하여 무릉정(武陵亭)이라 하면서, 임진왜란 때 창의한 이응(李應)의 백형 이유(伯兄李愈), 중형 이희(仲兄李憙)의 유덕도 함께 추모하였다. 이응(李應)이 시로써 이르기를, 유거(幽居)함이 분수에 맞아 한 가지에 깃들여서/ 소나무 아래 떼처마가 깍지 않아도 낮아도 낮아라/ 바둑을 끝내니 개중(個中)에 할일이 없어/ 다시 동자(童子)를 불러 병아리 보호하라 하네(以上 原韻)라고 하였다. 이에 이어서 학봉 김성일(鶴峰金誠一)이 이르기를, "학산(鶴山)이 빈데 흰 구름 있어 깃들이니/ 한 부채 서쪽 바람머리가 몇 번 낮았는고/ 가히 예천에 사는 이 거사(李居士)가/ 무릉 언덕 위에 어린 닭 보호하노라."라고 하였다.(朝鮮寰輿勝覽 1929, 嶠南誌 1937, 醴泉郡誌 1939)

 

  무릉정(武陵亭) [亭子] : 호명면 송곡리 443번지(垈)에 있는 정자로, 연안인 이유(李愈), 이희(李憙), 이응(李應) 3형제를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사곡’ 마을 뒷쪽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주위에는 기와를 얹은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담장의 정면에는 사주문을 세워 출입케 하였다. 평면은 어간(御間)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고, 퇴칸의 주위에는 헌함(軒檻)을 설치하였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무릉정(武陵亭) [亭子] : 호명면 송곡리에 있는 정자로, 연안인 이응(李應)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05년에 세웠다. 이응은 월천(月川) 조목(趙穆),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 등 퇴계 문인들과 시작(詩作) 경학을 즐기며 놀았다.(醴泉鄕校誌 2004)

 

  무릉정(武陵亭) [亭子] : 호명면 송곡리 443번지(垈)에 있는 정자로, 임진왜란 때 창의한 연안인 이유(李愈), 이희(李憙), 이응(李應) 3형제를 기리기 위해 1906년에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사곡’ 마을 뒷쪽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주위에는 기와를 얹은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담장의 정면에는 사주문을 세워 출입케 하였다. 평면은 어간(御間)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고, 퇴칸의 주위에는 헌함(軒檻)을 설치하였다.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醴泉郡誌 2005)

 

  무릉정 [記事] : 전원집(田園集) 8권 4책 중 卷3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記 / 武陵亭重建記 8/ 延安人 訥軒 李應(1536˜1597)이 안동 상류 浙江 桃樹谷에 무릉정을 지어 梅村 李愈(1521˜1593), 栗里 李憙(1532˜1592) 伯仲 형제 및 鶴峯 김성일 등과 학문을 닦았다. 이후 西厓 문하에서 공부하였던 그의 胤子 沙皐公이 桃樹谷에서 백여 리 떨어진 酒泉 沙谷에 이건하였다. 그의 9세손 鼎基와 祀孫 炳圭가 문중과 뜻을 모아 9칸 건물로 중건하였고, 炳圭와 族弟 炳東이 鼎基의 명으로 청함에 지은 기문이다.(www.koreastudy.or.kr 2007)

 

  무릉정(武陵亭) : ㅇ 위치 : 호명면 송곡리, ㅇ 내용 : 송곡리(松谷里)에 눌헌(訥軒) 이응(李應, 1536~1957)을 위하여 1905년에 중건한 정자이다. 종도천수의 경치가 중국의 무릉도원과 비슷하여 “무릉정”이라 하였으며, 사림학파(士林學派)인 응(應)은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로서 거듭되는 사화(士禍)에 염증을 느껴 벼슬을 그만두고, 안동 절강상 도수곡(安東 浙江上 桃樹谷-現地名未詳)에 무릉정을 짓고, 그의 맏형인 매촌(梅村) 유(愈), 둘째 형인 율리(栗里) 희(熹)와 함께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약봉(藥峰) 김극일(金克一), 몽재(蒙齋) 이상룡(李詳龍), 월천(月川) 조목(趙穆) 등과 어울려 이 정자에서 매일 같이 시를 짓고, 정담(政談)을 나누면서 세상의 돌아감을 개탄하여 탄식하던 중, 1592년(宣祖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맏형인 유와 둘째 형인 희가 종군(從軍) 중, 전사하게 되자, 응(應)은 드디어 그가 이상(理想)으로 하던 도학정치(道學政治)를 펴보지도 못하고, 세상에 뜻을 잃은 채 평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사림학파들의 보금자리 격이었던 무릉정이 언제인지 모르게 허물어져 버려서, 지금은 그 유허(遺墟)조차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현재의 이 정자는 그의 후손들의 취락지인 현 장소에 응을 기념하기 위하여 1905년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 그들이 지었다고 하는 시(詩)글이 액자로 되어 정자 안에 걸려 있다. 즉 눌헌(訥軒)의 시를 비롯하여 매촌(梅村), 율리(栗里), 약봉(藥峰), 학봉(鶴峰), 몽재(蒙齋), 해월(海月), 운천(雲川), 삼성재(三省齋) 등의 시들이 걸려 있다. 현판 3자는 해사(海士) 김성시(金聲視)가 썼고, 도사(都事) 유도헌(柳道獻)의 중건기(中建記-靑蛇首冬上澣)가 있다.(虎鳴面홈페이지 2013)

 

  무릉정 : 건축이야기 / 건축정보|이유|이희|이응|왕래 인물 / ... 모으자, 예천에서는 이유 등이 즉시 호응하였다. 그래서 김륵은 이유로 예천수성장(醴泉守城將)을 삼고 예천 .../ 예천 관련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역사체험관 - 유적이다.//

 

  무릉정(醴泉송곡리 武陵亭) : *위치 : 예천군 호명면 송곡리 443(호명로 271-37), *연대 : 1905년 중건, *규모 : ‘-’자형 정자 1채, 사주문 1채/ 무릉정은 호명면 송곡리 사곡마을 산중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눌헌(訥軒) 이응(李應, 1536-1597)은 안동 와룡면 마골 도수곡(桃樹谷)에 ‘武陵’으로 편액한 정자를 짓고 당대의 문인들과 시를 짓고 정담을 나누었다. 그는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선조 때 사마관통래원인의(司馬官通禮院引儀)를 지냈으며, 만년에 예천의 사곡으로 이사를 하였다.

 

  무릉정중건기(武陵亭重建記)에 의하면 연안인(延安人) 눌헌 이응이 안동 절강(折江) 도수곡에 있을 때 무릉정을 지어 형제들과 토론하고, 학봉(學峯), 운천(雲川) 등 여러 선생들과 시를 주고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다가 형들이 임진왜란에 죽고, 공이 만년에 예천 사곡(沙谷)으로 이사를 하게 된 후 그 옛터는 여러 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 버렸다. 이를 그리워한 후손이 사곡에다 정자를 짓고, 이름은 옛날 그대로 한 것이 오늘의 무릉정이라 한다. 송곡리 무릉정은 호명면을 동서로 관통하는 924번 지방도로 호명로에서 북측 산쪽으로 난 호명로 산길을 따라 접근한다. 이 산길은 잡목들이 좌우에 자라고 있으며, 무릉정 앞 바깥마당과 연지에서 멈춘다. 무릉정은 산길 북서측 경사면에 터를 마련하고 동남향을 하고 있다. 무릉정은 사면에 한식기와를 올린 토석담장을 쌓아 주변 산과 경계를 그었으며, 정면의 토석담장에 사주문을 세워 출입하고 있다. 시멘트로 포장한 사주문 앞 바깥마당 너머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가에는 고목들이 자라고 있다. 토석담장 우측과 배면 언덕에는 대나무와 잡목들이 무릉정을 감싸고 있으며, 좌측은 묘소가 있어 열려 있다. 담장 내 바닥은 흙바닥으로 나지막한 단을 쌓은 후 정자의 기단을 쌓았다. 무릉정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자형으로, 세 열로 기둥을 세워 평면을 구성했다. 평면은 전열에 우물마루를 꾸몄으며, 중앙의 마루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정면 열의 마루는 정면 기둥 밖으로 마루 끝을 확장한 후 마루 끝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정면 열의 마루 좌우 끝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미닫이 우리판문을 달아 외부에서 출입하도록 했다. 중앙 마루간은 배면에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우리판문을 달았다. 마루간에 면한 온돌방은 대청 쪽에 두 짝 여닫이 들문을 달아 공간 확장이 용이하도록 했다. 좌우 온돌방은 전면 마루간 쪽에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창문을 달았고, 좌우측 벽에는 외여닫이창문을 달아 놓았다. 무릉정의 기단은 시멘트모르탈과 자연석으로 축조했으며, 바닥도 시멘트모르탈로 마감했다. 좌우측 기단에는 좌우 온돌방의 아궁이를 꾸며 놓았으며, 굴뚝은 배면과 측면에 있다. 주초는 자연석이며, 정면 열 주초 위 기둥은 원기둥이고, 나머지 주초 열의 기둥은 사각기둥이다. 원기둥 상부는 직절이공방식으로 창방과 보아지가 짜 맞춤을 한 후 주두를 놓고 보와 도리받침장혀, 굴도리가 짜 맞춤을 하였으며, 장혀와 창방 사이는 소로를 끼워 장식했다. 나머지 사각기둥 상부는 납도리형식으로 보아지와 창방, 납도리가 짜 맞춤을 했다.

 

  무릉정 가구는 이고주 오량이며, 마루간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열려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처마 끝은 막새를 사용하지 않고 와구토로 마감한 후 철재 차양과 물받이를 달았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으로 추녀마루와 용마루, 내림마루 끝은 망와로 마감했다. 무릉정 목재는 석간주색으로 단청을 하고, 서까래와 보 등의 마구리는 흰색으로 칠했다. 벽면과 서까래 사이는 회바름으로 마감했다. 마루간 상부에는 ‘武陵亭’과 ‘武陵亭重修記’ 편액이 걸려 있다. 현재 무릉정은 1905년 건립 이후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고, 일반적인 정자의 실구성을 바탕으로 독특한 간잡이를 하고 있다. 따라서 무릉정은 그에 적합한 보존 및 활용, 유지관리계획을 세운 후, 이에 따라 정비 및 활용한다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예천군 건축문화유산 조사연구 2013년, 315-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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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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