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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천1,325:무신창의록...무역실무
작성자장병창 @ 2021.03.27 06:09:07

  도청신도시 예천 1,325 : 무신창의록...무역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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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生員 權▣, 安東人, 贈領相 士彬 后, 有經學/ 生員 宋翼龍, 冶城人, 察訪 福基 五世孫, 文學行誼 見推鄕里 擧義草檄人 皆傳誦大▣ 僉樞/ 幼學 朴世亮, 咸陽人, 銓郞 從鱗 五世孫, 都事 守約 曾孫/ 幼學 朴東伯, 咸陽人, 銓郞 從鱗 六世孫, 承旨 守緖 玄孫/ 幼學 朴瑞虎 改瑞麟 咸陽人, 壬辰倡義 贈正郞 獻 玄孫, 以大行 見推鄕里/ 22) (醴泉義兵軍門坐目) 簽丁都監// 幼學 宋世鐄(횡), 冶城人, 察訪 福基 玄孫, 文章邃博 操履高潔/ 23) (醴泉義兵軍門坐目) 行軍座首// 幼學 李億, 慶州人, 縣監 文佐 七世孫, 孝 贈佐郞 榮門 玄孫, 器宇深原 志節慷慨/ 24) (醴泉義兵軍門坐目) 大將// 正字 朴成玉, 咸陽人, 銓郞 從鱗 七世孫, 郡守 贈承旨 廷蓍 曾孫, 正言 希閔 子, 司馬, 文科, 官止 持平, 天資端重 學行純篤 當時有籧 伯玉 之稱/ 變初首發通諭激起義旅整部立約分兵譏捕獲/ 世樞等讓起功於麾下麾下錄揚武勳聞省韙之/ 後入臺地多所陳列時望甚重及卒 柳升鉉 哭之/ 曰君在衣有領君亡屋撤棟有遺集/(http:/yoksa.aks.ac.kr 2005)

 

  무신창의록 2(戊申倡義錄 v2) [冊] : 대표서명 권수제(권두서명)에 의함/ 편저자 정조(正祖)/ 언어 한문/ 판사항 木板本/ 형태서지 5卷2冊: 四周쌍邊, 半郭23 × 17㎝, 10行20字, 上下二葉花紋魚尾, ; 30.8 × 21.1㎝/ 소장처 정신문화연구원/ 주제분류 史部, 雜史/ 1) (別錄) 醴泉// 正郞 李文標, 眞城人, 吏參 堣 后, 變初 知扶安縣 日遺將校詷察 非常 因▣捕將校 馬德重 所, 告 文標 當夜 領軍 掩捕 成得夏 相夏 李漢楚 等 12賊 窮問 得締結 京畿 賊將 起兵古阜狀押付 巡營 上送京師 又卽 祕移京營▣捕所招內諸賊 元萬柱 鄭世允 金日采 等 以次▣除湖皐不 以實聞但 啓以 扶安人 馬德重 告賊云云 文標 竟未錄勳公議 惜之/ 隊將 黃守萬, 平海人, 變初 隸本郡 義陣 星夜往來于 安東 義陣 探報 軍機 本 郡守 徐宗一 以其武藝 出衆 帶往守 鳥嶺山城 多有勞效年今 88生存/ 軍官 張嘉五, 仁同人, 玉山君 安良 后, 變初 郡守 往守嶺城 官府一空使 嘉五 守之 嘉五 誓死, 以守甚 有勞績 年今 79生存/ 2) (龍宮義兵) 答安東 順興 義陣文, 生員 安日履 等 10餘 人//

 

  不意 亂逆之徒忽生 於300年 禮義之邦 惟我臣民之痛心 沫血不▣ 爲外寇比也 孰不欲赴難一死 以少酬我 列聖 涵育之恩 哉弊縣方 齊聲 合議謀所 以擧義 討罪 今承通諭實 爲先獲 秉彛所同敢不奮發而 同聲 以應哉願從僉 君子後從事 討賊必盡소滅 乃己伏願僉 君子進而 敎之/ 3) (龍宮義兵) 報號召使狀// 亂逆之變 言之汚口思之痛心 凡有民彛者孰無沫 [주]沫 血張瞻 以效親上▣長之願也 生等 竊不自量敢效 沐浴之義 誓不▣ 此賊而 俱生適奉我閤下 招諭之勤益自感奮佑我 ▣堂 節次規晝之際 安陰 捷報 翩到 ▣皇天眷之幸 宗▣梟▣之徒 不多日而 ▣滅 國家之慶 臣民▣▣巡營 解兵之關 己布 各邑 儒生 倡義之擧 似當車第 停止敢此仰稟/ 戊申倡義錄 卷之三/ 4) (龍宮義兵) 掌書// 幼學 鄭之鏶, 東萊人, 應敎 渙 七世孫, 參奉 榮後 曾孫, 志行雅飭 文詞瞻敏/ 5) (龍宮義兵) 倡義日記// 戊申(1728) 3月 15日 賊起 湖西 爲官軍所滅 繼聞餘孼復陷 安陰 居昌, ㅇ 30日 安東 倡義通文 來到發文 幼學 李栽 等 數 100人, ㅇ 號召使關文 來到, 4月 初1日 校院任 以同聲 倡義之意 文告一鄕, ㅇ 初2日 士林會 鄕校 ㅇ 順興 通文 巡使 關文 幷到 ㅇ 初3日 答通 安順, ㅇ 榮川 倡義 通文 來到, ㅇ 午後 會員 100餘 人 將分定 軍門 各 任 聞 官軍 捷報 姑止 以待 關文, ㅇ 初4日 會員 113人 馳報 擧義于 本官 鳥嶺 留陣所 居數日 破賊 關文 來到 遂罷 歸報號 召使/ 6) (龍宮鄕校倡義坐目) 倡義公事員// 幼學 高雲五, 開城人, 右尹 文佑 玄孫, 壬辰義將 郡守 尙▣ 曾孫, 參奉 世章 子, 文行 爲時所重/ 生員 鄭游蓮, 淸州人, 貞簡公 琢 五世孫, 察訪 允穆 玄孫, 以學行 有土望 變初 自以世臣之後 首謀倡義▣一門子弟▣婦人緞 爲戎衣文諭 列邑期與俱擧 鄕人推 爲主盟繡衣 吳光運薦 聞/ 7) (龍宮鄕校倡義坐目) 倡義有司// 幼學 李瀞, 驪興人, 文節公 行 后, 翰林 迨 五世孫, 王子師 傳煥 曾孫, 文學行誼 見推於時 變初, 以校長議 倡義擧 有古今忠逆辨敵愾吟/ 幼學 安履性, 順興人, 直提學 質 后, 正郞 敬賓 五世孫, 護軍 晉石 子, 剛毅奮發 勇於赴義/ 幼學 南以元, 英陽人, 承旨 隆達 玄孫, 同樞 導衡 子/ 幼學 鄭之鎛, 東萊人, 應敎 渙 七世孫, 參奉 榮後 曾孫, 識度弘達 有幹事器局/ 幼學 柳世潤, 晋州人/ 幼學 全宇權, 竺山人, 甲子勳錄 府使 贈都承旨 以性 五世孫, 贈大憲 五倫 曾孫, 有文學行誼/ 幼學 李守世/(http:/yoksa.aks.ac.kr 2005)

 

  무실팔조(務實八條) [上疏文] : 용문면 금당실 출신인 산천 박주종(朴周鍾, 1813-1887, 咸陽人)의 1862년(철종 13)에 올린 상소문으로, 우등(優等) 5인으로 합격하였으며, 영남 유림의 소수(疏首)로 훼철된 향교를 복원하라고 상소한 복원소(復院疏)와 또 영남의 선현들(서애, 학봉, 한강, 여헌, 점필재)을 문묘에 모시라는 상소와 별동 윤상을 비롯한 여러 선현의 시호를 청하는 상소 등이 더욱 돋보인다.(金塘ㆍ맛질의 歷史的 位相 2003)

 

  무심바우(無心岩), 외암(畏岩) [마을] : 예천읍 왕신리(旺新里) 새터 동남쪽 약 300m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 입구에 있는 큰 바위가 무서운 느낌이 들만큼 컸으나, 그 바위 뒷골에 무서운 생각도 없이 무심히 개척한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무심(無心)바우라 했다고 한다. 13가구 154명(1980)이 살고 있다.

 

  무심바우(無心岩) [傳說] : 예천읍 왕신1리 무심바위 마을 앞에 있는 무서운 느낌이 들만큼 커다란 바위로, 오래 전 이 마을에 정이 깊고 우애가 돈독한 몇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 중에 방울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방울장사 나간 남편이 반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혼자 남은 부인은 걱정이 되어 매일 마을 앞에서 남편을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 몸이 쇠약하여진 부인은 언제나 기다리던 그 자리에서 그만 죽고 말았는데, 그 후 1년이 지나자 부인이 죽은 자리에 평평한 큰 바위가 생겨났다. 그 형상은 마치 가만히 앉아서 남편을 기다리기 위하여 앞을 내려다보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인이 바위가 되어 끝까지 기다렸는데도 끝내 그 방울장사가 돌아오지 않자, 그 바위를 무심바우라 불렀다고 한다.(醴泉新聞 2003.12.12)

 

  무심바우(醴泉邑 旺新里 - 무심바우) [傳說] : 예천읍 왕신1리 무심바우 마을 앞에 무서운 느낌이 들만큼 커다란 바위가 있다. 오래 전 이 마을에 정이 깊고 우애가 돈독한 몇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 중에 방물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방울장사가 나간 남편이 반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혼자 남은 부인은 걱정이 되어 매일 마을 앞에서 남편을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 몸이 쇠약하여진 부인은 언제나 기다리던 그 자리에서 그만 죽고 말았는데, 그 후 1년이 지나자 부인이 죽은 자리에 평평한 큰 바위가 생겨났다. 그 형상은 마치 가만히 앉아서 남편을 기다리기 위하여 앞을 내려다보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인이 바위가 되어 끝까지 기다렸는데도 끝내 그 방물장사가 돌아오지 않자, 그 바위를 무심바위라 불렀다고 한다.(醴泉新聞 2005년 11월 18일)

 

  무심바우 : ㅇ 위치 : 예천읍 왕신리, ㅇ 내용 : 예천읍 왕신1리 무심바우 마을 앞에 무서운 느낌이 들만큼 커다란 바위가 있다. 1) 그 바위 뒷골에 이 마을을 처음 개척한 사람은 무서운 생각도 없이 무심히 마을을 개척(開拓)하여 그 바위와 마을 이름을 「무심바우」라 전해오고 있다. 2) 오래 전 이 마을에 정(情)이 깊고 우애(友愛)가 돈독한 몇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 중에 방울장사로 생계(生計)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방울장사 나간 남편이 6개월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자, 혼자 남은 부인은 걱정이 되어 매일 마을 앞에서 남편을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 몸이 쇠약하여진 부인은 언제나 기다리던 그 자리에서 그만 죽고 말았는데, 그 후 1년이 지나자 부인이 죽은 자리에 평평한 큰 바위가 생겨났다. 그 형상은 마치 가만히 앉아서 남편을 기다리기 위하여 앞을 내려다보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인이 바위가 되어 끝까지 기다리는데도 끝내 그 방물장사가 돌아오지 않자, 그 바위를 무심바우로 불렀다고 한다.(醴泉邑홈페이지 2013)

 

  무심바우 : 무심바위/ 2006.11.03./ 설명 예천읍 왕신1리 마을 앞에 무서우리 만큼 커다란 바위가 있다. 그 바위 뒷골에 마을을 처음 개척한 사람들은 그 바위와 마을 이름을 무심바우라 하였다 이 마을에는 이 바위에 대하여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오래.../ soos915.tistory.com/ 반그림의 세상이야기(daum 2017)

 

  무심바우 : 예천읍 왕신리 – 무심바우/ 예천읍 왕신1리 무심바우 : 마을 앞에 무서운 느낌이 들만큼 커다란 바위가 있다. 오래 전 이 마을에 정이 깊고 우애가 돈독한 몇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 중에 방물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부부가.../ www.ycnews.co.kr/news (daum 2017)

 

  무심바우 : 읍면.pdf/ 1리(무심바위) 배수로 설치(200m) 30,000 ○왕신1리(신천서원 옆) 배수로 설치(185m) 15,000 ○청복1리(골마을) 배수로 설치(200m) 30,000 ○청복1리(바깥골) 배수로 설치(200m) 30,000 ○청복2리(남읍내) 농로포장.../ www.ycg.kr/download/open.content (daum 2017)

 

  무심바우 : 고향이야기---예천읍--<전설/설화>/ 2002.12.05./ 이불도 없는 냉돌에서 따뜻하게 새웠다고 한다. □ 제 목 : 무심바우 □ 전승장소 : 예천군 예천읍 왕신리 □ 내 용 예천읍 왕신1리 마을 앞에 무서울 느낌이 들만큼 커다란.../ cafe.daum.net/yuchon/KIH/ 유천중학교총동문회(버들골 동문들이여..(daum 2017)

 

  무심바우 : 졸업 앨범입니다. 추억을 더듬어 보세요./ 2013.03.21./ 35 권태화1 예천읍 왕신리 357, 36 김영일3 예천읍 왕신리 458 무심바우, 37 김한영1 예천읍 동본리.../ cafe.daum.net/yces/MdyL/ 예천(서부)초등학교 49회 동창회 | 댓글 7(daum 2017)

 

  무안 박 [記事] : 봉화군사/ 간행년 : 2002/ 저자 : 봉화군/ 발행처 : 봉화군/ 第2章 門中小史/ 무안박씨(務安朴氏) : 무안박씨는 八大君派中 여섯째인 完山君의 후예로서 박진승(朴退昇)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선조 때 정랑 全과 도사를 지낸 수서 善長의 후손이 봉화읍 화천에 90여 호가 집단적으로 문호를 열어 살아오고 있다. 그 외 물야북지, 법전눌산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살고 있다. 예천군내에는 유천면 등지에 살고 있다.(www.koreastudy.or.kr 2007)

 

  무역(醴泉郡 初等學校 漢字工夫 第2卷 28次時 貿易) [멀티미디어資料] : 개발자 : 예천군 상리초등학교 교사 오재흥, 출처 : 경상북도교육청(EDUNET 2006)

 

  무역 금융의 지식(貿易 金融의 知識) [冊] : 예천 출신인 박현우(朴鉉瑀, 1958- , 大學 講師) 등의 저서로, 189쪽, 삽도, 19cm, 서울 한국경제신문사에서 1991년, 1992년, 1994년에 출판한 <EM문고> 10권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머리말, 1) 무역 금융이란 무엇인가, 2) 무역금융제도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3) 국가별 무역 금융은 어떻게 다른가, 4) 일반 수출입 금융, 5) 내국 신용장제도, 6) 건설, 용역 수출 금융, 7) 농수산물 수출 준비 자금 대출, 8) 기타 무역 금융, 9) 무역 금융과 환 리스크 관리, 10) 무역 금융의 효율화 및 개선 방향, 11) 맺음말(190쪽)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서고자료신청대에 소장(청구기호 326.21-박745ㅁ=2)되어 있고,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고려대(서창), 대전대, 덕성여대, 동아대, 목포대, 배재대, 부산외대, 서경대, 서울대(중앙), 성균관대(중앙), 순천향대, 신구대, 영남대, 용인대, 인제대, 창원대, 청주대, 충남대, 평택대, 한국항공대, 한서대, 한양대(백남), 호원대, 홍익대이다.(keris 2003)

 

  무역실무(인터넷 時代 貿易實務) [冊] : 풍양면 청곡리 별실(別谷) 출신인 정재완(鄭在完, 稅務大 敎授)의 저서로, 636쪽, 삽도, 26cm, 서울 두남에서 2002년에 출판하였다. 참고문헌(635-636쪽)이 있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강남대, 건국대(상허), 경남대, 경북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단국대(중앙), 동덕여대, 동의대, 부경대, 서울대(중앙), 서울여대, 세종대, 순천대, 울산대, 원광대, 조선대, 중앙대(제1캠퍼스, 제2캠퍼스), 충남대, 충북대, 한국외대(서울, 용인), 한림대, 한양대(백남), 호서대(천안)이다.(keri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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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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